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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900) : 박주운(6)-박주종-박주학(1)(附 용궁면 출신 김만성, 11일 대한민국 사회발전 공헌대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JC특우회 박기학, 23일 우수 개인회원상 수상...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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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운 [專門資料] : 금감의 바침에 대신하여 한 가지 큰 원칙과 아홉 가지 조목에 대한 말을 올린다는 직강 박주운의 상소/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죄인 성세에게 노륙의 법을 시행할 것을 청하는 헌납 박주운의 계/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청화직에 부적절하다는 권응선의 탄핵에 대해 억울하므로 잘못을 고쳐주기를 청하는 칠곡 부사 박주운의 상소/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해 걸군한 홍문관 수찬 박주운의 상소에 대해 회계하는 이조의 계목/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서원을 복원시키라는 명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전 수찬 박주운의 상소/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역적의 주범과 종범을 의금부로 하여금 엄히 국문하게 할 것을 청하는 전 부교리 박주운의 상소/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전 헌납 박주운이 상소를 올려 방어 대책에 대해 아뢰다(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전 부교리 박주운이 상소를 올려 여러 죄인을 엄하게 다스릴 것을 청하다(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아비를 봉양하기 위해 걸군한 수찬 박주운의 상소/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양이를 대적할 계책을 마련할 것을 청하는 전 헌납 박주운의 상소/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진휼에 대한 의견을 진달하는 전 헌납 박주운의 상소/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부교리 박주운에게 속히 올라오도록 하유할 것을 청하는 홍문관의 계/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네 흉적에 대해 조정에서 청한 것을 윤허해 주기를 청하는 전 부교리 박주운의 상소/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부교리 박주운의 상소에 대해, 진달한 내용을 묘당에서 품처하게 하겠다는 비답/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전 헌납 박주운이 언로가 닫힐까 걱정하는 상소를 올리다(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박주운이 상소하여 사당 복구를 청하다(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부교리 박주운이 상소를 올려 신환 등을 처벌할 것을 청하다(daum 2010)
