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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865) : 박심문(2)(附 용문면 출신 고윤환 문경시장, 9일 좋은 자치단체장 선정...축하합니다/은풍골사과영농조합법인, 24일 탑프로젝트 종합평가 우수상...축하합니다/예천군여성단체협의회, 26일 도평가 우수상...축하합니다/이태주 부국농원대표, 19일 도지사 표창...축하합니다/개포면 출신 윤경원, 박사 학위 취득...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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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문 [記事] : 세조실록 2권/ 세조 1년(1455 을해 / 명 경태(景泰) 6년) 12월 27일(무진) 3번째 기사/ 의정부에 전지하여 연창위 안맹담 등을 원종공신에 녹훈하다/ 의정부에 전지(傳旨)하기를, “...판관 박진(朴振)․부사정 이연기(李衍基)․사직 조원립(趙元立)․서령(署令) 연비(延庇)․현감 홍보(洪寶)․판관 복오(卜吾)․감찰 유쟁(柳諍)․감정(監正) 이효신(李孝信)․사예(司藝) 남양덕(南陽德)․정랑 정지하(鄭之夏)․판관 권맹정(權孟貞)․정랑 한부(韓?)․감찰 김자행(金自行)․교리 박심문(朴審問)․감찰 이흥손(李興孫)․정언(正言)․허추(許錘)․행 사정(行司正) 김윤선(金允善)...․부급사(副給事) 김검송(金檢松) 등은 3등에 녹(錄)한다.ꡓ하였다. 드디어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ꡒ공(功)을 기록하고 상(賞)을 주는 것은 나라의 아름다운 법이다. 내가 부족한 덕(德)으로 외람되게 대위(大位)663) 에 앉았는데, 잠저(潛邸)664) 에서의 어려울 때를 회고하니, 덕이 같은 신하들이 전후좌우에서 과인을 보호하였기 때문이다. 혹은 나의 동렬(同列)로서, 혹은 나의 요좌(僚佐)로서 혹은 가까운 친척으로서 혹은 오래 수종(隨從)하던 사람으로서, 혹은 내가 중국에 갈 때에 발섭(跋涉)665) 의 노고를 함께 하였고, 혹은 정난(靖難)에 참여하여 방위(防衛)에 힘쓰고, 아래로 복예(僕隷)에 이르기까지 힘을 다하였으니, 모두 원종(原從)의 공(功)이 있어서 오늘의 아름다움에 이르렀으니, 내가 감히 잊겠는가? 마땅히 먼저 포상(褒賞)하는 법을 보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아니하는 의리를 굳게 하려고 한다. 너희 의정부에서는 나의 지극한 마음을 본받아서 마땅히 빨리 거행할 것이다. 1등에게는 각각 1자급(資級)666) 를 더하여 주고, 자손은 음직(蔭職)을 받게 하며 후세에까지 유죄(宥罪)667) 하고 부모에게는 작(爵)을 봉(封)하고,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散官)668) 1자급을 더하여 주라. 2등에게는 각각 1자급을 더해 주고 자손을 음직을 받게 하고, 후세에까지 유죄(宥罪)하고,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 1자급(資級)을 더하여 준다. 그 가운데 자손이 없는 자에게는 형제․사위․조카 중에서 자원에 따라 산관 1자급을 더하여 준다. 3등에게는 각각 1자급을 더해 주고, 자손은 음직을 받고 후세에까지 유죄(宥罪)한다. 공신(功臣) 가운데 통정대부(通政大夫)669) 이상은 자손․형제․생질(甥姪)670) ․사위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散官) 1자급(資級)을 더하여 주고, 죽은 자에게는 각각 본등(本等)에 의하여 시행하고 1자급(資級)을 추증(追贈)한다. 죄를 범하여 산관이 된 자는 본품(本品)으로 서용(敍用)하고 상중(喪中)에 있는 자와 연고가 없이 산관이 된 자는 1자급을 더하여 주어 서용(敍用)하며, 영구히 서용하지 못하게 된 자에게는 벼슬길에 통함을 허락한다. 고신(告身)을 거둔 자는 돌려주고, 첩의 아들은 한품(限品)을 적용하지 말고, 공사천인(公私賤人)은 모두 천인을 면하게 하고, 사천(私賤)은 주인에게 공천(公賤)으로 보상하게 한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7책 102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변란(變亂)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註 662] 동어허리(童於虛里) :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의 이복동생. ☞ / [註 663]대위(大位) : 임금의 자리. ☞ / [註 664]잠저(潛邸) : 임금이 되기 전의 집. ☞ / [註 665]발섭(跋涉) : 산을 넘고 물을 건넘. ☞ / [註 666]1자급(資級) : 조선조 때 벼슬에 따른 품위(品位)의 등급. 정(正)․종(從)․각 품(品)마다 상(上)․하(下) 두 자급이 있었으므로 총 36자급이 있었음. ☞ / [註 667]유죄(宥罪) :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는 것. ☞ / [註 668]산관(散官) : 자급(資級)만 받고 보직(補職)을 받지 못한 관리를 말함. ☞ / [註 669]통정 대부(通政大夫) : 정3품. ☞ / [註 670]생질(甥姪) : 조카. ☞(www.history.go.kr 2009)
