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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744) : 박세신(2)-박세우-박세중-박손경(1)(附 예천방문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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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신 [記事] : 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1697 정축 / 청 강희(康熙) 36년) 4월 11일(경신) 2번째 기사/ 주강에 나아가 처음으로 《성학집요(聖學輯要)》를 강독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이날 임금이 처음으로 《성학집요(聖學輯要)》를 강독(講讀)하였다. 강관(講官) 이건명(李健命)이 말하기를, ꡒ이이(李珥)가 이 책을 올리자, 선조께서 매우 칭찬하여 장려하셨는데, 만일 이이로 하여금 오늘날까지 살아 있게 하였다면 계옥(啓沃)9215) 하는 유익함이 장차 어떠하겠습니까? 진강(進講)할 때에 이이 가 일당(一堂)에서 친히 토론하는 것처럼 보신다면, 이는 선정(先正)의 충성하려는 뜻이 오늘날에 시행되는 것이며 전하(殿下)께서 계술(繼述)9216) 하는 뜻도 성조(聖祖)에게 빛이 날 것입니다.ꡓ하니, 임금이 가납(嘉納)하였다. 지사(知事) 이세화(李世華)가 광주(廣州)의 소란을 피운 사람 박세신(朴世臣)을 곤형(棍刑)을 집행하여 형조(刑曹)에 옮겨 보내도록 청하니, 임금이 그런 조짐은 자라게 할 수 없으니 도배(徒配)시키라고 말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455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출판-서책(書冊) / *구휼(救恤)/ [註 9215]계옥(啓沃) : 충성스런 말을 임금에게 아룀. ☞/ [註 9216]계술(繼述) : 선대의 유업을 계승함. ☞(www.history.go.kr 2009)
박세신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4년 3월 20일 (계사) 원본328책/탈초본17책 (8/15) 1688년 康熙(淸/聖祖) 27년/ 宋奎濂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行判書呂聖齊進, 參判李翔在外, 參議吳道一病, 左承旨閔鎭長進。以宋奎濂爲都承旨, 梁聖揆爲典籍, 朴世臣爲東學訓導。(www.history.go.kr 2009)
박세신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4년 12월 24일 (계해) 원본332책/탈초본17책 (2/11) 1688년 康熙(淸/聖祖) 27년/ 黃爾明 등이 사은함/ ○ 謝恩, 戶曹佐郞黃爾明, 東學訓導朴世臣, 典籍崔琥, 校書正字金壽億, 承文副正字任舜元。(www.history.go.kr 2009)
박세신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5년 윤3월 19일 (병진) 원본334책/탈초본17책 (10/14) 1689년 康熙(淸/聖祖) 28년/ 金世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以金世欽爲注書, 李聃命爲大司諫, 金聲久爲獻納, 李東標爲副修撰, 姜銑爲校理, 許?爲正言, 李文興爲禮曹佐郞, 李相勛爲保安察訪, 朴世臣爲昌樂察訪, 安弼星爲富平府使, 李?爲禮賓正。(www.history.go.kr 2009)
박세신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5년 4월 16일 (임오) 원본335책/탈초본17책 (9/9) 1689년 康熙(淸/聖祖) 28년/ 孫湍 등이 하직함/ ○ 下直, 延日縣監孫湍, 昌樂察訪朴世臣, 濬源殿參奉鄭華齊。朝報(www.history.go.kr 2009)
박세신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7년 9월 18일 (기사) 원본346책/탈초본18책 (3/10) 1691년 康熙(淸/聖祖) 30년/ 朴世臣이 六臣의 復官과 賜額을 묻기 위해 李玄逸이 있는 寧海로 나감/ ○ 禮曹佐郞朴世臣, 吏曹參判李玄逸處, 六臣復官賜額等事問議事, 寧海出去。(www.history.go.kr 2009)
