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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790) : 예천세계활축제(42) 무학정(2)-무형문화재-문형철-박극환(附 예천읍 대심리 출신 장기웅, 시집 세 권 펴내...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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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정(醴泉南本里 武學亭) : *위치 :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 176-1, *연대 : 1961년, *규모 : ‘ㅁ'자형 현대식 건물 1동/ 무학정은 예천읍 남본2리에 있으며, 국궁술(國弓術)을 연마하는 사정(射亭)으로 남산 중턱에 있다. 무학정은 원래 남본1리 한천변에 무학당(武學堂)이란 이름으로 세워졌으나 19세기 말에 무너졌다. 정자를 무학(武學)'이라고 편액한 것은 활쏘기는 육예(六藝-禮,樂,射,御,書,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934년 예천읍 대심3리에 재건하여 ‘무학정’이라 하였으며, 1961년 남산공원으로 이건하였다. 무학정의 운영은 회원제로 유지되며, 조직은 회장에 해당하는 사두(射頭) 1명, 부회장에 해당하는 부사두(副射頭) 1명, 총무이자 사무국 역할을 하는 국장 1명, 이사 및 회장단 7명, 감사 1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회원은 40명 정도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무학정에서는 궁도체험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연간 수시로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국궁 연마는 사범이 담당하며, 궁도의 예를 익히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한다. 무학정이 있는 남본리는 예천읍의 중심을 흐르는 한천 남측에 있으며, 군청이 있는 북측 의 노상리와 무학정이 있는 남본리는 중앙로가 연결하고 있다. 무학정은 중앙로 우측 산 정상에 있으며, 중앙로에서 남산공원으로 난 샛길을 따라 접근한다. 무학정은 산 중턱에 터를 마련하고 동북쪽 과녁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무학정은 ‘ㅁ'자형 현대식 건물 1동과 맞은 편 산자락에 있는 과녁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학정은 현재 담장 없이 사방으로 열려 있으며, 우측과 정면에는 남산공원길이 지나고 있으며 배면과 좌측은 야산을 면하고 있다. ‘ㅁ'자형 현대식 건물은 3개의 영역으로 나눈다. 첫째, 조적조의 사무실 및 관리 공간, 둘째, 대기 공간, 셋째 사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 공간과 사대 공간은 외부로 열려 있으며, 중간부분의 대기 공간의 평지붕이 가장 높다. 이 건물은 콘크리트 구조로 전면 4칸이며, 중앙간 조적조 벽면에는 ’正門‘과 '武學亭’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 앞에는 보드블럭을 깔은 마당이 있고, 맞은 편 산자락에는 과녁 3개가 있다. 무학정은 여러 차례 이건과 현대식 건축물로 중건하면서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무학정은 오늘날에 맞는 활용계획을 세운 후, 현재와 같이 공공건축 공간을 사용한다면 그 가치는 지속될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201-202쪽)
무학정(醴泉郡守盃 慶北男女 弓道大會) [記事] : 제7회 예천군수배 경북 남녀 궁도대회가 2013년 10월 19일 남산 무학정에서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경북도내 26개 정에서 3백여 명의 임원 및 선수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으며, 관내 각급 기관단체장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참가 선수들은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며, 옛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충효의 정신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대회를 주관한 예천 무학정(사두 권택상)에서는 예천우수농산물로 따스한 정을 나눴다.(醴泉新聞 2013년 10월 22일 (화) 18: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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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文化財] : 국가에서 지정한 예천군내에 소재한 무형문화재로, 47호 궁시장(弓矢匠) 권영록(權寧錄, 1971.9.13 指定)이 있었다.
