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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921) : 박홍린(3)-박홍진-박화수-박후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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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린 [記事] : 중종실록 86권/ 중종 32년(1537 정유 / 명 가정(嘉靖) 16년) 11월 2일(정축) 1번째 기사/ 관반․원접사․도제조․평안도 관찰사 등을 임명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ꡒ이번에 천사(天使)가 반드시 나올 것이니, 관반(館伴)과 원접사(遠接使)를 할 수 없이 복상(卜相)한 뒤에 차출해야 하겠다. 지금 들으니, 의정부(議政府)가 합좌하였다고 하는데 사관(史官)을 보내어 의정부에서 복상하게 하라. 전에는 유보(柳溥) 가 사옹원 도제조였었는데, 지금은 유보 가 우의정이 되었으니, 그대로 제조의 임무를 맡길 수가 없다. 그리고 모름지기 품계가 높은 사람으로 대신하게 해야 할 것인데, 이번에 관반과 원접사를 차출하면 그 밖에는 도제조가 될 만한 자가 없으니, 판윤 윤임(尹任) 을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올려 제수하여, 사옹원 도제조로 차정(差定)하라. 무릇 제조를 겸임하는 자는 삼사(三司)의 인원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법이 《대전(大典)》에 실려 있으니, 오늘 정사(政事) 때에 자세히 살펴서 시행하도록 정청(政廳)에 말하라. 평안도 관찰사는 지금 이미 임기가 만료되었으니, 오늘 마땅히 차출해야 할 것이다. 강현(姜顯)을 단망으로 차정하여 조사(朝辭)는 하지 말고 부임하게 하라.【이때 강현은 사은사(謝恩使)로 북경(北京)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강현은 여러 달 북경에 가 있었는데, 조사 없이 부임하게 하는 것은 미안한 듯하다. 그러나 가족도 데려갈 만한 곳이니, 해로움이 없을 것이다. 강원도 관찰사도 오늘 마땅히 차출해야 하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으니, 채세걸(蔡世傑)을 단망으로 차정하는 것이 좋겠다. 오준(吳準)과 박홍린(朴洪鱗)은 모두 김안로의 당파로서 모두 청현직에서 체직되었으나 이 두 사람의 소행은 크게 차이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뒤에 다시 추론(追論)하여 홍린은 성문 밖으로 쫓아냈고 오준은 다시 거론하지 않았으니, 오준의 죄는 가벼운 듯하고 또 오준은 과거에 육경(六卿)을 지낸 자이다. 심언경도 영원히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니 아울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차임하라. 또 지금 허경의 초사를 보니, 비록 권예와 윤임이 편지를 주고받은 일을 이것저것 끌어대어 그 말이 조리는 없으나 대개는 승복하였다. 그리고 허경이 스스로 저지른 것이 아니고 모두 허항의 사주를 따른 것이니, 형추(刑推)는 하지말고 시추(時推)로 조율할 것으로 판부하라.ꡓ 【허경의 두 번째 공초는 이러하였다. ꡒ허항이 저에게 말하기를 ꡐ 윤원로가 한 말을 양사(兩司)가 모두 알고 대신도 다 알고 있으니, 근간에 반드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지난번 작서(灼鼠)의 변(變)이 있을 적에 양사와 홍문관이 즉시 논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파직되었는데, 오히려 파직된 것이 가볍다고 하였다. 너도 논사(論思)하는 자리에 있으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다.ꡑ고 하므로, 제가 대답하기를 ꡐ이는 큰일이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으나 다만 양사가 다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고, 본관(本館)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ꡑ고 하였습니다. 허항이 또 편지를 내놓고 ꡐ이것은 권예가 보내온 것이다.ꡑ 하고, 허항이 또 말하기를 ꡐ 윤원로의 말을, 윤임이 역시 채낙(蔡洛)에게 말하였고 권예도 오늘 아침에 또 사람을 보내어 「이 일을 내가 양연(梁淵)을 만나 말하겠다.」고 하였으니, 이렇게 본다면 그 일은 반드시 오늘내일 사이에 터질 것이다.ꡑ 하였습니다. 권예의 편지에 ꡐ 윤원로 등이 병아(兵亞)․병헌(兵憲)을 소굴로 삼아 밤낮으로 모여서 모의한다.ꡑ고 하였으므로, 제가 허항에게 ꡐ이른바 병아․병헌이란 누구인가?