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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957:배홍직-배환(1)(祝노병태)
작성자장병창 @ 2015.03.29 06:13:53

  예천의 자랑(3957) : 배홍직-배환(1)(附 대창고 제25회 졸업생 노병태, 20일 대화제약 회장 취임...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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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홍직(甘泉面 眞坪1里 出鄕人 배홍직 氏 7年째 無料 理容 奉仕活動 펼쳐) [記事] : 감천면 진평1리 출신인 출향인 배홍직(58세, 경북 구미시 형곡2동 ) 씨는 진평1리 40여 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매월 무료이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배씨는 7년 전인 지난 2005년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직장(보금 이용소)의 휴일인 매월 넷째 주 월요일을 택해 고향을 방문하여 진평1리 마을회관 한편에 마련한 간이 이용소에서 매월 이발 봉사활동을 펼쳐 마을 주민은 물론 인근 주민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듣고 있다. 특히, 배씨가 방문하는 매월 넷째 주 월요일에는 마을부녀회에서도 뜻을 같이해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점심식사와 음료를 접대하고 있어 진평1리 마을회관은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편, 배씨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자랑스런 도민봉사자로 선정되어 김관용 도지사로부터 도민봉사상을 수상하게 됐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월 진평1리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발 봉사활동을 펼치겠다." 고 밝혔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1-12-26 오후 2:26:01)

 

  배홍직(사랑의 가위손’ 7年째 理髮奉仕 實踐) [記事] : 50대 이발사가 7년째 고향에서 노인들께 무료 이발봉사를 펼치고 있어 미담이 되고 있다. ‘사랑의 가위손’의 주인공은 구미시 형곡동에서 보금이용소를 운영하고 있는 배홍직씨(57). 배씨는 지난 2005년부터 매달 셋째 주 월요일마다 어김없이 이발도구를 챙겨들고 고향인 감천면 진평1리 ‘진평이발소’로 향한다. 2평(6.6m²) 남짓한 진평이발소는 이곳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해 지어놓은 이발소로 배씨는 매달 이곳을 방문해 노인 20여명에게 무료 이발봉사를 하고 있다. 배씨는 “아버지 같으신 어르신들에게 봉사를 하면 나 자신이 기쁨을 더 느낀다.”며 “어르신들께서 깨끗하게 머리 손질을 받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20일 방문한 좁디좁은 진평이발소에는 벌써 흰 백발의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3~4분이 의자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팔순을 넘긴 고령의 주민들은 “덕분에 오늘도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며 두 손을 꼭 잡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올해로 7년째.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한달에 한 번씩은 꼭 이발 봉사에 나선다는 배씨. 이발봉사를 시작하게 된 연유를 묻자 그는 “고향에 자주 오면서 여러 어르신들에게 나름대로 봉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11남매 중 셋째인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기술을 배워야 밥벌이가 쉽다고 해 이발기술을 배우게 됐다”며 영주, 안동 등지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다 지난 1997년 구미시 형곡동에서 이발소를 개업했다”고 했다. 현재 그는 이용사 중앙회 구미지부 상임 부회장, 구미지부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몇 년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와야지요. 고향에 돌아오더라도 힘닿는 데 까지 이발봉사를 계속 할 계획입니다.” 배씨가 웃으며 말했다.(권용갑 記者 大邱日報 2012-02-22 20:27)

 

  배홍직 : 보금이용소' 배홍직 대표, 고향 예천 감천면 진평리에서 매월 이발봉사/ 2008.12.04 | Daum 카페/ 그 주인공은 구미시에서 `보금이용소'를 운영하는 배홍직(54) 씨다. 감천면 진평리가 고향인 배홍직 씨는 고향 어르신들이 이발을 하기 위해서는 하루 한 차례 운행되는 시내버스를 타고 감천면 소재지까지 가야하는 불편.../ cafe.daum.net/yckun/DwWV/394 예천군민회(daum 2012)

 

