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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225:윤상(4)(祝윤혜정,이국문,신라식물원)
작성자장병창 @ 2015.12.25 06:26:47

  예천의 자랑(4225) : 윤상(4)(附 예천읍 출신 윤혜정, 서울대 합격...축하합니다/감천면 이국문, 전국서예대전에서 금상...축하합니다/신라식물원, 농진청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 획득...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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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醴泉 / 題詠  / 十里桑麻雨露深 尹祥詩千尋山郭雲烟老云云 門前花柳隔平川 李居仁詩云云簾外松垂翠接天(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榮川 / 名宦  / 高麗 鄭習仁 恭愍朝以典校令出知州將視事吏以故事請詣消災圖焚香習仁曰人臣不蹈非?災何由生若其?妄順受而已命吏撤去 本朝河崙 知州 新增尹祥 永樂甲辰知郡有治行文純公 李滉稱爲近代師儒之最 金守溫 景泰甲戌知郡 / <하권0403-3>/ 有治績 李賢輔 在任一年節補積年逋?取券焚之民稱之 安? 嘉靖乙卯到任治六年創建伊山書院定立學規獎育人材 郭越 隆慶丙寅到任治四年吏畏民懷有善政碑 趙?韓 萬曆乙卯到任治三年爲政嚴明擒捕?賊李景起近邑賴以安息(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仁同 / 學校  / 鄕校 在縣北二里有朴瑞生記○尹祥詩數?墻頭百尺樓光風霽月幾春秋玉山自此多才子太守佳名水共流新增壬辰亂灰燼之後萬曆辛丑移建于安泰洞 玉山之北崇禎甲戌以地形顚側移建于玉山下西向之平壤甲戌秋始事乙亥秋七月移安(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眞寶 / 人物  / 本朝趙庸 官至禮儀判書謚文貞博學能文而尤精於性理之學嘗謫居醴泉敎授不倦多知名士趙末生 尹祥 裴桓 裴?皆出其門 舊增李? 登第官至戶曹參判有詩...(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軍威 / 題詠  / 熙熙尙有古淳風 金克己詩十里?麻一逕通云云?鋤只自鳩民事綺繡何曾?女功花霰背春紅遍地麥波迎夏翠連空境閑不似人間世疑是華胥落夢中 山轉溪回作一城 尹祥 孝靈縣云云數家粧點盡圖明吏民莫訝頻床憩祗愛淸幽適我情 新增地僻庭閒鳥啄苔 成悌元題本縣衙軒詩碧山無數擁?回云云官閣還如僧寺靜倚?終日斷人來 須將小學爲門戶 金安國講小學示本縣學者詩古道消亡敎不明士迷趨向似冥行云云修進工夫更著誠(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도동연원록 부ㆍ도암집/ 道東淵源錄卷之四 / 尹祥紀 / 尹祥 / 與金鉤 金末 金泮一時同爲冑監之長學問尤精諸/ <4권0222>/ 生爭先?衣, 絲分樓柝, 耳提面授, 終日達夜?不知倦, 今之達官聞人, 皆公弟子也, 國朝以來, 爲師範之最, 官至提學。 出秋江?話。(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도동연원록 부ㆍ도암집 / 道東淵源錄卷之四 / 金時習紀 / 金時習 / 尹祥 / 四遊錄 / 字悅卿號梅月堂, 又號淸寒子, 生於成均之墨寺洞, 世宗朝聞聲, 召致承政院, 命於便殿親見之, 方在?童, 命作詩撫摩褒之曰奇童, 命酒饌以食之, 文宗朝又召而見之, 及成童, 嘗受語孟 詩 書 春秋於金泮之門, 及長, 又受易 禮諸史于之門, 及 世祖朝, 入山爲僧, 遂絶於人世, 遍踏於八道山川, 重重遊於四道, 晩乃作室於慶州地, 以終其身, 有梅月堂集, 有 出稗官雜紀  / <4권0223>/ 眞儒 / 不遇逃世 / 愚嘗?魚叔權 稗官雜記書曰, 金時習遁入釋學, 放跡山川, 以逃世自處, 其意有在, 今按梅月 四遊錄, 其諸作典實素雅, 追詠懷古, 感慨悲歌, 決非物外遺世虛懷放情者之作, 其不爲委身事佛, 諂?異端明矣, 又觀其遺像, 則嚴雅穩粹, 尤非虛妄之態, 公當初受學處, 皆根實有據矣, 者氣像, 眞儒者風詠月吟之趣, 噫, 終老山林, 學者素志則得矣, 惜乎, 其托跡獨善, 以無補於世也, 但有所疑者, 凡避世避人, 豈無他道, 而其所以變形何意也, 其時所過, 蓋有異乎泰伯 虞仲之時也, 聞梅月斷?而存其鬚?云。(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동사략 / 紀年東史約卷之十一 朝鮮茅亭李源益 編 / 本朝紀 / 十九年 / , 壬寅 永樂十年 二四年 自此以下當爲壬寅 / , 此◉春秋◉史記年◉之例周年本國紀年上◉書列國以本國紀年下雙書爲◉當◉之干支書於書頭 / 建永寧殿,  / ...