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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208:유학성(2)-유회종-유흡-유희윤-육택룡-윤건차(1)(祝감천중,권오휘,배드민턴)
작성자장병창 @ 2015.12.08 06:12:56

  예천의 자랑(4208) : 유학성(2)-유회종-유흡-유희윤-육택룡-윤건차(1)(附 감천중학교, 4일 전국 융합인재교육 발표회 1위 수상...축하합니다/권오휘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장, 5일 경북 작품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군배드민턴연합회, 6일 도대회 2위...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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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성 : 유학성(기계유씨 육군대장) 부친 묘소/ 2009.09.01/ ...역할을 하면서 5공화국, 6공화국의 탄생에 많은 역할을 하였으며 육군 대장, 중앙정보부장, 국회의원 등을 지낸 유학성 장군의 선대조 묘소이다. 아래 사진 설명. 유학성 육군대장의 부친 초장지 전경. 아래 사진 설명. 유학성.../ //cafe.daum.net/cjuncc/ 백상과 소여(daum 2010)

 

  유학성 : 차규헌 수도군단장 그리고 정승화, 유학성, 황영시/ 2010.05.21/ 지난 93년에 12.12로 고소를 당하는데 피의자들은 94년에 진술을 받기 시작합니다. 특히 경복궁에 모였던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장군 등 선배 장군의 진술이 기대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죠. 나중에 구체적으로 언급을 할 수 있을.../ //blog.daum.net/gopcorea/ 하늘빛 미래를 열어가는(daum 2010)

 

  유학성 : 유학성이라는 사람은 제5공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2006.10.08/ 유학성이라는 사람은 제5공에서 안기부장이었습니다. 나중에 별 4개를 달았구요. 중앙정보부장..- 안기부장..-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답변수: 1 | 조회수: 544(daum 2010)

 

  유학성 : 유학성? 그는 누구인가요?/ o찌찌뽕o | 2005-06-03 11:49 | 조회 7626 | 답변 1/ 제 5공화국을.. 보면서 여러 궁금증이 생겼는데.. 첫번째로는 유학성... 그는 누구인가 ? ^^ 유학성이란 인물에 대해 가르쳐주세요.. 자세하게 부탁드립니다./ 1. 유학성(예비역 대장)/ 1966년 준장 진급-월남파견(100군수 사령관), 1970년대 초반에 소장 진급하여 26사단장 교육참모부장, 1977년 중장 진급하여 3군단장 국방부 군수차관보,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이후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3군사령관으로 예편, 이후 안전기획부장 역임/ [유학성 제5공화국 시절 이런 일도 했다] : 공화국 때 한미관계는 박정희시대와는 판이한 밀월을 구가했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이 박대통령의 독자적 군사외교 노선을 일찌감치 포기, 정통성의 결함을 대미 밀착외교로 보완하려 했기 때문이다. 자주국방을 내걸고, 미국에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박대통령의 자세가 유신정권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을 신군부는 잘 알고 있었다. 미국쪽도 카터의 인권외교가 가져온 문제점을 주목한 레이건 대통령이 대한(對韓)정책을 적절히 선회해 화답했다. 그 결과 신군부는 쉽게 정권의 뿌리를 내렸고, 미국은 그들의 군사외교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5공 정권을 흡족히 생각했다. 물론 그런 가운데 삼민투 등 운동권 학생들의 85년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등을 계기로 젊은 층의 반미 감정은 확산됐다. 12.12와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미국 책임론’은 한국민에게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한미간의 협력은 정보기관 관계에서 두드러졌다. 안기부와 미 중앙정보국(CIA)의 밀착은 양국 정보기관책임자의 상호 비밀방문에서 단적으로 나타났다. 81년 5월 유학성 안기부장이 미CIA를 방문한 데 이어 노신영. 장세동 안기부장 때는 윌리엄 케이시 미CIA국장(87년 병으로 사망)이 두 차례 서울을 방문했다.

