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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890:박정시(2)
작성자장병창 @ 2015.01.21 06:15:27

  예천의 자랑(3890) : 박정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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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12일 (임오) 원본123책/탈초본6책 (8/9)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晝講에 南銑 등이 入侍하여 書傳을 進講함/ ○ 晝講入侍, 特進官南銑, 同知事沈之源, 參贊官安獻徵, 侍讀官李泰淵․洪處大, 假注書趙益久, 記事官朴廷蓍․閔維重。上講書傳微子之命, 自微國名, 止此崇德之意。(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12일 (임오) 원본123책/탈초본6책 (9/9)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夕講에 宋時吉 등이 入侍하여 書傳을 進講함/ ○ 夕講入侍, 特進官宋時吉, 同知事沈之源, 參贊官金佐明, 侍讀官李泰淵, 檢討官洪處大, 假注書趙益久, 記事官朴廷蓍․閔維重。上講書傳․大學衍義, 自太子侍讀徐?, 止論?邪罔止之情。(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13일 (계미) 원본123책/탈초본6책 (20/20)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晝講에 韓必遠이 입시하여 書傳을 進講함/ ○ 晝講入侍, 特進官韓必遠, 同知事蔡裕後, 參贊官朴長遠, 侍讀官李泰淵, 檢討官洪處大, 假注書朴世城, 記事官朴廷蓍․閔維重。上講書傳微子之命, 自爾惟踐脩, 止無替朕命。(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14일 (갑신) 원본123책/탈초본6책 (5/7)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晝講에 許積 등이 입시하여 書傳을 進講함/ ○ 晝講入侍, 特進官許積, 同知事蔡裕後, 參贊官金佐明, 侍讀官閔鼎重, 檢討官洪處大, 假注書朴世城, 記注官朴廷蓍, 記事官閔維重。上講書傳康誥, 自康叔․文王之子, 止拜手稽首之上。(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14일 (갑신) 원본123책/탈초본6책 (6/7)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夕講에 李應蓍가 입시하여 大學을 進講함/ ○ 夕講入侍, 特進官李應蓍, 同知事蔡裕後, 參贊官李弘淵, 侍讀官閔鼎重, 檢討官洪處大, 假注書朴世城, 記注官朴廷蓍, 記事官閔維重。上講大學衍義第五卷, 自初高齊之末, 止除名爲民。(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15일 (을유) 원본123책/탈초본6책 (7/7)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晝講에 元斗杓 등이 입시하여 書傳을 進講함/ ○ 晝講入侍, 特進官元斗杓, 同知事沈之源, 參贊官閔應亨․朴長遠, 侍讀官閔鼎重, 假注書朴世城, 記注官朴廷蓍, 記事官閔維重。上講書傳康誥, 自王若曰, 孟侯, 止然不可考矣。(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16일 (병술) 원본123책/탈초본6책 (5/20)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晝講에 許積 등이 입시하여 書傳을 進講함/ ○ 晝講入侍, 特進官許積, 同知事蔡裕後, 參贊官安獻徵, 侍讀官閔鼎重, 檢討官吳挺緯, 假注書朴世城, 記注官朴廷蓍, 記事官閔維重。上講書傳康誥, 王曰嗚呼封, 止亦擧新民終之。