박주운 [專門資料] : 백성들을 구휼할 때의 폐단 등에 관하여 박주운이 상소하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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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종(朴周鍾) : 1813(순조 13)-1887(고종 24),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자는 문원(聞遠), 호는 산천(山泉), 본관은 함양, 이조정랑 종린(從鱗)의 후손, 유학(幼學) 필령(弼寧)의 아들, 주호(周虎, 1821生, 字穆卿, 生員)ㆍ주상(周象)의 형이다. 1863년(철종 14)에 삼정무실(三政懋實) 8조의 대책이 으뜸으로 뽑혀 <주자백선(朱子百選)>과 <아송(雅頌)>을 철종으로부터 받았고, 고종 때 서원이 훼철(1868)되자, 경상도 선비들이 서원을 복원하자는 상소(1877)를 올릴 때 우두머리가 되었고, 1878년(고종 15) 1월 25일 경상도 유학(幼學)으로서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서원의 복설(復設)을 청하였는데, 수업(修業)에 열중하라는 유시(諭示)를 받았다. 자주 관찰사와 암행어사의 추천으로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오르지 않았다. 학문이 깊었고, 문장이 뛰어났다. 그리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고, 충성과 믿음의 길로 기강을 잡아 후진 교육에 힘썼다. 또한 안간힘을 다하여 문집 7권과 <동국통지(東國通志)> 17권, <만학유감(勉學類鑑)> 5권, <향약집설(鄕藥集說)> 1권, <사칠고증(四七攷證)> 등을 저술했다. 묘는 문경시 동로면 수평리 남산촌(聞慶市東魯面水坪里南山村) 뒷골 최중등 여석봉(最中嶝礪石峰)에 있는데, 장례식에 800여 명이 참례하였다.(醴泉郡邑誌 1895, 醴泉郡誌 1939 1988, 嶠南誌 1937, 司馬榜目, 承政院日記 1878.1.25, 日省錄 1878.1.25, 高宗實錄 1878.1.25, 政治日記 1878.1.25, 本朝紀事 卷202, 太皇帝朝 22 1878.1.25, 公車日錄 5 1878.1.25)
박주종 [記事] : 동전집(東田集, 李中均 文集) 14권 8책 중 卷13에 실린 내용이다./ 丘墓文/ 山泉朴公墓碣銘(幷序,1930) 9/ 山泉 朴周鍾의 비문이다. 자는 聞遠이고 咸陽人이다. 중종대 朴從麟이 醴泉 金塘谷에 내려와 세거하였다. 동원 朴重慶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弼寧으로 僉中樞에 올랐고 어머니는 풍산유씨 貞祚의 딸로 유설용의 후손이며 淑夫人의 증직을 받았다. 공은 순조 13년(1813) 출생하였다. 1877년 서원복설 상소를 올릴 때 공이 소두가 되어 50여 일 동안 伏閤하였다. 1887년 사망하였다. 공은 3번 장가들었는데 초배는 淸道 金載熙의 딸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의성김씨 金樂愚의 딸과 의성김씨 金義榮의 딸로 아들은 泰鎭, 鼎鎭, 華鎭, 恒鎭 4명이고 두 딸은 鄭喜?, 金世鎭에게 출가했다. 공의 저술은 『東國通志』, 『勉學類鑑』이 있다.(www.koreastudy.or.kr 2007)
박주종 : 義愍壇이란 무엇인지요?/ 오미봉풀꽃 | 2010-04-06 23:30 | 이 壇은 어떤 뜻에서 설치된 것인지 검색이 안되는군요. 義愍壇이란 무엇인지요?/ ‘의민단(義愍壇)’은 조선 말기에 박주종(朴周鍾, 1813∼1887)이라는 분이 자신의 문중(함양 박씨) 묘역에 설치한 제단(祭壇)입니다. 함양 박씨들 중에 후손이 끊어져 제사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한데 모아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2010-04-06 23:49 | 출처 : 본인작성(daum 2010)
박주종(朴周鍾) : 본관(本貫) 함양(咸陽), 시대(時代) (1813-1887), 자(字) 문원(聞遠), 호(號) 산천(山泉)/ 이력(履歷)/ 함양박씨(咸陽朴氏)를 빛내신 선조(先祖)/ 박주종(朴周鍾)은 상서공(尙書公) 27세 손으로 2파 문원공(文元公) 지빈(之彬)의 1子 장(莊)의 20대손이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문원(聞遠), 호는 산천(山泉), 첨정(僉正) 弼寧(필녕)의 아들. 학문이 깊었고 문장(文章)이 뛰어났다.(daum 2010)
