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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030:서암(2)-서원요춘-서융석-서은정-서을경-서정덕-서정목-서종일(1)
작성자장병창 @ 2015.06.13 06:13:02

  예천의 자랑(4030) : 서암(2)-서원요춘-서융석-서은정-서을경-서정덕-서정목-서종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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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 : 禪지식 탐방 / 서암(西庵) 스님/ 길 2007/09/06 22:50/ 禪지식 탐방 / 서암(西庵) 스님 "아! 이 먼 데까지 무엇하러 오려고... 힘든데 올 것까지 없어요"라는 서암 큰스님의 말씀 속에는 따뜻하신.../  (daum 2010)

 

  서암 : 태어나기 전의 너는 무엇이었나 - 서암(西庵) 큰스님 평전/ 불교 > 큰 스님의 삶과 말씀 국내도서 > 인물/평전 > 종교인 책소개 생전 스님과의 대화록으로 재생시킨 서암불교(西庵佛敎)의 진면목. 작가 이청(李淸)이 저술한 책은 대부분 불교의 정신세계를 천착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작가가.../ (daum 2010)

 

  서암 : 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 e-Book/ 이상철 지음 |  이른아침 |  2007.09.07/ 책본문 :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으니 서암 홍근(西庵鴻根, 1917~2003)“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나는 그런 거 없다.”“그래도 한평생 .../ 65페이지(daum 2010)

 

  서암 : 꽃은 피고 물은 흐르네/ e-Book/ 성철 지음 |  휴먼앤북스 |  2008.01.07/ 책본문 : 나는 그런 거 없다 서암 홍근(西庵鴻根) 나는 그런 거 없다. 정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꽃은 피고 물은 흐르네 49.../ 53페이지(daum 2010)

 

  서암 : [여행]예천 鶴駕山 보문사(普門寺) 겨울 여행은 자신과 만날 수 있다./ 2010.01.26 (화) 오전 11:19 | 한국지역인터넷신문 삼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삼성각 편액에는 붓을 물고 쓴 동해어부 글씨(口筆)가 눈길을 끈다. 비워라 < 서암(西庵) 스님> 많이 아는 것은 귀한 것이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다 털어 버리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용기 있는...(daum 2010)

 

  서암 : [여행]예천 鶴駕山 보문사(普門寺)겨울 여행은 자신과 만날 수 있다./ 2010.01.25 (월) 오전 10:00 | 예천인터넷뉴스 삼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삼성각 편액에는 붓을 물고 쓴 동해어부 글씨(口筆)가 눈길을 끈다. 비워라 < 서암(西庵) 스님> 많이 아는 것은 귀한 것이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다 털어 버리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용기 있는...(daum 2010)

 

  서암 : 예천 鶴駕山 보문사(普門寺)/ 2010.01.23 (토) 오전 9:56 | 경북인터넷뉴스 삼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삼성각 편액에는 붓을 물고 쓴 동해어부 글씨(口筆)가 눈길을 끈다. 비워라 < 서암(西庵) 스님> 많이 아는 것은 귀한 것이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다 털어 버리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용기 있는...(daum 2010)

 

  서암 : [여행]예천 학가산(鶴駕山) 보문사(普門寺)/ 2010.01.17 (일) 오후 1:34 | 한국지역인터넷신문 삼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삼성각 편액에는 붓을 물고 쓴 동해어부 글씨(口筆)가 눈길을 끈다. 비워라 < 서암(西庵) 스님> 많이 아는 것은 귀한 것이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다 털어 버리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용기 있는...(daum 2010)

 

  서암 : 4월초파일 문경 봉암사, 문경새재 여행기/ 2010.05.25/ ...등을 신축하고 이어서 비각와 익랑(翼廊)을 세웠으며, 계속된 중창이 있었으나 1956년 큰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었으나 서암(西庵)대사가 주석화면서 옛 모습을 되찼았다. 산내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이 있으며 문화재 로는 보물5점,.../ slr클럽 > SLR클럽 에세이/여행기(daum 2010)

 

