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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911) : 박철홍(2)-박철환-박춘-박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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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홍 : 직원록자료/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직원록 1936년도/ 조사시기 이름 소속 관직 관등 공훈 참고사항/ 1936 朴哲洪 지방관서 >경상북도 >공립학교 >영순보통학교 >朴哲洪 訓導 8(daum 2010)
박철홍 : 예천동부초등학교 연혁/ 작성 장병창/ 2008.08.23/ ...8.15), 2대 박규상(朴圭相, 1945.9.22-1945. 10.30), 3대 김두성(金斗星, 1945.10.31-1950.12.30), 4대 박철홍(朴哲洪, 1950.12.31-1954.8.30), 5대 윤주오(尹柱五, 1954.8.31-1961.3.30), 6대 김규옥(金圭沃, 1961.3.31-1962.3.7),.../ //cafe.daum.net/yceast/ 예천동부초등학교총동문회(daum 2010)
박철홍 : 예천성당역사(50) : 약진하는 예천본당/ 작성 장병창/ 2004.10.06/ ..., 본당의 57명, 공소의 43명의 영세자도 있었다. 그리고 손진해(孫鎭海) 자카리아 예천 우체국장, 박철홍(朴哲洪) 베드로 교장 등도 영세하였는데, 이들은 나중에 본당 회장까지 하였다. 예천 기관장들이 <가톨릭 시보>(제152호,.../ //cafe.daum.net/yecheonsungdang/ 예천성당(daum 2010)
박철홍 : 예천성당역사(75) : 박철홍 회장의 별세(1966.1.17)/ 작성 장병창/ 2004.11.10/ 1958년 노광명 신부에게 본당 회장으로 임명되었던 박철홍(朴哲洪, 1908-1966) 베드로 회장이 별세하였다. 박 회장은 문경 흑송에서 태어나 예천으로 이거하여 살았으며, 예천읍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었고, 1954년에 신현옥 시릴로.../ //cafe.daum.net/yecheonsungdang/ 예천성당(daum 2010)
박철홍 : 대구사범-경상북도공립사범학교 특과/ 申興洙 全秉崙 孫永鳳 孫命述 鄭奉雲 鄭富來 鄭元培 鄭龍洙 丁泰鎭 白南哲 白雲基 馬淑彦 朴宙陽 朴舜杓 朴圭相 朴哲洪 朴道緖 李又甲 柳時成 劉夢伊 劉洛源 李應鍾 李海出 李實江 李聖烈 李元得 李光朝(大雨) 李斗知 梁小石 林在璣.../ //knusys6.knu.ac.kr(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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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환(박철환 氏 高麗大서 工學博士 學位 取得) [記事] : 용문면 상금곡리 태생의 박용수(54․경기도청 근무) 변혜영(52) 씨의 장남 철환(28) 씨가 2003년 2월 25일 고려대학교(화학공학과)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씨는 생물공학 분야와 환경공학 분야를 접목시킨 ``Enhanced Biodegradation of 2, 4, 6-Trinitrotoluene by Pseudmonas putida'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광운대학교 화학공학과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醴泉新聞 2003-03-06 14:12:43)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일반논문 : 총설 ; 직·간접 석탄액화 기술 동향 (10p)/ 박철환, 박주원... | 한국화학공학회 | 2008(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복합 막분리 공정에 의한 섬유가공 공정에서의 가성소다 회수 (8p)/ 본 연구에서는 섬유가공공정 중 머서화공정으로부터 가성소다액를 회수하기 위한 최적의 운전조건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주요 인자들로는 NF/RO막의 적용을 위해 세라믹 막을 이용하여 파울링 지수를 평가,.../ 박철환, 양정목... | 대한환경공학회 | 2008(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에너지 : 환경 ; 알모늄 기능기와 계면활성제가 포함된 메조포러스 음이온교환수지를 이용한 수용액 중 퍼리네이트(Perrhenate) 음이온 제거 (7p)/ 박철환, 이병환 ... | 한국화학공학회 | 2008(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공정시스템, 이동현상, 화학공정안전 ; 화학 및 화학공학 실험실의 안전관리 시스템 개발 (7p)/ 박철환, 유진환 ... | 한국화학공학회 | 2008(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논문(論文) : 톱밥에 의한 염팩폐수의 흡착처리 (7p)/ 박철환, 김탁현... | 대한환경공학회 | 2008(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논문 : 음식물 쓰레기 및 황토 혼합물의 열분해를 통한 수질정화용 다공성 담체 개발 (8p)/ 박철환, 김상범... | 대한환경공학회 | 2007(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포스터 발표 : 물리·화학적 처리 ; 전기응집 및 분리막 공정에 의한 TAB합성 부산물 처리 (2p)/ 양정목 , 박철환 ... | 대한환경공학회 | 2007(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논문 : 반응성 염료폐수 처리를 위한 화학응집, 펜톤산화, 세라믹 분리막 복합공정의 최적화 (8p)/ 박철환, 양정목 ... | 대한환경공학회 | 2006(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포스터 발표 : 청정기술 ; 분리막 복합공정을 이용한 섬유가공 공정에서의 가성소다 회수 (3p)/ 양정목 , 박철환 , 김상용 | 대한환경공학회 | 2006(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포스터 발표 : 생물학적 처리 ; Na-alginate에 고정화된 Funalia trogii에 의한 Acid Blue 350의 분해 연구 (2p)/ 박철환, 조재훈 , 이준학 ... | 대한환경공학회 | 2006(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포스터 발표 : 하,폐수처리 ; 응집-펜톤산화-분리막 복합공정에 의한 반응성 염료 용액 처리 (3p)/ 박철환, 양정목 , 김현기 ... | 대한환경공학회 | 2005(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염료 합성공정 폐수의 재이용을 위한 막분리 연구 (2p)/ 박철환 , 이두현 ... | 대한환경공학회 | 2003(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반응성염료폐액의 NF 및 RO 막 여과 특성 (2p)/ 박철환, 김탁현 , 양정목 ... | 대한환경공학회 | 2003(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2001 년도 춘계학술연구발표회 논문집 ( 1 ) : 수질분야 ; 정기총회 / 하 폐수 처리 ( 물리화학적 처리 1 ) : 폐수의 전기분해시 화학응집제의 영향 (2p)/ 김탁현 , 박철환 ... | 대한환경공학회 | 2001(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생물화공 에너지 / 환경 : 활성탄을 참가한 연속 회분식 반응조 ( SBR ) 운전에 미치는 중금속 및 Phenol 의 영향 (8p)/ 본 연구에서는 연속 회분식 반응조(sequencing batch reactor, SBR) 활성탄을 첨가한 공정을 대상으로 삼았다. 활성탄이 첨가된 연속 회분식 반응조의 유기물 제거와 중금속이나 난분해성 물질이 미치는 영향을.../ 박철환, 이상훈 ... | 한국화학공학회 | 2000(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트랙 - 에칭한 막가공을 통한 진한 라텍스입자의 제한확산에 관한 실험연구 (7p)/ 좁은 막기공 내에서의 확산이 자유로운 벌크에서의 확산보다 낮아지는 제한확산(hindered diffusion)현상은 용질입자와 기공의 크기는 물론이고 입자의 농도와 이온화 세기(ionic strength)에도 영향을 받는다..../ 박철환, 전명석 , 강은아 , 김재진 ... | 한국화학공학회 | 1999(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반응성 염료폐수 처리를 위한 화학응집, 펜톤산화, 세라믹 분리막 복합공정의 최적화 (8p)/ 본 연구에서는 화학응집, 펜톤산화, 세라믹 분리막 복합공정을 적용하여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반응성 염료의 유기물 및 색도제거 영향을 조사하였다. 