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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735:박상진(2)-박상채-박서보(1)
작성자장병창 @ 2014.08.18 06:14:26

  예천의 자랑(3735) : 박상진(2)-박상채-박서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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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시와 궁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 고려시대 중엽 이후 조선 초기까지는 많은 내시와 궁녀들이 중국 조정에 들어가 봉사했다. 그들 중에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의 부인이 된 기황후가 있고, 승상을 마음대로 부릴 정도의 권세를 가진 고용보 같은 내시와 충선왕을 귀양 보낸 임빠이앤투그스가 있다. 그들은 중국 조정의 배경을 이용하여 자신이 태어난 고을을 승격시키는가 하면, 공신이 되어 군으로 봉군되는 경우도 흔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15명이 한꺼번에 군으로 봉해지기까지 했다. 조선시대에는 유전을 답사한 내시 이효지를 비롯하여, 신분을 속이고 무과에 급제한 내시 김윤문, 김처선 못지않게 바른말을 아뢰고 죽음을 당함으로써 자신의 직무를 다한 김순손이 있다. 한편, 궁녀는 죽기 전에는 궁을 나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는 퇴직한 궁녀들이 살았던 궁말이란 지명이 남아 있고, 진관외동에는 인조 때인 13세에 궁녀가 돼 40여 년간 4명의 임금을 모시고 숙종조에 죽은 임상궁과 상궁 김해김씨의 묘와 보모상궁 김씨의 묘비가 남아 있다. 조선조 마지막 궁녀인 성옥염 상궁은 죽기 전 무의탁 노인복지시설인 서울시 노원구 중계사회복지관에 머물렀는데, 그녀가 남긴 것은 몸뻬 두 벌, 양말 등 내의 몇 벌, 그리고 2만 3,000원이 든 낡은 지갑만을 남기고 자신이 모시던 윤황후의 곁으로 떠났다. 이처럼 내시와 궁녀는 구중궁궐의 숨은 권력자이면서 동시에 왕의 수족으로 평생 육체적인 결함과 마음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시와 궁녀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이 역사에 남긴 흔적과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조명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북한산 내시 묘역은 최고·최대-서울 진관내동 일대 집단 묘역 발견] : 저자가 최초로 발견한 서울 북한산 자락의 내시 집단 묘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크며 보존상태가 양호한 조선 시대 최대의 묘다. 조선시대 내시 집단 묘역이 조성돼 있는 곳은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199 중골 마을로 북한산 의상봉 등산의 기점이 되는 백화산 인근이다. 이곳에는 내시파중 이사문을 파조로 하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모여 있다. 가장 오래된 묘는 정2품 품계인 자헌대부로 승전관을 지낸 김충영金忠英의 묘다. 이곳에 현재 남아 있는 묘 가운데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이가 모두 14명이다. 이중 내시부 최고 관직인 종2품 상선에 오른 이가 박황朴滉, 임성익林成翼, 김성휘金成輝, 박민채朴敏采, 오준겸吳浚謙 등 5명에 달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내시 묘역이 확인된 만큼 정부에서 하루빨리 사적으로 지정,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 속으로] : 원로 향토 사학자인 김동복金東福(1927년생) 씨의 증언에 의하면 여의도의 영등포쪽 샛강을 못미처서 '용추龍湫'라는 연못 옆에는 내시를 양산하는 움막으로 된 시술소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이곳을 지나다닐 때 노인들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고종 34년(1897) 대한제국이 성립되기 이전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김동복 씨가 어렸을 때 옆집에 내시가 살고 있었는데, 내시의 아내가 놀러 와서 어머니와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시술 과정에서 남근 부분은 남겨 놓은 채 음낭 부분만 제거했다는 것이다. 시술은 주로 비 오는 날 천둥번개가 칠 때 많이 했다고 한다. 그것은 내시가 수술로 인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이 비명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내시의 아내는 남편과의 부부관계도 가능했다고 말했다는 데, 다만 사정이 안 돼 아내의 목덜미와 어깨를 사정없이 물어서 괴로웠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36쪽/ 애기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연말 연초의 궁중 민속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쥐부리 글려!'라는 것이었다. 이는 본래 민간에서 정월 상해일上亥日과 상자일上子日에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주술적 행사로 출발했다. 행사의 취지는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쥐나 해충들의 입부리를 지지는 뜻으로 무언가를 태우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궁중 행사로 차용하여 섣달 그믐날 밤에 젊은 내시 수십 명이 애기나인들의 입에 밀떡을 물리고 수건을 접어 마스크처럼 귀에 걸게 한 후 캄캄한 대궐 뜰에 옆으로 세운다. 그런 후 횃불을 든 내시들은 어린 나인들의 입에 횃불을 들이대며 "쥐부리 글려, 쥐부리지져!" 하며 위협을 주는 행사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227쪽/  [책 꼬리] : 총 1 개 | 환관과 궁녀/ 분류역사/문화 > 한국사 > 조선시대 > 조선시대일반/ [이 책의 총서] : 총 13 개| 조선시대 조선사람들(가람역사 35) 양반나라 조선나라 너희가 포도청을 어찌 아느냐 조선의 왕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 소설 퇴계 이황 지워진 이름 정여립(조선사회사총서 6)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조선사회사총서 8) 언론이 조선왕조 500년을 일구었다(조선사회사총서 9)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daum 2010)