박주종 : <예천 신문 고장의 인물>/ 박주종(1813-1887)은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金塘室) 출신으로, 자는 문원(聞遠), 호는 산천(山泉), 본관은 함양, 중경(重慶)의 증손자이다. 1863년(철종 14)에 삼정(三政)의 실무에 관한 8조의 대책을 임금께 올려 으뜸으로 뽑혀, 철종으로부터 <주자백선(朱子百選)>과 <아송(雅頌)>을 하사받았고, 고종 때 서원이 훼철(1868)되자, 경상도 선비들이 서원을 복원하자는 상소(1877)를 올릴 때 그 우두머리가 되었다. 학문이 깊고 문장에 뛰어나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고 충성과 믿음의 길로 기강을 잡아 후진 교육에 힘쓰기에 자주 관찰사와 암행어사의 추천으로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학문 연구와 서적 저술에 안간힘을 다하였는데, 문집 7권과 <동국통지(東國通志)>17권, <면학유감(勉學類鑑)>5권, <향약집설(鄕約集說)>1권 등을 저술하였다. 무덤은 문경군 동로면 수평리 남산촌 뒷골 최중등(最中嶝) 여석봉(礪石峰)에 있는 데, 장례식 때는 800여 명이 참례하여 애도하였다. <장병창 논설위원>/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주종 : 묘(墓)/ 박주종(朴周鍾) 본(本) 함양(咸陽) 자(字) 문원(聞遠) 호(號) 산천(山泉)/ 문경(聞慶) 금석문(金石文)/ 향토사료 제18집(2006년도 12월 발행. 문경문화원)/ 산천선생 박주종의 묘표(山泉先生朴周鍾의 墓表) : 동로면 노은리 산 7-1/ 余猶及山泉先生朴公之世而未克躬執役於門下唯其仰之如山斗者輿望所歸自有不能不爾者乃於公沒之四十有四年賢孫衍洙甫求爲道文也而行錄來記實也可接而敍也公諱周鍾字聞遠籍咸陽高麗禮部尙書善之後也自尙書而下世有達官顯人逮我中廟時天官郞從鱗惡金安老柄國退居醴泉之金塘谷其四世孫曰廷蓍郡守贈承旨以淸白著又四傳而有曰重慶號東園登第嘗蒙英廟嘉奬有沮之者官止雲山郡守公之曾祖也祖諱漢通通德郞考諱弼寧僉中樞豊山柳氏貞祚之女西厓文忠公后有閨懿行贈淑夫人公以仁陵癸酉生自幼聰潁絶倫上學文理自通看書十行俱下而能記誦無遺又能勤忍耐冷屋寒氈肩背直而坐讀之終日而不知倦發而爲文渾渾乎如江河之流轉而不窮也十八歲參解額厥後屢發解或居魁而不利會圍公不以爲意每入場屋雍容綽裕有欲從傍文句者展券祥示之少無吝色戊午春弟侍讀公周雲爲公會事致書要路一宰而臨場不傳報弟書曰君書之不送循顧初心終不欲詭遇獲禽聞者之自是謝遣外事唯日溫習舊業如恐不及除夕有詩曰一歲工夫任惰荒到來除夕便心忙若將此意推朝暮禹惜湯新暫未忘其警之意亦可見矣以著於行者言之事親有至性僉樞公或時怒不食免冠引慝待進飯亦飯其所居顔堂以深和而銘之其略曰人有吉德事親曰順唯色之難先聖是訓凝莊欠潤毅直違恭毫釐或失終胥兇何以氣和深愛則然若公始可謂服聖訓而知事親之方也夫壬申丁憂公年己六十矣猶哀禮兩至盛暑不脫帶與二弟歡愛無己特小宗子早失持養之十年門族中有嫁娶失特者求媒立室家視如己事接人一意於厚雖其地微有行己之實文雅之尙奬而揚之過旅投宿則曰此淸寒家稀客必使善饋嶺中舊有屛廬之論自相失和公憫之欲爲之調停而不可得然其爲超然自在則非可誣也丁丑一省章甫上疏請復祠院薦公爲疏頭先是疏有刑曹歐擧逐之令駭怖殊甚遠近知舊一辭告以危道公曰禍患之來非所恤伏閣五十餘日承退修學業之批而還丙戌冬疾彌留翼年八月十八日終于寢葬郡東知過谷後移聞慶之礪石峰酉坐公凡三娶淸道金載熙女始爲初配繼以宣城金樂愚女義城金義榮女四男泰鎭鼎鎭出華鎭恒鎭二女適鄭喜默金世鎭泰鎭二男一洙洙女秋敎哲進士鼎鎭嗣以衍洙華鎭三男英洙衍洙出玟洙女趙建永金容植恒鎭一男春洙女金仁容琴容國李在淵金世鎭男準濯餘不盡錄公以英明特達之資早自琢磨凡所著作固己偉矣又因是而進之實地之工居家日用制行罔有愆度一從問學中出來以故先輝發越聲望且然矣談者推之以當世大方無有出公之石者而奈之何州載荊團有司不以充選再入齋郞之薦而一命竟未下是則命也於公何有哉但國家求士而使公虛老於蓬之下可慨也己公旣不試於世性又謙遜不曾抗顔爲人師獨閉門著書以自遣其曰東國志者倣漢書十志加學校選擧百官輿服合十四志爲三十二篇其曰勉學類鑑者採經傳要訓補以宋明先儒之論彙分目列爲二十四篇此皆功力之至到而爲千古不朽之業也銘曰 文足以笙鏞乎王國而命無奈戾行足以領袖乎儒林而標不自揭然而不苟慕乎外而益勤乎礪古人所謂龍見而雷聲者非其實際耶國有志學有鑑又孰云不一試手而後生之不嘉惠我用是銘于隧道庶幾瞻式之無永世/ 庚午 仲秋日/ 眞城後人 成均進士 李中均 謹撰/