화학응집의 경우, $Fe{3+}$ 응집제 농도를 결정하기.../ 양정목 , 박철환 , 이병환 ... | 대한환경공학회(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음식물 쓰레기 및 황토 혼합물의 열분해를 통한 수질정화용 다공성 담체 개발 (8p)/ 본 연구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황토와 혼합하여 고온 열분해 과정을 거쳐 다공성 담체를 제조하고, 이를 하수처리용 담체로 적용하고자 하였다. 이에 열분해 장치를 이용하여 다공성 담체를 제조하는 1단계.../ 박철환, 김상범, 이명화, 김용진 ... | 대한환경공학회(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본 연구에서는 화학응집, 펜톤산화, 세라믹 분리막 복합공정을 적용하여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반응성 염료의 유기물 및 색도제거 영향을 조사하였다. 화학응집의 경우, (TEX)$Fe{3+}$(/TEX) 응집제 농도를.../ 양정목 , 박철환 ... | 대한환경공학회(daum 2010)
박철환 [專門資料] : 본 연구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황토와 혼합하여 고온 열분해 과정을 거쳐 다공성 담체를 제조하고, 이를 하수처리용 담체로 적용하고자 하였다. 이에 열분해 장치를 이용하여 다공성 담체를 제조하는 1단계.../ 박철환, 김상범 , 이명화 ... | 대한환경공학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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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朴椿) : 구분: 한국역대인물자료/ 분류: 인물 > 한국역대인물자료/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박춘(朴椿)/ [요약정보]/ 시대 고려 후기/ 본관 미상(未詳)/ 성 박(朴)/ 성별 남/ 활동분야 항일/국방 / 장군 / 장군/ [상세내용]/ 박춘(朴椿)에 대하여/ ?∼1366(공민왕 15). 고려 말기의 장군/ 1362년(공민왕 11) 김용(金鏞)이 위계를 써서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운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김득배(金得培)를 죽이려 하매, 만호로서 김용의 지령을 받아 이방실을 용궁현(龍宮縣: 지금의 醴泉郡 龍宮面)에서 죽였다. 그해 청주수원도병마사가 되어 홍건적을 방어하였다. 이듬해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으로서 홍건적을 격퇴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어 공신당(功臣堂) 벽에 도형되었다. 1364년 최유(崔濡) 일당이 덕흥군(德興君) 혜(?: 충선왕의 셋째아들)를 왕으로 받들고 요양성병(遼陽省兵) 1만명을 동원하여 침입하자, 서북면도원수 경복흥(慶復興)의 휘하로 도병마사가 되어 강계와 독로강(禿魯江) 등지를 수비하고, 최영(崔瑩)·안우경(安遇慶) 등과 함께 적을 물리치고 개선하였다. 1365년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가 되었는데, 그해 신돈(辛旽)이 권문세족을 제거할 때 이구수(李龜壽)·양백익(梁伯益)·석문성(石文城)·김수만(金壽萬)·이령(李寧) 등과 함께 모함을 받아 광양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열암사(裂巖寺)에서 살해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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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서(<特別寄稿>8.15를 回顧한다 : 몽양 여운형 先生 記念事業會 顧問인 박충서 先生의 懷古) [記事] : 8.15는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이 된 날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필자는 그 당시 대구 상업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 여름 방학으로 예천 집에 와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 