ꡑ 하니, 허항이 대답하기를 ꡐ병아는 병조참판 윤안인(尹安仁)이고 병헌은 참의 황헌(黃憲)이다. 이같이 안팎에 없는 말을 만들어 내어 퍼뜨리니, 그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 죄를 논계하여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다음에야 상께서도 사림에 없는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ꡑ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ꡐ 윤원로가 윤임을 보고 「중전(中殿)이 동궁(東宮)을 박대하였다는 말은 사림에서 나온 것인데, 너는 왕실의 지친(至親)으로서 그렇지 않음을 환하게 알면서 어찌 사림에게 분명히 변명하지 않는가?」라고 했다.ꡑ 하였는데 허항이 또 말하기를 ꡐ그 말을 성윤(成倫)에게 말해 주려고 오늘 새벽에 사람을 보내어 불렀더니, 술에 취해서 오지 않았다.ꡑ고 하고 또 말하기를 ꡐ 윤원로가 만약 윤임에게 말하였다면, 윤임이 어찌 숨기고 있겠는가. 양사와 본관(本館)이 논계한 뒤에 만약 임금을 면대(面對)하게 되면 반드시 윤원로가 윤임에게 한 말을 계달(啓達)할 것이다.ꡑ 하였습니다. 또 허항이 말하기를 ꡐ윤임이 「만약 상께서 하문(下問)하면 비록 감옥에 가더라도 윤원로가 한 말을 마땅히 사실대로 아뢸 것이다.」고 하더라.ꡑ 하였습니다. 저는 허항의 그러한 말을 믿지 않았으므로, 20일 번을 들었을 때도 말하지 않았다가 양사(兩司)가 예궐(詣闕)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동료를 모아 놓고 비로소 말을 꺼내 논계하였을 뿐입니다. 만약 서로 대화한 일이 있다면 조옥에서 추문할 때에 숨겼을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제가 가서 허항을 만나본 것은 화가 두려워서였지 별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ꡓ 한차례 신장(訊杖)을 가하자 또 다음과 같이 공초하였다. ꡒ다시 기억해 보니, 그날 제가 허항에게 ꡐ이 일은 마땅히 대신이 조처할 일이지 우리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ꡑ고 하였더니, 허항 이 말하기를 ꡐ요즈음 그와 같이 큰일은 반드시 대간과 시종이 먼저 발의(發議)한 다음에 대신이 따라서 논계하는 것이다. 윤임 이 이미 김근사와 김안로에게 말해 주었으므로, 그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ꡑ고 하므로, 제가 묻기를 ꡐ그러면 삼공이 다 알고 있는가?ꡑ 하니, 허항이 말하기를 ꡐ윤은보(尹殷輔) 만 모르고 그밖에는 다 안다.ꡑ고 하였습니다. 허항이 또 ꡐ 채무택(蔡無擇)의 어머니가 사람을 보내어 「무택이 근간에 서울에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채무택도 알고 있을 것이다.ꡑ고 하고, 또 말하기를 ꡐ대간과 시종 중에서 만약 먼저 발의를 하면 대신이 마땅히 육조(六曹)를 거느리고 적극 논계하기로 이미 의논이 되어 있다. 옥당(玉堂)이 먼저 발의를 하더라도 반드시 의심이 없을 것이다.ꡑ라고 하였을 뿐이고 다른 사연은 없었습니다.ꡓ 두 차례 가형(加刑)하였으나 앞의 공초 대로였고 승복하지 않았다. 의금부에서 한 번 더 가형하기를 청하니, 조율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8책 12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9)
박홍린(朴洪鱗) : 본관(本貫) 함양(咸陽), 시대(時代) (1480-1555), 자(字) 자운(子雲), 이력(履歷)/ 함양박씨(咸陽朴氏)를 빛내신 선조(先祖)/ 박홍린(朴洪鱗) 성종 11(1480)-명종 10(1555) : 상서공(尙書公) 16세 손으로 2파 문원공(文元公) 지빈(之彬)의 1子 장(莊)의 9대손(문제공 충좌(忠佐) 8대손)이고 행정공 눌(訥)의 세째 아드님으로 정랑공 종린(正郞公 從鱗)의 형님이다. 자(字)는 자운(子雲)이시고 호(號)는 용암(龍庵)으로 안동인 권갑손(權甲孫)의 사위이다. 경북 상주시 함창(咸昌)에서 태어나시어 경북 예천군 용문면 능천리 능내(能內)로 옮겨 살았다. 중종(中宗) 5(1511)년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셨고, 중종 17(1523)년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뽑혔고,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정6품),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정6품), 홈문관 부교리(副校理:종5품), 홍문관 교리(校理:정5품),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정5품),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정5품), 사헌부 장령(掌令:정4품), 사헌부 집의(執義:종3품), 사간원사간(司諫:종3품), 홍문관 직제학(直提學:정3품),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정3품), 승정원 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정3품), 승정원 도승지(都承旨:정3품),사헌부 대사헌(大司憲:종2품), 공조 참판(工曹參判:종2품), 예조 참판 (禮曹參判:종2품, 1537.8.23)에 올랐으나. 