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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966:백현주-백형환-백홍정-백회-벌보말(1)(附예천방문1,236)
작성자장병창 @ 2015.04.07 06:15:33

  예천의 자랑(3966) : 백현주-백형환-백홍정-백회-벌보말(1)(附 예천방문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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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현주([인터뷰通] 民間 主導로 日교토에서 韓服패션쇼…디자이너 백현주 氏) [記事] :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각국 정상`배우자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은 분야의 한국 문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전통 선물로는 한복 인형을 선택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그만큼 한복은 우리 복식(服飾) 문화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은 물론 잇따른 외국 순방에서 한복을 입고 등장, 지구촌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한복 외교’의 화려한 성공과 달리 정작 국내에서는 한복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국내 전체 패션시장에서 한복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단 2%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백현주(56) 씨를 만나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교토에서 열린 한복 패션쇼 : 2013년 11월 24일 일본 교토에서는 눈길을 끄는 행사가 하나 열렸다. 대구의 백현주한복연구소와 재일 한인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교토지방본부가 양국 우호증진을 위해 마련한 ‘2013 한·일 친선 문화교류 페스티벌’이다. 도로를 차단한 채 헤이안신궁(平安神宮) 앞에서 한국의 궁중의상을 선두로 부채춤, 일본 기모노 무용단의 퍼레이드가 펼쳐지자 현지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또 복합전시관인 ‘미야코 메세’에서 열린 패션쇼에서는 한국의 승무와 궁중복, 현대 한복을 선보일 때마다 1천여 석을 가득 메운 객석이 감동과 열기로 가득 찼다.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한복을 입고 오신 동포 할머니들이 제 손을 잡고 우시는 모습에 저도 눈물이 흐르더군요. 지난해 7월부터 매달 평균 두 차례 이상 일본을 오가며 행사를 준비하는 바람에 겹겹이 쌓였던 피곤은 눈 녹듯 사라졌지요. 미스코리아들이 기모노를 입은 일본 모델과 함께 거리를 누빌 때에는 우리 고유 의상의 아름다움을 증명했다는 기쁨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습니다.” 이 행사는 특히 한국과 일본이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순수 민간 차원의 교류였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일본의 우경화에 따라 양국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민간단체 간의 소통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해답이 보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40여 명의 한국 문화사절단 방문 경비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 없이 백 소장 등 민간에서 부담했다.  “알고 지내던 재일교포에게 제가 만든 궁중복을 선물한 게 문화교류 행사로까지 확대됐습니다. 그 교민이 교토에서 열린 한국 전통혼례에 제 옷을 입고 참석한 모습을 보고 일본 기모노협회 관계자가 양국 전통의상 패션쇼를 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던 거죠. 11월이 교토의 단풍 관광이 절정이라 숙소를 구하지 못해 인근 오사카에 묵어야 했던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네요.”  보람도 컸지만 아쉬움도 물론 있다. 일본 측에서는 행사가 무척 성공적이었다며 매년 개최하자고 제의해왔지만 개인이 계속 이어가기에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백 소장은 독일 함부르크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열자는 제안을 받아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여력만 된다면 2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에서 한복 설명회를 개최하고 싶어요. 이번 일본 행사도 한국에서 15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기획했지만 냉랭해진 양국 관계와 비용 문제 때문에 축소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행사 장소도 처음에는 헤이안신궁으로 잡았다가 한복을 알리려는 행사의 본뜻이 왜곡될까 봐 옮겨야 했고요. 무엇보다 연세 드신 교포 할머니들에게 한복을 선물해 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워요.”

