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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745) : 박손경(2)-박수근-박수만-박수서(1)(附 용문면 출신 권동칠의 트렉스타, 아시아 1위...축하합니다/예천방문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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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손경 : <예천 신문 고장의 인물>/ 박손경(1713-1782)은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으로, 자는 효유(孝有), 호는 남야(南野), 본관은 함양, 성옥(成玉)의 아들이다. 박손경은 학문이 정통하고, 행실이 덕성스러워 1777년(정조 1)에 경상도 관찰사(道知事)의 추천으로 영릉(英陵)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늙은 부모를 모시기 위해 오르기를 사양하였고, 1779년(정조 3)에 암행어사 황승원(黃昇源)이, 그의 학문이 선비들의 스승이 될 만하다고 임금께 글을 올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임명받았으나 역시 오르지 않았다. 당시 예천 군수가 박손경의 높은 학문과 효행을 전해 듣고 찾아왔는데,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은 박손경은 평소에 부모님께 드리던 소박한 음식으로 정성껏 대접하였다. "어떻게 음식을 마련하였기에 이렇게 맛이 좋습니까?"라고 묻기에, "가난하여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책감으로 매년 이른 봄에 논에 있는 우렁이를 주워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음식을 마련하는 것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 예천 군수는 부모를 위하는 그 정성에 감탄하여 박손경을 돕고자 관리들에게 우렁이 가루를 빨리 구해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우렁이 가루는 빠른 시일에 마련할 수 없는 것이어서, 다만 박손경의 집에서 조금 구해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군수가 감사의 뜻으로 금일봉을 박손경에게 보냈으나, 박손경은 그 돈을 사양하였다. 이처럼! 박손경은 효행과 덕행이 뛰어날 뿐 아니라, 많은 제자를 길렀고,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무덤은 지내동 매봉산(梅峰山)에 있고, 문집 10권을 남겼다. 상금곡리의 회산사(晦山祠, 1802)와 금곡서원(金谷書院, 1984)에 제향되었다. <장병창 논설위원>(daum 2010)
박손경(朴孫慶) : 시대 : 조선후기/ 국적 : 한국/ 생몰년 : 1713(숙종 39)∼1782(정조 6)/ 정의 : 조선 영조 때 성리학자(性理學者)./ [생애] : 자는 효유(孝有)이며, 호는 남야(南野)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경북 예천(醴泉) 출신이며, 박성옥(朴成玉)의 아들이다. 박운(朴蕓)·박수서(朴守緖)로 이어지는 가학(家學)을 계승하였고, 이황(李滉)을 사숙(私淑)하였다. 정옥(鄭玉)·이상정(李象靖)·김낙행(金樂行)·이수정(李守貞)·이진동(李鎭東) 등과 교유하였다. 영릉참봉(英陵參奉)과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안정복(安鼎福)은 그를 이상정·최흥원(崔興遠)과 함께 영남삼로(嶺南三老)라 부른다고 하였다. [사상] : 그는 중(中)을 해석함에 주희(朱熹)가 불편불의(不偏不倚)에 무과불급(無過不及)을 첨가한 것은 체용(體用)의 입장에서 리(理)의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라 하였다. 