(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19일 (기축) 원본123책/탈초본6책 (6/23)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元?의 迎接都監 郞廳 직임을 改差할 것을 청하는 刑曹의 계/ ○ 刑曹啓曰, 本曹以詞訟重地, 事務煩劇, 視他司最緊, 故郞廳六員, 雖或無故仕進, 聽訟査決之際, 多致積滯, 常患不足矣, 正郞朴廷蓍, 以兼春秋, 方在直廬, 正郞元?, 又以迎接都監郞廳, 今?啓下, 除本司仕上直, 現存仕進者, 只四員, 本曹事勢, 誠爲悶慮, 元?, 都監郞廳改差,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5월 20일 (경인) 원본123책/탈초본6책 (9/9)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晝講에 吳竣 등이 입시하여 書傳을 進講함/ ○ 晝講入侍, 知事吳竣, 特進官宋時吉, 參贊官李時?, 侍讀官李泰淵, 檢討官洪處大, 假注書趙益久, 記注官徐?․朴廷蓍。上講書傳康誥, 自王曰嗚呼封, 止蔽斷也。(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6월 2일 (임인) 원본124책/탈초본7책 (7/9)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晝講에 申濡 등이 입시하여 書傳을 進講함/ ○ 晝講時入侍, 特進官申濡, 同知事蔡裕後, 參贊官朴長遠, 侍講官李泰淵, 檢討官李廷夔, 假注書權格, 記注官徐?․朴廷蓍。上讀書傳康誥, 自王曰封予惟不可不監, 止對上文?享而言。(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6월 7일 (정미) 원본124책/탈초본7책 (12/15)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晝講에 鄭世規 등이 입시하여 書傳을 進講함/ ○ 晝講時入侍, 特進官鄭世規, 同知事鄭維城, 參贊官李應蓍, 侍讀官尹鏶, 檢討官李廷夔, 假注書柳格, 記注官徐?․朴廷蓍。上讀書傳酒誥, 自商受?酒, 止喪邦故言辜。(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6월 20일 (경신) 원본124책/탈초본7책 (12/12)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朴大?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以朴大相爲陰城縣監, 柳德昌爲右通禮, 朴廷麟爲沙斤察訪, 金益熙爲副提學, 沈儒行爲持平, 朴廷蓍爲靈巖郡守, 沈世鼎爲執義, 洪柱後爲沔川郡守, 曺實久爲茂朱縣監, 兪?爲承文正字, 申嵩耈爲司宰僉正, 白昌俊爲藍浦縣監, 洪天龜爲監察, 朴燧爲巨濟縣令, 都擧元爲興陽縣監, 李穉爲監察, 李長馨爲萬頃縣令, 李廷夔爲修撰, 徐必成爲禮賓寺主簿, 沈?爲鍾城府使, 趙爾?爲司諫, 李敏發爲富寧府使, 趙惟新爲明川府使, 李希楙爲典籍, 鄭脩爲兵曹正郞, 李克和爲昆陽郡守, 李尙弼爲司宰直長, 洪汝漢爲珍島郡守, 鄭漢驥爲金海府使, 李東稷爲尙衣別提, 李?爲恩山縣監, 尹先哲․鄭?爲典籍, 朴知墉爲會寧判官, 李東老爲庇仁縣監, 李時昉爲社稷提調, 李德益爲永柔縣令, 許?爲東部主簿, 鄭曙爲典籍, 李元基爲宗簿直長, 李時?爲刑曹佐郞, 曺致中爲校書副正字, 任善伯爲相禮, 黃世耈爲司饔奉事, 李?爲尙衣正, 沈之漢爲校理, 高進問爲典籍, 崔景瑗爲奉常主簿, 趙亨耘爲司贍直長, 金斗明爲機張縣監, 李希楙爲監察, 尹惟謹爲刑曹佐郞, 沈?爲引儀, 李會源爲刑曹正郞, 李溫爲持平, 金士珍爲平市奉事, 金震標爲掌樂主簿, 金垓爲長興庫主簿, 朴承休爲兵曹正郞, 閔?爲刑曹佐郞, 金尙炫爲引儀, 李光鎭爲宗簿主簿, 李道章爲繕工直長, 李惟馨爲司僕主簿, 李廷衡爲軍器主簿, 李守綱爲旌善郡守, 任允錫爲義盈庫主簿, 李殷相爲說書, 崔克弘爲內資直長, 崔應天․金以載爲成均博士, 金之沇爲學諭, 李應世爲禮賓寺別提, 李喜年爲義禁府都事, 宋之濂爲繕工假監役, 南天澤爲典籍, 黃澤爲繕工假監役, 李休徵爲兵曹佐郞, 李益亨爲中部主簿, 李長榮爲歸厚署別提, 洪處深爲尙衣直長, 鄭思適爲北部主簿, 鄭德生爲義興縣監, 洪?爲正言, 李壽益爲永同縣監。