  배홍직 : ‘사랑의 가위손’ 7년째 이발봉사 실천/ 대구일보/ 고향에 돌아오더라도 힘닿는 데까지 이발봉사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배씨가 웃으며 말했다. 권용갑 기자 kok9073@idaegu.com 7년째 고향인 예천 진평1리에서 무료 이발봉사를 하고 있는 배홍직씨가 어르신의 머리를.../ idaegu.com(daum 2012)

 

  배홍직 : 보금 이용소/ 2012.02.21 | Daum 카페/ 가위손'의 주인공은 구미시 형곡동에서 ‘보금이용소’를 운영하고 있는 배홍직(57) 씨이다. 배씨는 지난 2005년부터 매달 셋째 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이발도구를 챙겨 들고 고향인 감천면 진평1리(리장 김홍년) ‘진평이발소’.../ cafe.daum.net/ous2561/ 보금 이용소(daum 2012)

 

  배홍직 : 진정한 선행/ 웹문서/ 노인분들의 이발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월 1회 감천면 진평1리를 방문하시여 어르신들의 이발을 해드리고 조용히 집으로 향합니다. 이 분은 구미에 사시는 40대 후반 정도 되신 배홍직.../ city.ycg.kr(daum 2012)

 

  배홍직 : 친구자랑/ 2008.12.09 | Daum 카페/ 감동적인 친구 소식이 있어 고마운 마음과 39회 친구들께 자랑합니다. 우리친구 배홍직이 고향 정을 잊지 못해 매월 한차례 고향 마을 어르신들께 이발봉사를 하고 있다는 기사을 보고 하염없이 아름다운 마음 친구들께 전하니.../ cafe.daum.net/kc39/FNsZ/ 감천초등학교제39회동창회(daum 2012)

 

  배홍직(이웃 사랑 '가윗손' 理容技能匠 最初 取得, 龜尾 보금理容所 배홍직 院長) [記事] : "내가 가진 이용 기술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죠." 구미지역 이용업계에 종사하면서 최초로 이용기능장을 취득한 보금이용소 배홍직(56`구미시 형곡동) 원장. 배 원장은 2013년 6월 28일 제53회 대한민국 이용기능장을 받았다. 구미지역에 5명의 이용기능장이 있지만 대부분 대학 강의 및 가발 제작 등으로 전환을 하면서 이용업에 종사하는 이용기능장은 배 원장이 유일하다. 배 원장이 이용 기술 자격을 취득한 것은 1975년 3월이다. 대구에서 개업해, 이용소를 운영해오다가 1994년 구미로 왔다. 구미로 오면서 형곡동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들에게 매달 머리를 깎아주기 시작했다. 배 원장은 구미에 자리 잡으면서 이용봉사도 확대하기 시작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경북지부 구미지소와 구미경찰서 등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쳤다. 또 10년 전부터는 배 원장의 고향인 예천군 감천면에 매달 둘째 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이용 도구를 챙겨 봉사를 간다. 배 원장은 각종 전국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2010년과 2011년 전국헤어기능대회에서 각각 금상을 받았으며, 지난 5월 전남도지사배 이용 기술경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배 원장은 "앞으로 명장에 도전을 하고 싶다"면서 "내가 가진 이용 기술을 이용해 후배도 양성해보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이용봉사나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전병용 記者 每日新聞 2013-08-02)

 