그해(1537) 11월 3일에 김안로 당(金安老黨)이라고 하여 벼슬이 삭탈되었고 종중 33(1539)년 3월에 흥양(興陽)으로 귀양을 갔다. 명(明) 나라 사신들과 창주한 시문집(詩文集)인 <황화집(皇華集)>에 시문이 실릴 만큼 문학이 깊었다.// [中宗實錄 61卷] : 1528년 4월 16일 홍문관 교리 박홍린이 아버지의 상사(喪事) 만난 것을 승정원에서 왕에게 아뢰니, 준례(準例)대로 부의(賻儀)하라 전교(傳敎)하였다.// [中宗實錄 70卷] : 1530년 12월 11일 시독관(侍讀官) 박홍린이 아뢰었다. “근자에 예교(禮敎)가 밝지 못하고 인심이 예스럽지 못하여 명분을 간범(奸犯)하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선 그 한 가지 일을 들어 말한다면, 무뢰한 서얼(庶孼)의 무리가 과장(科場)에 드나들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자도 있으니 명분에도 온당치 않고 국가를 속인 처사가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박운(朴雲, 朴元宗의 庶子)과 같은 자는 거처가 지나치게 사치스러워 궁궐에 비할 만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얼첩(孼妾)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이 차마 할 수 있는 일입니까?“ 하였다. 중종 28(1534) 8월 10일에 김안로(金安老) 등이 왕에게 아뢰기를, 박거린(朴巨鱗) 등 형린(亨鱗), 홍린(洪鱗), 붕린(鵬鱗), 종린(從鱗) 5형제가 등과(登科)하였으니, 그 부모를 추증(追贈)해야 되는데, 부모를 추증하는 일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다만 작(爵)을 추증한다고만 하였을 뿐 옛 예가 전혀 없습니다. 하니, 왕이 전교하기를 “5형제가 등과한 부모를 추증하는 일은 전례에 따라 하라.” 하였다.// [中宗實錄 84卷] : 1537년 6월 21일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안로가 부제학 소봉(副提學蘇逢)을 사주하여 대간(臺諫)을 논박케 한 다음 박홍린 등을 대간에 제수하였으니 모두 그의 처족인 것이다.“// (中宗實錄 57권(1526.8.8) 58권(1526.12.1 1527.6.6 1527.6.27 1527.8.12), 70권(1531.1.12 1531.1.23 1531.2.19) 71권(1531.10.23 1531.10.25) 72권(1531.11.1 1531.11.23 1532.12/7 1532.12.26 1533.5.5) 76권(1533.12.2. 1533.12.19 1533.12.23) 77권(1534.8.10. 1534.9.22 양양지 1661, 군지 1780 1786 1939) → 예천신문 논설위원 장병창의 글 참조(daum 2010)
박홍린 : <예천 신문 고장의 인물>/ 박홍린(1482-1555)은 용문면 능천리 능내(能內) 마을 사람으로, 자는 자운(子雲), 호는 용암(龍庵), 본관은 함양, 눌(訥)의 셋째 아들이다. 1510년(준종 5)에 진사가 되고, 1522년(중종 17)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뽑히어 검열로서 벼슬을 시작했다. 그 후 정언(1526), 수찬(1527), 부교리(1528), 교리로 승진하였다. 다시 헌납(1530), 지평(1531), 장령(1533)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1533년(중종 28) 8월 10일에 김안로 등이 임금께 아뢰기를, "박거린(朴巨鱗), 형린(亨鱗), 홍린(洪鱗), 붕린(鵬鱗), 종린(從鱗) 등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였으니, 그 부모의 벼슬을 추증(追贈)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박홍린의 아버지는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박홍린은 그 후에도 벼슬에 승진을 거듭하였다. 집의, 우부승지(1534), 직제학을 거쳐 대사간(1534), 도승지(1536), 대사헌(1537), 공조 참판, 그리고 현재 교육부 차관에 해당되는 예조 참판에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러나 반대파 사람들은 박홍린의 이러한 승진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때마침 1537년(중종 32) 10월에 김안로 사건이 터졌다.