(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3년 7월 8일 (정축) 원본124책/탈초본7책 (2/28)  1652년 順治(淸/世祖) 9년/ 洪? 등이 하직함/ ○ 下直, 吉州牧使洪?, 靈巖郡守朴廷蓍, 永柔縣令李德益, 興陽縣監都擧元, 井浦萬戶李震昌。(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4년 12월 6일 (무진) 원본129책/탈초본7책 (16/17)  1653년 順治(淸/世祖) 10년/ 柳斐然 등을 敍用하고 李海有 등에게 職牒을 還給하라는 전교/ ○ 傳, 前縣監柳斐然․朴守素․李命賓․林士贇․洪宇遠․全命龍, 郡守李處栽․崔後?․郭弘址, 縣令朴霖, 都事南龍翼․沈材․李尙眞, 說書兪錫, 府使閔應慶․金廈樑․金宗澤, 判官徐必遠․李禮男, 主簿閔士亮, 察訪李昌一․河呈道, 直講許悅, 正郞安朝世, 應敎李晳, 掌令鄭麟卿, 敎養官韓汝虎, 僉正沈緯, 正言李厚慶, 承旨柳?, 平林君元敬, 牧使徐祥履, 主簿朴百裕, 萬戶金鎰․韓德達․金道源, 哨官柳禮傑, 習讀邊翼獻, 中軍陳善等, 敍用。縣監李海有․安緝․李德培, 府使李松齡․洪?性, 郡守鄭善興․崔後?․朴廷蓍, 都事李益培, 別提洪時迪, 參議尹善道․李之恒, 府尹沈之溟, 監司趙珩․宋時吉․李後山, 副正閔後正, 主簿李元會, 內侍金忠良․李之芳, 護軍黃?․李時萬, 萬戶金鎰, 僉知盧協, 行司直鄭斗卿․洪憲, 司果陳克一, 虞候李昌彧, 副司果崔?等, 職牒還給事, 下吏․兵曹。(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6년 11월 16일 (병신) 원본137책/탈초본7책 (14/14)  1655년 順治(淸/世祖) 12년/ 李?然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以李?然爲兵曹參議, 金佐明爲參知, 李翊漢爲刑曹參議, 柳寅亮爲典籍, 許積爲同經筵, 洪命夏爲都承旨, 許積爲同義禁, 申翊全爲開城留守, 李時昉爲刑曹判書, 蔡裕後爲同經筵, 蔡裕後爲禮曹參判, 辛啓榮爲工曹參判, 吳竣爲知義禁, 洪宇翼爲軍器僉正, 鄭?爲直講, 鄭世規爲歸厚提調, 李克泰爲刑曹佐郞, 李誠傳爲禮曹佐郞, 李時術爲兵曹正郞, 朴廷蓍爲繕工僉正, 安後說爲兵曹佐郞, 沈?爲禮曹參議, 沈櫶爲瑞山郡守, 韓奇遠爲戶曹正郞, 南老星爲大司諫, 成楚客爲楊州牧使, 李杭爲獻納, 黃?爲明川府使, 沈攸爲承文博士, 鄭叔周․柳之芳爲學錄, 宋挺濂爲學諭, 禁府都事金世鼎, 氷庫別檢徐匡履相換。出吏曹政軸(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7년 윤5월 3일 (경술) 원본139책/탈초본7책 (10/11)  1656년 順治(淸/世祖) 13년/ 李廷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李廷夔爲獻納, 以洪興祉爲鐵原府使, 許舒爲寧越郡守, 許崙爲平壤判官, 金澤爲海美縣監, 尹絳爲大司憲, 具仁?爲綾川府院君, 李延年爲持平, 李翊漢爲南原府使, 李彙晉爲海運判官, 朴宗亨爲活人別提, 金碩望〈爲〉典獄主簿, 南夢賚爲刑曹佐郞, 李益培爲義盈主簿, 權?爲高城郡守, 朴廷蓍爲泰安郡守, 金東屹[金東全]爲興德縣監, 趙汝秀爲?德府使, 柳貞立爲務安縣監, 李球爲學錄, 金?爲學諭。以上朝報(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즉위년 10월 9일 (병신) 원본158책/탈초본8책 (8/18)  1659년 順治(淸/世祖) 16년/ 吏批의 관원 현황。金宇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判書宋浚吉進, 參判李一相病, 參議趙復陽病, 行都承旨李應蓍進, 原平府院君元斗杓, 以金宇亨爲副校理, 黃道宏爲兵曹佐郞, 李海賓爲洪原縣監, 李在中爲西部主簿, 朴廷蓍爲兼良才察訪, 待敎單宋昌․譯官方孝敏․譯官李芬 以上嘉善。(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원년 1월 16일 (임신) 원본160책/탈초본8책 (9/18)  1660년 順治(淸/世祖) 17년/ 朴廷蓍가 母喪을 당하였음을 아뢰는 京畿監司의 서목/ ○ 京畿監司書目, 良才察訪朴廷蓍, 正月初八日, 遭母喪事。(www.history.go.kr 2009)

