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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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770) : 예천세계활축제(22) 김성훈(2)-김소미-김수남-김수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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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 김성훈(국군체육부대 감독) 씨 양궁국가대표 남자부 감독 선임/ 웹문서/ 2010년 01월 20일 (수) 02:49:47 권오근 편집국장 youin67@ycnews.co.kr/ 예천읍 서본리 태생의 김성훈(45) 씨가 2010년 양궁 국가대표 남자부 감독으로 선임됐다. 예천초등, 예천중(30회), 경북체고를 졸업한 김 감독은.../ ycnews.co.kr(daum 2012)
김성훈 : 경북 양궁인의 밤...경북양궁협회 김도영 회장 내년도 성적향상 위해 최선.../ Daum 카페 | 2011.12.12/ 석호진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부회장 및 이사 등이 참석했다. 또한, 예천 출신인 국군체육부대 김성훈 감독, 한국 양궁의 신화이며 양궁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듣고 있는 김진호 교수(한국체육대학), 핑크공주로 유명한 윤옥희.../ cafe.daum.net/ 양궁을사랑하는모임(daum 2012)
김성훈 : [여기는 광저우] 양궁 첫 현지훈련…"관중 방해 극복"/ 웹문서/ 관중석 위치로 베이징 올림픽과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서 국제양궁연맹 월드컵에서 소음과 야유, 심지어 거울로 눈에 햇빛을 비추는 관중도 있었습니다. 양궁팀 김성훈 감독은 "공격이 어떻게 들어올지 생각해보고 있다"며.../ m.mbn.mk.co.kr(daum 2012)
김성훈 : 별들의 패션 집합소! 연예인쇼핑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스타몰/ 14 네이트 | //www.nate.com ... 주무관, 천문영 대한체육회 홍보실장, 김기찬 대한양궁협회 부회장, 김성훈 양궁남자국가대표팀 감독, 조은신 양궁여자국가대표팀 감독, 오진혁 양궁남자국가대표선수, 김우진 양궁남자.../ star-mall.co.kr(daum 2012)
김성훈 : “중국 양궁 실수할 줄 알았다”/ 서울신문/ 금빛으로” 볼링 황선옥 개인종합 우승 ‘3관왕’ 한국女축구, AG 사상 첫 메달…역시 지-박! 양궁 김성훈 감독 ‘허드렛일 리더십’ ‘부진’ 남자양궁 ‘최강 자리’ 복귀 여자농구 ‘하은주 공백 아쉽네’ 남북대결 ‘축구 지고 나머진.../ www.seoul.co.kr(daum 2012)
김성훈 : 한국양궁 최강 비법은/ 웹문서/ 덧글 (0) 좋아요 (0) 22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남자 단체전이 열린 아오티 양궁장. 남자대표팀 김성훈(42) 감독이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살짝 공개했다. ■단체전 순서는 과학과 경험의 조합 단체전.../ wcms.kookje.co.kr(daum 2012)
김성훈 : [스포츠/AG/양궁] 양궁대표팀 '양궁은 金메달 당연한 것' 제일 싫어!/ 네이버 블로그 | 2010.11.22/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정적인 양궁의 특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신을 ...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를 지켜봤던 김성훈 남자대표팀 감독은 "우승을 하게 되면 '이제 이걸로 욕 안 먹겠구나.'라는.../ blog.naver.com(daum 2012)
김성훈 :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ㅠㅠ/ 네이버 블로그 | 2010.11.23/ 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대표팀은 더욱 이를 악물고 시위를 당겼다. 김성훈 감독이 직접 타깃 에이전트 로 나서는 등 하나된 마음으로 선수단은 뭉쳤다.... 8연패 수성을 도왔다. 남자 양궁대표팀의 활시위는 이제 런던올림픽을.../ blog.naver.com(daum 2012)
김성훈 : [NX100♩] [여기는 광저우] 고교생 김우진 2관왕 쐈다!/ 네이버 블로그 | 2010.11.25/ 확정되자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여자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내려와 김우진을 얼싸안았다. 김성훈 감독은 “양궁은 당연히 금메달을 따는 줄 안다. 그 스트레스를 털어버렸으니 남녀 팀 가릴 것 없이 기뻤다”며 후련해.../ blog.naver.com/nx100_/ | ♥즐거운 NX100 [ADel..(daum 2012)