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쫓아내려다가 사형 당한 사건이었다. 반대파에서는 이 사건에 박홍린을 강제로 연루시켜 그해 11월에 벼슬을 삭탈하고 서울 밖으로 추방하였다. 그리고, 1538년(중종 33) 3월에는, "나쁜 모임을 만들어 악한 짓을 했다."라는 죄명을 더 만들어 전라남도 고흥군 흥양(興陽)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박홍린에 대한 임금의 사랑은 여전하였다. 박홍린이, "살던 집이 있는 이웃 고을로 귀양 장소를 옮기기"를 원하자, 임금은 쾌히 승락하였다. 그렇지만 반대파에서는 1541년(중종 36) 5월 18일에 임금께 아뢰기를, "박홍린의 귀양 장소를 옮기라고 명령하니, 여론이 해괴하게 떠돕니다."라고 하여, 임금의 뜻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 후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예천에 와서 살았다. 부인이 용문면 성현리 중마에 살던 권갑손(權甲孫)의 딸이기에, 처가에서 가까운 용문면 능천리 능내에서 여생을 마쳤다. 명나라 사신들과 시를 지어 사귈 만큼 문학이 깊었다. <장병창 논설위원>/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홍린 : <국조 문과 방목>/ 박홍린(朴洪鱗)/ 중종(中宗)17년(1522년), 식년시(式年試) 병과16(丙科16)/ > 인적사항 자(字) 자운(子雲), 본관(本貫) 함양(咸陽)/ > 가족사항 부(父) 박눌(朴訥), 조부(祖父) 박소종(朴紹宗), 증조부(曾祖父) 박이경(朴而敬), 외조부(外祖父) 김계행(金係行), 형(兄) 박형린(朴亨鱗)/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510(경오) 진사시, 전력(前歷) 진사(進士), 관직(官職) 홍문관/정자 ,호당(弘文館/正字 ,湖堂), 대사헌(大司憲)(daum 2010)
박홍린(朴洪鱗) : 전고대방(典故大方) 호당록(湖堂錄)/ 중종18년(1539)/ 이행(李荇) 12, 윤풍형(尹豊亨):감사 칠원인, 허백기(許伯琦):참판 김해인, 민제인(閔齊鱗):찬성 여흥인, 송인수(宋麟壽):대헌 은진인, 홍서주(洪敍疇):충감 남양인, 허항(許沆):이참 양천인, 주세붕(周世鵬):참판 상주인, 허자(許磁):찬성 양천인, 박홍린(朴洪鱗):대헌 함양인, 최연(崔演):판윤 江陵인, 엄흔(嚴昕):한림 영월인, 홍춘경(洪春卿):감사 남양인(daum 2010)
박홍린 : 함양 박씨/ 박습(朴習)은 원렴(元廉)의 손자로 태종 때 전라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김제의 벽골제를 쌓아 송덕비가 세워지기도 했으나 세종 즉위년 병조판서로 <강상인(姜尙仁)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고, 그의 아들 박의손(朴義孫)은 자결하고 말았다. 이로부터 함양박씨는 한동안 쇠운 을 맞이한 듯하다가 조선조 중기에 <향오린(鄕五鱗), 경팔립(京八立)>이 나와 활기를 되찾는다. <향오린>이란 함양군(咸陽君) 박전(朴琠)의 6대손 눌(訥)의 다섯 아들인 거린(巨鱗), 형린(亨鱗), 홍린(洪鱗), 붕린(鵬鱗), 종린(從鱗)을 말하고, <경팔립>은 박세영(朴世榮)의 세 아들 대립(對立), 사립(私立), 희립(希立)과 박세무(朴世茂)의 세 아들 소립(素立), 응립(應立), 성립(成立), 그리고 박세옹의 두 아들 정립(定立), 명립(名立)의 8종항간을 말한다. 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각각 현직에 있으면서 가문을 크게 빛냈다. 그 중 박대립은 의손(義孫)의 현손으로 선조조에 부제학, 대사헌, 형조, 호조, 이조의 판서를 거쳐 좌찬성을 지냈다. 그리고 대립의 아버지 박세영은 중종 때 돈령부 도정으로 글씨를 잘 썼고, 세영의 아우 박세무는 군자감정을 지냈으며 초학자가 읽는 <동몽선습(童夢先習)>을 편찬했다. 중종 때 문과 에 급제, 호당을 거쳐 대사헌을 지낸 박홍린(朴洪鱗), 영조 때 무장 으로 총융사, 어영대장 등을 지내고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분무공신 박찬신 등도 유명한 인물들이다.(daum 2010)