 

  ◆전통문화 계승하면서 새로운 감각 접목 : 백 소장은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한복 패션쇼를 열어 우리 옷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높이는 데 애쓰고 있다. 2009년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아름다운 우리 옷과 즐거운 차(茶) 생활’을 주제로 다례복, 궁중복, 혼례복 등을 선보인 데 이어 20011년에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무대를 마련했다. 이 행사에는 스위스`캐나다`코트디부아르 등 11개국 주한 대사 부인들이 모델로 나서 화제가 됐다. 2012년 대구 엑스코에서 개최한 ‘세계인과 함께하는 한복 패션쇼’ 역시 주한 외국대사관`주한 미군 관계자 등이 자국의 전통의상과 우리 궁중복 등을 입고 모델로 나섰다.  “한복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패션 리더들이 한복의 미(美)를 자연스레 알리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공식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복을 입어 ‘홍보대사’로 나선 것이 대표적이죠. 제가 각국 외교관들을 자주 초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글로벌시대에 한복은 진정한 한류를 알리는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백 소장의 한복은 고유의 전통 의복문화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의 디자인을 잘 접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고리에는 양장 기술을 활용해 활동성을 높였고, 치마 역시 압박감이 덜해 일상복으로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고객들의 반응이다. 이 같은 디자인 덕분에 지역의 한복 애호가들은 한눈에 ‘백현주가 만든 옷’을 알아본다고 한다. “디자이너 스스로 만족해야 고객에게도 부끄럽지 않지요. 그래서 옷을 만들다 보면 가끔 손해를 볼 때도 있어요. 고객 한 분 한 분의 개성을 살리려다 보니 자꾸 욕심이 나서 더 좋은 원단을 쓰게 되니까요. 제 고객 가운데 80% 정도가 서울에서 오시는데 그 이유가 서울에서는 그 가격에 마음에 드는 한복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한복을 격식대로 입지 않은 사람을 보면 달려가서 조언을 해준다는 백 소장은 요즘 한복 문화에 대해서 따끔한 한마디를 던졌다.  “한복을 일상 속에서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결혼식장 같은 곳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이니까요. TV 사극에 나오는 한복에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원래 우리 저고리는 기장이 꽤 길었는데 드라마에는 짧은 기장의 저고리만 보이거든요. 시쳇말로 기방(妓房) 스타일인 셈이죠.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지는 저가의 한복이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소비자들의 미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한복은 불편한 옷이란 오해를 낳고 있거든요.”

 

  ◆다례복식박물관 건립이 꿈 : 백 소장이 한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취미생활이었던 다도(茶道) 때문이었다. 평소 다인(茶人)들이 즐겨 입는 한복을 활동하기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조언해주다가 본격적인 한복 디자이너로 나서게 됐다. 차와 한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2007년부터 ‘현명원’(경산시 옥곡동)이라는 차문화예절원도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대학에서 교양과목 강사로도 활동해 왔다. “1980년대 후반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다도를 알게 됐지요. 그런데 한 5년쯤 배웠는데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에 있는 한국차인협회 부설 한국다도대학원을 다녔습니다. 이후 성균관대 생활과학대학원에서 생활예절`다도를 전공했고, 한국차인협회의 다도 정사(茶道 正師) 과정도 마쳤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차분히 차를 음미할 시간이 솔직히 없어요. 집에서는 커다란 머그컵에다 가득 부어서 집안일 하면서 마시곤 하지요.” 그의 장래 목표 역시 머지않은 시기에 다례복식박물관을 지역에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시대별 다례`복식문화의 변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할 요량이다. 그래서 틈틈이 옛 유물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딸(32)도 다도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백 소장을 돕고 있다. “지역 대학에 한복학과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소망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나서서 할 일이 아니라서…. 졸업생들의 취업문제 등 여러 걸림돌이 있겠지만 그런 학과가 설립된다면 적극 도울 생각이에요.” 그는 화가이기도 하다. 개인전도 몇 차례 열었고, 신인작가 등용문인 ‘대한민국 미술대상전’에서 2004년과 2006년에 각각 특선,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림을 그릴 때면 마음속의 고민과 잡념들이 모두 사라지고, 무아지경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이상헌 記者)

 