더위에 사상범 몇 분이 예천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일제 하에서 사상범이라고 하면 독립운동가를 지칭하는 것이며, 불령선인<(不逞鮮人 : 후데이센진)이라고 하면 일제 통치에 순종하지 않고 불만을 품고 있는 조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혁신적 개혁을 논한다면 ‘색깔이 이상하다’, ‘사상이 불온하다’는 말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8월 14일 아버지께서 나에게 “내일 8월 15일 정오에 중대한 방송이 있다는데, 무슨 일인지 라디오를 들어 보아라”고 말씀하셨기에 나는 8월 15일 아침 11시 30분부터 전축 겸용 라디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윽고 12시가 되자 일본 천황이 떨리는 목소리로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는 것을 일본 국민들에게 알리는 방송이었다. 이 방송으로 태평양전쟁은 끝이 난 것이고,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것이다. 이 방송이 있고 난 다음에 예천경찰서에 갇혀 있던 애국자들은 곧 석방이 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구속된 사람은 김응기(金應基), 한일청(韓一淸), 김상기(金相起) 네 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날 오후 4시경에 누가 어디에서 준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태극기 수십 개를 준비하여 20~30대 청년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지금의 서울약국 옆 보광세탁소, 현대도료 주변에 모였다. 일부 읍민들이 가세하여 100여명 이상의 군중이 모인 것이다. 김응기 선생을 선두로 해방의 기쁨과 독립을 알리는 가도행진(街道行進)이 시작된 것이다. 17세 소년인 필자도 그 대열의 뒤를 따랐다.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를 부르고 때때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지금의 국민은행, 군청, 경찰서를 지나 백병구한의원 자리에서 남본동 상가 도로를 거쳐 동본리 우(牛)시장(지금의 상설시장)에 모여 집회를 가졌다. 그때 애국가는 지금의 애국가와 가사는 같으나 곡조는 스코틀랜드(Scotland)의 민요(올드 랭 사인(And Lang Syne))의 슬픈 곡에 맞추어 불렀다. 우시장 입구에 즉석 연단을 만들어 김응기 선생이 연단에 올라 약 15분간 광복의 기쁨을 연설한 다음, 김 선생의 선창으로 ‘대한독립 만세!’, ‘만국 프롤레타리아(Proletariant) 만세!’를 외쳤다. 그 당시에는 프롤레타리아란 말을 알아듣는 사람을 거의 없었으리라 짐작되지만 김 선생이 만세! 하고 선창을 하면 군중들은 따라서 만세!를 외친 것이다. 며칠 후 읍사무소에 건국준비위원회의 간판이 붙여졌고 2층에 건국준비위원회 사무실 겸 회의실이 마련되었다. 건국준비위원회는 1944년 8월 10일 여운형 선생이 일제 패망을 예측하고 국내 유일의 비밀결사, 즉 독립운동단체인 건국동맹을 결성한 것이다. 그 당시 건국 동맹의 맹원은 전국에 걸쳐 2만 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1945년 8월, 일제는 건국 동맹의 존재를 발견하고 간부들을 체포하였지만 패망이 눈앞에 다가오자 비밀리에 여운형 선생을 만나 협상을 제의하였다.
1945년 8월 14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엔도는 총독부의 권력을 이용하여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대신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었다. 해방이 되자 여운형은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일제로부터 행정권을 이양이 되자 여운형은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일제로부터 행정권을 이양받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예천에서도 건준(建準)이 조직된 것이고, 개포면 금동에 살던 박창호 씨가 해방 직후 잠시 초대 군수에 해당하는 예천건준 위원장이 되었다. 이 무렵 소련이 얄타(Yalta)의 약속대로 8월 9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남하하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38선 이북에까지 주둔하였다. <박충서 선생 약력> : 예천읍 출생, 예천초등(30회) 졸업. 대구상업학교(4년제) 졸업. 영남대 법과 졸업. 대구 대성중ㆍ고 교사, 대창중고 체육교사(1959년), 예천제사회사 상무를 역임했다. 현재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고문. 민족정기선양 상임고문(醴泉뉴스 2011년 08월 24일)