  ‘비노출’과 ‘비공개’라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이제껏 비사로 남아있지만, 5공 7년간의 한미관계는 정보기관쪽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온전한 실체 파악이 어렵다. 유학성 부장은 81년 5월 미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CIA 본부를 방문했다. 한국 정보 책임자가 CIA 책임자 초청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한 것은 5.16후 중앙정보부(안기부 전신)가 생긴 이래 처음이었다. 유 부장 일행은 대미관계가 불편했던 70년대 후반의 일들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했다 한다.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가 미 의회와 검찰의 추궁을 받고 있던 시절 미CIA는 청와대도청설로 한국 정부를 압박한 적이 있었다. 또 중앙정보부장 출신의 김형욱과 워싱턴 현지에서 망명한 정보부 요원 김상근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이 몸담았던 한국 정보기관의 추악상을 폭로했다. 그로 인해 미 CIA와 중정의 관계는 형편없이 구겨졌고, 한미관계는 악화됐다. 때문에 5공 정부는 안기부장의 공식 방미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유학성 씨의 회고. : “한미관계가 악화되면 우리 전체의 안보·외교가 어려워집니다. 미국과의 우호 증진이 한반도 안정은 물론 서구·일본과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정보 현장에 있으면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70년대 양국 정보기관간의 갈등은 안보는 물론 외교. 경제 관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지요” 당시 미 CIA를 찾은 한국방문객들은 CIA 본부의 로비 벽에 쓰여 있는 글귀부터 주목했다. ‘진실을 안다면 그 진실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 남산 안기부에 쓰여 있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면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표어와는 무언가 지향점이 달라 보였다. 유 부장 일행을 맞은 케이시국장은 자신이 미 수출입은행장 시절(75년) 서울을 방문했던 기억부터 떠 올렸다. 그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한국정부의 차관지원 요청을 해결한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코리아게이트 여파로 당시 미 정계와 언론은‘한국을 도와주지 말라’고 대체로 외면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80년 레이건 대통령의 선거운동본부장 및 정권인수반장이었던 케이시는 ‘힘 우위에 의한 대소 봉쇄정책’이란 레이건 독트린을 성안한 주역이기도 했다. 81년 CIA 총수로 임명되면서 카터 대통령시절 숨죽였던 비밀공작을 재개, 국방부와 국무부가 망설이는 국내외 분쟁에 대담하게 뛰어들어 소위‘CIA 비밀전쟁’을 벌였다. 케이시의 이런 전력과 성향을 충분히 파악하고 미국에 간 유 부장은 이번 기회를 적절히 활용하리라 마음먹었다. 미국측은 기대 이상으로 나왔다. 먼저 유 부장은 손장래(주미 한국대사관 안기부 공사)와 그레그(부시 부통령 보좌관) 간의 막후 공작 협력 채널을 만드는 실질 소득을 올렸다. 그는 CIA 국장 출신인 부시 부통령을 만나서 대북한 고위급 회담과 서울과 모스크바·북경과의 막후 대화 채널을 뚫는 중개자로 미국이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부시는 즉각 배석한 그레그 보좌관에게 협조토록 지시했다. 당시 그레그(89년 주한 미대사)는 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이었다. 그는 73년 중앙정보부의 김대중 씨 납치사건 때 미 CIA 서울 거점장(한국지부장)으로서 김씨를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손장래-그레그 채널은 전두환-김일성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공작을 벌였다. 80년대 이래 남북관계에 등장하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한시해 대사(나중 숙청)와 우리쪽의 비밀통로가 그때 마련됐다 한다

 

