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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746:박수서(2)(祝강형/예천방문1,155)
작성자장병창 @ 2014.08.29 06:06:49

  예천의 자랑(3746) : 박수서(2)(附 용문면 출신 강형, <명세지제들과 함께한 여정> 출판...축하합니다/예천방문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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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서 [記事] : 편수관 명단/ 만력(萬曆) 37년5849) 7월 12일 춘추관이 교지를 받들어 편찬을 시작하여 만력 44년 병진5850) 11월에 편찬을 마쳤다. 이에 참여한 전후의 관원을 아울러 기록한다. / 영사(領事) : 효충 분의 병기 익사 분충 병의 결기 형난공신(?忠奮義炳幾翼社奮忠秉義決幾亨難功臣)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관상감사 세자사(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觀象監事世子師) 덕평 부원군(德平府院君) 신(臣) 기자헌(奇自獻) /.../ 기주관(記注官)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김유(金?) /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윤양(尹讓)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 세자시강원 문학(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世子侍講院文學) 신 유활(柳活)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목대흠(睦大欽)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민유경(閔有慶)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敎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유여각(柳汝恪)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세자시강원 문학 지제교(行世子侍講院文學知製敎) 신 홍방(洪?)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세자시강원 문학 지제교(行世子侍講院文學知製敎) 신 김중청(金中淸)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호조 정랑(行戶曹正郞) 신 신의립(辛義立)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호조 정랑(行戶曹正郞) 신 윤중삼(尹重三)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호조 정랑(行戶曹正郞) 신 변응원(邊應垣)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호조 정랑(行戶曹正郞) 신 이중계(李重繼)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호조 정랑(行戶曹正郞) 신 나인(羅?)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신율(申慄)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윤경(尹絅)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예조 정랑 지제교(行禮曹正郞知製敎) 신 남이준(南以俊)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박수서(朴守緖) /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황경중(黃敬中) /.../ 만력 44년 11월 일 올림. 【모두 1백 16권이다. 