  ※백현주 한복연구소장=다양한 갈래의 전통 한복과 개량 한복을 선보이고 있는 백현주 소장은 예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를 마쳤다. 외갓집이 있던 대구로 온 가족이 이사온 것은 1980년이었다. 경북예고 부설기관인 ‘우봉미술전시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07년 ‘현명원 차문화예절원’, 2009년 한복연구소를 설립했다. 자신의 옷을 입은 손님들이 ‘사람이 달라졌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자랑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백 소장은 “예천에서 알아주던 만석꾼 집안 출신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적극 후원했던 선친의 업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다”고 했다.(每日新聞 201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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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형환 : 辛卯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발송자 白瑩煥/ 날짜 辛卯()/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경상도 예천군 상금곡리에 사는 유학 백영환(56)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그의 본관은 수원이며 고0651-0654 문기에 호주로 나오는 백형두의 조부이다. 처 임씨(53)를 비롯하여 성혼한 아들 재관(31)내외, 미혼의 아들 재원(18)과 함께 살았다./ 제공 호남기록문화시스템 (daum 2014)

 

  백형환 : 1888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25년(戊子)(1888)/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1888년(고종 25 )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53)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77)를 모시고 처 임씨(50)를 비롯하여 성혼한 아들 재관(28) 내외, 미혼의 아들 재원(15)과 함께 살았다./ 제공 호남기록문화시스템 (daum 2014)

 

  백형환 : 1885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22년(乙酉)(1885)/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1885년(고종 22)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50)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74)를 모시고 처 임씨(47)를 비롯하여 성혼한 아들 재관(28) 내외, 미혼의 아들 재원(15)과 함께 살았다./ 제공 호남기록문화시스템 (daum 2014)

 

  백형환 : 1872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9년(壬申)(1872)/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1872년(고종 9)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47)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71)를 모시고 처 임씨(44)를 비롯하여 성혼한 아들 재관(22) 내외와 함께 살았다./ 제공 호남기록문화시스템 (daum 2014)

 

  백형환 : 1879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16년(己卯)(1879)/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1879년(고종 16)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44)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68)를 모시고 처 임씨(41)를 비롯하여 미혼인 아들 관원(19)과 함께 살았다./ 제공 호남기록문화시스템 (daum 2014)

 

  백형환 : 丙子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발송자 白瑩煥/ 날짜 丙子()/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경상도 예천군 상금곡리에 사는 유학 백영환(41)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65)를 모시고 처 임씨(38)를 비롯하여 미혼인 아들 관원(16)과 함께 살았다./ 제공 호남기록문화시스템 (daum 2014)

 

  백형환 : 1873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10년(癸酉)(1873)/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1873년(고종 10)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38)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62)를 모시고 처 임씨(35)와 함께 살았다. 당시 13세된 아들이 있었으나 본 문서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제공 호남기록문화시스템 (daum 2014)

 

  백형환(白瑩煥) : 辛卯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신묘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영환이 작성한 호구단자/ 발송자: 白瑩煥/ 날짜: 辛卯()/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제공: 전북대학교 박물관 호남기록문화시스템/ 경상도 예천군 상금곡리에 사는 유학 백영환(56)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그의 본관은 수원이며 고0651-0654 문기에 호주로 나오는 백형두의 조부이다. 처 임씨(53)를 비롯하여 성혼한 아들 재관(31) 내외, 미혼의 아들 재원(18)과 함께 살았다.//

 

  백형환(白瑩煥) : 1872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1872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영환이 작성한 호구단자/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9년(壬申)(1872)/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제공: 전북대학교 박물관 호남기록문화시스템/ 1872년(고종 9)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47)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71)를 모시고 처 임씨(44)를 비롯하여 성혼한 아들 재관(22) 내외와 함께 살았다.//

 

  백형환(白瑩煥) : 1873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1873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영환이 작성한 호구단자/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10년(癸酉)(1873)/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제공: 전북대학교 박물관 호남기록문화시스템/ 1873년(고종 10)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38)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62)를 모시고 처 임씨(35)와 함께 살았다. 당시 13세된 아들이 있었으나 본 문서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백형환(白瑩煥) : 1879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1879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영환이 작성한 호구단자/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16년(己卯)(1879)/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제공: 전북대학교 박물관 호남기록문화시스템/ 1879년(고종 16)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44)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68)를 모시고 처 임씨(41)를 비롯하여 미혼인 아들 관원(19)과 함께 살았다.//

 