김성훈 : 2010.11.24-남자 양궁 개인 김우진 금메달 2관왕-한국 양궁 전 종목 석권-제.../ Daum 카페 | 2010.11.24/ in Guangzhou) 개인전 (Archery Men's Individual Gold Medal Match) 남자 양궁 개인 (Archery Men's Individual Gold Medal Match) 김성훈 감독과 양창훈 코치와 김우진, 그리고 태극기 김우진(대한민국) VS 타룬디프 라이(인도.../ cafe.daum.net/nanter/I5sa/79 | 난터(daum 2012)
김성훈 : 예천군청 양궁 정상/ 네이버 블로그 | 2004.11.03/, 김미자 등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했으며 현재 문형철 감독과 김성훈 코치를 비롯해 남여 각각 4명의 선수로 팀이 구성되어 있다. 예천군청 실업양궁팀은 창단 이후 전국실업대회 남자단체 1위, 제28회 종별선수권대회.../ blog.naver.com/killerparks/ killerparks님의 블로..(daum 2012)
김성훈 : (8시/광장) 제주에서 바람 적응 훈련/ 웹문서/ 겁니다. <슈퍼 1> 오늘 오후, 서귀포시 강창학구장 <슈퍼 2> 3시 (방향) 바람 많이 불어. 좋다! <인터뷰> 김성훈/ 남자 양궁대표팀 감독 "특히 바람이 영향을 많이 미치는데, 여기는 바람이 전후사방 앞뒤로 뿌려주니까.../ jeju.kbs.co.kr(daum 2012)
김성훈 : G 세대- 강요하면 안 돼/ Daum 블로그 | 2010.03.02/ 메달권에 들 수 있어 선수들이 자기관리를 치열하게 한다는 얘기다.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도 달라졌다. 김성훈(45) 양궁 대표팀 코치는 "앞선 세대 선수들은 지도자를 어려워했는데 G세대는 격의 없이 다가오고, 싫으면 싫다고.../ blog.daum.net/truth1beauty2/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daum 2012)
김성훈 : 영화 '괴물' 경북 예천 진호양궁장서 촬영/ Daum 카페 | 2005.07.14/ 예천군청 실업팀 소속으로 현 양궁국가대표인 윤옥희 선수를 배두나의 결승전 상대역으로 출연시키기로 했다. 또 올림픽금메달리스트 김수녕 선수가 방송중계 해설위원으로 출연하고, 김성훈 코치도 윤선수의 지도자로 나서는.../ cafe.daum.net/badahana/6UdD/1321 | 청춘예찬 박해일(daum 2012)
김성훈 : 예천군청 양궁실업팀의 명성/ Daum 카페 | 2007.09.19/ 대표를 배출하며 전국 최고의 명문팀으로 군림하는 것은 김수남 군수의 양궁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 국가대표 여자팀 문형철 감독과 김성훈 코치의 탁월한 지도력, 그리고 선수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로 분석하고.../ cafe.daum.net/ho1972/7XfO/41 | 호명초등학교 35회 동창회(daum 2012)
김성훈 : 그게 실력이다./ 네이버 블로그 | 2010.11.22/ 줄 알았다." 아시안게임 남자 양궁 단체전 8연패에 성공한 한국 양궁대표팀의 감독과 선수들이 "중국의 실수를 예상했다"고 입을 모았다. 남자대표팀의 김성훈(42. 국군체육부대) 감독은 22일 "중국의 단점은 마지막에.../ blog.naver.com/idoors/| 교육읽기(daum 2012)
김성훈 : 재경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예천군청 양궁실업팀 전국 최강/ 2007.09.19/ 전국 최고의 명문팀으로 군림하는 것은 김수남 군수의 양궁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 국가대표 여자팀 문형철 감독과 김성훈 코치의 탁월한 지도력, 그리고 선수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로.../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2)
김성훈 : 예천 출신, 은풍중 3학년 때 2001년 4월 김천시에서 열린 전국종별육상대회 멀리뛰기 부문에서 6m 28cm로 3위, 동년 6월 부산시에서 열린 제30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동 부문에서 6m 48cm로 동메달, 동년 9월 6-7일 천안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22회 문화관광부장관기 타기 전국 시도대항 육상경기대회 중등부 동 부문에서 6m 68 cm를 기록해 금메달을 차지하였다.(醴泉新聞 2001.9.13)
김성훈 : [모교소식]김성훈 군 전국소년체전 도대표 선발/ 2001.04.04 | Daum 카페/ 4월 2일 포항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전국소년체전 선수 선발을 겸한 경상북도 소년체전에서 우리학교 김성훈 군이 멀리뛰기 경상북도 선수로 선발되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경기에서 김군은 예선 2차 시기에서 598.../ cafe.daum.net/chai11/PD6/ 은풍(daum 2012)