  배홍직(甘泉面 眞坪1里 出身 龜尾 出鄕人 배홍직 氏 '2013 龜尾市 最高匠人'으로 뽑혀!) [記事] : 2013년 11월 18일 구미시에서 열린 "2013 구미시 최고장인 시상식"에서 예천군 감천면 진평1리 출신 출향인 배홍직 씨(58.감천초 39회)가 서비스분야(이용)에서 "2013 구미시 최고 장인"으로 선정되어 웅비 예천을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구미시(시장 남유진)는 지난 9월 23일~10월 25일(1개월간)까지 2013년도 최고장인 후보자 추천을 접수하여 총 10여명의 추천자 가운데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예천 출향인 배홍직 씨를 "2013 구미시 최고 장인"으로 선정했다. 배홍직 씨는 구미시 최고장인 증서와 함께 매월 20만원(3년간)의 기술장려금을 지급받게 된다. 한편, 배씨는 지난 2005년부터 감천면 진평1리 어르신 40여명에게 매월 이발봉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김관용 도지사로부터 "자랑스런 도민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홍희 구미시 경제통상국장은 "배홍직 씨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구미시는 전문기능인이 우대받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다하고 특히, 중소기업인력난 해소를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3-11-21 오전 11: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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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환(裵桓) : 1378(우왕 4)-?, 지보면 대죽리 출신으로, 안동부 서쪽의 금계촌(金溪村)으로 옮겨 살았다. 본관은 흥해, 판사복시사 상지(判司僕寺事尙志, 號 栢竹堂, 1351-1413))의 아들, 송정 조용(趙庸)의 제자이다. 1401년(태종 1) 증광 문과에 병과 8위로 급제하여 호군을 거쳐 1423년(세종 5) 의주 삭주 도 경차관(義州朔州道敬差官)으로 나갔다. 사헌부 감찰, 병조 좌랑 등을 거쳐 1432년(세종 14) 예문관 직제학으로 선위사(宣慰使)를 겸하고 광주(廣州)에서 일본 사신을 접견했고, 2년 뒤 우사간을 거쳐 1435년(세종 17) 병조 참의로 선위사가 되어 명나라의 사신을 접반하고 이듬해 황해도 관찰사, 충청도의 관찰사, 첨지중주원사(1438)가 되고, 공조 참의를 거쳐 전라도 관찰사(1442)를 지내고 판진주목사(判晋州牧使, 1448) 때 병으로 치사(致仕)했다. 1451년(문종 1)부터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2-1번지 낙암정(洛巖亭, 경북문화재자료 제194호)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文科榜目, 인터넷 야후 2001)

 

  [세종실록] : 1422년(세종 4) 1월 14일 도성수축도감 부사(都城修築都監副使)로서 태상왕(太上王, 太宗)에게 도성 경영을 상세히 아뢰었다. 1423년(세종 5) 1월 19일에는 평양ㆍ안주 경차관(平壤安州敬差官)으로서 길을 떠났다. 1424년(세종 6) 9월 27일에는 경력(經歷)으로서 양주 녹양평(楊州錄楊平)에 머문 왕을 경기도 감사 김겸(金謙, 전 예천군수)과 함께 알현하였고, 동년 10월 5일에는 경기 동교(東郊)에 왕이 머물 때 겹옷 한 벌을 하사받았다. 예문 직제학일 때인 1431년(세종 13) 10월 9일 선위사(宣慰使)로서 왕명에 의해 유구국 중산왕(中山王)의 사신을 데려왔고, 1432년(세종 14) 6월 12일 선위사로 광주(廣州)로 가서 일본 국왕의 사신을 위로하였다. 그 이튿날 돌아와 일본 사신이 관반 이맹상(館伴李孟常)을 교체해 달라고 청한다고 보고하였다. 1432년(세종 14) 9월 4일 왕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온천에 가려 하니 폐단이 백성에 미치지 않을 계책으로 판사(判事) 배환으로 하여금 온천 그림을 가지고 온천으로 가서 편의한 점을 아뢰게 하라."하였다. 1434년(세종 16) 12월 2일 우사간(右司諫)에 제수되었고, 1435년(세종 17) 5월 21일 사간원 좌사간으로서 신의군 이인(李仁) 등을 축출할 것을 왕께 아뢰어 서인(庶人)으로 삼았고, 동년 8월 15일에는 병조 참의에 올랐다. 1436년(세종 18) 1월 4일에는 병조참의로서 사신을 평양에서 선위하였고, 1437년(세종 19) 6월 30일 황해도 관찰사에 제수되었고, 그 후 첨지중추원사(1438.7.30), 공조 참의(1438.8.13), 형조 참의(1439.2.12), 전라도 관찰사(1442.7.3-1442.12.3)에 올랐다. 1445년(세종 27) 3월 26일에는 함길도 감사(咸吉道監司)가 아뢰기를, "도내의 참로 찰방(站路察訪)을 배환이 하여서 관사(館舍)가 일신(一新)하게 되고, 사람과 말들이 풍성하였었는데..."라고 하였다. 1446년(세종 28) 6월 6일에 판진주목사(判晋州牧使)에 제수되었다. 1448년(세종 30) 3월 7일에는 나이 70세가 되었으나 판진주목사에 왕의 특명으로 유임되었다.