  1212사태 :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이끄는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군 내부의 무력충돌. 십이십이사태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건을 계기로 정승화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수도권 지역의 주요 군 지휘관을 교체하는 등 내부개혁이 진행되면서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군 내부에서 부각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를 감행하여 불법적으로 군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12월 12일 저녁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합수부 소속의 허삼수·우경윤 대령에게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강제연행을 지시했다. 한국정치사에서 5·16이후 또 한 번의 군사쿠데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겸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조정통제국장이던 허삼수 대령은 합동수사본부 수사 제2국장 우경윤 등과 함께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저녁 6시 50분 경 무장한 제33헌병대 병력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 주변에 배치하였다. 이로부터 약 20분이 지난 7시 10분경 참모총장 공관으로 들어가서 총으로 위협하는 가운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여 강제로 끌고 나와 저녁 7시 30분경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하였다. 연행과정에서 참모총장 부관이 전화로 외부와의 연락을 시도하자 합수부측 보안사 수사관들이 권총을 발사해 양측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신군부는 큰 저항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함으로써 군사쿠데타에 성공했다. 같은 시간에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저녁 9시 30분경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 등과 함께 집단적으로 대통령을 찾아가 재차 정승화 총장의 체포 및 연행에 대한 재가를 강압적으로 요구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 대법원은 12월 13일 새벽 5시 10분경 신군부세력의 주장대로 재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승화 총장이 이미 체포되었고 또 신군부 세력이 군권을 장악한 이후 이루어진 것으로서 '사후승낙'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란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하고 있다. 십이십이사태 다음날 아침 정승화 총장 연행에 대해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관여했던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라는 짤막한 배경설명을 발표했지만 그 역시 신군부에 의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십이십이사태를 통해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12월 13일 0시부터 새벽 6시 20분 사이에 육군본부·국방부·중앙청·경복궁 등 핵심 거점을 차례로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하에 두었다. 한편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하고 수도경비사령부에 모여있던 윤성민 참모차장과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문홍구 합동참모본부장 등 육군본부측 장성들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신군부 세력은 이듬해인 1980년 1월 20일자로 정승화 추종세력인 이건영 3군사령관과 정병주·장태완 등을 모두 예편시키고 정승화 참모총장에게는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이들과는 달리 십이십이사태를 주도했던 신군부세력은 대부분 승승장구하여 권력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이희성 중장이 임명되었고 수도경비사령관에 노태우 소장, 특전사령관에 정호용 소장이 임명되었다. 그 외에도 황영시·김복동·유학성·유병현·박준병 등 신군부 세력은 군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들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함으로 긴 쿠데타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등장한 제5공화국의 뿌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십이십이사태의 진상은 그 후 십여년간 밝혀지지 못한 채 권력에 의해 은폐되어 있다가 김영삼 정부 아래서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이 구속되어 사법적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2005-06-03 11:50 | (daum 2010)

 

  유학성 : 유학성? 그는 누구인가요?/ 2005.06.03/ 1. 유학성(예비역 대장) 1966년 준장 진급-월남파견(100군수 사령관) 1970년대 초반에 소장 진급하여 26사단장 교육참모부장 1977년 중장 진급하여 3군단장.../ 답변수: 1 | 조회수: 7,625(daum 2010)

 

  유학성 : 12.12.의 주역인 유학성?/ 2005.06.03/ 국립묘지에 안장될려면 장군들이 안장되죠.. 유학성 역시 육군 대장 출신입니다. 그래서 장군묘에 안장되어 있죠.. 법원에서 구테타로 인정한 건 법원이야기구요.. 국방부에서 이 사람을 구테타한 사람이니.../ 답변수: 1 | 조회수: 1,383(daum 2010)

 

  유학성 : 5.18 그 때 그 사람들 어디서 뭐하나/ 2010.05.17 | 연합뉴스 | 미디어다음 조용히 말년을 보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와병 중이고, 유학성씨는 97년 별세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daum 2010)

 

  유학성 : 전두환 왕성한 활동…노태우 투병 요양 중/ 2010.05.13 | 한국일보 | 미디어다음 보안사 대공과장도 13대 의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뚜렷한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군수차관보였던 유학성 전 의원은 1997년 5ㆍ18 재판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는 "억울하지만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daum 2010)

 

  유학성 [專門資料] : 駐越 100軍需司令官 경질, 이범준 准將 후임으로 유학성/ 駐越 100軍需司令官 경질, 이범준 准將 후임으로 유학성 准將 임명.(daum 2010)

 