  서암 : 마음산책 - ‘잠시 휴대폰을 꺼두셔도 좋습니다’ 夏中白羊寺 / 송수영   2007.07.13/ 서암(西庵) 등과 함께 한국 현대불교계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유명한 서옹 스님도 바로 이곳 백양사에서 출가하시고 입적하셨다. 유철상 씨는 덧붙여서 “백양사 뒤로 산이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명당의 지세가 뚜렷해서.../ 모아진 > 여행스케치(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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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원요춘 : 各道評議員 / 신문명 매일신보 1930/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每日申報/ 창간일 1905년 08월 11일 (一千九百五年八月十一日)/ 소장처 한국연구원/ 발간정보 석간 간기:일간  언어:국한문/ 일자(양력) 1930년 04월 03일 (一千九百三十年四月三日)/ 형태정보 크기:  면수:08  단수:12/ 부제목 官民兩議任命 (一)/ 기사위치 03면 01단/ 기사본문 : 官選民選, 慶尙南道, 釜山府, 香椎源太郞, 迫間房太郞, 橋本寬, 魚大成, 馬山府, 田中玄黃, 晋州郡, 北◈玄三郞, 昌寧郡, 金等?, 蔚山郡, 守屋利助, 昌原郡, 松尾重信, 泗川郡, 崔演國, 居昌郡, 鄭泰均, 慶尙北道, 小口肇, 金在煥, 徐丙朝, 安東郡, 李宣嵩, 迎日郡, 中谷竹三郞, 慶州郡, 日倉廣治, 慶山郡, 安炳吉, 金泉郡, 高崎平吉, 尙州郡, 吉野尙太郞, 醴泉郡, 西原堯春, 全羅南道, 木浦府, 村上直助, 松井祐次郞, 光州郡, 坂口喜助, 松田德次郞, 金申均, 麗水郡, 司義信, 順天郡, 畓滿留之助, 海南郡, 尹提鉉, 羅州郡, 黑住猪太郞, 金炳斗, 咸平郡, 李載爀, 忠淸南道, 公州郡, 丸山虎之助, 權益采一, 燕岐郡, 益田正一, 大田郡, 白石實三郞, 論山郡, 西島寅吉, 洪城郡, 金炳?, 牙山郡, 柳翼暎, 天安郡, 杉沼忠三, 平安南道, 大同郡, 李敎植, 平壤府, 大橋常造, 內田錄雄, 福島莊平, 鄭觀朝, 金能全, 鎭南浦, 富田義作, 西崎鶴太郞, 龍岡郡, 裴免夏, 江西郡, 金潤洙, 平原郡, 李鶴林, 安州郡, 洪基同, 价川郡, 李東植, 孟山郡, 朱, 成川郡, 金漢昌, 江東郡, 金承春, 中和郡, 殷永善, 咸鏡南道, 元山郡, 西田常三郞, 伊藤高一, 南百祐, 咸興郡, 井上享, 松村榮三郞, 洪性遠, 金夏涉, 北靑郡, 姜哲茂, 平北道, 新義州, 多田榮吉, 崔昌朝, 義州, 池田信, 雲山, 飯島榮太郞, 寧邊, 車周轅, 博川, 柳世鐸, 宣川, 李昌錫, 龍山, 吉田雅一, 江界, 孫應範, 慈城, 和氣藏矩, 新義州, 橫江重助, 義州, 姜利璜, 龍川, 張驥植, 雲山, 韓殷?, 寧邊, 康基源, 博川, 洪淳龍, 宣川, 崔鳳俊, 江界, 劉基貞, 熙川, 金昌洽, 朔州, 崔鳳參, 鐵山, 鄭瀾玉, 定州, 洪箕疇, 昌城, 姜鳳瑞, 碧潼, 金聖烈, 楚山, 朴鳳吾, 渭原, 朴觀?, 慈城, 劉昌漢, 厚昌, 全榮錫, 黃海道, 海州, 萬代龍助, 吳世?, 金永澤, 池貫一, 瓮津, 蘆蒼?, 張春河, 松禾, 呂運赫, 殷栗, 洪淳翰, 安岳, 元孝?, 信川, 閔圭植, 載寧, 康益夏, 金基秀, 黃州, 穗坂秀一, 趙東淳, 鳳山, 河波弘司, 李鐘駿, 瑞興, 藤澤俊二, 李光翼, 遂安, 森?市, 谷山, 朱成鎭, 延白, 安岡藤藝, 金鍾護, 金川, 愼久範, 平山, 申元熙, 新溪, 宋承燁, 全北道, 群山, 赤松繁夫, 光富嘉八, 全州, 山本悅藏, 李康元, 柳直養, 齋藤勤, 鎭安, 全禎, 錦山, 吉秉浩, 長水, 黃仁杓, 茂朱, 柳鎭爀, 任實, 崔鍾烈, 南原, 梁栽英, 金熙一, 淳昌, 林鳳周, 井邑, 朴碩奎, 高敞, 金相鎬, 洪鍾轍, 扶安, 辛聲錫, 金堤, 橋本央, 趙在敦, 沃溝, 孝泳邰, 益山, 坂井信藏, 片桐和三, 尹和重/ 제공 미디어가온 고신문(//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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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융석 :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이름 서융석(徐隆錫)/ 민족구분 한국인/ 생년월일 1) 1902-06-01/ 출전  1) 대한연감 4288, 682/ 출신지 1) 경상북도/ 출전  1) 대한연감 4288, 682/ 현주소 1) 경상북도 醴泉邑/ 출전  1) 대한연감 4288, 682/ 현 직업 1) 행정관료/ 출전  1) 대한연감 4288, 682/ 학력 1) 중학교 졸업/ 출전  1) 대한연감 4288, 682/ 경력 및 활동 1) 1954년 11월 30일 현재 榮州 전매서장으로 재직 중/ 출전  1) 대한연감 4288, 682/ 참고문헌 대한연감 4288년판(daum 2014)

