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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199:유일상(4)-유일한(1)
작성자장병창 @ 2015.11.29 06:10:54

  예천의 자랑(4199) : 유일상(4)-유일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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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상 : 커뮤니케이션 효과의 인식방법론 소고(커뮤니케이션 效果의 認識方法論 小考) [學術저널] : 예천 출신 유일상(柳一相, 1947- , 建國大 敎授)의 논문으로, 한국언론학회에서 1985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유일상 : 방송규제감독기관의 지위와 기능에 관한 연구(放送規制監督機關의 地位와 機能에 關한 硏究 =The Status and Functions of the Supervisory Office in the Broadcasting Regulation) [學術저널] : 예천 출신 유일상(柳一相, 1947- , 建國大 敎授)의 논문으로, 건국대학교 사회정책연구소에서 1998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I. 머리말/ II.몸말/ 1.미국/ 2.영국/ 3.프랑스/ 4.일본/ III.마무리(daum 2009)

 

  유일상 : 구조기능주의적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특성에 관한 연구(構造機能主義的 커뮤니케이션 硏究의 特性에 關한 硏究 =A Theoretical Perspective on Communication studies Based upon Structural Functionalism) [學術저널] : 예천 출신 유일상(柳一相, 1947- , 建國大 敎授)의 논문으로, 건국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1987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1. 槪觀/ 2. 構造機能主義的 파라다임의 形成/ 3. 構造機能主義 理論의 發展/ 4. 커뮤니케이션硏究에 있어서 구조기능주의의 役割/ 5. 理論의 統合과 結論(daum 2009)

 