박심문 : 안동인물초색인 | 간행년:2000 저자:권오신 외 발행처:안동문화원 / 박심문(朴審問)/ ...? ~ 1456(세조 2, 병자)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밀양(密陽). 자는 신숙(愼叔). 호는 청재(淸齋).../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박심문(朴審問) : 영어 음역 Park Simmun/ 분야 역사/전통시대, 성씨·인물/전통시대인물/ 유형 인물/전통인물/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정호/ 성격 문신/ 아버지 박강생(朴岡生)/ 형 박절문(朴切問)/ 아내 청주한씨/ 성별 남/ 생년 1408년/ 몰년 1456년/ 본관 밀양박씨/ 자 신숙(愼叔)/ 호 청재(淸齋)/ 시호 충정(忠貞)/ 추증 이조판서/ 대표관직 질정관| 예조정랑/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신숙(愼叔), 호는 청재(淸齋). 세종 때 집현전 학사(學士)와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박강생(朴岡生)의 셋째 아들로 진도에서 태어났다. 박심문의 할아버지 박침은 여말선초 이군불사(二君不事)의 충절로 유명한 두문동(杜門洞) 72현 가운데 한 사람이다. [활동사항] 박심문은 사온서직장(司?暑直長)이 되었다가 1436년(세종 18) 과거에 급제하였다. 함길도 절도사인 김종서의 종사관으로 6진 개척에 공을 세웠다. 1447년에는 평안도 판관, 1448년 도체찰사(都體察使)의 종사관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란이 일어나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게 살해되자 칭병(稱病)하고 집에 은거하면서 성삼문, 하위지(河緯地)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모의하였다. 1456년(세조 2)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길에 의주(義洲)에 이르러 성삼문 등이 참형되었다는 비보를 듣고 울분 끝에 음독 자결하였다. 박심문은 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성삼문 등과 함께 문종의 고명(顧命)을 받은 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사육신(死六臣) 등을 모신 사당인 창절사(彰節祠)에 박심문을 배향하자, 진도에 사는 그의 후손들이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에 별묘 사효재(思孝齋)를 지어 모시고 진도 밀양박씨 청재공파 중심 제향처로 삼았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충청남도 공주의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밀양박씨청재공파보(密陽朴氏淸齋公派譜)』/ 지식연계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심문(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命故 正郞 朴審問 許贈 亞卿 文忠公成三問 使傍孫建祠不/ 朴審問|文忠公成三問|朴審問|六臣|文忠公成三問|三問(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命贈 參判 朴審問 加贈 文敬公金宏弼 書院宣額 文烈公趙憲 從祀 文廟 文康公金昌翕 追配 石室書院 事竝置之/ 朴審問|文敬公金宏弼|文烈公趙憲|文康公金昌翕|鄭熙祚|朴審問|李孝延|文敬公金宏弼|英廟|金載權|文烈公趙憲|趙憲|兪憲柱|文康公金昌翕|英廟(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方外儒生 鄭熙祚 等一百五十一人疏請贈 吏參 朴審問 加贈議諡賜批/ 鄭熙祚|朴審問|端宗|審問|忠文公|成三問|忠烈公|河緯地|朴審問(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京外儒生幼學 李殷紹 等三百七十五人陳疏請贈 參判 朴審問 配 彰節祠 及爵諡之贈賜批/ 