  백형환(白瑩煥) : 1885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1885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영환이 작성한 호구단자/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22년(乙酉)(1885)/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제공: 전북대학교 박물관 호남기록문화시스템/ 1885년(고종 22)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50)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74)를 모시고 처 임씨(47)를 비롯하여 성혼한 아들 재관(28) 내외, 미혼의 아들 재원(15)과 함께 살았다.//

 

  백형환(白瑩煥) : 1888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1888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영환이 작성한 호구단자/ 발송자: 白瑩煥/ 날짜: 고종 25년(戊子)(1888)/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제공: 전북대학교 박물관 호남기록문화시스템/ 1888년(고종 25)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영환(白瑩煥, 53)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77)를 모시고 처 임씨(50)를 비롯하여 성혼한 아들 재관(28) 내외, 미혼의 아들 재원(15)과 함께 살았다.//

 

  백형환(白瑩煥) : 丙子年에 南面 上金谷里에 사는 白瑩煥이 作成한 戶口單子 / 병자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영환이 작성한 호구단자/ 발송자: 白瑩煥/ 날짜: 丙子()/ 분류: 고문서 > 준호구․호구단자(准戶口․戶口單子)/ 제공: 전북대학교 박물관 호남기록문화시스템/ 경상도 예천군 상금곡리에 사는 유학 백영환(41)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연로한 홀어머니 곽씨(65)를 모시고 처 임씨(38)를 비롯하여 미혼인 아들 관원(16)과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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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홍정(白弘正) : 1268(원종 9)-1353(공민왕 2), 용궁면 무이리 무리실 외무(外武) 사람, 수원(藍浦) 백씨 예천 입향조, 초명은 이홍(이弘), 자는 대용(大容), 호는 쌍계(雙溪), 문절(文節)의 3자, 일찍이 익재 이제현(益齋李齊賢), 치암 박충좌(恥庵 朴忠佐) 등과 백씨 이정(伯氏頤正)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1300년(충렬왕 26)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전보마배친어군오위(大殿寶馬陪親禦軍伍尉), 동정첨사(同正僉司), 백씨 이정이 충선왕 복위 문제에 연루되어 남해도(南海島)에 유배되자, 남포(藍浦)에서 경기도 수원으로 이거한 다음 다시 용궁 무이 외무(龍宮武夷外武)로 피신 이거하여 사돈 간인 국파 전원발(菊坡全元發)과 사귀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 후 무이에서 대대로 살았으나 현재는 한 집도 살지 않고, 후손은 임진왜란 후 개포면 황산리 도미(道美)로 옮겼고, 또 도미에서 산우물(山井) 등지로 분가하여 살고 있다. 작품으로는 <회향시(懷鄕詩)>가 있고, 묘는 용궁면 산택리 고산리(高山池, 山澤池) 위 간좌(艮坐)에 있는데, 1422년(세종 4) 12월에 묘비를 세웠다.(族譜, 竺山勝覽 1934)

 

  백홍정 : 용궁면 마을유래 보기/ 2010.01.06/ .., 무이(茂李室, 武夷) · 현재 인근 면에 산재하고 있는 남포 백씨(藍浦 白氏) 낙향선조(落鄕先祖)인 백홍정(白弘正)이, 백형 이정(伯兄 ?正)이 고려 충선왕 복위사건(高麗 忠宣王 復位事件)에 연루되자 그 화를 면하기 위하여.../ //cafe.daum.net/post0008/ 여주이씨참의공파재구종친회(daum 2010)

 

  백홍정 : 지명 유래 : 무이리/ 2009.01.11/ ...무리실(茂李室), 무이(武夷) 현재 인근 면에 산재하고 있는 남포 백씨(藍浦 白氏) 낙향 선조(落鄕 先祖)인 백홍정(白弘正)이, 백형(伯兄) 이정(?正)이 고려(高麗) 충선왕 복위사건(忠宣王 復位事件)에 연루되자 그 화를 면하기 위하여.../ //cafe.daum.net/ygmui/ 용궁 여주이씨 종친회(daum 2010)

 

  백홍정 : 수원백씨/ 2009.06.02/ ...에 자리 잡았던 자손들 중에서 일부가 14세 백정수(白精粹)의 대를 전후하여 서천(舒川)에, 일부는 8세 백홍정(白弘正) 이래로 경북 예천(醴泉)의 용궁(龍宮) 등지에 터를 굳히고 세거하였다고 믿어진다. 그리하여 1930년 당시.../ //cafe.daum.net/yclee/ 영천이씨대종여로(daum 2010)