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無形文化財指定調査報告書) [冊] : 경상북도 편저로, 156쪽, 4ㆍ6배판, 1981년 12월 대구 경상북도에서 출판하였다. 목차는, 1) 안동 저전동(苧田洞)의 농요, 2) 영해 별신(別神)굿놀이, 3) 청도 차산농악(車山農樂), 4) 예천 통명농요, 5) 예천 궁장(弓匠)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國史編纂委員會 홈페이지 2003)
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無形文化財指定調査報告書) : 저자: 慶尙北道 편/ 날짜: 1981/ 발행자: 慶尙北道/ 분류: 연구자료 > 한국사연구휘보/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연구휘보/ 한국사연구휘보 제36호/ 제목 無形文化財指定調査報告書/ 저자/편자 慶尙北道 편/ 구분 저서/ 발행처 慶尙北道 발행지역 大邱 발행일 1981/ 판형 4·6배판/ 목차/ 1. 安東苧田洞 農謠/ 2. 寧海別神굿놀이/ 3. 淸道車山農樂/ 4. 醴泉通明農謠/ 5. 醴泉弓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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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철(文亨哲) : 1958- , 1977년 3월 삼익악기 양궁선수단 입단, 1982년 1월 서울우유양궁선수단 입단, 1984년부터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코치 부임, 1989년 2월 국가대표 코치 부임, 1990년 2월 체육포장 수상, 1990년부터 한국실업양궁연맹 이사, 1991년부터 경북양궁협회 전무이사, 1997년부터 대한양궁협회 기록이사이다. 2000년 2월 대한양궁협회 지도상 수상, 동년 11월 경북지사 표창 수상(2회), 2001년 2월 대한체육회 지도상 수상이다.(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문형철(洋弓 國家代表 코칭스태프 交替) [記事] : 대한양궁협회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대비해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를 전면 교체했다. 남자 감독에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국가대표 코치를 맡았던 장영술 국군체육부대 감독이 선임됐고, 남자 코치는 전인수 울산 남구청 감독이 뽑혔다. 여자 감독은 2004년부터 1년간 국가대표 남자 감독을 역임했던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여자 코치는 구자청 현대모비스 감독이 맡았다. 협회는 "과거 지도자 경력 및 국내외 대회를 통해 검증받은 코칭스태프를 선임, 베이징올림픽에 대비해 의욕적인 훈련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동경 記者 聯合뉴스 2007년 1월 19일 (금) 11:38)
문형철(新任 문형철 國家代表 女子洋弓選手團 監督) [記事] :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문형철(50) 감독이 2007년 1월 19일자로 국가대표 여자양궁선수단 감독으로 발탁됐다. 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국가대표 여자양궁선수단을 지도한다. 문형철 감독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부안농고를 졸업했으며, 지난 77년 삼익악기 선수로 입단, 84년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코치로 부임했다. 89년, 2001년도 국가대표 코치, 2004년 국가대표 남자양궁선수단 감독을 역임했으며, 대한양궁협회 기록이사, 경북양궁협회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또한 그동안 양궁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90년 체육포상, 대한양궁협회 지도자상, 경북지사 표창, 대한체육회 지도자상, 2006년 경북최고체육상 지도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전미연(44) 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醴泉新聞 2007년 01월 25일 12:03:30)
문형철(ꡒ選手들 흔들릴라…ꡓ 癌 治療 미룬 女洋弓 문형철 監督) [記事] : ꡒ무거운 짐 하나를 덜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개인전이 남아 있으니 축배는 나중에 들겠다.ꡓ 베이징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의 6연속 우승을 이끈 문형철(50) 감독. 그는 2008년 8월 10일 끝난 중국과의 결승에서 승리를 거둔 뒤 주현정(26), 윤옥희(23), 박성현(25)과 차례로 포옹하며 환하게 웃었다. 얼마 만에 지어보는 미소였을까. 2007년 1월 올림픽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ꡐ여자 양궁은 금메달 보증수표ꡑ라는 주위의 기대가 워낙 컸기에 꼭 해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다. 만약 실패할 경우 돌아올 따가운 시선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런 그에게 2007년 12월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태릉선수촌에서 신체검사를 받은 뒤 ꡐ갑상샘암 3기ꡑ 판정을 받았다. 평소 담배도 거의 피우지 않고 건강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에 ꡒ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ꡓ라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다행히 잘 치료하면 괜찮아질 것이란 소견을 듣고 2008년 1월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한 뒤 몇 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병원을 오가면서도 문 감독의 머릿속은 온통 올림픽을 향해 있었다. ꡒ한국 양궁의 금메달 행진을 계승해야 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남은 항암 치료는 올림픽이 끝난 뒤로 미뤘습니다.ꡓ 매일 호르몬 성분의 약과 건강식품을 복용하고 있는 문 감독은 주위에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올림픽 준비에만 매달려 왔다. 그는 동료 지도자, 대한양궁협회와의 협력 속에 베이징 양궁장과 흡사하게 조성한 경기장에서의 모의 테스트, 소음과 미디어 대비 훈련 등을 통해 실전 감각을 끌어올렸다. 팀워크가 생명인 단체전에서 선수들이 최상의 호흡을 맞추는 데도 공을 들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몰려들 때는 특정 선수에게만 집중돼 다른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모든 선수가 번갈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단체전에서 세 선수의 발사 순서도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거쳐 선수들의 성격과 기량에 맞춘 최적의 조합을 마련했다. 당초 경험이 많은 박성현을 1번에, 주현정을 3번에 배치하기도 했으나 4월 월드컵에서 중국에 지면서 둘을 맞바꿔 효과를 봤다. 슈팅 타임이 빠른 주현정은 1번으로 나서 다른 선수들이 여유 있게 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고 마지막 주자로 나선 박성현은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으로 승리를 설거지했다. 2008년 7월 ꡒ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스트레스 강도가 심해진다. 잠도 잘 안 온다.ꡓ며 말 못할 고충을 털어놓은 그는 오히려 어린 선수들 앞에서는 ꡒ우리는 세계 최강이다. 평소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즐기면서 준비하자ꡓ고 다독거렸다.
