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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737) : 박서보(3)-박석술-박석우-박석희(附 예천방문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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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文化·스포츠 '박서보 抽象美術 60年'을 돌아보다 : 서울·釜山서 나란히 大規模 懷古展 열어, '묘법' 시리즈 等 大作 50餘点 時代順 선봬) [記事] : 한국 추상미술계의 1세대 대표작가인 박서보 화백의 화업 60년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개인전들이 잇달아 열린다. 작품 자체는 단색의 단조로운 화면이지만 그 안에는 수행에 가까운 반복적 손길이 깃들어 있다. 한국 추상미술계의 1세대 대표작가인 박서보 화백의 화업 60년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개인전들이 잇달아 열린다. 작품 자체는 단색의 단조로운 화면이지만 그 안에는 수행에 가까운 반복적 손길이 깃들어 있다. 오늘의 한국미술을 논하면서 화가 박서보(80)를 거론하지 않으면 이야기 전개가 어렵다. 1950년대 문화 불모지였던 한국에 추상미술의 뿌리를 내리게 한 그의 60년 화업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동반자처럼 함께 걸었다. 그의 작업 여정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과 부산에서 나란히 막을 올린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는 개관 이래 처음으로 본관ㆍ신관에서 단일 전시를 선보인다. 2010년 11월 25일 개막해 내년 1월 20일까지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대작 50여점을 시대순으로 보여준다. 부산시립미술관은 12월 11일부터 내년 2월 20일까지 '박서보 전'을 개최하며 해운대구 소재 조현화랑도 같은 날 개막해 내년 1월 30일까지 박서보 회고전을 연다. 미술관과 갤러리가 이례적으로 한 작가를 조망하며 서울과 지방의 문화격차를 극복하고자 마련한 전시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박서보는 홍익대 서양화가 출신으로 97년까지 홍익대 교수를 거쳐 명예교수로 선임되기까지 이른바 '홍대화파'의 구심점이 됐다. 그는 일찍이 앵포르멜(Informel) 추상주의를 받아들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추상회화 운동인 앵포르멜은 정형화된 기하학적 추상에서 벗어나 격정적이며 주관적인 추상회화를 펼치는 비정형 예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박서보 예술세계의 핵심이 됐다. 23일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그리기는 자신을 갈고 닦는 수신(修身)의 과정이고 회화는 이제 나에게 시각적 탐구를 넘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며 '자기 수련의 산물'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가 67년부터 시작한 '묘법(描法)' 시리즈에 대한 얘기다. 불어로 '에크리뛰르(Ecritureㆍ쓰기)'라고 이름붙인 이 작업은 캔버스에 밝은 회색이나 미색의 물감을 바르고 그 위에 연필로 반복적으로, 끊기지 않게 그은 선으로 이뤄져 있다. 지극히 서양적인 재료들이지만 박서보는 이 안에서 동양 수묵화의 기본인 정신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이 '쓰기'의 회화는 그리고 지우고 반복하는 순환적 구조를 통해 무언가를 그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나와 작품이 일치하는 순간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89년 이후에 작가는 한지(韓紙)를 겹겹이 화면에 올린 뒤 손가락이나 도구를 이용해 밀어내는 방식의 작업으로 회화의 물질감 구현에 집중했다. 무심한 반복행위를 통해 평면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 시도다. 단색, 무채색의 전작들과 달리 근작에서는 자유와 해방을 구현하듯 화려하고 밝은 색채들이 등장한다. 화가의 원숙한 삶이 색의 과감한 사용을 허락한 듯하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새긴 박서보는 이우환과 더불어 유럽에서도 인정받은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작가이며 세계 공용의 대학미술 교재에 아시아 현대작가 중 백남준과 더불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조상인 記者 韓國日報 2010/11/23 18:06:45)