또한 "내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이 제자리를 찾고, 나의 기(氣)가 온화하면 천지의 기도 온화하여 만물이 화육한다."고 하여, 이를 천인합덕(天人合德)과 묵상감통(默相感通:소리 없이 서로 느껴 통한다)으로 표현하였다. 「주서강록간보차의(朱書講錄刊補箚疑)」에서 성리학적인 견해를 서술하였다. [저서] : 저서에 『논어혹문정의(論語或問精義)』 등이 있으나 전하지 않고 『남야집(南野集)』이 전한다. [기타] : 예천의 금곡서원(金谷書院)에 배향되었다.(daum 2010)
박손경 : 남야선생문집 : 澗松堂文集(문고 보관)/ 南野先生文集 (古 810.819 박55遁박)/ 朴孫慶 (1713∼1782) ; 字 孝有, 號 南野, 本貫 咸陽./ 木板本. - [發行地不明 : 發行處不明], 純祖2(1802)序/ 零本1冊(全8卷4冊) ; 30.8x20cm./ 四周雙邊, 半匡 ; 30x15.3cm.有界.10行20字.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黑魚尾./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손경의 시문집이다. 박손경은 성옥(聖玉)의 아들이다. 과거를 즐기지 않았고 고서구독(古書求讀)에 전념하여 학식이 더욱 넓어지고 덕행이 더욱 일진(日進)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후로 계모(繼母) 신씨 부인(申氏夫人)을 더욱 성효(誠孝)로써 섬겼다. 1897년에 도신(道臣)의 추천으로 영릉(英陵) 참봉에 제수되고, 1899년 수사(繡使)의 추천으로 동몽교관에 제수 되었으나 모두 부임치 않았다. 다만 후진양성을 낙으로 삼았으며 날로 성리서로서 성현(聖賢)에 이르는 공부에 열심 하였다. 이 문집은 1801(순조 1)년 아들 한동(漢東), 종질 한사(漢師), 권성익(權聖翊) 등이 간행하였고 그 뒤 1910년 다시 족현손 의집(義集) 등이 《주서차록(朱書箚錄)》을 다른 문집에서 찾아내고 거기에 서원 철향 때의 축문, 제문 등을 합하여 중간하였다. 【一般古書】에는 零本 1책이 수장되어 있다./ 序 ; 鄭宗魯./ [目錄] : 卷之 1. 賦 ; 毁謙賓樓賦./ 詩(96首)./ 卷之 2. 詩(74首)./ 辭 ; 短招五?辭.(daum 2010)
박손경(朴孫慶) 본(本) 함양(咸陽) 자(字) 효유(孝有) 호(號) 남야(南野)/ 문경(聞慶) 금석문(金石文)/ 향토사료 제18집(2006년도 12월 발행. 문경문화원)/ 참봉 박손경의 묘표(參奉朴孫慶의 墓表) : 산북면/ 不結髮已聞嶺南之琴谷有隱德君子曰朴公諱孫慶雖不及造門屛承敎誨嚮風傾莫若卷中人者公之胤監役漢東列公事行爲狀來屬不以牲石之文蓋按狀而益起敬也公字孝有咸陽之朴出新羅而遠不可考高麗尙書諱善爲肇祖而後世多達官聞人國朝有察訪贈吏曹參判諱訥鄕人尊其德而社享焉其五子俱以科宦顯其季天官郞諱從鱗移家醴泉之琴谷是爲公八世祖高祖諱廷蓍秋官郞知三郡用淸白著贈承政院左承旨曾祖諱世煥贈天官侍郞祖諱希閔司諫院正言考諱成玉司憲府持平與時不偶官不大安東權氏忠定公諱撥之後荷塘諱斗寅之孫通德郞諱葵之女有女士行明陵癸巳十月十二日生公幼時動止若成人有新恩挾優至爲戱於庭公端坐若無覩甫受書能究其旨意通透而後己及長治程文應擧尋不樂告持憲公曰自度才不足中時好請從吾所好持憲公奇其志而許之於是專精古學識益博而德益就諸先進皆推爲不可及道之師心而悟也居持憲公喪持制甚嚴事繼母申夫人多方虞樂其意侍疾藥食必躬進視寢溫冷夜必三四起以薪風雪不廢終不使子弟僕隷替勞申夫人語諸孫曰有汝父而適不知無已出之爲恨也遇先忌前期戒潔祭之日哀慟若袒括時嘗曰人情哺食不繼朝則如也必思有以繼祭先之日一歲一日而尙可以不竭力乎與季氏篤友愛哭其死至成疾行之因性而懿也尤謹於辭受常以朱夫子之不受趙汝愚遺爲法家甚而輸公賦必先爲小民倡見人不耐窮者曉之曰子誠窮又有窮於子者以此自寬可也喜訓進後生因材高下而衡其敎使各有所得少好爲文辭而峻其格不欲出古作者下已而曰是誠何有於我哉遂盡棄去日玩心性理書爲向裏之工人有勸立言者謝曰若宋朱夫子若我朝李先生旣言之矣又有足發耶德之寓於日用言動而靡不合理者也蓋公之道一言蔽曰孝悌而已而達之則可以優天下矣雖然方伯之薦直指之啓相繼以聞特除英陵參奉童蒙敎官而皆辭不就後之尙論者可以觀其世也巳公以壬寅二月十二日卒壽七十是年四月葬于梅山坐子原觀葬者幾千人配豊山柳氏文忠公成龍之後士人聖師女男漢東襲家訓薦爲繕工監役漢崇漢忠漢東取漢崇子九寧爲嗣女趙聖然李存發金性維漢崇次子來寧漢忠琴之谷不測與公德而俱蓄琴之水鳴與公心而俱淸莫謂公之道與形俱泯蓋有巾衍藏一部南野之文/ 資憲大夫 刑曹判書 兼 知經筵 義禁府 春秋館事 弘文館提學 藝文館提學 五衛都總府摠管 丁範祖 撰(daum 2010)
