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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928) : 반석평(4)(附 예천세계활축제, 대한민국 축제콘텐츠 대상...축하합니다/예천 출신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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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72권/ 중종 26년(1531 신묘 / 명 가정(嘉靖) 10년) 11월 2일(임자) 1번째 기사/ 성절사로 명나라에 갔던 반석평이 돌아와 선원 종계의 개정 등을 아뢰다/ 성절사(聖節使)16337) 로 갔던 반석평(潘碩枰)이 명나라의 서울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ꡒ《대명회전(大明會典)》에 수록된 선원 종계(璿源宗系)를 개정하는 일은, 예부(禮部)에서 이미 성지(聖旨)를 받들어 사관(史官)16338) 에게 송부하였다 합니다. 또 위화도(威化島)의 중국인을 쇄환(刷還)하는 일은, 신이 돌아오면서 요동(遼東)에 이르러 먼저 정문(呈文)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ꡐ상국(上國)의 백성들이 국경에 흩어져 살아 두 나라 경계에 만연하고 있다. 그래서 혹 사로잡혀 가는 일이라도 생기면 조정(朝廷)의 문책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땅이 비록 비어 있지만 우리나라 백성들이 가서 살면서 농사지을 수 있겠는가? 그대로 비워두는 것은 오로지 대국을 섬긴다는 뜻에서인 것이다.ꡑ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도사(都司)가 ꡐ얼음이 얼기 전에 모두 쇄환할 것이며, 만일 명(命)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법(法)에 따라 충군(充軍)16339) 시키겠다.ꡑ고 하였습니다. 7월 7일, 신이 행산역(杏山驛)에 도착하니, 혜성(彗星)이 술방(戌方)과 해방(亥方) 사이에 나타났습니다. 꼬리가 베 1필 길이나 되었고, 여러 날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북경(北京)에 도착하여 들으니, 중국 조정의 상하가 모두 소복(素服)과 오대(烏帶)차림으로 하늘의 경계에 조심한다 하였습니다.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334면/ 【분류】 *외교-명(明)/ [註 16337]성절사(聖節使) : 명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 ☞ / [註 16338]사관(史官) : 기사(記事)와 편사(編史)를 맡은 관원. 여기서는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과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임. ☞ / [註 16339]충군(充軍) : 죄를 지은 벼슬아치를 군역(軍役)에 편입시키거나, 평민(平民)을 천역군(賤役軍)에 편입시키는 형벌. ☞(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72권/ 중종 26년(1531 신묘 / 명 가정(嘉靖) 10년) 11월 29일(기묘) 7번째 기사/ 김당․윤은보․홍숙․손주․남세준․반석평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당(金?)을 의정부 좌찬성에, 윤은보(尹殷輔)를 우찬성에, 홍숙(洪淑)을 호조 판서에, 손주(孫澍)를 예조 판서에,【특수(特授)임.】남세준(南世準)을 이조 참판에, 반석평(潘碩枰)을 예조 참판에 제수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김당이 청검(淸儉)한 행실은 있었으니 평소 인량(寅亮)16387) 의 물망이 없었는데 이공(貳公)16388) 의 자리에 둔 것은 지나쳤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34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 [註 16387]인량(寅亮) : 이공(貳公)의 뜻임. ☞ / [註 16388]이공(貳公) : 찬성을 말함. ☞(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72권/ 중종 26년(1531 신묘 / 명 가정(嘉靖) 10년) 12월 22일(신축) 1번째 기사/ 반석평․윤희인․김광철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반석평(潘碩枰)을 예조 참판에, 윤희인(尹希仁)을 함경도 관찰사에, 김광철(金光轍)을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34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72권/ 중종 27년(1532 임진 / 명 가정(嘉靖) 11년) 2월 2일(신사) 5번째 기사/ 윤인경․반석평․홍섬․섬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인경(尹仁鏡)을 예조 참판(禮曹參判)에, 반석평(潘碩枰)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 홍섬(洪暹)을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에, 서지(徐祉)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35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75권/ 중종 28년(1533 계사 / 명 가정(嘉靖) 12년) 6월 5일(병자) 4번째 기사/ 김근사․조원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근사(金謹思)를 의정부 우의정에, 조원기(趙元紀)를 의정부 좌참찬에, 김안로를 이조 판서에, 윤은보(尹殷輔)를 호조 판서에, 유관(柳灌)을 예조 판서에, 홍언필(洪彦弼)을 형조 판서에, 이사균을 병조 판서에, 반석평(潘碩枰)을 경상도 관찰사에, 윤탁(尹倬)을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윤풍형(尹?