  유일상 : 커뮤니케이션 효과의 인식방법론 소고(커뮤니케이션 效果의 認識方法論 小考) [學術저널] : 예천 출신 유일상(柳一相, 1947- , 建國大 敎授)의 논문으로, 한국언론학회에서 1985년 5월에 발행한 <新聞學報> 第19號 145~174쪽(30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Ⅰ. 序論/ Ⅱ. 本論/ Ⅲ. 現象學과 그밖의 代案들 및 結論(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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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基督敎 企業精神을 實現한 유일한! 유한양행 유일한!) [記事] : 1. 유일한 일대기/ [출생과 유년시절] : 경북 예천 출신으로, 당시에는 평민 정신으로 가장 개화된 평양에 정착하게 된 유일한의 아버지 유기연은 김기복이라는 여성과 결혼하였다. 1985년 1월 15일 장남이 태어나자 유기연은 아이의 이름을 유일형이라고 지었다. ꡐ형ꡑ은 향기 형으로 향기가 멀리 풍긴다는 뜻도 가지고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아름다운 향기를 멀리까지 풍기는 인생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유일형은 나중에 유일한으로 개명하게 된다. 당시 평양은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울 정도로 장로교 중심의 기독교가 깊이 들어와 있었다. 유기연은 크리스찬이 되고 교회를 통해 새로운 정신계는 물론 근대화의 조류에 접하게 되었다. 유기연은 기독교 뿐 아니라 평양을 중심으로 싹트기 시작한 산업 경제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농수산물의 도매상과 독일 재봉틀 싱거로 평양대리점을 경영한 대단한 재력과 경력의 소유자였다. 이즈음 이승만을 비롯하여 박용만, 정순만 등 '3만'이라는 인물들이 나타나 우리나라의 구국 운동과 개화정신을 고취하며 다녔고, 그들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뜻이 있는 청소년들을 미국에 유학시켜야 한다는 호소를 하고 다녔다. [미국 유학과 유한양행 설립] : 1904년 미국에 도착한 유일한은 커니라는 조그만 동네에서 성실한 침례교 신자인 미국인 자매에게 맡겨졌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 가며 신문팔이 등의 고학으로 초등학교를 거쳐 1915년 네브라스카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 시절 유일한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라면, 박용만이 설립한 헤스팅스의 소년병학교에서 학업과 군사 훈련을 받으며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열정으로 조국을 만났던 일과,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며 무슨 일이든 성의와 노력을 다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디트로이트 변전소에서 1년 간 근무하며 대학 입학금을 마련한 후 미시간대학 상과에 진학하였다. 대학 졸업 후 제너럴 일렉트릭회사의 유일한 동양인 회계사로 취직하고, 중국인 소아과 의사인 호미리와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던 유일한은 보다 더 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시작하여 크게 성공한다. 사업상 조국을 찾았던 유일한은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본 후 조국을 위하여 일하기로 결심하고 사업체를 정리하여 귀국,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하였다.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업적으로도 성공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던 유일한이 고국에 영구 귀국하여 새로운 기업을 창설하면서 민족에 봉사하기 시작한 것은 1926년이었다. [목차] : 1. 유일한 일대기/ 출생과 유년시절/ 미국유학과 유한양행 설립/ 유한양행의 발전과 고려공과학원 설립/ 2. 유일한 정신/ 유일한 정신/ 국가관/ 사회관/ 기업관/ 3. 느낀점(레포트월드 06-04-27 09:43). [유한의 마크] : 1925년 미국유학을 마치고 고국에서 '웅지'를 펴기로 결심한 유일한 박사는 평소 존경해 왔으며 교분이 두터웠던 애국자 서재필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당시 일제하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 제약산업을 통한 건강입국의 신념을 피력하였으며, 서재필 박사는 "한국인임을 잊지마시오 "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기념의 정표로서 목각화 한장을 내 주었습니다. 서재필 박사의 영애가 손수 조각한 목각의 그림은, 잎사귀와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버드나무였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柳(버드나무)에서 착상된 이 목각화에는, 고국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그루의 큰 버드나무처럼 모진 비바람속에서도 '끈질기게, 무성하게" 대성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 목각의 버드나무 그림은 유일한 박사가 1926년 유한을 창립하면서 초창기 유한의 마크로 사용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분적 변형은 있었으나 '무수한 역경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싱싱하고 푸르게 성장하였으며, 항상 국민보건 향상에 앞장서온 모범기업으로서의 뜻'을 가지고, 보다 넓은 세계로 도약하는 유한의 발전과 항상 함께하고 있습니다(www.yuhan.co.kr 2006). [유한재단] : 설립자 유일한 박사는 평생을 바쳐온 교육장학사업 및 사회원조사업을 보다 항구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되겠다는 결심하에 1970년 개인주식 8만3천여 주를 기탁하여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을 발족시켰으며, 이듬해 사후 유언장 공개를 통해 전재산을 이 기금에 출연하였습니다.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은 1977년 공익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규정에 따라 재단법인 유한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소유주식 일부를 유한학원과 분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일제 치하에서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창립하여 제약산업을 통한 '건강입국'의 의지를 다졌으며, '건전한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기업이윤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되돌려야 한다'는 기업이념으로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선도적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설립자는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교육, 장학사업에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보였으며, 이에 개인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에게 수시로 장학금을 주었던 것은 물론, 해외유학생에게 여비를 부담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설립자의 정신은 대를 이어, 지난 1991년 유일한 박사의 외동딸 유재라 여사도 생전에 틈틈이 모은 전재산(시가 200억원 상당)을 한톨도 남김없이 유한재단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인 유재라 여사도 자본주의 윤리에 철저했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데 평생 온힘을 쏟았으며, 세상을 떠나며 완성한 것입니다.(www.yuhan.co.kr 2006)

 

  유일한 : 문화인물 선정 현황/ 2010.05.04/ (한국학) 곽재우 (호국) '96 김만중 (문학) 최치원 (한국학) 이순지 (과학) 서재필 (국가보훈) 김명국 (미술) 류일한 (경제) 도 선 (종교) 심 훈 (문학) 왕산악 (음악) 정인승 (어문) 전형필 (전통 문화) 이제마 (의학) '97 송석하 .../ //blog.daum.net/culturelive/ 한국문화스토리텔링(daum 2010)

 

  유일한 : 젊을 때의 저를 감동시켰었던 고 류일한 박사님의 가방 이야기./ 2009.05.09/ 문화류씨 카페의 메인 게시판에 올린 글과 댓글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소책자에서 고 류일한(유한양행 창업) 님의 가방이라는 글이 저를 감동시켰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을 어딘가에 인용하여 피력하였었는데.../ //cafe.daum.net/kwangjuAhn/ 광주 安 씨(daum 2010)

 