박충서(<特別寄稿>8.15를 回顧한다Ⅱ : 몽양 여운형 先生 記念事業會 顧問인 박충서 先生의 回顧錄) [記事] : 공산주의자였던 김응기(金應箕) 선생은 9월 초에 이북으로 올라가 곧 황해도 인민위원장(황해도 지사)이 되고 박창호 선생을 불러 올려 황해제철소 관리위원장에 임명한 것으로 안다. 김응기 선생은 예천에 있을 때 지금의 달라스 분식 옆 기쁜소리사 자리의 회춘당(回春當)약방의 점원으로 있었고, 그 약방은 예천읍장을 지낸 박영필(朴榮弼) 씨의 아버지의 약방이었다. 그 다음 김훈기(金薰基) 씨가 운영하던 대남인쇄소에서 조판(組版)일을 하다가 8.15 직전에는 황경섭(黃景燮) 씨가 운영하던 비단, 포목상점의 점원으로 있었다. 김응기 씨는 북한 정권의 노동상(노동부 장관), 체코 대사,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국회 부의장), 조선적십자사 위원장 등을 역임한 세계 인명사전에 올려져 있는 능력 있는 유명 인사다. 여기에 덧붙여 말 할 것은 1959년 61년까지 2년간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在日本 朝鮮人 總蓮合會 ; 朝總聯系) 동포가 북송이 이루어지는 동안 김응기 씨와 재일본거류민단총본부 단장 정인석<(鄭寅錫, 예천읍 출신) 씨와 동경에서 비밀리에 만났다는 사실을 정인석 선생이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한일청(韓一淸) 선생은 김응기, 박창호 선생이 이북으로 올라간 후에도 줄곧 예천에 남아있으면서 여운형 선생이 이끌던 인민당 간판을 서울약국 옆 보광세탁소 자리에 걸고 민중의 의식 개혁에 힘썼다. 젊은 청년들은 한일청 선생의 강의를 듣고자 저녁마다 인민당사에 모여들었다. 필자의 작은형도 저녁마다 한 선생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형의 말에 의하면 한 선생은 계몽(啓蒙)이란 두 글자를 흑판에 써 놓고 무려 한 시간 이상을 강의를 하였다고 하니, 한 선생의 학식과 사상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한 선생과 가까이 접한 일은 없지만 그 분의 용모와 풍체에서 풍기는 체취에서 고매한 품위, 인격, 학식을 알 수 있었다. 1946년 10월 1일 남노당이 주동한 폭동(10월 민주항쟁)을 예천 지방에서 일어나려는 것을 만류하면서 예천 지방의 안녕 질서를 지키려 하였다. 그러나 과격한 청년들은 한 선생을 변질자라고 매도(罵倒)하였다니 민중의 지도자이고 애국자이신 한 선생은 얼마나 상심했겠는가! 지금 한 선생을 회고해 보건 데, 한 선생은 몽양 선생의 지도 노선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자유, 평등, 박애의 인본주의(人本主義)에 바탕을 둔 삼민주주의(三民主主義 : 민족, 민권, 민생주의)를 실천하려는 사상가였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해방이후의 정국은 건준(建準)이 주도하였고, 최고지도자는 여운형 선생이었다. 우리 예천지방에서도 건준(建準)과 인민당을 이끌어 나가던 한일청 선생이 정국을 주도하였고 군민들도 한 선생을 받들었다. 그 후 한 선생은 서울에 올라가 한의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인술(仁術)로 구제(救濟)하고 (구)동양한의학 전문학교의 교수로 계시면서 오늘날 한의과대학과 한의학의 기틀을 닦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한일청 선생은 일찍이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 전신)를 졸업하고 민족독립운동에 투신하여 두 차례에 걸쳐 투옥되어 5년형과 1년 6개월형으로 옥로를 치르고, 수껑장사, 두부장사 등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끈질기게 살아갔다. 사람의 이력이나 역사적 사실은 사실대로 알고 기록하고 보편적 진리에 입각하여 사실대로 평가해야 한다. 편협한 자기 잣대로 사람과 역사를 왜곡(歪曲)하거나 자기 생각, 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적대시 한다든가 냉전시대의 색깔론으로 사람과 역사의 평가를 한다는 것은 지양(止揚)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불원 통일이 되면 좌·우(左右) 인사(人士)를 막론하고 조국의 독립화 민족의 통일에 기여한 분들은 응분의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반드시 그 날이 온다는 것을 필자는 믿고 있다.(醴泉뉴스 2011년 09월 28일)