박손경 : 문헌(文獻) 1.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박손경(朴孫慶)/ #경상도(慶尙道) 용궁(龍宮)/ *회산사(晦山祠) 용궁면 금곡리/ 제향. 박손경(호남야 동몽교관 본함양)./ 祭享. 朴孫慶(號南野 童蒙敎官 本咸陽).// 2. 박손경(朴孫慶)/ 본관(本貫) 함양(咸陽) 자(字) 효우(孝友) 호(號) 남야(南野)/ 거(居) 예천(醴泉) 용문면 상금곡리/ 묵헌선생문집(默軒先生文集) 광주(廣州) 이만운(李萬運)의 문집(文集)// 3. 박손경(朴孫慶) 본 함양(咸陽)/ 영주 문화유적 > 정각/ 갈수헌(渴睡軒)/ 영풍군 이산면 신암리 우금에 있다. 지평(持平) 김위(金위)가 건립하였고 교관(敎官) 박손경(朴孫慶)의 기와 팔우헌(八友軒) 조보양(趙普陽)의 팔경시(八景詩)가 있다. 지금은 없음.// 4. 벽사관문존(碧史館文存)/ 이우성(李佑成) 저(著)/ 본관(本貫) 여주(驪州) 호(號) 벽사(碧史)/ 거(居) 밀양(密陽) 부북면(府北面) 퇴로(退老)/ 實是學舍 古典文學硏究會 編/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편/ 박손경(朴孫慶) 본(本) 함양(咸陽) 자(字) 효우(孝友) 호(號) 남야(南野)/ 제(第) 이부(二部) 산문(散文) 452(daum 2010)
박손경 : 한국학 홈 > 선정한 인물 박민경(朴民慶)/ 2009.12.10/ ...(都事) 박희민(朴希閔)이고, 부친 지평(持平) 박성옥(朴成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은 교관(敎官) 박손경(朴孫慶)이다. 박민경은 영조 조의 친공신(親功臣)이었던 ‘아무개’가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는데, 자신의 세력을 남용해서.../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손경 : 김낙행(金樂行)/ ...권병(權炳), 유장원(柳長源), 삼종제 강한(姜漢), 종제 도행(道行), 생질 이만운(李萬運) 등이 쓴 것과 박손경(朴孫慶), 이상정(李象靖), 이광정(李光靖), 김종경(金宗敬), 권사호(權思浩) 등이 지은 만사가 차례로 실려 있다. 目錄.../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손경 : 박손경(朴孫慶)-함양/ 간찰/ 상태 양호. 크기는 43-36센티. 영조 때의 학자. 자는 효우(孝友), 효유.../ //kumyo.co.kr(daum 2010)
박손경 : 함양박씨를 빛내신 인물/ ...朴崑) 박문룡(朴文龍) 박소종(朴紹宗) 박유(朴瑜) 박준(朴濬) 박헌(朴軒) 박곤원(朴坤元) 박문영(朴文楹) 박손경(朴孫慶) 박유관(朴由寬) 박준(朴駿) 박헌가(朴獻可) 박광순(朴光淳) 박문서(朴文瑞) 박수검(朴守儉) 박유연(朴由淵.../ //hamyang.oranc.co.kr(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祭文[朴孫慶]/ 박손경(朴孫慶)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輓詞[朴孫慶]/ 박손경(朴孫慶)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南野先生文集/ 南野 朴孫慶(1713-1782)의 文集/ 朴孫慶(朝鮮) 著 | [刊者未詳](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南野先生文集/ 朴孫慶 저(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李義翊,以吏曹言啓曰, 英陵參奉朴孫/ 李義翊|朴孫慶|李師炳(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하당집(荷塘集)/ 한국문집총간 제151집본 문집은 1753년에 이광정(李光庭)이 산정한 원집과 박손경(朴孫慶)이 