영광스러운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지도자 인생의 화려한 꽃을 피웠지만 가족에게는 미안할 때가 많다. 전북 부안군이 고향인 문 감독은 부안농림고를 거쳐 삼익악기, 서울우유 등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이제는 ꡐ제2의 고향ꡑ이 된 경북 예천에서 1983년부터 지도자로 둥지를 틀었다. 예천군청팀을 이끌던 그는 군청 공무원이던 부인 전미연(46) 씨를 만나 1985년 영호남 커플로 결혼한 뒤 아직도 예천군청 관사에서 생활하며 소속팀 선수들과도 동고동락하고 있다. 선수 생활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1989년 처음 대표팀 코치가 된 뒤 지도자로서는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2녀 1남을 둔 문 감독의 생일은 국내외에서 양궁대회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음력 9월이기에 집에서 미역국을 먹은 경우는 결혼 후 23년 동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게 부인의 얘기. 대표팀 감독이 된 지난 20개월 동안 집에서 잠을 잔 시간은 한 달도 채 안된다고.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딴 뒤 집에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눈 문 감독은 ꡒ가장으로서는 낙제점이지만 잘 이해해 줘 고맙다. 그 덕분에 이런 자리에 설 수 있었다.ꡓ며 활짝 웃었다.(김종석 記者 東亞日報 2008-08-12)
문형철("金은 놓쳤지만 그래도 韓國 洋弓, 世界 最高!" : 문형철 洋弓 女子 國家代表 監督) [記事] : 문형철 양궁 여자 국가대표 감독. "비록 이번 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놓쳤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한국 양궁이 세계 최고인 것은 분명합니다." 베이징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의 6연속 우승을 이끈 문형철(50) 감독이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오래 만에 자신이 맡고 있는 예천군청을 찾아 개인전 금메달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 감독은 2007년 1월 '금메달을 따면 본전, 못 따면 역적'이라는 양궁 여자 대표팀 감독을 맡고 동년 12월 올림픽을 앞두고 양궁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일제히 받은 신체검사에서 갑상선 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까지 받은 뒤, 매일 호르몬 성분의 약과 건강식품을 복용하면서도 주위에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를 믿고 대표팀의 지휘봉을 맡겨준 대한양궁협회와 오로지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한 일념 하나로 군부대 훈련, 번지점프 등을 말없이 수행해 준 양궁대표팀 윤옥희(23)나 박성현(25), 주현정(26) 선수에게 실망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치료는 올림픽 이후로 미뤘다. 결국 2008년 8월 10일 베이징올림픽 그린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여자 단체전 중국과의 결승에서 승리를 거둔 뒤 주현정(26), 윤옥희(23), 박성현(25) 선수들을 포옹하며 그동안의 고통을 말끔히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전북 부안군이 고향인 문 감독은 부안농림고 1학년때 처음 활을 잡고 양궁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삼익악기, 서울우유 등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1980년 수원 연무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된 예천에서 1984년 1월부터 지금가지 25년째 예천군청 양궁팀을 맡으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첫 양궁 지도자 생활을 했던 수원 연무초등학교에서 전 국가대표 이은경 오교문 선수를 지도하고 예천군청 양궁팀을 맡아서도 김수녕 호진수는 물론 장용호와 윤옥희 선수까지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고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이번 베이징까지 김수녕과 장용호 윤옥희 선수 등 연속 3회 자신이 맡고 있던 팀 소속 선수를 올림픽에 출전시켜 금메달을 따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예천군청팀 감독 생활을 하면서 군청 공무원이던 부인 전미연(46) 씨를 만나 1985년 영호남 커플로 결혼한 뒤 2녀 1남을 둔 문 감독은 "항상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그래도 자식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해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8-08-29)