박서보(김재관의 現代美術散策 - 박서보(1931~ )) [記事] : 박서보는 "충북 사람이야~". 이 말은 4년 전 세상을 떠난 우리 고장 출신 대표적인 서양화가 윤형근 화백의 말씀이다. 생전의 윤 화백께서는 사적으로 만나 뵐 수 있을 때 박서보 화백의 출생 신화를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박서보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의 상징적인 존재다. 그의 화려한 경력은 차제하고, 그의 작품과 경력을 담은 두툼한 화집의 맨 뒤 쪽 경력 란에는 1931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안성에서 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오래 전 국립청주박물관 개관기념 특별전 "충북의 현대미술특별 초대전"에 김기창, 정창섭, 윤형근, 박서보 이렇게 네 분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 당시 도록에는 박서보 화백이 음성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서보 화백의 부친 박제훈 선생은 공직자로서 젊은 시절 한 때 음성에서 근무를 하셨고, 이곳에서 박서보를 임신한 모친 남기매 여사께서는 출산일을 앞두고 친정 예천으로 가서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박서보를 출산 후, 몸조리를 하고 음성으로 돌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예천은 박서보의 외가이지 정확히 말해 출생지는 음성이라고 해야 맞는다는 것이 윤 화백의 지론이다. 또한 박 화백의 부인 윤명숙 여사는 청주여고를 졸업하였다. 박서보 화백은 이래저래 충북과의 인연이 적지 않다. 필자가 서울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있던 중, 한 해가 지난 후 당시 홍익대학 미술학부 서양화과 과장이었던 이봉상 교수의 지도를 받고 홍익미대 서양화과로 진로를 바뀌게 된다. 그러나 그 해가 홍익대학의 젊은 교수 박서보 교수의 정풍운동으로 당시 미술계를 호령하던 이봉상 교수도 30대의 박서보 교수도 모두 대학에서 퇴출을 당하고 만 뒤였다. 나는 입학하자마자 나를 홍익대학으로 이끌어 주었던 이봉상 교수도 떠난 뒤였고 박서보 교수와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5년부터 약 10년 간 이 시기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기록된다. 젊은 박서보 교수의 정풍운동은 구상화가 교수들이 중심이 되었던 홍익대학에 현대미술의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혁명이라고 함이 옳을 것 같다. 박서보 교수는 몇 해 후 다시 복직을 하게 되고 대학원에 진학한 필자는 사제지간으로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의 현대미술에 대한 철학과 신념은 보수적 화단에 대한 투쟁으로서만이 아니라 치열한 창작 활동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의 작품세계는 많은 국내외 평론가를 통하여 검증되어 왔지만, 현대미술에 대한 체험과 인식의 시기를 거치면서 매우 빠르게 자기화 되어 감을 목격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서양미술을 자기화 시키지 못하고 모방과 차용의 범주에서 겉돌고 있음에 비해 박서보의 회화는 박서보 고유의 독창적 조형언어를 매우 빠른 시기에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한국현대미술의 가장 빛나는 박서보의 업적은 '한국적 모노크롬회화'의 양식적 완성이다. 소위 '단색 회화'로 이루어지는 모노크롬 양식은 모더니즘 말기의 서양미술의 정점에 있던 '미니멀아트'의 대응적 방법으로 제시한 한국적 추상미술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미니멀리즘은 팝아트의 문명비판적, 풍자적인 성격임에 반해 매우 반미학적 성격이 강한 비개성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박서보에 의해 주창된 한국적 모노크롬회화는 한국적 미의식 및 한국적 정체성의 획득으로 의미 부여하는 백색, 흑색, 무채색 중심의 단색조 회화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박서보의 회화는 많은 평론가의 평문처럼 수많은 수사학적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명료하다. 박서보의 모노크롬회화를 대표하는'후기 묘법' 시리즈는, 젊은 시절 일찍이 그의 작품 '원형질' 시리즈에 의한 앵포르멜(非定形) 회화의 물성과 '허상' 시리즈에 의한 회화의 환영적 세계를 체험한 후 나온 자아발견에 의한 자기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서양화의 전통적 재료인 캔버스 위에 한지를 몇 겹 쌓아 올리고 호분과 배합된 수성물감을 바른 후 그것들이 마르기 전에 드로잉 되어진 형태에 따라 반복된 연필의 스트로크에 의해 형성된다. 여기서 캔버스라는 지지체는 그의 회화가 평면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표징하고자 함이요, 그의 반복된 손놀림에 의한 연필 스트로크에 따른 물감과 한지와의 결합과 변형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은 화면과 자신과의 상호대화 속에 일체화시킴을 시도하고 있음이다. 박서보의 작품이 잭슨 폴록과 이브 클라인의 모노크롬의 물성적 세계와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예술이 한국적 자연주의 사상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팔순이 지난 지금, 그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현대미술운동의 동지였던 정창섭, 윤형근 화백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후기 묘법'이라는 자신의 세계에 몰입해 있다.(忠北日報 2011-07-10)