冊元子珦爲世子入學, 時八歲世子入學始此  / 世子以儒?酌獻, 遂行束脩禮于?士, 大司成 尹祥 / <11권01_0461-2>/ 升堂講小學, ...(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동사략 / 紀年東史約卷之十一 朝鮮茅亭李源益 編 / 本朝紀 / 三年 / ...以尹祥爲大司成,  / 祥, 生有異質, 聰悟逈出, 及爲是任諸生爭先/ <11권01_0473-1>/ ?衣耳, 提面授??不倦, 一時達官, 聞人皆其弟子, 國朝以來, 爲師範之最以大司成爲, 元子入學博士處冑監前後二十餘年, 時學官得人如金鉤, 金洋, 金末三人皆博通經史, 邃性理之學, 同時敎授, 誨人不倦, 世稱三金, ○文宗朝, 祥致仕還鄕, 令月致食物, 退老宰相致食物自此始, 居別洞田野, 敎授子弟, 憲府啓請復致國學, 以年老寢其議, 祥歿後, 李滉謂祥?佛建祠, 未妥, 只立書院, ...(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동사략 / 紀年東史約卷之十一 朝鮮茅亭李源益 編 / 本朝紀 / 三年 / 明, 遣使左監丞 金宥 右監丞 金興賜吊祭, 又賜誥命, 冊封王, ○罷橫城講武場, 許民耕稼, ○以金泮爲大司成,  / 成均生員郭琦等疏言, 泮爲師儒二十年, 誨人不倦, 今雖年老, 請命還處?丈用慰士望, 從之, 依尹祥例, 賜米二十斛, 時泮, 貧不能自資, 門人申叔舟 李石亨等常饋以米酒,...(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동사략 / 紀年東史約卷之十五 朝鮮茅亭李源益 編 / 本朝紀 / 明穆宗隆慶元年 / ...明遣使翰林院檢討官 許國, 兵科給事中 魏時亮, 頒登極詔, 遠接使朴忠元  / 明使行到嘉平館, 聞有國喪疑懼, 曰今國君無嗣而薨其無事未可必, 吾輩還越江待國事有屬, 來頒詔命似宜, 副使, 曰國必亂矣, 吾輩棄君命於草, / <15권01_0666-2>/ 萊不若死, 頗有自處之意, 問伴使, 曰相臣當國者, 何如人也, 以文章爲之耶, 以德望爲之耶, 伴使以文章德望俱備, 一國素倚重爲答, 兩使喜, 曰然則吾輩之行無患耶, 然猶??先遣舍人 兪深, 疾馳入都, 問喪禮實欲偵探事故也, 又題奏皇京始發行, 在塗遲遲, 待探回許則詳悉從容, 魏則嚴正擧有法, 及入京宣詔, 故事王北面使臣西面宣詔至是時亮爭之南面宣詔 上接待無違度, 兩使相與旋目賞歎, 曰這等竗年動中禮節, 得此賢君東國之福也, 翌曰兩使以素服行吊禮, 又明日謁文廟, 仍詣明倫堂, 儒生二千餘人拜于庭, 兩使起立答揖甚肅, 謂館官, 曰益見東國禮儀之盛也, 兩使有淸操歸?蕭然國人愛慕久而不置, ○許國待李浚慶甚尊敬, 當從容談論禮制風俗請錄示浚慶卽座上操筆書之, 凡三十餘, 則許國見之益加歎服, 又問能知孔孟心學, 箕子疇數者, 李滉錄示高麗 禹倬, 鄭夢周, 本朝尹祥, 金宏弼, 鄭汝昌, 趙光祖, 李彦迪, 徐敬德等, 明人小說云許國之行我國王問柳州薑芽帖在處國不能對歸問館中諸人亦不知國病其不能對至於解官歸鄕時我上春秋甚少大行在前何暇語及書帖殊訝...(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一 / 癸巳萬曆二十一年 / 五月  / 十七日 庚午  / 尹祥亨邀余余與汝沃 李挺時 李弘濟馳往/ <1권0023>/ 別之(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七 / 乙巳萬曆三十三年宣祖三十八年上 / 二月  / 十九日 癸亥  / 生進放榜○崔天健拜松留 宋錫慶拜獻納 李敬傳拜牛峯 朴孝生拜司藝 金玄成拜奉僉 韓懷拜工正 車?拜瑞副 沈俔拜禁都 吳定邦拜南虞侯 / <035_0645>/ 朴震元拜校理 尹祥拜軍資參奉 黃佑謹拜戶參○趙德年 李涵來見(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태조실록 4권/ 태조 2년(1393 계유 / 명 홍무(洪武) 26년) 7월 27일(경오) 1번째 기사/ 창업에 공이 있는 우인열․김사행․윤상․권중화 등에게 포상토록 교지를 내리다/ 교지를 내리었다. ꡒ공(功)을 기록하고 상(賞)을 주는 것은 진실로 영전(令典)이 있으니, 하물며 창업(創業)의 초기에 있어서는 마땅히 그 공을 거론(擧論)해야 될 것이다.