 

  박상진 : 에피소드로 본 한국사 [冊] : 예천 출신 박상진(朴相進, 1963- , 出版社 프리랜서)의 저서로, 318쪽, A5, 생각하는백성에서 2002년 1월 5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우리가 모르는 한국사에 대해 엮은 책.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우리가 일찍이 들어본 적도 없는 역사상의 흥미로운 사건 위주, 2부는 이숙번을 비롯한 조선조 권신들의 비화, 3부는 셈을 할줄 모르는 왕족 등 왕실 종친들의 비사 등에 대해 엮었다.(daum 2010)

 

  박상진 : 내시와 궁녀 - 제왕의 그림자 (조선사회사 총서) (23) [冊] : 예천 출신 박상진(朴相進, 1963- , 出版社 프리랜서)의 저서로, 288쪽, A5, 가람기획에서 2005년 5월 30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우리나라의 내시와 궁녀를 다룬 책.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우리나라 내시와 궁녀를 최초로 소개하고 있다. 내시의 유래에서부터 내시가 되는 과정과 그들의 결혼생활, 묘지, 일화와 함께 궁녀의 유래, 출궁과 죽음, 궁녀의 선발과 입궁 과정, 등 내시와 궁녀의 삶을 빠짐없이 복원하였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시와 궁녀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이 역사에 남긴 흔적과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조명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직접 답사하여 찍은 다양한 관련 사진과 소설형식을 구사한 에피소드,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희귀 문서 등을 함께 수록하였다. [저자 소개] : 지은이 박상진/ 1963년 예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국철학(문학석사)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 사료조사 위원, 은평향토사학회 부회장, 사·법 서울문화사학회 회원으로 있으며, 꾸준히 우리 역사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짝짓기로 배우는 세계사》와 《한국의 로맨스》《에피소드로 본 한국사》《베일 속의 한국사》등이 있고, 역서로는《평성부원군 충렬공실기》《한성주보》《조선조 영의정 박원종 연구》등이 있다./ [목차] : 머리말/ 제1편 왕의 남자 내시/ 1.내시의 유래/ 2.삼국시대의 내시/ 3.고려시대의 내시/ 4.조선시대의 내시/ 5.일화/ 6.내시의 가정생활/ 7.내시 묘지/ 제2편 왕의 여자 궁녀/ 1.궁녀의 역사/ 2.일화/ 역대 왕실 세계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 내시와 궁녀는 역사가 시작된 이후 동서양 여러 나라에서 존재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내시, 궁녀의 역사는 이미 오래 전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신라 성덕왕 때 환수라는 내시 관직명이 확인되어 이때부터 내시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시와 궁녀》는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 왕의 수족과 그림자가 되어 한 많은 생을 살아야만 했던 내시와 궁녀들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내시의 유래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우리나라 내시와 궁녀를 최초로 소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여기에 내시가 되는 과정과 그들의 결혼생활, 묘지, 일화와 함께 궁녀의 유래, 출궁과 죽음, 궁녀의 선발과 입궁 과정, 등 내시와 궁녀의 삶을 빠짐없이 복원했다. 우리는 이 책에 소개된 일화를 통해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숨은 권력자들과 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고 희생한 내시와 궁녀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집필을 문헌에만 의존하지 않고 저자가 내시·궁녀 관련 유적을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답사하여 찍은 사진과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희귀 문서 또한 볼거리다. 