<譯文> : 나는 더욱 山泉先生朴公世代에 미처서 몸을 굽혀 門下에서 일을 맡아 하지 못하고 오직 山斗와 같이 우러렀다. 輿望의 돌아갈 바가 있을 적에 스스로 能히 하지 못함이 없었다. 이에 公이 歿한지 四十四年되어서 玄孫衍洙甫가 墓碣銘을 求하기 위해 行錄을 記錄한 것을 가지고 왔다. 받아서 차례로 기록한다. 公의 諱는 周鍾이고 字는 聞遠이고 籍은 咸陽으로 高麗禮部尙書善의 后裔다. 尙書로부터 아래 世代에 達官顯人이 있었다. 我朝에 와서 中廟때에 天官郞從鱗은 金安老가 柄國하니 그것이 미워 醴泉金塘谷으로 退去하여 살게 되었다. 그 四世孫曰廷蓍는 郡守로 贈左承旨로서 淸白吏로 알려졌다. 또 四代를 내려와서 曰重慶號東園으로 登第한 이가 있었다. 일찍이 英廟때 嘉尙한 奬勵의 恩寵을 받았다. 막는자들이 있어서 官은 雲山郡守에 그쳤다. 公에게는 曾祖이시다. 祖諱는 漢通通德郞, 考諱는 弼寧僉中樞, 는 豊山柳氏貞祚의 女로 西厓文忠公後로 부녀의 아름다운 행실이 있었다. 贈淑夫人은 公을 仁陵癸酉年에 낳으시니 어릴 적부터 絶倫하고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文理가 절로 通했다. 책을 보는데 十行을 한꺼번에 읽어 내려가고도 남김없이 다 暗記하였다. 또 부지런히 勞力하고 忍耐하며 冷屋 찬 자리에서도 어깨와 등을 바르게 하여 종일토록 앉아 글을 읽었다. 게으름을 알지 못했고 渾渾한 글을 피웠다. 강물이 흘러 굴러가는 것 같이 막히지 아니했다. 十八歲에 地方試驗에 처음 合格하고 뒤에도 여러 번 合格했다. 혹 수석을 하기도 하였으나 大科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公은 介意하지 아니했다. 번번히 科擧場에 들어갈 적에는 和樂하고 조용히 너그러웠다. 옆에 따라서 글 짓는 것을 보고 하고자 하는 이가 있어 試券을 仔細히 펴서 보이고 조금도 吝嗇함이 없었다. 戊午年봄에 아우인 侍讀公周雲이 公을 爲해 따마침 일로 要路宰相에 편지를 본자리에서 傳하지 아니하고 弟에 알리는 글에서 君書를 보내지 아니하고 초심으로 돌아보고 끝내 하려고 아니했다. 올바른 方法을 하지 아니하고 사로잡으려는 자가 듣고는 바르게 하였다. 이로부터 세상일을 끊어버리고 오직 밤낮으로 하던 일을 익히면서 미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除夕詩에, 一歲工夫任惰荒한해공부 나태하고 거친 대로 맡겨서 到來除夕便心忙섣달그믐 다다르니 마음 바쁜 편일데若將此意推朝暮만약 장차 이 뜻을 아침저녁 밀어주면 禹惜湯新暫未忘 우왕 아쉽고 탕왕 새로워 잠시도 못 잊으리. 그것은 警戒하고 두려운 뜻이다. 또 볼 것은 드러난 일을 한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버이 섬김에는 至性에 이르렀다. 僉樞公이 或時怒氣를 띄시고 상을 받지 아니하면 冠을 벗고 가만히 기다려서 상을 올렸다. 또 드시는 堂을 深和라 이름 새기고 그것을 大略말하면 사람의 吉德은 어버이 섬김에 있다. 오직 화한 기색을 따르기 어렵다. 先聖是訓은 凝重하고 부족한 것은 더하고 恭敬을 毫釐도 어기지 아니했고, 或이라도 끝내 서로 어그러져 나빠져도 잃지 아니했다. 어찌 和氣하고 深愛하면 즉 그러한가. 公이 비로소 聖訓을 익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고, 어버이 섬기는 方法을 알았더라. 壬申年에 喪을 당하니 公의 나이 이미 六十이었다. 더욱 哀禮 양년 간 한더위에 이르러도 띠를 풀지 아니했다. 두 아우와 歡愛는 끝이 없었다. 특히 小宗家에 조실 父로 계(契)를 맺어 가지고 十年길러 느렸고 門族中에 남녀 失婚期者가 있으면 중매로 室家를 세우는 것을 자기일 같이 한 것을 보았다. 接人에는 하나같이 厚이하였고, 비록 그 처지가 미미하여도 자기 행의의 實이 있게 하고 아름다운 고상한 글이 있으면 장려하여 드날리게 하였다. 과객이 투숙하게 된 즉, 이 가난한 집에 드문 객이니 반드시 성의 있게 하도록 시켰다. 嶺中에 옛날 屛廬(병산서원, 여강서원을 말함)의 是非論이 있어서 서로 스스로 화목이 안 되어 公이 민망하게 여겨 調停을 하고자 하였으나 조정을 얻지 못했다. 그 일을 초연히 하며 거기에는 거짓과 기만이 없었다. 丁丑年(1877)에 嶺南선비가 書院복원을 請하는 소를 올리는데 공이 疏首로 추대 되었다. 먼저도 이 소에 刑曹에 命하여 두들겨 쫓으라는 令이 있었다. 놀라고 겁이 남이 특히 심했다. 遠近知舊가 한 말로 告하는데 위험한 길이라 했다.