】/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25책 398면/ 【분류】 *역사-편사(編史)/ [註 5849] 만력(萬曆) 37년 : 1609 광해군 원년. ☞ / [註 5850]만력 44년 병진 : 1616 광해군 8년. ☞(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記事] : 광해군일기 29권/ 광해군 2년(1610 경술 / 명 만력(萬曆) 38년) 5월 16일(경신) 3번째 기사/ 사간원에서 건의한 강릉 부사 조탁의 파직 등 여러 일에 대해 조치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ꡒ의금부의 사체는 매우 엄중하고, 상언하는 규례가 법전에 실려 있으므로 비록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하여 올릴 수 없는 법인데, 더구나 예로부터 있지 않았던 언서(諺書)로 하는 경우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지난번에 죄를 받아 죽은 이홍로(李弘老)의 부인 기씨(奇氏)가 함부로 언서로 상언하였을 때, 금부의 관원이 마땅히 도리에 의거하여 물리쳤어야 했는데 감히 받아들였는가 하면, 또 이어서 이에 대한 변명까지 하였으며, 정원에서도 일의 전례를 돌아보지 않은 채 흐리멍덩하게 입계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한번 있게 되면 뒤 폐단을 바로잡기 어려우므로 세상의 여론이 더욱 괴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금부의 당상과 색낭청 및 색승지를 파직시키고, 그 언문 상소는 다시 돌려주도록 하소서. 〈강릉 부사(江陵府使) 조탁(曺倬)이 국가의 혼례를 빙자하여 많은 인마(人馬)를 이끌고 상경한 뒤로 여러 달을 머물면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데리고 온 무리들이 구걸하며 원망할 뿐만 아니라, 본부의 일이 날마다 허술해지고 있습니다. 파직하라 명하소서. 시강원 겸설서(侍講院兼說書) 박수서(朴守緖)는 사람됨이 어리석고 용렬할 뿐 아니라 일을 처리함이 거칠고 소루합니다. 지난해 상소를 올릴 때부터 이미 남의 아름다운 것을 빼앗고 녹(祿)을 구한다는 기롱이 있었으나 비웃든 욕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전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춘방(春坊)의 매우 중요한 자리에 이러한 무리들로 하여금 무릅쓰고 있게 할 수 없습니다. 체차하라 명하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동기(同氣)를 위해 지극히 억울한 일을 호소하고 있는데다가 또 스스로 밝힌 일이 있다. 그렇고 보면 그 부인의 도리에 있어서 언서로 상언하는 것이 무슨 지장이 있겠는가. 더구나 대신(大臣)을 신원하는 일과 관계가 있으니 금부와 정원에서 어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일상적인 법규로 개괄하여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니, 이에 대해 논한 바는 지나치다고 하겠다. 〈윤허하지 않는다. 박수서는 초야에서 새로 진출한 사람이니 합당하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체차시킬 것이 없다. 조탁 은 국가의 혼례 때문에 올라왔으므로 사사로운 연고로 머물러 있는 것과는 다르니 체차만 하도록 하라.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아뢴 대로 하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1책 538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記事] : 광해군일기 29권/ 광해군 2년(1610 경술 / 명 만력(萬曆) 38년) 5월 17일(신유) 8번째 기사/ 사간원이 이전의 일을 다시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사간원이 지난번 일을 연계하니, 답하기를, ꡒ금부와 정원에는 별로 실책이 없다. 더구나 억울한 송사에 대하여 상언한 것을 어찌 되돌려 줄 수 있겠는가. 〈조탁(曺倬)은 체직만 시키도록 하라. 박수서는 서용하더라도 무방하니 번거롭게 고집하지 말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1책 538면/ 【분류】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인물(人物) / *사법(司法)(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記事] : 광해군일기 98권/ 광해군 7년(1615 을묘 / 명 만력(萬曆) 43년) 12월 7일(기유) 1번째 기사/ 좌의정 정인홍에게 궤장․술․음악을 내리기 위해 도승지 윤선 등이 떠나다/ 좌의정 정인홍에게 궤장과 술․음악을 내리는 일로 도승지 윤선(尹銑), 주서 김구(金?), 예조 정랑 박수서(朴守緖), 중사 최언준(崔彦俊) 등이 명을 받들고 하직하고 떠났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2책 445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記事] : 광해군일기 130권/ 광해군 10년(1618 무오 / 명 만력(萬曆) 46년) 7월 8일(갑오) 8번째 기사/ 