 

  박정시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洪淸道都事 咸陽朴公(廷蓍) 墓碣銘/ ...B202_0043.jpg홍청도도사 함양박공(정시) 묘갈명公의 諱는 廷蓍요 字는 吉孚니 系出 新羅로 八公子 分.../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박정시 [專門資料] : 朴廷蓍가 母喪을 당하였음을 아뢰는 京畿監司의 서목/ 朴廷蓍(daum 2010)

 

  박정시 [專門資料] : 御 春塘臺 行 西北 別付料試射及 翰林 召試/ 嚴亨能|李光春|金濟雲|金聲集|金亨篆|張翼軫|李光根|蔡達蓮|李達彦|高興崙|裴聖袗|李鳳起|金權|金珩|尹大心|朴廷蓍|金尙信|金翊聖|李亨國|全汝弼|金采弘|安達秀|金鳳永|任允奎|金正雲|金履鉉|鄭聖輪|金思說...(daum 2010)

 

  박정시 [專門資料] : 洪淸右道暗行御史와 慶尙右道暗行御史, 그리고 咸鏡南道暗行御史의 書啓에 따라 李泰淵 등의 褒賞 및 李浚 등의 罷黜 등을 청하는 吏曹의 계목/ 慶尙右道, 閔熙|李昌胤|李山賚|李|李俊耉|朴廷蓍|韓尙玄|朴而立|沈潗|尹雲擧|趙進陽|安廷煜|韓|沈榥|黃道明|南得朋|鄭援|李時億|沈之沇|李杭|朴麟|李泰淵|成玧|李復一|李雲裁|吳挺垣|李浚|李泰淵|李有昌|徐弘履...(daum 2010)

 

  박정시 [專門資料] : 晝講에 申濡 등이 입시하여 書傳을 進講함/ 書傳康誥, 申濡|蔡裕後|朴長遠|李泰淵|李廷夔|權格|徐|朴廷蓍(daum 2010)

 