공이 가로되 하복이 오는 것은 근심할 바는 아니라고 하며, 伏閤五十餘日에 退修學業의 批答을 받았다. 돌아와서 丙戌年겨울 疾이 미류하더니 이듬해 八月十七日돌아가시니, 郡東過谷뒤에 장사지내고 뒤에 문경군 동로 礪石峰酉坐에 移葬했다. 공은 凡三娶를 하셨는데 淸道金氏金載熙女가 初配이고 繼는 宣城金氏金樂愚女이고 다음은 義城金氏金義榮女이다. 四男에 泰鎭鼎鎭出系華鎭恒鎭이고二女適에 鄭喜默金世鎭泰鎭二男에 一洙亘洙女適에 秋敎哲進士鼎鎭嗣甲洙이며 華鎭三男英洙衍洙玟洙고 女에 趙建永金容植恒鎭一男春洙, 女에 金仁容琴容國李在淵金世鎭餘는 不盡錄하다. 公은 英明하고 特達한 자품으로 어려서부터 갈고 닦아 凡所著作한 것은 진실로 거룩하다. 또 이로 인해 나아가는데 실지의 거가공부에도 일용제행 법도에 허물이 있는 것이 없었다. 하나같이 물어 쫓아 배운 가운데서 나와 온 까닭에 先輝를 發越하고 聲望이 또 然하였다 말한 자들이 밀어서 당세의 큰 시각에 공의 오른편에 나오는 이가 없었다. 이에 어찌 무엇 때문에 州載의 荊團을 有司가 뽑아 채우니 아니하여서 거듭 齋郞의 薦望이 있어도 한번도 결국은 命이 내리지 아니했다. 이것이 명운이리라. 公은 어찌 이런 것이 있는가. 다만 국가의 선비를 求해서 公으로 하여금 헛되이 늙어 사립문 밑에 있음을 가이 개탄하게 한다. 公은 이미 시도하지 아니하여도 성품이 또 겸손하고 일직이 교만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스승으로 홀로 문을 닫고 著書로서 스스로의 세월을 보냈다. 其책 東國通志는 漢書十志를 본받아 學校選擧百官輿服을 더해서 合十四志를 三十二篇으로 하였다. 또 其책 勉學類鑑은 經典要訓을 가려 뽑아 補充하여서 宋明先儒의 論을 모아 이를 항목별로 나눠 二十四篇이것은 다 功力의 지극히 이른 것으로 千古不朽의 業이 된다. 銘에 가로되,文足以笙鏞乎글로서는 족히 생용처럼 울렸다(註) 王國而命無奈戾국왕명령 어찌 되돌릴 수 없나 行足以領袖乎행동은 족히 영수다웠다 儒林而標不自揭然유림의 깃발 스스로 들지 아니했나 而不苟慕乎外而益勸乎진실로 사모했다 바깥에서 더욱 권하였다 礪古人所謂龍見담근질한 옛사람 용을 본 바라고 말한다. 而雷聲者非其實際耶벼락 치는 소리 그것이 실제가 아닌가 國有志學有鑑나라에 동국통지가 있고 배울 면학유감 있네又孰云不一試手또 누가 말했다 한번 시험 삼아 잡지 못한다. 而後生之不嘉惠후생의 아름다운 은혜 아닌가 我用是銘于隧道내가 이명 써서 무덤길에 세운다 庶幾瞻式之無贊永世바라건대 바라봄이 오랜 세월 바꿈 없으리/ (註) 동편에 큰 종(鏞) 울리고 서편에(笙) 피리소리 고례약을 말함./ 경오중추 진성후인 성균진사 이중균 삼가짓다.(daum 2010)
박주종 : 이중균(李中均)/ ...上庠. 卷之 3. 書 ; 答族叔國弼(4), 答族姪公善, 上本生大人. 卷之 3. 跋 ; 書族大父艸艸庵公推 卷之 3. 祭文 ; 祭仲祖後溪公. 卷之 3. 遺事 ; 仲祖後溪公. 跋 ; 李中均. 2. 이중균(李中均) 본(本) 진성(眞城) 찬(撰) 박주종(朴周鍾.../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주종 : 학자 朴周鍾 선생의 간찰 1점/ ◈ 학자 朴周鍾 선생의 간찰 1점/ ◈ 크기(가로*세로) : 34 * 24 센티/ ◈ 상태 : 양호한 편입니다./ //kumyo.co.kr(daum 2010)
박주종 : 학자 朴周雲,朴周鍾 선생이 연명으로 쓴 간찰 1점/ ◈ 학자 朴周雲,朴周鍾 선생이 연명으로 쓴 간찰 1점/ ◈ 크기(가로*세로) : 36 * 18 센티/ ◈ 상태 : 양호합니다./ ◈ 박주운(朴周雲) : 1820(순조 20)∼?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 자는 목경(穆卿), 호는 경당(鏡塘). 필녕(弼寧)의 아들이며, 군수 중경(重慶)의 증손이다.생원으로 1852년(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교리를 역임하였다.1864년(고종 1)에 직강으로서 일강구목(一綱九目)을 소진(疏陳)하였으며, 이듬해 부수찬이 되었다.이듬해 헌납을 역임한 뒤 비어책(備禦策)을 소진하였다.1867년 칠곡부사(漆谷府使)로 나갔으며, 1876년에는 화재를 당한 궁전의 수습책을 건의하고, 이듬해는 현사(賢祠)를 다시 세울 것을 청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학문과 지식에 널리 통달하였으며, 수학과 역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역학연고》 2권이 있다./ ◈ 박주종(朴周鍾) : 1813년(순조 13)∼1887년(고종 24).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문원(聞遠), 호는 산천(山泉)./ //kumyo.co.kr(daum 2010)