  유학성 [專門資料] : [대학보고서] 5.18 광주 항쟁 (22p)/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해피캠퍼스  | 2010.05.23(daum 2010)

 

  유학성 [專門資料] : [대학보고서] 5.18 특별법 관련 헌재결 심층 고찰 (27p)/ 정승화의 연행을 실행하기 위해 11월 중순 국방부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뒤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레포트월드  | 2008.03.07(daum 2010)

 

  유학성 [專門資料] : [대학보고서] 12/12 사태 (6p)/ 그 주동자는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하나회의 핵심들과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등의 후원세력이었다.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는 박정희와 영남 군맥의 비호 아래 보안사, 수경사, 육본 등의 군 요직을 독식해.../ 레포트월드  | 2008.01.10(daum 2010)

 

  유학성 [專門資料] : [대학보고서] (인문) 5.18 민주 항쟁과 전두환시대의 민주화 흐름 (21p)/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해피캠퍼스  | 2004.11.04(daum 2010)

 

  유학성 [專門資料] : [대학보고서] (광주민주화) 518광주민주화운동 (17p)/ 그런데 12월 12일 저녁 10·26 사건 수사를 맡았던 보안 사령관 전두환 소장은 9사단장 노태우 소장 등 하나회 출신의 정치군인들과 (황영시, 유학성, 박준병, 박희도, 장세동, 김진영, 최세창, 정호용, 허삼수,.../ 해피캠퍼스  | 2002.12.04(daum 2010)

 

  유학성 :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e-Book/ 방우영 지음 |  김영사 |  2008.01.11/ 책본문 : ...’였다. 그가 사회부장 때 기사문제로 육군방첩대에 끌려갔는데 방첩대 참모장이 유학성 씨였다. 각서를 쓰면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목 부장은 끝까지 버텼다. 얼마 뒤 그가 월남특파원으로.../ 54페이지(daum 2010)

 

  유학성 : 전 국민 필독(이것은 나라가 아닙니다) 3부/ 2010.06.13/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미디어다음 아고라 > 사회(daum 2010)

 

  유학성 : ★5.18★누가 반란세력인가?/ 2010.05.19/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 3공수여단장 최세창,.../ 토론 > 자유토론(daum 2010)

 

  유학성 : ★필독★ 쿠데타 반란군 세력/ 2010.05.19/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 3공수여단장 최세창,.../ 토론 > 자유토론(daum 2010)

 

  유학성 : 전두환 "젊은 세대의 안보의식 해이 걱정"/ 2010.04.23/ ...학봉 피고인에게 징역 10년, 허삼수·유학성·치세창·이희성 피고인에게 징역 8년, 장세동, 차규헌, 주영복 피고인에게... 재판부는 이날 1심 구속기간(6개월) 만료로 석방된 유학성, 황영시, 이학봉, 최세창, 장세동 피고인 등 5명에 대해서는.../ 미디어다음 아고라 > 경제(daum 2010)

 

  유학성 : 예천성당역사(210) : 성전 건립 헌금자 명단(1995.5.2)/ 작성 장병창/ 6년전, 2005년 5월 26일/ 정휘숙 카타리나, 오영순 글라라, 정규호 베드로, 압구정 성당 서울, 윤민구 신부 타교구, 유학성 바오로, 한국여자수도회장 연합회, 익명, 윤민구 신부 타교구, 160만원 : 김정자 세라피나, 150.../ cafe.daum.net/yecheonsungdang/ 예천성당(daum 2011)

 