김성훈 : [모교소식] 김성훈군 전국소년체전 동메달 획득!!!/ 2001.06.04 | Daum 카페/ 김성훈 군, 전국소년체전에서 동메달 획득!!! 6월 3일 오전 10시 부산구덕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29회 전국소년체전에 멀리뛰기 경북대표로 출전한 우리학교 3학년 김성훈 군이 6m48㎝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하여 예천.../ cafe.daum.net/chai11/PD6/ 은풍(daum 2012)
김성훈 : 경북학도종합체전/ 웹문서/ 3위), 이윤주(풍양고·3위), 권미소(예천여고·3위), 박성민(대창고·3위) △탁구:이보라(예천초등·3위) △멀리뛰기:김성훈(은풍중·1위) △투원반:진미은(풍양중·1위) △투창:진미은(풍양중·1위) △2백m:장선희(예천여고·1위) △4백m.../ ycnews.co.kr(daum 2012)
김성훈 : 전국 육상경기대회 금메달 따/ 웹문서/ 문화관광부장관기 타기 전국 시·도 대항 육상경기대회에서 은풍중학교(교장 양승모)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성훈 군이 중등부 멀리뛰기 부문에서 경북 대표로 출전하여 6m68cm를 기록해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김군은 지난.../ ycnews.co.kr(daum 2012)
김성훈(김성훈 洋弓 男子部 國家代表 監督 選任) [記事] : 예천읍 서본리 태생의 김성훈(48) 상무 양궁감독이 2013년 양궁 국가대표 남자부 감독으로 선임됐다. 김 감독은 예천초, 예천중, 경북체고를 졸업했으며, 예천여고 코치, 예천군청 여자코치, 국가대표 남자코치를 거쳐 국군체육부대 양궁감독을 역임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방은경(44) 씨와의 사이에 1남을 두었다.(醴泉新聞 20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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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洋弓 有望株 김소미 來年 '화이팅') [記事] : 예천군청 양궁실업팀의 김소미 선수입니다. 엄동설한에도 2006년 시합을 위한 연습에 여념이 없습니다. 2001년 대통령기 전국양궁대회 개인종합 2위, 2003년 전국체전 70m에서 3위의 성적을 거둔 유망주입니다. 특히 2005년 11월 초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개최된 양궁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국가대표 2차선발전 출전 자격을 획득해 더욱 열심입니다. 개의 해인 병술년이 김소미 선수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준식(예천군 예천읍 대심리)(嶺南日報 2005-12-29 07:25:13)
김소미 : 김소미, 최현주(기전여대), 올 체전 양궁 금 다크호스/ ...우리의 진가를 확인시킬 거예요." 만년 국내 대표 선수들 연습 파트너이자 세계 여자 양궁 2인자로 각인되온 김소미(173㎝)와 최현주(175㎝·이상 기전여대). 그녀들이 무서운 반란을 꿈꾸고 있다. 전국체전을 통해 세계 1인자로.../ //jeollailbo.com(daum 2010)
김소미 : 경북 예천군청 사회체육과 근무 생활스포츠과 김소미/ 작성일 :2004-11-28 첨부파일: 김소미/ 졸업생은 2003년도 생활스포츠과 양궁선수로 졸업하여 현재 경북 예천군청 사회체육과 소속으로 선수생활을 하면서 청소년 양궁 교실을 운영하여 예천군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admission.kijeon.ac.kr(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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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나란바타르 몽골 體育會長 金秀男 郡守 禮訪하여 協助要請, 洋弓場 訪問) [記事] : 중앙아시아 스포츠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는 몽골의 나란바타르 체육장관 일행 7명이 2006년 10월 19일 오후 2시 군수실로 김수남 군수를 예방하고 몽골의 양궁 발전을 위해 예천군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환담을 나눴다. 나란바타르 장관은 김수남 군수에게 "몽골 양궁선수들의 전지훈련장소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진호국제양궁장에서 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과 김 군수의 몽골방문"을 요청했다. 김 군수는 나란바타르 장관에게 "미국, 스페인, 호주 등 세계 곳곳의 양궁장을 가 보았지만 진호국제양궁장만큼 훌륭한 시설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었다"며 진호국제양궁장을 세계 최고라고 소개했다. 또 "몽골은 최근 방영된 TV드라마 징기스칸을 보고 광활한 토지, 풍부한 천연자원 등 청정 지역으로 알고 있다"며 "몽골 체육장관이 요청한 전지훈련 문제는 대환영하고 추후에 협의하자"고 약속했다. 나란바타르 장관은 김 군수에게 징기스칸 탄생 기념 메달과 몽골 술을, 김 군수는 나란바타르 장관 일행에게 인삼을 선물한 뒤 진호국제양궁장으로 장소를 옮겨 대화를 계속했다. 나란바타르 몽골 체육장관은 모든 스포츠를 관장하는 요직으로 공무원 신분이며 일행들도 몽골 각 지역의 체육 관계자들이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10-19 오후 3:28:54)