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우인열(禹仁烈)은 타고난 기품(氣品)이 온화(溫和)하고, 앞을 내다보는 밝은 지혜가 있었는데, 내가 출장입상(出將入相)하던 때부터 구지(舊知)로서 과궁(寡躬)에게 뜻을 두고 방위(防衛)한 공이 진실로 있었으며,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김사행(金師幸)은 내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궐내(闕內)의 제도가 대강 마련되고 갖추어지지 못했는데, 전조(前朝) 성시(成時)의 궁중 의식을 일일이 들어 지나친 것은 줄이고 모자란 것은 보태어서 내조(內助)의 다스림을 장식했으니, 공을 기록할 만하며, 동판내시부사(同判內侍府事) 윤상(尹祥)․이광(李匡)과 지내시부사(知內侍府事) 안거(安居) 등은 비록 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보조(補助)의 이익은 많이 있었으니 또한 공을 기록할 만하며, 삼사 좌복야(三司左僕射) 권중화(權仲和)․전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 성석린(成石璘) 등 8인은 신씨(辛氏) 446) 가 왕위를 도적질하여 세상이 극도로 어지러워 다스려지기를 생각하던 때부터 세상의 안위(安危)를 모두 나에게 뜻을 두었으니, 그들을 포상(褒賞)하는 은전(恩典)을 유사(有司)는 거행하라.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책 47면/ 【분류】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2월 3일(계축) 1번째 기사/ 한확․권제․오승․이명덕․박안신․권전․정인지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혜(?)로 서산군(瑞山君)을 삼고, 한확(韓確)으로 중추원 사를, 권제(權?)로 지중추원사를, 오승(吳陞)으로 예문 대제학을, 이명덕(李明德)으로 예문 제학을, 박안신(朴安臣)으로 이조 참판을, 권전(權專)으로 공조 참판을, 정인지로 형조 참판을, 원창명(元昌命)으로 동지돈녕부사를, 조치(曺致)․유사눌(柳思訥)․허해(許?)로 중추원 부사를, 조서강(趙瑞康)으로 형조 참의를, 양후(楊厚)․윤상(尹祥)으로 첨지중추원사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4책 17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세종실록 94권/ 세종 23년(1441 신유 / 명 정통(正統) 6년) 11월 7일(경자) 3번째 기사/ 행 성균 사성 윤상이 사직하기를 청하나 윤허하지 않다/ 행 성균 사성(行成均司成) 윤상(尹祥)이 나이가 70에 가까웠다고 하여 사직하기를 청하매, 도승지 조서강(趙瑞康)이 아뢰기를, ꡒ이 사람은 나이가 비록 늙었사오나 학술(學術)이 정명(精明)하고, 또 덕행(德行)이 있사와 사표(師表)가 되옵기에 적합한데다가 수업(受業)하는 제생(諸生)들도 또한 많사온데, 이제 만약 윤허하시면 여러 생도들이 실망할까 심히 염려되옵니다.ꡓ하니, 임금이 그렇게 여겨, 윤상에게 벼슬에 나아가기를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4책 36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세종실록 97권/ 세종 24년(1442 임술 / 명 정통(正統) 7년) 7월 3일(신유) 1번째 기사/ 이계린․민신․노귀상․금유․윤상․이익박․배환․이사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어(李?)로 한남군(漢南君)을, 이침(李琛)으로 밀성군(密城君), 이구(李?)로 원윤(元尹), 이영(李瓔)으로 부정윤(副正尹)을 삼고, 이계린(李季?)으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민신(閔伸)으로 형조 참판, 노귀상(盧龜祥)으로 공조 참판, 금유(琴柔)로 공조 참의를, 윤상(尹祥)으로 첨지중추원사 겸 성균 사성(僉知中樞院事兼成均司成)을, 이익박(李益朴)으로 충청도 관찰사를, 배환(裵桓)으로 전라도 관찰사를, 이사임(李思任)으로 충청도 병마 절제사를 임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4책 41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세종실록 106권/ 세종 26년(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년) 12월 23일(무진) 1번째 기사/ 안숭선․이선․이계린․윤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안숭선(安崇善)으로 지중추원사를, 이선(李宣)으로 지돈녕부사를, 이계린(李季?)으로 동지돈녕부사를, 윤상(尹祥)으로 예문관 제학을, 강석덕(姜碩德)으로 호조 참판을, 안지(安止)로 공조 참판을 유맹문(柳孟聞)으로 동지중추원사를, 성봉조(成奉祖)로 호조 참의를, 이순지(李純之)로 동부승지를, 윤찬(尹敞)과 김하(金何)로 아울러 첨지중추원사를, 민건(閔騫)으로 사헌부 장령을, 이계선(李繼善)으로 사헌부 지평을 삼았다. 