亨)을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에, 허자(許磁)를 의정부 검상(議政府檢詳)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43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76권/ 중종 28년(1533 계사 / 명 가정(嘉靖) 12년) 10월 24일(계사) 1번째 기사/ 반석평․정사룡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반석평(潘碩枰)을 평안도 관찰사에, 정사룡(鄭士龍)을 지제교에, 신공제(申公濟)를 지중추부사에, 이기(李?)를 동지중추부사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47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76권/ 중종 28년(1533 계사 / 명 가정(嘉靖) 12년) 11월 19일(정사) 2번째 기사/ 평안도 관찰사 반석평을 인견하다/ 상이 평안도 관찰사 반석평(潘碩枰)을 인견하고 이르기를, ꡒ본도(本道)는 다른 도와는 달리 중국과 국경이 연하여 사명(使命)이 계속 왕래하는 곳이어서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많으니, 백성 돌보는 것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근일 명사(明使)가 나온다면 백성을 더욱 괴롭히게 될 것이고 또 명사가 나온다는 것을 미리 들으면 민간에서 소동을 일으킬 것이니, 경이 본도에 가거든 백성을 잘 보살피고 폐단을 없애 소동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ꡓ하니, 석평이 아뢰기를, ꡒ양계(兩界)의 방어가 똑같이 중요하나 북도는 이정(里程)이 매우 가까워서 군사들이 심한 노고를 겪지 않아도 되는데 비하여 평안도는 이정이 너무 멀어 군사들이 갑절 이상의 노고를 겪어야만 합니다. 더구나 사명이 줄을 잇는 바람에 타거나 짐을 싣는 말들까지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근년에는 삼등(三登) 지방이 연거푸 실농하여 기근이 더욱 심하므로 내년 봄쯤이면 백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질 형편입니다. 또 상께서는 명사가 올지 안 올지 확실히 모르는 일이니 공급할 물건들을 천천히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이 대신에게 들으니 토역(土役)은 미리 해 둘 것이 없고 연로의 관사(館舍)를 수리할 목재들은 농사 틈을 이용하여 형편에 따라 예비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미리 해 두지 않았다가 명사가 갑자기 오게 되면 창졸간에 하기란 어려울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ꡓ하였는데, 상이 일렀다. ꡒ명사가 올 날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공급에 관한 준비를 한다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그러나 농사 틈을 이용하여 할 만한 일은 형편에 따라 해 두라.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488면/ 【분류】 *왕실-국왕(國王)(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81권/ 중종 31년(1536 병신 / 명 가정(嘉靖) 15년) 3월 21일(병자) 1번째 기사/ 반석평․남세건․김희열․황기․진복창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반석평(潘碩枰)을 호조 참판에, 남세건(南世健)을 승정원 도승지에, 김희열(金希說)을 좌승지에, 황기(黃琦)를 홍문관 전한에, 진복창(陳復昌)을 봉상시 주부에 제수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김안로가 권세를 휘두를 때 이팽수(李彭壽)가 봉상시 참봉이었는데, 김안로가 개고기 구이를 좋아하는 줄 알고 날마다 개고기 구이를 만들어 제공하며 마침내 김안로의 추천을 받아 청현직(淸顯職)에 올랐다. 그 뒤 진복창이 봉상시 주부가 되어서도 개고기 구이로 김안로의 뜻을 맞추어 온갖 요사스러운 짓을 다 하는가 하면, 매번 좌중(座中)에서 김안로가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실까지 자랑삼아 설명하였으나 오히려 크게 쓰여지지 못하였으므로, 남의 구미(口味)를 맞추어 요행을 바라는 실력이 팽수만 못해서 그러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64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82권/ 중종 31년(1536 병신 / 명 가정(嘉靖) 15년) 10월 7일(기축) 1번째 기사/ 윤임․반석평․정옥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임(尹任)을 병조 판서에, 반석평(潘碩枰)을 공조 판서에, 정옥형(丁玉亨)을 병조참판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68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82권/ 중종 31년(1536 병신 / 명 가정(嘉靖) 15년) 10월 9일(신묘) 1번째 기사/ 사간이 반석평의 서용 개정을 건의하나 윤허하지 않다/ 간원이 아뢰기를, ꡒ공조 판서에 반석평은 무재가 있다는 것으로 자급을 건너뛰어 서용하였으나 시종이나 대간을 역임하지 않았으므로 물망이 본디 가볍습니다. 