문형철(`올림픽 女子 洋弓 團體戰 6連覇 神話 이끌어' : 女子 洋弓 國家代表팀 문형철(醴泉郡廳) 監督, **癌 治療 미루고 끝까지 指揮棒 잡아, **醴泉은 第2의 故鄕 `郡民들 聲援에 感謝') [記事] : 문형철(51․예천군청) 여자 양궁 국가대표팀 감독. 그는 생명이 걸린 암 치료를 미루고 베이징올림픽에 출전, 여자 단체전 6연패 신화를 이끌어 국민들의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문 감독은 2007년 12월 올림픽을 앞두고 양궁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일제히 받은 신체검사에서 갑상선암 선고를 받았다. 문 감독은 치료의 최대 적이 스트레스와 과로란 걸 알면서도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2008년 1월 수술을 받고 4월엔 1차 항암치료도 받았다. 나머지 방사선 동위원소 치료는 올림픽 이후로 미뤘다. 문형철 감독은 이번 올림픽 양궁경기에서 중국 응원단의 방해가 아주 교묘했다고 떠올렸다. ꡒ화살을 쏘기 1~2초 전 갑자기 호루라기를 부는 것으로 보아 선수 출신 관람객이 관중석에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 방해를 할 수 없지요.ꡓ 문 감독은 단체전, 개인전 모두 금메달을 목표로 완벽하게 준비했지만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개인전에서 은메달, 동메달에 그친 게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문형철 감독이 예천과 인연을 맺은 건 1984년. 이병탁(현 경북양궁협회장) 회장의 주선으로 예천군청 실업팀 코치로 부임했다. 그때 당시엔 2~3년 정도 경험을 쌓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병탁 회장을 비롯한 예천체육인들이 보여준 끈끈한 정과 도움이 문 감독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다 1985년 예천군청에 근무하던 전미연(48) 씨를 만나 결혼,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 예천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실력 못잖게 인성을 강조한다. 인간 됨됨이를 갖춘 선수라야 생명력이 길고 은퇴 후 사회생활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ꡒ올림픽에 3회 연속으로 출전, 금메달을 딴 건 예천군청팀 선수들뿐입니다. 우리나라 양궁의 중심 아니, 세계 양궁의 중심에 예천이 우뚝 서 있는 셈이지요.ꡓ 문 감독은 ꡐ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거둔 좋은 성적을 발판으로 다른 지역 팀으로 옮기는 게 아니냐ꡑ는 소문에 대해 ꡒ절대 그런 일 없다ꡓ며 한 마디로 일축했다. ꡒ지금보다 몇 배 더 좋은 조건의 제의가 오더라도 제2의 고향인 예천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예천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도움을 받았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밑거름이 되었으니까요.ꡓ 문 감독은 ꡒ예천체육인들을 비롯한 군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성원이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힘이 되었다ꡓ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편 문형철 감독은 조만간 올림픽 이후로 미뤄뒀던 2차 항암치료를 받을 예정이다.(권오근 編輯局長 醴泉新聞 2008년 09월 03일 03:38:42)
문형철(문형철 洋弓監督 第14回 코카콜라體育大賞 優秀指導者賞 受賞) [記事] : 예천군청 양궁단 문형철 감독이 제14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지도자상 대상자로 선정되어 2009년 2월 1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수상하게 되었다. 한국코카콜라가 스포츠조선과 함께 한국 스포츠 발전 및 아마추어 스포츠 육성을 위해 시상하는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지도자상에 뽑힌 문형철 감독은 예천군청 양궁감독으로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한 우수 조련사로 정평이 나 있는 세계적인 양궁감독이다. 특히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시 국가대표 양궁감독을 맡아 여자양궁을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 동메달을 획득하는 수훈을 세운 우수지도자로 인정을 받아 금번 제14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지도자로 선정이 되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최우수선수상, 우수선수상, 신인상 등 8개 부문에 걸쳐 총 11명이 수상한다.(황성한 記者 醴泉인터넷放送 2009-02-12 오전 10:47:48)