박세신(朴世臣)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숙종(肅宗) 10년, 과거시험연도 : 1684 갑자,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을과6(乙科6)/ [인적 사항] 성명(姓名) : 박세신(朴世臣), 자 : 신재(臣哉), 본관(本貫) : 함양(咸陽)/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유학(幼學), 관직(官職) : 현감(縣監)/ [가족사항] 부(父) : 박태화(朴泰華), 조부(祖父) : 박유(朴瑠), 증조부(曾祖父) : 박수의(朴守誼), 외조부(外祖父) : 김득선(金得善)(daum 2010)
박세신 : 네이트 한국학/ (權聖大)1632 임신안동(安東) - 권(權)乙科5위이태환(李泰煥)1650 경인전주(全州) - 이(李)乙科6위박세신(朴世臣)1642 임오함양(咸陽) - 박(朴)乙科7위성호신(成虎臣)1633 계유창녕(昌寧) - 성(成)/ //koreandb.nate.com(daum 2010)
박세신 : 함양박씨를 빛내신 인물/ ...박맹율(朴孟율) 박세무(朴世茂) 박영창(朴永昌) 박종발(朴宗發) 박탄(朴坦) 박경(朴瓊) 박맹호(朴孟호) 박세신(朴世臣) 박예(朴隸) 박종부(朴宗阜) 박태고(朴太古) 박경래(朴慶來) 박명립(朴名立) 박세영(朴世榮) 박용식(朴庸植) 박종산.../ //hamyang.oranc.co.kr(daum 2010)
박세신 [專門資料] : 朴世臣이 六臣의 復官과 賜額을 묻기 위해 李玄逸이 있는 寧海로 나감/ 寧海, 朴世臣|李玄逸(daum 2010)
박세신 [專門資料] : 金世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金世欽|李聃命|金聲久|李東標|姜銑|許|李文興|李相勛|朴世臣|安弼星|李(daum 2010)
박세신 [專門資料] : 黃爾明 등이 사은함/ 黃爾明|朴世臣|崔琥|金壽億|任舜元(daum 2010)
박세신 [專門資料] : 宋奎濂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呂聖齊|李翔|吳道一|閔鎭長|宋奎濂|梁聖揆|朴世臣(daum 2010)
박세신 [專門資料] : 孫湍 등이 하직함/ 孫湍|朴世臣|鄭華齊(daum 2010)
박세신 : 왕조실록에 나타나는 함양박씨 인물/ 2010.04.02/ ...朴世茂) (4파 15세) 중종 89 박종녕(朴宗寧) (1파 17세) 인조 2 박경태 ( 朴慶泰 ) (4파 21세) 영조 46 박세신(朴世臣) (2파 21세) 숙종 90 박종린(朴從鱗) (2파 16세) 중종 3 박경후(朴慶後) (4파 21세) 숙종 47 박세영 ( 朴世榮 ).../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세신 : 21世 世臣(세신)| 왕조실록/ 국필 2008.09.25 08:15/ //cafe.daum.net/Jongleenpa/MM3S/ 숙종 31권, 23년(1697 정축 / 청 강희(康熙) 36년) 4월 6일(을묘) 1번째 기사/ 광주 백성들이 기근으로 곤궁해서 주장을 욕하고 군졸을 구타하다/ 광주(廣州) 의 백성 수백여 명이 대궐 아래 이르러, 대신 이하가 출근하고 퇴근할 때에 길을 막고 호소(呼訴)하면서 구제하여 살아갈 밑천을 얻기를 원하니, 수어사(守禦使) 이세화(李世華)가 본부(本府)에 관문(關文)을 보내어 곡물(穀物)을 지급하도록 하였으나, 백성들이 이세화의 집에 따라와서 종일토록 울부짖으며 경청(京廳)의 곡식을 얻으려고 청하였다. 그러나 경고(京庫)도 거의 바닥이 나서 지급할 미곡(米穀)이 없으므로, 이세화가 회량미(回粮米)를 헤아려 지급하여 산성(山城)으로 보내겠다고 타일렀으나, 오히려 듣지 않고 새벽까지 요구하며 책망하였고, 또 문을 밀치고 갑자기 들어가 이세화가 거느린 군관(軍官)을 잡아내어 제멋대로 마구 때려 피가 낭자하게 흐르도록 하였다. 나중에는 또 이세화를 꾸짖으며 욕하므로, 이세화가 계청(啓請)하여 앞장 선 사람 박세신(朴世臣)을 가두고서 과죄(科罪)하였다. 그리고 잘 무마시키지 못하여 주장(主將)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도록 했다고 하여 광주 부윤(廣州府尹) 박태순(朴泰淳)을 추고(推考)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백성들이 기근(飢饉)으로 곤궁해서 묘당(廟堂)에다 슬피 호소하니, 그 정상은 진실로 노여워할 것이 없으나, 주장(主將)을 꾸짖으며 욕하고 군졸(軍卒)을 구타하여 상처를 입힌 데 이르러서는 체통(體統)에 관계되므로 듣고서 놀라워하기가 원위(元魏) 9214) 때 위사(衛士)가 서로 인솔하여 장군(將軍) 장이(張?)를 구타한 사건과 불행하게도 비슷하므로, 식견이 있는 자들은 한심스럽게 여겼다.