박주종(朴周鍾) : 함양박씨 관련인물/ 만오/ 2009.04.21 14:42/ //cafe.daum.net/Jongleenpa/OqGX/ 박주종(朴周鍾)/ 시대 조선후기, 본관 함양(咸陽),성 박(朴), 자 문원(聞遠), 호 산천(山泉), 생년 1813, 연령 75, 활동분야 은사 / 1813(순조 13)∼1887(고종 24).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문원(聞遠), 호는 산천(山泉). 증조부는 운산군수(雲山郡守) 박중경(朴重慶)이고,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박한통(朴漢通),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필녕(朴弼寧)이며, 외조부는 유성룡(柳成龍)의 후손인 유정조(柳貞祚)이다. 학행이 순수하고 독실했으며, 문장은 박학하고 웅장하였다. 여러 번 향시에 합격은 하였으나 문과에 급제하지는 못했다. 1863년(철종 14) 삼정(三政)의 실무에 관해 올린 8개의 대책이 으뜸을 차지하여 《주자백선(朱子百選)》·《아송(雅頌)》을 하사 받았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서원 철폐령을 내려 서원을 폐쇄하자, 영남 선비들과 함께 1877년(고종 14) 서원 복원을 위한 상소를 올리는데 앞장섰다. 저서에 《동국통지(東國通志)》·《면학유감(勉學類鑑)》·《사칠고증(四七攷證)》·《향약집설(鄕約集說)》등이 있으며, 유집이 있다.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8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동국통지(類鑑東國通志)》는 단군(檀君) 이래 조선(朝鮮) 순조(純祖) 때까지 한국 역사를 기전체(紀傳體) 형식에 따라, 천문(天文)·오행(五行)·지리(地理)·제사(祭祀)·예악(禮樂)·병위(兵衛)·형법(刑法)·식화(食貨)·예문(禮文)·학교(學校)·선거(選擧)·백관(百官)·여복(輿服)·율력(律曆) 등 14개의 지(志)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역사인식으로는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전통이 고구려(高句麗)로 연결되었다는 이종휘(李種徽)의 영향을 주로 받았으며, 발해(渤海)가 한국 역사상 최전성기였다고 기술한 것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열전(한영우선생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돌베개, 2003), 朝鮮人名辭書(daum 2010)
박주종 : 의민단(義愍壇) 이란?| 세거지,유적지,고향 소개/ 만오/ 2010.04.07 08:53/ //cafe.daum.net/Jongleenpa/ 의민단(義愍壇)/ 의민단(義愍壇)’은 조선 말기에 박주종(朴周鍾, 1813∼1887)이라는 분이 자신의 문중(함양 박씨) 묘역에 설치한 제단(祭壇)입니다. 함양 박씨들 중에 후손이 끊어져 제사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한데 모아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검색을 해보아도 찾지 못해서 다움지식에 문의한 결과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거칠산이라는 분이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풀꽃 박노학>/ 이글은 4파의 무희 씨가 지난해 감로루까지 가서도 묘원을 못찾고 뒤돌아 왔는데 그때 의민단비 뒤의 비문을 보고 단기 4310년(1977년) 박노문이라는 명.../ 어찌어찌 제사를 받겠지만 그 다음 세대본 받을만한 의례인 듯 합니다. 무후한 당대에서야 에서는 받기가 힘들 테니까요!!! 뒷면의 비문을 보았지만 무슨 뜻인 줄 몰랐는데 어렴풋이 알듯 합니다. 비문에는 다른 곳에서 옮긴 듯 하고, 단기 4310년(1977년) 박노문이라는 명.../ 이 의민단은 감노루 마당에서 정랑공묘원으로 가는 길에서 바로 좌측언덕에 설치된 자그마한 제단이 있다. 박주종(朴周鍾, 1813∼1887)은 月山 朴魯國 형님의 고조부시고 학자 山泉 할아버지십니다. 의민단(義愍壇)은 나도 그렇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근래에 와서 정랑공과 감천문씨와의 관계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 세상에 공개가 되지않은 체 은밀하게 전해오고 있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어서 의민단(義愍壇)은 감천문씨들의 떠도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새운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왜?. 