김수남(全國 規模 國弓大會 열린다 : 활 故庄 이미지 살리고 觀光客 誘致․地域景氣 活性化 期待) [記事] : 예천군이 활의 고장 이미지를 살리고 전통 활의 문화적 보존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2008년도에 전국 최대 규모의 국궁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수남 군수는 2007년 12월 3일 제129회 예천군의회 1차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김 군수는 "예천읍 왕신리가 각궁 제작의 본거지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증명할 고증 자료가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며 "그런 취지로 왕신리에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각궁체험관을 건립했으나 활용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군수는 "현재 예천읍 왕신리 출신 사람들 중 전국 각지에서 각궁을 제작하고 있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천군이 양궁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전국에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역사적 전통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군수는 "내년에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을 활용해 최대 규모의 전국 단위 국궁대회 개최를 적극 검토 중"이라며 "이 대회를 계기로 예천을 명실상부한 활의 고장으로 전국에 알릴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예천군은 2006년 9월 6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예천읍 왕신리에 각궁제작체험관을 완공, 이곳에 각궁 제작 명인을 입주시켜 관광객들과 군민들에게 전통 활의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국궁을 전시 판매해 지역의 상징인 활을 이용한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醴泉인터넷放送 2007년 12월 3일)
김수남(第15回 아시아 洋弓選手權大會 參加 監督 및 選手 激勵) [記事] : 김수남 예천군수는 2007년 9월 15일 중국으로 출국, 제15회 아시아양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예천군청 소속 여자대표팀 문형철 감독과 윤옥희 선수를 격려하고 동년 9월 19일 귀국했다. 이번 출국에는 예천군청 엄종호 문화관광과장과 경북도양궁협회 부회장 5명, 예천군체육회 부회장 1명이 동행했으며, 공무원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자비를 들여 다녀왔다. 한편 제15회 아시아양궁선수권대회는 동년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중국 시안에서 아시아 19개국 2백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됐다.(醴泉新聞 2007년 09월 20일 14:18:25)
김수남(아시아써키트 洋弓大會 參席 選手團 激勵) [記事] : 김수남 예천군수는 2009 아시아써키트 양궁 제3차대회에 참가하는 예천군청 양궁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경북양궁협회 및 한국중고양궁연맹 부회장단 10여 명과 함께 2009년 7월 4일 오전 말레이시아로 출국, 오는 9일 귀국할 예정이다.(慶北日報 2009-07-06)
김수남(郡廳 實業洋弓팀 激勵) [記事] : 김수남 예천군수는 2009년 7월 14일 오전 9시 군수실에서 제3회 아시아양궁그랑프리대회에서 전 종목 우승을 달성하고 귀국한 예천군청 실업양궁팀의 예방을 받고 선수들을 축하ㆍ격려하고, 오전 11시 상주시청에서 열린 경북도 시장ㆍ군수협의회에 참석하여 당면 현안사항에 대해 협의했다.(新亞日報 2009년 07월 14일 (화) 15: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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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녕(金水寧) : 1971- , 예천군청 양궁팀 여자선수단원이다. 