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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222:윤병섭(2)-윤병철-윤보상-윤복주-윤부-윤사석-윤사현-윤상(1)(祝권재은,이윤신)
작성자장병창 @ 2015.12.22 06:13:58

  예천의 자랑(4222) : 윤병섭(2)-윤병철-윤보상-윤복주-윤부-윤사석-윤사현-윤상(1)(附 예천남부초등학교 권재은 교사, 21일 다문화교육 교육부 최우수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군생활체육회 이윤신 지도자, 17일 국민생활체육회장상 수상...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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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병섭 :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 주제 보기 - 윤병섭 문경대학 겸임교수(1999.3~2003.2) 진주산업대학교 벤처창업전문과정(EIP) 전임연구원(2003.6~2004.2) 경남대학교 강사(1998.3~2005.8) 정부혁신관리평가단(2006~2008) 한국표준협회 전문위원 및 첨삭강사(1998.3~ ) 한국학.../ suv.ac.kr(daum 2012)

 

  윤병섭 : 실무 겸한 강의 유명/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과거의 경영전략으로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라고 덧붙여 말한다. 윤병섭 교수는 학생들이 졸업 후 항상 우리기업의 새로운 경쟁력 배양에 선도적 역할을 하게끔 강의한다. 그가.../ ycnews.co.kr(daum 2012)

 

  윤병섭 : 행사/한국관광호텔경영관리사협회, 4월 월례회의 객실판촉팀 차장과 김정욱 (주)휴먼터치 대표이사에게 신입회원증서를 수여하고, 협회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윤병섭 서울벤처대학교대학원 전임교수에게 산학협력위원 위촉장을 전달했다. 회원동향 순서에서는 한상용 회원이.../ (daum 2012)

 

  윤병섭 : 아시아·유럽미래학회 경북대학병원 새마을금고 \30,000 연회비 2011.04.06 조희국 경북대학병원 새마을금고 \30,000 입회비 2011.04.06 윤병섭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30,000 연회비 2011.04.01 황찬규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20,000.../ eurasia2001.org(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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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철(尹秉喆) : 1946- , 예천 출신, 70년 연세대 졸업, 86년 대우통신(大宇通信) 부장, 90년 동 이사부장(理事部長), 93년 대우자동차(大宇自動車) 이사 해외사업부문 해외관리 담당을 지냈다.(每日年鑑 1997, 每日名鑑 1998,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윤병철 : 대우는 20세기 ‘봉이 김선달’ - 시사저널/ 모른다는 것이다. “대우그룹은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대우자동차 해외 투자 담당 윤병철 이사의 말이다. 대우의 해외 기업 사냥을 주도면밀하게 조사해온 경쟁 업체들 역시 최근에.../ (daum 2012)

 

  윤병철 : 윤병철 전 기업인, 출생 1946년, 경북 예천, 소속 전 대우자동차 이사, 학력 연세대학교, 조인스(2011.12.16)(daum 2015)

 

  윤병철 : 대우그룹 부활/ 2009.03.14/ 대우재단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김선익(전 대우중공업 부사장)·김세중(전 대우자동차 부사장)·윤병철(전 대우자동차 이사)·한용호(전 대우건설 사장) 씨가 ‘대우인.../ blog.naver.com/lym2ym/ 글로벌HR연구소(daum 2015)

 

  윤병철 : 세계경영포럼, "대우 실패했지만 세계경영은 옳았다"/ 2005.06.25/ 명예교수, 김준용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차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또 윤병철 전 대우자동차 우크라이나법인장,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 등의 옛 대우.../ cafe.daum.net/shenyangg... 중국심양(선양..  | 댓글 1(daum 2015)

 

  윤병철 : 업데이트된 회원명부입니다/ 2002.05.02/ 정회원 이원희 한일합섬 이사 남 49, 정회원 윤병철 대우자동차 이사 남 57, 쥬너리 개설자 노준용 동부그룹 전무 남.../ cafe.daum.net/studyten/... 경법 텐(daum 2015)

 

  윤병철 : [경제]김우중 전 회장의 ‘화려한 외출’/ 2009.02.26 | 주간경향 | 미디어다음/ 맡고 있다. 부회장은 김선익(전 대우중공업 부사장)·김세중(전 대우자동차 부사장)·윤병철(전 대우자동차 이사)·한용호(전 대우건설 사장) 씨, 감사는 손...(daum 2015)

 

  윤병철 : 윤병철 (전직 기업인), [출생] 1946년, 경북 예천, [직업] 전직 기업인, [학력] 연세대학교, [소속] 대우자동차, 출처 인물백과(dau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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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상(尹輔商) : 예천 출신, 본관은 예천, 상(祥)의 증손, 선생(善生)의 아들이다. 1487년(성종 18) 3월 16일 모화관 전시(慕華館殿試)에서 무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낭장(郎將)을 지냈다.(成宗實錄, 別洞集)

 