  유일한 : 고 류일한 박사님의 가방이야기..../ 2009.05.08/ 상속재산은 한 푼도 없이 유한양행에 와서 촉탁으로 영어강사를 하였다는 여성잡지의 글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류일한 박사님은 사업가로서의 평생 동안 국내에서나 외국출장에서도 항상 낡은 가죽가방 한 개를 가지고 다니셨는데.../ //cafe.daum.net/SeongAm/ 성암 스포츠클라이밍(daum 2010)

 

  유일한 : 펌] 유한양행 창업자 故 류일한 박사  /~좋은자료~/ 2004/07/13 00:38/ //blog.naver.com/ 제 4물결에 대한 열망과 열정 | 보리소년/ [출처] [펌] 유한양행 창업자 故 류일한 박사|작성자 키리/ 평양 출생(실제는 예천읍 청복리 도르테 출생) 1904년 9세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미시간대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포드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학업을 마친 뒤 전자회사 사원으로 근무하다가 1922년 자립하여 숙주나물을 취급하는 라초이식품(주)을 설립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유한양행(柳韓洋行)을 설립하였다. 1939년 한국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였고, 만주(滿洲) ·다롄[大連] ·톈진[天津] 등 동북아 일원에 시장을 개척하였다. 1962년 유한학원을 설립하고, 1969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조권순(趙權順)에게 사장직을 물려줌으로써 전문경영인 등장의 길을 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daum 2010)

 

  유일한(柳一韓) : 1895년 1월 15일 출생(*사망)/ 전 기업인, 전 유한양행 회장/ 약력 과 상훈/ 1895년 1월15일 출생/ 1904년  대한제국의 순회 공사인 박장연을 따라 도미/ 1919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상과 졸업/ 1922년  라초이 식품회사 설립/ 1925년  중국계 소아과 의사 호미리(胡美利) 여사와 결혼/ 1926년 12월10일  귀국하여 유한양행 창설/ 1936년  법인체 주식회사로 변경/ 1941년  미국 남가주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 취득/ 1942년  미국에서 항일 무장 독립군 맹호군 창설 주역으로 활동/ 1945년  미국OSS지하 항일계획인 냅코작전 특수 공작원으로 활동/ 1946년  귀국하여 초대 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 1948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국제법 수학(박사과정) / 1962년  유한양행 주식 상장/ 1963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공익포장 수여/ 1964년  국무총리로부터 우량상공인 표창// 1964년  학교법인 유한학원 설립/ 1965년  연세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 취득/ 1968년  모범납세자로 선정되어 동탑산업훈장 수훈/ 1970년  재단법인 유한재단 설립/ 1970년  사회공익에 기여한 공으로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1971년 3월11일  향년 76세로 영면/ 1971년 4월8일  유언장 공개, 전재산 사회환원/ 1971년  국가복지향상에 이바지한 공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1991년  기업 경영인의 귀감이 되어 중앙대학교로부터 참경영인상 추서/ 1995년  자유독립과 국가발전에 기여하여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출처] [펌] 유한양행 창업자 故 류일한 박사|작성자 키리// 1996년  정부로부터 6월의 문화인물 및 독립운동가로 선정/ 1998년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매일경제신문 등에서 '한국을 빛낸 역대 인물'로 선정// [관련 서적] :  저서 ; 한국에서의 나의 소년시절(When I was boy in Korea, 1928년)/ 한국과 태평양 전쟁(1948년)/ 나라사랑의 참 기업인 - 유일한 ; 1995년 1월15일 발행, 유일한 전기 편집위원회, 발행처 유한양행, 인쇄처 동아출판사// 유일한 연구 ; 1994년 12월30일 발행, 유일한 연구 편집위원회, 발행처 경영사학회, 인쇄처 신원인쇄사/ 유일한의 독립운동연구 ; 1995년 4월20일 발행, 저자 이현희, 발행소 동방도서/ 청지기 유일한의 삶의 좌표 - 버드나무길 ; 1992년 7월5일 발행, 저자 이종한, 펴낸곳 도서출판 태성/ 빈손으로 떠난 위대한 기업가 - 유일한 이야기 ; 1992년 11월10일 발행, 저자 조영권, 웅진 어린이 책마을, 웅진출판/ 정직과 신용의 기업인 - 유일한 ; 1996년 8월15일 발행, 만화로 만나는 20세기의 큰 인물 中 19권, 웅진출판/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 - 유일한 ; 1998년 5월2일 발행,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 한국편 中 63권, 대산출판사(daum 2010)