또 저자는 고법전을 인용해 조선시대 내시·궁녀의 녹봉을 밝혀놓았으며, 20여 종의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한 '역대 왕실 세계표'는 우리나라 왕실 계보를 이해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내시들은 어디에서 살았으며, 어느 곳에 묻혔을까?] : 내시들은 오늘날의 종로구 효자동,봉익동·운니동 일대, 은평구 신사동·응암동 일대, 서대문구 연희동·가좌동 일대 등 수도권 전역에 거주했다. 현재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는 아직까지도 선조조 내시 김계환의 14대손인 유충현 씨가 선영을 돌보며 살고 있다. 흔히 내시들은 궁 안에서만 살고 결혼이나 자식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날의 효자동인 궁 밖 준수방에 내시부가 위치에 있었다. 효자동은 본래 내시들의 별칭인 화화자가 살던 동네라 해서 화자동이라 했던 것인데 뒤에 음이 변해서 효자동이 되었다. 내시들의 묘는 서울 은평구 진관내, 외동, 도봉구 쌍문동, 노원구 상계동, 중랑구 신내동은 물론 고양, 양주, 남양주, 파주 심지어 평안남도 강동, 경상북도 풍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국에 산재해 있다. 이 책은《 내반원기》《한성부 북부장 호적》《양세계보》를 참고로 하여 내시의 거주지역과 묘비에 써 있는 글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시와 궁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 고려시대 중엽 이후 조선 초기까지는 많은 내시와 궁녀들이 중국 조정에 들어가 봉사했다. 그들 중에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의 부인이 된 기황후가 있고, 승상을 마음대로 부릴 정도의 권세를 가진 고용보 같은 내시와 충선왕을 귀양 보낸 임빠이앤투그스가 있다. 그들은 중국 조정의 배경을 이용하여 자신이 태어난 고을을 승격시키는가 하면, 공신이 되어 군으로 봉군되는 경우도 흔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15명이 한꺼번에 군으로 봉해지기까지 했다. 조선시대에는 유전을 답사한 내시 이효지를 비롯하여, 신분을 속이고 무과에 급제한 내시 김윤문, 연산군을 주색에 빠지게 한 김자원, 반대로 내시 김처선은 사대부도 왕에게 바른말을 하지 못하던 시절 폭군 연산군의 폭정을 아뢰고 죽임을 당함으로써 자신의 직무를 다했다. 한편, 궁녀는 죽기 전에는 궁을 나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는 퇴직한 궁녀들이 살았던 궁말이란 지명이 남아 있고, 진관외동에는 인조 때인 13세에 궁녀가 돼 40여 년간 4명의 임금을 모시고 숙종조에 죽은 임 상궁과 상궁 김해김씨의 묘와 보모상궁 김씨의 묘비가 남아 있다. 조선조 마지막 궁녀인 성옥염 상궁은 죽기 전 무의탁 노인복지시설인 서울시 노원구 중계사회복지관에 머물렀는데, 그녀가 남긴 것은 몸뻬 두 벌, 양말 등 내의 몇 벌, 그리고 2만 3,000원이 든 낡은 지갑만을 남기고 자신이 모시던 윤황후의 곁으로 떠났다. 이처럼 내시와 궁녀는 구중궁궐의 숨은 권력자이면서 동시에 왕의 수족으로 평생 육체적인 결함과 마음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야했던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시와 궁녀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이 역사에 남긴 흔적과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조명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북한산 내시 묘역은 최고·최대-서울 진관내동 일대 집단 묘역 발견] : 저자가 최초로 발견한 서울 북한산 자락의 내시 집단 묘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크며 보존상태가 양호한 조선 시대 최대의 묘다. 조선시대 내시 집단 묘역이 조성돼 있는 곳은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199 중골 마을로 북한산 의상봉 등산의 기점이 되는 백화산 인근이다. 이곳에는 내시파중 이사문을 파조로 하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모여 있다. 가장 오래된 묘는 정2품 품계인 자헌대부로 승전관을 지낸 김충영金忠英의 묘다. 이곳에 현재 남아 있는 묘 가운데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이가 모두 14명이다. 이중 내시부 최고 관직인 종2품 상선에 오른 이가 박황朴滉, 임성익林成翼, 김성휘金成輝, 박민채朴敏采, 오준겸吳浚謙 등 5명에 달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내시 묘역이 확인된 만큼 정부에서 하루빨리 사적으로 지정,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daum 2010)