박서보([차한잔] 10年만에 大邱서 特別展 박서보 畵伯) [記事] : “10년 만에 고향에서 여는 개인전입니다. 오랜만에 갖는 전시를 이런 멋진 공간에서 열게 돼 기쁩니다.” 대구미술관이 2012년 3월 6일부터 열고 있는 특별전 ‘박서보전’(7월 29일까지)의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를 찾은 박서보 화백(81)은 인터뷰 시작부터 전시장 칭찬을 이어갔다.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의뢰받고 전시장을 처음 찾았을 때 그는 많은 전시장 중 3전시실에서 꼭 전시하고 싶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그가 이 전시장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3전시실은 동쪽 전면이 외부로 개방돼 자연채광이 유입되는 색다른 전시공간이다. 일반 전시공간은 4개 면이 모두 벽으로 막혀 있고, 조명으로 빛을 조절한다. “2000년 일본에서 호수에 비친 단풍 색깔의 황홀함을 느낀 뒤 회색 중심의 작업에서 탈피, 자연의 색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자연의 색이 이처럼 아름다운 줄 그때 깨달은 것이지요. 3전시실은 이런 제 작품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박 화백은 한국미술계에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작업을 보여준 작가다. 한국현대미술의 태동과 변화의 중심을 이끄는 다양한 작업을 펼쳐온 것은 물론, 1967년 첫 선을 보인 ‘묘법(描法)’ 연작을 지금까지 이어가면서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묘법에 대해 작가는 자신만의 그림 그리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자기만의 그림 그리는 방법의 중심에는 한국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제 작품을 서양 미니멀리즘에 기반을 둔 것이라 말하지만, 제 작품은 한국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미니멀리즘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요.” 그는 미니멀리즘은 쓸데없는 것들을 없애고 최소한의 것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작업은 수신(修身)을 통한 비워냄을 표현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예술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과정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도 편안함을 준다. 채움으로써 얻는 기쁨이 아니라, 비워냄으로써 느끼는 또 다른 충만감이다. 묘법 연작을 고집하면서도 이 속에서 다양한 작가적 변신을 시도한 그는 일본에서 단풍이 준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혀, 이전의 회색 중심에서 다양한 색채의 사용으로 변화를 꾀했다. 이는 곧 자연의 색을 작품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자연의 색을 담아내는 그의 작업이 자연광에 노출됐을 때 더 아름답고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박 화백은 대구미술관 전시장 중 3전시실을 고집했고, 자연의 색에 가장 가까운 밝고 부드러운 색감의 작품들을 자연광이 가장 잘 들어오는 곳에 배치했다. 그는 작품을 보면서 자연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말 끝에 박 화백은 이 시대 미술이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들도 이에 부응하는 작품을 그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과거의 그림이 캔버스에 작가의 생각을 토해내는 방식이었다면, 21세기에는 캔버스가 감상자들의 고민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21세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사회의 병동화를 꼽았다. 살해, 자살, 폭력 등 우리 사회의 큰 문제들이 모두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며, 이로 인해 사회 전반에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치유해줘야 하는 것이 결국 미술이란 주장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같은 작가적 고집으로 탄생한 그의 작품 중 최근작 30점이 선보인다. 여기에는 대구미술관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 15점도 포함돼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담담한 형태와 빛깔을 보고 있으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번잡함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화백은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미술대를 졸업했다. 홍익대 미술대학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김수영 記者 嶺南日報 2012-03-07)