조정․박수서․김치․강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조정(趙挺)을 이조 판서로, 박수서(朴守緖)를 상의원 정으로, 김치(金緻)를 형조 참의로, 강수(姜燧)를 사예로, 김시국(金蓍國)을 직강으로, 백대형(白大珩)을 강원 감사로, 유응형(柳應泂)을 숙천 부사(肅川府使)로, 이응인(李應寅)을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3책 12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記事] : 광해군일기 135권/ 광해군 10년(1618 무오 / 명 만력(萬曆) 46년) 12월 25일(경진) 3번째 기사/ 이선복․윤중삼․김치․임흥후․정광경 등에게 새 관직을 제수하다/ 이선복(李善復)을 병조참판으로, 윤중삼(尹重三)을 형조 참판으로, 김치(金緻)를 우부승지로, 임흥후(任興後)를 정언으로, 정광경(鄭廣敬)을 사인으로, 이성(李?)을 공홍도(公洪道) 감사로, 〈금개(琴愷)를 좌통례로, 박수서(朴守緖)를 우통례로,〉 이잠(李?)을 예조 정랑으로, 〈이경익(李慶益)을 전적으로,〉 한영(韓詠)을 장악원 첨정으로, 〈박항길(朴恒吉)을 사복시 판관으로, 허함(許涵)을 호조 정랑으로,〉 안응로(安應魯)를 설서로, 이필달(李必達)을 대교로, 박노(朴?)를 안동 부사로, 조방보(趙邦輔)를 길주 목사(吉州牧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3책 19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記事] : 광해군일기 140권/ 광해군 11년(1619 기미 / 명 만력(萬曆) 47년) 5월 16일(무술) 1번째 기사/ 양사가 합계하여 역적을 토벌하는 법을 엄중히 할 것 아뢰다/ 양사가 비밀리에 합계하기를, ꡒ근년 이래로 국운이 불행하여 역적의 옥사가 연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허환(許?)․조우인(曺友仁)․박수서(朴守緖)․장의범(張懿範) 등이 옥에 가득히 구금되어 있는데, 단지 오래도록 국문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죽음 속에서 살아나려고 합니다. 혹 죄수를 유도하기도 하고 혐오하고 원망하는 이를 무고하여 끌어들이기도 하며 혹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 구원을 요구하여 요행히 벗어나려고도 하는데 이것들이 흉한 자들의 상소에서 탄로되고 개인의 서간에서 적발되는 등 그 정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아 난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역변이 또 관서 지방에서 일어나 줄줄이 잡아오고 있으니, 지금 만약 이들을 옛날 죄수들 사이에 뒤섞여 있게 한다면 변환(變幻)의 해를 예측할 수 없고 따라서 〈죄인의 정상을 얻기가 어려워 무고한 이가 반드시 잘못 걸려들게 될 것입니다.〉 신들이 방금 성상의 비답을 보니, 대신에게 사고가 있으면 내일 추국하라고 하교하였는데, 이미 역적이라고 한 이상 얼마나 큰 옥사인데 잠시라도 지연하여 간사한 꾀를 마구 부리게 맡겨 둔단 말입니까. 설령 대신에게 사고가 있다 하더라도 역적의 추국은 폐지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금부로 하여금 신구(新舊)의 역적을 엄중히 지켜 몰래 내통하지 못하게 하고 뜰에서 친히 국문하는 것을 일각이라도 늦추지 말아 역적을 토벌하는 법전을 엄중히 하소서.ꡓ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3책 236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記事] : 광해군일기 167권/ 광해군 13년(1621 신유 / 명 천계(天啓) 1년) 7월 11일(경술) 3번째 기사/ 유생의 소장에 대해 원통하다는 분병조 참의 박수서의 상소/ 분병조 참의 박수서가 상소하였다. 대개는 자신의 이름이 유생들의 소장에 들어있어서 그 곡절을 변명하고, 백대형(白大珩)과 대질하여 원통함을 풀겠다는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3책 389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원년 7월 20일 (무신) 원본2책/탈초본1책 (9/9)  1623년 天啓(明/熹宗) 3년/ 朴東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以朴東善爲大司諫, 鄭廣敬爲副應敎, 金時言爲副修撰, 睦敍欽爲兵曹正郞, 徐?爲大司憲, 李時發爲刑曹判書, 李行遠爲奉敎, 朴守緖爲蔚山府使, 趙國賓爲利川□□, 成安義爲尙衣正, 尹煌爲司宰正, 特拜李貴爲右贊成。竝出故判書朴鼎賢家日記所謄朝報(www.history.go.kr 2009)