 

  박상진 : 베일속의 한국사 [冊] : 예천 출신 박상진(朴相進, 1963- , 出版社 프리랜서)의 저서로, 350쪽, A5, 생각하는백성에서 2002년 6월 15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한국사의 비사를 발굴하여 소개한 책.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인 '엽기의 한국사'편에서는 '조선조의 양성을 가진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인육을 먹은 적이 있다', '여자아이를 넣어 만든 에밀레종' 등 그야 말로 엽기적인 내용을 다루었으며, 2장에서는 '한국사 속의 해프닝'이라는 제목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극에 달해있던 '조선조의 공처가들', '코끼리를 귀양 보낸 태종', '계약결혼을 했던 황진이' 등 기괴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끝으로 3장의 '왕실의 비사'편에는 '몽둥이로 왕을 때린 원나라 공주', '호모 왕들', '세자빈은 레즈비언' 등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왕실의 비사들을 수록했다. [목차] : 제1장 엽기의 한국사/ .조선조에 남녀 양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16/ .과거에 사람고기를 먹은 적이 있었다? ...22 / .대식가였던 홍일동과 김춘추 ...27 / .괴승 일엄의 기행 ...31 / .도깨비를 마음대로 부린 비형 ...35/ .... / .구해준 여인을 아내로 맞은 남이장군 ...112// 제2장 한국사 속의 해프닝 / .과거장의 해프닝 ...118 / .빌린 책을 한 장씩 벽에 발라서 외운 김수온 ...123 / .김시습이 거름구덩이에 빠져 목만 내놓은 까닭은? ...128 / .신장만을 믿고 있다가 강화성을 함락당한 김경징 ...136 / .왕족을 사칭한 신만손 ...142 / .... / .제사용 돼지를 죽였다하여 구덩이에 묻어 죽이다 ...230 // 제3장 구중궁궐 왕실의 비사 / .몽둥이로 왕을 때린 원나라 공주 ...234 / .임금님은 호모였다? ...241 / .먹어서(?) 임신을 한 장화왕후 ...249 / .송충이를 삼킨 임금님 ...253 /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256 / .... / .가죽주머니에 넣어 바다에 던져진 관나부인 ...345(daum 2010)

 