 

  유일한 : 유일한 박사는 1895년 태어나 9살 어린 몸으로 미국에 건너가 고학으로 대학을 마치고, 그곳에서 기업을 일으켜 성공하였습니다. 유 박사는 당시 일본의 압제 하에 가난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동포를 위해 1926년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민족기업 유한양행을 창립하였습니다. 1936년에는 부천시 심곡동 일대에 국내최초의 근대적 제약공장을 준공하여 제약입국의 의지를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박사는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 맹호군 창설 주역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습니다. 광복 후에는 교육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나라의 근대화에 필수적인 기술 인력의 양성을 위해 사재를 헌납하여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 우수한 인재를 배출시키고  오늘의 유한대학으로 확대 발전시킬 수 있는 초석을 놓았습니다. 박사는 1971년 76세를 일기로 영면하면서 그의 재산 전부를 공익법인에 기증하는 등 평생을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정신을 몸소 실천한 참 기업인이었습니다.

 

  유일한 : 유일한 박사의 정신/ 국가관 | 사회관 | 기업관/ 유일한 박사는 금세기를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신상(紳商)으로 존경받았고, 지금도 추앙받고 있는 애국적 민족기업인이었습니다. 유 박사는 어린 몸으로 혼자 미국에 건너가 고학으로 대학까지 나왔고, 그곳에서 기업을 일으켜 성공적으로 이를 이끌어왔으며, 선배들을 도와 독립운동에도 가담한 굳은 의지의 청년이었습니다. 유 박사는 31세 되던 해 고국에 돌아와 유한양행을 창립하고 일본인들이 득세하고 있던 제약업계에서 그들과 대항하면서 성공을 거두었고, 후에는 학교를 설립하여 젊은 후진을 양성하였습니다. 그는 근면ㆍ성실, 그리고 민족을 사랑하는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일에만 몰두했고, 서거시에는 그의 기업ㆍ사재까지도 사회에 환원하고 간 현대 자본주의의 참정신을 몸소 실천한 문자 그대로 신상이었습니다. 유 박사의 기업이념은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ㆍ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ㆍ배출하며, 기업이익은 첫째는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둘째는 정직하게 납세하며, 셋째는 그리고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 는 것입니다. 유 박사의 사회관을 그의 어록을 통해 살펴보면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기업은 사회의 이익증진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구이다." "양질 × 염가의 제품 생산, 이것은 기업성취의 ABC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인 것이다."  위의 유 박사의 말들에서 그가 생각했던 기업과 사회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기업의 소유주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며 개인은 그것을 단지 관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그의 생각은, 그의 사회관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단면일 것입니다. 사유재산제도 아래 유 박사는, 일제시대에 이미 개인 소유 회사에서 주식회사로 개편함으로써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자신의 이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1936년 유한양행은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하였는데, 주식의 일부를 직원들에게 공로주로 당시 액면가의 10% 정도 가격으로 분배하였습니다. 유 박사의 기업관을 한마디로 한다면, 그의 어록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 구성원의 <공동운명체>라는 것입니다. 즉 "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기업활동을 통한 하나의 공동운명체이다."라는 상호유기적 결합체로서의 기업관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운명체라는 의식을 가지면 성실, 건강한 이윤관, 기업은 사회의 소유라는 의식, 경영자와 종업원에 대한 각별한 의식들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유재산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 특히 한국에서 기업은 거의 소유주 개인이 소유권을 행사하고 이를 자기 후손에게 상속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 박사는 그의 사후에 공개된 유언장에서 그러한 관행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1971년 3월11일 서거한 이후 다음 달인 4월8일에 공개된 유언장에는, 자신의 손녀를 위한 학자금으로 자기 주식의 배당금 가운데 당시 환율로 3백만원에 해당하는 1만달러를 마련하고, 딸에게는 유한중 × 공고 내의 묘소 및 주변 대지 5천평을 상속하되 '유한동산'으로 만들어 자라나는 세대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게 해 줄 것과, 자신의 소유 주식 전부를 재단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신탁기금'에 기증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 국가/ 국가(國家), 교육(敎育), 기업(企業), 가정(家庭) - 이 모든 것은 순위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명제들이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바로 국가, 교육, 기업, 가정의 순위가 된다. 건강한 국민, 병들지 아니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나라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것을 신성한 말로 서약하여야 한다/ 인간1/2 :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 이상적인 인간형성을 위해 근면, 성실, 책임감은 바람직한 3대 요소이다. 그러나 여기에 성급하지 않은 성격까지를 구비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나의 인간은 체구를 가지게 되며 그 몸에는 귀, 눈, 코, 입 등의 여러 기관이 부수되어 있다. 그 중 하나의 기관만 없어도 완전한 인간일 수는 없다. 사회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러 사람이 각기 사회를 위해서 유익한 기관의 구실을 다할 때 비로소 그 사회는 완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색하고 관찰하는 습관은 인간의 지적 성장을 위한 촉진제이다.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남기고 또 명성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이다./ 인간2/2/ 약한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대하라. 특히 외국인에게는 강하게 대하라. 실패, 그것으로 해서 스스로 나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면, 실패 그것은 이미 나의 재산인 것이다. 어느 정도를 아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는 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이것이문제인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보는 연령이 되면 누구나 결국은 자기자신이 평범한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도 부족한 점이 많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기업1/3 :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연마된 기술자와 훈련된 사원은 기업의 최대 자본이다. 기업은 한두 사람의 손에 의해서 발전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두뇌가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발전되는 것이다. 기업의 제 1목표는 이윤의 추구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실한 기업활동의 대가로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윤의 추구는 기업성장을 위한 필수 선행 조건이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 기업의 기능이 단순히 돈을 버는 데서만 머문다면 수전노와 다를 바가 없다. 기업의 기능에는 유능하고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까지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기업은 사회의 이익증진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구이다. 양질, 염가의 제품 생산, 이것은 기업성취의 ABC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인 것이다. 기업과 개인적 정실(情實 - 비록 그것이 가족의 경우라도)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업을 키우는 지름길이요, 또한 기업을 보존하는 길이기도 하다. 기업은 물건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 이것이 기업에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기업활동을 통한 하나의 공동운명체이다. 돈을 벌어야만 하는 사람과 돈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 만나서 일체가 되어 일을 할 때, 거기에 창조적 작업이 이루어진다. 기술자가 되려면 자기가 하는 일에 흥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또 정확히 하여야 한다./

