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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924:박희민(2)-반달해-반병섭-반석평(1)(祝양궁/예천방문1,227)
작성자장병창 @ 2015.02.24 11:28:28

 

  자랑3924:박희민(2)-반달해-반병섭-반석평(1)(祝양궁/예천방문1,227)

  예천의 자랑(3924) : 박희민(2)-반달해-반병섭-반석평(1)(附 예천군, 올해 14개 양궁대회 유치...축하합니다/예천방문 1,227)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7월 1일 (계묘) 원본353책/탈초본18책 (8/8)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이번 都目政에서 外任으로서 他邑으로 移拜되는 사람들을 모두 還收해서 前職에 仍任시키며, 외방에 있는 姜世龜 등에게 속히 올라오도록 下諭하기를 청하는 司諫院의 계/ ○ 院啓, 外方凋殘, 職由於數易, 小民之勞弊, 莫甚於迎送, 此所以貴久任而重遷除也。今此大政時, 自外任移拜他邑, 至於五人之多, 其中固無聲績著聞, 被薦陞敍者, 而亦或有到任未久, 無端移易者, 此雖出於注擬乏人之致, 愼擇精揀, 豈無他可合者, 而必移方任守土之人, 以貽送舊迎新之弊乎? 夫五邑之作?, 而遞易之弊, 均被於十邑, 耗官需而吏緣爲奸, 策夫馬而民疲其力, 況今穡事方殷, 鋤功政急, 而齎糧涉遠, 奔走供億, 見闕之處, 固無奈何, 無故之邑, 又復受害, 甚非朝家軫農節慮之意也。請今番都目政, 自外任移拜他邑之人, 一倂還收, 仍任前職。新除授大司諫姜世龜, 時在忠淸道溫陽地, 正言朴希閔, 時在慶尙道醴泉地, 請竝斯速乘馹上來事, 下諭。答曰, 令該曹稟處。下諭事, 依啓。以上朝報(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8월 23일 (갑오) 원본353책/탈초본18책 (2/30)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朴希閔의 署經을 위해 沈季良 등에게 開坐하게 하겠다는 司諫院의 계/ ○ 司諫院啓曰, 正言朴希閔, 除拜已久, 尙未署經。臺諫署經, 備三員爲之者, 自是古例, 而大司諫姜世龜, 以特差[遞]還收論啓, 正言臣金汝鍵, 在外未上來, 只有司諫臣沈季良, 獻納臣洪重夏。在前如此之時, 亦有二員開坐, 啓請署經之規, 今亦依此例, 開坐署經之意, 敢啓。答曰, 知道。(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8월 23일 (갑오) 원본353책/탈초본18책 (5/30)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朴希閔이 來會를 약속하고 오지 않은 것은 자신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라며 遞職을 청하는 洪重夏의 계/ ○ 獻納洪重夏啓曰, 今日朝房署經之後, 欲行相會禮, 正言朴希閔, 初以來會之意送言, 俄以病勢猝劇爲辭, 終不來參。雖未知其病勢之如何, 而約會不會, 有違臺規。同僚旣以見輕引避, 其何可晏然仍冒? 請命遞臣職。答曰, 勿辭, 退待物論。(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8월 23일 (갑오) 원본353책/탈초본18책 (8/30)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沈季良이 입시하여 朴希閔이 來會를 약속하고 오지 않은 것은 자신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라며 遞職을 청함/ ○ 司諫沈季良所啓, 臣於今日朝房署經後, 將欲仍行相會禮, 正言朴希閔, 初以來參之意送言, 俄以病勢猝劇爲辭, 屢度往復, 終不來參。雖未知其病勢之如何, 而約會不會, 無非見輕之致, 何可晏然於臺席乎? 請命遞斥臣職。上曰, 勿辭, 退待勿論。(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8월 23일 (갑오) 원본353책/탈초본18책 (9/30)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약속하고도 몸이 아파서 相會하지 못했는데 동료들이 引避하므로 자신의 遞職을 청하는 朴希閔의 계/ ○ 正言朴希閔啓曰, 臣於入城之後, 重得背瘡, 誤信庸醫, 妄試鍼?於未濃之前, 毒氣流注, 症勢漸劇, 當此法駕將戒之日, 不敢言病。朝者同僚相會之時, 初擬强疾進參, 騎馬將出, 則肩背相引, 如割如刺, 咫尺之間, 無計運動, 故不果赴會矣。卽者同僚以約會不會爲非, 見輕爲辭, 相繼引避, 臣何敢晏然仍冒乎? 請命遞斥臣職。答曰, 勿辭, 退待物論。(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10월 8일 (무인) 원본354책/탈초본18책 (5/11)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申厚載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申厚載爲都承旨, 許垓爲庶尹, 鄭奎祥爲司僕主簿, 丁思愼爲洪川縣監, 金南佶爲軍資主簿, 羅晩成爲海運判官, 李瀏爲典籍, 明廷耈爲奉常參奉, 趙鳳徵爲南學訓導, 辛必馨爲禮曹正郞, 李後老爲活人別提, 朴希閔兼春秋, 愼碩泰爲學諭, 金遇一爲成均博士。(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35년 3월 3일 (갑술) 원본447책/탈초본24책 (13/13)  1709년 康熙(淸/聖祖) 48년/ 趙錫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趙錫命爲義城縣令, 李承源爲泰川縣監, 洪萬遇爲禮曹佐郞, 申弼賢爲奉常正, 鄭纘先爲校理, 李正臣爲應敎, 梁聖揆爲掌令, 李善溥爲工曹參議, 李震壽爲全羅監司, 李?爲左尹, 韓配夏爲參知, 沈瑋爲敦寧參奉, 李德運爲司藝, 朴希閔爲黃海都事, 尹會爲京畿都事, 李?晩爲司諫, 李敏英爲承旨, 南?爲宣川府使, 典籍單申壽華, 金始?爲江原都事。(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36년 3월 6일 (신미) 원본452책/탈초본24책 (10/14)  1710년 康熙(淸/聖祖) 49년/ 科日이 임박하므로 全羅右道京試官에 朴希閔을 口傳差出할 것을 청하는 承政院의 계/ ○ 政院啓曰, 昨日引見時, 全羅右道京試官差出事, 榻前定奪矣, 卽因黃海監司狀啓, 都事朴希閔瓜滿之代, 令該曹, 卽速差出下送事, 啓下矣。科日已迫, 不可等待開政, 分付該曹, 卽爲口傳差出,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36년 8월 9일 (신미) 원본456책/탈초본24책 (20/20)  1710년 康熙(淸/聖祖) 49년/ 元命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以元命龜爲廣興主簿, 朴希閔爲兼高山察訪, 金錫保爲中和府使, 洪處宙爲善山府使, 權德載爲監察, 朴聖采爲引儀, 鄭道顯爲童蒙敎官。(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36년 9월 16일 (정미) 원본456책/탈초본24책 (2/18)  1710년 康熙(淸/聖祖) 49년/ 朴希閔이 하직함/ ○ 下直, 高山察訪朴希閔。(www.history.go.kr 2009)