박홍린 : 김가원(金可遠)/ 은진인, 홍서주(洪敍疇) : 충감 남양인, 허항(許沆) : 이참 양천인, 주세붕(周世鵬) : 참판 상주인, 허자(許磁) : 찬성 양천인, 박홍린(朴洪鱗) : 대헌 함양인, 최연(崔演) : 판윤 江陵인, 엄흔(嚴昕) : 한림 영월인, 홍춘경(洪春卿) : 감사.../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홍린(朴洪鱗)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중종(中宗) 17년, 과거시험연도 : 1522 임오,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16(丙科16)/ [인적 사항] 성명(姓名) : 박홍린(朴洪鱗), 자 : 자운(子雲), 본관(本貫) : 함양(咸陽)/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510(경오) 진사시, 전력(前歷) : 진사(進士), 관직(官職) : 홍문관/정자, 호당(弘文館/正字,湖堂)/ [가족사항] 형(兄) : 박형린(朴亨鱗), 부(父) : 박눌(朴訥), 조부(祖父) : 박소종(朴紹宗), 증조부(曾祖父) : 박이경(朴而敬), 외조부(外祖父) : 김계행(金係行)(daum 2010)
박홍린 : 조선 중종(1531~1535)때의 실록자료_향5린의 활약/ 이름 날자 왕대별 내용 박홍린(朴洪鱗)(2파 16세 ) 1531년 01월 11일 중종 26년 박홍린을 홍문관 교리에 제수하였다. 박홍린(朴洪鱗)(2파 16세 ) 1531년 01월 12일 중종 26년 교리 박홍린(朴洪鱗)과 이임 .../ //hamyang.oranc.co.kr(daum 2010)
박홍린 : 다음 검색창에서 박붕린을 검색하면 함안박문 유명인물로 나오는데 함양으로.../ 2009.05.23/ (목사(牧使)) 박형린(朴亨鱗)(목사(牧使)) 박홍린(朴洪鱗)(대사헌(大司憲))...박운준(朴云俊)(학정(學正))...)(집의(執義)) 박형린(朴亨鱗)(목사(牧使)) 박홍린(朴洪鱗)(대헌(大憲)).../ //blog.daum.net(daum 2010)
박홍린(朴洪鱗) : 함양박씨 관련인물/ 만오/ 2009.04.22 12:40/ //cafe.daum.net/Jongleenpa/OqGX/84/ 박홍린(朴洪鱗)(1482~1555)/ 박홍린(朴洪鱗)은 상주군 이안면 사람으로, 자는 자운(子雲), 호는 용암(龍庵), 본관은 함양, 눌(訥)의 셋째 아들이다. 1510년(중종 5)에 진사가 되고, 1522년(중종 17)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뽑히어 검열로서 벼슬을 시작했다. 그 후 정언(1526), 수찬(1527), 부교리(1528), 교리로 승진하였다. 다시 헌납(1530), 지평(1531), 장령(1533)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1533년(중종 28) 8월 10일에 김안로 등이 임금께 아뢰기를, "박거린(朴巨鱗), 형린(亨鱗), 홍린(洪鱗), 붕린(鵬鱗), 종린(從鱗) 등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였으니, 그 부모의 벼슬을 추증(追贈)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박홍린의 아버지는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박홍린은 그 후에도 벼슬에 승진을 거듭하였다. 집의, 우부승지(1534), 직제학을 거쳐 대사간(1534), 도승지(1536), 대사헌(1537), 공조 참판, 그리고 현재 교육부 차관에 해당되는 예조 참판에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러나 반대파 사람들은 박홍린의 이러한 승진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때마침 1537년(중종 32) 10월에 김안로 사건이 터졌다.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쫓아내려다가 사형 당한 사건이었다. 반대파에서는 이 사건에 박홍린을 강제로 연루시켜 그해 11월에 벼슬을 삭탈하고 서울 밖으로 추방하였다. 그리고, 1538년(중종 33) 3월에는, "나쁜 모임을 만들어 악한 짓을 했다."라는 죄명을 더 만들어 전라남도 고흥군 흥양(興陽)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박홍린에 대한 임금의 사랑은 여전하였다. 박홍린이, "살던 집이 있는 이웃 고을로 귀양 장소를 옮기기"를 원하자, 임금은 쾌히 승락하였다. 그렇지만 반대파에서는 1541년(중종 36) 5월 18일에 임금께 아뢰기를, "박홍린의 귀양 장소를 옮기라고 명령하니, 여론이 해괴하게 떠돕니다."라고 하여, 임금의 뜻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 후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예천에 와서 살았다. 부인이 용문면 성현리 중마에 살던 권갑손(權甲孫)의 딸이기에, 처가에서 가까운 용문면 능천리 능내에서 여생을 마쳤다. 