// 숙종 31권, 23년(1697 정축 / 청 강희(康熙) 36년) 4월 11일(경신) 2번째 기사/ 주강에 나아가 처음으로 《성학집요(聖學輯要)》를 강독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이날 임금이 처음으로 《성학집요(聖學輯要)》 를 강독(講讀)하였다. 강관(講官) 이건명(李健命)이 말하기를, “이이(李珥)가 이 책을 올리자, 선조께서 매우 칭찬하여 장려하셨는데, 만일 이이로 하여금 오늘날까지 살아 있게 하였다면 계옥(啓沃)9215) 하는 유익함이 장차 어떠하겠습니까? 진강(進講)할 때에 이이 가 일당(一堂)에서 친히 토론하는 것처럼 보신다면, 이는 선정(先正)의 충성하려는 뜻이 오늘날에 시행되는 것이며 전하(殿下)께서 계술(繼述)9216) 하는 뜻도 성조(聖祖)에게 빛이 날 것입니다.”하니, 임금이 가납(嘉納)하였다. 지사(知事) 이세화(李世華)가 광주(廣州) 의 소란을 피운 사람 박세신(朴世臣)을 곤형(棍刑)을 집행하여 형조(刑曹)에 옮겨 보내도록 청하니, 임금이 그런 조짐은 자라게 할 수 없으니 도배(徒配)시키라고 말하였다./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세신 : 모든 급제자 문과 무과 생원 진사시/ 2010.04.04/ ...朴由忠) 1572 임신 함양(咸陽) - 박(朴) 乙科 6위 박린 (朴璘) 1676 병진 함양(咸陽) - 박(朴) 乙科 6위 박세신(朴世臣) 1642 임오 함양(咸陽) - 박(朴) 乙科 6위 박중호(朴仲豪) 함양(咸陽) - 박(朴) 丙科 1위 박경후(朴慶後) 1644 .../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세신 : 歷代 主要 人物(함양박씨문과급제자 포함)/ 2008.07.19/ ...)(군수(郡守)) 박흥종(朴興宗)(직강(直講)) 박정설(朴廷薛)(참판(參判)) 박거화(朴居華)(학자(學者)) 박세신(朴世臣)(좌랑(佐郞)) 박신지(朴身之)(부사(府使)) 박희민(朴希閔)(정언(正言)) 박경후(朴慶後)(관찰사(觀察使)) 박내정.../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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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우(20代 벤처 農業人 高坪里 박세우 氏 日本으로 造景樹 輸出길 열어) [記事] : 일본과 수출 계약을 맺고 2005년 12월 5일 조경수(남천나무 2년생) 6천 본을 포장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20대 신세대 벤처농업인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경상북도 벤처농업인으로 지정된 천지원예 대표 박세우(28, 고평리) 씨는 지난 2000년 한국농업전문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원예분야 농장에서 실무를 경험한 원예 전문가로 2003년부터 고향인 고평에서 자신의 농장을 가꾸어 왔다. 2003년 중국에서 '남천' 종자를 구입, 재배를 시도했으나 실패를 거듭하며 모진 고생을 겪었으나 이듬해 이탈리아에서 구입한 종묘는 재배에 성공하여 올해 9월부터 서울 양재동 농산물 공사와 경기도 일산 한국화훼농협에 2년생 "남천" 12만 주를 판매해 3천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중국이 원산인 '남천'은 매자나무과의 상록관목으로 6월~7월에 흰색의 꽃이 원추 모양으로 피고 10월에 빨갛게 익어 관상용과 실내 조경용으로 많이 심고 있다. 박씨의 농장 7천800평에 남천 13만 주를 비롯, 백일홍, 영산홍, 무궁화, 해송 등 조경수 30만 주를 재배하고 있으며 12월 5일 일본 수출을 위한 첫 선적을 준비하고 있다. 5일 수출될 '남천'은 오타 경매장에서 경매를 통해 판매하게 되며 1주당 180엔~350엔(한화 1천600원~3천 원)에 판매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박세우 씨는, ꡒ남천은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재배하면 나무 전체가 붉고 곱게 단풍이 들기 때문에 우리 지역이 재배하기에 적합하며 일본은 기후 조건이 좋지 않아 품질면에서 우리 남천이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하고, "앞으로 국내 판매보다 일본 수출에 중점을 두고 재배 면적을 확대하겠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12-02 오후 12:39:51)