박충서 [記事] : 예천읍 우계리 출신 박충서(朴忠緖, 1926- , 醴泉公立普通學校 卒業, 嶺南大 敎授)의 전문기사이다/ 다양한 사례로 알아보는 초능력의 세계 | 초능력 2009.01.31 20:43/ 샤이 트리니티/ 염력 투시 천리안 심령치료 영청 예지 ESP(초감각적 지각) 등의 초능력이 우리나라에서 학문탐구의 대상이 될 날은 언제쯤일까. 자신을 보호하는 영혼과 대화를 나눴다는 소크라테스나 빅토리아여왕, 위기에 처한 나라를 신의 능력으로 구했으면서도 마녀로 몰려 숨진 잔 다르크, 자신을 찰스대제의 환생이라고 말하곤 했다는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현재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축지법으로 민정을 시찰했다는 숙종 임금이나, 일본사신으로 건너가 耐火力을 발휘한 사명대사, 그림 속으로 사라졌다는 김시습의 이야기들도 같은 맥락에서 다를 바 없다. 서구의 학자들이 소수 목격자들 사이에만 떠돌던 초능력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하인즈빌사건이 계기가 됐다. 1948년 미국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억울하게 타살돼 지하실에 묻힌 행상인의 영혼이 그 집에 이사 온 사람들에게 제대로 장사를 지내달라고 교신한 내용이다. 이 교신장면이 공개적으로 입증되면서 구미 각국에 현재의 심령과학 및 학회 연구소 같은 모임이 속속 생겨났다. 한 보고서는 지난 70년대까지 전 세계에서 30개국에 2백 개 이상의 초능력 연구소와 연구단체가 생겨난 것으로 파악했다. 물론 1882년 캠브리지대학의 학자들이 영국 심령연구협회를 만들고,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심령연구소가 창립됐지만 학문의 싹을 틔울 수 없었다. 단지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노스트라다무스(프랑스.1503~1566) 스웨덴 보르그(스웨덴.1688~1772) 허도손(미국.1836~1910) 에드가 케이시(미국. 1877~1945) 등 불가사의한 능력을 보인 초능력자들이 명성을 날렸지만, 심령과학의 탄생을 준비한 정도였다. 초능력이 과학의 이름으로 일반에 제법 알려진 1978년, 미국방정보국(DIA)은 구소련이 심리조작기술을 개발해 상대국 정치지도부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이색주장을 내놓았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소련이 인간의지의 제어기술을 전략무기로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의회에 보고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주장은 미시간대학의 사회학과교수 마셀로 트러지에 의해 연구됐다. 그는 "초능력은 앞으로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단정했다. 소련의 연구는 미국의 안전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구소련 출신 과학자 마린 이본느는 '심령무기 위협인가, 환상인가?'라는 저서에서 이 같은 주장들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구소련은 인간의 뇌를 탐지조작이 가능한 장치로 보고 있으며, 이미 초감각 능력을 개발해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고 밝힌 것이다. 미 CIA는 틀어지 박사의 연구가 진행 중일 때 스탠퍼드대학 연구소에서는 초능력자 스완과 프라이스를 실험에 동원, 엄격히 통제된 미국의 극비군사 시설을 정확히 묘사하고 소련과 중국의 산맥 깊숙이 감춰진 군사시설을 상세히 알아낸 것을 첩보원을 통해 확인했다. 이를 지켜본 국방관계자들은 "젠장 이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하고 탄식했다.