개정하소서.ꡓ하니, 전교하였다. ꡒ지금은 인물이 부족한 때문이므로 육경(六卿)에 궐원이 생기면 종2품을 서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종2품 중에도 합당한 인물이 모자란다. 그리고 공조는 이조․병조와는 비중이 다르니, 개정할 것 없다.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687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82권/ 중종 31년(1536 병신 / 명 가정(嘉靖) 15년) 10월 30일(임자) 2번째 기사/ 반석평․남효의․윤풍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반석평을 공조 참판에, 남효의를 강원도 관찰사에, 윤풍형을 예조 참의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68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89권/ 중종 34년(1539 기해 / 명 가정(嘉靖) 18년) 1월 10일(기묘) 4번째 기사/ 공서린․홍춘경․반석평에 관직을 제수하다/ 공서린(孔瑞麟)을 황해도 관찰사에, 홍춘경(洪春卿)을 홍문관 부응교에, 반석평(潘碩枰)을 동지중추부사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8책 23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89권/ 중종 34년(1539 기해 / 명 가정(嘉靖) 18년) 2월 28일(정묘) 2번째 기사/ 송인수․권벌․반석평에 관직을 제수하다/ 송인수(宋麟壽)를 예조 참판에, 권벌(權橃)을 병조참판에, 반석평(潘碩枰)을 형조참판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8책 25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91권/ 중종 34년(1539 기해 / 명 가정(嘉靖) 18년) 7월 25일(경인) 1번째 기사/ 반석평․강현․정유선․안위․권찬․김만균․나세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청(政廳)에 전교하기를, ꡒ정백붕(鄭百朋)을 판윤(判尹)에, 정유선(鄭惟善)을 참지(參知)에 제수하라. 직급은 맞지 않을지 모르나 지금 대간(臺諫)【이때 집의(執義)임.】이니 제수해도 된다. 집의는 안위(安瑋)【이때 장령임.】에게 제수하되, 장령 직에서는 물러나야 할 것이다.ꡓ하였다. 판서 성세창(成世昌)이 회계(回啓)하기를, ꡒ정백붕은 풍습(風濕)을 앓아 걷지도 못하니 반드시 집무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ꡓ하니, 다시 전교하기를, ꡒ반석평(潘碩枰)은 단망(單望)19078) 으로 주의(注擬)되었으니 반석평을 한성부 판윤에, 강현(姜顯)을 예조 참판에, 정유선(鄭惟善)을 병조참판에, 안위(安瑋)를 사헌부 집의에, 권찬(權纘)을 장령에, 김만균(金萬鈞)을 홍문관 부응교에, 나세찬(羅世纘)을 부수찬에 제수하라.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8책 31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註 19078]단망(單望) : 어느 관직에 임명하기에 합당한 단 한 사람의 후보. 세 사람의 후보 즉 삼망(三望)을 임금께 천거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으나, 삼망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 단망으로 하기도 함. ☞(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92권/ 중종 34년(1539 기해 / 명 가정(嘉靖) 18년) 10월 28일(임진) 2번째 기사/ 사정전에 나가 친히 정옥형․반석평․이기 등에게 직접 관직을 제수하다/ 상이 사정전(思政殿)으로 나아갔다. 정옥형(丁玉亨)을 의정부 우참찬에, 반석평(潘碩枰)을 형조 판서에, 이기(李?)를 한성부 판윤에, 상진(尙震)을 평안도 관찰사에, 김광준(金光準)을 사간원 대사간에, 정세호(鄭世虎)를 성균관 대사성에, 안위(安瑋)를 사헌부 집의에, 이명규(李名珪)를 홍문관 전한에, 임억령(林億齡)을 사헌부 장령에, 유진동(柳辰仝)을 홍문관 부응교에, 이몽량(李夢亮)을 사헌부 지평에, 송세형(宋世珩)을 홍문관 교리에, 윤원형(尹元衡)을 교리에 제수했다./ 【친정(親政)을 오랫동안 폐하고 하지 않았었는데, 이날 비로소 친정을 하였다. 정원과 각 조(曹)의 낭관(郞官)들이 허다한 문안(文案)들을 두루 고찰할 수가 없자 관습대로 서리(書吏)들을 합문(閤門) 밖으로 모이게 한 다음 변본다고 핑계대고 은밀히 드나들면서 그들의 말을 듣고 행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8책 35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중종실록 93권/ 중종 35년(1540 경자 / 명 가정(嘉靖) 19년) 5월 20일(신해) 1번째 기사/ 지중추부사 반석평의 장례에 특별히 부의를 보내라고 전교하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枰)이 졸(卒)하였다. 전교하였다. ꡒ근래 재상들이 잇따라 서거하니 매우 경악스럽다. 반석평은 일찍이 육경(六卿)을 역임했으니 특별히 부의(賻儀)를 보내야 한다. 전례를 조사하여 서계하라.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8책 390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반석평 [記事] : 한국사연구휘보 / 전체 검색어 : 潘碩枰ㅣ총 1건 / 번호 구분 시대 저자 제목 게재지 발행처 발행일의 순서이다./ 1 논문 기타 吳春澤 潘碩枰論 아시아문화 5 한림대 아시아문화... 1989(www.history.go.kr 2009)