박세우 : 일본으로 조경수 수출길 활짝 - 20대 벤처 농업인 박세우 씨/ 2009.01.12/ 2년생) 6천 본을 포장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20대 신세대 벤처농업인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경상북도 벤처농업인으로 지정된 천지원예 대표 박세우(28,고평리) 씨는 지난 2000년 한국농업전문학교 원예학과를.../ hopemaster.net/25 희망공장네트워크(daum 2012)
박세우 : 조경수 재배...예천 '천지인 원예' 박세우 씨/ 2006.11.14/ 고평리 박세우(28·천지인 원예 대표) 씨는 4일 자신이 지난 2년여 동안... 경기도 화훼농협 등에 1만2천 주를 출하해 1주당 2천500원~3천 원씩 3천여만 원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1월 경북도 벤처농업인으로 지정된 .../ cafe.daum.net(daum 2012)
박세우 : 10기 전원학교 벤처농업인 일본 수출길 활짝 (정의상)/ 2005.12.08/ 예천신문/ 예천읍 고평리 박세우(28*천지인 원예 대표) 씨가 조경수를 재배해 일본 수출길을 열었다. 경북도 지정 벤처농업인이기도(2004년 1월) 한 박세우 씨는 지난 2000년 한국농업전문학교.../ cafe.daum.net/gaepo30/ 개포30회동기회(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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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중(朴世重) : 1636(인조 14)-1684(숙종 10),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자는 자위(子威), 본관은 함양, 학생 태화(泰華)의 아들, 세신(世臣)ㆍ세번(世蕃)의 형이다.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682년(숙종 8) 증광 진사시에 3등 32위로 합격하였다. 묘는 용문면 내지리 백운당 자좌(白雲堂子坐)에 있다.(醴泉郡邑誌 1770, 醴泉郡誌 1939. 族譜, 嶠南誌 1937, 司馬榜目)
박세중 : 박지경(朴趾慶)/ ...) 諡號, 封號 가족사항 부(父) 박성채(朴成采) 생부(生父) 조부(祖父) 박동수(朴東秀) 증조부(曾祖父) 박세중(朴世重) 외조부(外祖父) 이식(李湜) 처부(妻父)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유학(幼學) 품계(品階.../ //www.shinjongwoo.co.kr(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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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손경(朴孫慶) : 1713(숙종 39)-1782(정조 6),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자는 효유(孝有), 호는 남야(南野), 본관은 함양, 지평 성옥(持平成玉)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고, 비범한 재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도덕과 학문은 날로 높아져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도내 유림(道內儒林)이 1753년(영조 29) 조정에 천거하여 영릉 참봉(英陵參奉), 1779년에 암행어사 황승원(暗行御史黃昇源)이 다시 문학이 유림종사(儒林宗師)가 될만하다 하여 계(啓)를 올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제수받았으나 부모를 모시기 위해 모두 오르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도천참봉(道薦參奉)'이라고 하였다. 1782년(정조 6) 7월 15일 영의정 서명선이 왕에게 아뢰기를, "영남은 본디 선비의 고장으로 일컬어진 곳으로, 문학과 행실이 훌륭하여 볼만합니다. 전 교관 박손경과 같은 사람은 도내에서 가장 명망 있는 선비입니다. 6품의 관직으로 불러 써서 권장하는 것을 보이소서."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 저서로 <논어정의절약(論語精義節約)>, <주서강록차의(朱書講錄箚疑>, 문집 10권 5책이 있다. 