李殷紹|朴審問|忠簡公|李塏|朴審問(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朴審問(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吏曹參判 朴審問의 諡號를 加增하는 일은 우선 그대로 둘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 국사편찬위원회 | 국사편찬위원회(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故 吏曹正郞 朴審問을 亞卿으로 贈職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 국사편찬위원회 | 국사편찬위원회(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충절록/ 이 책은 홍석주 전라 관찰사의 서문으로 편집된 청제(靑齊) 박심문(朴審問 ?-1456)의 충절록이다. 박심문은 자가 신숙이고, 호는 청재이며 본관은 밀양이다. 그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사온서 직장이 되었고,...(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창계숭절사 전경/ 대전 중구에 위치한 사당. 박팽년(朴彭年, 1417~1456), 박심문(朴審問, ?~1456)을 모시는 사당으로 1923년에 창건했음.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2호로 지정되었음./ 한국학중앙연구원(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忠節錄/ 朝鮮初 文臣 朴審問(?-1456)의 行蹟을 알 수 있는 글과 忠節을 기리는 글들을 모아 그의 後孫 朴淵昌이 編纂한 책/ 朴淵昌(朝鮮) 編 | [刊者未詳](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吏曹 以幸行時上言回啓/ 朴度默|朴審問|朴度默|正宗|容圭(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掌禮院 以 忠貞公朴審問 特施不之典奏/ 忠貞公朴審問|朴鏞和|忠貞公|金宗瑞|宗瑞|莊陵|金宗瑞|皇甫仁|堯舜|李塏|成三問|河緯地|成三問|純廟|景雲|哲廟|忠貞公|朴審問(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창절사 전경/ 조선 초기 사육신과 김시습·남효온·박심문(朴審問)·엄흥도(嚴興道) 등 10위의 위패를 모신 사당./ 한국학중앙연구원(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淸齋朴先生忠節錄/ 癸酉靖難 以後 成三問 等 六臣의 斬刑消息을 듣고 義州에서 飮毒 自決한 朴審問(?-1456)의 忠節事實을 記錄한 책/ 朴正林(朝鮮) 編 | [刊者未詳](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淸齋朴先生忠節錄/ 癸酉靖難 이후 成三問 등 六臣의 斬刑消息을 듣고 義州에서 飮毒 自決한 朴審問(?-1456)의 忠節事實을 記錄한 책/ 朴正林(朝鮮) 編 | [刊者未詳](daum 2010)
박심문 [專門資料] : 命眉山祠宣額及故將臣 金應海 褒忠祠 幷享故 相臣 姜碩期 忠賢祠陞配事幷置之/ 金應海|姜碩期|李時秀|金世一|閔伸|朴審問|李濟衡|金應海|得寬|姜碩期|閔伸|朴審問|金應海|姜碩期(daum 2010)
박심문(朴審問) : 자 신숙(愼叔), 호 청재(淸齋), 시호 충정(忠貞), 생졸년 1408 (태종 8) - 1456 (세조 2), 시대 조선 전기, 본관 밀양(密陽),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조선전기 / 문신/ 과거 및 취재 [문과] 세종(世宗) 18년 (1436) 병진(丙辰) 친시(親試) 병과(丙科) 3위/ [상세내용] 박심문(朴審問)에 대하여 : 1408년(태종 8)∼1456년(세조 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신숙(愼叔), 호는 청재(淸齋). 강생(剛生)의 아들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사온서직장(司?署直長)이 되었고, 1436년(세종 18)에 친시문과에 급제하였다. 기주관(記注官)으로 있다가 함길도절도사 김종서(金宗瑞)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때 그 종사관(從事官)이 되었으며, 야인(野人)에 대한 안무책(安撫策)으로 남쪽지방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할 것을 절도사에게 건의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1447년에 평안도판관이 되었다가, 이듬해인 1448년에 도체찰사(道體察使)의 종사관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기 위하여 일으킨 계유정난 때 김종서 등이 살해되자, 크게 분개하여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은밀히 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 등과 내왕하면서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 1456년(세조 2)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의주에 이르러 성삼문 등 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음독자살하였다. 