 

  서융석(徐隆錫) : 구분: 한국근현대인물자료/ 날짜: 1902-06-01/ 분류: 인물 >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이름 서융석 ( 徐隆錫 )/ 민족구분 한국인/ 생년월일 1) 1902-06-01/ 출신지 1) 경상북도/ 현주소 1) 경상북도 醴泉邑/ 현직업 1) 행정관료/ 학력 1) 중학교 졸업/ 경력및활동 1) 1954년 11월 30일 현재 榮州 전매서장으로 재직 중/ 참고문헌 대한연감 4288년판, 682//

 

  서융석(徐隆錫) : 분류 인물 >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사건발생일  1902-06-01/ 주소 : 경상북도 醴泉邑/ 직업 : 행정관료/ 학력 : 중학교 졸업/ 경력 : 1954년 11월 30일 현재 榮州 전매서장으로 재직 중/ 자료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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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은정 : 문경신문 - 제48회 경상북도학생체육대회 폐막/ 우승을 차지하였다. 또한, 둘째 날에는 구미 형곡중의 송유진 양이 100mH경기에서 15초14을 기록, 지난 1999년 서은정이 기록한 16초 06을 12년 만에 갱신하였을 뿐 아니라 100m, 400m계주 등에서 우승함으로써 대회 3관왕에.../ (daum 2014)

 

  서은정 : 예천성당역사(137) : 1980년대 전반기 예천본당 액션단체들의 활발한 전개/2005.02.04/ 작성 장병창/ ...있었고, 1985년 7월 21일, 예천남부국민학교에서 본당 중고생들의 운동회가 열렸다. (12) 학생회원 서은정 루시아, 양궁 세계신기록 수립 1984년 10월 10일, 대구에서 개최된 제6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양궁 50m에서 본당 학.../ 예천성당(daum 2014)

 

