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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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271) : 윤치문(2)-윤태수-윤태전-윤태중(附 예천군, 백두대간 황태 미니클러스터 일자리 창출 사업 선정...축하합니다/풍양면 출신 양승복, 대통령 표창...축하합니다/김도영 예천신문 발행·편집인, 2일 전국 시도회장협의회장 추대...축하합니다/황성한 예천불교총연합회 사무국장, 대한불교청년회 경북지회장 취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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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정묘 [二十三日丁卯] : 군수가 동도들이 무리를 모아 읍을 도륙하려 하는데 그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는 일을 순영에 보고하였다. ○ 정탐꾼이 와서 보고하기를, “의성·안동에서 패해 도망쳐온 동도들이 화지에서 함께 회합을 갖고 서로 모의하기를, ‘지금 예천고을을 공격하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단지 나누어서 요충을 막아 시로(市路)를 끊어 땔감과 양식이 반입되지 못하도록 하면 한 달이 되지 않아 저들이 굶어죽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들이 피곤에 지친 저들을 공격하면 좋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당시 동도는 사방을 에워싸고 시로(市路)를 차단하였다. 북쪽으로는 금곡·은풍(殷豊)·송정(松亭)을 막고, 동쪽으로는 도평(島坪)·감천(甘泉)·석관(石串)을 차단하고, 남쪽으로는 직곡(稷谷), 피실을 차지하고, 서쪽으로는 화지에 주둔하여 본부를 포위하였다. 민심이 흉흉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날마다 머리를 맞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이에 집강과 여러 집사들이 서로 모의하기를, “지금 헛되이 세월만 보내어 굶주림이 갈수록 심해지면 민심이 이반되어 다시 수습할 수가 없다. 진작 한바탕 전투를 하여 생사를 결판내는 것이 낫다. 우리들이 만약 먼저 겁약함을 보여 저들이 들어와서 공격하도록 한 뒤에 죽기를 각오로 적을 맞이하여 싸운다면 적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이 비록 숫자가 많다고 하지만 모두 오합지졸이니 누가 감히 죽기로 싸우겠는가”라고 하니, 모두들 이 계책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마침내 부병 300여 명을 데리고 화지에서 1리 떨어진 지점으로 나아가서 형세를 살펴보았다. 적들은 산을 의지하여 요새를 만들었으며 산꼭대기와 평지에 가득 진을 치고 있었는데 몇천 명인지 알 수 없었다. 부병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무기를 들고 우리를 응대하며 우리에게 말을 걸고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마침내 병사들에게 손짓을 하여 조금 앞으로 나아가서 마치 적을 공격하려는 듯하다가 다시 뒤로 물러나며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났다. 그리고 군교(軍校) 2명을 산의 오목한 부분에 남겨두어 적의 동태를 살피도록 하였다. 그런데 일찌감치 적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적들은 크게 고함을 지르며 이 포로들을 빨리 죽이려고 하였다. 그 가운데 윤치문(尹致文)이란 자가 대도를 뽑아 그를 베는 시늉을 하면 말하기를, “너희들은 부중에서 순찰을 도는 병졸들인데 여기까지 왔다니 매우 가소롭구나. 그러나 지금 잠시 너희들의 목숨을 살려줄 터이니 빨리 돌아가서 너희 군수에게, ‘너희 고을의 무기를 내일 진시(辰時, 오전 7~9시)까지 가져다가 바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이 고을을 도륙할 것이다’라고 전하라”고 하였다. 군교들은 머리를 싸매고 쥐처럼 숨어서 돌아왔다. 이날 외부(外部)의 창수(槍手)를 죄다 모집하여 밤낮으로 지켰다. 군량은 매우 넉넉했으며, 부내의 부유한 사람들이 모두 돈과 곡식을 의연(義捐)하여 군자(軍資)에 보태었다.
24일 무진 [二十四日戊辰] : 소야를 정탐하던 사람이 급히 보고하기를, “당일 축시에 화지 회접(會接)에서 소야로 통문을 보내, ‘본일어제 포시(?時, 오후 3~4시)에 읍인 300여 명이 화지의 접회(接會)를 공격하여 상황이 매우 급박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맹순은 크게 화를 내며 각 접에 통문을 띄워 기한에 맞추어 모두 모여서 함께 본읍을 공격하라고 하였으니 사태가 매우 위급합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후 화지의 통문이 또 도착했는데, 그 내용은 매우 거칠고 당돌하게 먼저 공격한 잘못을 거론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임시방편으로 해명을 함으로써 더욱 겁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내용에, “어제 화지동으로부터 급보가 있었는데, 화적의 무리 수백 명이 본동 화지에 모여 읍을 도륙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듣고 매우 두렵고 불안하여 본소에서 몇 명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였더니 그들이 보고하기를, ‘안동에서 온 도인들과 본접의 도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즉시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에 우리 집강소에서 보낸 2명을 붙잡아서, ‘돌아가서 너희 군수와 공형公兄에게 내일 진시 안으로 너희 고을의 군기를 가져다 바치면 죽음을 면하게 해주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고을을 도륙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크게 꾸짖었다. 이것이 과연 도인의 말인가? 도인이라면 틀림없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우 괴이하고 의심스럽다. 이에 통문을 보내니 도인인지 화적무리인지를 명백하게 구별하여 회답하여 달라”고 하였다. 안동도총소에 통문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그 내용에, “지금 귀읍 안동에서 쫓겨 온 동도 수백 명이 한 곳에 모여서 충경(忠慶) 등 각 접과 합세하니 몇 만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먼저 비읍예천의 무기를 빼앗아 격파한 뒤에 장차 귀 읍으로 향할 것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이 작고 힘없는 읍으로는 적을 상대할 수가 없으며, 본 읍의 위기가 조석(朝夕) 간에 닥쳤습니다. 만약 비읍이 먼저 패한다면 귀부안동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에 급히 통문을 보내니, 바라건대 귀읍의 군대를 징발해 즉시 구원하러 보내시어 외로운 성이 함락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25일 기사 [二十五日己巳] : 8월 21일에 소야로 보낸 사자(使者)가 돌아오지 않았다. 소문을 들으니 일찍이 구금되어 생사여부를 알 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 처자식들의 울부짖음이 가련하였다. 마침내 인편으로 통문을 작성해 보냈다.