  박희민 : 이번 都目政에서 外任으로서 他邑으로 移拜되는 사람들을 모두 還收해서 前職에 仍任시키며, 외방에 있는 姜世龜 등에게 속히 올라오도록 下諭하기를 청하는 司諫院의 계/ 상위서지: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날짜: 1693-07-01(음)/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편년류(編年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7월 1일 (계묘) 원본353책/탈초본18책 (8/8)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이번 都目政에서 外任으로서 他邑으로 移拜되는 사람들을 모두 還收해서 前職에 仍任시키며, 외방에 있는 姜世龜 등에게 속히 올라오도록 下諭하기를 청하는 司諫院의 계/ ○ 院啓, 外方凋殘, 職由於數易, 小民之勞弊, 莫甚於迎送, 此所以貴久任而重遷除也。今此大政時, 自外任移拜他邑, 至於五人之多, 其中固無聲績著聞, 被薦陞敍者, 而亦或有到任未久, 無端移易者, 此雖出於注擬乏人之致, 愼擇精揀, 豈無他可合者, 而必移方任守土之人, 以貽送舊迎新之弊乎? 夫五邑之作?, 而遞易之弊, 均被於十邑, 耗官需而吏緣爲奸, 策夫馬而民疲其力, 況今穡事方殷, 鋤功政急, 而齎糧涉遠, 奔走供億, 見闕之處, 固無奈何, 無故之邑, 又復受害, 甚非朝家軫農節慮之意也。請今番都目政, 自外任移拜他邑之人, 一倂還收, 仍任前職。新除授大司諫姜世龜, 時在忠淸道溫陽地, 正言朴希閔, 時在慶尙道醴泉地, 請竝斯速乘馹上來事, 下諭。答曰, 令該曹稟處。下諭事, 依啓。以上朝報//

  박희민 [專門資料] : 朴希閔 등이 하직함/ 朴希閔|崔鳴後(daum 2010)

  박희민 [專門資料] : 弓矢를 朴希閔에게 주라는 전교/ 李元鎭|朴希閔(daum 2010)

  박희민 [專門資料] : 朴希閔에게 관직을 제수함/ 蔡成胤|朴希閔(daum 2010)