 

  박수서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尤溪 咸陽朴公(守緖) 墓碣銘/ ... 諱 訥은 이분의 高祖와 曾祖가 된다. 祖의 諱 從鱗은 吏曹正郞으로서 金安老가 싫어서 醴泉 金塘谷으로 避하였.../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박수서 [專門資料] : 尤溪先生逸稿/ 朴守緖 저(daum 2010)

 

  박수서 [專門資料] : 우계일고 표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박수서(朴守緖, 1567~1627)의 시문집. 2권 1책. 1910년 9세손 박주대(박周大) 등이 편집·간행했다. 책머리에 참판 이돈우(李敦禹)의 서문이, 책 끝에 박주대의 발문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daum 2010)

 

  박수서(朴守緖) : 본관(本貫) 함양(咸陽), 시대(時代) (1567-1627), 자(字) 경승(敬承), 호(號) 우계(尤溪)/ 이력(履歷)/ 박수서(朴守緖)/ 18세 문원공파(정랑공파)  1567 ~ 1627/ 자(字):경승 호(號):우계/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지(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호군(護軍) 언상(彦商)의 딸이다. 숙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키며 항전하였다. 1607년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고, 1608년에는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에 문과에 급제,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에 제수되었다. 1611년 북평사(北評事)를 지냈으며, 1613년에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승차(陞差)되었으나, 그해 4월에 정조(鄭造)?윤인(尹인)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극렬하게 상소하고 귀향하였다. 다시 예조좌랑(禮曹佐郎)과 정랑(正郎),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618년 특명으로 북도순무어사(北道巡撫御史)가 되어 입조(入召)한 후 북관(北關)으로 가서 민심을 수습, 진무(鎭撫)하고 돌아오니 대비가 이미 폐출되어 서궁(西宮)에 부처되었으므로 곧 소백산 우수동(愚수洞)에 들어가 칩거하였다. 그러나 그 뒤 통례원좌우통례(通禮院左右通禮)와 상의원정(尙衣院正)에 임명되었으며, 1620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었다.  이해에 북평사를 역임하였고, 그 뒤 우승지(右承旨)를 거쳐 1621년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가 되었다.  이때 조우인(曺友仁)과 함께 입직(入直)하다가 인목대비 유폐에 대한 비판의를 지은 것을 백대형(白大珩)이 이이첨(李爾瞻)의 무리에 고변, 조우인과 함께 피체, 금부에 하옥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났다. 1623년(인조 1) 용양위부호군(龍양衛副護軍)에 임명되었으며, 곧 울산부사(蔚山府使)가 되었다.  1627년 우승지가 되어 호란이 일어나자 대가(大駕)를 호위하여 강도(江都)에 들어갔다가 난이 평정된 뒤 돌아왔다. 죽은 뒤 영남사림의 발의로 순흥의 도고서원(陶皐書院)에 봉안(奉安)되었다.  저서(著書)로는 《우계일고》가 있다.(daum 2010)

 

  박수서 : 함양박씨(咸陽朴氏)를 빛내신 분/ 박수서(朴守緖)/ 상서공 휘 선의 18세 손으로(문원공파) 1567(명종 22)-1627(인조 5).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자는 경승(景承), 호는 초옥(草屋),우계(尤溪).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지(芝)의 아들이시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호군(護軍) 언상(彦商)의 딸이다. 숙부(叔父)의 문하(門下)에서 수학(受學)하였다. 1588년(선조 2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合格)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義兵)을 일으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키며 항전하였다. 1607년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고, 1608년에는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에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설서(說書), 순무어사(巡撫御使)를 거쳐 승지(承旨)<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지냈다. 1611년 북평사(北評事)를 지냈으며, 1613년에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승차(陞差)되었으나, 그해 4월에 정조(鄭造).윤인(尹 )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극렬하게 상소하고 귀향하였다. 다시 예조좌랑(禮曹佐郎)과 정랑(正郎),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618년 특명으로 북도순무어사(北道巡撫御史)가 되어 입조(入召)한 후 북관(北關)으로 가서 민심을 수습, 진무(鎭撫)하고 돌아오니 대비가 이미 폐출되어 서궁(西宮)에 부처되었으므로 곧 소백산 우수동(愚수洞)에 들어가 칩거하였다. 그러나 그 뒤 통례원좌우통례(通禮院左右通禮)와 상의원정(尙衣院正)에 임명되었으며, 1620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었다. 북평사를 역임하였고, 우승지(右承旨)를 거쳐 1621년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가 되었다. 광해군 때 북평사(北評使, 巡撫御使)로 나가서 의주(義州) 사람들이 세운 이이첨(李爾瞻)의 도학비(道學碑)를 보고 화를 내며 말하기를, “한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만인은 속일 수 없으며, 당대는 속일 수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라고 인목대비 유폐에 대한 비판의죄를 지은 것을 백대형(白大珩)이 이이첨(李爾瞻)의 무리에 고변, (daum 2010)

 