세례명 막달레나,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81년 체육 교사의 권유로 활을 잡은 뒤 천부적 능력을 과시, 일찌감치 한국 양궁의 차세대 주역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에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2관왕), 국내 최초로 올림픽 2관왕에 오르며 명실 공히 세계 '양궁 여왕' 의 입지를 다졌다. 1988년 10월 국민훈장 청룡장 수상, 1989년 1월 백상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 수상, 동년 7월 제35회 세계선수권대회 개인ㆍ종합 2관왕, 동년 10월 대한민국체육상 경기부문 수상, 1990년 10월 제11회 아시아경기대회 개인 3위·단체 1위, 1991년 8월 제36회 세계선수권대회 개인ㆍ단체 2관왕, 1992년 7월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 개인 2위ㆍ단체 1위이다. 1993년 은퇴 후 고교 체육교사 이기영의 아내로 평범한 주부로 6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1999년 10월 돌연 복귀를 선언 8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팀이 예선 탈락의 충격에 빠지자 협회로부터 긴급 복귀 요청을 받아 2000년 1월 예천군청팀에 소속되면서 3개월의 비밀 훈련 끝에 1차 대표선발전부터 꾸준한 훈련을 해왔다. 2000년 9월 제27회 시드니올림픽 개인전에서는 금과 은을 양보하고 자신은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단체전에서는 금메달이다. 두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역시 하늘이 내린 신궁이었다. 은퇴와 복귀, 그리고 시드니의 영광을 안은 김수녕 그녀가 자랑스럽다.(醴泉郡民新聞 2000.9.25, 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김수녕(돌아온 神弓) [記事] : 세계 양궁계를 평정하고 7년 전 은퇴했던 김수녕(29․예천군청)이 선수로 복귀, 2000년 3월 29일 예천에서 열린 전국 남녀 종별 양궁선수권 여자일반부에서 우승했다. 김수녕은 세계신기록만 21회 경신하는 화려한 선수의 길을 걷다가 93년 10월 은퇴했다. 청주여고 1학년 시절인 87년 첫 출전한 국제대회 프랑스오픈서 세계신기록(싱글 30m)을 세우며 데뷔한 뒤 88 서울올림픽 2관왕, 89, 91년 세계선수권 2연패, 92바르셀로나올림픽 단체전 금, 개인전 은메달 등 한국 양궁의 금자탑을 우뚝 세웠다. 그러다 고려대 동문 선배(이기영․체육교사)와 결혼, 1남 1녀의 어머니가 된 김수녕은 1999년 10월 대표선발 1차전을 통해 컴백했다. 한국 여자양궁이 1999년 세계대회 단체전에서 탈락, 위기의식을 느낀 협회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던 것. 김수녕이 다시 태극 마크를 달고ꡐ올림픽 히로인ꡑ이 될 수 있을지…. ꡒ아줌마 파이팅!ꡓ(조용준 記者 週刊東亞 第230號 2000.04.20)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1位로 選拔戰 通過) [TV放送] : 예천군청의 김수녕이 시드니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5차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습니다. 김수녕은 원주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부 경기에서 종합 점수 34점으로 청원군청의 최은정을 4점차로 제치고 1위로 6차 선발전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세계랭킹 1위인 한국토지공사의 이은경은 10위에 그쳐 탈락했습니다. 남자부에서는 울산남구청의 김청태가 1위,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2위로 6차 선발전에 진출했습니다.([스포츠] 정충희 記者 입력 시간 : 2000.05.24 (18:48))
김수녕(洋弓最終選拔戰 김수녕 첫 날 先頭) [TV放送] : 시드니 올림픽 양궁 대표최종 선발전 첫 날 경기에서 김수녕이 여자부 선두에 나섰습니다. 예천군청의 김수녕은 태릉에서 열린 6강 토너먼트에서 종합배점 7점으로 인천시청의 김남순과 경기체고의 윤미진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남자부에선 울산 남구청의 김청태가 종합배점 7점으로, 공동 2위에 오른 인천제철의 오교문과 예천군청의 장용호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습니다. 남녀 각 6명씩 출전한 최종선발전은 사흘간의 토너먼트와 이틀간의 기록경기 등 닷새간의 종합점수를 합산해 남녀 최종 3명씩의 대표선수를 선발합니다.([스포츠] 정재용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5 (18:34))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代表復歸 눈앞) [TV放送] : 돌아온 신궁 김수녕이 양궁 시드니 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이틀 연속 선두를 달리며 7년만의 국가대표 복귀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예천군청의 김수녕은 태릉에서 열린 대회 이틀째 6강 토너먼트에서 종합배점 13점으로 2위 김남순을 2.5점차로 제치고 이틀 연속 선두를 지켰습니다. 