구소련은 안드로포프가 KGB의장에 취임한 1967년 5월부터 초심리학연구를 국가기밀사업으로 정했다. 텔레파시·마인드 컨트롤·최면술 등이 집중연구의 대상이었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도 연간 6백만 달러를 초심리전략기술개발에 투자한 사실이 최근 서방언론에 보도돼 강대국사이에 불꽃 튀는 심령전쟁의 수위를 짐작케 했다. 미.소 양국의 '심령전쟁'에 얽힌 보고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980년 12월 미 육군전문지 Military review지에 실린 '心力에 의한 새로운 전쟁'의 글도 그중 하나이다. 필자 알렉산더는 * 염력으로 조절되는 병기 시스템이 지구상에 있고, 그 치사능력도 실증됐다 * 원격 질병치료에도 사용 가능하다 * 텔레파시 최면술로 어떤 사람에게 특정 프로그램을 심어 스파이활동을 하게 할 수 있다. *사이코트로닉스(Psychotronics) 병기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명백하며, 불확실한 것은 그 실효성 정도다 라고 주장했다. 같은 호 잡지에서 베아드는 또 '소련의 사이코트로닉스병기'라는 글을 통해 "미군내의 일부 질병은 소련의 광자 배리어(barrier) 변조기에 의한 것이며, 1963년 미국의 원자력잠수함 스레샤호의 침몰도 '초공간 증폭기'를 소련이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알렉산더는 금세기 최고의 초능력자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유리겔라가 염력으로 굽힌 스푼과 포크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물리적인 힘으로 파괴했을 때와 다른 파괴현상을 보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초능력의 연구가 서구과학의 한계에서 출발했고, 그 회귀선상에 동양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심령과학자들은 중국을 주요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daum 2009)
박충서 : 다양한 사례로 알아보는 초능력의 세계/ 2009.01.20/ ...초능력에 관심을 보인 것은 지난 84년 대구 에서 대한초능력학회가 생긴 것이 계기가 됐다. 학회결성을 주도한 朴忠緖 前영남대의대 교수(신경과)는 \"서양의학으로 손 쓸 길 없는 불치 난치병환 자를 치료할 방도를 찾아 나선 것이.../ //cafe.daum.net/artanis/ 우주일년 129600년(daum 2010)
박충서 : 심령연구 - 우리나라에도 초능력을 연구하는 기관이 있나요???/ 2004.11.11/ ...초능력에 관심을 보인 것은 지난 84년 대구에서 대한초능력학회가 생긴 것이 계기가 됐다. 학회결성을 주도한 朴忠緖 前영남대의대 교수(신경과)는 서양의학으로 손 쓸 길 없는 불치 난치병환자를 치료할 방도를 찾아 나선...(daum 2010)
박충서 : 검색식 : 朴忠緖/ 검색결과 : 총 3 건 [ 단행본(TextBook):3 ]// 서명 : 神經學/ 저자 : 朴忠緖 編著 발행처 : 고문사/ 발행년도 : 1983 청구기호 : WL100 박85ㅅ/ 자료상태 : 소장 중// 서명 : 神經病鑑別診斷學/ 저자 : 朴忠緖 著 발행처 : 培英出版社/발행년도 : 1989 청구기호 : WL141 박817ㅅ/ 자료상태 : 소장 중// 서명 : 神經診斷學/ 저자 : 朴忠緖 발행처 : 영남대학교출판부/ 발행년도 : 1989 청구기호 : WM75 박817ㅅ/ 자료상태 : 소장 //lib.kosinmed.or.kr(daum2010)
박충서 : 대한초능력학회 관련기사/ ...초능력에 관심을 보인 것은 지난 84년 대구에서 대한초능력학회가 생긴 것이 계기가 됐다. 학회결성을 주도한 朴忠緖 前 영남대의대 교수(신경과)는 "서양의학으로 손 쓸 길 없는 불치 난치병환자를 치료할 방도를 찾아 나선 것이 학회.../ //blog.naver.com(daum 2010)
박충서 : [미스테리]다양한 사례로 알아보는 초능력의 세계/ 2009.01.31/ 초능력에 관심을 보인 것은 지난 84년 대구 에서 대한초능력학회가 생긴 것이 계기가 됐다. 학회결성을 주도한 朴忠緖 前 영남대의대 교수(신경과)는 "서양의학으로 손 쓸 길 없는 불치 난치병환 자를 치료할 방도를 찾아 나선 것이.../ //blog.daum.net/mist123/ 도플갱어(daum 2010)