김하는 중국말 통역을 잘해서 임금이 신임하여, 중국에 사신 보낼 일이 있으면 반드시 김하를 명하였는데, 거의 20여 번에 대개 다 뜻에 맞게 하므로 은총과 예우(禮遇)가 매우 두터웠고, 상준 것이 비할 데가 없었다. 또 이순지는 천문(天文)에 정통하여 간의(簡儀)와 규표(圭表)를 모두 맡아보게 하였는데, 임금의 뜻에 잘 맞으므로 은총과 대우가 특히 융숭하여 빨리 3품에 올리고, 이 때에 이르러 이 벼슬에 발탁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4책 61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과학-역법(曆法)(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세종실록 109권/ 세종 27년(1445 을축 / 명 정통(正統) 10년) 7월 1일(계유) 1번째 기사/ 정갑손․이견기․윤상․김윤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갑손(鄭甲孫)으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이견기(李堅基)로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윤상(尹祥)으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김윤수(金允壽)로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를, 김세민(金世敏)으로 한성부 윤(漢城府尹)을, 허후(許?)로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한전(韓?)으로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김요(金?)로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박이녕(朴以寧)으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변효경(卞孝敬)으로 사간원 좌사간 대부(司諫院左司諫大夫)를, 민신(閔伸)으로 경기 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를, 성봉조(成奉祖)로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신기(愼幾)로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조혜(趙惠)로 황해도 도관찰사(黃海道都觀察使)를,이맹진(李孟畛)으로 함길도 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를, 정간(丁艮)으로 전라도 처치사(全羅道處置使)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4책 62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세종 109권, 27년(1445 을축 / 명 정통(正統) 10년) 7월 24일(병신) 2번째 기사/ 황치신․허후․이인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황치신(黃致身)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허후(許?)로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이인화(李仁和)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강석덕(姜碩德)으로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을, 윤상(尹祥)으로 경창부 윤(慶昌府尹) 겸 성균 사성(成均司成)을, 정창손(鄭昌孫)으로 수 사헌 집의(守司憲執義)를 삼고, 한창(韓昌)․신자준(申自準)으로 아울러 장령을 삼고, 정차공(鄭次恭)으로 수 지평(守持平)을, 조관(趙貫)으로 전주 부윤(全州府尹)을, 이승평(李昇平)으로 회령 절제사(會寧節制使)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4책 63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세종실록 121권/ 세종 30년(1448 무진 / 명 정통(正統) 13년) 7월 22일(병오) 4번째 기사/ 윤상 등이 불씨의 해악을 들어 불당 설치의 불가함을 상소하다/ 성균관(成均館) 겸사성(兼司成) 윤상(尹祥) 등이 상소하기를, ꡒ불씨의 도는 예융(?