 

  백홍정 : 대구 백씨/ 2009.02.24/ ...세월에 전하지 못하였고 지금의 근래 백씨보첩에 백문절공(白文節公:文簡公派)의 셋째 아들로 기록된 백홍정(白弘正)이 구보에 의하면 백진양(白眞陽)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그의 아들 묘갈명에 의하면 "아들 백의(白誼)는 경상좌도.../ //cafe.daum.net/jb2001/ 한국족보연구소(daum 2010)

 

  백홍정 : 백씨 - 야후! 지식검색/ ...)) 정5품 백문(白汶)(별장(別將)) 정7품 백이정(학자(學者)) 백효주(白孝珠) (대장군(大將軍)) 종3품 백홍정(白弘正) (첨사(僉使)) 종3품 백인정(白仁貞) (첨사(僉使)) 백천징(白天徵) (평장사(平章事)) 정2품 백천뢰(白天賚) (평장사.../  (daum 2010)

 

  백홍정 : 제목없음/ ...현감(縣監)을 지냈다.(竺山勝覽 1934) 전근(全謹) : 1380(우왕 6)-?, 본관은 용궁, 한림 한의 3자, 백홍정(白弘正)의 손서(孫壻), 문과에 급제하여 1406년(태종 6) 군기감 봉사(軍器監奉事), 개성부 도사(開城府都事), 군사(郡事)를.../ (daum 2010)

 

  백홍정 : 대구백씨의 근원/ ...세월에 전하지 못하였고 지금의 근래 백씨보첩에 백문절공(白文節公:文簡公派)의 셋째 아들로 기록된 백홍정(白弘正)이 구보에 의하면 백진양(白眞陽)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그의 아들 묘갈명에 의하면 "아들 백의(白誼)는 경상좌도.../ (daum 2010)

 

  백홍정 : 한국한문학의 탐구/ e-Book/ 이병혁 지음 |  국학자료원 |  2003.05.10/ 책본문 白鐵···...···31白弘正···...···97藩王···...···229범해시 ···...···.../ 484페이지(daum 2010)

 

  백홍정 : 대구백씨의 근원/ 2006.06.10/ ...세월에 전하지 못하였고 지금의 근래 백씨보첩에 백문절공(白文節公:文簡公派)의 셋째 아들로 기록된 백홍정(白弘正)이 구보에 의하면 백진양(白眞陽)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그의 아들 묘갈명에 의하면 아들 백의(白誼)는 경상좌도.../ //blog.naver.com/goguli/ 撲滅 左翼! 粉碎 金正日!(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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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회(白繪) : 이조 태조 때, 용궁면 무이리 출신, 본관은 수원, 의(誼)의 2자, 병마사(兵馬使)를 지냈다.

 

  백회(白繪) : 조선 태조 때, 예천 출신, 본관은 수원, 부사(副使) 인경(仁景)의 아들, 효삼(效參)의 아버지, 사수(思粹)ㆍ사순(思純)의 조부이다. 보성(寶城) 군수, 병마사(兵馬使)를 지냈다. 손자 사수(1454生, 字粹之)는 1447년(세종 29) 식년 생원시에 2등 23위로 합격하여 참교(參校)를 지냈고, 예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손자 사순은 1447년(세종 29)에 식년 생원시에 3등 81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백회 : 조선시대 역대 보성 군수(寶城郡守)/ 2010.05.28/ 문과 1432년 刑曹參判 大司憲 知中樞院事 조충손(趙衷孫) 漢陽 문과 1442년 孫 趙光祖,(1482), 成均館司藝 백회(白繪) 水原 子 白效參 1471년 이시원(李始元) 光州 문과 1450년 右獻納(1456) 1472년 정화(鄭和) 河東 父 河原君.../ //cafe.daum.net/ahncham/ 죽산안씨(신) 종친회(daum 2010)

 