김수녕이 앞으로 남은 사흘간의 경기에서 최하위권으로 쳐지는 이변이 없는 한, 종합 3위까지 주어지는 대표 복귀는 확정적입니다. 남자부에선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종합배점 11.5점으로 김청태와 장용호를 제치고 선두에 나섰습니다.([스포츠] 정재용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6 (18:52))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3日째 先頭) [TV放送] : 시드니올림픽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예천군청의 김수녕이 종합배점 14점을 기록해 3일 연속 여자부 단독 선두를 지켰습니다. 남자부에선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종합배전 17.5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스포츠] 홍유표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7 (20:15))
김수녕(ꡒ洋弓은 集中力의 勝負… 또 한번 再起한 뒤 隱退ꡓ:ꡐ神弓ꡑ 김수녕) [記事] : 양정모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건국 후 첫 금메달을 땄을 때, 우리에게 올림픽 금메달의 가치는 이후 출생한 세대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것은 감격 그 자체였고 이제야 ꡐ국가ꡑ로서 인정받는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을 유치 후 엘리트스포츠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올림픽 금메달은 ꡐ레몬ꡑ처럼 흔하디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 숱한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중에서 하계올림픽에서 혼자 4개의 금메달을 딴 선수는 여자양궁의 김수녕(35)뿐이다. 88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이 된 김수녕은 4년 뒤 바르셀로나에서 개인 결승에선 선배 조윤정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단체전 금메달을 보탠 후 사대(射臺)을 떠났다. 하지만 김수녕은 99년 복귀,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국내 대표선발전을 거뜬히 통과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다시 단체전 금메달을 추가, 한국의 하계올림픽사상 최다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ꡐ독사ꡑ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전 종목 세계기록을 모조리 휩쓸었던 그녀를 2006년 7월 14일 경기 안양시 평촌 집 부근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장마가 쏟아지기 직전, 무척이나 후텁지근한 날씨 탓인지 그녀는 정성껏 한 화장 위로 흐르는 얼굴의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콕콕 찍어댔다. 결혼예물로 보이는 다이아 목걸이와 반지가 아니더라도 제법 굵어진 팔뚝에서 두 자녀를 둔 35세 주부의 관록이 묻어났다. 그녀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였다. 13년 전 막 은퇴한 그녀를 고향집이 있는 청주까지 찾아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ꡐ신궁ꡑ 김수녕을 있게 한 것은 초등학교 때 ꡐ우리 수녕이가 제일 잘 한다ꡑ는 체육 선생의 칭찬 때문이라고 했다. 우선 자녀를 키우면서 자신의 경험을 실천하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ꡒ아이고, 애 둘이랑 만날 ꡐ전쟁ꡑ해보세요. 어떻게 칭찬이 나오겠어요. 주로 구박하고 싸우고 하는 것이 ꡐ엄마ꡑ들 일이지. 웬만하면 잔소리 안 하려고 하지만 아님 하루 종일 게임이나 하려고 하는데.ꡓ다음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김수녕이 흘렸던 눈물의 진정한 의미였다. ꡒ그때의 눈물에는 아주 복잡한 의미가 있었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조윤정 선배와 벌인 결승전에서 져 은메달에 그친 속상함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그게 아니에요. 물론 나도 사람인 이상 ꡐ12발만 잘 쏘았다면 금메달인데…ꡑ 하는 후회나 섭섭함이 조금은 있었겠지요. 하지만 당시 올림픽에서 제 컨디션은 최악이었어요. 결승까지 오른 것조차가 ꡐ독사ꡑ가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또 그 대회가 사실상의 은퇴무대였기 때문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울음이 나왔던 것이 정확해요. 그런데 윤정 언니도 내가 금메달을 못 따 울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나 봐요. 