편차한 속집을 저자의 족손 재덕(載德)이 1810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원집 8권ㆍ속집 2권 합 5책(336판)이다./ 權斗寅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都政下批 吏曹判書 李重祐 參判 權 兵曹判書 李徽之 參判 徐浩修 參議 鄭述祚 進/ 李秉模|李敬養|河恩君|李命植|李在學|蔡濟恭|金魯鎭|慶來運|朱遠赫|徐有龍|金明遇|金|沈原之|尹尙東|金宗|李崇運|吳泰詹|時習|韓世裕|崔翊|李師訥|朴孫慶|洪樂淵|南命寬|崔鳳民|蔡濟恭|李柱國|柳文植|李健秀...(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남야문집 표지/ 10권 5책. 조선 후기의 학자 박손경(朴孫慶)의 시문집. 책머리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이 있고, 책 끝에 종질 한사와 족현손(族玄孫) 의집의 후기가 실려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潤六月, 大/ 李監役仲久|李君世勉|朴孫慶|鄭子成|李台鼎輔|鄭玉|鄭玉|李鼎輔|子成|金巨卿|趙台雲逵|金|李先達光培|李君種稽, 備忘記, 方伯|海伯|正言, 金谷|縣村|鐘城|慈仁|葛山|武夷/ 權相一(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徐有防,以吏曹言啓曰, 童蒙敎官朴孫/ 徐有防|朴孫慶(daum 2010)
박손경 [專門資料] : 都政下批 吏曹判書 李徽之 參判 兪彦鎬 兵曹判書 鄭尙淳 參議 洪樂彬 進/ 李思祚|洪檢|金履禧|李身晦|金翊休|宋獻奎|李普▣|鄭宜淳|朴源|許|李趾馨|金觀秋|金相進|鄭致綏|李邦仁|許策|朴孫慶|兪彦|權默|白東鈺|獻奎|尹得孚|吳大益|洪檢|朴聖泰|柳匡天|宋樂|申應淵|朴天行|尹行修|柳戇...(daum 2010)
박손경 : 함양 박씨(咸陽朴氏)의 연원/ 2009.12.29/ ...서상면 대남리에 자리한 문제공(文齊公) 박충좌(朴忠佐) 설단과 유묵 및 그를 주벽으로 박눌(朴訥)ㆍ박손경(朴孫慶)을 제향하는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금곡서원(金谷書院).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 장(莊)의 아들 충좌.../ //san114.tistory.com/ 입산하는 사람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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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과 이홍경 : 七月/ 상위서지: 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 溪巖日錄 三 > 丁巳/ 저자: 金?/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 총서/ 溪巖日錄 三/ 丁巳/ 七月/ 二日 : 晴, 兒病甚苦, 恐或難救, 憂悶極切, 仍聞平甫兄背腫非輕, 以醴泉?返而發也, 可慮, 諸人?見, 余亦繼?, 腫處雖不甚大, 肩甲下頗爲要害, 旬月之內, 似未易差歇也, 李士安亦遇於是./ 二十八日 : 陰, 午李士安 權仁甫過, 對話移時, 左道東堂公道掃如, 此時此事, 已爲尋/ <상 350>/ 右道東堂 / 往哭平甫兄喪 / 調度使 韓德遠之收括鐵物令/ 常亦不須歎也, 醴泉 朴守謹 李弘經輩及金中淸之二子皆得中, 一紙中二十四名, 皆時輩之黨請囑之類也, 惟季華外?輩實才皆見屈, 季華名重, 彼輩猶畏一?公論, 强取之, 右道東堂, 安東判官 任羲之爲?試官, 安人得中者七名, 而一等三人, 皆安人也, 朴重胤之子珽爲魁, 中?賦製, 初爲圈, 更再考次下, 三考次上, 四考三下, 五考二下, 皆任之所弄也, 以文頭及字標公然相通, 鄭?則被?於右道, 只見初?而亦?一等, 任之縱肆, 無忌憚甚矣, 出榜後公然謂人曰, 某也某也, 皆吾所爲, 但其所製甚拙, 非吾則不可得也, 平日考於吾時, 不知其如是之拙也, 如李揀則七荒, 而書通文頭于, 吾以八荒書之, 賴吾知其文頭故, 不至誤也, 李爾松則以其父懇請, 亦取之李擥兄弟, 雖請之, 而前未相見, 勢當有切不切故, 不能及也, 此等言, 公然說道於人, 盖任之中第, 全以貨賂, ?