  박수서 : <예천 신문 고장의 인물>/ 박수서(1567-1627)는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으로, 자는 경승(景承), 호는 우계(尤溪), 본관은 함양, 지(芝)의 5자이다. 1588년(선조 21)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성리학에 박학하다고 하여 천거되어 건원릉(健元陵) 참봉에 임명되었다. 그 후 평안도 도사로 있으면서 과거 시험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1609년(광해군 1)에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의 설서(說書)에 임명되었다. 그 후 문무 어사를 거쳐 승지로 승진하고, 벼슬이 정3품 병조 참의(兵曹參議)에까지 이르렀다. 광해군의 명령으로 순무어사로서 평안도 의주로 갔을 때, 그 곳 사람들이 당시의 권세가였던 이이첨의 성리학을 칭송하는 기념비를 세우자, 박수서가 이를 보고 화를 내며 이르기를, "한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은 속일 수 없으며, 당대는 속일 수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그 비석을 부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박수서는 이이첨의 분노를 사게 되었으나, 박수서의 학문과 인품이 워낙 고매하므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개포면 경진리 사람 조우인이 인목대비의 서궁유폐사건을 보고 분개하여 탄식한 시(1621)를 지었는데, 이이첨이 이를 광해군을 욕한 역적의 뜻이 있다고 무고를 하여, 조우인을 감옥에 가둔 이른 바 서궁시옥(西宮時獄)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박수서도 조우인과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 서로 친하다고 하여 감옥에 들어가 3년 감옥살이를 하였다. 그러나 인조반정(1623)이 일어나자 맨 먼저 풀려나 울산 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정묘호란(1627) 때 인조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 갔다가 그 곳에서 타계하였다. 무덤은 용문면 원류리 허리골에 있다. <장병창 논설위원> (daum 2010)

 

  박수서 : <국조 문과 방목> / 박수서(朴守緖)/ 광해군(光海君)1년(1609년), 증광시(增廣試) 을과2(乙科2)/ > 인적사항 생년(生年) 1567년, 정묘, 자(字) 경승(敬承), 호(號) 우계(尤溪), 본관(本貫) 함양(咸陽)/ > 가족사항 부(父) 박지(朴芝), 조부(祖父) 박종린(朴從麟), 증조부(曾祖父) 박눌(朴訥)/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588(무자) 진사시, 전력(前歷) 참봉(參奉), 관직(官職) 승지(承旨)(daum 2010)

 

  박수서 : 문헌(文獻)/ 1. 영주문화 > 영주의 역사인물 > 조선시대/ 박수서(朴守緖)/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 광해군 1년(1609)에 문과(文科) 급제하여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지내다.// 2. 박수서(朴守緖) 본관 함양(咸陽) 자는 경승(景承) 호는 우계(尤溪)/ 문화유적 > 서원/ 도고서원(도고서원)/ 소재지 영풍군 부석면 우곡리 우수동(愚수洞)/ 창건년대 1824년(純祖 24)/ 창건자 사림(士林)/ 봉안위 생원(生員) 황한충(黃漢忠) 사부(師傅) 민응기(閔應祺) 진사(進士) 손흥경(孫興慶) 생원(生員) 권준신(權俊臣) 좌랑(佐郞) 박수서(朴守緖)/ 적요: 박수서(朴守緖) 호(號) 우계(尤溪)의 상향축문이 있다/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수서 : 박손경(朴孫慶)/ ...(南野)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경북 예천(醴泉) 출신이며, 박성옥(朴成玉)의 아들이다. 박운(朴蕓) 박수서(朴守緖)로 이어지는 가학(家學)을 계승하였고, 이황(李滉)을 사숙(私淑)하였다. 정옥(鄭玉) 이상정(李象靖) 김낙행(金樂行.../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수서(朴守緖)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광해군(光海君) 1년, 과거시험연도 : 1609 기유, 시험명 : 증광시(增廣試), 등위 : 을과2(乙科2)/ [인적 사항] 성명(姓名) : 박수서(朴守緖), 자 : 경승(敬承), 호 : 우계(尤溪), 본관(本貫) : 함양(咸陽)/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588(무자) 진사시, 전력(前歷) : 참봉(參奉), 관직(官職) : 승지(承旨)/ [가족사항] 부(父) : 박지(朴芝), 조부(祖父) : 박종린(朴從麟), 증조부(曾祖父) : 박눌(朴訥)(daum 2010)

 