戎)의 한 법인데, 한 조각 공허한 말을 구사하여 삼강(三綱)을 멸하고 백성과 재물을 좀먹고 모손하니 이단(異端)의 해가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없습니다. 이치를 해하고 참된 것을 어지럽히는 것은 의논할 여지도 없는 것입니다. 우선 뚜렷한 것으로 말한다면, 부부(夫婦)는 인륜(人倫)의 시초로서 천지에 근본하고 음양에 순하여 만물의 생생(生生)의 근본을 이루는 것인데, 저 불씨는 용심이라 하여 남녀의 배필을 없애어 생생의 근원을 끊으니, 해가 되는 그 한 가지요, 군신(君臣)은 천지의 큰 의리로서 원수(元首)와 고굉(股肱)이 서로 일체가 되어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인데, 저 불씨는 말하기를 이록(利祿)의 매개(媒介)라 하여 세상을 떠나고 풍속을 끊고서 산림에 은둔하여 대의를 돌아보지 않으니, 해가 되는 것이 두 가지요, 부자(父子)는 천합(天合)의 친속이어서 하늘이 물건을 내는 것의 한 근본이 되게 하였는데, 저 불씨는 말하기를 사사 은혜라 하여 반드시 겸애(兼愛)하려 하여 친부모를 길가는 사람과 다름이 없이 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사랑을 끊어 천상을 어지럽히니, 그 해가 세 가지니, 이 삼강(三綱)을 잃으면 인도는 멸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도를 가지고 혹세무민하는 자가 있다면 남의 윗사람이 된 자는 마땅히 심하게 금하여야 할 것입니다. 공경하여 생각건대, 태종께서 예전에 제일가는 영명한 자품과 정일(精一) 즙희(緝熙)의 학문으로서 도의 진원(眞源)을 통철하게 보시고 이단을 배척하여 부도(浮屠)를 태거(汰去)하고 전민(田民)을 수탈(收奪)하였으니, 이것은 참으로 점점 그 가지를 말리고 장차 그 뿌리와 줄기를 뽑자는 것입니다. 능묘(陵墓)의 곁까지도 불찰(佛刹)을 세우지 말게 하여 후세의 경계를 남기시었으니 참으로 천재(千載)의 성한 지음이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잘 계술(繼述)하여 차고 이루어진 것을 운영하고 무마하여 성경(聖經)을 높여 믿고 널리 사전(史傳)을 보아 전 사람의 말과 지나간 행실을 축적하여 아름다운 말을 수집하고 착한 행실을 채취하여 권계(勸戒)를 삼아서 삼강을 두텁게 하려 하시니, 신 등은 생각하기를 세상은 화하고 밝은 데에 이르고 도는 큰 모유(謀猷)에 올라서 삼대의 정치를 틀림없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하였는데, 근자에 궁성 북쪽에 불우를 세우기를 명하여 도량(道場)을 열고자 하시니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조종의 법칙이라고 하신다면 태종의 불우를 세우지 말라는 명령이 완연하여 어제와 같고, 제왕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삼대 이전에는 까마득하여 들을 수 없고, 한나라 이후에 비로소 중국에 들어왔는데 오계(五季)에 이르러 부처를 섬기어 복을 구한 자를 역사에서 갖추 볼 수 있으나 믿고 높이어 복리를 얻은 자가 몇 사람이나 됩니까. 지금 정부(政府)․육조(六曹)․대간(臺諫)이 재삼 간하여도 굳게 막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어쩐 일입니까. 꾀는 여러 사람을 따르면 천심(天心)에 합하는 것이니 여러 사람이 따르는 것은 천의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두 정지하기를 간하여도 굳이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으시니 천의에 어떻겠습니까.ꡓ하였으나, 회답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5책 87면/ 【분류】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세종실록 121권/ 세종 30년(1448 무진 / 명 정통(正統) 13년) 9월 1일(갑신) 1번째 기사/ 왕세손이 성균관에 입학하자 윤상이 박사가 되어 소학제사를 강의하다/ 왕세손(王世孫)이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였는데, 예문 제학(藝文提學) 윤상(尹祥)이 박사(博士)가 되어 《소학제사(小學題辭)》를 강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5책 98면/ 【분류】 *교육(敎育) / *왕실-종친(宗親)(www.history.go.kr 2009)

 