付權奸, 未入?前, 人已知其榜名, 次第渠旣以是得, 亦以是取, 人無?也, 前月監司 尹暄之入府也, 任自請爲監試試官, 旣而聞右道數有變慮罷官, 復欲避之時, 尹已發行任馳, 至一直縣, 稱病乞遞, 尹以高用厚差之, 任之鄙態, 此亦可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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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만(朴壽萬) : 수형인명부/ 구분: 독립운동가옥고(獄苦)기록/ 날짜: 1926-04-29/ 분류: 인물 > 독립운동가자료 > 독립운동가옥고(獄苦)기록/ 제공: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수형인명부 - 사료메타 상세 조회/ 이름(이명) 박수만/ 한자명 朴壽萬/ 생년월일 1926년 31세/ 본적 慶北 醴泉郡 醴泉邑 淸福洞/ 주소 慶北 醴泉郡 醴泉邑 路下洞/ 직업 평민, 농업/ 비고/ 죄명 소요급상해/ 형기구분 징역-년 형기 징역 150일/ 복역월수 징역 : 5 집행유예 : 0 태 : 0/ 판결일자 1926/04/29 확정일자 1926/04/29/ 판결처 대구지방법원 소장처 경북 예천군 예천읍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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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서(朴守緖) : 1567(명종 22)-1627(인조 5),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자는 경승(景承), 호는 초옥(草屋) 또는 우계(尤溪), 본관은 함양, 정랑 종린(正郞從鱗)의 손자, 운(蕓)의 아들, 수성(守成)ㆍ수선(守先)ㆍ수훈(守訓)ㆍ수영(守盈)의 동생이다. 편모슬하(慈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588년(선조 21) 식년 진사시에 3등 83위로 합격하였다. 천거되어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을 제수받고, 북부 도사(北部都事)를 거쳐 1609년(광해군 1)에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 5위로 급제하여 설서(說書), 순무어사(巡撫御史)를 거쳐 승지(承旨),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지냈다. 광해군 때 북평사(北評使, 巡撫御史)로 나가서 의주(義州) 사람들이 세운 이이첨(李爾瞻)의 도학비(道學碑)를 보고 화를 내며 말하기를, "한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만인은 속일 수 없으며, 당대는 속일 수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라고 비를 부수었다. 이로 인하여 서궁시옥(西宮詩獄)에 이재 조우인(이齋曺友仁, 開浦面)과 함께 연루되어 3년 간 옥고를 치뤘다.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 후 울산 부사(蔚山府使)를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순흥(順興)의 도고서원(陶皐書院)에 제향되었고, 문집이 간행되었다. 묘는 용문면 원류리 희리동 자좌(希夷洞子坐)에 있다.(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41 1895, 醴泉郡誌 1939, 司馬榜目, 文科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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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출신 권동칠의 트렉스타, 아시아 1위...축하합니다.