일찍이 세종과 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을 보살펴달라는 문종의 고명(顧命)을 받았다. 정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공주 숙모전(肅慕殿)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世祖實錄, 正祖實錄, 耳溪集, 國朝榜目(daum 2010)
박심문(朴審問) : [문과] 세종(世宗) 18년 (1436) 병진(丙辰) 친시(親試) 병과(丙科) 3위/ [인적사항] 본관 밀양(密陽)/ [이력사항] 전력 사온서직장(司?署直長), 관직 장령(掌令)/ [가족사항] [부] 성명 : 박강생(朴剛生), [조부] 성명 : 박침(朴?), [증조부] 성명 : 박사경(朴思敬), [외조부] 성명 : 윤승경(尹承慶), [처부] 성명 : 한승순(韓承舜), [형] 박절문(朴切問), [자] 성명 : 박충원(朴忠元)/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박심문 : ◈박심문[朴審問] 선생 신도비[神道碑]/ 박심문[朴審問] 선생 신도비[神道碑] ▶소재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능골] ◈창계 숭절사[滄溪崇節祠] 【밀양】【순천】지방문화재자료 제2호 ▶이곳은 불천위[不遷位] 사당으로 조선 초기 때의 충신 박심문[朴審問:淸齋] 1408~1456]년.../ //chungheongong.com(daum 2010)
박심문 : Surname.info :+: 박심문 (朴審問)/ ...都體察使)의 종사관(從事官) 등을 역임,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김종서가 살해되자 성삼문(成三問) 등과 함께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모의했다. 1456년(세조 2)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다 의주(義州.../ //www.ulsankim.org(daum 2010)
박심문 : 박심문(朴審問)-국조방목/ 2009.05.02/ 박심문(朴審問) [문과] 세종(世宗) 18년 (1436) 병진(丙辰) 친시(親試) 병과(丙科) 3위 [인적사항] 본관 밀양(密陽)/ //cafe.daum.net/eunsan.co.kr/ 밀성박씨 성손 만남의 장소(daum 2010)
박심문 : [스크랩] 박심문(朴審問)1408 (태종 8) - 1456 (세조 2)| 특별회원방/ 덕암(悳岩) 박창국/ 2009.06.25 19:14 //cafe.daum.net/dae.chun.daum.net/AaIq/ 1408(태종 8)∼1456(세조 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 . 자는 신숙(愼叔), 호는 청재(淸齋). 강생(剛生)의 아들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사온서직장(司?署直長)이 되었고, 1436년(세종 18)에 친시문과에 급제하였다. 기주관(記注官)으로 있다가 함길도절도사 김종서(金宗瑞)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때 그 종사관(從事官)이 되었으며, 야인(野人)에 대한 안무책(安撫策)으로 남쪽지방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할 것을 절도사 에게 건의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1447년에 평안도판관이 되었다가, 이듬해인 1448년에 도체찰사(道體察使)의 종사관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기 위하여 일으킨 계유정난 때 김종서 등이 살해되자, 크게 분개하여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은밀히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 등과 내왕하면서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 1456년(세조 2)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의주에 이르러 성삼문 등 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음독자살하였다. 일찍이 세종과 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을 보살펴달라는 문종의 고명(顧命)을 받았다. 정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공주 숙모전(肅慕殿)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daum 2010)