  윤상 [記事] : 문종실록 1권/ 문종 즉위년(1450 경오 / 명 경태(景泰) 1년) 3월 5일(기유) 1번째 기사/ 겸 성균 사성 윤상 등이 불사의 불가함을 상소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다/ 겸 성균 사성(兼成均司成) 윤상(尹祥) 등이 상서(上書)하기를, ꡒ신 등이 그윽이 듣건대, 방금 불전(佛殿)을 세우고 불상(佛像)을 만들고 불경을 베껴 쓰고 영락주(瓔絡珠)를 구워 만드는 역사(役事)를 한꺼번에 모두 시작한다 하니, 그 하는 일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에 이 공덕(功德)을 신칙하여 천도(薦導)에 이익이 있다고 한다면 지난번에 소헌 왕후(昭憲王后)께서 병환이 나신 날에 중들을 모아서 금중(禁中)122) 에서 정근(精勤)123) 하여 부처에게 기도하도록 하고, 또 중앙과 지방의 사찰(寺刹)에 모두 분주(奔走)하면서 명명(冥冥)한 가운데서 부처의 가호(加護)를 빌도록 명령하였는데도 마침내 효험을 얻지 못하였는데, 지금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 병환이 나신 때에 와서 지성으로 기도함이 전일보다 배나 되었는데도, 또한 조금도 연명(延命)되시지 않았으니, 부처를 믿을 것이 못됨은 이미 명백한 증험이 있습니다. 지금 산릉(山陵)의 역사를 당하여 치장(治葬)하는 준비에 일이 일정한 기한이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으니, 이때를 당하여 비록 부득이한 일이 있다면, 묘침(廟寢)124) 의 건축일지라도 마땅히 조금 정지시켜야 할 듯한데, 하물며 그만둘 수 있는 불상(佛像)을 만드는 따위의 일이겠습니까? 진실로 정파(停罷)하지 않는다면 그 접대하는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니, 또한 어떻게 지급(支給)하겠습니까? 근년에 흉년이 서로 잇따르게 되어 서울과 지방의 저축이 진대(賑貸)125) 하는 데에 텅 비게 되었는데, 만약 조금 남아있는 자료(資料)를 가지고 다시 이익이 없는 일에 소비한다면, 혹시 연사(年事)가 또 기근(飢饉)이 있든지 변방의 사변(事變)이 또 일어난다면 그 진휼(賑恤)의 준비와 군량(軍糧)의 수용(需用)이 어디로부터 나오겠습니까? 식량(食糧)이란 백성의 가장 중요한 것[天]이고, 식량을 넉넉하게 하는 도리는 다만 농시(農時)를 어기지 않는 데에 있을 뿐인데, 지금 농사일이 바야흐로 한창인 때를 당하여 이익이 없는 일을 서두르겠습니까? 하물며 전하께서 왕위(王位)를 계승하신 초기에 온갖 교화(敎化)가 새롭게 되므로, 신민(臣民)들이 새 정치를 우러러 바라보고서 그 종말이 어찌 될 것을 점치고 있으니, 한 가지도 이 백성들의 본보기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지금 최질(衰?) 중에 계시니, 한결같이 성현(聖賢)의 제도를 따라서 그 상례(喪禮)를 다할 뿐인데, 만약 부처를 섬기는 일에 먼저 서두른다면 신민(臣民)들은 모두 생각하기를, ꡐ전하의 성명(聖明)하신 자질로서 부처에게 귀의(歸依)하는 근실(勤實)이 이같이 빠르시다면 하물며 우리 어리석은 무리들이야 감히 우러러보고 받들지 않겠는가?ꡑ 하면서, 다투어 시여(施與)를 희사(喜捨)하여 가재(家財)를 기울여 파산(破産)하게 되어 이르지 않는 데가 없을 것이니,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일월(日月) 같은 밝은 마음을 돌리셔서 불상(佛像)을 만들고 절을 세우고 불경을 베껴 쓰고 구슬을 구워 만드는 명을 빨리 거두어 들여서 신민(臣民)들의 시청(視聽)을 새롭게 하소서.ꡓ하였다.

 