  박정시(朴廷蓍) : 본관(本貫) 함양(咸陽), 시대(時代) (1601-1672), 자(字) 길부(吉孚)/ 이력(履歷)/ 함양박씨(咸陽朴氏)를 빛내신 선조(先祖)/ 박정시(朴廷蓍) 선조 34(1601)-현종 13(1672) : 상서공(尙書公) 20세 손으로 2파 문원공(文元公) 지빈(之彬)의 1子 장(莊)의 13대손(문제공 충좌(忠佐)의 12대손)이시다. 자(字)는 길부(吉孚)이시고 정랑공 종린(正郞公 從鱗)의 현손(玄孫){영(瑛)의 아들}이시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선조 34(1601)년 태어나시어 인조(仁祖) 11(1634)년 가을 형님 정협(廷莢)과 더불어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인조 17(1640)년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 2위로 급제(及第)하여 결성(結城), 영암(靈岩), 태안(泰安) 등 3군의 현감(縣監:종6품)을 역임(歷任)하고 도사(都事:종5품)를 거쳐 형조 정랑(刑曹正郞:정5품)을 지냈다. 특히 현종(顯宗) 때 태안 현감을 지내면서 청렴결백하게 다스렸다. 그 때 태안에서 갖고 온 자명금(自鳴琴, 泰娘琴)이 공(公)의 10세손 박종식 가(家)의 가보(家寶)로 전해지고 있다. 공(公)은 성격이 강직(剛直)하고 담력이 세고 의협심(義俠心)이 강했으며 또한 정직하고 근면(勤勉)하여 청백리록(淸白吏錄)에 올랐다. 태안 현감에서 물러날 때 거문고 1장과 인경(麟經) 1부만 가지고 돌아왔다. 목재 홍여하(木齋 洪汝河)는 일찍이, 고벽정송(苦蘗貞松)의 지조가 있다 칭송(稱頌)했다. 영조(英祖) 21(1745)년에 좌승지(左承旨:정3품)에 증직(贈職)되었다. 묘(墓)는 보문면 미흘산 유좌(彌屹山酉坐)에 있다.(양양지 1661, 군지 1770 178! 6 1841 1895 1939, 족보) → 예천신문 참조

 

  박정시 : <예천 신문 고장의 인물>/ 박정시(1601-1672)는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출신으로, 자는 길부(吉孚), 본관은 함양, 영(瑛)의 아들이다. 1623년(인조 11)에 형 정협과 함께 생원이 되고, 1639년(인조 17)에 식년 문과에 을과 2위로 용문면 구계리 사람 김주와 함께 급제하였다. 도사와 형조 정랑을 거쳐 결성, 영암, 태안 등 3군의 군수를 역임하면서 청렴 결백하였다. 특히 태안(泰安) 군수를 마지막으로 벼슬에서 물러날 때에는 거문고 1개와 책 1부만 가지고 귀향하였다. 박정시는 성격이 강직하고 담력이 세며 의협심이 강했다. 또한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청렴결백하여 청백리 책에 실리었다. 무덤은 미흘산 유좌(彌屹山酉坐)에 있고, 뒤에 좌승지(1745)에 증직되었다. 박정시가 태안 군수로 부임하던 첫 날 밤에 처녀 귀신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지금부터 5년 전 태안 군수가 된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녀의 미모를 탐낸 군 관리 한 사람이 소녀를 겁탈하고 난 다음 후환이 두려워서 소녀의 목을 칼로 찔러 죽여서 동헌 앞에 서있는 수백 년 묵은 저 오동나무 속에 거꾸로 집어넣어 오늘에 이르렀으나, 소녀는 원귀가 되어 있으니 소녀의 원수를 갚아주소서"하는 것이었다. 박 군수는 이튿날 소녀의 장사를 지내주는 한편, 범인을 고발하여 처형 받도록 하였다. 범인을 처형하던 날 밤에 박 군수가 꿈을 꾸니, 소녀가 나타나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그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이 거문고는 박 군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소리를 내어서 미리 알려주곤 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은 이 거문고를 자명금(自鳴琴) 또는 태랑금(泰娘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구한말에 이 곳에 사는 법부대신 이유인이 빌려 갔다가, 잘못 다루어 줄이 끊어져 스스로 우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장병창 논설위원>/ //www.shinjongwoo.co.kr/name/ba/baa/gkadid(daum 2010)

 