  서은정 : 1월 13일 대구일보 예천여고 양궁부 신문기사/ 2006.02.13/ 쾌거를 이룩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들의 뒤를 이어 서현주`서은정 자매와 한희정(이상 전국가대표), 윤옥희(현 국가대표) 등의 선수를 국가대표로 키워내면서 한국여자양궁의 오늘을 만든 명실상부한 양궁 산실의.../ 예천여고 양궁부(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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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을경 : <93년을 빛낸 스타들>-3.양궁 金孝貞/ 1993.12.03 | 연합뉴스 | 미디어다음/ 16강전 때 서을경(예천여고)에게 157-165로 져 명성에 흠집을 남긴 것. 金은 "대표선발-세계선수권우승 등의 과정이 한 순간처... 화산국교 때 육상 높이뛰기를 하다 5학년 때 양궁으로 종목을 ...(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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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덕(徐廷德) : 해창문집 (海窓文集) / 기사본문 / 계은서공유사 ( 溪隱徐公遺事 ) / 公諱廷德, 字致一, 姓徐氏, 系自達城, 高麗版圖判書達城君諱 晉爲鼻祖也. 生諱奇俊, 襲封君. 生諱穎號櫓南, 官贊成事. 生諱 鈞衡, 號鶴巖, 恭愍朝官吏部尙書, 諡貞平, 享玉溪院. 生諱沈, 號 龜溪, 入本朝以圃隱高弟, 享龜巖院. 生諱文翰, 承仕郞. 生諱 渡, 俱中生進, 官學諭. 歷七世, 諱彦信, 禁府都事, 壽嘉善. 生諱繼祥, 以至行薦孝陵參奉, 贈通訓軍資監正, 當仁祖丙子恥城下盟, 隱遯不仕, 自醴泉 仙洞入榮川 臥谷, 自號仙?, ?枕石亭以終餘年. 生諱仁立, 嘉善同樞. 生諱春明. 生諱承節, 贈嘉善. 生諱自南. 生諱舜卿. 生諱重泰, 嘉善, 爲公高祖. 曾祖諱萬弘, 祖諱相東, 考諱丙吉俱有隱德. ?安東權氏奎度女, 思復齋 定之後, 憲宗癸卯八月九日生公于新川里第. 幼聰悟絶倫, 甫 / ▣ 026/ 學, 受業於密窩權公諱錫元之門, 得聞爲學之要, 制行必以孝悌爲先, 持身必以忠信爲本, 當時士友咸稱有長者風儀. 癸亥, 丁內艱, 守制如禮, 撫養二弟三妹, 友于尤篤, 猶恐有?親意. 至其成立, 婚采資裝, 不使大人公知之, 時公家力甚屈, 晝而躬耕, 夜而嗜讀, 內以勤儉制家, 外以文行結交, 至立門戶, 通賓客. 庚午, 大人公丁母夫人李氏憂, 不勝喪而卒, 公哀毁幾絶, 喪葬無憾, 因置祭田, 推其誠, 凡所蒙各位, 俱伐石, 表隧道, 張氏妹喪在寓未葬, 公自營辨棺衾以返之, 於朴氏妹亦如之, 蓋公之天性然也. 因伏節與賓友, ?酒拈韻, ?興而歸, 望見諸弟率子姪方服田流汗, 乃悔于心曰, 彼輩食力自苦如此, 吾無乃太康乎, 縱不外吾, 吾自不樂耳. 自是不復會飮於力穡時, 其切於愛如此也. 堂叔愚岑 丙玟 東溪 丙黙, 天倫知己其所以晩年徵逐, 皆爲/ ▣ 027/ 子孫立範計也. 常以枕石亭邱墟尙存, 乃拮据而成就, 終見輪?焉, 此數百年未遑者也, 其奉先之誠, 何如其盛也. 公嘗預言亡命年月日時, 及期曰, 吾將病矣, 勿用藥餌. 子孫製進固請, 乃 □□輩情理然矣, 遂飮下, 子姪環侍號泣, 公曰毋, 老而死, 理也. 吾一生所佩服者, 謙之一字, 汝輩接人言拜必恭謙, 是吾望也, □力如當, 言訖而終, 卽丁巳十二月二十日也, 享年七十七, 葬家後山亥坐原, 日時果與遺命合. 配江陵崔氏諱性煥女, 文昌侯 致遠之後, 先公三十一年丁亥十二月二十五日卒, 墓在同原而右. 生三男, 長錫箕, 次錫洛, 出爲季公廷麟嗣, 次錫性. 錫箕 男, 長周學, 主事, 次周興, 女張師國 李圭東 金鍾遠. 錫性男永源. 周學男春植 道植, 餘幷幼. 嗚呼, 公生於十世隱德之後, 篤?倫於家庭, 動風韻於賓友, 規模精密, 處窮約而致勤於先緖本原 / ▣ 028/ 深厚, 故?謙德而垂裕於後昆, 此一生精力之有素養, 而且安天命於氣息奄奄之際, 非有得於存養之深者, 不可能也. 公之孫主政周學氏, 以家傳一本命基植曰, 第次之. 義不敢辭, 謹就按本, 而略加所聞於老成者以歸之, 其在立言君子之采擇焉./ 예천 관련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영남사림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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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목(서정목 - 외기러기/ 故鄕生覺/ 내 故鄕 醴泉) [記事] : 한국가곡작사가협회의 저서로, 푸른사상에서 2003년 5월 30일에 펴낸 <시는 노래가 되어>(158쪽) 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가곡 등에 인용되거나 노랫말로 쓰이기 위해 지어진 시를 모은 것이다.[리브로 提供] 

 

  서정목 : 고향생각 (서정목 작시 김수정 작곡) - 바리톤 장유상/ 2008.09.03/ 바리톤 장유상 고향생각 (서정목 작시 김수정 작곡) 피아노 김유정 비둘기떼 날아들던 산마루 언덕 봄이 오면 마을 어귀 부엉새 울고뒷동산에 할미꽃도 곱게 피던 곳 언제나 그리워라 내고향 산천 울타리 및 삽살개도 졸던.../ //cafe.daum.net/vocalmuse/ 성악선교대학(daum 2010)

 

  서정목 : 단양 八景 / 서정목/ 2005.07.12/ 단양 八景 / 서정목/ 선경을 이루나니 아홉 구비 운암구곡 하선암에 다다르니 봄의 철쭉 여름녹음 증선암 송림계곡은 쌍용 폭포 유명해라. 숙종 때 권상하가 상선암을 명명했고 거북모양 구담봉은 어기영차 뱃놀이여 봉우리 죽순.../ //cafe.daum.net/Ciulmunhak/ 씨얼문학회(daum 2010)