  윤보상 [專門資料] : 李,以兵曹言啓曰, 景福宮衛將尹輔 [한국학자료]/ 李|尹輔商/ 국가지식포털(daum 2010)

 

  윤보상 [專門資料] : 兵批,判書金時默進, 參判申暐病, [한국학자료]/ 金時默|申暐|李命植|柳成模|李壽鳳|金重國|李松老|吳道炯|李世德|閔弘烈|邊得讓|金尙斗|任載大|許溫|洪|金明遇|尹勉運|金天擎|尹輔商|高瑞雲|白師祚|韓泰岳|邊景鎭|宋益中/ 국가지식포털(daum 2010)

 

  윤보상 [專門資料] : 李邦曄爲副摠管,金養浩爲同知,李國賢爲 [한국학자료]/ 李邦曄|金養浩|李國賢|閔永喆|李思贊|尹僖東|趙國鎭|尹復淵|沈東魯|尹輔商|李命|金萬柱|洪若水|李邦曄|徐赫修|任守一|李|尹之彦|李文燮|洪重孝|洪樂純|崔挺大|金聖器|李弘器|李文國/ 국가지식포털(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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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복주(慶北赤十字社, 싱글맘에 支援金 1千萬원 傳達) [記事] : 대한적십자사 경상북도지사(회장 강보영)가 2015년 8월 20일 GS그룹 후원으로 해피 싱글맘 프로젝트 일환으로 싱글맘 진희주(28·문경시) 씨와 윤복주(41·예천군) 씨에게 각각 생활비 500만 원 등 모두 1천만 원의 지원금을 전달했다.(하경미 記者 慶北日報 2015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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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부 : 승정원일기/ 숙종 32년 5월 25일 (임오) 원본430책/탈초본23책 (16/16) 1706년 康熙(淸/聖祖) 45년/ 柳泰明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柳泰明爲瑞山郡守, 以尹扶爲醴泉郡守, 以金斗南爲掌令, 以安斗齡爲?川府使, 以柳星一爲草溪郡守, 以李觀命爲應敎, 以李肇爲司書, 以尹世緯爲林川郡守, 以趙道輔爲玄風縣監, 以鄭?爲持平, 以李箕錫爲金井察訪, 以蔡彭胤爲藍浦縣監, 以李志逵爲昌寧縣監, 以吳遂一爲丹陽郡守, 以李暉爲谷山府使, 以趙備爲遂安郡守, 以洪以度爲喬桐府使, 以鄭?先爲朔寧郡守, 以鄭棟隆爲迎曙察訪, 以李衡佐爲永柔縣令, 以兪崇爲戶曹正郞, 以尹東魯爲固城縣令, 以李培爲禁府都事, 以尹商明爲禁府都事, 以李邦彦爲兵曹正郞, 以李健命爲大司成, 以李德英爲輔德, 以李東卨爲機張縣監, 以崔重泰爲慶州府尹, 以鄭載恒爲楊州牧使, 以沈若虛爲柒谷府使, 以洪禹采爲恩津縣監, 以安時相爲金泉察訪, 以張梡爲戶曹正郞, 以李世澤爲麒麟察訪, 以李鼎華爲典簿. (daum 2014)

 

  윤부 : 승정원일기/ 숙종 32년 6월 12일 (무술) 원본430책/탈초본23책 (2/18) 1706년 康熙(淸/聖祖) 45년/ 尹扶가 하직함/ ○ 下直, 醴泉郡守尹扶。 (daum 2014)

 

  윤부 : 승정원일기/ 숙종 34년 4월 26일 (임신) 원본442책/탈초본23책 (20/27) 1708년 康熙(淸/聖祖) 47년/ 還上의 捧未捧 장계에서 居末을 받은 權? 등의 決杖 등을 청하는 備邊司의 계/ ○ 南至熏, 以備邊司言啓曰, 上年還上捧未捧實數各道狀啓, 今?畢到矣。居末守令砥平縣監權?, 淸州牧使李萬齡, 原州兼任橫城縣監鄭宇柱, 醴泉前郡守尹扶, 祥原郡守朴台東, 定平府使郭柄, 軍餉居末保寧縣監明廷耉, 竹山前府使張城漢[張成漢], 依定式, 令本道拿致營門決杖, 而居中遞歸者, 令禁府擧行, 之次邑守令, 各道狀啓中, 或只擧一邑, 或竝擧數邑, 其所未捧者實數, 多寡亦各不同, 而在前尤甚一邑, 抄出推考矣。今亦依此擧行, 何如? 傳曰, 允。 (daum 2014)

 