박서보(비움으로 채워지는 老畵伯의 캔버스) [記事] :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박서보는 1950년대 앵포르멜에 깊이 빠져들어 추상회화로 작업을 시작했다. 앵포르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서정적 추상회화의 한 경향을 가리킨다. 정형화되고 아카데미즘화한 기하학적 추상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다. 격정적이며 주관적인 것이 특징이다. 60년대 들어 그의 작업은 서서히 변했다. 기하학적인 추상을 거쳐, 70년대 초부터는 한국적인 색채가 담긴 현대미술 작품인 ‘묘법(描法)’ 연작을 선보이며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갔다. 이 작업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는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삼성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일본 도쿄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대표적인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래서 박서보라고 하면 묘법 연작을 먼저 떠올린다. 이 연작은 작가의 끊임없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화면 전체를 균질적으로 보이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눠 변모했다. 70년대 묘법은 채색된 캔버스 위에 연필로 드로잉을 했다. 80년대 들어서는 한지의 물성을 이용한 작업을 보여줬다. 물감으로 흠뻑 젖은 한지를 손이나 도구로 누르고, 상대적으로 밀려나간 한지의 결을 뭉쳐 선으로 돌출시킨 형태를 만들어간다. 창작과정에 정신성을 부여하고, 꾸준한 자기 연마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 연작은 한국 단색화의 고유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사람들은 나의 작업에 대해 미니멀아트와 유사하다고 하지만 아니다. 내 작업은 공간의 동양적 전통, 즉 공간의 영적 개념과 관련이 깊다. 나는 자연적 관점에서 공간을 바라본다. 작업과정에서 관점과 정서를 축소하고, 자연에 대한 집중만 표현하고자 한다.”며 “축소를 거듭해 텅 빈 상태를 만들고 싶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동양적 관념이자 접근법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자연과 인간이 소통한다.”고 설명했다. 갤러리신라가 박서보의 대표작인 묘법 연작을 보여주는 전시를 2012년 9월 17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열고 있다. 최근 빛에 깊은 관심을 갖고, 빛을 받았을 때 더욱 깊이를 주는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의 신작 23점이 내걸렸다. 갤러리신라 관계자는 “박서보 작가의 작업은 빛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새로운 작품으로 다가온다. 작품을 담아내는 공간의 빛에 의해 또 다른 작품으로 거듭난 그림을 만날 수 있다”며 “최근에도 하루 14시간 이상 작업하는 작가의 치열한 창작열과 각종 사조 및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며,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를 향하는 작가적 고집을 만날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김수영 記者 嶺南日報 20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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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술 : 糧 代 義捐 朴錫述 氏가 極貧者들에게(醴泉)/ 신문명: 동아일보 1929년/ 날짜: 1929-05-01/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동아일보/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 신문자료/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糧代義捐 朴錫述氏가 極貧者들에게(醴泉)/ 발행년월일 1929-05-01/ 