  박수서(朴守緖) : 문신-조선중기/ 박수서(朴守緖)에 대하여/ 생몰년 : 1567-1627/ 시대 : 조선/ 분야 : 문신/관료 > 문신-조선중기 > 문신/ 학자 박수서(朴守緖)에 대하여/ 1567(명종 22)∼1627(인조 5).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경승(景承), 호는 우계(尤溪).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지(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호군(護軍) 언상(彦商)의 딸이다. 숙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키며 항전하였다. 1607년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고, 1608년에는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에 문과에 급제,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에 제수되었다. 1611년 북평사(北評事)를 지냈으며, 1613년에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승차(陞差)되었으나, 그해 4월에 정조(鄭造)·윤인(尹?)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극렬하게 상소하고 귀향하였다. 다시 예조좌랑(禮曹佐郎)과 정랑(正郎),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618년 특명으로 북도순무어사(北道巡撫御史)가 되어 입조(入召)한 후 북관(北關)으로 가서 민심을 수습, 진무(鎭撫)하고 돌아오니 대비가 이미 폐출되어 서궁(西宮)에 부처되었으므로 곧 소백산 우수동(愚?洞)에 들어가 칩거하였다. 그러나 그 뒤 통례원좌우통례(通禮院左右通禮)와 상의원정(尙衣院正)에 임명되었으며, 1620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었다. 이해에 북평사를 역임하였고, 그뒤 우승지(右承旨)를 거쳐 1621년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가 되었다. 이때 조우인(曺友仁)과 함께 입직(入直)하다가 인목대비 유폐에 대한 비판의 죄를 지은 것을 백대형(白大珩)이 이이첨(李爾瞻)의 무리에 고변, 조우인과 함께 피체, 금부에 하옥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났다. 1623년(인조 1) 용양위부호군(龍?衛副護軍)에 임명되었으며, 곧 울산부사(蔚山府使)가 되었다. 1627년 우승지가 되어 호란이 일어나자 대가(大駕)를 호위하여 강도(江都)에 들어갔다가 난이 평정된 뒤 돌아왔다. 죽은 뒤 영남사림의 발의로 순흥의 도고서원(陶皐書院)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우계일고》가 있다./ 〈朴庭魯〉/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수서 : 문과합격자 살펴보기/ 2009.04.25/ ...) [증조부]성명 : 박이경(朴而敬) [외조부]성명 : 김계행(金係行) [처부] 성명 : 문억경(文抑磬) [손] 박수서(朴守緖) [형] 박형린(朴亨麟)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14 박붕린(朴鵬麟) [문과] 중종(中宗) 28년 (1533).../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수서(朴守緖) : 운영자 서재/ 풀꽃/ 2006.09.02 23:38/ //cafe.daum.net/pnh55/【성 명】 박수서(朴守緖)/【생몰년】 1567(명종 22)∼1627(인조 5)/【본 관】 함양(咸陽) 박(朴)/【자·호】 경승(景承), 우계(尤溪)/【시 대】 조선 중기/【성 격】 문신/ 1567(명종 22)∼1627(인조 5).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경승(景承), 호는 우계(尤溪)이다. 아버지는 군자감 주부 박지(朴芝)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 호군 박언상(朴彦商)의 딸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8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활동을 하였다. 광해군 1년(1609)에 문과에 급제, 시강원 설서(侍講院說書)에 제수되었다.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가 폐출되자 소백산 우수동(愚馬洞)에 들어가 칩거하였다. 그러나 그 후 동부승지 · 북평사 · 우승지 · 분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21년 인목대비 유폐에 대한 비판의 죄를 지은 일 때문에 의금부에 하옥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났다. 1627년 우승지가 되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대가(大駕)를 호위하여 강화에 들어갔다가 난이 평정된 뒤 돌아왔다. 죽은 뒤 영남 사림의 발의로 순흥의 도고서원(陶皐書院)에 봉안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cafe.daum.net/pnh55/ 향기로운 영혼의 쉼터(daum 2010)

 

  박수서 : 함양박씨를 빛낸 인물/ 2008.11.01/ 박수근(朴守謹) 경정(景靜) 소천(蘇川) 18세 박수기(朴守基) 박수남(朴守男) 여익(汝翼) 박수병(朴洙丙) 박수서(朴守緖) 경승(敬承) 우계(尤溪) 18세 박수약(朴수약) 경선(景旋) 진곡(進谷) 박수의(朴수의) 경행(景行) 문천(汶川.../ //cafe.daum.net/pnh55/ 향기로운 영혼의 쉼터(daum 2010)