명나라 사신들과 시를 지어 사귈 만큼 문학이 깊었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홍린 : 문과합격자 살펴보기/ 2009.04.25/ ]성명 : 김계행(金係行) [처부] 성명 : 김영손(金永孫)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12 박홍린(朴洪鱗) [문과]중종(中宗)17년 (1522)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6위 자 자운(子雲) 본관 함양(咸陽) 전력 :.../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홍린 : 박홍린(朴洪鱗, 5형제가 과거에 급제한 예조참판)/ 2008.11.18/ ...), 장령(1533)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1533년(중종 28) 8월 10일에 김안로 등이 임금께 아뢰기를, "박거린(朴巨鱗), 형린(亨鱗), 홍린(洪鱗), 붕린(鵬鱗), 종린(從鱗) 등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였으니, 그 부모의 벼슬을 추증(追贈)해야.../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홍린 : 鄕五鱗(향오린)/ 2008.08.04/ ...급제한 후 吏曹 參議(이조참의)에 이르렀다. 경북 상주군 이안면 소암리[봉평동]에 백학재 가 있다. 박홍린(朴洪鱗): 상서공 휘 선의 16세 손으로(문원공파) 자(字)는 자운(子雲)이시고 호(號)는 용암(龍庵),성종 11(1480)-명종 1.../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홍린(朴洪鱗) : 朴洪鱗咸陽人察訪訥子字子雲中宗己卯進士壬午登明經科選湖堂?兵參官止大司憲以罪謫死[주:五兄弟文科兄巨鱗掌令○弟亨鱗牧使○從鱗見下○鵬鱗說書]/ 기사메타 : 大司憲牧使朴洪鱗兵參說書中宗察訪咸陽(daum 2010)
박홍린 : 하서시학과 호남시단/ e-Book/ 조기영 지음 | 국학자료원 | 1995.11.25/ 책본문 : ...) 177박충원(朴忠元) 177, 195, 217박평숙(朴平叔) 177박행중(朴行重) 251박홍린(朴洪鱗) 23<박회양부(薄淮陽賦)> 166반선정(伴仙亭) 174반우당(飯牛堂) 175<방등산>.../ 281페이지(daum 2010)
박홍린 : 함양박씨 세와 대 같다 용례/ 2010.01.26/ ...)이었으며, 호당(湖堂)에 뽑혔다.〕박인정의 後孫 박눌(朴訥)향사(鄕祠)에 배향되었다.〕박눌의 아들 박홍린(朴洪鱗)〔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대사헌(大司憲)이었으며, 호당에 뽑혔다.〕박인정의 9世孫 박습(朴習)〔문과 출신으로.../ //blog.daum.net/leesh2543/ 한국전통호칭전례연구원(daum 2010)
박홍린 : 박홍린에 관하여3/ 2008.08.23/ ...) 10년) 6월 6일 기미 2번째 기사 이임·박홍린·조인규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임(李任)을 이조 정랑에, 박홍린(朴洪鱗)을 사헌부 지평에, 조인규(趙仁奎)를 홍문관 부교리에 제수하였다. ·중종 71권, 26년(1531 신묘 / 명 가정(嘉靖.../ //blog.naver.com/pakdongsin/ 한국인을 위한 이슬람(daum 2010)
박홍린 : 박홍린에 관하여6/ 2008.08.23/ 갑오 / 명 가정(嘉靖) 13년) 5월 29일 을미 1번째기사 박홍린·채무택·채세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홍린(朴洪鱗)을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에, 채무택(蔡無擇)을 전한(典翰)에, 채세영(蔡世英)을 응교(應敎)에, 김기(金紀.../ //blog.naver.com/pakdongsin/ 한국인을 위한 이슬람(daum 2010)
박홍린 : 함양박씨/ 2006.06.04/ ...관찰사 등을 역임,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이밖에 중종 때 문과에 급제, 호당을 거쳐 대사헌을 지낸 박홍린(朴洪鱗), 영조 때 무장으로 총융사, 어영대장 등을 지내고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분무공신 박찬신 등도 유명한 인물들이다.../ //blog.naver.com/pjj771127/ ☆토니의 블로그☆(daum 2010)
박홍린(朴洪鱗) : 본관은 함양이고, 자는 자운이며, 문제공 슘좌의 후손이며 증 병조참판 눌의 아들이다. 1510년(중종 5)에 진사가 되고, 1522년(중종 17)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과 대사간에 이르고 5형제가 문과에 올라 유명하다. 함창에서 용문면 능내로 이사와 살았다.(龍門面홈페이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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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진(朴洪鎭) : 1859(철종 10)-?, 예천 출신, 자는 내우(乃禹), 호는 용파(蓉坡), 본관은 함양, 농재(農齋) 한광(漢光)의 증손자, 주옥(周鈺)의 아들, 주대(周大)의 종질(從侄), 해진(海鎭)의 동생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88년(고종 25) 식년 진사시에 3등 115위로 급제하였다.(司馬榜目, 醴泉郡誌 1939, 朝鮮寰輿勝覽 1929)