  박희민 [專門資料] : 朴希閔을 오늘 내로 下直토록 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계/ 鄭好信|朴希閔(daum 2010)

  박희민 [專門資料] : 科日이 임박하므로 全羅右道京試官에 朴希閔을 口傳差出할 것을 청하는 承政院의 계/ 朴希閔(daum 2010)

  박희민 [專門資料] : 朴希閔의 署經을 위해 沈季良 등에게 開坐하게 하겠다는 司諫院의 계/ 朴希閔|姜世龜|金汝鍵|沈季良|洪重夏(daum 2010)

  박희민 [專門資料] : 궁궐내의 숙위사항과 각 지방 관청의 처결문서 등에 대한 宋時喆 등의 成貼狀啓/ 觀象監|訓鍊都監, 宋時喆|金宇亨|李重開|朴希閔|李仁龍|申孝一(daum 2010)

  박희민(朴希閔) : 본관(本貫) 함양(咸陽), 시대(時代) 1655 ~ ?, 자(字) 성칭(聖稱)/ 이력(履歷)/ 함양박씨(咸陽朴氏)를 빛내신 선조(先祖)/ 박희민(朴希閔) : 상서공(尙書公) 25세 손으로 2파 문원공(文元公) 지빈(之彬)의 1子 장(莊)의 18대손으로 세환(世煥)의 아들이시다. 조선(朝鮮) 숙종(肅宗) 때 정언(正言)을 지냈다.(daum 2010)

  박희민 : <국조 문과 방목> / 박희민(朴希閔) 숙종(肅宗)13년(1687년), 식년시(式年試) 병과6(丙科6)/ > 인적사항 생년(生年)  1655년, 을미, 자(字) 성칭(聖稱)/ 본관(本貫) 함양(咸陽)/ > 가족사항 부(父) 박세환(朴世煥), 조부(祖父) 박정시(朴廷蓍), 증조부(曾祖父) 박영(朴瑛)/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73(계축) 진사시, 전력(前歷) 진사(進士), 관직(官職) 정언(正言), 설서(說書)(daum 2010)

  박희민 : 박성옥(朴成玉)/ ...字) 옥여(玉汝) 호(號) 본관(本貫) 함양(咸陽)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가족사항 부(父) 박희민(朴希閔) 생부(生父) 조부(祖父) 박세환(朴世煥) 증조부(曾祖父) 박정시(朴廷蓍) 외조부(外祖父) 권태행(權泰行) 처부(妻父).../ //www.shinjongwoo.co.kr(daum 2010)

  박희민(朴希閔)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숙종(肅宗) 13년, 과거시험연도 : 1687 정묘,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6(丙科6)/ [인적 사항] 성명(姓名) : 박희민(朴希閔), 자 : 성칭(聖稱), 본관(本貫) : 함양(咸陽)/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673(계축) 진사시, 전력(前歷) : 진사(進士), 관직(官職) : 정언(正言)/ [가족사항] 부(父) : 박세환(朴世煥), 조부(祖父) : 박정시(朴廷蓍), 증조부(曾祖父) : 박영(朴瑛)(daum 2010)

  박희민 : 네이트 한국학/ ...(尹悠期)1645 을유 파평(坡平) - 윤(尹) 丙科 5위 유기천(柳紀天) 1634 갑술 전주(全州) - 유(柳) 丙科 6위 박희민(朴希閔) 1655 을미 함양(咸陽) - 박(朴) 丙科 7위 김수억(金壽億) 1662 임인 연안(延安) - 김(金) 丙科 8위 이태현(李泰顯) 1660 경자 인천.../ //koreandb.nate.com(daum 2010)

  박희민 : 모든 급제자 문과 무과 생원 진사시/ 2010.04.04/ ...) 1728 무신 함양(咸陽) - 박(朴) 丙科 6위 박사함(朴思?) 1596 병신 함양(咸陽) - 박(朴) 丙科 6위 박희민(朴希閔) 1655 을미 함양(咸陽) - 박(朴) 丙科 7위 박권 (朴權) 함양(咸陽) - 박(朴) 丙科 8위 박세옹(朴世?) 1493 계축.../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지밀직부사공파 종친회(daum 2010)

  박희민 :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함양박씨 인물/ 2010.04.03/ ...) (2파 11세) 태종 43 박성인 ( 朴成仁 ) (1피 17세) 인조 87 박정립(朴挺立) (4파 16세) 선조 131 박희민 ( 朴希閔 ) (2파 18세) 숙종 44 박성형 ( 朴成珩 ) (2파 19세) 영조 88 박정설(朴廷薛) (2파 20세) 숙종 132 박희손(朴喜孫.../ //cafe.daum.net/pchundang/ 함양박씨 관련자료 뿌리찾기(daum 2010)