  박정시 : <국조 문과 방목>/ 박정시(朴廷蓍)/ 인조(仁祖)17년(1639년), 식년시(式年試) 을과4(乙科4)/ > 인적사항 생년(生年)  1601년, 신축, 자(字) 길부(吉孚), 본관(本貫) 함양(咸陽)/ > 가족사항 부(父) 박영(朴瑛), 조부(祖父) 박수경(朴守敬), 증조부(曾祖父) 박기(朴기),  외조부(外祖父) 이영문(李榮門), 처부(妻父) 장천복(張天福), 제(弟) 박정설(朴廷薛),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33(계유) 생원시, 전력(前歷) 생원(生員), 관직(官職) 군수(郡守)(daum 2010)

 

  박정시 : 박정설(朴廷薛)/ ...) 박수경(朴守敬) 증조부(曾祖父) 박거(朴거0x546F) 외조부(外祖父) 권죽용(權竹龍) 처부(妻父) 형(兄) 박정시(朴廷蓍)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선교랑(宣敎郞) 품계(品階) 관직(官職) 공조/참판&(工曹/參判.../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정시(朴廷蓍)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인조(仁祖) 17년, 과거시험연도 : 1639 기묘,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을과4(乙科4)/ [인적 사항] 성명(姓名) : 박정시(朴廷蓍), 자 : 길부(吉孚), 본관(本貫) : 함양(咸陽)/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633(계유) 생원시, 전력(前歷) : 생원(生員), 관직(官職) : 군수(郡守)/ [가족사항] 제(弟) : 박정설(朴廷薛), 부(父) : 박영(朴瑛), 조부(祖父) : 박수경(朴守敬), 증조부(曾祖父) : 박기(朴?), 외조부(外祖父) : 이영문(李榮門), 처부(妻父) : 장천복(張天福)(daum 2010)

 

  박정시 : 咸陽朴氏를 빛내신 선조(先祖)/ ...없어 높은 벼슬을 지냈는데도 가산이 별로 없었으며 집마저도 비바람을 겨우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 ♠ 박정시(朴廷蓍) 선조 34(1601)-현종 13(1672) : 상서공(尙書公) 20세 손으로 2파 문원공(文元公) 지빈(之彬)의 1子 장(莊)의.../ //pysang1.com.ne.kr(daum 2010)

 