 

  박수서 : 조선의 암행어사/ e-Book/ 임병준 지음 |  가람기획 |  2003.06.14/ 책본문 : ...任찐·蔡慶先·崔晛1612 閔有慶·洪滂·權昕·睦大欽·徐景雨·李景稷·鄭..·崔晛1618 朴守緖·金鑑·李挺·李昌廷·蔡謙吉·姜..1619 韓明..1621 李弘望·尹知敬·任興後·吳煥·朴宗胤1622 崔有海.../ 225페이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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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문면 출신 강형, <명세지제들과 함께한 여정> 출판...축하합니다.

 

  강형(康泂 前 大邱韓醫大 敎授 回顧錄 出版記念會 開催) [記事] : 용문면 하금곡리 태생의 강형(76) 전 대구한의대 교수가 2014년 8월 9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명세지재들과 함께한 여정>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명세지제들과 함께한 여정>은 강형 전 교수가 평생 교육자로 걸어온 길을 여러 제자들의 글과 함께 담아낸 회고록이다. 1편에서는 ♢출세와 성장 ♢꿈과 희망을 가지다 ♢명세지재들을 만나다 ♢절차탁마의 피리어드 ♢연구 및 봉사의 장 ♢정년퇴임 후 등으로 나눠 오직 교육자의 외길을 걸어 온 지난날에 대한 회상을 중심으로, 제자들과 함께한 열정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편에서는 ♢인생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자신을 되돌아보며 ♢추억 ♢현장에서의 애환 ♢행복에 이르는 길 등 저자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옥고(玉稿)를 담고 있다. 강형 전 교수는 회고록을 통해 진정한 교육자의 길과 대한민국 교육계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명쾌히 전하고 있다. 그는 “평생 교직생활을 하면서 나의 사·언·행(思言行)이 젊은이들의 본보기가 되도록 정진하고 노력하는 수양심(修養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강형 전 교수는 용문초등, 예천중, 안동사범학교, 경북대 사범대 영어교육과, 동아대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했다. 경북고, 경북여고 교사, 대구한의대 영어과 교수로 재직해오며 평생을 교육 분야에 헌신했으며, 현재까지도 사랑하나공동체, 대구·경북교육발전포럼의 대표, 한국교육평가연구소 소장 등을 맡아 교육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값 2만5천원(醴泉新聞 201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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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155

 

  예천진호국제양궁장(第46回 全國 男.女 洋弓綜合選手權大會 開幕) [記事] : 예천군에서는 제46회 전국 남.여 양궁종합선수권대회 및 제25회 전국 남.여 초등학교 양궁대회가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141개 팀 1천여 명의 선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4년 8월 28일 오후 4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9월 4일까지 열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제46회 전국 남.여 양궁종합선수권대회는 2014년도 한국양궁을 결산하고 2015년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겸한 대회로 한국양궁 최강전이라 할 수 있다. 본 대회는 금년도 각종 대회에서 남자는 1,315점, 여자는 1,342점 이상을 획득한 우수한 선수와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들이 출전한 가운데 경기 결과에 따라 2015년도 국가대표 32강까지 1차 선발하는 중요한 경기가 치러진다. 경기는 올림픽라운드 방식으로 남.녀별 개인전과 단체전, 거리별(남 90/70/50/30m, 여 70/60/50/30m)로 치러지며, 개인전은 세트제로 운영된다. 한편, 전국 남.녀 초등학교 양궁대회는 한국 양궁의 미래를 이끌어 갈 꿈나무 선수를 발굴 육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환영사에서 “지난 1년간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한 선수들과 임원들을 격려하고 이번 대회에서도 그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 모두가 소망하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국위선양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하면서 “또한 10월 15일부터 개최되는 제1회 예천세계활축제에 양궁인들이 적극 동참해 한국 활의 우수성과 전통성을 알리는데도 일조해 주기를 바라면서 양궁의 저변확대와 발전을 위해 예천군이 발 벗고 나설 것”이라 말했다.(醴泉인터넷放送 2014-08-28 오후 5: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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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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