 

  정직(正直) - 이것이 유한(柳韓)의 영원한 전통이 되어야 한다. 기업으로 해서 아무리 큰 부(富)를 축적했다 할지라도 죽음이 임박한, 하얀 시트에 누운 자의 손에는 한푼의 돈도 쥐어져 있지 아니하는 법이다. 유한양행은,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사업가인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설립한 민족기업입니다.  유한은 창업 이래 기업을 통한 사회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성장, 발전해 왔습니다. 유한이 지금까지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아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업이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기본정신 때문입니다. 유한은 제약업계 최초의 기업공개로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종업원지주제 채택, 전문경영인제 등 선진경영기법을 이 땅에 도입해 국내 기업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21세기를 앞둔 지금, 신약연구 분야에서 기술경쟁력의 확보로 세계 수준의 제약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유한은, 창업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와 국민을 위해 더욱 건강한 사회, 더욱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daum 2010)

 

  유일한 : 월간조선 ‘50대 기업인’ 특집 설문조사/ 조선일보 99.09.17/ 가장 뛰어난 기업인 정주영 / 유일한-이병철회장 존경/ 정주영(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경제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뛰어난 기업인으로 꼽혔다.또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에는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류일한) 회장과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병철) 회장이 뽑혔다. 이는 월간조선(월간조선)이 이달 초 경영-경제학 교수, 국회 재정 위원, 신문-방송사 전-현직 경제부장, 경제부처 국장급 이상 간부 , 경제단체와 경제연구소 임원, 증권-은행-투신사 임원 등 경제전 문가 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나타났다... ‘국내에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사망자 포함)으로는 유일한 회장 과 이병철 회장이 공동 1위(25표씩)로 나타났다.정주영 명예회장은 3위(24표)였고,고(고) 최종현(최종현) S K그룹 회장은 4위(8표),손길승 현 SK그룹 회장은 5위(3표 )를 기록했다.../ 김병석 기자(daum 2010)