문형철(코카콜라 體育大賞 이모저모) [記事] : 우수지도자상을 받은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이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훨씬 밝아진 안색으로 눈길을 끌었다. 갑상샘암 판정을 받고도 베이징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문 감독은 "올림픽 때는 상태가 나빴지만, 이제 치료는 끝났고 관리만 하면 되는 단계"라고 말했다. "치료를 할 때는 음식을 조절해야 했지만 이제는 아니니까 행사장 음식을 마음껏 즐기겠다."고 웃기도.(스포츠朝鮮 2009-02-17 18:17)
문형철(문형철, 大韓民國體育賞 指導賞 受賞者 選定) [記事] : ‘피겨여왕’ 김연아(19·고려대)가 제47회 대한민국체육상 경기분야 수상자로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9년 10월 14일 김연아를 비롯한 7개 분야 수상자를 발표했다. 김연아는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207.71)을 돌파, 세계여자 피겨 스케이트사에 한 획을 긋는 등 한국 피겨 스케이트 발전에 큰 업적을 세운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의환 교수(용인대 유도학과)는 277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해 스포츠발전에 연구상을 수상했다. 문형철 예천군청 양궁팀 감독은 지도상 수상자로 뽑혔다. 극복분야에서는 정금종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특수체육상에는 사회복지법인 무궁화동산, 진흥상에는 강광 정읍시장, 공로상에는 김영만 전주비전대학 총장이 각각 선정됐다.(京鄕新聞 2009-10-15)
문형철(△문형철(醴泉郡廳 洋弓監督) 氏 母親喪) [記事] : △문형철(예천군청 양궁감독) 씨 모친상= 빈소: 전북 부안군 효병원 장례식장 4분향소, 발인:16일(慶北每日新聞 2012.03.15)
문형철 : 예천군청 양궁 감독/ 성명 문형철(文亨哲) 감독 생년월일 58. 09. 19 E-MAIL moon6060@hanmail.net/ 주요경력/ 1977. 03 삼익악기 양궁선수단 입단/ 1982. 01 서울우유 양궁선수단 입단/ 1984. ~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코치 부임/ 1989. 02 국가대표 코치 부임/ 1990. 02 체육표창 수상/ 1990. ~ 한국실업 양궁연맹 이사/ 1991. ~ 경북양궁협회 전무이사/ 1997. ~ 대한양궁협회 기록이사/ 2000. 02 대한양궁협회 지도상 수상/ 2000. 11 경북지사 표창수상(2회)/ 2001. 02 대한체육회 지도상 수상/ 2005. 01 체육훈장 거상장 수상/ 2006. 02 경북 최고 체육상 수상(지도자상)/ 2007. 01 국가대표 감독 부임/ 2008. 07 대한체육회장 공로패 수상/ 2008. 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양궁 대표팀 감독/ 2008. 11 경북도민상 특별상(문화체육부문)/ 2009. 02 제14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수상(우수지도자상)/ 2009. 10 제47회 대한민국 체육상 수상(지도상)/ 2010. 12 제49회 대한민국 체육상 수상(체육훈장 청룡장 수상)(醴泉郡廳홈페이지 2012.12.31)
문형철과 김성훈(醴泉郡廳 實業洋弓팀 문형철 監督, 體育勳章 靑龍章 受賞 : 醴泉 出身 尙武팀 김성훈 監督은 猛虎章 受賞) [記事] :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문형철 감독이 체육의 날을 맞아 2011년 10월 14일 서울롯데호텔에서 열린 2011체육발전 유공자포상 전수식 및 제49회 대한민국체육상 시상식에서 체육발전유공 1등급 훈장인 ‘청룡장’을 받았다. 체육훈장은 우리나라의 체육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체육 위상 제고와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주는 훈장으로 5등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1등급으로 청룡장, 2등급으로 맹호장, 3등급으로 거상장, 4등급으로 백마장, 5등급으로 기린장이 있다. 