박심문 : 문과에서 밀양(密陽) 박(朴) 씨에서 257명의 합격자를 냈다/ 2009.06.26/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4위 박중손(朴仲孫) - - 1412 밀양(密陽)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위 박심문(朴審問) - - - 밀양(密陽) 친시(親試) 병과(丙科) 3위 박찬조(朴纘祖) - - - 밀양(密陽) 친시(親試) 병과(丙科) 3위 박건.../ //cafe.daum.net/dae.chun.daum.net/ 大川(대팽이,비린내)을 아시나요(daum 2010)
박심문 : 효자이면서 충신이셨던 박심문(朴審問) 선조님에 대하여| 자유게시판/ 테리/ 조회 157 | 2007.10.08 00:11/ //cafe.daum.net/chunsil2007/B38K/12/ 그의 할아버지는 고려 말의 충신으로서 조선왕조를 섬기지 않고, 두문동(杜門洞)에 숨은 72인 가운데 한 분인 박침이라는 분이셨고, 아버지는 조선왕조 세종(世宗) 때 집현전(集賢殿) 학사(學士)와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박강생(剛生) 선조님의 셋째 아들이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조부의 충절과 부친의 학덕을 받아 태종 8년 경기도 장단군 구화(九化)에서 태어났는데 날 때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슬기가 넘치는 비범한 인물이셨다고 합니다. 16세에 아버지인 찬성공(贊成公: 박강생)이 임소인 안변(安邊)에서 돌아가시자 정성을 다해서 고향으로 모셔와 장사를 지낸 후 묘소 옆에 묘막을 짖고 아침저녁으로 애통하여 우니 듣고 보는 사람들이 모두 감동해 그 효성의 지극함을 칭찬했다고 합니다. 29세 되던 해(세종18)에 친시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기주관(記注官)이 되었는데 이때 사육신(死六臣) 가운데 한 사람인 이개(李塏)도 함께 급제하셨고. 다음해에 함길도(咸吉道) 도절제사인 김종서(金宗瑞)를 따라 종사관(從事官)으로 종군해서 육진개척(六鎭開拓)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야인(野人)에 대한 안무책(安撫策)으로 남쪽지방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할 것을 절도사에게 건의하여 시행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36세 때(세종 25) 조정으로 돌아와 예조좌랑(禮曹佐郎)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종 27년에는 예조좌랑으로 근무하실 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임금이 이조(吏曹)와 예조(禮曹)의 낭청(郞廳)이 연회(宴會)한다는 것을 듣고 사헌부(司憲府)에 명하여 국문(鞫問)하였다. 이때에 이조 정랑(吏曹正郞) 박추(朴?)·이영견(李泳肩)·정식(鄭軾), 좌랑(佐郞) 김담(金淡)·이휘(李徽)·김윤복(金閏福), 예조 정랑(禮曹正郞) 박심문(朴審問)·조오(趙?)·조석문(曹錫文), 좌랑(佐郞) 이선로(李善老)·이교연(李皎然) 및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정사(鄭賜), 검상(檢詳) 박중손(朴仲孫)이 예조(禮曹)에 모여서 창기(倡妓)를 불러 크게 연악(宴樂)을 베풀었다. 헌부(憲府)에서 조사하여 다스려서 마침내 모두 삭직(削職)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유흥을 좀 즐기신 거 같습니다. 