묘는 예천군 서쪽 지내 매봉산 자좌(池內梅峰山子坐)에 있고, 1802년(순조 2)에 사림에서 상금곡리에 회산사(晦山祠)를 세우고 제향하였으나, 대원군 때 훼철(1868) 되었다가 상금곡리의 금곡서원(金谷書院, 1984)을 다시 창건하여 배향하였다. 천성이 순하고 학문에 정통하여 당시 모두 스승으로 모셨다. 효제(孝悌)를 근본으로 삼고, 청고(淸高)한 지조로 많은 제자를 길러 추앙을 받았다. 청빈한 가운데서도 학업에만 전념하였고, 특히 한시(漢詩)를 좋아하여 23세 때 시로써 이르기를, "가을바람이 온 집안을 단장하니/ 하룻밤 사이에 뒤뜰 수풀이 사치롭더라/ 홍합 무더기는 이슬이 서리가 되고/ 비단 장막 첩첩한데 잎이 꽃으로 변했도다./ 싸인 기운은 새벽에 푸른 바다 햇빛을 이루었고/ 가벼운 빛은 해질 때 저녁노을을 이루었다/ 상쾌하게 내가 단청 속에 앉아서/ 세월이 흘러감을 잊었도다./"라고 하였다. 당시 예천 군수(醴泉郡守)가 그의 높은 학문과 효행을 전해 듣고 행차했는데, 갑작스레 방문을 맞은 그는 평소에 부모를 시봉(侍奉)하던 간결한 오찬(午餐)으로 정성껏 대접하였다. 군수가 오찬을 마치고 너무나 감미로워 이르기를, "어떻게 음식을 장만해서 이렇게 맛이 나느냐?"라고 묻기에 대답하기를, "가난한 집에서 돈 들여 부모 봉양을 못한 죄책을 느껴 해마다 이른 봄에 논에 있는 우렁이를 주워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쓰는 것 뿐"이라고 했다. 군수는 부모를 위하는 그 정성에 감복하여 무엇인가 음성적으로 그를 돕고자 백성들에게 우렁이 가루를 구해 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우렁이 가루를 갑자기 구할 수 없었고, 다만 그의 집에서 조금 구해 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군수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금품을 보냈으나, 그는 내가 돈을 받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 아니라 하면서 굳이 사양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처럼 지조와 효행이 돈독하여 세인의 귀감이 되었고, 부모를 모심에 하루도 빠짐없이 의관(衣冠)을 정제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하고 부모의 거처에 손수 군불을 지피고 평생 시중을 게을리 한 일이 없어서 학문과 도덕을 겸비한 희대의 도덕군자(道德君子)로 칭송을 받았고, 그의 많은 작품은 제자들의 시금석이 되었다. 도의를 바로 잡고 경상(經常)을 지켜 왔으므로 사람이 그 도덕을 추앙하였다.(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41, 醴泉郡誌 1939, 南野文集, 金谷書院事蹟槪要 1984, 醴泉新聞, 正祖實錄)
박손경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南野 朴先生(孫慶) 神道碑銘/ ...B202_0040.jpg남야 박선생(손경) 신도비명醴泉의 朴魯俊甫가 族叔 暻植 三從叔 佑植과 함께 그의 七代.../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박손경 : 지방관들의 죄를 논핵, 지방의 일을 살피고 비변사와 예조의 복주를 듣다/ 서명: 정조실록 (정조 3년)/조선왕조실실록 태백산본/ 날짜: 1779-06-14(음)/ 분류: 고전국역서 > 역사 > 사서류(史書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 7권, 3년(1779 기해 / 청 건륭(乾隆) 44년) 6월 14일(병인) 2번째 기사/ 지방관들의 죄를 논핵, 지방의 일을 살피고 비변사와 예조의 복주를 듣다/ 차대(次對)하였다. 영남 암행어사(嶺南暗行御史) 황승원(黃昇源)이 복명(復命)하였다. 무술년1683) 겨울 황승원이 안렴(按廉)하라는 명을 받들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돌아와서 서계(書啓)와 별단(別單)을 올렸으므로 등대(登對)하여 품처(稟處)할 것을 명하였다. 서계(書啓)에서 “인재(人才)로는 예천(醴泉)의 전 참봉(參奉) 박손경(朴孫慶)은 효성과 우애, 재주와 학식이 훌륭하여 좌도(左道) 인사(人士)들의 추앙(推仰)을 받고 있는데 깊은 산속에서 흰 머리로 가난을 지키면서 글만 읽고 있습니다.”하였다. 