박홍진 : 儒生 幼學 印昌輔公 科擧記錄(유생 유학 인창보公 과거기록) 승정원일기中/ 2008.05.09/ ...裵洪洛)ㆍ차유형(車有衡)ㆍ윤봉진(尹鳳鎭), 동년 11월 추도기의 전강에 입격하여 2분을 받은 진사(進士) 박홍진(朴洪鎭), 유학 최흥림(崔興林)ㆍ김학호(金學浩)ㆍ최택서(崔澤曙)ㆍ박규술(朴奎述)ㆍ김응섭(金應燮)ㆍ조승규(趙昇奎.../ //cafe.daum.net/loveins/ 교동인씨종친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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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수(朴華洙) : 1947- , 용문면 대제리 출신, 본관은 함양, 세진(勢鎭)의 아들, 예천중(11회), 영주공고, 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업, 보스톤대학원 경제학과 석사(碩士), 경제기획원 예산총괄과장, 72년 제12회 행정고시 합격, 행시 기수가 통계청에서 가장 높다. 통계청 계장, 이사관 등을 거쳐 93년 대통령비서실 기획조정 비서관, 96년 재정경제원 관세심의관(局長級), 2003년 동 통계정보국장이다.(醴泉新聞 1996.1.25 1996.8.15, 東亞日報 2003.5.27,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醴泉鄕校誌 2004)
박화수 : 보스턴대학 대학원/ 이름 생년월일 소속기관/부서/직위 이종갑(李鍾甲) 1954년 12월 23일 [現] 네오플럭스 사장/ 박화수(朴華洙) 1947년 01월 27일 [現] 대구경북연구원 초청연구위원 [現] 한국개발전략연구원 국제개발전략실 선임연구위원/ 김용.../ //jpeople.unitel.co.kr(daum 2010)
박화수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신도청 시대 예천의 변화와 대응전략 마련-장기발전종합계획 개최/ 2년전, 2009년 6월 16일/ 종합계획(안)’을 보고했다. 지정토론자로 참여한 김규덕 경북도립대학 교수, 이재창 군의원, 박화수 대구경북연구원 객원연구위원, 황종규 동양대 교수는 특히 예천읍 도심 공동화 문제, 경북도립대학.../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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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후정 : 유천면 출신, 정심회장 대일의 장녀, 2002년 2월 27일부터 아침 9시 55분에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선물'을 집필하고 있다. 이 '선물'은 가족하면 누구나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선물'은 이런 상식을 깨고 입양이 얼마나 중요한 인생의 선물인지, 그리고 입양아들로 구성된 혜진(송윤아 분)의 가족 이야기가 뜨거운 가족애를 통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醴泉新聞 2002.3.14)
박후정 : SBS 드라마 식객 박후정 작가님 초청강연회/ 조교/ 119/ 2008.09.19/ 디지털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 알립니다./ 전공에 부합하는 특강을 통하여 자신의 미래 Plan을 설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오니, 1,2학년 학생들은 특강에 빠짐없이 참여하기 바랍니다./ * 강사 : 'SBS드라마 <식객>' 박후정 작가님/ * 강의주제 : 드라마 작가로 살아가기/ * 일시 : 2008. 9. 26 (금) 오후 2시~ 4시/ * 장소 : 인문관 501호/ //www.jangan.ac.kr(daum 2010)
박후정 : ‘개늑시’ 남상미, 차기작은 드라마 ‘식객’/ 만화 '식객' 의 '진수'역을 말끔히 소화해 낼 '적임' 여주인공은 누구일까. 13일, 드라마 '식객(극본 최완규·박후정, 연출 최종수)의 제작사 JS픽쳐스(대표 : 이진석)는 '지난 몇 개월 간 진수 역에 맞는 여배우를 찾던 중 남상미를.../ //blog.naver.com(daum 2010)