세종대왕의 뒤를 이은 문종(文宗)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시자 어린 단종(端宗)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는데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은 이 틈을 타서 왕위찬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 조치의 하나로 김종서(金宗端), 황보인(黃甫仁) 등을 살해해서 제거하고, 어린 왕인 단종을 대신해서 왕권을 독단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을 본 박심문 선조님은 벼슬을 버리고 공양관의 임진강 나루터로 집을 옮기시어 살았고, 그 2년 뒤인 1454년에 수양대군이 강제로 단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으니 그는 성삼문, 하위지, 이개 등과 자주 만나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던 중 세조(世祖) 2년에 중국(中國)에 가는 사신을 수행하는 질정관(質正官)으로 임명을 받았는데 굳이 사양을 했으나 피할 수 없어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성삼문, 하위지, 이개 등 여러 동지들이 전별을 하기 위해서 그의 집에 모였는데, 그는 두견화가 피어있는 후원에 술자리를 베풀어 비분강개하면서 단종 복위문제를 논의하였다. 박심문 선조님은 다음날 아침 명(明)나라로 갔다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의주(義州)의 용만(龍灣)에서 사육신(死六臣)의 처형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며, 좌우를 물리치고 심복(心腹)의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육신으로 더불어 죽기를 맹약한 일이 있었다. 이제 모두 죽었는데 내 어찌 차마 혼자만 살 수 있으며, 산다하면 장차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가서 선대왕(先大王)을 뵐 수 있겠는가? 내가 오늘 이미 죽기로 결심하여서 육신과 함께 돌아갈 것이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봉서(封書) 가운데에도 썼거니와 어린 임금께 받았던 예조정랑(禮曹正郎) 관직만 묘비에 세우게 하라" 하고 이내 독약을 마시고 운명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 그의 절개와 충정이 알려져서 영동녕부사 김조순(領敦寧府事 金祖淳)이 행장(行狀)을 지었고, 이조판서 홍량호(洪良浩)가 묘지(墓誌)를 찬술하였으며 예조판서 박규수(禮曹判書 朴珪壽)가 신도비(神道碑) 문을 찬술한 바가 있다고 합니다. 「청재 박심문선생 충절록(忠節錄)이 처음 간행되던 1823년(순조23) 봄에 전라관찰사 홍석주(洪奭周)는 그 서문 가운데에서 6신에 대하여는 저 명(明)나라 방효유(方孝儒)의 충절을 들었고, 청재선생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동호초부(東湖樵夫, 명나라 충신)와 같은 충절이라고 감탄했으며 병조판서 민치상(閔致庠)은 저 사육신과 뜻이 같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청재 박공인데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 300여 년 동안이나 햇빛을 못 보았다가 순조 4년에 비로소 조정에서 이조참판의 직을 추증하고「정충고절불하육신(貞忠苦節不下六臣)」이라는 글씨까지 손수 써서 하사했으며, 철종 7년에는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고종 8년에는 충정(忠貞)의 시호가 내려졌다고 했으며, 또 청채 박공의 고상한 절의는「사육신」과 더불어 그 공의 차이가 없으므로 공의 정절을 세상에서 알게 되었다고 했고, 또 공의 뜻을「사육신」이 알아주었고, 「사육신」들의 공렬을 박공이 따랐으니 죽음이 선후가 있을 뿐이요, 자취가 현회(顯晦)함이 다르나 그 의리는 하나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선왕조 말엽의 독립투사요 유학자인 호조참판 최익현(崔益鉉)은 「청재 박 선생이야 말로 백세의 사표(師表)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였다. 또 봉상시 부제학 이용구(奉常時 副提學 李容九, 한말 이용구와는 이름은 같은 다른 사람이다)는 육신을 따라 의롭게 가셨으니 이 또한 「사육신」과 통행하는 충성심이라 천지의 크기와 일월의 밝음이 청재선생을 두고 한 말이며, 천지사방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북극성이요, 삼강(三綱)을 통합해서 오로지 근본이 되는 것이 떳떳한 본성(本姓)일진대 선생의 처신이 모두 이와 같은 것이라 칭송하면서 「저 두견화(杜鵑花)앞에서 든 술잔이 이미 빛났고, 한 밤중을 비추는 달에 우는 자규(子規)가 소리로 응답하니 성삼문선생과 하위지선생과 함께 읊조림의 위대한 기운이 서로 통했도다. 그 기운이 우뚝 솟아 불사조처럼 남으니 조정에 있는 공경대부(제공(諸公) 즉 公卿大夫)들이 천양해서 포상함이 절정에 이르렀으나, 공이 타계한 이미 467년이 되었도다.」라고 하였다. 