  박정시 : 문과합격자 살펴보기/ 2009.04.25/ ...[조부] 성명 : 박종린(朴從麟) [증조부]성명 : 박눌(朴訥)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16 박정시(朴廷蓍) [문과] 인조(仁祖) 17년 (1639)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4위 자 길부(吉孚) 생년 신축(辛丑)/160.../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정시 : 자명금에 대한 또 다른 설화는 있을까? | *****금당실 관련자료/ 풀꽃/ 2010.03.01 20:10/ 우리민속이야기 - 스스로 우는 거문고(自鳴琴) 이야기/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금당실) 박노준(함양박씨)씨 댁에는 길흉을 알려주는 기이한 거문고가 가보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자명금(自鳴琴) 일명 태랑금(泰娘琴) 으로 불러지는 이 거문고는 박정시(朴廷蓍)의 현손 손경(孫慶)이 지은 이름으로 1671년(현종 12) 박정시가 충청도 태안군수(泰安郡守)로 있으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길이 195cm, 폭 25cm, 6현(絃)으로 된 거문고로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옵니다. 지금부터 약 400년 전 1670년(현종 11)에 박정시(朴廷蓍)가 충청도 태안군수(泰安郡守)로 부임했는데 박 군수가 부임하기 몇 해 전인 1666년부터 이 곳에 군수로 부임하기만 하면 첫날밤에 죽었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거듭하는 동안 이상한 말들이 말에 말을 거듭하여 떠돌았습니다. 이 고을 사람들은 사또가 이상하게 죽어 가는 까닭을 몰라 인심이 극도로 흉흉해지고 사람들은 불안하여 누구나 이 곳으로 부임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형조(刑曹)에서 근무하던 담력과 지략이 뛰어난 박씨가 해괴한 이 사실을 밝혀 민심(民心)을 수습하고자 자원(自願)하여 이 곳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임 첫날 밤, 관복을 정제하고 등촉(燈燭)을 낮과 같이 밝혀 놓고 동헌(東軒)에 정좌하고 있었는데, 삼경(三更)이 되고 인적이 적적할 무렵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휘익 몰아치자 밝혀 놓은 촛불이 일시에 탁 꺼져 버리고 비릿한 피 냄새와 더불어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으며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 통곡하는 소리가 되어 점점 동헌(東軒) 쪽을 향하여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제 아무리 담력이 큰 박 군수도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떨리기 시작하자, 박 군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자리에 앉아 울음소리가 가까워오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앞문이 소리도 없이 열려지면서 울음소리가 동헌 마루 끝에 와서 뚝 끊겨 지더니 동헌 뜰아래에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아래위로 소복(素服)을 한 소녀가 목에 칼을 꽂고 피를 뚝뚝 흘리면서 박 군수에게 얌전히 절을 올리고 있지 않는가? 이때 박 군수는 마음을 가다듬고, “네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역대 군수가 까닭 없이 죽은 것은 네 소행이었구나! 사람이면 이 밤중에 여기에 온 까닭을 고할 것이며, 귀신이라면 사불범정(邪不犯正)인데, 네 어찌 감히 관장(官長) 앞에 이런 꼴로 나타났느냐 ?”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동헌의 대들보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쳐서 꾸짖었습니다. 이에 소녀는 “사람이 어찌 이런 모습으로 이 시각에 나타나겠습니까? 소녀는 틀림없이 귀신이온데, 원귀(寃鬼)가 되어 신원(伸寃)을 하려고 사또가 부임할 때마다 나타났사오나 소녀의 비참한 꼴을 본 전임 사또들께서 마음이 약하여 죽었기 때문에 하소연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다행히 명관을 만나 이런 다행한 일이 없습니다.”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의 설로 “지금부터 5년 전 태안 군수가 된 아버지를 따라 이 고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녀의 미색(美色)을 탐낸 아전 한 사람이 소녀를 겁탈하고 난 다음, 후환(後患)이 두려워서 소녀의 목을 칼로 찌르고 동헌 앞뜰에 있는 수백 년 묵은 저 오동나무 속에 거꾸로 집어넣어 오늘에 이르렀으나 소녀는 원귀(寃鬼)가 되어 썩지도 않고 아직도 그대로 있으니 소녀의 원수를 갚아 주소서” 하는 사연으로 그렇게 할 것을 약속하고 소녀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이튿날 날이 밝자 태안 관아에 있던 아전들이 이번 군수도 으레 죽었으려니 하는 지레짐작으로 장사(葬事)지낼 준비를 갖추고 들어오다가 사또가 생생하게 동헌(東軒)에 정좌하고 있음을 보고 모두 놀라 꿇어 엎드렸습니다. 사또는 명(命)하여 뜰 앞 오동나무를 베어 보니 과연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소녀의 시체가 목에 칼이 꽂힌 채 거꾸로 쳐 박혀 있으므로 그는 소녀의 목에 꽂힌 칼을 뽑고 정성을 다해 장사(葬事)를 지내주고 소녀의 원혼을 달래는 한편, 그녀가 일러준 아전을 살인범(殺人犯)으로 잡아 자백(自白)을 받고 처형하였다고 합니다. 