 

  배환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1) 총묘(塚墓)/ 관찰사(觀察使) 배환(裵桓)의 묘 풍산현 북쪽 본직산(本稷山)에 있다. 신도비(神道碑)가 남아 있다.(www.koreastudy.or.kr 2007)

 

  배환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2) 인물(人物)/ .../ 배환(裴桓)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상지(尙志)의 아들,이다.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권(權)의 아우이다. 급제하여 벼슬이 관찰사(觀察使)에 이르렀다.(www.koreastudy.or.kr 2007)

 

  배환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4) 우거(寓居)/ ...배상지(裴尙志) 흥해(興海) 사람이다. 흥해군(興海君) 전(詮)의 아들로 부의 서쪽 금계촌(金溪村)에 우거(寓居)하였다. 고려 말기에 음사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중서랑(中書郞)이 되었다. 굴공(屈公)의 고사(故事)에 따라서 조정에서 모자를 벗고 옷소매를 떨쳐서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숨었다. 끝내 벼슬에 나가려는 마음이 없었다. 백죽(柏竹)을 심고 그 가운데에 집을 지어서 거처했으므로 호를 백죽당(柏竹堂)이라고 했다. 시주(詩酒)로써 스스로 늙어갔다. 본조(本朝)에 들어와 끝내 지조를 더럽히지 않고 죽었다. 시집이 남아 있으나 천수(千首)가 유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뒤에 아들 환(桓)이 귀하게 되자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www.koreastudy.or.kr 2007)

 

  배환(裵桓) : 1379(우왕 5, 기미) ~ ?,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 흥해(興海). 서후(西後) 출생. 백죽당(栢竹堂) 상지(尙志)의 제2자. 조용(趙庸)의 문인으로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호군(護軍)을 거쳐 1409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병조좌랑(兵曹佐郞)·봉화현감(奉化縣監)·공조(工曹)·형조(刑曹)의 좌랑(佐郞)·정랑(正郞)을 역임했다. 1423년(세종 5) 의주도(義州道)·삭주도경차관(朔州道敬差官)이 되었다가 1432년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으로 선위사(宣慰使)를 겸직하여 광주(廣州)에 가서 일본 사신을 접견하고, 1434년 우사간(右司諫)을 거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맞았다. 이어 황해도(黃海道)·전라도(全羅道)의 관찰사(觀察使)·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고, 1448년 진주목사(晉州牧使)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참고문헌 : 世宗實錄·高麗史·興海裵氏譜(www.koreastudy.or.kr 2007)

 