 

  유일한 :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서울경제 1999년 6월 11일/ 그는 누구인가? 철저한 자진 납세로 세무사찰 후 되레 기념패/  1895년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유일한은 평생을 신용과 정직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신의와 정직에 대한 그의 신념은 그가 밝힌 기업이념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 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 배출한다. 기업이익은 첫째 회사를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둘째 정직하게 납세하며, 셋째 남는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 기업이념에서만이 아니다. 그는 이러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62년 회사를 상장할 때 벌어진 일이었다. 일부간부들이  "회사의 실제자산이 총 액면가보다 5~7배나 많으니 공개 전에 무상증자를 실시하자"며 소위 '물타기 증자'를 주장했다. 당시 액면가가 100원이었기 때문에 6배정도의 증자를 해도 무방했으나 유 박사는 "증자를 하면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다"며 이를 반대했다. 결국은 액면가 그대로 상장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주식이 상장되기도 전에 주간사인 증권회사 직원들이 이것을 모두 사들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이를 다시 회수해 재상장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러한 정직과 신용의 자세는 철저한 자진납세라는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63년 전국 유일의 우량납세기업체 표창을 받았고 그 뒤에도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특히 68년에는 정부로부터 세무사찰을 받은 뒤 오히려 국세청으로부터 '국세청선정 모범납세사업체'라고 쓴 동으로 만든 현판을 받기도 했다.

 

  왜 이 사람인가? "교육사업 통해 부 사회 환원 전문경영인제도 도입도" 국내 기업인들 중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 친일행적은 물론 정경유착, 각종 탈세 등으로 사회적인 명망을 얻기보다 비판의 대상이 돼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일한 박사는 다르다. 그는 일찍부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재산의 사회 환원을 통해 "기업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공유물"이라는 신념을 회사 내에 뿌리내림으로써 온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몇 안되는 기업인이다. 유 박사가 유한양행을 설립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지난 26년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대중들을 위해 우리 손으로 우리 약을 만드는 회사가 있어야 된다는 신념에서 출발했다. 30년대에는 연구소도 설립해 수입판매해 오던 의약품들을 자체 개발하고 동남아 등에 진출하기도 했다. 36년 개인소유의 회사를 주식회사로 바꾸고 주식의 일부를 임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요즘의 표현으로 한다면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한 것이다. 또 62년에는 임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약회사로는 최초로 주식을 상장하고 회사를 공개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기업의 경영을 정치권의 바람으로부터 철저히 독립시키려 했다. 그가 본격적인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해 교육사업을 시작한 것은 회사가 성장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무렵인 54년부터다. 그는 사재를 털어 '고려공과기술학원'을 세웠고 60년에는 '한국직업학원', 64년 유한공고, 66년 유한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 '기업과 개인적인 정실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며 전문경영인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을 키우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경영을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회사를 맡겨야 한다는 확신때문이었다. 유한양행의 경영권을 주주총회를 통해 전문경영인에게 넘긴 것도 바로 이유에서였다. 기업이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의 공유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다. 생전에 유한양행의 총주식 40%를 각종 공익재단에 기증하는 등 모든 소유주식을 사회에 넘겼다.  "이윤추구는 기업성장의 선행조건이지만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는 그이 생각을 현실로 옮긴 것이다.

 