문형철 감독은 전북 무안군 출신으로 부안 농림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4년부터 경북 예천군청 양궁 팀을 맡아 오고 있다. 2008년 국가대표 양궁 감독에 발탁되어 탁월한 지도력으로 세계 최고의 양궁 선수를 키우는 등 한국양궁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문 감독은 예천군청 양궁실업팀 감독을 맡은 이래 전국양궁대회와 국제 양궁대회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장용호·김수녕 선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단체 금메달(장용호 선수), 제43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단체 금메달과 개인 동메달(최원종 선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체 금메달과 개인 동메달(윤옥희 선수),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의 단체 금메달과 개인 금메달(윤옥희 선수) 획득 등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의 양궁 팀을 만들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문 감독은 갑상선 암이 발병해 치료가 시급했다. 그러나 그는 올림픽의 중요성과 대표 선수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암 발병 사실과 항암 치료를 올림픽 뒤로 미루고 선수 지도에 매진해 올림픽 6회 연속 우승을 거뒀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문 감독은 “청룡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상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 양궁 발전과 예천군청 양궁실업팀의 성적 향상을 위해 혼신을 다 할 계획”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예천 출신으로 예천군청 여자 양궁코치를 거쳐 현재 국군체육부대인 상무 양궁선수단을 이끌고 있는 김성훈 감독이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醴泉뉴스 2011년 10월 17일)
문형철과 김시한(醴泉郡廳 문형철 監督, 김시한 慶北洋弓協會 競技理事 世界洋弓大會 任員參與) [記事] : 경북양궁협회 문형철 전무이사(예천군청 양궁감독)와 김시한 경기이사는 2009년 9월 1일~9일(9일간)까지 울산 문수국제양궁경기장에서 개최되는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경기임원으로 참여하기 위해 2009년 8월 25일 울산 현지로 떠났다. 제45회 세계양궁경기대회에는 70여 개국에서 1천여 명의 임원 및 선수들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양궁대회로 4차 양궁 월드컵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예천군청 소속 윤옥희 선수가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선전이 기대되고 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08-25 오전 8: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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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극환(朴極煥) : 개포면 이사리 출신, 63년 예천중 졸업, 66년 전남 광주에서 매형 권태은(權泰殷)에게 사사, 75년 경주시 인왕동으로 독립하여 활동하고 있는 각궁(角弓) 제작자이다. 87년 부산 MBC 궁도 소개, 93년 대한궁도협회공인 1급 심판자격 취득, 92-99년 경북궁도협회 경기이사, 95-97년 경주시 궁도협회 호림정 부회장, 95년 울산MBC 각궁 제작과정 소개, 96년 인간문화재 공예작품 특별전, 96년 미국 궁도 잡지에 소개, 미국 미주리주립대에 활 비디오 테이프 기증, 96년 2여 년에 걸쳐 활 제작 전과정 비디오 제작, 96년 SBS 특집 '출발 모닝와이드'에 소개, 96년 제17회 신라미술 대전 출품, 96년 제16회 대구공예대전 출품, 96년 경주체육50년사(궁도부분) 집필, 97년 활제작 신비법 발간, 97년 사단법인 중요무형문화제 기능보존협회 회원이다. 95년 제20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수상, 96년 제21회 전승공예대전 입선 등 궁도대회 경북협회장기 외 3회 1위 입상, 96년 우즈베키스탄 문화성 초청전 감사장을 받았다. 10여 차례에 걸쳐 방송과 신문 보도, 토마스 두버나이씨의 미국 궁도잡지와 인터넷에 소개되어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그가 만든 활의 장점은 심을 곱게 찌고 얇게 여러 번 붙혀져 장심(長芯)이 완실(完實)하여 견고성과 장력(張力)이 뛰어나다. 지금까지 2,500여 장을 만들어 전국 각지에서 사용하고 있다.(박극환 홈페이지 1999, 인터넷 야후 2001)