  유학성 : 대창80년사:중고병설시대(19) 친목회규약-개교70주년행사(1)/ 작성 장병창/ 3달전, 2011년 1월 17일 (월)/ 우리 대창중고가 개교 7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 뜻깊은 70주년 기념식전에 참석해 주신 유학성(兪學聖) 국회의원, 그리고 이상화(李相和) 예천군수님과 지원식(池源植) 교육장님을 비롯한 군내의.../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유학성 : 송대 연보(2)/ 작성 장병창/ 작년, 2010년 1월 2일/ ...3년 우승, ㅇ 25일 고등학교 교무실 증축 준공 1990.11 : 7일 명사 초청 강연회(유학성 의원), ㅇ 9일 중학교 수세식 화장실 착공, ㅇ 10일 고등학교 교무실 확장, ㅇ 14일 제7회 전국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유학성 : 예천동부초등학교총동문회cafe/ 한천구곡/ 5년전, 2006년 5월 3일/ 우리 마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마을에도 기인이사가 있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유학성이 있었으며(4성 장군 출신으로 국회의원 역임) 한말에 시운이 맞지를 안아서 위명을 더 날리지는 못하였으나.../ cafe.daum.net/yceast(daum 2011)

 

  유학성(兪學聖, 1927~1997) : 杞溪人 杻洞이 고향이다. 陸軍士官學校, 陸軍大學校, 國防大學院, 檀國大學校 政外科, 高麗大學校 經營大學院 출신이며, 陸軍本部 人事參謀部 人事管理處長, 駐越 第100軍需司令官, 步兵26師團長, 陸軍硏究發展司令官, 東海岸警備司令官, 陸軍本部敎育參謀部長, 第파2軍團長, 國防部 軍需次官補, 第3軍司令官(大將)을 역임하고 예편하였으며, 國家安全企劃部長, 韓國反共聯盟理事長, 總力安保中央協議會 議長을 거쳐 12대 全國區 國會議員이 되었다. 賞勳에 보국훈장, 통일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외에 미국 콜롬비아, 태국, 월남 훈장 등 26개를 받은 바 있다.(知保面홈페이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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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종(劉會鍾) : 1957- , 풍양면 출신, 본관은 강릉, 풍양중 졸업, 대입검정고시(大入檢定考試) 와 무선통신사 시험에 합격, 87년 명지대 전자공학과 졸업, 현대녹음회사 입사, CATV 연수원 강사, 89년 서울 서초JC회원, 한국JC신문 서울주재 기자(현), 93년 녹음전문회사 캄사운드 설립 대표이사, 95년 서울 서초청년회의소(瑞草靑年會議所) 부회장, 96년 동 회장이다. 금관영화제(金冠映畵祭) 녹음상 연속 4회(1985), CLIO녹음연출 및 기술상(2회), 미국 CLIO영화제 오디오감독상(1988), 한국광고대상(韓國廣告大賞, 錄音), 서울지구 청년회의소 최우수 주재기자상(駐在記者賞, 1991), 동 서울지구 회장상(1994) 등을 수상하였다.(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醴泉新聞 1996.2.8)

 

  유회종 : 유회종(18회 재경 동창회 총무이사) 공학박사 학위 취득/ 2009.02.24/ 풍양면 태생 유회종 씨 공학박사 학위 받는다./ //cafe.daum.net/daegupungyang/ 재구풍양중,고등총동창회(daum 2010)

 