  박희민 : 咸陽朴氏를 빛내신 분/ 2009.04.27/ 박 진(朴 珍) 박희문(朴希文) 박대립(朴大立) 박 선(朴 善) 박 심(朴 沁) 박 재(朴 材) 박 진(朴 ?) 박희민(朴希閔) 박덕상(朴德祥) 박 선(朴 鮮) 박 안(朴 安) 박재화(朴載華) 박 진(朴 瑨) 박희민(朴希閔) 박돈화(朴敦和) 박성건.../ //cafe.daum.net/pws2340/ 함양박씨 치암공파 오린집(五鱗家)이야기(daum 2010)

  박희민 : 함양박씨를 빛내신 분/ 2008.09.24/ ...朴之溫) 박희문(朴希文) 박난방(朴蘭芳) 박사형(朴思亨) 박시태(朴時泰) 박인정(朴仁挺) 박지진(朴知進) 박희민(朴希閔) 박내장(朴乃章) 박사희(朴士憙) 박 신(朴 信) 박자경(朴子慶) 박지천(朴知天) 박희민(朴希閔) 박내정(朴乃貞.../ //cafe.daum.net/pws2340/ 함양박씨 치암공파 오린집(五鱗家)이야기(daum 2010)

  반달해 : 巨濟 潘氏(거제반씨) (269)./ 2010.04.20/ ...) 潘佑亨(반우형) : 文科 成宗5年(1474) 式年試丙科 潘悌老(반제로) : 文科太宗17年(1417) 式年試 同進士 潘達海(반달해) : 武科孝宗2年(1651) 別試 병丙科 潘洪(반홍) (1520 庚辰生) : 司馬試 宣祖15年(1582) 式年試 三等 潘榮(반영.../ //blog.daum.net/kyk548/ 아까돔보(daum 2010)

  반달해 : 姓氏의 故鄕-269 巨濟潘氏(거제반씨)/ 2010.04.20/ ...) 潘佑亨(반우형) : 文科  成宗 5年(1474) 式年試 丙科 潘悌老(반제로) : 文科 太宗 17年(1417) 式年試 同進士 潘達海(반달해) : 武科 孝宗 2年(1651) 別試 丙科 潘洪(반홍)(1520 庚辰生) : 司馬試 宣祖 15年(1582) 式年試 三等 潘榮(반영.../ //cafe.daum.net/scs99/ 망양정 춘파(daum 2010)

  반달해 : 거제반씨(巨濟潘氏)/ 2009.02.03/ 성종 5년(1474) 식년시 병과(丙科) 반제로(潘悌老) : 문과(文科) 태종 17년(1417)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반달해(潘達海) : 무과(武科) 효종 2년(1651) 별시 병과(丙科) 반홍(潘洪, 1520 庚辰生) : 사마시(司馬試) 선조 15년(1582) 식년.../ //cafe.daum.net/changjomilyang/ 昌寧曺氏 종친회[宗親會](daum 2010)

  반달해 : 성씨검색/ 성종5년(1474) 식년시 병과(丙科) 반제로(潘悌老) : 문과(文科) 태종 17년(1417)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반달해(潘達海) : 무과(武科) 효종 2년(1651) 별시 병과(丙科) 반홍(潘洪, 1520 庚辰生) : 사마시(司馬試) 선조 15년(1582) 식년시.../ //rootsinfo.co.kr(daum 2010)

  반병섭(반병섭 民主平統 東海市協議會長) [記事] : 반병섭(76)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해시협의회장은 “평통위원들과 한마음으로 지역사회의 통일 기반 조성에 앞장서겠다.”며 “시민을 위한 다양한 안보 활동을 전개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 회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정선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사회개발학과를 졸업했으며 18대 대통령선거 대책본부장을 비롯해 검찰청 동해청소년협의회장, 라이온스클럽 354E 지구 부총재, 동해시의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새누리당 강원도당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묵호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가족은 부인 임철자 씨와 2남 1녀. 취미는 독서.(조병수 江原道民日報 2013-06-26)

  반석평(潘碩枰) : ?-1540, 자는 공지(公之), 호는 송애(松厓), 시호는 장절(壯節), 본관은 기성, 서린(瑞麟)의 아들, 조광조(趙光祖)의 제자, 1507년(중종 2)에 식년문과에 병과 20위로 급제하여 판윤(判尹), 형조판서(刑曹判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다.(醴泉郡誌 2005)