  업적 2대에 걸쳐 전재산 사회환원 신화 만들어 : 유일한 박사를 거론할 때 항상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몸소 실천한 선구자'라는 표현이 따라다닌다. 그에게 있어 기업은 사회의 것이고 따라서 절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71년 4월 유박사의 유언장이 언론에 최초로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그가 소유했던 유한양행 주식 14만941주(당시시가 2억2,500만원) 전부를 재단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신탁기금'으로 기증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딸 유재라 여사에게 그의 묘소가 있는 5,000평의 대지를 상속해 '유한동산'으로 꾸미도록 했을 뿐이며 손녀에게도 대학까지의 학자금으로 1만달러(320만원)만을 남긴 것이 전부였다. 미국에 있던 장남 유일선씨에게는 일체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너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라는 말만을 남겼다. 더욱이 딸 유재라씨도 91년 미국에서 숨을 거두며 당시로 45억원 상당의 유한양행 주식과 시가 160억원 규모의 서울 대방동 집터 1,008평 등 모두 205억원을 공익재단인 유한재단에 기부했다. 2대에 걸쳐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신화를 이룩했던 것이다. 재벌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몇대에 걸쳐 기업경영을 세습하고 어떻게 하면 재산을 불릴 수 있을까라는 것에만 힘을 쏟는 오늘의 실정에서 유일한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가장 좋은 상품의 생산, 성실한 납세,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으로 요약됩니다. 가장 좋은 상품의 생산 창업당시 일제의 혹독한 강압정치하에서 압정과 질병에 허덕이던 우리 민족에게 민족생존과 민족혼 재현이 건강에 있다고 굳게 믿고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의약품산업을 선택하여 민족의 질병퇴치를 위해 꼭 필요한 양질의 의약품을 생산하여 국민 보건 향상에 기여한다는 것이 기업 설립의 정신입니다.  성실한 납세  기업이념 중에서 애국정신의 핵이 되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이는 모든 기업활동이 국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기업활동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富의 축적은 반드시 성실한 납세를 통하여 국가에 되돌려지고 이것이 곧 국력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창업자의 신념으로서 '기업이 국가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기업이념의 표현입니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기업에서 얻어진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되돌려져야 한다는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고 단지 그 관리만을 기업인이 할 뿐이라는 신념에서 출발하여, 기업활동을 통해 얻어진 이윤의 분배에 대한 기업이념의 표현입니다./ 1) 유한킴벌리(Yuhan-Kimberly Ltd) : 세계적인 가정용품, 개인 위생관련 제품 생산업체인 미국의 킴벌리 크라크와 합작투자회사인 유한킴벌리는 크리넥스, 뽀삐, 코텍스, 프리덤 그리고 하기스 등을 국내에 공급하며 또한 동남아에도 수출하고 있습니다./ 2) 유한크로락스(Yuhan-Clorox Co., Ltd) : 높은 품질의 위생제품을 생산하는 미국 크로락스사와 합작투자회사인 유한크로락스는 유한락스 레귤러, 유한락스 후레쉬, 펑크린 등을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3) 주식회사 유한화학(Yuhan Chemical Inc.) : 유한화학은 cGMP 기준으로 설계/시공된 종합합성 공장으로써 API's, Chemical Specialties, 제약 중간체 등의 소량 시험 생산부터 대량 생산까지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다. 주요제품으로는 항생제 및 항바이러스제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4) 한국 와이어스 주식회사(Wyeth Korea, Inc.) : 세계 굴지의 의약품 및 가정용품 메이커 미국 사이나미드와 합작투자한 후 상호를 한국 와이어스로 변경하였으며, 현재 항암제 및 항생제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습니다./ 5) 주식회사 한국얀센 (Janssen Korea Ltd.) : 미국의 Johnson & Johnson 사와 합작투자로 설립된 (주)한국얀센은 벨기에 얀센제약에 근거를 둔 제약회사로서 통증치료제 , 중추신경계 질환치료제, 소화기질환치료제, 피부질환치료제, 알레르기성 질환치료제를 도입하여 최신식 GMP 시설을 갖춘 공장에서 전문의약품을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6) 쉐링푸라우 코리아 주식회사(Schering-Plough Korea Ltd.) : 미국의 쉐링푸라우사와 합작투자회사인 쉐링푸라우 코리아는 항히스타민제제, 간장치료제 등을 수입, 공급하고 있습니다./ 7) 유한메디카 (Yuhan Medica Corporation) : 젠텔, 타가메트 등 10여 가지의 치료전문 의약품을 생산 공급하고 있으며, 건강보조식품, 전통음료 등 식음료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8)  G.T.B.L : 인도 현지 합작투자사인 G.T.B.L사는 리파핌신, 리파-S등 정밀화학제품을 현지에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출처] [펌] 유한양행 창업자 故 류일한 박사|작성자 키리/  (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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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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