권동칠(유럽 아웃도어 專門誌 아시아 1位) [記事] : 아웃도어 브랜드 트렉스타(대표 권동칠·용문면 출생)가 올해도 세계 아웃도어 신발 시장 랭킹에서 굳건히 아시아 1위 자리를 굳혔다. 유럽 아웃도어 미디어그룹 EDM에서 발간하는 아웃도어 전문지 ‘Compass’에서 이 달 발표한 글로벌 아웃도어 신발 시장 랭킹에 따르면 트렉스타는 11.3%의 성장률로 아시아 1위, 전 세계 14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 아웃도어 성장률이 7.4%인 가운데 한국 시장은 아웃도어가 일상화되면서 라이프스타일로 확대된 점이 큰 몫을 해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아웃도어 시장으로 자리 잡았으며, 최근 미국, 유럽 등 자유무역협정으로 신발 수입 관세가 철폐되면서 다시 한 번 신발신흥국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트렉스타는 현재 세계 아웃도어 신발 시장 랭킹 순위권에 든 유일한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로, 2009년 세계 16위에 이어 이번에 전 세계 14위로 올라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히 성장해나가고 있다.(醴泉新聞 2014년 08월 27일 (수) 09: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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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활([활의 故庄 醴泉] ① 弓師의 DNA가 흐른다) [記事] : 예천은 활에 대한 역사와 전통, 인프라를 모두 갖춘 전국 유일의 고장이다. 예천읍 왕신리에서 조궁술(활 만드는 기술)을 익힌 명장들이 전국으로 퍼져 국궁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국궁의 뒷받침 속에 김진호 선수가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을 차지해 활의 고장 예천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쳤다. 지금은 김진호 선수의 이름을 딴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매년 11~14차례 전국 및 도 단위 양궁대회가 열리는 등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에 예천군은 전국 최초로 활을 주제로 한 축제를 열고, 지역 궁도인들의 염원인 한국양궁원을 지역에 유치하는 등 새로운 부활을 꿈꾼다. 신도청시대를 맞아 '예천세계활축제'를 통해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활의 고장 예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예천의 '활' : 영화 '최종병기 활'에 이어 최근 전통 활이 등장하는 영화 '군도' '명량' '해적' 등이 올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활을 주제로 한 모바일 게임들도 속속 생겨나 스마트폰 이용자 및 누리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만큼 활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크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활의 DNA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곳이 바로 경북 예천이다. 예천은 활을 사랑하고 활쏘기를 즐긴 활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옛날부터 사내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거는 금줄에 고추 대신 활을 걸어놓는 풍습이 있을 정도로 예천 사람들의 활 사랑은 남다르다. 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예천 활은 안동 권씨 예천읍 왕산골(왕신리) 입향조인 권계황이 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효시가 됐다. 지금은 후손들에 의해 면면히 계승돼 왕산골에서 조궁술을 익힌 명장들이 서울`영주`전주`마산`천안 등지로 흩어져 국궁의 맥을 잇고 있다. 예천에는 고(故) 송강 권영록 명장(1916~1986)이 1971년 지역 최초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활을 만드는 장인)으로 지정받아 각궁 보급에 매진해 왔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권 명장이 만든 활을 사용했을 정도로 예천 활은 유명했다. 지금은 4대째 120년의 가업을 잇고 있는 궁장 경북무형문화재 6호인 권영학(72) 씨가 명장(名匠), 명궁(名弓), 명무(名武)로 국궁 동호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궁장 이수자인 김성락(45) 씨가 예천읍 왕산리 예천국궁전수관에서 전통 활 제작에 앞장서고 있다. 예천 출신인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고 김박영(1933~2011) 명장이 경기도 부천에서 활 생산에 매진했고, 왕산골 출신의 서울시무형문화재 23호 궁장 권무석(72) 씨도 예천과 서울을 오가며 활 생산에 전념하고 있다. 이 밖에 고 권영록 명장의 친동생인 권영덕(영주) 궁장을 비롯해 권오철(전주), 권영무(천안), 권오수(마산) 궁장이 전국 각지에서 예천 활 보급과 국궁의 저변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대한궁도협회 관계자는 "예천은 활 쏘는 민족의 기와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명실상부 활의 고장"이라며 "현재도 예천 활이 전국 국궁 수요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예천 활의 우수성은 대단하다"고 했다.