  배환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黃海道 / 載寧 / 山川  /  長壽山 南距四十里自海州首陽山來主脈?峴舊邑誌裵桓詩鎭北石山高??中/ <하권0058-2>/ 巒鍾秀創名州...(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眞寶 / 人物  / 本朝趙庸 官至禮儀判書謚文貞博學能文而尤精於性理之學嘗謫居醴泉敎授不倦多知名士趙末生 尹祥 裴桓 裴?皆出其門 舊增李? 登第官至戶曹參判有詩...(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용호한록 / 龍湖閒錄二 / 第六冊 / 三一八, 東國文獻門生篇  /  ...鄭圃隱門人 稼亭私淑 從遊, 李在吾 順卿 石灘 ․吉再 再父 冶隱 ․權近 可遠 陽村 文忠 ․權遇 慮甫 梅軒 陽村弟 ․河演 淵亮 敬齋 文孝 ․咸傅霖 東原君 蘭溪 ․卞季良 巨卿 春亭 文肅 ․李陽明 司藝 ․趙庸 文貞公 ․朴信 雪峰 。 李牧隱門人 稼亭私淑 ․河崙 大臨, 浩亭, 文忠 ․鄭可宗 子固 ․尹紹宗 憲叔 桐亭 ․鄭道傳 宗之 政丞 ․崔彪 ?知 。 吉冶隱門人 圃隱淵源 ․金淑滋 子培 江湖 ․金峙 府使 ․朴瑞生 大憲 ․吉久 冶隱弟生員 ․崔雲龍 佐郞 ․吉師舜 冶隱子。 圃隱淵源 , 金從理 直學 ․許稠 仲通, 敬庵, 文敬 ․孟思誠 誠之 文貞 ․姜淮伯 伯父 通亭 ․李源 次山 容軒 襄憲 ․崔直之 郡守 ․崔得之 少尹 直之弟 ․崔德之 烟村 得之弟 ․崔澄 贈判書 ․崔廷達 奉事 ․金懷愼 草堂 , 權梅軒門人 圃隱淵源 , 權採 用之 ․安止 皐隱, 文靖 ․鄭麟趾 伯?號學易齋 文成 ․金連枝 戴敬公 ․李先齊 提學 。 卞春亭門人 圃隱淵源 , 鄭陟 明之 整庵 。 李司藝門人 圃隱淵源 , 金汶 直學 。 趙文貞門人 圃隱淵源 , 尹祥 別洞 ․趙末生 文剛公 ․裵桓 生員 ․裵? 尙志 ․崔元亨 林川 ․崔瑾 郡守 。 世宗朝成均掌敎人, 黃鉉 大司成 ․金? 音斤字直之 文長公 ․金泮 詞源 松亭 ․金末 諡文長公 。 世祖朝成均掌敎人, 鄭自英 知樞 ․孔? 大司成 ․丘從直 正甫 安長 。 ?希益 大司成 ․?鎭 直提學 。...(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묵재일기 하 / 10冊 / 嘉靖四十四年 乙丑 / 孟冬十月 大 丁亥  / 二十七日庚寅  /. ○留. ○二道行下?正人未納者, 世?納二斗, 裵桓納二斗.(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8권/ 세종 2년(1420 경자 / 명 영락(永樂) 18년) 4월 21일(기미) 3번째 기사/ 허척이 상왕의 거둥을 가물다는 이유로 제지할 것을 아뢰다/ 사헌부 지평 허척(許倜)이 아뢰기를, ꡒ신 등이 듣자오니, 상왕이 장차 철원 등지에 거둥하신다 하오나, 지금 가뭄이 심하여 나가실 수 없사오니,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아뢰어서 이번 거둥을 정지하게 하소서.ꡓ하니, 임금이, ꡒ먼 땅도 아니며, 또 말을 달리고 사냥하시는 것도 아니요, 특히 파적(破寂)하시려 하실 뿐이라.ꡓ하고, 환관 이촌을 낙천정에 보내어 상문(上聞)하게 하여, 촌이 가보니, 상왕이 이미 동가(動駕)한지라, 이에 말 위에 아뢰니, 상왕이 송계원(松溪院) 들에 이르러 말을 멈추게 하고, 병조 정랑 배환(裵桓)을 시켜 수강궁에 달려가 허척을 불러 선지를 전하여 말하기를, ꡒ이번 봄부터 여름까지 가물므로, 나의 근심하는 것이 너희들 보다 갑절이나 더하다. 풍양 이궁 근처에 빈 땅이 있으므로, 많지 않은 군사를 데리고 거기에 가는 것인데, 그것이 어찌하여 가뭄을 불러오게 되겠느냐. 전번에 비가 내렸기로, 내 생각에는 전곡(田穀)에 넉넉할 줄 알았더니, 이제 너희들이 가물이 심하였다 하여, 나의 나가는 것을 금하니, 내가 매우 부끄럽구나. 나의 나가는 것이 만약 옳지 아니하였다면, 나를 따라 있는 신료(臣僚)들은 모두 아첨하는 사람들로서 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냐.ꡓ하니, 척(倜)이 그 말을 듣고 황공하여 땀을 흘리며 대답하기를, ꡒ이 일은 장령 송인산(宋仁山)의 발론입니다.ꡓ하였다. (桓)이 돌아가 상왕에게 아뢰니, 상왕이 풍양에 머물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2책 380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과학-천기(天氣) / *정론(政論)(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15권/ 세종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1월 14일(임신) 4번째 기사/ 이원․정탁․이종무․박자청․이천 등이 도성 경영하는 일을 의논하다/ 도성 수축 도감(都城修築都監)의 도제조(都提調)인 좌의정 이원(李原)․우의정 정탁(鄭擢)과 제조(提調)인 장천군(長川君) 이종무(李從茂)․판부사(判府事) 박자청(朴子靑)․공조 참판 이천(李?) 