  윤부 : 승정원일기/ 숙종 34년 4월 26일 (임신) 원본442책/탈초본23책 (24/27) 1708년 康熙(淸/聖祖) 47년/ 尹扶의 拿來를 청하는 義禁府의 계/ ○ 南至熏, 以義禁府言啓曰, 醴泉前郡守尹扶還上居末, 竹山前府使張成漢軍餉居末, 竝決杖事, 承傳啓下矣。張成漢, 今方待命, 卽爲拿囚, 而尹扶, 時在忠淸道公州地本家云, 依例發遣府羅將, 拿來, 何如? 傳曰, 允。 (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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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사석 : 테이블의 명칭이 들어가는 부분 명칭 윤사석 묘비(尹師晳 墓碑)/ 작성일 20050126/ 소재지 대전광역시 유성구 반석동/ 출처 대전금석문/ 조회 1188/ 찬자 : 趙秉輯/ 서자 : 李元鎬/ 규모 : 전체높이 195cm, 비신 높이 133cm, 비신 폭 44cm, 비신 두께 27.5cm/ 연산군(燕山君) 때에 곧은 말을 꺼리지 않다가 기미를 보고 물러와서 알아주는 이 없어도 뉘우치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만돈암(晩遯庵) 윤선생(尹先生)이다. 선생의 휘는 사석(師晳)이고 파평(坡平)에서 선계가 나왔으니 파평의 윤씨가 고려태사 개국공신(高麗太師 開國功臣) 신달(莘達)에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유명한 신하가 되었고 그 후에 관(瓘)은 문과 장원으로 예종(睿宗)을 도와 공을 세움으로 영평현 개국백(鈴平縣 開國伯)에 책봉되었으며 시호는 문숙(文肅)이고 숭의전(崇義殿)에 배향되었다. 조선에 이르러 곤(坤)은 추 충익대좌명공신(推 忠翊戴佐命功臣)으로 숭정대부 이조판서(崇政大夫 吏曹判書)이며 시호가 소정(昭靖)이니 이가 증조가 되고 조부 희제(希齊)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증좌찬성(贈左贊成)이고 아버지 은(垠)은 음직으로 참의(參議)이니 성품이 청렴 공평하였고 장차 충경공(忠景公) 사로(師路)의 귀함으로 증우의정 영평부원군(贈右議政 鈴平府院君)이 되었다. 어머니는 용구군 부인(龍駒郡夫人) 용인이씨(龍仁李氏)니 판관(判官) 수상(守常)의 따님이다. 선생은 천품이 매우 높았으며 옛것을 믿고 의리를 좋아하며 명예와 절개를 힘쓰고 가다듬었다. 파주에 집을 짓고 경의(敬義)로 현판을 달았으며 좌우(左右)에 책으로 종일토록 단정하게 앉아 경전을 널리 구하였다. 일찍이 과거를 버리고 침잠에 수양하여 조예가 더욱 높아갔다. 성종 조(成宗 朝)에 주부(主簿)와 현감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고 봉사(封事)를 올렸으니 그 대략에 이르되 "나라 일은 날마다 글러지고 인심은 날마다 이탈하니 비록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의 재주를 겸했더라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정유(丁酉)에는 집의(執義)로 불렀으니 서민들의 곤궁한 상황을 지극히 말하고 연산군이 실덕함에 미쳐서는 봉사(封事)를 올려 극언했으나 임금이 들을 생각이 없으므로 이에 상소를 소매에 넣고 들어가서 화패가 있을 것을 역설하다가 모자를 벗어 찢어 버리고 드디어 청주(淸州)의 옥화대(玉華臺)로 내려와 그 집의 이름을 만돈(晩遯)이라 하고 그 위에 정자를 세우고 이름을 만경(萬景)이라 하였으며 소나무와 버들 각각 다섯 그루를 심고 스스로 도연명(陶淵明)의 후인이라 하였다. 후진들을 가르치니 학도가 모여들었다. 그의 학문이 주정(主靜)으로 기초를 삼고 고결(高潔)을 숭상했으며 공명(功名)은 공중의 한쪽 구름처럼 여기었다. 늘 냇물 위에 거닐면서 만물이 빈속에 잠긴 것을 보고 이르기를 "군자가 이치에 밝으면 이와 같이 한점의 티끌도 없어진다"하였다. 또 이르되 "학자는 공부를 익숙히 함에 요체가 있다"하였다. 문인들이 묻기를 선생의 높은 절개가 엄자릉(嚴子陵)과 같습니다. 하고 대답하되 오(惡 : 깜짝놀램)과 어찌 바라리오? 나는 이 세상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니라 하였다. 일찍이 자손들에게 경계해서 과거에 응하지 말라 하였다. 돌아가자 공주 유성 가장동(加藏洞) 건좌(乾坐)에 장사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淑夫人) 충주박씨(忠州朴氏)니 사정 충함(司正 忠 )의 따님이다. 묘는 좌측으로 합장하였다. 3남 3녀를 두었으니 욱( )은 음직으로 수의(修義)이고 전( )은 현감(縣監)이고 적( )은 사과(司果)이며 따님은 윤취은(尹就殷)과 조각(趙珏)과 김석규(金碩珪)이다. 욱의 아들 은좌(殷佐)는 찰방(察訪)이고 은필(殷弼)이며 전의 아들은 세형(世衡)은 첨추(僉樞)이고 세신(世莘)은 별좌(別坐)이며 적의 아들은 세필(世弼)이다. 증손 현손은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 선생의 가문으로 마땅히 높은 벼슬에 오르고 무거운 권력을 잡아야 할텐데 이러함을 하지 않고 높이 멀리 떠나서 숲 속에서 늘그막을 마치어 초연하게 일망타진(一網打盡)의 사회에서 벗어났으니 진실로 기미를 아는 군자가 아니면 누가 능히 하리오? 선생의 시에 이른바 공명의 줄을 헌신짝과 같게 여긴다는 것이 과연 빈 말이 아니었도다. 진실로 호남 영남에서 사당을 세울만한데 감추기를 너무해서 좋은 말과 아름다운 행실이 세상에 모두 전하지 못했으니 아깝도다. 선생의 후손에 섭동(攝東) 충혁(忠爀) 상현(象鉉)이 그 사적을 기술해서 묘문을 청하였기에 나의 고루함으로 어찌 잠긴 사실을 천명할 수 있으리오마는 사양하다 못해 그 행략을 가려 뽑아 서술해서 보내면서 명을 하니 가로되, 교동(喬桐)이 임금다웁지 못하자 사람들 입다물고 말이 없었네. 이때 선생께선 봉황새 울음 같았지. 비늘을 거스려도 고치지 않자 시원히 날아 멀리 떠났도다. 옥화대의 그친 물은 허공을 담구어 이치를 밝히었네.높직한 무덤 있으니 공산의 동쪽이로다. 나는 그 비석에 명문을 새겨 무궁토록 보이리라. 가장동으로부터 자좌(子坐)에 옮기었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성균관 대사성(成均館 大司成) 규장각원임직각(奎章閣原任直閣) 풍양 조병집(豊壤 趙秉輯)은 짓다. 후학 진성 이원호(眞城 李元鎬)는 쓰다. 정사(丁巳) 8월 6일 을사(乙巳) 10월 일 세우다./ <李性雨>(daum 2010)