일찍이 세종과 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을 보살펴달라는 문종의 고명(顧命)을 받으신 박심문 선조님도 그의 아버지 박강생 선조님과 마찬가지로 돌아가신 뒤에야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공주 숙모전(肅慕殿)에 제향되는 것을 보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충절과 절개가 돋보이며 후세에도 널리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박심문 선조님에 대해 후손들이 여러 곳에서 그 뜻을 기리고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1828년에 영월 창절사에 배향되었으며 1904년 밀양박씨 종중에서 부조묘를 이곳에 세워 충정공의 충절을 추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해마다 10월10일과 10월 14일에 향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현재는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대농리에 충정묘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계숭절사라는 곳에서 1923년 건립된 사당으로 사육신인 박팽년 선생과 사육신 그리고 사칠신으로 일컫는 충신 박심문 선조님을 모신 사당이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창절사라고도 하는데 숙종 11년(1685)에 강원도 관찰사 홍만종(洪萬鍾)(1643∼1725)이 단종의 사우(祠宇)가 협소함을 조정에 보고하면서 증축을 간청하였다. 이에 따라 숙종은 당시의 영월부사인 조이한(趙爾翰)으로 하여금 사우 옆에 따로 사육신사를 세우게 하였으며, 그 현판은 송시열(宋詩烈)(1607∼1689)이 썼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육신 외에 순조 28년(1828)에 창절사를 「창절서원(彰節書院)」으로 개칭하였으며, 박심문(朴審問) 선조님의 위패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창절서원은 1892년부터 1898년까지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으며, 배견루는 박심문의 후손인 박교묵(朴敎默)이 종중(宗中)의 협조로 증축했다고 합니다. 매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이 사원에서는 봄과 가을에 향사를 올린다고 합니다. 지금 대전시 안영동에 있는 숭절사(崇節祠)에서는 해마다 제사를 드리면서 충정공의 충절을 사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밀양박씨 청재공파 대동보소에서는 『청재 박선생충절록』을 간행해서 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이를 번역해서 널리 읽도록 보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재는 박심문 선조님의 호인데 청재공파라고 따로 있는 게 좀 이상합니다. 같은 규정공파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왜 청재공파로 분류를 후손들이 했는지 궁금하네요. 아무튼 옛날부터 충신은 효자의 집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청재 선조님은 모름지기 집안에 들어와서는 효성을 다했고, 나가서는 국가에 충성을 다 바친 정말 존경스러운 선조님입니다. 우리 가문이 이렇듯 대단할 줄이야...(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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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출신 고윤환 문경시장, 9일 좋은 자치단체장 선정...축하합니다.
고윤환(고윤환 聞慶市長 좋은 自治團體長 選定) [記事] : 고윤환(용문면 출생) 문경시장은 2014년 12월 9일 국내 256개 중도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범시민사회단체연합으로부터 청렴한 공직 활동으로 시민에게 모범을 보인 ‘좋은 자치단체장’에 선정됐다.(醴泉新聞 201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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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풍골사과영농조합법인, 24일 탑프로젝트 종합평가 우수상...축하합니다.