등이 모여서 경영하는 일을 의논하였는데, 박자청은 자기가 공역(工役)에 익숙하다고 여겨 여러 사람에게 의논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였으므로, 계획한 일이 적당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두 의정(議政)이 말하기를,  ꡒ제조(提調)는 판부사 혼자만은 아닌데, 무슨 까닭으로 여러 사람에게 의논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가.ꡓ하자, 얼굴빛이 달라지며 말없이 나가버렸다. 도감 부사(都監副使) 배환(裵桓)으로 하여금 태상왕에게 상세히 아뢰도록 하였다. 태상왕이 임금에게 알리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의정(議政)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인데 자청이 어찌 감히 이와 같이 무례한 짓을 할 수 있으랴. 비록 자청이 없더라도 도성(都城)을 능히 수축하지 못하겠는가.ꡓ라고 하였다. 곧 자청에게 명하여 사제(私第)로 돌아가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2책 471면/ 【분류】 *군사-관방(關防) /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19권/ 세종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1월 19일(신축) 1번째 기사/ 각도의 진제를 맡은 경차관이 사목을 아뢰다/ 각도의 진제(賑濟)를 맡은 경차관(敬差官)이 사목(事目)을 아뢰었는데, ꡒ1. 굶주린 백성을 진제(賑濟)하는 조획(條?)은 각 년(年)의 교지(敎旨)를 상고하여 시행하여야 할 것이며, 1. 경차관이 각 고을에 이르러 먼저 수령들의 감결(甘結)722) 을 취하고 미두(米豆)와 염장(鹽醬)을 가지고 바로 사면(四面)으로 가서 그 굶주림이 심한 사람에게는 즉시 진제(賑濟)할 것이며, 1. 수령들이 만약 경내(境內)의 굶주린 백성을 숨기고 위에 알리지 않는 사람과, 각 면(面)에서 감고(監考)하는 정장(正長)이 인정(人情)의 호오(好惡)에 끌려서 실제로 굶주린 사람을 보고하지 않고 굶주리지도 않는 사람을 도리어 보고하여, 마음을 다하여 백성을 구제하지 않아서 부종(浮?)까지 나게 한 자는 모두 형률(刑律)에 의하여 죄를 과(科)하되, 수령과 감고(監考) 3품 이상은 위에 아뢰어 죄를 논단(論斷)하고, 4품 이하는 바로 죄를 결단하게 하며, 그 중에 정상이 더욱 심한 자는 속전(贖錢)을 징수하지 말고 곤장을 치기로 결정할 것이오며, 1. 감사가 순행하는 먼 곳은 경차관이 직접 창고를 열어 진제(賑濟)할 것이오며, 1. 수령이 죄를 범한 자는 공공연히 추핵(推?)하도록 할 것이오며, 1. 감사는 수령관(首領官)이 능히 백성들을 구휼(救恤)하지 못하면 수령관을 즉시 취조하여 사목(事目)과 같이 할 것을 명하고, 다만 수령과 감고가 정상이 더욱 심한 자는 모두 아뢰어 올리되, 그 중에 조금 경한 자는 혹은 곤장 70대를 치기도 하고, 곤장 60대를 치기도 하고, 태형(笞刑) 50대를 치고, 속전(贖錢)을 받아 죄를 결정하는데 차등이 있는 일은 없앨 것입니다.ꡓ라고 하였다. 즉일에 강원도 경차관인 이조 정랑(吏曹正郞) 박융(朴融)과 황해도 경차관 병조 정랑(兵曹正郞) 이길배(李吉培)와 평양․안주도(平壤安州道) 경차관 호군(護軍) 배환(裵桓)과 의주․삭주도(義州朔州道) 경차관 봉상 판관(奉常判官) 김종서(金宗瑞) 등이 떠났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2책 521면/ 【분류】 *구휼(救恤) / *사법-법제(法制)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註 722]감결(甘結) :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보내는 공문. ☞(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9월 27일(기해) 1번째 기사/ 종묘에 강무 행하는 것을 고하고 거가가 떠나다/ 강무(講武)를 행할 것을 고(告)하는 제사를 종묘에 지내고, 이날 거가(車駕)가 떠나서 양주(楊州) 녹양평(綠楊平)에서 낮참으로 머물렀는데, 경기 감사 김겸(金謙)과 경력 배환(裵桓)과 양주 부사 이승직(李繩直)이 조복을 갖추고 맞아서 알현하고, 감사가 술 50병을 올렸으므로, 시위하는 신하들과 장군 절제사(掌軍節制使)에게 나누어 하사하였는데, 미천한 자에게까지 몫이 돌아갔다. 여러 도에서 강무할 때의 진상(進上)은 정지시키라고 명하니, 지신사 곽존중이 아뢰기를, ꡒ각도의 진상이 이미 왔으므로 정지시키지 못하옵니다.ꡓ하였다. 저녁에 풍천(楓川)에 머무르니, 경상도 감사 이숙묘(李叔畝)․전라도 감사 이발(李潑)․충청도 감사 김익정(金益精)․병마절제사 조정(趙定)․함길도 감사 정초(鄭招)․도절제사 하경복(河敬復)․황해도 감사 성엄(成?)이 사람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고, 김겸(金謙)도 또한 방물을 바치었다. 