문억경(文抑磬)의 묘가 희이동 자좌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정랑공과 같은 좌향이고 우리 문중산이 감천문씨들의 산을 인수받은 것이라고 들었다. 우리는 이 싯점에서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낀다. 40세 초반에 처가살이를 와서 20년도 못살다가 卒하셨는데 그렇게 좋은 묘터를 얻을 수가 있었을까?. 이제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주종 : 한국학 홈 > 역사와 인물 > 역사 속 인물/ 2010.04.06/ ...朴壽彪) 박성형(朴成珩) 박순우(朴淳愚) 박광순(朴光淳) 박손경(朴孫慶) 박중경(朴重慶) 박민경(朴民慶) 박주종(朴周鍾) 박주대(朴周大) 박기룡(朴基龍) 박노상(朴魯相) 박렬(朴烈) 박충식(朴忠植) 박붕린(朴鵬鱗 박붕린(朴鵬鱗.../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주종 : 특별한 인물들/ 2009.06.21/ ...박희재(朴希載)이고, 부는 박성덕(朴成德)이며, 외조부는 김한(金瀚)이다. 《동국통지(東國通志)》를 쓴 박주종(朴周鍾)이 증손이다. 1754년(영조 30) 갑술(甲戌)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22위로 급제했다. 경연에서 강의하였으며.../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주종 [專門資料] : 慶尙道 儒生幼學 朴周鍾 等一萬人上疏請復書院賜批/ 朴周鍾(daum 2010)
박주종 [專門資料] : 『東國通志』「地理志」에 나타난 朴周鍾의 역사지리인식/ 1. 머리말 2. 「지리지」의 구성과 서술 3. 「지리지」 상의 강역인식 1) 단군·기자·위만조선 2) 한산군·한이부·한이군 3) 삼한 4) 삼국 5) 고려 및 조선 6) 지리 고증 4. 「지리지」상의 지리서술 5. 맺음말 : 사학사적 의의/ 朴仁鎬 | 于松趙東杰先生停年紀念論叢刊行...(daum 2010)
박주종 [專門資料] : 上言 朴山泉周鍾代儒林作/ 박주종(朴周鍾)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종 [專門資料] : 行錄/ 박주종(朴周鍾)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박주종 : 正郞公 後孫들의 뛰어난 숨은 人物/ 2007.03.11/ ..., 자는 양직(養直), 호는 직재(直齋), 본관은 함양, 정시(廷蓍)의 후손, 주훈(周勳)의 2자, 산천 박주종(山泉朴周鍾)의 제자, 문사(文辭)가 넉넉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고, 유고(遺稿)가 있다. 묘는 고산리(高山梨) 뒤 홀곡대등 건좌.../ //blog.daum.net/pqwert/ 함양박씨 정랑공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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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학(朴周學) : 구분: 독립운동자공적자료/ 날짜: 1843-03-28/ 분류: 인물 > 독립운동가자료 > 독립운동자공적자료/ 제공: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유공자명(한글) 박주학 유공자명(한자) 朴周學/ 성별 남/ 생년월일 (양)1843년 03월 28일/ 사망년월일 (양)1901년 11월 30일/ 본적 1. 경상북도 예천군 龍門面 大渚里 257/ 독립운동당시 주소 慶北 醴泉 龍門 大渚 257/ 관리번호 961273/ 훈격 건국포장/ 포상년도 2005/ 운동계열 의병/ 소속 및 지위 醴泉義陣 副將/ 공적개요 1896년 1월 前期義兵이 慶北 전역으로 확산될 때 慶北 醴泉에서 醴泉義陣의 副將으로 활동하고, 2월 徐相烈의 湖左義陣 및 安東·禮安·豊基·順興·奉化 등의 義陣과 연계하여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박주학 : 60돌 광복절 독립운동 포상자 명단/ 2005.08.03 | 한겨레/ 광복절 독립운동 포상자 명단> ◇ 건국훈장독립장(6명)=김철수(국내항일) 김태연(〃) 정헌태(〃) 김한(중국방면)한위건(〃) 최... (〃) 김노헌(〃)김두상(〃) 김복철(〃) 박주학(〃) 변인규(〃.../ newslink.media.daum.net(daum 2012)