 

  윤사석(尹師晳) : 본관(本貫) 파평(坡平), 호(號) 돈암(遯菴)/ 이력(履歷) 윤사석(尹師晳) :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돈암(遯菴). 성종 때 사헌부집의를 지냈으나 연산군 때 거듭되는 사화로 현인군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본 그는 사모(紗帽)와 관복을 찢어버리고 가족들을 거느리고 청주의 옥화대(玉華臺)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동문선》에 그의 시 한 수가 전하고 있으며, 이이(李珥)의 행장에 “그가 평소에 저술한 것들이 은둔생활을 하는 중에 모두 불살라버려 후세에 전하는 것이 없으니 애석한 일”이라고 하였다. 용궁(龍宮)의 죽락사(竹樂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嶺南人物考./ 〈文守弘〉(daum 2010)

 

  윤사석 :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윤사석(尹師晳) #경상도(慶尙道)  용궁(龍宮)/ *죽고향사(竹皐鄕社)  효종병신건(孝宗丙申建) (1656) 지보면 신풍리/ 제향. 윤사석(호둔암 본파평). 윤섭(호죽호 사평 본파평)./ 祭享. 尹師晳(號遯菴 本坡平). 尹涉(號竹湖 司評 本坡平).(daum 2010)

 

  윤사석 : 성명(姓名),/ 作成 張炳昌/ ...著 윤섭(尹涉) #경상도(慶尙道) 용궁(龍宮) *죽고향사(竹皐鄕社) 효종병신건(孝宗丙申建) (1656) 지보면 신풍리 제향. 윤사석(호둔암 본파평). 윤섭(호죽호 사평 본파평). 祭享. 尹師晳(號遯菴 本坡平). 尹涉(號竹湖 司評 本坡平).../  (daum 2010)

 

  윤사석 : 파평(坡平) 윤씨의 인물들/ ...) 윤봉오(尹鳳五) 윤봉조(尹鳳朝) 윤비경(尹飛卿) 윤사균(尹士$균01) 윤사로(尹師路) 윤사분(尹士昐) 윤사석(尹師晳) 윤사흔(尹士昕) 윤삼산(尹三山) 윤상계(尹商季) 윤상도(尹尙度) 윤상로(尹湯老) 윤상연(尹相衍) 윤상은(尹相殷.../  (daum 2010)

 

  윤사석 : 윤사석(尹師晳 : 執義公)/ 2009.10.24/ 윤사석(尹師晳 : 執義公) 생몰년 미상. 昭靖公. 漢城公派. 18세. 號는 만둔암(晩遯菴). 戶曹參議 은(垠)의 아드님이시다. 성종 때 사헌부집의를 지냈으나 연산군 때 거듭되는 사화로 현인군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본 그는 사모(紗帽.../ //cafe.daum.net/ppyd/ 파평윤씨<대종회>(daum 2010)