  박상진 : 조선조 영의정 박원종 연구 [冊] : 예천 출신 박상진(朴相進, 1963- , 出版社 프리랜서)의 저서로, 366쪽, 양장본, A5, 국학자료원에서 2001년 8월 15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조선조 성종·연산군·중종의 3대에 걸쳐 역사한 영의정 박원종의 자료를 정리한 책. 박원종에 대한 소고와 묘도문을 비롯해 구공신 회맹문, 좌의정 이행, 안축, 월송정 중건기, 유허지 답사기, 성종실록 및 연산군일기, 중종실록 등을 수록했다. [목차] : -박원종의 가계 ...23 / -묘도문 ...67 / -전 ...105 / -서 ...125 / -회맹. 제문 ..133 / -만사 ...145 / -평성부원군 부인만사 ...149 / -유사 ...151 / -제영 ...153 / -기문 ...157 / -수먹먹요 ...165 / -조선왕조실록 충렬공 관계기사 ...171(daum 2010)

 

  박상진 : 한국의 로맨스 [冊] : 예천 출신 박상진(朴相進, 1963- , 出版社 프리랜서)의 저서로, 304쪽, A5, 무당미디어에서 1998년 9월 20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우리 옛 선인들의 사랑이야기를 엮은 책. 낭만적인 사랑 -양녕대군과 정향, 의적과 기생의 진정한 사랑-임꺽정과 소향, 비극적인 사랑-중종과 단경왕후, 국경을 초월한 사랑- 인장왕과 한주, 원수 간의 사랑-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등 33편의 사랑이야기를 담았다.(daum 2010)

 

  박상진 : 짝짓기로 배우는 세계사 [冊] : 예천 출신 박상진(朴相進, 1963- , 出版社 프리랜서)의 저서로, 276쪽, A5, 모아도서출판에서 1996년 12월 21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세계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와 진기한 풍습을 소개한 역사서. 기인 김시습과 디오게네스, 조선의 여장 군 부랑과 프랑스의 잔다르크 등 동·서양의 27가지 닮은 이야기를 엮었다.(daum 2010)

 

  박상진(박상진 氏 ‘榮州全國民俗寫眞 撮影大會 金賞’) [記事] : 영주시가 주최하고 한국사협 영주지부가 주관한 ‘제5회 영주전국민속사진 촬영대회’ 심사(2013.6.9) 결과 예천군청 환경관리과 박상진 씨가 최고상인 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예천사진동우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씨는 이번 대회에서 ‘선비촌 소경’으로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 같은 사진동우회원인 김태흡(예천읍 백전리) 씨가 ‘전통혼례’로 동상, 예천양수발전소 김유진 씨가 ‘다문화 가족의 전통혼례’로 입상을 차지했다.(醴泉新聞 201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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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채(朴尙彩) : 호는 정옹(靜翁), 본관은 밀양, 선발(善發)의 손자, 문학이 뛰어나 향당(鄕黨)의 많은 존경을 받았고, 유집(遺集)이 있다.(嶠南誌 1937)

 

  박상채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靜翁 密陽朴公(尙彩) 墓碣銘/ ...B202_0146.jpg정옹 밀양박공(상채) 묘갈명옛날 가선 대부 동중추 박공이 세상 버린 지 백년이란 세월이.../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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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보(朴栖甫) : 1931- , 하리면 우곡리 133번지 출신, 본명은 박재홍, 본관은 밀양, 서양화가, 50년 성동고, 54년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 졸업, 57년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주도한 이래, 한국모더니즘미술운동의 선봉에서 활동해 왔다. 57년 한국현대작가전(뉴욕 월드하우스畵廊), 60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 한국전권 대표, 62-96년 홍익대 조교수, 동 부교수, 동 교수, 63년 파리비엔날레 한국대표, 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 한국대표, 1969년 칸국제회화전에 출품하였다. 1970년 홍익대 조형미술연구소장, 77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77-80년 한국미협 이사장, 83년에는 <종이와 묘법전(描法展)>을 가졌고, 85년 서울올림픽위원회 예술포스터협의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86-90년 홍익대 미대 학장, 96년 홍익대 정년퇴임이다. 96년 한국일보 청년작가초대전 운영위원장, 97년 홍익대 명예교수(현), 98년 예술의전당 자문위원(현), 2000년 부산아시안게임 홍보대사(현)이다.