박주학 : 제60주년 광복절 독립운동 [훈장의 종류]/ 2011.09.05 | Daum 카페/ 건국훈장 독립운동가 214名 포상 건국훈장 독립장 (6名) 김철수(金?洙 국내항일) 김태연(金泰淵 국내항일) 김한(金 翰 중국방면) 정헌태... 국내항일) 박영근(朴英根 국내항일) 박정선(朴正善 3.1운동) 박주학(.../ cafe.daum.net/coronous/7FN9/ 다래의 마을(daum 2012)
박주학 : 독립유공자(공훈록) ㅣ 국가보훈처/ 웹문서/ 어떠한 독립유공자 분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분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배워보세요. 게시글 상세내용 성명 박주학 생존기간 1843. 3.28 ~ 1901.11.30 출생지 경북 예천 운동계열 의병 사망지 훈격(연도) 건국포장 (2005).../ //www.mpva.go.kr(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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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면 출신 김만성, 11일 대한민국 사회발전 공헌대상 수상...축하합니다.
김만성(미성종합체육산업 김만성 代表 : 大韓民國 社會發展 貢獻大賞 '體育産業 發展 貢獻部門' 受賞) [記事] : (사)한국언론사협회(회장 최종욱)가 주최하고 대회조직위원회가 주관한 `2014대한민국 사회발전 공헌 대상'이 2015년 1월 11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체육기자재 체육용구 생산전문업체 미성종합체육산업(주) 김만성(용궁면 출생) 대표가 `체육산업 발전 공헌 부문'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사회발전 공헌 대상은 경제 문화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봉사와 헌신으로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개인 또는 단체를 발굴, 그 공로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공헌상 심사위원회는 `김만성 대표는 한체대겸임교수 체육지도자로, 성공한 체육 기업인으로, 수입의존 체육용품을 자체 개발하고, 산간벽지 학교에 체육시설을 기증했다고 포상 이유를 밝혔다. 김만성 대표(재경용궁면민회장)는 수상 소감에서 “체육산업 발전 공헌 부문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 앞으로도 체육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醴泉新聞 2015년 01월 30일 (금) 11: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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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JC특우회 박기학, 23일 우수 개인회원상 수상...축하합니다.
예천JC특우회(韓國JC特友會, 年次表彰 施賞式 : 優秀 個人會員賞에 醴泉JC特友會 박기학 會員) [記事] : 2015년도 (사)한국JC특우회 정기총회가 2015년 1월 23일 오후 3시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연차표창 시상식도 함께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김인식 경북지구JC특우회 지구회장을 비롯한 예천JC특우회 회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행사에서 우수 개인회원상에 예천JC특우회 박기학 회원, 우수 지구특우회상에는 경북지구JC 특우회, 우수지구특우회 사무처장상에는 송중섭 사무처장이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한편, 김인식 경북지구회장은 2015년 한국JC특우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醴泉뉴스 2015년 0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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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