발행구분 무/ 면수 04/ 단수 08/ 표제어 자선․독지(慈善․篤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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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우([새 椅子]農協銀行 醴泉郡支部 支部長에 醴泉郡 豊壤面 出身 朴錫雨 氏 就任!!!) [記事] : "웅비 예천군의 농협 군지부장으로 부임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농업인들을 주인으로 섬기는 지부장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13년 1월 22일자로 농협은행 예천군지부 지부장으로 부임한 박석우(朴錫雨.55) 지부장의 취임 포부다. 풍양면 풍신리가 고향인 박 지부장은 "농협의 경영자립 기반구축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예천군 농산물유통센터 건립과 사업 활성화를 위해 관내 농협장 및 직원들과 힘을 모아 예천의 공동브랜드인 '예품' 육성을 통한 농·축산물의 판매 확대로 잘사는 웅비예천 건설에 한 몫을 담당할 것"을 다짐했다. 박 지부장은 대구 대건고~농협대학을 졸업한 뒤 지난 1986년 10월 농협 거제군 지부에 입사하여~예천군지부 총무과장~산청군지부 차장~상주시지부 부지부장 등으로 재임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정명자 여사(54)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취미는 테니스.독서, 본관은 반남.(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3-01-23 오전 9:31:51)
박석우(박석우 農協 聞慶市支部長) [記事] : 신임 박석우(56) 농협 문경시지부장은 "지역의 선도금융기관으로서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강화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농협으로 이끌겠다."고 취임포부를 밝혔다. 예천 출신으로 대건고와 농협대를 졸업한 박 지부장은 1986년 농협에 입사한 후 대부분 문경시지부에 근무하다가 상주시지부 금융지점장, 예천군지부장을 거쳐 문경시지부장으로 부임한 것.(황진호 記者 慶北日報 201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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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희(朴石熙) : 1941-2000, 묘지가 지보면 암천리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역에 있는 천주교 주교, 본명은 이냐시오, 성주 출신, 성주농고 졸업, 61년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 입학, 70년 동 졸업, 71년 사제 서품, 대구 대봉동 천주교회 보좌, 72년 계산동 천주교회 보좌, 74년 이태리 로마 우르바노대 입학, 78년 동 철학박사, 80년 경북 자인천주교회 주임, 천주교대구교구 사목국장, 82년 대구 가톨릭대 교수, 동 가톨릭사상연구소장, 9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제2대 천주교 안동교구장(주교)으로 임명, 착좌하였다. 2000년 10월 9일 청송군의 주왕산 산책 중 심근경색으로 숨졌다.(每日新聞 2000.10.10, 醴泉聖堂 週報 종소리 第1,715號 2000.10.15, 中央日報 2000.10.14 송의호 記者)
박석희(天主敎 朴石熙 主敎 善終) [記事] : 천주교 안동교구장 박석희(朴石熙) 주교가 2000년 10월 9일 오후 6시께 안동 목성동 주교좌성당에서 심근경색으로 선종했다. 향년 59세. 박 주교는 197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대구대교구 사목국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거쳐 90년부터 안동교구장을 맡아왔다. 장례미사는 2000년 10월 13일 오전 11시 목성성당에서 치러지며 장지는 경북 예천군 지보면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원이다.(京鄕新聞 2000년 10월 10일 18:42:50)
박석희 : 1994년06월05일 제1908호/ 제17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崔正根기자 “소외된 이들의 이웃 같은 교구될 터” 교구설정 25周年 맞은 안동교구장 朴石熙주교 각종 농촌살리기운동 합심 필요 “共同體이해”가 소공동체화 관건 안동교구가 5월29일 교구설정 25주년을 맞아.../ //www.albummania.co.kr(daum 2010)
박석희 : 1981년10월11일 제1275호/ “內外的기량?信仰心갖춘 靑年성가대”評 150周 기념성가 경연 우승팀으로 저력과시 ◇書 評◇ 存在의 根本問題」 朴石熙 선목대학교수 鄭義 採集 정의채신부의 최근저서「존재의근거문제」는 부제에서 말하듯 중세와근세·현대철학에있어서.../ //www.albummania.co.kr(daum 2010)