  유회종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풍양면 태생 유회종 씨 공학박사 학위 받는다/ 2년전, 2009년 3월 24일/ 풍양면 태생 유회종 씨 공학박사 학위 받는다./ 예천신문 master@ycnews.co.kr/ 풍양면 흔효2리 태생의 유회종(54) 씨가 오는 11일 호서대학교 계열 서울벤처정보대학원에서 미디어음향 공학박사 학위를.../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유회종 : 재경예천군민회cafe/ 재경풍양중고 총동문회 정기총회 (예천신문)/ 2년전, 2009년 12월 4일/ ...정담을 나누고 모교 사랑과 고향 발전을 위해 모두가 하나되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유회종 수석부회장, 정재송 부회장, 최재구 대령에게 자랑스런 풍양중고인상을 수여했으며, 성원중 정수일.../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유회종 : 재경 풍양중학교 총동창회 총회 및 체육대회/ 3년전, 2008년 5월 16일/ ...년 05월 16일 재경풍양중학교 총동문회 회장 윤수혁, 수석부회장 : 권혁용, 총무부회장 : 유회종, 재무부회장 : 황재원/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유회종 : 풍양중학교 총동창회 총회 개최에 우리 19회 많은 참석바랍니다/ 5년전, 2006년 8월 4일/ 정수은,손경목,권혁용(지역동창회장): 윤수혁,윤우현,윤봉근(서울지역동창회총무부회장): 유회종(이사): 정진성,성원중,고준희 (간사): 정목환,인우열 (사무국장): 유상연 풍양중학교 총동창회장 정영/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유회종 : 재경풍양중학교 총동문회 12/9일 저녁 6시 서초로얄프라자에서 ★/ 6년전, 2005년 12월 12일/ (1층 대연회장) 예술의 전당주위 (대법원 맞은편) 회비 : 30,000 원 총무부회장 유회종18회 재무부회장 황재원22회 재경풍양중학교 총동문회 회장 윤수혁 위 모교를.../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유회종 : 유회종 교수 소개입니다/ 2009.06.09/ 뉴미디어학과 외래교수 (전) 방송녹음전문회사 현대녹음실 15년 근속(실장) (주) 캄사운드 대표이사/음향감독 역임 (사) 한국청년회의소(JC)서울서초LOM회장 역임 (사.../ cafe.daum.net/kbs77/4K6O/ 한국미디어음향연구소(dau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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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흡 : 승정원일기/ 숙종 원년 2월 26일 (갑인) 원본245책/탈초본12책 (22/32) 1675년 康熙(淸/聖祖) 14년/ 洪柱三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洪柱三爲全羅監司, 柳흡爲醴泉郡守, 崔宙爲任實縣監, 李鼎至爲長水縣監, 魏天相爲海南縣監, 文獻徵爲河陽縣監, 權恁爲巨濟縣令, 權尙任爲監察, 李廷晩[李挺晩]爲學錄, 權?爲兼春秋, 南宮鈺爲高原郡守, 羅州牧使許秩, 仍任事承傳。 (daum 2014)

 

  유흡 : 승정원일기/ 숙종 2년 4월 1일 (계축) 원본253책/탈초본13책 (12/22) 1676년 康熙(淸/聖祖) 15년/ 魚壽遠과 趙昌漢 부자의 刑訊, 柳흡의 罷職을 청하는 司諫院의 계/ ○ 院啓, 倭書僞作之處, 其意只在於惑亂衆庶, 媒禍邦國, 人心世道, 至於此極, 良可痛?。趙松與其父昌漢, 供辭相左, 則固宜益加嚴刑, 究得其情, 而昌漢所引魚壽遠, 亦不可不訊問也。昌漢之於壽遠, 在於自首之初, 曾不因被刑而乃告, 則寧有强引元不干之人, 以爲自解之地乎? 壽遠之招, 亦無明白可雪之端, 而只以女奴致其母辭一款爲證, 安有以其婢隷自證者乎? 此乃疑端之大者也。凡按獄之體, 自有次序, 昌漢與松, 旣爲人所引, 則方在累刑之中, 期於輸情, 壽遠, 爲昌漢所引, 而無的證自明之辭, 則尙無施刑嚴訊之事, 設使壽遠, 果有自做之事, 其肯吐實於平問之下乎? 揆之獄體, 斷無是理, 請魚壽遠與趙昌漢父子, 一體刑訊。尙州爲府, 地鉅而民衆, 又多士大夫, 苟不擇其守而任之, 難以彈壓。牧使柳?, 鄙悖其行, 特一雜流耳。居官, 惟以割剝爲事, 其爲海郡也, 民不堪命, 赴醴泉, 不日而罷歸, 猶有人言, 到今未已。當拜此州也, 物情莫不大駭, 伊時臺議, 皆言當罷, 至有袖彈文詣臺, 而因事避遞未達者, ?乘其間, 晏然赴任, 其不恤人言, 冒沒廉隅, 如此, 則亦何能作牧於多士之郡乎? 上官之後, 所當十分謹愼, 而熟處[熟習]難改, 本色隨露, 曾無惠鮮之政, 率多鄙?之事, 其貽辱大府人士, 而害及小民者, 不一而足, 不可使嶺中雄州, 一任此輩之所殘剝, 公論久而愈激, 請尙州牧使柳흡罷職。 (daum 2014)