 

  윤사석 : 坡平尹氏 人物事典 總 目錄(가나다순) 사 - 아/ 2009.11.27/ ...: 忠景公) 昭靖公. 漢城公派. 18세. 05 ▶ 윤사분(尹士昐 : 夷靖公) 版圖公. 貞靖公派. 16세. 06 ▶ 윤사석(尹師晳 : 執義公) 昭靖公. 漢城公派. 18세. 07 ▶ 윤사성(尹思誠 : 主簿公) 太尉公. 司贍公派. 22세. 08 ▶ 윤사완(尹師完 :.../ //cafe.daum.net/ppyd/ 파평윤씨<대종회>(daum 2010)

 

  윤사석 : 윤사석(尹師晳)/ 2004.11.10/ 윤사석(尹師晳)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선비. 호는 만돈암(晩遯菴). 성종 때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지냈으나 연산군(燕山君) 때 거듭되는 사화(士禍)로 현인군 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본 그는 사모(紗帽)와 관복을 찢어버리고.../ //cafe.daum.net/yoonmoon/ 윤문사랑(daum 2010)

 

  윤사석 : 23세 죽호공(휘 涉)/ 2010.03.22/ ...著 윤섭(尹涉) #경상도(慶尙道) 용궁(龍宮) *죽고향사(竹皐鄕社) 효종 병신건(孝宗丙申建) (1656) 지보면 신풍리 제향. 윤사석(호둔암 본파평). 윤섭(호죽호 사평 본파평). 祭享. 尹師晳(號遯菴 本坡平). 尹涉(號竹湖 司評 本坡平)./ //cafe.daum.net/nakjae/ 낙재(樂齋) 종중(daum 2010)

 

  윤사석 :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大隱里) 소나무와 남근석  | 나의기록/ 천부인권/ 2009.09.15 20:57/ //blog.daum.net/ ...924번 도로를 따라 회룡포를 향하여 가다가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멋진 소나무가 있어 잠시 차에서 내렸다. 안내표지 석에는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765-8번지, 소나무 3본이 2006년 6월 22일 날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소나무 중앙에는 남근석이 서있어 이 마을의 수호신임을 나타내고 있다. 왼쪽으로 꼰 새끼줄이 걸려있어 아직도 당산제나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를 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남근석과 소나무군> : 대은리(大隱里)란 지명은 용궁면 안내에 따르면 “파평 윤씨 집성촌(坡坪 尹氏 集成村)으로 윤사석(尹師晳)이 조선 연산 폭정(朝鮮 燕山 暴政)을 피하여 청주로 옮겨 갔다가 그 아들 윤(尹) 욱이 후환이 두려워 조선(朝鮮) 12대 인종(仁宗)때 용궁 무이(龍宮 武夷)에 이거하였으나 은신처가 마땅하지 않다고 하여 그의 6대손 윤 인(尹 仁)이 이곳으로 다시 옮겨와 크게 숨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대은(大隱)이라 하였다.” 한다.(daum 2010)

 

  윤사석 : 훼철되었다가 복원되거나 신설된 서원(忠淸道地域)/ 2009.01.24/ ...慶州 全義 慶州 옥화서원  (玉華書院) 충북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 1718년(숙종 44) 만돈암 윤사석(晩遯菴 尹師晳 미상 ) 서계 이득윤(西溪 李得胤 1553-1630) 옥계 박곤원(玉溪 朴坤元 미상     ) 坡平.../ //blog.daum.net/tembeng/ 昭靖公 九房派 長房 忠景公派(坡平)(daum 2010)

 

  윤사석 : 나도 파평윤씨 - 펌3/ 2007.10.01/ ...가선(嘉善)) 윤상탕(尹相湯)(의관(議官)) 윤사로(尹師路)(영평부원군(鈴平府院君)ㆍ시(諡):문경(文景)) 윤사석(尹師晳)(집의(執義)) 윤사유(尹師有)(군수(郡守)) 윤사화(尹師華)(참의(參議)) 윤사하(尹師夏)(통례(通例)) 윤건(尹ꠗ.../ //blog.daum.net/yunhoona/ 나훈아가 돌아왔다(daum 2010)

 

  윤사석 : 소정공 한성공 참의공(9방파중 2방)/ 2007.03.30/ 윤사석 묘비(尹師晳 墓碑) 183 ? 대전광역시 유성구 반석동 대전금석문 윤사석 묘비 전경 윤사석 묘비 탁영(1) 윤사석 묘비 탁영(2) 찬 자 : 趙秉輯 서 자 : 李元鎬 규 모 : 전체높이 195cm, 비신 높이 133cm, 비신 폭 44cm, 비신.../ //blog.naver.com/yoonsojang/ 영재는 만능이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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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사현(尹士鉉) : 1939-?, 지보면 신풍리 출신, 본관은 파평, 하삼(夏三)의 장남, 신풍초등, 부산 고려고등성경학교, 고신대 전수과 졸업, 청도 반생교회 경북노회(고신) 목사 안수를 거쳐 구미 대광교회에서 시무하다가 생을 마치었다.(尹哲在)