박석희 : [[가톨릭 상식]] 가톨릭교회의 특징-인간론|/ 2010.02.09/ ...인간 상호간의 자비로운 인간관계를 확립하는 것이 인간 완성이라고 가르치신다. 또한 <노동하는 인간>(1981)에서 인간은 자기 노동으로 하느님 창조사업에 참여하여 자기완성을 가져온다고 가르친다. (朴石熙) - [가톨릭 대사전] -/ //cafe.daum.net/kfb67/ 제일멋진 육칠둥지(daum 2010)
박석희 : 예천성당역사(193) : 박석희 주교 제2대 안동교구장 착좌| †ː예천성당사/ 작성 장병창/ 2005.05.02 05:15/ //cafe.daum.net/yecheonsungdang/lfU/ 1990년 12월 2일, 안동 길원여자고등학교에서 가톨릭사상연구소장 박석희 이냐시오 신부가 제2대 안동교구 주교로 착좌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제까지 안동교구장을 지낸 두봉 주교는 안동교구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회가 70년대 후반에 접어 들면서 다른 지역의 교회에 도움을 줄만큼 성장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인 주교를 교구장으로 임명한다 하여도 복음 선포의 업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어 여러 차례 교황청에 사임 의사를 밝혀 왔었다. 이에 1990년 10월 31일, 교황 성하의 사임 수락에 따라 박석희 신부를 그 후임으로 임명하게 된 것이다. 박석희(朴石熙, 1941-2000) 주교는 묘지가 지보면 암천리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역에 있는 천주교 주교로, 본명은 이냐시오, 성주 출신, 성주농고 졸업, 61년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 입학, 70년 동 졸업, 71년 사제 서품, 대구 대봉동 천주교회 보좌, 72년 계산동 천주교회 보좌, 74년 이태리 로마 우르바노대 입학, 78년 동 철학박사, 80년 경북 자인천주교회 주임, 천주교대구교구 사목국장, 82년 대구 가톨릭대 교수, 동 가톨릭사상연구소장, 9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제2대 천주교 안동교구장(주교)으로 임명, 착좌하였다. 2000년 10월 9일 청송군의 주왕산 산책 중 심근경색으로 숨졌다.(每日新聞 2000.10.10, 醴泉聖堂 週報 종소리 第1,715號 2000.10.15, 中央日報 2000.10.14 송의호 記者)/ 박석희(天主敎 朴石熙 主敎 善終) [記事] : 천주교 안동교구장 박석희(朴石熙) 주교가 2000년 10월 9일 오후 6시께 안동 목성동 주교좌 성당에서 심근경색으로 선종했다. 향년 59세. 박 주교는 197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대구대교구 사목국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거쳐 90년부터 안동교구장을 맡아왔다. 장례미사는 2000년 10월 13일 오전 11시 목성성당에서 치러지며 장지는 경북 예천군 지보면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원이다.(京鄕新聞 2000년 10월 10일 18:42:50)/ //cafe.daum.net/yecheonsungdang/ 예천성당(daum 2010)
박석희 : 1990년11월04일 제1728호/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10월31일 안동교구 두봉주교의 사임을 수락하고, 그 후임으로 대구가톨릭대학 박석희(朴石熙·이냐시오) 신부를 안동교구장 주교로 임명했다. 이 임명 사실은 두봉 주교의 사임수락에 대한 내용과 함께 이날.../ //www.dmook.co.kr(daum 2010)
박석희 : 인간론 : 가톨릭교회의 특징 - 가톨릭 교리 - 가톨릭 마당 성바오로 딸/ 인간 상호간의 자비로운 인간관계를 확립하는 것이 인간 완성이라고 가르치신다. 또한 <노동하는 인간>(1981)에서 인간은 자기 노동으로 하느님 창조사업에 참여하여 자기완성을 가져온다고 가르친다. (朴石熙) - [가톨릭 대사전] -/ //www.pauline.or.kr(daum 2010)
박석희 : 2만5천원의 감동/ 안동교구장 2만5천원.- 지난 9일 경북 청송군의 주왕산 산책 중 심근경색으로 숨진 천주교 안동교구장 박석희(朴石熙.60.이냐시오) 주교. 13일 경북 예천군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역에 묻힌 그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신도들 사이에 단돈 .../ //lakemoon.net(daum 2010)
박석희 : 두산백과사전 엔싸이버 - 지역 /아시아 /한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 朴石熙 제2대 천주교 안동교구장·주교. 농촌 지역인 안동 교구의 특성을 살려 유기농 장려,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등 현실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사목했다. 박... 백인당 百忍堂 (2) 이주(李紬)와 이륜(李綸)이 가문의 조상인.../ //www.encyber.com(daum 2010)
박석희 : 두산백과사전 엔싸이버 - 인물 /종교 /그리스도교 /한국로마가톨릭교회 / .... 아버지와 같은 장소에 있게 해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효성에 감동한 관원이 부탁을 들어주었다. 박석희(朴石熙) 제2대 천주교 안동교구장·주교. 농촌 지역인 안동 교구의 특성을 살려 유기농 장려,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등 현실적인.../ //baekdoo.encyber.com(daum 2010)