  반석평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全羅道 / 沃溝 / 人物  / 本朝潘碩枰 登文科官至八道觀察使 孝子梁成允 父病數歲衣不解帶母病十年盡誠父母歿廬墓三年事 聞旌閭 杜世俊 母病衣不解帶嘗糞甘苦三年居廬一不還家躬?以奠哀毁盡誠事 聞旌閭 洪慶澳 年?十一父病甚重氣絶斷指注血乃甦九日天年以終?服後二載追服行素事 聞旌閭 節婦元氏 田時蕃妻時番死日自決而死事 聞旌閭(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동사략 / 紀年東史約卷之十四 朝鮮茅亭李源益 編 / 本朝紀 / 十六年 / 明帝崩世宗卽位, ○魯山君夫人宋氏/ <14권01_0604-2>/ 卒, ○明遣使翰林侍講 唐? 給事中 史道頒登極詔, 遠接使李荇  /  國都南山舊名木蜜?, 以木覓改之, 又名嘉山納淸亭道作記,  /  削奪前右議政 安?, 監司 文瑾等官爵,  /  時沈貞陰嗾執義 尹止衡追論安?誤國, 奸魁文瑾, 安處謙, 柳仁淑, 柳雲, 鄭順朋, 申光漢, 李成童, 朴英等, 各構罪名竝削奪官爵,  /  安處謙等因宋祀連密告被誅,  / ? 安?父, 司藝 敦厚年老喪?, 以其兄之婢重今爲妾, 重今有女, 曰甘丁卽家畜前所産也, 性狡?年十四五時爲不道之語, 敦厚怒其離間之漸, 杖逐之, 嫁白川人宋璘, 生子祀連, 敦厚歿後, ?之一家人視祀連如親子弟, 出入信幸時, 奸凶執政國勢日危, ?之子處謙 處謹常懷憤?, 言及時事未嘗不涕隨言零, 偶與友人詩山正 正叔 權?語, 曰沈貞 南?專擅威福, ?上聾?除去此二凶, 則可扶國勢保士林矣, 其弟處誠告于?, ?驚駭?地, 欲擬上聞而恐傷士類, 乃率歸陰城庄舍以沮散其謀, 宋祀連自幸得計, 以?之妻初喪時, 吊客錄及發靷時, 役軍簿同庶?鄭?詣政院告以謀害大臣, ?等旣積宿忿, 欲藉爲口實勒取供招, ?鍊/ <14권01_0605-1>/ 成獄, 處謙 處謹俱被極刑, 正叔久飢昏迷入於?穽, 其餘名流或竄或流, 祀連 ?竝加資,  / 賜安?死,  / 委官 鄭光弼言, 安?不能斷以大義, 告其子陰謀固有罪矣, 然率歸鄕舍其心可見, 且曾徑大臣似當斟酌, 上方盛怒答, 曰若涉亂逆, 則雖在大臣之列不可饒貸, 況?乎, 光弼竟不能救, 行路莫不掩涕, ○?字彦寶, 初爲翰林年少貌弱, 而氣度夙成, 成廟歎賞稱兒長者, 靖國初特拜大司諫, 以久革諫官之餘取其剛直能救廢政也, 按湖西有詩, 曰攬?澄淸吾豈敢, 只將忠義不謀身。 風彩所臨州縣肅然, 及主銓衡痛革奔競之習, 趙光祖, 金湜, 朴薰直受六品職, 又薦金安國, 金?, 宋欽, 潘碩枰皆賢士也, 上以法外責之, 臺諫以誤國劾之, 宰列以不從干囑忌之, ?猶晏然不撓, 與李長坤, 申?, 相繼典選, 以啓己卯明良之際會, 且復昭陵從祀, 鄭夢周, 贈金宏弼, 鄭汝昌, 設薦科諸事贊成甚多, 嘗政擬秋判有薦沈貞者, ?, 曰花川君足矣, 貞聞而恨之, 莊重寡言笑, 淸儉自律守正奉公, 果於爲義, 群小含?難乎其免禍矣, 及卒時年六十一, ?嘗/ <14권01_0605-2>/ 好食鱉, 禍前有小鱉如錢葉, 散行庭?, 不能盡拾, 投之江中, ?歲周父子俱被害, 禍非由鱉而, 是亦鱉妖也, 李珥銘其墓, 曰主張淸議宗匠儒林, 孰謂孤?潛包禍心, 舟覆半途, 驥斃中路, 五精收彩三辰入霧, ...