나중에 윤정 언니가 은퇴한 후 나를 만나자 ꡐ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ꡑ고 하더군요. 그러면 됐지요.ꡓ태극마크를 처음 단 청주여고 1년 때 30m에서 첫 세계신기록을 세운 이후 김수녕은 국제양궁연맹(FIFA) 세계기록집을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했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양궁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 그래서 ꡑ독사ꡐ였다. ꡒ여자한테 좋은 별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활을 쏠 때만큼은 적합했던 별명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해요.ꡓ하지만 그런 김수녕도 과녁을 맞히지 못해 0점을 기록한 적이 가끔 있다. 89년 세계선수권 대표선발전에서는 1엔드 3발의 화살이 모두 0점 처리된 결정적인 실수도 했다. ꡒ당시는 30, 50, 60, 70m를 차례로 쏠 때인데 과녁을 옮기면서 조준기를 거기에 맞춰 조절하는 것을 나는 물론 코치님도 잊고 넘어갔어요. 한발씩 쏠 때마다 선수와 코치가 표적지를 망원경으로 확인하는데 그때는 뭐가 끼었는지, 옆 사대의 다른 선수 과녁을 둘 다 보고 있었는지 10점짜리에 3발이 모두 들어간 걸로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과녁으로 다가가 확인해 보니 한 발은 아예 없어졌고 두 발은 표적지에 있긴 한데 원 밖에 있더군요. 30점을 모두 날리면 사실 대표선발전에서는 치명적이었어요. 그런데 다음 선발전에서 이를 벌충해 간신히 4위로 태극마크를 단 적이 있어요.ꡓ그녀는 현역 때 최고 라이벌이 누구였는지 묻자 ꡐ없다ꡑ고 답한다. ꡒ연습 때는 다른 선수들보다 내가 못 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요. ꡐ대회 때 잘 쏘면 되지ꡑ 이렇게 편안하게 생각했고 실제로 대회에 나가면 내가 항상 이겼죠. 양궁은 집중력의 승부인데 선천적인지 몰라도 내가 집중력 하나는 끝내줬어요.ꡓ김수녕은 대학(고려대 체육학과)을 졸업하고 실업팀 선수생활을 하지 않고 은퇴한 유일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왜 실업팀을 가지 않고 은퇴했을까? ꡒ현역 때 각종 대회 포상금으로 1억 원 넘게 받았고 매달 연금도 100만 원이 나오기 때문에 특별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양궁이 지겹더라고요.ꡓ하지만 그녀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에 출전하며 다시 활을 잡았다. ꡒ결혼 후 살림하고 아이 키우며 몇 년을 정신없이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30대 이후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98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시 하자는 생각에 주위에 부탁을 넣고 다녔어요. 그런데 마침 둘째를 임신했고 이듬해 2월 출산하면서 다시 제자리걸음이 됐죠. 근데 제가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일치 양궁협회 부회장이 국산 활 메이커인 삼익의 제품 테스트와 홍보를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시 활을 잡게 됐고 남편의 적극적인 배려로 올림픽선발전까지 나가는 등 선수로 완전 복귀하게 됐지요.ꡓ아무리 신궁이었다 해도 준비과정 없이 6년 만에 복귀해 태극마크를 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국내 대표선발전 통과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ꡒ99년 여름 올림픽 선발전을 치르는데 그냥 활을 탁 놓고 나오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우선 주위의 격려였고 다음은 눈앞에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었죠. 당시 윤미진과 김남순을 제외하면 그리 힘든 상대가 없어서 적어도 3위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상대로 3위로 대표에 다시 선발돼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땄죠. 국제양궁연맹에서는 ꡐ신궁의 복귀ꡑ라며 국제연맹 차원에서 특별상을 준다고 하더니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ꡓ 김수녕은 올림픽 후 예천군청팀에 입단, 주부와 선수, 그리고 강사(2001년 한 학기동안 실기강사)로 1인3역의 힘든 생활을 했고 신궁의 위엄을 지키려 무리하게 연습한 끝에 몸에 이상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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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