 

  유흡 : 승정원일기/ 숙종 2년 4월 2일 (갑인) 원본253책/탈초본13책 (15/23) 1676년 康熙(淸/聖祖) 15년/ 柳흡을 罷職하도록 청하는 司諫院의 계/ ○ 院啓, 尙州牧使柳흡, 決不可仍置字牧之任, 人皆言之, 本院之論, 實循公共之議, 而伏承聖批, 以道聽塗說, 不可取信爲敎, 臣等, 竊惑焉。夫?, 平生行己?悖, 不齒士類, 前後居官, 剝割爲事, 其在海郡也, ?載陸續, 官庫蕩殘, 其赴醴泉也, 筵臣奏遞, 而乃以貪?虐民, 爲言。及授本州, 物情大駭, 伊時臺議, 皆言不可不罷, 至有懷諫草赴臺, 而適値臺中有事, 諸僚避遞, 彈議不果發, 使?也, 苟有一分廉隅, 安忍赴任, 乃反乘其間, 急急辭朝, 如恐不及。前後病民肥己之狀, 姑置勿論, 其不恤廉隅如此, 不畏人言如此, 其何能作長於名府, 而彈壓人士之邦乎? 此乃人所共知, 而唾鄙者, 初非道聽塗說者比也。上官之後, 且不畏愼, 未有惠鮮之政, 率多鄙?之事, 此由於熟處難改, 本色易露之致, 物議譁然, 久而愈激, 請尙州牧使柳?罷職。前啓, 魚壽遠事, 停啓。 (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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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윤(柳喜潤) : 1680(숙종 6)-?, 예천 출신, 자는 사구(士懼), 본관은 풍산, 진사 일상(日祥)의 아들, 명윤(命潤)ㆍ창윤(昌潤)ㆍ수윤(秀潤)의 동생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708년(숙종 34) 식년 생원시에 2등 28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유희윤(柳喜潤) : 본관(本貫) 풍산(豊山), 자(字) 사신(士愼)/ 이력(履歷) 류희윤(柳喜潤):1680(숙종 6, 경신)~1718(숙종 44, 무술)./ 본관 豊山. 자는 사신(士愼). 日祥의 子. 1708년(숙종 34) 생원시 합격. 저서:遺稿. ▣참고:司馬榜目(daum 2010)

 

  유희윤 : 전통문화(류 완하 엮음) 三 3. 사마시 합격(생원 진사) 20. 柳喜潤 柳昌潤 柳恒潤/ 2008.03.22/ 집필:권진호 17세 류희윤(柳喜潤):1680(숙종 6, 경신)∼1718(숙종 44, 무술). 본관 豊山. 자는 士愼. 日祥의 子. 1708년(숙종 34) 생원시 합격. 저서:『遺稿』. ▣참고:『司馬榜目』/ //cafe.daum.net/poongryuhahoi/ 풍류하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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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택룡(陸澤龍) / 수형인명부/ 분류 인물 > 독립운동가자료 > 독립운동가옥고(獄苦)기록/편찬자  경북 예천군 예천읍/ 사건발생일  1926-04-29/ 초록  활동 :소요급상해/ 본적 :慶北 醴泉郡 醴泉邑 花開洞/ 주소 :慶北 醴泉郡 醴泉邑 路上洞 黃甲龍方/ 연령 :1926년 37세/ 판결처 :대구지방법원/ 자료제공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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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차(尹健次) : 1944- , 지보면 신풍리 출신, 본관은 파평, 영식(永植)의 2자, 일본 경도대(京都大), 동경대(東京大), 동 대학원 졸업, 문학 박사(文學博士)이다. 신나천대 교수(神奈川大敎授)이다.(知保面誌 1987)

 

  윤건차 [記事] : 지보면 신풍리 출신 윤건차(尹健次, 1944- , 日本 神奈川大 敎授)에 대한 위키백과의 기사이다. 윤건차(1944년~)는 재일조선인 2세로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도쿄대학에서 '조선근대교육의 사상과 운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가나가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일본 근대사상사, 한국 현대사상사, 근대 한일관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 : '한국 근대교육의 사상과 운동' 청사, 1987년/ '현대일본의 역사의식' 한길사, 1990년/ '일본:그 국가․민족․국민' 일월서각, 1977년/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당대, 2000년(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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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천중학교, 4일 전국 융합인재교육 발표회 1위 수상...축하합니다.