반석평(潘碩枰) : 본관(本貫) 광산(광주) 光山(光州), 시대(時代) ?∼1540(중종 35), 자(字) 공문(公文), 호(號) 송애(松厓), 이력(履歷) 반석평(潘碩枰) ?∼1540(중종 3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厓). 서린(瑞麟)의 아들이다. 어떤 재상이 그의 재주와 성품을 사랑하여 글을 가르치고 아들 없는 부자집에 보내어 아들로 삼게 하고 공부에 힘쓰게 하였다.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 등과 교유하였다. 1507년(중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검열이 되고 경차관(敬差官)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여진의 동정을 보고하였으나 천얼출신이라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16년 안당(安塘)의 추천에 의하여 종5품으로서 경흥부사가 되고, 1522년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1524년 군기를 살피지 않고 도로 사정의 보고를 잘못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다시 병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527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 1530년에 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과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1531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참판과 전라도·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다. 1533년 다시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미 한번 역임한 바 있고 또 문신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반대가 있어 부임하지 못하였으나,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시종(侍從)을 역임하지 않았다 하여 공조참판으로 고쳐 임명되었다. 동지중추부사·형조참판·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지내고 이듬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뒤에 주인집 자손이 잔미(殘微)하여졌지만 혹 노상에서 만나면 반드시 예의를 차렸다 하며 청렴하고 겸공한 관리로 이름났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東儒師友錄補遺上, 己卯錄補遺, 安塘傳(安당전)/ Commoners in Early Yi Dynasty Civil Examinations;An Aspect of Korean Social Structure, 1392∼1600(Yong-ho Choe, Journal of Asian Studies 33―4, 1974). 〈金東洙〉(daum 2010)
반석평 :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자는 공문, 호는 송애, 본관은 광주이며 서린의 아들이다. 원남면 보천리 개미산에 살았다. 조광조의 문인이다. 1507년(중종2)에 식년문과에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경흥부사를 거쳐 1522년(중종17)에 만포진 첨절제사가 되고, 함경도 남병사, 병조참의를 역임한 후 1527년(중종22)에 함경도 북병사가 되었다. 1530년(중종25)에 경연특진관, 이듬해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전라도,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고 함경도 북병사에 재임되었다가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536년(중종31)에 공조참판에, 1539년(중동34년)에 형조판서, 이듬해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났다. 그는 중종조의 사람으로 재상이 그의 재주와 성품을 사랑하여 글을 가르치고 또 아들 없는 부자 집에 부탁하여 아들로 삼게 하여 자취를 숨기고 공부에 힘쓰게 하고 서로 왕래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 시호는 장절이다.(daum 2010)
반석평(潘碩枰) : 자(字)는 공문(公文), 호(號)는 송애(松崖), 본관은 광주(光州), 서린(瑞麟)의 아들이다. 중종(中宗) 2년에 문과(文科)하여 검열(檢閱)을 거쳐 팔도관찰사(八道觀察使)를 역임(歷任)하고 판윤(判尹) 형조판서(刑曺判書)에 이르렀는데 청렴(淸廉)결백(潔白)으로 이름이 있었다. 시호(諡號)는 장절(壯節)이다. (방목, 흥지도서)(daum 2010)
반석평(潘碩枰) : 본관은 광주(光州), ?∼1540(중종 3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厓). 서린(瑞麟)의 아들이다. 어떤 재상(宰相)의 재상이 그의 재주와 성품(性品)을 사랑하여 글을 가르치고 아들 없는 부자 집에 보내어 아들로 삼게 하고 공부에 힘쓰게 하였다.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 등과 교유(交遊)하였다. 1507년(중종 2) 식년(式年)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及第)하였다. 이어 검열(檢閱)이 되고 경차관(敬差官)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여진(女眞)의 동정을 보고하였으나 천얼출신이라 하여 사간원의 탄핵(彈劾)을 받았다. 1516년 안당(安塘)의 추천(推薦)에 의하여 종5품으로서 경흥부사가 되고, 1522년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를 거쳐 함경남도(咸鏡南道)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되었다. 