박극환(朴極煥) : 개포면 이사리 출신, 63년 예천중 졸업, 66년 전남 광주에서 매형 권태은(權泰殷)에게 사사, 75년 경주시 인왕동으로 독립하여 활동하고 있는 각궁(角弓) 제작자이다. 87년 부산 MBC 궁도 소개, 93년 대한궁도협회공인 1급 심판자격 취득, 92-99년 경북궁도협회 경기이사, 95-97년 경주시 궁도협회 호림정 부회장, 95년 울산MBC 각궁 제작과정 소개, 96년 인간문화재 공예작품 특별전, 96년 미국 궁도 잡지에 소개, 미국 미주리주립대에 활 비디오 테이프 기증, 96년 2여 년에 걸쳐 활 제작 전 과정 비디오 제작, 96년 SBS 특집 '출발 모닝와이드'에 소개, 96년 제17회 신라미술 대전 출품, 96년 제16회 대구공예대전 출품, 96년 경주체육50년사(궁도부분) 집필, 97년 활 제작 신비법 발간, 97년 사단법인 중요무형문화제 기능보존협회 회원이다. 95년 제20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수상, 96년 제21회 전승공예대전 입선 등 궁도대회 경북협회장기 외 3회 1위 입상, 96년 우즈베키스탄 문화성 초청전 감사장을 받았다. 10여 차례에 걸쳐 방송과 신문 보도, 토마스 두버나이 씨의 미국 궁도잡지와 인터넷에 소개되어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그가 만든 활의 장점은 심을 곱게 찌고 얇게 여러 번 붙혀져 장심(長芯)이 완실(完實)하여 견고성과 장력(張力)이 뛰어나다. 지금까지 2,500여 장을 만들어 전국 각지에서 사용하고 있다.(박극환 홈페이지 1999, 인터넷 야후 2001)
박극환 : 연혁(경주호림정)/... 具賢錫. 趙淵夏. 白吉成. 崔明權. 白水浩. 孫鉉洛. 鄭昌鎬. 유만수. 柳元順. 尹基庸. 沈張植. 黃能坤 1970년 朴極煥(1975년 전입) 崔在永(1999년 전입) 1976년 沈張植. 李昌勳 曺喜大. 金河悳. 崔金童(1981년 전입) 1979년 沈壽澤.../ //blog.naver.com(daum 2010)
박극환 : 곽은경: (郭應京)본적: 경남 함안군 여항면 206번지/ 공무원 경주시 성건동/ 류용도 : (柳 龍道) 雲泉 경주시 용강동 상리/ 박극환 : ( 朴極煥) 忠軒 직장 경주궁 제작(활을 만드는 사람) 경주시 동천동/ 박동섭 : (朴東燮.../ //goongdo.or.kr(daum 2010)
박극환 : 2003년, 2004년 호림정 임원소개/ 第19代 射頭에는 현 松江 尹儀洪 사두님을 회원전원 만장일치로 추대하였고 副射頭에는 小塘 鄭恒吉, 忠軒 朴極煥 현 부사두님이 유임 監事에는 靑山 李永雨, 仁堂 朴容學 師範에는 德山 朴東燮, 漢昱 沈進輔 명궁이 유임 理事에는.../ //goongdo.or.kr(daum 2010)
박극환 : <제22회 전승공예대전 입선자 명단>/ 1997.08.25 (월) 오후 12:01/ ...申淳昇 金海翼 崔漢植 劉炳豪 柳基靖 林在暎 柳東文 廉鍾貴 申恩子 < 피모각골 > 金春日 權五德 柳弼茂 鄭翰郁 朴極煥 梁珍淑 池慧羅 梁花玉 裵昌壽 < 단청.불화 > 梁善姬 羅惠安 文鍾任 金昌順 洪英豪 元東春 洪鍾日 < 악 기.../ 연합뉴스 | 미디어다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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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읍 대심리 출신 장기웅, 시집 세 권 펴내...축하합니다.
장기웅(張基雄 博士 詩集 세 卷 펴내) [記事] : ‘겨레의 피압박 광복 시키려/ 영육의 자리 벗어나 일신을 던져/ 청춘을 불사른 성암 장윤덕 의병대장/ 저를 있게 한 할아버지시여!’(‘조국을 빛낸 성좌‘ 중에서) 예천읍 태생의 장기웅(76) 박사가 시집 3권을 동시에 펴냈다. 할아버지인 장윤덕 의병장을 그리워하며 쓴 ’조국을 빛낸 성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어머니 정감어린 향기‘, 삶의 성찰과 감성이 돋보이는 ’물꽃이 세월에 애원한 들‘ 등 세 권이다. 장 시인은 “지난 날 되새겨 보며 느낀 향수와 애환을 세 권의 시집으로 분류하여 담아내고 엮어보았다”고 밝혔다. 포스택 명예교수인 김원중 한국문인협회 고문은 축간사를 통해 “시 내용에도 내재된 다양한 소양을 풀어내어 접목시킨 건축사와 철학박사답게 건축, 주역, 음악, 스포츠, 사랑의 정결, 시조 등을 자연스럽게 매치시켜 다재다능하게 쓴 것이 돋보인다.”고 장 시인의 시집을 높게 평했다. 장기웅 박사는 영남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대구한의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건축사무소 대우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홍익출판사 펴냄, 각 권 1만원(醴泉新聞 20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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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