 

  감천중학교(甘泉中學校(校長 전태식) '2015 融合人才敎育 發表會' 優秀프로그램 1位 受賞 快擧!) [記事] : 2015년 12월 4일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2015년 융합인재교육(STEAM) 성과발표회와 학술대회'에서 감천중학교(교장 전태식)의 융합인재교육(STEAM) 교사연구회가 전시한 '신비의 후광'이 우수 프로그램 1등에 선정, 수상됐다. 이번 성과발표회는 2015년 융합인재교육(STEAM) 핵심 내용 및 주요 성과 소개, 우수 사례 공유를 통한 성과 확산 계기 마련하기 위한 행사로 전국의 융합인재교육(STEAM) 교사연구회, 리더스쿨, 아웃리치 프로그램 개발·운영 기관, 첨단과학교사연수센터, 학교 내 무한상상실 등에서 다양한 STEAM 프로그램을 전시했다. 이번 감천중학교가 수상한 우수 프로그램 1등은 학습 현장에서 융합인재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는 참가 교사들이 직접 선정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수상이었다. 감천중학교 융합인재교육(STEAM)교사연구회는 정성헌 수석교사와 함께 전 교사가 참여하는 교사연구회로 '자유학기 꿈.끼.행복교육 어울림 융합수업으로'라는 주제로 1년 동안 활동했다. 이번 성과발표회에서의 전시한 '신비의 후광'은 글래스비즈를 이용하여, 무지개를 만들고, 실생활과 접목한 콘셉트로 구성되었으며 '해파리 트위스트', '무한상상곳간'과 '거울안과 현실과의 만남'이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작품들은 학생들의 흥미와 더불어 융합적 사고를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5-12-07 오후 2: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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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휘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장, 5일 경북 작품상 수상...축하합니다.

 

  권오휘(韓國文人協會 醴泉支部 권오휘 會長 慶北道支會 主催 '第1回 慶北 作品賞' 受賞!) [記事] : (사)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 권오휘 회장이 2015년 12월 5일 경북 칠곡군 왜관 리베라웨딩에서 개최된 경북문단 제32호 출판기념회 및 경북문협 2015 송년문학축전에서 작품 '봉암사'로 '제1회 경북 작품상'을 수상했다. 권 회장은 "이런 큰 상을 수상하게 되어 우선 기쁘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작품을 더 많이 쓰라는 격려로 이해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편, 올해 처음 제정된 제1회 경북작품상에는 권오휘(예천군), 황봉학, 강현숙, 강시일 씨가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5-12-06 오후 7: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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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배드민턴연합회, 6일 도대회 2위...축하합니다.

 

  예천군배드민턴연합회(安東·蔚珍 `道知事旗 生體 배드민턴` 頂上에 : 地域 選手 1千餘名 熱戰) [記事] : 안동시와 울진군이 도지사기생활체육 배드민턴대회에서 종합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제20회 경상북도지사기생활체육 배드민턴대회가 2015년 12월 5~6일 이틀간 청도군 국민체육센터와 모계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경상북도생활체육회가 주최하고 청도군생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경북배드민턴연합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에는 1천여 명의 선수가 참가해 자웅을 겨뤘다. 대회 결과 안동시과 울진군이 시·군부 종합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시부에서는 구미시 2위, 김천시 3위, 포항시가 장려상을 수상했다. 군부에서는 예천군 2위, 고령군 3위, 칠곡군이 장려상을 수상했다.(김기태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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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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