박후정 : 박후정 씨 드라마 식객 최완규 씨와 공동극본| ─‥예천군민소식/ 在京郡民會/ 조회 154 | 2008.07.03 18:30/ //cafe.daum.net/woruddPcjsrns/ 박후정 씨 드라마 식객 최완규 씨와 공동극본/ 예천신문/ 박대일(유천면 출생) 전 재경군민회장의 장녀인 박후정 씨가 최완규 씨와 공동 극본을 맡은 SBS 요리드라마 ‘식객’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식객’은 허영만 원작의 한국형 요리만화를 드라마화 한 것. MBC 드라마 `선물'을 집필, 주목받는 방송작가로 성장한 박후정 씨는 이번에 야망의 전설, 허준, 상도, 올인, 주몽 등 히트작을 낸 최완규 작가와 공동으로 극본을 맡았다. 드라마 식객은 SBS(월, 화)에서 저녁 9시 55분에 방송된다./ //cafe.daum.net/woruddPcjsrns/ 재경예천군민회(daum 2010)
박후정 : 박후정 선생님글 -방송문예- 중에서| 지식을 공유합니다!/ 홍채봉/ 2009.08.27 00:16/ //cafe.daum.net/tkfkddkdjeltsl/ 식객과 함께 보낸 올해 여름/ 춥다. 그렇게 끔찍하게 덥더니. 6월부터 시작된<식객>은 긴 여름을 내내 꼬박 거쳐 9월에야 끝이 났다. 방송 내내 도대체 어찌나 그리도 덥던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요즈음, 그 여름의 무더웠던 <식객> 생각을 하려니 어느새 날씨만큼 이렇게 낯설다. 벌써 아주 오래되어버린 이야기 같다. <식객>으 참 생가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고됐다. 준비기간만 해도 만 2년...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붓는다는 이유로, 또 사전제작이라는 이유로, 또 최초의 음식드라마라는 이유로, 관계자 모두에게 그랬겠지만 참으로 작가에게 쏟아지는 부담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래라 저래라,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잘나고 무서운 시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아, 그 속에서 그래도 깔려죽지 않고 지금 멀쩡하게 살아있는 내 모습이 참 다행이고 대견스럽다.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나는 치열했는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책상 앞에 앉아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쳤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끔찍한 시간들 최절정에서 방송이 시작되었고 그러던 나에게 슬며시 위안이 찾아왔다. 시청자들 반응이었다. 첫 회 이후 한 회 한 회 회1포인트씩 올라가는 시청률 그래프. 재미가 있단다. 봐줄만하단다. 또 보고 싶어진단다. 나는 그제야 가슴에 흥건하던 핏자국들을 조금씩 닦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제작에서는 더, 더, 더를 외쳤지만 난 감사했다. 공감을 해주는구나, 전달이 되는구나, 내 진심이 통하는구나. 그런 느낌이면 됐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느낌, 인생을 같이 나눌 수 있어 외롭지 않다는 생각으로 방송 내내 힘든 만큼 또 기뻤다. 그렇게 <식객>이 끝나고, 물론 참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 길고도 고된 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 같이 나누었던 고통과 기쁨들과 안녕을 하고 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잊을 건 잊고, 갈무리할 건 갈무리하며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보니, 참 단순해졌다. 어찌나 세상이 복잡하던지 어찌나 사는 게 어지럽던지 매사 무슨 생각은 또 그리도 많던지 도데체가 사는 게 뭔지 몰라 온통 시끌벅적하던 머릿속이 아주 맑아진 것이다. 마치 삶의 비밀이라도 잠시 슬몃 엿본 듯한 느낌? 짜릿하다. 또 모르겠다. 앞으로 또 무엇이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을지. 거꾸로 처박혀 진흙탕에 구를지. 어쩜 그래도 좋겠다. 그다음에 또 나는 더 말고 더 단순해질 거고 그 신묘막측한 삶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더 훔쳐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11월의 이 정치한 공기처럼. 그런 기대감까지 있어 요즘은 조금 설레기도 한다./ //cafe.daum.net/tkfkddkdjeltsl/ 드라마디자이너(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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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