 

  서정목 : <5월의 노래> 이종록 가곡 작품집 출판/ 2009.12.05/ .... 가을이 저무는 소리 (박영만 詩) 28. 너도 길 잃은 양 (박영만 詩) 29. 청자백학 (박영원 詩) 30 . 어머니 (서정목 詩) 31. 사랑의 느낌 (손영학 詩) 32. 그대 오실 때끼지 (신영옥 詩) 33. 산사 (신태호 詩) 34. 봄이오면 (안문섭.../ //blog.chosun.com/blog.screen?blogId=66755/ 풀잎사랑(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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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종일 : 조선왕조실록/ 영조 17권, 4년(1728 무신 / 청 옹정(雍正) 6년) 4월 24일(갑진) 2번째 기사/ 안음의 분속, 함양·거창의 부사로 승격하는 것을 묘당에서 품처하게 하다/ 영남 안무사(嶺南安撫使) 박사수(朴師洙)가 조정으로 돌아왔는데,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위유(慰諭)하였다. 박사수가 말하기를, “예천(醴泉)의 군사 박국지(朴國只)가 조령(鳥嶺)을 지키다가 종기가 터져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군수(郡守) 서종일(徐宗一)이 집에 돌아가 병을 조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국지는 마땅히 지키던 곳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끝내 가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말았으니, 마땅히 그의 집을 돌보아 구휼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돌보아 구휼하게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나학천(羅學川)이 영외(嶺外)에서 맨 먼저 의병(義兵)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수용(收用)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또한 옳게 여겼다. 또 청하기를, “안음(安陰)은 개혁하여 법대로 분속(分屬)시키고 함양(咸陽)·거창(居昌) 두 고을은 모두 부사(府使)로 승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함양에 절진(節鎭)을 설치하여 거창 등 고을의 군대를 예속시켜 팔량로(八良路)를 방수(防守)하게 하면 뒷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였다./【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31장 B면 /【영인본】 42책 50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변란(變亂) (daum 2014)

 

  서종일 : 조선왕조실록/ 영조 22권, 5년(1729 기유 / 청 옹정(雍正) 7년) 4월 6일(경진) 1번째 기사/ 대신과 비당을 인견하고 《서정록》을 올리라고 명하다. 이태좌가 군공의 별단을 올리다/ 대신(大臣)과 비당(備堂)4515) 을 인견(引見)하고 《서정록(西征錄)》을 올리라고 명하였다. ... 병조 판서(兵曹判書) 조문명(趙文命)이 주달하기를, “예천(醴泉)의 전 군수(郡守) 서종일(徐宗一)은 변이 발생한 초기를 당하여 공로가 없지 않았는데도 원종공신(原從功臣)에서 누락되었으니, 의당 원종공신 일등(一等)에 추록(追錄)해야 됩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22권 2장 A면 /【영인본】 42책 120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 / *왕실-행행(行幸) /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사법-탄핵(彈劾) / *농업-전제(田制) / *신분-중인(中人)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註 4515]비당(備堂) : 비변사 당상관.(daum 2014)

 

  서종일 : 조선왕조실록/ 英祖 17卷, 4年(1728 戊申 / 청 옹정(雍正) 6年) 4月 24日(甲辰) 2번째 기사/ 안음의 분속, 함양·거창의 부사로 승격하는 것을 묘당에서 품처하게 하다/ ○嶺南安撫使朴師洙還朝, 上引見慰諭。 師洙言: “醴泉軍士朴國只守鳥嶺, 破腫垂死, 郡守徐宗一使歸家調病。 國只謂當死所守之地, 終不去, 仍不起, 宜顧恤其家。” 上令道臣顧恤。 又言: “羅學川首倡義旅於嶺外, 宜收用。” 上亦然之。 又請: “革安陰, 如法分屬, 咸陽、居昌兩邑, 俱陞府使。 咸陽置節鎭, 以居昌等邑軍屬之, 防守八良路, 則異日可得力。” 上令廟堂確處。/【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31장 B면 /【영인본】 42책 50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변란(變亂)(daum 2014)

 