◆50년 고집 '궁장'에게 듣는 예천 전통 활 제작 방법 : "국궁과 양궁의 공통점은 사람은 활을 이기고 활은 화살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활과 화살이 삼위일체가 돼 무아의 세계에서 오직 과녁의 중심만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활을 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활의 고장 예천에서 50년 동안 전통 활을 제작해 오고 있는 경북무형문화재 6호 권영학 궁장이 항상 활을 쏘기 전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말이다. 권 궁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활 제작 기술과 활 솜씨를 가진 무인이자 장인이다. 권 궁장은 "적은 표적이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표적이 가깝게 보이는 무아의 순간에 화살을 놓아 보내야 한다"며 "화살이 과녁의 중심으로 마음과 정신을 조용하게 싣고 가는 것임을 깨닫는 자만이 명궁의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전통 활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단궁, 장궁, 복합궁으로 분류되며 목궁, 철궁 등 10종류로 나뉜다. 지금은 물소뿔로 만드는 각궁만 남았다. 예천 활은 대표적인 각궁이다. 길이는 단궁이며, 구조상으로는 목편`죽편`각편 등을 모두 사용해 만드는 복합궁이다. 주재료로는 물소뿔, 산뽕나무, 대나무, 쇠심줄, 민어 부레, 화피(벚나무껍질), 명주실 등 7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활은 습하지 않은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만들며 활 한 장을 만드는 데 300번 이상 손이 가야 하는 정성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활 제작 과정은 가장 먼저 대나무를 잘라 구워서 평면이 되도록 펴 준다. 그런 뒤 몸통인 대나무의 양끝에 뽕나무를 연결하고 참나무를 손잡이 부분인 가운데 붙인다. 그리고 활 가운데 물소뿔을 붙이고 바깥쪽에 민어 부레 풀과 배합한 소 힘줄을 붙여준다. 끝으로 자작나무 껍질을 겉에 붙이면 예천 전통 활이 완성된다. 권영학 궁장은 "예천 활의 특징은 활대에 있다. 대나무와 산뽕나무로 이루어진 기본 활대 안팎으로 참나무와 물소뿔을 접착시켜서 활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완성된 활이라도 활의 균형과 대칭을 맞추기 위해서는 활과 씨름을 하다시피 잡아당기고 구부리기를 수십 번 반복해야 빼어난 탄력을 지닌 훌륭한 예천 활이 만들어 진다"고 했다.