 

  윤사현 : 고신총회 제25회부터 56회까지의 주요 회의록 | 고신제25회-57회총회 촬요/ 2010.10.19 | Daum 블로그/ 1) 목사총대 김용백 권오정 남경원 옥치정 김응수 박찬규 최재균... 이충열 김영조 정수석 안영희 15. 강도사고시 합격자 (1) 군목 강도사 정영택 (2) 일반 강도사 김양삼 김성배 장명호 이창우 박종윤 윤사현 김해연 .../ blog.daum.net/joobara/1149  여주동행(與主同行,..(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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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 : 조선왕조실록/ 문종 2권, 즉위년(1450 경오 / 명 경태(景泰) 1년) 7월 8일(경술) 8번째 기사/ 성균 생원 유상해 등이 윤상의 재등용을 청하는 상서를 올렸으나 허락하지 아니하다/ 성균 생원(成均生員) 유상해(兪尙諧) 등이 상서하기를, “신 등이 엎드려 금 7월 초6일 정비(政批)504) 를 보니,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윤상(尹祥)을 파직하였는데, 신 등은 그 연유를 알지 못하여 분하고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상언(上言)합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인재는 국가의 이기(利器)요, 사유(師儒)는 사람을 만드는 모범(模範)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나라가 성할 때에는 사유(師儒)를 중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생각건대 우리 조정이 개국한 이래 열성(列聖)이 서로 이어가면서 사부(師傅)를 존중하고, 교화를 숭상하고, 어진이를 장려하고, 힘써 참된 유학자를 얻어 사부의 반(班)에 앉게 하여 인재 양성의 효과와 풍교(風敎)의 아름다움이 당우(唐虞) 505) ·삼대(三代)506) 에 비할 만큼 융성합니다. 윤상(尹祥)은 성품이 온량(溫良)하고, 조행(操行)이 청렴하여 결백하고, 학문이 정미(精微)하고, 문사(文詞)가 우아하고 건실하며, 손은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재주 있는 자가 있으면 유도(誘導) 권장하여 더욱 진보하게 하고, 재주 없는 자는 반복하여 가르치고 깨우쳐서 통달시키고 맙니다. 무릇 조정에 포열(布列)한 문학하는 선비로서 누가 윤상의 지도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 사람의 국가에 유익한 것이 참으로 작지 않습니다. 또 비록 연로(年老)하였으나 기력이 강건하고, 총명이 감하지 아니하였으며, 언행 동정(動靜)이 모두 사범(師範)이 될 만합니다. 지난 날 세종(世宗) 때에 늙었다고 사직하는 것을 윤허하지 아니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어짐을 분명히 알고 영구히 사표(師表)로 삼자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 등이 어찌 오늘에 도리어 그 직을 파면할 것을 생각하였겠습니까? 쓰고 버리는 것은 진실로 이 사람에게는 관계가 없으나, 국가의 어진이를 임용하는 뜻에 어찌 결함이 있지 않겠습니까? 신 등은 실망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특별히 산관(散官)에 두라는 명령을 거두시고, 다시 함장(函丈)507) 사이에 돌아오게 하시면 신 등의 다행이요, 국가의 다행입니다.” 하였다. 정부(政府)에 내리어 의논하게 하니, 정부에서 아뢰기를, “윤상(尹祥)의 나이 70이 넘었으니, 관례상 마땅히 물러가 쉬어야 합니다. 그대로 파(罷)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윤상(尹祥)은 예천군(醴泉郡)의 아전으로 처음에 열심히 글을 읽었으며, 비록 이역(吏役)에 분주하여도 조금도 학업을 폐하지 않았으며, 학문이 정미하고, 이학(理學)을 잘하였는데, 더욱 주역(周易)에 정(精)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경학(經學)으로 소문이 나서 오래 성균관(成均館)에 임명되어 여러 생도들을 가르쳤는데 조금도 권태한 빛이 없어 성취한 사람이 많았다. 일찍이 나이 70을 지났으므로 치사(致仕)하였으나, 세종(世宗)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나이 늙었으므로 면직하였다. 나이 78세였으나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모두 그의 가는 것을 아깝게 여겼다. 예천(醴泉)에 퇴거하여 제자를 교수하니, 남방의 배우는 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학업이 정하기는 하나 넓지 못하고, 성품이 또 편벽되고 강하여 반드시 자기 소견만 옳다고 하니 대신들이 좋아하지 않았다./【태백산사고본】 1책 2권 28장 A면 /【영인본】 6책 252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註 504]정비(政批) : 임금이 내리던 비답(批答). ☞ / [註 505] 당우(唐虞) : 요(堯)임금·순(舜)임금 시대. ☞ / [註 506]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시대. ☞ / [註 507]함장(函丈) : 스승. ☞ (daum 2014)