  서종일 : 조선왕조실록/ 英祖 22卷, 5年(1729 己酉 / 청 옹정(雍正) 7年) 4月 6日(庚辰) 1번째 기사/ 대신과 비당을 인견하고 《서정록》을 올리라고 명하다. 이태좌가 군공의 별단을 올리다/ ○庚辰/引見大臣、備堂, 命進《西征錄》。 右議政李台佐曰: “朝家行賞已足, 而軍校輩, 皆以未入別單爲怨, 望賞太過矣。” 上曰: “別單依甲子、庚申例爲之, ?慰軍情好矣。” 仍命趙顯命、李森、李遂良出去, 更爲抄錄入侍。 ... 上曰: “予若知眞殿來脈, 豈可給宮房乎?” 台佐曰: “柳順汀, 乃中興第一勳臣, 而此地賜給後, 以眞殿主脈, 還寢。 命還屬眞殿, 更給宮家以他處則好矣。 欲卽行關, 而下敎, 與殿下平日處事有異, 故姑止不送。 若但奉行聖旨, 則非置臣於此職之意, 故敢達矣。 史臣書之以太祖眞殿主脈, 四百年永陳之地, 某朝折受於宮房, 則豈不有累於聖德乎?” 上久不下答。 兵曹判書趙文命奏, 醴泉前郡守徐宗一, 當變初, 不無功勞, 而見漏於原從, 宜追錄於原從一等, 允之。 台佐曰: “臣以乾止山事陳達, 未承發落之前, 文命徑以他事陳達, 請推考。” 允之。 ... 廣州出身鄭夏翊、淸州折衝禹善大ㆍ朴泰重、軍牢楊至來, 幷米布分等題給, 淸州使令朴龍、大興前哨官尹道雄、淸州旗牌官金靈泰ㆍ郭雲徵ㆍ金斗載、使令劉有才以上, 自本道, 參酌施賞。/【태백산사고본】 18책 22권 2장 A면 /【영인본】 42책 120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 / *왕실-행행(行幸) /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사법-탄핵(彈劾) / *농업-전제(田制) / *신분-중인(中人)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daum 2014)

 

  서종일 : 비변사등록 84책  >   영조 4년 7월  >   右議政 吳命恒 등이 입시하여 곡식을 만드는 방도를 급히 변통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錢布, 當番布(1728-07-22(음))/ 기사제목 右議政 吳命恒 등이 입시하여 곡식을 만드는 방도를 급히 변통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錢布, 當番布/ 연월일 영조 4년 1728년 07월22일(음)/ 今七月十三日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右議政吳所啓, 臣主管惠廳時, 見其一年所入, 不足當一年之用, 而經費大縮, 其中湖南廳尤甚?然, 國儲哀痛之中, 漕船又爲漂沒, 此誠切急之憂, 極爲罔涯矣, 向日出師之時, 列邑軍儲, 無所預備, 軍兵糧料, 間或?租而?之, 至有夜深之時, 臣所領戰卒不過千餘名, 而猶難支給, 生穀之道不可不急先變通, 有穀然後國可以爲國矣, 臣意則以爲各軍門·各衙門·兵曹等有錢布處, 宜令磨鍊其一年不得已應下之數爻, 而其餘錢布之自各邑上來者, 各隨其地穀登之處而貿穀以置, 或以爲種糧還上之資, 或以爲軍興不虞之需, 則事甚得宜, 臣曾見兵曹則十二當分排, 稍似有裕矣, 兵判入侍, 下詢, 何如, 兵曹判書趙文命曰, 大臣所達事甚得宜, 而兵曹若節用則或支一年, 然當番之應納者, 湖南及嶺南, 俱以不上送爲主, 以至於越三四當, 而全不上送, 今無錢布之?羨可以辦穀者, 一年一次之役, 所不可不捧, 臣聞醴泉郡守徐宗一之言, 則本邑當番布幾盡捧置, 而不爲上送, 退捧則必致花消云, 以此推之, 列邑之已爲捧置可知, 百姓或有已納者, 或有捧留者, 中間之弊不少, 道臣處, 各申飭, 使之急速上送, 何如, 吳曰, 兩道臣此等事, 實爲過矣, 亦爲可悶, 李匡德則只知有全羅道, 而不念經費, 以儲置事言之, 請得二萬石之船價, 賑濟之後, 又有餘穀, 以米換租, 而爲民間種子云, 當初請送, 不宜如是過多, 若有餘穀, 則所當還爲會付, 而不此之爲, 又請蕩減, 尤極未安, 全羅監司李匡德推考警責, 蕩減一款, 勿施, 何如, 上曰, 依爲之, 李匡德則有固執, 朴文秀則有智慮, 而徒知民足, 君誰與不足之義, 不恤朝家之經費, 此則過矣, 兩南監司之盡心愛民則可嘉, 而此等過處, 不可不抑, 各別申飭, 可也。(daum 2014)

 