◆국궁의 뒷받침 속에 세계무대 우뚝 선 예천의 '양궁' : '산골 소녀가 세계를 제패하다.' 1979년 7월 18일 매일신문 1면 톱기사에 실린 제목이다. 주인공은 바로 예천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여자양궁 국가대표 김진호 선수. 김 선수는 당시 베를린에서 개막한 제30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학교 1년 선배인 황숙주 선수와 함께 여자단체전 1위를 차지했다. 또 김 선수는 개인전에서도 금 4개와 은 1개를 획득, 대회 5관왕으로 단숨에 세계 최고의 명궁으로 떠올랐다. 활의 DNA를 지닌 예천은 이때부터 세계적인 양궁 도시로 거듭났다. 예천에 양궁이 유입된 지 6년 만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한국 여자양궁 국가대표를 지낸 예천 출신 서은정, 한희정, 윤옥희 선수 등은 당시 예천의 초등학교에서 활시위를 당기며 연습에 매진하던 시대였다. 예천 양궁은 1973년 3월 예천여자중학교에 양궁부가 창단되면서 처음 소개됐다. 당시 예천여중 장기오 교장과 권영학 궁장 등을 중심으로 지역에 뜻있는 유지들이 힘을 모아 양궁 발전의 가능성을 보고 팀을 창단했다. 이어 1975년 1월에는 예천여중의 병설교인 예천여고에 양궁부가 창단되고 1979년 3월에 예천중학교, 1980년 3월에 예천동부초, 1982년 12월에 예천초에 각각 양궁부가 창단됐다. 예천군은 1983년 예천군청팀을 창단하고 문형철 감독을 영입해 호진수, 김미자, 김성남, 안승현, 장용호, 한희정, 김수녕, 최남옥, 김석관, 최원종, 윤옥희 등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하며 한국 양궁계를 이끌었다. 예천이 세계적인 양궁의 메카로 우뚝 서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고 이병탁(1936~2008) 회장이다. 이 회장은 지난 1987년부터 21년간 경북양궁협회장을 맡아 왔으며 1980년 한국실업양궁연맹을 창설해 1`2대 회장, 한국중고연맹 33`34대 회장을 역임했다. 1981년 8월 사비 5천만원을 들여 예천군청 남녀 양궁실업팀을 창단해 양궁의 고장 예천의 근간을 다졌으며, 30여 년 동안 양궁과 체육 발전을 위해 매년 5천여만원 이상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양궁을 세계 최고로 만든 장본인인 동시에 예천 양궁의 대부로 예천궁도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현재는 한국중고양궁연맹 회장인 이현준 예천군수를 중심으로 김도영 경북양궁협회 회장이 함께 보조를 맞춰 예천 양궁의 화려한 꽃을 피워 나가고 있다. 김도영 경북양궁협회 회장은 "이병탁 회장은 한국 양궁을 세계무대에 우뚝 세운 주인공인 동시에 예천양궁의 대부"라며 "특히 예천진호국제양궁장 건립과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양궁 종목 예천 유치에 큰 공을 세워 정심상, 경북문화상,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고 밝혔다.(권오석 記者 每日新聞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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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준(觀光客 마음속에 '感動 命中'…李鉉濬 醴泉郡守) [記事] : "예천은 예로부터 활의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조선 숙종 때부터 예천읍 왕신리에서 이어져 온 400여 년의 예천 활 역사는 우리의 자랑입니다. 신도청시대를 맞아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예천세계활축제가 대박이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예천세계활축제 공동 추진위원장인 이현준(59) 예천군수는 "10월 15일부터 나흘간 한천체육공원과 남산공원 일원에서 열리는 예천세계활축제가 신도청시대 예천의 희망을 싣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전국 최초의 활축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국내 최초로 남산공원 일원에 마련될 필드아처리 체험은 관광객들에게 예천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냥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군수는 "세계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진호국제양궁장과 80년 역사의 무학정 등 예천이 가진 다양한 활 인프라와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가대표 및 명장과 함께하는 국궁`양궁체험, 전통활 만들기 체험, 세계 활 전시관 및 공연 등 다양한 체험거리와 볼거리를 준비했다"며 "예천을 찾은 관광객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독특한 축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 군수는 '활을 쏘자! 꿈을 명중시키자!'라는 슬로건과 같이 활의 고장 예천의 미래도 함께 제시했다. "예천국제진호양궁장을 중심으로 양궁`국궁시설을 비롯해 활 전시관, 필드아처리장, 선수전용 종합훈련센터, 양궁연수원 등을 설치해 스포츠 관광자원을 개발`육성하는 한국양궁원 조성사업이 현재 추진 중이며, 활 관련 기업체도 유치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입니다." 이 군수는 "예천 군민들은 활의 고장답게 대다수의 주민이 학창시절이나 사회에서 활을 쏴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활의 DNA가 흐르고 있다"며 "올해 첫 개최하는 활축제가 예천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했다.(권오석 記者 每日新聞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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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