(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9권/ 중종 4년(1509 기사 / 명 정덕(正德) 4년) 10월 28일(병진) 1번째 기사/ 이말손이 정송수․신창령 등의 모반을 아뢰다/ 우의정 성희안(成希顔)․운수군(雲水君) 이효성(李孝誠)․완성군(莞城君) 이귀정(李貴丁)이 상산령(常山令) 이말손(李末孫)2798) 을 거느리고 빈청(賓廳)에 나아가 상변(上變)2799) 하였는데, 말손이 아뢰기를, ꡒ신의 집에서 달구(?狗)2800) 를 기릅니다. 지난 9월쯤에 정송수(貞松守) 이석손(李錫孫)이 종을 시켜, 신의 어미의 속신(贖身)을 청원한 상언(上言)의 초본을 빌어가는데, 종이 달구를 보더니 끌고 가겠다고 청하며 상언의 초본과 함께 돌려보내겠다고 하므로 신이 허락했었습니다. 그런데 석손이 달구를 그대로 두고서 신을 부르기에 신이 갔더니, 우리 달구를 빌어 주기를 청한다고 하므로 신이 허락했었습니다. 이로부터 석손이 날마다 사람을 시켜 신을 불러다가 말하기를, ꡐ내가 박영문(朴永文)․황맹헌(黃孟獻)․심정(沈貞)․이공우(李公遇)․윤순(尹珣)․황형(黃衡)․강윤희(康允禧)․이이(李?) 등과 더불어 서산(西山)에서 돼지 사냥을 하기로 언약했다.ꡑ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신에게 말하기를, ꡐ너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참여했느냐?ꡑ 하기에, ꡐ못했다.ꡑ고 했더니, ꡐ너는 창산(昌山)의 종제(從弟)인데도 참여하지 못하니, 사람들이 창산군(昌山君)2801) 은 소원하고 쌀쌀하다고 한다. 사촌(四寸)간에 어찌 그렇게 박정한가?ꡑ 하였습니다. 이달 21일에는 석손이 나에게 꿩 한 마리를 보내고 따라서 신을 부르기로 신이 갔더니, 맹인(盲人) 안팔동(安八同) 및 도자장(刀子匠)이 또한 있었습니다. 석손이 ꡐ내일 다시 오라.ꡑ고 했는데, 22일에는 동지 습의(冬至習儀) 때문에 가지 못하고 23일에는 또한 비가 와서 가지 못하고 24일에야 가니, 석손 및 그의 아들【신창령(新昌令) 이흔(李?)이다.】이 같이 있었습니다. 석손이 ꡐ그믐날 사냥 간다.ꡑ 하므로, 신이 의아스러워 흔(?)에게 물으니, 흔이 ꡐ숙질(叔姪)간에 무슨 일을 숨기겠는가? 박영문(朴永文)과 모의하기를, 「동짓날 밤에 활 잘 쏘는 사람 서넛씩으로 짝을 만들어 삼공(三公)의 집에 나누어 보냈다가 예궐하게 될 때에 뒤따르다 쏘도록 하고, 먼저 사람을 시켜 향교동(鄕校洞) 고개에서 봉화를 들고 또한 남산에서 봉화를 올려 서로 호응하여 죽인 것을 알린 뒤에, 같이 대궐 밖에 모여 임금을 폐위(廢位)하고 같이 완원군(完原君)을 세우기로 했다.」고 하였다.ꡑ 하였습니다. 신이 ꡐ박영문에게 미륵(彌勒)․당래(唐來)가 없는데 어떻게 일을 해낼 수 있느냐?ꡑ 하니, 흔이 ꡐ미륵․당래는 없어도 박영문이 지금 거느리고 있는 효용(驍勇) 중에 미륵․당래 같은 것보다 나은 것이 3~4인이나 된다.ꡑ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날 바로 아뢰고 싶었지만 자세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과 같이 못했습니다.