박충서 : 대창80년사:중고병설시대(29) 송원선생논문집-영풍수련장입소/ 작성 장병창/ 3달전, 2011년 1월 27일 (목)/ 청탁 방명(芳名) : 임경빈(任慶彬), 김명회(金明會), 김경한(金慶漢), 김태한(金泰漢), 박충서(朴忠緖), 신국환(辛國煥), 신영우(申榮佑), 양창영(楊昶榮), 장회익(張會翼), 정연우(鄭然友).../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박충서(“韓半島 平和 이루면 더 바랄 게 없어”) [記事] : 팔순 고령의 통일운동가 박충서(82) 씨에게 한국전쟁 60돌인 2010년 휴전협정일(7월 27일)을 맞는 감회는 어느 때보다 씁쓸하다. “통일까지는 못 보더라도,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을 실천하는, 평화정착 단계까지만 봐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 이후에는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민족문화의 바탕 위에 제대로 된 나라를 가꾸어 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 19일 몽양 여운형 선생 63주기 추도식에 다녀왔다는 그가 번듯한 감투 한번 욕심낸 적 없이 한평생 통일운동에 몸을 바치게 된 계기는 바로 몽양의 연설이었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 닭고기, 돼지고기를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육회로 먹을 수 있는 질 좋은 소고기만 반찬으로 먹었다. 경북 예천에서 이름난 부잣집의 7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나 남부러울 게 없이 자랐다. 배고픔이 일상이던 시절, 굶주리는 이웃을 돌아볼 줄 몰랐던 그는 대구대(지금의 영남대) 2학년 때 대구 달성공원에서 몽양 선생의 강연을 들으면서 비로소 눈이 뜨였다. “자리를 떠날 수가 없을 만큼 강렬한 메시지를 받았어요. 참 옳은 말씀이셨습니다.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또렷하게 보여주셨지요.” 박씨는 곧바로 몽양 선생이 이끌던 근로인민당을 찾아가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부잣집 도련님’이 이른바 ‘우국청년’으로 거듭난 것이다. 1947년 몽양 선생이 비명에 가신 뒤 잠깐 옥살이를 하며 고초를 당했지만 그는 “내세울 만한 고생도 못 된다”며 말을 아꼈다. 그렇게 민족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던 22살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북쪽으로 올라가 인민군으로 만주까지 건너갔다가, 거제수용소에서 2년 동안 포로로 갇혀 지냈다. 그는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회고했다. 전후 혼란기에는 대구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당시만 해도 귀하던 자전거를 장만해 를 배달하면서 ‘민족통일’을 꿈꿨다. 그런데 조용수 사장이 ‘간첩’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면서 석 달 만에 일을 접어야 했다. 덤으로 석 달 동안 옥살이도 했다. 인혁당 사건 때 도예종 선생 등과 가까이 지내며 뜻을 함께했지만, 다행히 화는 면했다. 10여 년 전 귀향해 정착한 그는 여전히 나홀로 통일운동을 한다. 이발소에 가면 이발사에게, 식당에 가면 식당 주인의 눈높이에 맞춰 ‘통일’을 얘기한다. 몇 해 전부터는 20년 동안 복역하고 출소한 아흔 고령의 비전향 장기수 한 분을 예천으로 모셔와 집을 마련해주고, ‘형님, 아우’ 하며 지낸다. “전쟁 통에도 살아남고, 시국사건 때마다 언저리에 있었지만 운 좋게 여든을 넘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박씨는 “먼저 간 이들의 몫까지 다 짊어지고 있으니,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며 웃었다.(박주희 記者 한겨레新聞 201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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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