범인을 처형(處刑)하던 날 밤에 박 군수가 꿈을 꾸니 소녀가 먼저와는 달리 깨끗한 소복 차림으로 나타나 무한히 감사드리면서, 이번에 벤 오동(梧桐)나무로 거문고를 만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박 군수는 소녀가 시키는 대로 오동나무를 다듬어 거문고 세 개를 만들고 이러한 사실을 조정(朝廷)에 보고하였더니 조정에서 박 군수의 처사를 칭찬하는 한편, 거문고의 내력(來歷)이 이상하니 두 개만 조정에 보내라고 하여 조정에 올리고, 하나는 간직하였다고 합니다. 청(淸)나라 성조 임금도 이 기괴한 소문을 듣고 한 개를 희망하므로 숙종(肅宗) 임금이 하나를 선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 후, 청렴(淸廉) 강직한 박 군수는 선정(善政)을 베풀고 임기를 마친 후 거문고 한 틀만 안고서 고향인 이곳 금당실(金塘室)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갑 속에 든 이 거문고는 박 군수의 집안과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나 흉(凶)한 일이 일어나면 스스로 소리를 내어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후손(後孫)들은 신비한 이 거문고 이름을 자명금(自鳴琴)이라 하여 대대로 가보(家寶)로 물러오던 중 지금부터 100여 년 전 당시의 세도가(勢道家)였던 양주대감 이유인(李裕寅)이 빌려가서 거문고 뒤를 칼로 뚫어 본 후로는 스스로 우는 일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로 “소녀는 4년 전 이 고을 원의 외동딸인데, 애달픈 사연으로 죽은 몸입니다. 이 곳에서 동북(東北)쪽으로 멀지 않는 곳에 소녀의 무덤이 있는데, 그 옆에 두 그루의 오동나무가 있사옵니다. 그 뿌리가 소녀의 시구(屍軀)에 파고들어 견딜 수가 없사오니 베어 없애주소서” “어렵지 않구나! 그 뿐이냐?” “그리고 그 오동나무를 베시거든 버리지 마시고 거문고를 만드시면 스스로 소리를 내는 자명금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소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기를 천만복원하오며, 다시는 현신(見身)치 않겠나이다.” 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튿날 아침, 문밖이 소란하여 단잠에서 깨어 크게 호령하여, “게 아무도 없느냐? 밖이 왜 이리 소란한고?” 하니 이방을 비롯한 모든 관속들이 새 원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도구를 들고 파랗게 질린 체 잘못을 빌었습니다. 이에 사또는 너그러이 용서하고 태랑(泰娘)이라는 여인에 대해 물으니 오래 있었던 아전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4년 전 고을 원에게 태랑이라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용모가 뛰어나고 마음씨와 행실이 고와 부모는 물론 온 고을의 총애(寵愛)를 독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기구하게도 평민의 아들과 사련(邪戀)이 있어 끝내는 인연(因緣)을 맺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눈치 챈 아버지는 양반의 체통과 귀여운 외딸의 사랑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그들의 정열을 끊을 수 없음을 알고 비밀리에 이를 허락하고 신혼초야(新婚初夜)를 맞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을 원은 자객(刺客)을 보내어 신랑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초야(初夜)의 피곤함과 나른함에 젖어 꿈길을 헤매던 신랑에게 백발의 노인이 현몽(現夢)하여 “잠자리를 바꿔 눕지 않으면 큰 화(禍)를 당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놀라 잠에서 깨어난 그는 신부(新婦)와 잠자리를 바꾸고 잠이 들었는데 그때까지 그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자객은 밤이 깊어지자 지자 이러한 사실도 모른 체 신방으로 들어가 초저녁에 가늠해 둔 신랑의 가슴에 비수(匕首)를 힘껏 찔렀습니다. 이를 본 신랑은 그 즉시 줄행랑을 쳤으며, 이튿날 새벽 신방의 문을 열었던 원은 눈앞에 비친 참상에 아연질색을 하고 뉘우쳤지만 소용없었으며, 알량한 체통으로 인해 사랑하는 딸을 잃은 고을원은 오동나무 곁에 딸을 묻어버리고 근심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병을 얻은 원은 사직(辭職)하고 귀향(歸鄕)하여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연을 들은 원은 그들을 재촉하여 간밤에 말하던 그곳에 찾아가니 과연 오동나무 두 그루가 서 있어 나무를 벤 후 거문고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두 개 중 한 개는 태안군에, 다른 하나는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가져와 자손에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구한말(舊韓末) 당시의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李裕寅)이 빌러 가서 낡은 거문고 줄을 갈아 2년 여간 쓰다가 다시 돌려주었으나 그때 고친 이후부터 스스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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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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