  서종일 : 국역비변사등록 84책  >   영조 4년 7월  >   右議政 吳命恒 등이 입시하여 곡식을 만드는 방도를 급히 변통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錢布, 當番布(1728-07-22(음))/ 기사제목 右議政 吳命恒 등이 입시하여 곡식을 만드는 방도를 급히 변통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錢布, 當番布/ 연월일 영조 4년 1728년 07월22일(음)/ ○22일 이 달 13일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여 입시하였을 때 우의정 오명항이 아뢰기를, “신이 선혜청(宣惠廳)을 주관할 때 보니, 1년에 들어오는 것으로는 1년 쓰기가 부족하여 경비가 크게 줄었으며 그 가운데 호남청(湖南廳)이 더욱 텅 비었습니다. 나라의 저축이 말이 아닌 가운데 조선(漕船)이 또 표몰(漂沒)하여 참으로 절박한 근심이 끝이 없습니다. 지난 날 군대를 출동할 때 여러 고을의 군량 저축이 예비된 것이 없어서 군사들의 양식을 가끔 벼를 찧어서 먹이기도 하였는데 밤이 깊을 때에 한 적도 있었습니다. 신이 거느린 군졸이 1천여 명에 불과했는데도 지급하지 못하였으니, 곡식을 만드는 방도를 급히 우선 변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곡식이 있은 연후에야 나라를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신의 뜻으로는 각 군문 각 아문과 병조 등 전포(錢布)가 있는 곳은 마땅히 1년 동안 부득이 지출해야 할 숫자를 마련하게 하고, 그 나머지 각 읍에서 올라온 전포는 각기 그곳의 곡식이 잘 된 곳에서 곡식을 무역(貿易: 각 지역의 물품을 교환하는 일 )해 두어 혹 종량(種糧)이나 환자[還上]의 밑천을 삼거나 뜻밖에 군사를 낼 비용으로 삼으면 일이 매우 합당합니다. 신이 일찍이 병조에서 보니 12당(當)으로 나눈 것이 조금 여유가 있었습니다. 병조판서가 입시하였으니 물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병조판서 조문명이 아뢰기를, “대신이 아뢴 바가 매우 합당합니다. 병조에서 절약해 쓴다면 혹 1년을 지탱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번으로써 응당 바쳐야 할 것을 호남과 영남은 모두 올려 보내지 않는 것을 위주로 하여 3·4당(當)을 넘기도록 전혀 올려 보내지 않아 지금은 전포가 여유가 없습니다. 마련할 수 있는 곡식은 1년에 한 차례의 역(役)이 있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예천군수(醴泉郡守) 서종일(徐宗一)의 말을 듣건대 본읍의 당번포(當番布)를 거의 다 받아두었는데 올려 보내지 않고 퇴봉(退捧)하면 반드시 소모되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여러 고을에서 이미 받아들여 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백성 가운데 이미 바친 자도 있고 혹은 받아서 유치한 것도 있어 중간의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도신에게 각기 신칙하여 속히 올려 보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오명항은 아뢰기를, “두 도신의 이런 일은 실로 지나치며 또 민망합니다. 이광덕(李匡德)은 단지 전라도만 있는 줄 알지 나라의 경비를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축해 두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2만 석의 선가(船價)를 얻기를 청하여 진제(賑濟)한 후에 남은 곡식이 있어 쌀로 벼를 바꾸어 민간의 종자를 삼는다고 합니다. 당초 보내주기를 청할 때 이처럼 과다하게 해서는 안 되었으며 만일 남은 곡식이 있으면 다시 회부(會付)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또 탕감하기를 청하니 더욱 온당치 못합니다. 전라감사 이광덕을 추고하여 경책(警責)하고 탕감하는 한 조항은 시행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 이광덕은 고집이 있고 박문수(朴文秀)는 지려(智慮)가 있는데, 한갓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어찌 부족하겠는가’라는 뜻만 알아서 나라의 경비를 생각하지 않으니 이는 지나치다. 영남과 호남의 감사가 마음을 다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가상하지만 이런 지나친 부분은 억누르지 않을 수 없으니 각별히 신칙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daum 2014)

 

  서종일 : 비변사등록 85책  >   영조 5년 4월  >   兵曹判書 趙文命이 入侍하여 禮泉前郡守 徐宗一은 변란 때 공이 크나 미처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原從 1등에 追錄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1729-04-08(음))/ 기사제목 兵曹判書 趙文命이 入侍하여 禮泉前郡守 徐宗一은 변란 때 공이 크나 미처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原從 1등에 追錄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 연월일 영조 5년 1729년 04월08일(음)/ 今四月初六日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 兵曹判書趙文命所啓, 醴泉前郡守徐宗一當變初, 領軍赴之際, 慷慨流涕, 撫恤軍卒, 大得軍情, 且逆賊世樞·世模, 逃匿本郡, 故發送將校, 不時掩捕, 則不無功勞, 而第捉送世樞於湖西安撫使時, 只以將校名轉報, 故備局全無聞知矣, 後乃傳聞其實狀, 其時領議政李至謂稟奏後, 或加資云云, 而錄勳都監, 則以備局成冊中所無, 未免見漏於原從, 勢雖固然, 實爲欠典, 今宜追錄於原從一等未知何如, 上曰, 依爲之。 (daum 2014)