  27일에 석손이 또 신을 부르기에 신이 갔더니, 석손이 이미 의산령(義山令) 이윤(李潤)의 집에 갔었습니다. 신이 윤(潤)의 피접(避接)해 있는 곳으로 찾아가, ꡐ의산령(義山令)과 정송수(貞松守)가 어디 있느냐?ꡑ고 물으니, 대답이 ꡐ영정수(永貞守)【이름은 이복중(李福重).】의 집으로 갔는데, 참판(參判) 황맹헌(黃孟獻)․참판 윤순(尹珣) 등 4~5인이 또한 들어갔으며, 영정수(永貞守)의 집에서 모두 돌려보냈다.ꡑ고 했습니다. 신이 복중(福重)의 집으로 가니 문을 잠그고 숨기므로 신이 곧 집으로 돌아와 편지를 석손의 집에 보냈더니 회답은 해 보내지 아니하고, 다만 내일 다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오늘 파루(罷漏) 때에 석손의 집으로 가 말하기를, ꡐ양주(楊州)로 가서 처모(妻母)를 뵙고 싶다.ꡑ고 하면서 그의 뜻을 떠보았더니, 석손이 ꡐ너의 이름을 이미 써 놓았고 날짜가 또한 이미 박두했으니 가는 것이 부당하다.ꡑ고 하기에, 신이 ꡐ어제 영정수의 집에 갔었는데 숨기더라.ꡑ 하니, 석손이 ꡐ본래 손님에게는 숨기던 것으로서, 네가 온 줄을 모르고서 그런 것이다. 네가 만약 내 자식과 같이 왔더라면 네가 모였던 재상들에게 들어가 뵙게 되었을 것이다.ꡑ 하고, 또 ꡐ헐복(歇福)【우리말로 복이 없다는 뜻.】 하여 완원군(完原君)이 이미 죽었다.ꡑ고 하였습니다. 신은 즉시 맏형 완성군(莞城君) 이귀정(李貴丁)의 집으로 가서 말하였고, 또 운수군(雲水君) 이효성(李孝誠)의 집으로 가서 같이 우의정 성희안(成希顔)의 집으로 가 드디어 같이 상변(上變)하게 되었습니다.ꡓ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ꡒ석손(錫孫)은 어리석고 유치하여 말도 잘 하지 못하고, 흔(?)은 경솔하고 박덕한 하나의 망령된 사람으로 모두 문자(文字)를 알지 못한다. 모반(謀反)했다는 일은 모두 흔히 거짓으로 꾸미고, 상산령(常山令) 말손(末孫)이 부연(敷衍)한 데에서 나온 것으로, 일이 모두 실답지 못하다. 이 옥사(獄事)에 있어서, 흔이 난언(亂言)한 죄목을 받고 말손은 역시 부연(敷衍)한 죄를 받으면 평반(平反)2802) 하게 될 것인데, 말손은 성희안과 가까운 족속이기 때문에 그 죄를 모면한데다가 그야말로 도리어 품계(品階)를 뛰어오르게 되었으니, 또한 외람되지 아니하겠는가?ꡓ전교하기를, ꡒ정송수(貞松守)․신창령(新昌令)․의산령(義山令)․영정수(永貞守) 등을 의금부 낭관(郞官) 및 선전관(宣傳官)과 겸사복(兼司僕)을 보내어 잡아오라.ꡓ하였다. 성희안이 아뢰기를, ꡒ이 일은 영의정․좌의정․의금부 당상과 더불어 같이 국문할 것을 주청합니다.ꡓ하니, ꡐ그리하라.ꡑ 전교하고, 또 전교하기를, ꡒ의금부 낭관 한 사람과 선전관 한 사람이 입직(入直)한 장용대(壯勇隊) 열 사람을 데리고 정송수(貞松守)의 집에 가서 문서(文書)를 수색하여 오고, 신창령(新昌令) 형제도 역시 모두 잡아오도록 하라. 이 일이 결국 허사일지 실사일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늦출 수 없다.ꡓ하였다. 성희안이 안뢰기를, ꡒ성상의 분부가 지당하십니다. 주서(注書)를 보내어 수색할 것을 계청합니다.ꡓ하니, 그대로 윤허하였다. 주서 권벌(權橃)이 명을 받아 가서 수색하였으나, 찾아낸 것이 없었다.