 

  윤상 : 조선왕조실록/ 단종 3권, 즉위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9월 13일(임인) 4번째 기사/ 유한과 윤상에게 선온을 하사하다/ 전(前) 부윤(府尹) 유한(柳漢)·전 제학(提學) 윤상(尹祥)이 모두 늙어서 시골로 돌아가기를 청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서울에〉 와서 회장(會葬)569) 하니, 그들이 돌아갈 때에 그 집에 선온(宣?)을 하사하였다. 유한은 무인(武人)으로 태종(太宗)의 지우(知遇)를 얻어, 본 벼슬에 제배(除拜)되었다. 나이가 80이 넘었으나 기력이 아직 건강하여 말을 타고 험한 길을 달려도 조금도 쇠(衰)하지 아니하였다. 윤상(尹祥)은 본래 예천(醴泉) 고을의 아전이었는데,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이 착하며 더욱 역학(易學)에 깊어서 오랫동안 사석(師席)의 장(長)이 되었으니, 당시에 이학(理學)570) 의 종(宗)으로 추앙(推仰)되었다. 다만 성품이 편벽(偏僻)되고 강(剛)하여 동렬(同列)과 더불어 동이(同異)를 강론할 때에 조금이라도 자기와 다름이 있으면 문득 서로 꾸짖고 비방하니, 식자(識者)들이 이를 결점으로 여겼다./【태백산사고본】 1책 3권 9장 A면 /【영인본】 6책 537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 / [註 569]회장(會葬) : 임금이나 2품 이상의 문무관(文武官)·종친(宗親)들의 장례(葬禮)에 각사(各司)의 관원과 친척들이 참여하던 일. ☞ / [註 570]이학(理學) : 성리학. ☞ (daum 2014)

 

  윤상 : 조선왕조실록/ 단종 12권, 2년(1454 갑술 / 명 경태(景泰) 5년) 8월 28일(정미) 2번째 기사/ 전 예문 제학 윤상에게 옷을 내려 주다/ 전 예문 제학(前藝文提學) 윤상(尹祥)에게 옷 한 벌을 내려 주었다. 윤상은 치사(致仕)2690) 하여 예천(醴泉)에 사는데, 이때에 이르러 부묘(?廟)를 하례하기 위하여 내현(來見)하였다. 윤상은 일찍이 노산군(魯山君)이 입학(入學)하였을 때에 박사(博士)였기 때문에 이 명령이 있은 것이었다. 윤상은 학문(學問)이 정박(精博)한데, 더욱이 《역경(易經)》에 뛰어나고 시문(詩文)을 잘하며, 오랫동안 성균관(成均館)에 벼슬하여 학자(學者)들이 많이 스승으로 받들었다. 윤상은 하나하나 자상(仔詳)하게 사람들을 가르쳐 주며, 종일(終日)토록 정좌(正坐)하고 있었으나 일찍이 피로한 빛이 없었다. 당시에 김반(金泮)과 김말(金末)이 모두 숙유(宿儒)2691) 로서 사성(司成)2692) 을 겸(兼)하여 각기 소견(所見)을 고집하며 쟁론(爭論)하기를 서로 양보하지 않았으나, 학생(學生)들은 많이 윤상의 설(說)을 받들었다. 예천군(醴泉郡)에 살면서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니, 사방의 학자들이 많이 그를 따랐다./【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9장 A면 /【영인본】 6책 706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 / *사상(思想) / [註 2690]치사(致仕) : 나이가 많아서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남. ☞ / [註 2691]숙유(宿儒) : 학식과 덕망이 높은 선비. ☞ / [註 2692]사성(司成) : 성균관 종3품 벼슬. ☞ (daum 2014)

 

  윤상 : 조선왕조실록/ 단종 13권, 3년(1455 을해 / 명 경태(景泰) 6년) 3월 9일(갑인) 3번째 기사/ 전 예문 제학 윤상의 졸기/ 전 예문 제학(藝文提學) 윤상(尹祥)이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에서 졸(卒)하니, 예관(禮官)3137) 을 보내어 조문(弔問)하고 치제(致祭)하였다./【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38장 A면 /【영인본】 7책 19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註 3137]예관(禮官) : 나라에서 의식을 행할 때 예를 집행하는 관원. ☞ (daum 2014)

 