 

  박서보 [記事] :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하리면 우곡리 133번지 출신 박서보(朴栖甫, 1931- , 弘益大 學長)는 대한민국의 미술가이다. 1950년대 후반 프랑스의 앵포르멜 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를 바탕으로 〈원형질(原形質)〉 연작을 발표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로는 〈허상(虛像)〉 연작을 통해 현대인의 번잡스러운 형상을 다루었으며, 1970년대부터 묘법 회화를 추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원형질(原形質)〉․〈허상(虛像)〉․〈묘법(描法)〉 연작이 있다. [주요 연혁] : 1931 : 경상북도 예천 출생, 1954 :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회화과 졸업, 1962-97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1970-77 :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1977-80 :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 1985-86 :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장, 1986-90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장, 1994 : 재단법인 서보미술문화재단 설립(daum 2009)

 

  박서보 [記事] : [朴栖甫]/ 출처: 브리태니커관련태그/ 한국화가, 서양화가 / 하리면 우곡리 133번지 출신 박서보(朴栖甫, 1931- , 弘益大 學長)/ 1931. 11. 15 경북 예천~./ 서양화가./ 추상계열의 서양화를 그렸다. 1954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956년 동방문화회관화랑에서의 4인전을 시작으로 화단에 나왔다. 한국 전위미술운동의 출발을 알리는 한국현대미술가협회전의 핵심 멤버로 앙포르멜 미학을 널리 알리는 데 선두주자로 활약했다. 〈원형질〉 연작으로 대변하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는 서구 및 일본 앙포르멜을 모방한 뜨거운 추상미술의 전개에 관심을 보였다. 이 시기의 작품은 강한 내면성을 추구하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아카데미즘에 대한 강한 반발을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에는 한국미술의 국제화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미술협회를 중심으로 추상미술 운동을 전개했다. 1960년대 말부터 시도했던 〈묘법〉 연작을 197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발표해 한국 '단색회화'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들어와서 선묘(線描) 대신에 한지의 물질적 특성과 질감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갖고 수성물감에 젖은 한지를 굵은 연필심으로 긋는 행위를 반복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서보 회화 40년전'을 가졌다.(daum 2009)

 

  박서보(朴栖甫) : 1931.11.15~ / [요약] : 한국의 화가이자 교육자. 홍익대학교 교수·조형미술연구소장·산업미술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일명 '손의 여행'이라 일컬어지는 묘법(描法) 회화를 추구하였다./ [본문] :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1931년 경상북도 예천(醴泉)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62년 대학 강단에 선 이후 1997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조형미술연구소장·산업미술대학원장·미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교육 활동 외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1977∼1979)과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고문(1980)을 지냈고, 1994년 서보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한 이후 2002년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58년 현대미술협회에 가담하면서 제2차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회화운동인 앵포르멜 운동에 앞장선 뒤, 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에 참가한 후부터 추상 표현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서양문화에 저항하는 원형질(原形質) 시리즈를 전개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현대인의 번잡스러운 형상을 고발한 허상(虛像) 시리즈를 발표하였고, 1970년대 이후부터는 묘법(描法) 회화를 추구하였는데, 일명 '손의 여행'으로 일컬어지는 묘법은 그의 회화의 정점을 이루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묘법 회화의 초기에는 연필이나 철필로 선과 획을 반복적으로 긋는 행위를 통해 무위자연의 이념을 표현하였고,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후기 묘법에서는 종이 대신 한지를 이용해 대형화된 화면 속에 선긋기를 반복함으로써 바탕과 그리기가 하나로 통합된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이 묘법 회화는 화가의 행위성이 끝나면서 작품도 종결된다는 서구의 방법론을 넘어 그 위에 시간이 개입됨으로써 변화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완성에 이른다는 동양 회화의 세계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리비엔날레(1963)와 칸국제회화전(1969), 베니스비엔날레(1988) 등 각종 국제전에 출품하였고, 대통령 표창, 중앙문화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국민훈장 석류장, 서울특별시문화상, 옥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naver(daum 2010)