대언사(代言司)에 명하여 각도에서 진상할 말[馬]에게 소용되는 제구(諸具)는 거가를 따르는 대소 신료(臣僚)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2책 62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재정-진상(進上)(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10월 5일(병오) 1번째 기사/ 경기 감사 김겸과 경력 배환에게 겹옷 한 벌씩 내리다/ 낮참으로 동교(東郊)에서 머물렀는데, 경기 감사 김겸(金謙)과 경력(經歷) 배환(裵桓)에게 겹옷[?衣] 한 벌씩 내렸다. 지응(支應)에 수고하였기 때문이었다. 환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2책 62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54권/ 세종 13년(1431 신해 / 명 선덕(宣德) 6년) 10월 9일(경자) 5번째 기사/ 선위사를 보내 유구국 사신을 데려오게 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ꡒ유구국 중산왕(中山王)이 보낸 사람을, 청하건대, 일본 국왕의 사신의 예에 의거하여 그 도의 역승으로 하여금 데리고 오도록 하소서.ꡓ하니, 지신사 안숭선이 아뢰기를, ꡒ유구는 일본과 같지 않으니 특별히 관원을 보내어 데리고 오도록 함이 편할 것입니다.ꡓ하니, 그대로 따르고, 마침내 예문 직제학 배환(裵桓)을 선위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책 347면/ 【분류】 *외교-유구(琉球)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56권/ 세종 14년(1432 임자 / 명 선덕(宣德) 7년) 6월 12일(기해) 1번째 기사/ 선위사로 배환을 광주에 보내 일본사자를 위로하다/ 선위사(宣慰使)로 예문 직제학(藝文直提學) 배환(裵桓)을 광주(廣州)에 보내어 연회를 열어 일본 국왕의 사자를 위로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책 397면/ 【분류】 *외교-왜(倭)(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56권/ 세종 14년(1432 임자 / 명 선덕(宣德) 7년) 6월 13일(경자) 1번째 기사/ 일본사자가 관반 이맹상을 교체해 달라 청하다/ 배환(裵桓)이 돌아와 아뢰기를, ꡒ부관인(副管人)이 편지를 보내어 관반(館伴) 이맹상(李孟常)을 바꿔 주기를 청하였습니다.ꡓ하매, 즉시 정부와 허조․신상 등에게 의논하니, 모두 아뢰기를, ꡒ외국의 사객을 감호(監護)하는 임무는 성의로써 그들을 접대하여 후의(厚意)를 보이면서 엄격하게 법을 지켜서 참람되고 지나치는 일이 없게 하여야 하는 것인데, 지금 맹상의 무리가 법만을 고집하여 손[客]에게 기피(忌避)를 당하였으니 비록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마땅히 곧 고쳐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ꡓ하므로, 드디어 선공감 정(繕工監正) 안구(安玖)를 대신 임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책 397면/ 【분류】 *외교-왜(倭)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57권/ 세종 14년(1432 임자 / 명 선덕(宣德) 7년) 9월 4일(기미) 1번째 기사/ 승정원에 온수에 가려하니 폐단이 백성에 미치지 않을 계책을 의논하라 전지하다/ 승정원에 전지하기를, ꡒ내가 근년 이후로 풍질(風疾)이 몸에 배어 있고, 중궁(中宮)도 또한 풍증(風症)을 앓게 되어, 온갖 방법으로 치료하여도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일찍이 온정(溫井)에 목욕하고자 하였으나, 그 일이 백성을 번거롭게 할까 염려되어 잠잠히 있으면서 감히 말하지 않은 지가 몇 해가 되었다. 이제는 병의 증상이 계속 발생하므로 내년 봄에 충청도의 온수(溫水)에 가고자 하니, 폐단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을 계책을 의논하여 아뢰라. 또 그 접대하는 도구(道具)와 공선(工繕)의 일은 모두 금년 겨울 사무가 한가로울 때에 미리 준비하게 하고, 비록 실우(室宇)를 짓더라도 사치하고 크게 짓지 못하게 하며, 그 체제(體制)를 그림을 그려 올리게 하라.ꡓ하였다. 대언(代言) 등이 삼전(三殿)의 욕실(浴室)과 침실(寢室)의 체제(體制)를 그림을 그려서 올리니, 임금이 이를 보고 그 수효를 감하게 하고, 판사(判事) 배환(裵桓)으로 하여금 그림을 가지고 온정(溫井)으로 가서 본도(本道) 감사(監司)와 다시 편의한 점을 의논하여 아뢰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책 415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과학-지학(地學)(www.history.go.kr 2009)