예조(禮曹)에서 복주(覆奏)하여, 충비(忠婢) 미정(米貞)의 마을에 정표(旌表)하였다. 이에 앞서 황승원이 예천 군수(醴泉郡守) 정동신(鄭東藎), 김해 부사(金海府使) 이철운(李喆運), 사천 현감(泗川縣監) 김명련(金命璉)이 불법을 저지른 것 때문에 봉고(封庫)하고 계파(啓罷)하였었다./【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5책 108면/ 【분류】 *농업-전제(田制) / *윤리(倫理) / *왕실-의식(儀式)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통-육운(陸運)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재정-전세(田稅) / *신분-천인(賤人) / *인사-관리(管理)//
박손경(朴孫慶) : 선조에 관한 기본게시판/ 만오 2010.04.02 20:18/ //cafe.daum.net/Jongleenpa/ 박손경(朴孫慶)/ 본관(本貫) 함양(咸陽), 시대(時代) (1713∼1782), 자(字) 효유(孝有), 호(號) 남야(南野)/ 이력(履歷) 함양박씨(咸陽朴氏)를 빛내신 분/ 박손경(朴孫慶) : 상서공 휘 선의 24세 손으로(문원공파) 자는 효유(孝有), 호는 남야(南野). 1713(숙종 39)-1782(정조 6) 공(公)은 학행(學行)으로 교관에 천수(薦授)되어 덕망이 높으신 분으로 8세 문제공 충좌(忠佐) 15세 행정공 눌(訥)과 함께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금곡서원(金谷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1713年10月12日에 지평 성옥(持平 成玉)의 아들로 탄생(誕生),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고, 비범한 재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도덕과 학문은 날로 높아져 정조 정유년(正祖 丁酉年1777)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도내 유림(道內儒林)이 1753년(영조 29) 조정에 천거하여 영릉 참봉(英陵參奉) 제수(除授)되었으나 친노(親老)를 이유(理由)삼아 나아가지 않으시고 2년후 기해년(己亥1779)에 암행어사 황승원(暗行御史 黃昇源)이 다시 문학이 유림종사(儒林宗師)가 될만하다 하여 계(啓)를 올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제수받았으나 부모를 모시기 위해 모두 오르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도천참봉(道薦參奉)’이라고 하였다. 저서로 <논어정의절약(論語精義節約)>, <주서강록차의(朱書講錄箚疑)>, 문집 10권 5책이 있다. 묘는 예천군 서쪽 지내 매봉산 자와(池內梅峰山子坐)에 있고, 1802년(순조 2)에 사림에서 상금곡리에 회산사(晦山祠)를 세우고 제향하였으나, 대원군 때 훼철(1868) 되었다가 상금곡리의 금곡서원(金谷書院, 1984)을 다시 창건하여 배향하였다. 천성이 순하고 학문에 정통하여 당시 모두 스승으로 모셨다. 청빈한 가운데서도 학업에만 전념하였고, 특히 한시(漢詩)를 좋아하여 23세 때 시로써 이르기를 "가을바람이 온 집안을 단장하니/ 하룻밤 사이에 뒤뜰 수풀이 사치롭더라/ 홍합 무더기는 이슬이 서리가 되고/ 비단 장막 첩첩한데 잎이 꽃으로 변했도다./ 싸인 기운은 새벽에 푸른 바다 햇빛을 이루었고/ 가벼운 빛은 해질 때 저녁노을을 이루었다/ 상쾌하게 내가 단청 속에 앉아서/ 세월이 흘러감을 잊었도다."라고 하셨다. 당시 예천 군수(醴泉郡守)가 그의 높은 학문과 효행을 전해 듣고 행차했는데, 갑작스레 방문을 맞은 그는 평소에 부모를 시봉(侍奉)하던 간결한 오찬(午餐)으로 정성껏 대접하였다. 군수가 오찬을 마치고 너무나 감미로워 이르기를, “어떻게 음식을 장만해서 이렇게 맛이 나느냐?”라고 묻기에 대답하기를, “가난한 집에서 돈 들여 부모 봉양을 못한 죄책을 느껴 해마다 이른 봄에 논에 있는 우렁이를 주워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쓰는 것 뿐”이라고 했다. 