은풍골사과영농조합법인(殷豊골沙果營農組合法人, 탑프로젝트 綜合評價會서 優秀賞 受賞) [記事] : 농촌진흥청에서 개최된 2014년 탑프로젝트 종합평가회에서 2014년 12월 24일 예천군 은풍골사과영농조합법인이 단지운영 우수상을 포함한 4개 분야의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날 평가회에서 이충교 회장이 탑프로젝트 추진에 헌신적으로 공헌한 공적을 인정받아 유공 농업인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은풍골영농조합법인은 올해 실시된 4차례에 걸친 각종 심사 및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또한 김국한 총무가 지난 11월 28일 개최된 탑프루트 과실품질 평가에서 사과(후지)분야 최우수 과실로 선정되어 이날 농촌진흥청장상(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농업기술센터 정일영 지도사가 3년간 탑프루트단지를 잘 이끌어 온 공적을 인정받아 유공공무원 표창을 수상했다. 은풍골사과영농조합법인은 예천군 하리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25호의 농가가 모여 결성되었으며 지난 2012년 3차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농촌진흥청이 추진하는 3단계(2012~2014) 탑프루트 시범단지로 선정되어 최고품질 사과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또한, 3년간 25명의 회원이 참여해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하고 맛있는 사과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회원들의 재배기술 수준이 상향평준화됨은 물론, 생산된 사과의 품질이 좋아져 회원농가의 소득이 20%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편, 탑프루트 사업은 수입 개방화 시대에 대응하여 최고 품질의 과실을 생산할 수 있는 종합기술을 확대 보급코자 농촌진흥청이 지난 2006년부터 사과·배·포도·복숭아·단감·감귤 등 6개 과종을 대상으로 1단계(2006~2008), 2단계(2009~2011), 3단계(2012~2014)로 나누어 추진해 왔으며 올해를 마지막으로 모든 사업이 종료되었다.(醴泉인터넷放送 2014-12-26 오전 11: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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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여성단체협의회, 26일 도평가 우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여성단체협의회(醴泉郡女性團體協議會, 慶北 女性團體活性化 評價 ‘優秀賞’ 受賞 : 多樣한 社會奉仕 活動 앞장서 實踐) [記事] : 예천군여성단체협의회(회장 오복순)는 2014년 12월 26일 오전 11시 대구 호텔인터불고엑스코에서 경상북도여성단체협의회 주관으로 개최된 ‘여성단체활성화 우수여성단체 평가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은 2014년 한 해 동안 여성의 사회 참여를 위한 역량 강화와 양성평등 확산을 위해 노력한 공적을 평가해 최종 수상단체로 결정돼 그 의미가 크다. 예천군여성단체협의회는 16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년교례회, 여성주간 기념행사, 다문화가정 협동결혼식 및 다문화가정 출산용품 전달, 전통시장 활성화, 불우이웃돕기 등 여성의 권익신장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과 소외계층에 대한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오복순 회장은 “2015년에도 여성의 권익신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회원들과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여성의 역량을 모아 지역발전을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醴泉뉴스 2014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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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주 부국농원대표, 19일 도지사 표창...축하합니다.
이태주(이태주 代表) [記事] : 이태주 부국농원대표가 2014년 12월 19일 구미시장애인체육관에서 열린 경북중증장애인 송년 위안 행사에서 장애인 복지를 위해 앞장선 공로를 인정 받아 경북도지사 표창을 수상했다.(醴泉新聞 2014년 12월 26일 (금) 10: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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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면 출신 윤경원, 박사 학위 취득...축하합니다.
윤경원(윤경원 氏 포스텍 化學 博士學位 取得) [記事] : 개포면 태생의 윤경원(33) 씨가 포스텍 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 우수연구상을 수상했다. 윤경원 씨는 경진초등, 예천중, 대창고, 고려대학교 신소재화학과를 졸업했으며, IBS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 포스텍 화학과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윤씨는 “고향 어르신들의 큰 관심과 사랑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더 열심히 공부해 고향 예천과 국가의 이름을 높이는 과학자가 되어 그 은혜를 갚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현재 고향 개포면에는 부모님(윤창수(63), 전외분(59))이 거주하고 있으며, 부모님은 소백산 쑥돈영농조합법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醴泉新聞 2014년 12월 26일 (금) 10: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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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