  백회 : 水原白氏三世三綱錄(장흥 기산 동계)/ 2010.02.27/ 생애와 사상 백세례의 자는 和仲, 본관은 수원이다. 1505년(연산군 11) 장흥 기산리(현 안양면)에서 태어났다. 白繪의 증손이며 白文麒(1482∼1545)의 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상이 뛰어났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cafe.daum.net/ykksjcb/ 영광김씨종친방(靈光金氏宗親房)(daum 2010)

 

  백회 : 기봉 백광홍 관서별곡 기양사(岐峰 白光弘 關西別曲 岐陽祠)/ 2009.09.10/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호종했다. 선조 31년 이항복을 따라 중국에 다녀왔다. 기산리 마을 후등 59번지에 백회(白繪)의 아들 4형제가 진사에 급제하자 흙을 쌓아 올리고 그곳에서 축연을 배푼 것이 시초였다. 봉명제(鳳鳴齊)에서.../ //cafe.daum.net/suwonpaik/ 수원백씨정신재공파(daum 2010)

 

  백회 : Re:Re:마을앞 소공원 소개글" (최종안)/ 2008.09.06/ 梧堂 盧瓘은 사마에 등제 되셨고 孝星祠에 配享하셨으며 明岡 白奉欽은 訓長으로 著世하셨다. 慶宴臺 參判 白繪의 네 아들이 登科함으로 마을 뒤 광장(진챙이)에 築臺하여 경연을 베푼 곳으로 八文章 또한 이곳에서 경연을.../ //cafe.daum.net/jnjhgisan/ 장흥 안양 기산마을(daum 2010)

 

  백회 : 수원백씨 본관에 대한 고증/ 참봉 백주진이 서문 경신 - 진주 - 원식 - 미견은 개성백씨이고, 분문(分門)된 진식, 원정, 천장의 후손 백회(白繪)의 자손이 오리지날 수원백씨인 것이다. 백회의 아들 백효삼은 조선조 최초 문과급제자이다. 그 시권(試券:답안지)에.../ (daum 2010)

 

  백회 : 백씨 본관에 대한 역사적 고찰/ ...의견을 제시하고 동의하지 않았다. 수원백씨는 조선조 말기까지 려말 선초에 보성현감(진보현감)을 지낸 백회(白繪)의 자손 즉 백효삼(白效參), 백효옹(白效雍), 백효연(白效淵)의 자손을 수원백씨라고 하였는데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daum 2010)

 

  백회 : 水原白氏三世三綱錄/ ...·생애와 활동 백세례의 자는 和仲, 본관은 수원이다. 1505년(연산군 11) 장흥 기산리(현 안양면)에서 태어났다. 白繪의 증손이며 白文麒(1482∼1545)의 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상이 뛰어났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부모상을.../  (daum 2010)

 

  백회 : 시가비 건립 자료에 대해서 올림,/ 2008.10.19/ ...받으셨으며 孝星祠에 配享되셨다 明岡  白奉欽은 鳳鳴齋 訓長으로 著名하셨다. 慶宴臺 參判 白繪의 네 아들이 登科함으로 마을 뒤 광장(진챙이)에 築臺하여 경연을 베푼 곳으로 八文章 또한 이곳에서 경연을.../ //blog.daum.net/qorrhkdcjf/ 장흥백광철(daum 2010)

 

  백회 : 정신제공/ 2009.12.09/ 후일 묘갈명비를 하사하기도 했고, 장수 월강사와 장흥 기양사에서 제향을 모시고 있다. 정신재공의 현손인 백회(白繪) 공이 장흥으로 내려와 세거하니, 이분이 수원백씨 장흥 입향조이다. 회 공은 맹춘, 맹하, 맹추, 맹동 네 분의../ //blog.daum.net/by2085/ 긍정하면서 살자(daum 2010)

 

  백회 : 백씨의 본관/ 2008.11.22/ ...가장 영화롭고 명예스러운 자리임에도 고려사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수원백씨라 함은 보성현감을 지낸 백회(白繪)의 후손을 말함이며 나머지는 수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사실상 수원백씨라고 한다면 모순이다. 오늘날 백씨의.../ //blog.daum.net/bak0416/ 아름다운 사람들(가족사랑)(daum 2010)