 

  배환 [記事] : 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1434 갑인 / 명 선덕(宣德) 9년) 12월 2일(을사) 1번째 기사/ 유은지․전흥․윤회․이숙치․권도․김맹성․설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유은지(柳殷之)․전흥(田興)을 중추원사로, 윤회(尹淮)를 예문관 대제학으로, 이숙치(李叔?)를 형조 참판으로, 권도(權蹈)를 경창부 윤으로, 김맹성(金孟誠)을 인순부 윤으로, 설순(?循)을 동지중추원사로, 이선(李宣)을 이조 참의로, 노귀상(盧龜祥)을 병조 참의로, 김세민(金世敏)을 형조 참의로, 배환(裵桓)을 우사간으로, 조수량(趙遂良)을 사헌부 집의로, 권자홍(權自弘)을 우정언으로, 박안신(朴安臣)을 평안도 도관찰사로, 허지혜(許之惠)를 황해도 관찰사로, 최부(崔府)를 판광주목사로, 최견(崔?)을 판공주목사로, 이징옥을 판회령도호부사로, 하한(河漢)을 영북진 첨절제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책 60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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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창고 제25회 졸업생 노병태, 20일 대화제약 회장 취임...축하합니다.

 

  노병태(大昌高25回 노병태 同門 대화제약(株) 代表理事/會長 就任|◈-- 人事/ 동정 /祝賀/ 권영주 | 2015.03.27. 23:55 //cafe.daum.net/seouldaechong/ 대화제약(주)은 2015년 3월 20일 강원도 횡성본사에서 개최된 제31기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노병태(고25)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되었습니다. 동문 여러분의 많은 축하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재경대창중고등학교 총동문회 가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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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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