  윤상 : 조선왕조실록/ 文宗 2卷, 卽位年(1450 庚午 / 명 경태(景泰) 1年) 7月 8日(庚戌) 8번째 기사/ 성균 생원 유상해 등이 윤상의 재등용을 청하는 상서를 올렸으나 허락하지 아니하다/ ○成均生員兪尙諧等上書曰 : 臣等伏覩今七月初六日, 批罷藝文館提學尹祥職, 臣等莫知所由, 不勝憤抑, 謹上言。 臣等竊惟人材, 國家之利器; 師儒, 作人之模範。 是故古昔盛時, 莫不以師儒爲重。 恭惟我朝開國以來, 列聖相承, 尊師重傅, 崇化勵賢, 務得眞儒之用, ?居皐比之班, 作成之?, 風敎之美, 比於唐虞三代矣。 臣尹祥, 性稟溫良, 操行廉潔, 學問精微, 文詞雅健。 手不停披, 誨人不倦, 其有達者, 則誘掖奬勸, 使之益進, 有所未達者, 則反覆誨諭, 達而後已。 凡文學之士, 布列庶位者, 孰非面承提?乎? 斯人之有益於國家, 誠不細矣。 且行年雖老, 氣力剛健, 聰明不減, 言行動靜, 皆可師範。 ?在世宗之時, 不允告老之請, 是則灼知其賢, 而永爲師表也。 臣等豈意今日, 反罷其職乎? 用舍固無與於斯人, 於國家任賢之意, 寧不有虧乎? 臣等缺望。 伏惟殿下, 特收置散之命, 復還函丈之間, 則臣等幸甚, 國家幸甚。/ 下政府議之, 政府啓: “祥年過七十矣, 例當退休。 宜仍罷。” 從之。 祥醴泉郡吏, 初奮發讀書, 雖奔走吏役, 未嘗廢業。 學問精微, 長於理學, 尤精於易。 及登第, 以經學聞, 久任成均, 敎誨諸生, 略無倦色, 多所成就。 嘗以年過七十致仕, 世宗不許。 至是, 以年老罷。 年七十八, 氣力不衰, 時人咸惜其去。 退居醴泉, 敎授弟子, 南方學者?集。 然其學精而不博, 性又?剛, 必以己見爲是, 頗爲大臣所不喜。/【태백산사고본】 1책 2권 28장 A면 /【영인본】 6책 252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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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남부초등학교 권재은 교사, 21일 다문화교육 교육부 최우수상 수상...축하합니다.

 

 

 

  예천남부초등학교(醴泉南部初 권재은 敎師 等 多文化敎育 優秀事例 選定 : 21日 敎育部 施賞式…多文化 豫備·重點學校 成果도 紹介) [記事] : 교육부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중앙다문화교육센터와 함께 2015년 12월 21일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제7회 다문화 교육 우수사례 공모전 시상식'을 연다고 20일 밝혔다. 예천남부초등학교 권재은 교사는 큰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소통하며 생각을 키워나가는 토론법인 '하브루타 토론'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교육방식을 소개해 다문화교육 부문 초등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인천 한누리학교의 양성욱 교사는 중도입국 학생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새로 다닐 학교 학생과 함께 하는 멘토링, 체험학습 등을 지원한 사례로 다문화교육 중등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학교에는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부모의 재혼, 취업 등으로 부모를 따라 입국한 국제결혼 가정 자녀와 이주노동자 자녀 등 중도입국 학생들이 6개월∼1년간 한국생활 적응을 위해 다닌다. 이들을 비롯해 다문화교육과 다문화교육 수기, 다문화교육 지원 부문에서 모두 42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교육부는 우수 사례들을 모은 사례집을 발간해 교육청과 학교에 배포하고, 정책 연수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올 한해 다문화교육 지원 사업의 성과와 사례를 공유하는 다문화교육 성과 보고회도 열렸다. 보고회에서는 다문화유아에 대한 언어와 기초학습 강화를 위해 30개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시범 운영한 다문화 유치원의 성과가 소개됐다. 올해 경기, 울산, 충남, 강원, 제주에서 처음 시작된 지역 다문화교육지원센터의 운영사례도 발표됐다. 중도입국 학생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집중적으로 교육해 학교생활 적응을 돕는 다문화 예비학교는 100곳이 운영됐다. 모든 학생에게 다문화 이해 교육을 하는 다문화 중점학교는 150개 교에서 운영됐다. 교육부는 "다문화 중점학교 운영 결과 재학생들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 수준이 사전 조사 때의 78.75점에서 81.34점으로 상승해, 교육 프로그램이 인식 개선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황희경 記者 聯合뉴스 2015/12/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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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생활체육회 이윤신 지도자, 17일 국민생활체육회장상 수상...축하합니다.

 

  이윤신(慶北生活體育會, 生活體育振興 有功者 施賞) [記事] : 경북생활체육회(회장 김성환)는 김해동 수석부회장(봉화군생활체육회장)과 김경준 영주시생활체육회장이 2015년 12월 17일 오후 2시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5 국민생활체육 진흥 유공자 시상식’에서 생활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또 국민생활체육 경북볼링연합회는 프리데이클럽팀상을 받았고, 안동시생활체육회 이재동 지도자, 경산시생활체육회 김솔잎 지도자, 고령군생활체육회 최소영 지도자, 예천군생활체육회 이윤신 지도자는 국민생활체육회장상을 수상을 했다.(大邱新聞 2015-12-20, 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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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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