 

  박서보(朴栖甫) : 1931. 11. 15 경북 예천~. / 서양화가./ 추상계열의 서양화를 그렸다. 1954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956년 동방문화회관화랑에서의 4인전을 시작으로 화단에 나왔다. 한국 전위미술운동의 출발을 알리는 한국현대미술가협회전의 핵심 멤버로 앙포르멜 미학을 널리 알리는 데 선두주자로 활약했다. 〈원형질〉 연작으로 대변하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는 서구 및 일본 앙포르멜을 모방한 뜨거운 추상미술의 전개에 관심을 보였다. 이 시기의 작품은 강한 내면성을 추구하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아카데미즘에 대한 강한 반발을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에는 한국미술의 국제화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미술협회를 중심으로 추상미술 운동을 전개했다. 1960년대 말부터 시도했던 〈묘법〉 연작을 197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발표해 한국 '단색회화'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들어와서 선묘(線描) 대신에 한지의 물질적 특성과 질감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갖고 수성물감에 젖은 한지를 굵은 연필심으로 긋는 행위를 반복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서보 회화 40년전'을 가졌다. /브리태니커(daum 2010)

 

  박서보 : 박서보(1931년 ~ )는 대한민국의 미술가이다. 1950년대 후반 프랑스의 앵포르멜 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를 바탕으로 〈원형질(原形質)〉 연작을 발표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로는 〈허상(虛像)〉 연작을 통해 현대인의 번잡스러운 형상을 다루었으며, 1970년대부터 묘법 회화를 추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원형질(原形質)〉·〈허상(虛像)〉·〈묘법(描法)〉 연작이 있다. [주요 연혁] : * 1931 : 경상북도 예천 출생/ * 1954 :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회화과 졸업/ * 1962-97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 1970-77 :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 1977-80 :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 * 1985-86 :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장/ * 1986-90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장/ * 1994 : 재단법인 서보미술문화재단 설립/ 위키백과/ //blog.daum.net/philook/ 필라테리아(daum 2010)

 

  박서보(朴栖甫) : 2009.08.27/ 박서보 (朴栖甫, 1931.11.15~)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1931년 경상북도 예천(醴泉)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62년 대학 강단에 선 이후 1997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조형미술연구소장.../ //blog.daum.net/kkyeongho/ 전화카드이미지(daum 2010)

 

  박서보 : 미술의 위인들에는 누가 있어요?/ 2010.02.27/ ...)·유영국(劉永國)·김영주(金永周) 등 ·권옥연(權玉淵)·변종하(卞鍾夏)·박석호(朴錫浩)·전성우(全晟雨)·박서보(朴栖甫)·김서봉(金瑞鳳)·윤명로(尹明老) 등 이상범(李象範)·장우성(張遇聖)·노수현(盧壽鉉)·배염(裵廉) 등 이응로(李應魯.../ //bandok.coolbebe.co.kr/ ▒Saily Note▒(daum 2010)

 

  박서보 [專門資料] : 繪畵 4人展(文友植 金忠善 金永煥 朴栖甫 ∼5.25,/ 繪畵 4人展(文友植 金忠善 金永煥 朴栖甫 ∼5.25, 서울 東邦文化會館)./ 국가지식포털(daum 2010)

 

  박서보(朴栖甫) : 박서보(朴栖甫) 예천 출생 박서보(朴栖甫) 1931 한국 경상북도 예천 출생 1954 홍익대학 미술학부 회화과 졸업 1962-9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97년 정년퇴임, 이후 명예교수) 1977-80 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artsnet.co.kr(daum 2010)

 

  박서보 : <예술혼 산책> '6.25세대' 화가 박서보(朴栖甫)/ 근원에의 집요한 회귀 의지 실어/ 조형에 대한 새 지평 열어/ 한국 최초의 전위미술운동 주역/ '그리기=지우기'의 역설을 화폭에/ 입력시간 : 2007. 03.29. 17:25(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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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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