  예문관 봉교(藝文館奉敎) 이효장(李孝長)․성균 박사(成均博士) 김위(金?)․교서랑(校書郞) 진유경(秦有經) 등이 상서(上書)하기를, ꡒ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군주(君主)의 한 마음은 온갖 교화(敎化)의 근원이므로 생민(生民)의 휴척(休戚)과 국가의 안위(安危)가 한 생각의 공경함과 소홀함의 사이에 달려 있으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태조(太祖)께서 창업(創業)하신 이래로 역대의 임금이 서로 계승하시어 정치를 하는 도리는 언제나 고대(古代)의 제왕을 본받아서 중앙과 지방이 편안하고 만백성이 기쁘게 복종한 지가 지금 60년이나 되었습니다. 생민(生民)이 복이 없고 하늘이 은혜를 베풀지 않아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 갑자기 신민(臣民)들을 버리고 가시니 사방에서 허둥지둥하면서 친부모[考?]를 잃은 듯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신 교지(敎旨)를 듣고는 백성들이 비록 늙고 쇠약하고 꼽추일지라도 모두가 지팡이를 짚고 목을 길게 빼고서 조종(祖宗)의 치화(治化)126) 를 생각해 바라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이것은 바로 전하께서 조종(祖宗)의 정치를 본받아 유신(維新)의 교화를 펴서 그 시초를 근신하여 민심(民心)을 수습할 시기입니다. 다른 일에 미치는 여가가 없을 것인데도 절을 세우고 불상(佛像)을 만들고 불경을 인쇄하고 불경을 베껴 쓰는 데 서두르고 불전(佛殿)의 장엄(莊嚴)함에 모두 사치와 화려함을 극도로 하였으니, 그 노력과 비용이 어찌 거만(巨萬)127) 뿐이겠습니까? 비록 민심(民心)이 평소부터 복종하고 재용(財用)이 여유가 있는 때를 당하더라도 군주는 마땅히 용도를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할 것이고, 이익이 없는 일로써 재물을 손상시켜 백성을 해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 바야흐로 처음 정사를 하는 시기에 있어 덕택(德澤)이 흡족하지 못하고 용도(用度)가 대단히 많으므로 국가의 재용(財用)이 텅 비어 없게 되었는데, 전하께서는 일찍이 이를 염려하지 않으시고 공역(工役)을 크게 일으켜 불교(佛敎)를 섬기는 것으로써 첫 정치의 선무(先務)로 삼으시니,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마는, 전하께서는 이 방도(方道)로써 조종(祖宗)의 성덕(盛德)을 계승하겠으며, 이 방도(方道)로써 국가의 명맥(命脈)을 한없는 지경까지 연장하시겠습니까? 대성(臺省)․시종(侍從)․좌우(左右)의 신하들이 모두 ꡐ옳지 못합니다.ꡑ고 하면서 굳이 정파(停罷)하기를 청하였는데도 전하께서는 거절하여 들어 주지 않으시니 종사(宗社)․생민(生民)의 복(福)이 심히 아닙니다. 전하께서 간신(諫臣)에게 하교하기를, ꡐ나는 진실로 부처를 섬겨 천도(薦導)하는 일로써 선왕(先王)에게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으로 그대들의 말을 따르지 않겠다.ꡑ고 하셨으니, 만약 그렇다면 여러 신하들이 중지하기를 간(諫)하는 것은 이것이 모두 임금에게 충성하지 못하고 선왕(先王)에게 유익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를 섬기는 일이 무익(無益)함을 상세히 알고, 백성이 실망(失望)하고 재용(財用)이 허갈(虛竭)되어 나라의 형세가 위태함을 초래한 것을 깊이 염려한 까닭으로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말을 올려 능히 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릇 태종(太宗)께서 사사(寺社)를 혁파(革罷)하고 노비(奴婢)를 거두어 들여 고려(高麗)의 여러 해 동안의 해독을 과감하게 제거하였으며,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 왕위에 있은 지 30년 동안에 불교를 배척하고 승려(僧侶)를 도태(淘汰)시키는 것이 이르지 않는 데가 없었으니, 이것은 전하께서 명백히 아시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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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읍 출신 윤혜정, 서울대 합격...축하합니다.

 