 

  백회 : 해미백씨/ 2006.06.10/ 해미백씨(海美白氏) 해미백씨는 흔히 장흥백씨(長興白氏)라고도 하는데 백회(白繪)의 자손으로 백문린(白文麟)의 학행과 정국공신 정해군(貞海君)에 봉해진 백수장(白壽長), 기봉 백광홍(岐峰 白光弘)과 옥봉 백광훈(玉峰 白光勳)의.../ //blog.naver.com/goguli/ 撲滅 左翼! 粉碎 金正日!(daum 2010)

 

  백회 : 수원백씨 가문의 장흥위씨, 전주이씨 孝烈行 빛나/ 2008.11.07 (금) 오후 3:14 | 예스TV 후일 묘갈명비를 하사하기도 했고, 장수 월강사와 장흥 기양사에서 제향을 모시고 있다. 정신재공의 현손인 백회(白繪) 공이 장흥으로 내려와 세거하니, 이분이 수원백씨 장흥입향조이다. 회 공은 맹춘, 맹하, 맹추, 맹동 네 분의...(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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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보말 : 삼국사기/ 卷第四十五 卷第四十五 列傳 第五  >   박제상(朴堤上)  >   눌지왕이 두 동생을 구하려 하다()/ 곧 눌지왕(訥祇王)이 즉위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얻어 [왜와 고구려에] 가서 [두 아우를] 맞이해 올 것을 생각하였다. 수주촌 간(水酒村干 : 註 수주촌의 우두머리이다. 수주촌을 현재의 경북 예천으로 보는 견해(김철준,「신라상대사회의 Dual Organization」(상), 《역사학보》1, 1952 , 42∼44쪽)가 있다(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743쪽).) 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 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 이이촌 간(利伊村干) 파로(波老) 세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을] 불러서 묻기를, “나의 동생 둘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해가 되었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형제의 정이라서 그리운 생각이 그치지 않소. 살아서 돌아오기를 원하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였다. 세 사람이 똑같이 대답하기를, “신들은 삽량주 간 [박]제상이 강직하고 용감하며 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제상이] 전하의 근심을 풀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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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236

 

  신라식물원(醴泉,榮州.豊基 어린이집 植木日 맞이 다육심기 等 新羅植物園에서 體驗學習) [記事] : 예천의 키즈어린이집과 영주.풍기의 꼬마숲어린이집은 2015년 4월 3일 오전 10시~12시, 오후 1시~3시까지 원생, 교사 등 7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산과 들에 예쁜 꽃들이 수놓기 시작하는 4월을 맞아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키워 줄 수 있는 체험학습으로 식물을 선정, 농촌교육농장으로 지정된 신라식물원을 찾아 체험학습을 실시했다. 이날 체험학습은 오전 영주.풍기의 꼬마숲어린이집 원생과 교사 30여명은 다육식물을 이용한 식물심기를 비롯해 향기 나는 식물 관찰하기, 동물 먹이주기 등 다양한 체험학습을 실시했다. 이어, 오후1시부터 예천키즈어린이집 원생 40여명도 다육식물을 이용한 식물심기를 비롯해 동물 먹이주기 등 다양한 체험학습을 실시했다. 한편, 농촌교육농장과 농가맛집으로 선정된 신라식물원은 학부모와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체험학습장과 견학지로 이름나 있어 인근 시·군을 비롯해 대구 등에서도 체험객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오는 10일, 22일, 25일까지 3차례에 걸쳐 6차 산업 견학지로 선정, 100여명의 체험이 예약되어 있다. 특히, 4월부터 연못 등지에서 올챙이알과 도롱뇽 알의 부화모습을 직접 볼 수 있으며 5월이면 영산홍·철쭉, 7월이면 백합 등이 수만 송이가 일제히 개화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와 춤추는 식물인 '무초'를 비롯한 각종 희귀식물과 식충식물, 수생식물 등이 있으며, 미니돼지·토끼·다람쥐. 관상용 닭. 병아리 등 친숙한 동·식물들이 체험객들을 반기고 있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5-04-03 오후 6: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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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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