군수는 부모를 위하는 그 정성에 감복하여 무엇인가 음성적으로 그를 돕고자 백성들에게 우렁이 가루를 구해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우렁이 가루를 갑자기 구할 수 없었고, 다만 그의 집에서 조금 구해 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군수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금품을 보냈으나, 그는 내가 돈을 받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 아니라 하면서 굳이 사양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처럼 지조와 효행이 돈독하여 세인의 귀감이 되었고, 부모를 모심에 하루도 빠짐없이 의관(衣冠)을 정제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하고 부모의 거처에 손수 군불을 지피고 평생 시중을 게을리 한 일이 없어서 학문과 도덕을 겸비한 희대의 도덕군자(道德君子)로 칭송을 받았고, 그의 많은 작품은 제자들의 시금석이 되었다. 도의를 바로 잡고 경상(經常)을 지켜 왔으므로 사람이 그 도덕을 추앙하였다. (군지 1770 1780 1786 1841 1939, 南野文集, 金谷書院 事蹟槪要 1984) 도(道)는 효우(孝友)로써 다반사(茶飯事)로 삼았고 시례(詩禮)로써 바탕삼아서 四子洛민(사자락민)의 書(서)를 探索(탐색)하여 天人性命(천인성명)의 理(리)와 居敬致知(거경치지)의 工(공)에 終身(종신)토록 努力(노력)하였고 後進養成(후진양성)에 專念(전념)하시었다. 그후 壬寅年(임인년)(1782)二月十二日에 享年七十歲(향년70세)로 生을 마치셨다. 卒後(졸후)에 文集十券五冊(문집10권5책)이 刊行(간행)되었고 海左丁判書(해좌정판서;範祖)께서 墓碣銘(묘갈명)을 지었다. 士林이 그의 德(덕)을 敬仰(경앙)하여 龍門(용문)에 晦山書院(회산서원)을 建立(건립)하여 祭享(제향)하였다. 그 후 朝令(조령)으로 毁撤(훼철)된 후 아직까지 復院(복원)되지 않아 士林의 公論(공론)에 따라 金谷書院(금곡서원)에 配享(배향) 하기로 하였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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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1,153
예천재가노인지원센터(文化 疏外地域 文化體驗 機會 提供 '움직이는 藝術停車場' 醴泉老人福祉館 찾아) [記事] : 전국 각지의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 2014년 8월 25일 예천노인복지관을 찾아왔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예천재가노인지원센터 독거어르신들이 참여해 전문 예술강사와 예술가가 버스에 탑승해 참가어르신들과 함께 프로그램 체험 활동을 진행했다. 프로그램 진행은 소리를 통한 자신의 감정표현과 억눌린 심리적 억압을 표출 하는 등 마음열기를 시작으로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동안 삶에 대한 회상과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완성된 작품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프로그램이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은 문화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농산어촌에 예술버스가 직접 방문하여 교육과 체험이 결합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한편, 예천재가노인지원센터는 "앞으로도 독거어르신들이 여가활동 참여를 통하여 생활의 무료함과 사회적 소외감을 완화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외부지원프로그램 연계에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4-08-26 오후 2: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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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읍사무소(慶尙北道 移動 無料法律相談, 27日 醴泉 찾아온다!...) [記事] : 경상북도에서 시·군을 순회하는 무료법률상담이 오는(2014년 8월) 27일 예천군을 찾아와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예천읍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무료법률상담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법률상담은 무변촌(無辯村, 변호사 없는 마을)인 예천 지역민들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생활법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했다. 