그러나 1524년 군기를 살피지 않고 도로 사정의 보고를 잘못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다시 병조(兵曹)참의(參議)에 임명(任命)되었다. 1527년 함경북도(咸鏡北道)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1530년에 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과 충청도 관찰사(觀察使)를 거쳐 1531년 성절사(聖節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禮曹)참판(參判)과 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 관찰사(觀察使)를 지냈다. 1533년 다시 함경북도(咸鏡北道)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임명되었으나 이미 한번 역임한 바 있고 또 문신(文臣)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반대가 있어 부임하지 못하였으나,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가 되었다. 그러나 시종(侍從)을 역임(歷任)하지 않았다 하여 공조(工曹)참판(參判)으로 고쳐 임명되었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형조(刑曹)참판(參判)·한성부(漢城府)판윤(判尹)·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을 지내고 이듬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뒤에 주인집 자손(子孫)이 잔미(殘微)하여졌지만 혹 노상(路上)에서 만나면 반드시 예의(禮義)를 차렸다 하며 청렴(淸廉)하고 겸공한 관리(官吏)로 이름났다. 시호(諡號)는 장절(壯節)이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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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세계활축제, 대한민국 축제콘텐츠 대상...축하합니다.
예천세계활축제 제1회(‘醴泉世界활祝祭’ 大韓民國 祝祭콘텐츠 大賞) [記事] : 국내 최초 활을 주제로 축제를 개최해 각광을 받았던 ‘제1회 예천세계활축제’가 (사)한국축제콘텐츠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축제콘텐츠 대상’ 의 영예를 안았다. 시상 부문은 축제글로벌, 축제콘텐츠, 축제관광, 축제경제, 축제예술 등 5개로 예천세계활축제는 활의 고장 예천의 이미지에 가장 적합한 활을 소재로 국내 최초 축제를 개최한 점이 높이 평가돼 ‘축제콘텐츠 부문 대상’에 선정됐다. 예천군과 매일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예천세계활축제는 지난해 10월 15일부터 5일간 국내 최초 활사냥(필드아처리)과 국궁`양궁체험 등을 비롯해 전통무예 24기 공연, 편사놀이 뮤지컬, 활 캐릭터 코스프레, 세계활전시관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올해는 보다 새로운 모습과 프로그램으로 관광객들에게 기쁨과 추억을 선사하겠다.”고 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4일 서울시청 신청사 태평홀에서 열릴 예정이다.(권오석 記者 每日新聞 201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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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출신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축하합니다.
김성우(김성우 靑瓦臺 弘報首席, SBS出身 正統 言論人…兄인 김성익 氏도 公報秘書官 지내) [記事] : 김성우 새 청와대 홍보수석은 방송과 신문을 두루 거치며 주로 정치부에서 30년간 기자 생활을 한 정통 언론인 출신이다. SBS 기획본부장(전무급)으로 재임하던 2015년 1월 23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회문화특보로 전격 발탁됐다가 한 달 만에 청와대의 핵심 요직인 홍보 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업무 기획력과 추진력이 뛰어나고 조직 장악력을 겸비한데다 언론계 인맥도 넓다는 게 주변의 평가이다. 전두환·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83~1989년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낸 김성익 씨가 친형이다. 1982년 MBC에서 언론계 생활을 시작해 세계일보를 거쳤다가 1991년 개국한 SBS로 이직, 도쿄 특파원, 경제부장, 정치부장, 보도국장, 기획실장, 기획본부장 등을 거쳤다. 2011년부터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으로 4년간 일해 왔다. 부인과 1남. ▷경북 예천(56) ▷대일고 ▷서울대 불어교육학과 ▷SBS 보도국장 ▷SBS 기획실장 ▷SBS 기획본부장 ▷SBS미디어홀딩스 전략본부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기금이사 ▷동 부회장(홍성원 記者 헤럴드經濟 201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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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