  윤혜정(윤혜정 孃 서울大 合格) [記事] : 예천읍 태생의 윤정대(대창고 22회) 변호사의 딸 혜정(18) 양이 2016년도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대구 동산초등, 동도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여고(문과 1등)에 재학 중인 윤양은 2학년장과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아버지와 같이 법조인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버지 윤정대 변호사는 대창고등학교(22회), 경북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 후 현재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醴泉新聞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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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천면 이국문, 전국서예대전에서 금상...축하합니다.

 

  이국문(이국문 氏 美術大展(書藝) 道知事賞) [記事] : 감천면 기천서실 총무 이국문(74) 씨가 2015년 11월 2015 대한민국향토문화미술대전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미술대전에서 경북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이국문 씨는 이날 종로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2015 대한민국향토문화미술대전에서 서예 '인탐홍자'로 금상을 받았다. 감천면 기천서실은 감천면 포리 노인복지회관 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1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농사일과 병행해가며 서예공부에 매진하고 있다.(醴泉新聞 2015년 12월 24일 (목) 13: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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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식물원, 농진청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 획득...축하합니다.

 

  신라식물원(甘泉面 新羅植物園 農振廳으로부터 2015年度 農村敎育農場 品質認證 獲得!!) [記事] : 예천군농업기술센터(소장 장면식)는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2015년도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 심사에 신라식물원 농촌교육농장(대표 김상국.김현주)이 우수한 성적(97.5점)으로 통과,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제는 농업·농촌이 보유한 자원을 체계적인 품질 관리를 통해 교육계와 소비자들의 신뢰를 쌓고 지속적인 체험 방문을 이끌어내기 위해 민간전문가에서 선정된 심사위원이 평가하며 기준은 농촌교육농장의 5대 품질 요소(농촌 자원, 교육 운영자, 교육 프로그램, 교육 환경, 교육 서비스)와 하위 27개 항목 평가를 통과해야 하며, 필수 요소로 교육프로그램 항목을 18점 이상 총 80점을 받아야 합격할 수 있다. 또한, 2014년부터는 안전 관리 요소를 강화해 구급약품과 소화기, 위험 요소 관리 등 안전 수칙 안내와 응급 처치 교육 이수, 배상책임보험가입을 필수 항목으로 의무화하고 있으며, 품질인증제는 우수한 농촌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장을 선발, 교육계와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인증제도이다. 한편, 현재 전국에 현장 학습이 가능한 농촌교육농장은 525개소이며, 지난해까지 품질 인증을 받은 농장은 전국에 122개소로 경북은 61개 교육농장에 16개 농장이 품질인증을 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예천군은 신라식물원이 유일하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5-12-24 오전 8: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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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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