 

  서종일 : 국역비변사등록 85책  >   영조 5년 4월  >   兵曹判書 趙文命이 入侍하여 禮泉前郡守 徐宗一은 변란 때 공이 크나 미처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原從 1등에 追錄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1729-04-08(음))/ 기사제목 兵曹判書 趙文命이 入侍하여 禮泉前郡守 徐宗一은 변란 때 공이 크나 미처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原從 1등에 追錄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 연월일 영조 5년 1729년 04월08일(음)/ 이 달 6일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인견, 입시하였을 때에 병조판서 조문명(趙文命)이 아뢰기를, “예천 전 군수(禮泉前郡守) 서종일(徐宗一)은 변란 초기에 군병을 거느리고 전투에 임할 즈음 강개히 눈물을 흘리며 군졸을 무마하여 크게 군심(軍心)을 얻었고 또 역적 세추(世樞)와 세모(世模)가 본군에 숨어들어 장교를 파견하여 불시에 덮쳐 체포하였으니 공로가 없지 않으나 다만 호서안무사(湖西按撫使)로 있을 때에 세추를 잡았다가 놓치고 장교의 이름으로만 보고하였기 때문에 비변사에서는 전연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뒤에 그 실상을 전해 듣고 그때의 영의정인 이광좌(李光佐)가 비록 품주(稟奏)한 뒤에 혹 가자(加資)라도 해야 하겠다고까지 말하였으나 녹훈도감(錄勳都監)에서는 비변사의 성책(成冊) 속에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하여 원종(原從)에서 누락됨을 면치 못하였는데 이는 비록 사세가 원래 그렇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흠전(欠典)이었습니다. 이제는 마땅히 원종 1등에 추록(追錄)해야 하겠는데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다. (daum 2014)

 

  서종일 : 승정원일기/ 영조 3년 3월 1일 (무자) 원본634책/탈초본34책 (13/24) 1727년 雍正(淸/世宗) 5년/ 申昉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行判書沈宅賢受由在外, 參判金有慶進, 參政李箕鎭進, 行都承旨趙榮福進。兵批, 行判書金興慶陳疏受由, 參判李裕民病, 參議趙鳴鳳病, 參知慶聖會進, 左副承旨羅學川進。吏批啓曰, 守令多?, 今當差出, 而近來州郡之望乏少, 守令中有聲績人, 竝擬何如? 傳曰, 允。兵批啓曰, 新除授碧團僉使張萬甲, 母年八十有三, 美錢僉使李在錫, 母年七十一, 而他無兄弟, 廢茂山萬戶崔道昌, 父年七十有二, 而亦無兄弟, 俱以不忍遠離赴任之意, 呈狀乞遞。邊將之親年七十五歲以上者, 及七十歲以上而無兄弟獨子, 則許遞其任, 已有定式。碧團僉使張萬甲, 美錢僉使李在錫, 廢茂山萬戶崔道昌, 竝令姑改差, 何如? 傳曰, 允。又啓曰, 新除授高嶺僉使鄭智呈狀內, 衰老之中, 加以水土所傷, 疼風之症, 時時發作, 卽今病勢, 旬月之內, 差復無期, 決無赴任之望, 斯速入啓處置云。聞其病勢, 果是實狀, 決難等待其差復, 今姑罷黜, 准期不敍, 何如? 傳曰, 允。吏批, 以申昉·李鳳翼爲承旨, 朴弼正爲獻納, 鄭匡濟爲弼善, 柳謙明爲文學, 趙命臣爲工曹參議, 宋秀衡爲兵曹佐郞, 金侃爲兵曹佐郞, 兪宇基爲工曹佐郞, 趙廷涑爲監察, 鄭來周爲安州牧使, 李雨臣爲富平府使, 徐宗一爲醴泉郡守, 金趾慶爲義興縣監, 黃龜河爲司譯提調, 平原都正標爲司饔副提調, 司僕僉正金後衍, 仍任事承傳。兵批, 副護軍趙命臣·林柱國, 副司直朴弼正·申魯·姜一珪等單付。(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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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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