  영의정 박원종(朴元宗)․좌의정 유순정(柳順汀)․우의정 성희안․판부사(判府事) 이계남(李季男)․지사(知事) 정광필(鄭光弼)과 박열(朴說)․도승지 송천희(宋千喜) 등이 경회루(慶會樓) 남문에 앉고, 사관(史官) 권벌(權?)과 반석평(潘碩枰)․문사관 봉상시 정(問事官奉常寺正) 안팽수(安彭壽)가 또한 참여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4책 383면/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민란(民亂) / *역사-편사(編史)/ [註 2798]상산령(常山令) 이말손(李末孫) : 이귀정(李貴丁)의 서제(庶弟). ☞ / [註 2799]상변(上變) : 급변을 고함. ☞ / [註 2800]달구(?狗) : 물개. ☞ / [註 2801]창산군(昌山君) : 성희안. ☞ / [註 2802]평반(平反) : 피의 사실을 거듭 조사하여 공평하게 판결함. 혹은 신중히 조사하여 먼저 번보다 죄를 가벼이 함. 《한서(漢書)》 전불의전 주(雋不疑傳註). ☞(www.history.go.kr 2009)

  *예천군, 올해 14개 양궁대회 유치...축하합니다.

  예천군 양궁(醴泉郡, 올해 14個 洋弓大會 誘致 : 메이저級 大會 開催로 地域경기 活性化 孝子 노릇) [記事] : 예천군이 올해(2015년) 제33회 대통령기 전국 남녀 양궁대회를 비롯 14개 대회를 유치했다. 최근 많은 자치단체에서 양궁대회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도 예천군이 전년도보다 많은 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중·고양궁연맹회장인 이현준 예천군수와 김도영 경북양궁협회장이 평소 대한양궁협회와 유기적인 협조를 바탕으로 탄탄한 관계 유지를 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2015년 1월 30일 이현준 군수가 대한양궁협회 정기 대의원 총회에서 관계자들을 만나 긍정적인 검토를 요청하는 한편 국가대표 양궁선수단 문형철 감독의 양궁계 두터운 인맥과 적극적인 유치활동이 이룬 쾌거로 예천이 스포츠의 메카로 자리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천군이 금년도에 유치한 양궁대회는 국제대회 2개를 비롯한 전국 규모 양궁대회 10개, 도 대회 2개 등 지난해 대비 1개 대회가 늘어난 총 14개 대회를 유치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국내 양궁대회의 메이저급으로 평가되는 회장기와 화랑기, 대통령기, 종합선수권대회 등 권위 있는 대회를 모두 유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2015년 2월 14일 제1회 도효자배 전국 중·고 단축마라톤 대회를 시작으로 전국 규모 육상대회도 6개를 유치하면서 자치단체로써는 보기 드물게 연 20회의 전국 단위 양궁 및 육상대회를 개최하게 됨에 따라 체육 웅군의 명성과 함께 지역경기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 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궁대회 일정은 ▷3월 12일 전국소년체육대회 양궁 2차 선발전, 경북소년체육대회 양궁경기 ▷4월 전국 남녀 종별대회 ▷5월 전국 남녀 초등학교 대회 ▷6월 회장기 대학·실업 양궁대회, 화랑기 전국 시·도대항 대회 ▷7월 경북도지사기 초·중학교 대회, 대통령기 전국 남·여 대회, 한국 중·고 양궁연맹 회장기 대회, 문화체육관광부 중·고 대회 ▷8월 전국 남·여 양궁종합선수권 대회 ▷10월 4일부터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린다.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경북학생체육대회와 한·일 친선교류전이 별도로 개최될 예정이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대회유치를 위해 노력한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예천이 양궁과 육상을 양대 산맥으로 체육의 고장으로 거듭나게 노력할 것”이라면서 “성공적인 대회 개최와 전지훈련 중인 선수단에 아낌없는 지원으로 더 많은 전지훈련 팀을 우리 지역에 유치하여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지난 16일부터 양궁 남녀 국가대표 선수단이 실내에서 활을 쏘아 야외의 과녁을 맞추는 전국 최고 수준의 겨울철 양궁훈련장을 갖춘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것을 필두로 국내·외 많은 팀들이 전지훈련을 다녀가기로 하는 등 향후 예천이 한국 스포츠의 전지훈련지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예천군은 전국 최고의 육상 실내훈련장과 경사로 및 모래 연습장 등 육상훈련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육상 돔 훈련장 조성을 통해 육상 전지훈련장으로 우뚝 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예천진호국제양궁장 또한 시설 현대화를 통해 양궁의 고장 입지를 굳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醴泉新聞 2015년 02월 23일 (월) 09:26:59)

  @예천방문 1,227

  예천천문우주센터(아산시청소년교육문화센터, 正月大보름 天文 觀測會 開催) [記事] : 충남 아산시청소년교육문화센터(관장 김민) 스마트천문대가 정월대보름과 개기월식에 천문 관측회를 개최한다. 2015년 2월 22일 센터에 따르면 스마트천문대는 정월대보름인 오는 3월 5일과 개기일식인 4월 4일 달을 주제로 천문 관측회를 열어 시민들에게 우주 관측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센터는 또 지역 청소년의 천문우주교육을 위한 천문우주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월 주말 가족과 함께 하는 우주 관측프로그램을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 13일 천문우주캠프를 열어 지난 한해 센터 내 천문대에서 진행한 천문우주교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주인의 훈련과정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시간을 제공했다. 참가 청소년들은 예천천문우주센터를 방문해 우주선 탑승 시 느낄 수 있는 G-Force를 체험하는 가변중력체험, 무중력 상태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우주멀미를 극복하기 위한 우주자세제어체험, 지구 중력의 6분의 1 수준인 달의 중력을 느껴보는 달중력을 체험했다. 또한 천체망원경을 직접 조작하고 맑은 밤하늘에서 C/2014 Q2 Lovejoy 혜성을 관측하는 등 우주의 신비로움을 경험했다. 스마트천문대 김주영 천문대장은 “이번 캠프를 통해 천문우주에 꿈을 가진 청소년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센터에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천문우주과학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신학 記者 아시아투데이 201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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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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