상담신청은 각 읍ㆍ면사무소에서 군민 누구나 신청가능하며, 서면과 대면상담을 병행해서 실시하고 대면상담은 경상북도에서 위촉한 금정호 변호사의 상담으로 궁금증을 해소하는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상담내용은 민ㆍ형사 및 가사 등 각종 법률상담은 물론 창업 등에 필요한 법률해석을 중점적으로 실시한다. 예천군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각종 법률상담을 받을 주민들이 적극 참여해 혜택을 누리기 바라며 앞으로도 우리지역 주민들을 위한 법률 서비스 제공 확대를 위해 노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상북도는 올해 상반기에 4개 시ㆍ군에서 순회 법률상담을 실시했으며 하반기에도 예천군을 비롯한 8개 시ㆍ군에서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4년08월26일 09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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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세계활축제(醴泉, ‘世界활祝祭’ D-50日 記念行事 : 祝祭 成功的 開催 祈願, 住民들의 觀心 불러일으켜 參與분위기 擴散) [記事] : 예천군과 예천세계활축제추진위원회는 오는 10월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개최되는 『제1회 예천세계활축제』를 50일 앞두고 2014년 8월 26일 오전 10시 예천군문화회관에서 ‘D-50일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현준 군수, 이철우 군의회의장, 김용대 경북도립대학교 총장, 남영수 농협예천군지부 지부장, 박달서 예천경찰서장을 비롯해 김기한 예천교육지원청교육장, 김경민 공군 제16전투비행단기지지원전대장, 강성호 예천무학정사두회장 및 각 기관단체장, 군민 등 7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 처음 개최하는 축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 주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참여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했다. 기념행사는 전통소리문화예술보존회의 식전 국악공연에 이어 활축제 홍보 동영상 상영, 축제 준비상황 및 추진계획 등 설명으로 처음 개최하는 활축제에 대한 군민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축제 성공기원을 염원하는 핸드프린팅 퍼포먼스 순으로 진행됐다. 예천세계활축제추진위원회 공동추진위원장인 이현준 군수는 “50일 앞으로 다가온 축제의 성공 개최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할 것”이라면서 “예천세계활축제를 지역주민이 참여하고 이끌어나가는 축제로 발전시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표축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예천세계활축제는 지난 3월 축제추진위원회 발족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축제준비에 돌입했으며 그간 축제의 주제 및 슬로건 확정, EI개발, 각종 행사 홍보활동, 필드아처리장 시험 운영, 온라인 홍보단 모집, 실행계획 수립 등 한걸음씩 활의 고장으로서 전통과 맥을 잇는 예천군의 대표 브랜드 축제가 될 수 있도록 개최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醴泉뉴스 2014년 0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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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