박석희 : 경향잡지 1990년 12월호(단행본 1473호)/ 안동교구창 주교에 박석희 신부 임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 년 10월 31일 대구 가톨릭대학 교수 박석희(朴石熙, 이냐시오) 신부를 제2대 안동교구장 주교로 임명하였다. 이 임명 사실은 현 교구장 두봉 주교의 사임수락에.../ //www.albummaniac.com(daum 2010)
박석희 : 인물검색/ 이름 생년월일 소속기관/부서/직위 전주원(全主元) 1936년 11월 08일 [前] 천주교대잠동성당 주임신부 박석희(朴石熙) 1941년 03월 19일 (사망) [前] 천주교안동교구 교구장 곽길우(郭吉祐) 1940년 10월 10일 [前] 천주교원평교회.../ //jpeople.unitel.co.kr(daum 2010)
박석희 : 예천성당역사(213) : <예천성당60년사>의 목차/ 작성 장병창/ 6년전, 2005년 5월 31일/ ...같다.(= 아라비아 숫자는 페이지임) 축사 - 신앙 유산을 더욱 풍부하게 합시다(안동 교구장 박석희 주교) = 41/ 격려사 - 세상을 향한 열린 교회로(초대 안동 교구장 두봉 주교) = 43/ 발간사 - .../ cafe.daum.net/yecheonsungdang/ 예천성당(daum 2011)
박석희 : 예천성당역사(202) : 본당설정60주년 기념미사 및 사제관과 .../ 작성 장병창/ 6년전, 2005년 5월 16일/ 이날 행사는 6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된 사제관, 수녀원, 교육관 봉헌식에 이어 교구장 박석희 주교가 집전한 축하 미사, 중식, 한마당 잔치의 순으로 진행됐다. 또한 이날은 60년 동안 본당에.../ cafe.daum.net/yecheonsungdang/ 예천성당(daum 2011)
박석희 : 예천성당역사(193) : 박석희 주교 제2대 안동교구장 착좌/ 작성 장병창/ 6년전, 2005년 5월 2일/ 1990년 12월 2일, 안동 길원여자고등학교에서 가톨릭사상연구소장 박석희 이냐시오 신부가 제2대 안동교구 주교로 착좌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제까지 안동교구장을 지낸 두봉 주교는 안동교구를.../ cafe.daum.net/yecheonsungdang/ 예천성당(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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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1,149
농은수련원(慶北道敎育廳, 學校暴力으로 傷處받은 아이들 마음 治癒 : 被害 經驗 學生 對象 힐링캠프…役割劇 等 心理프로그램 펼쳐) [記事] : 경북도교육청은 2014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예천 농은수련원에서 학교폭력 피해 경험 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힐링캠프 '내마음 JUMPING'을 개최했다. 학교폭력피해자지원센터는 학교폭력피해학생들을 위한 전문상담기관으로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안동에 본부를 두고 포항, 구미, 경산지역에 피해학생상담 전담인력을 파견해 학생들의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을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캠프는 도내 각 지역에서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 중 캠프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중·고등학생 21명이 참여했다. 다양한 학교폭력피해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심리적 아픔을 공유하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교우관계에서 어려움과 힘든 경험을 캠프를 통해 만난 친구들과 서로 공감하는 자리가 됐다. 또한 친구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또래간 긍정적인 관계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 학교폭력 피해에서 오는 심리적인 어려움과 부정적 감정들을 치유하고 자기이해와 타인조망을 통해 대인관계에서의 문제해결 능력을 증진하기 위해 스토리텔링 및 역할극 등을 체험했다. 이와 함께 난타 등 놀이체험 프로그램, 나에게 쓰는 편지 및 희망나무 별달기 등 모둠별 활동 프로그램 등으로 진행됐다. 나영규 생활지도과장은 "학교폭력은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며 "참가 학생이 캠프의 주제처럼 '내마음 JUMPING'을 통해 아픔을 딛고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김현목 記者 慶北日報 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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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