26일 경오 [二十六日庚午] : 당시 거의 한달 동안 밤에도 쉬지 않고 읍을 수비하여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하였다. 시로(市路)가 막힌 지도 근 한 달이나 되어 땔감과 식량이 끊어져서 부민들이 굶주려 서로 바라보며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관가에서 쌀을 제공하였으나 역시 역부족이어서 흰죽을 쑤어 공급하기를 10여 일 동안 하자 상하가 모두 흉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용궁 공형의 문보(文報)가 도착하였는데, 어제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동인(東人) 수천 명이 각각 무기를 지니고 갑자기 고을로 침입하여 창고의 문을 부수고 무기를 탈취하여 갔다고 하였다. ○ 군수가 안동 진영(鎭營)에 구원하러 와달라고 보고하였으며 본소도 편지를 작성하여 밤을 새워가며 도총소(都摠所)에 전달하였다. 그날 밤에 총수(銃手) 100여 명을 징발하여 현산(峴山) 옆의 골짜기에 잠복시키고 밤이 새도록 지키면서 살피도록 하였다.
28일 임신 [二十八日壬申] : 오시(午時, 오전 11~오후 1시)에 퇴치 접주 박현성, 화지 접사(接司) 김노연(金魯淵) 및 그 무리 3명이 본소로 들어와서 말하기를, “오늘 읍에서 도회를 여는 것은 별다른 일이 아니라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므로 놀라지 말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집강과 여러 집사들이 큰 소리로 꾸짖으며, “야 이 교활한 놈들아, 어떻게 나를 속이려고 하느냐? 너희들은 몰래 습격하려고 하면서 지금 달콤한 말로 꾸미느냐. 조금 뒤에 너희들의 대군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를 보고나서 너희들을 죽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는 이들을 가두었다. 얼마 후에 현산《부의 서쪽 1리 지점에 있다》의 정찰병이 깃발을 휘두르고 총을 쏘면서 황급하게 보고하기를, “적병 1만여 명이 가득히 몰려오는데 10여 리에 이어져 있으며 고함소리가 땅을 진동합니다”라고 하였다. 상황이 매우 급박하였다. 한편으로는 포병(砲兵)을 징발하고 한편으로는 높은 곳에 올라 상황을 살피려고 포병을 따라 앞 둑으로 달려가니 적은 이미 유정(柳汀)《부의 남쪽 1리 지점에 임수(林藪)가 있다》으로 들어 와서 가득 차 있었으며 부병과는 몇 걸음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집강과 여러 집사들은 박현성과 김노연을 좌중에서 칼로 베려고 하였다. 현성이 간청하며 말하기를, “오늘 병사들이 출동한 것은 나의 본뜻이 아닙니다. 잠시 김노연을 인질로 잡아놓고 나를 풀어 준다면 먼저 진영으로 돌아가서 아무 일 없이 군사들을 물리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만약 믿지 못한다면 유사와 같이 보내어서 내가 결말을 짓는 것을 보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 속박을 풀어주고 1~2명의 영리한 유사로 하여금 사자(使者)로 분장하여 무기를 지니고 함께 가서 살펴보도록 하였다. 적진에 도착하자 현성은 급히 몸을 피하여서 보이지 않았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여러 적들은 모두 몰래 총과 창을 지니고, “여기에 온 저 사람들은 누구냐? 우리가 먼저 손을 써서 해치우자”라고 은밀히 말하였다. 유사가 귀가 밝아서 이 이야기를 듣고 급히 달아나서 본진(本陣)으로 돌아왔다. 등 뒤의 적진에서 ‘탕’하고 총성이 크게 들리고 탄환이 번개처럼 귓가를 스쳐 지나가서 하마터면 총에 맞을 뻔하였다. 땅에 바짝 붙어서 기어가니 제방 위에 있던 부병들이 급히 이들을 구하여 돌려보냈다. 그리고 일제히 총을 쏘니 총성이 천지를 진동하였다. 삽시간에 부병들이 서정(西亭)의 긴 제방을 에워싸고 양면에서 협공을 하였다. 캄캄한 가운데 단지 유성(流星)같은 불빛만 보이고 우레 같은 소리만 들렸다. 총탄이 떨어지는 숲속에서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어지럽게 땅으로 떨어졌으며 검은 연기가 하늘에 가득 차서 적과 아군이 구분이 되지 않아 마구 죽였다. 그런데 이전에 미리 사람을 보내어 은밀히 청복동 주민에게 산 위에 횃불을 많이 설치하여 군대가 있는 것으로 위장하고 본진에서 총성이 울리거든 일제히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며 여차여차하여 적병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고 시켰다. 이때가 되자 산 위에서 불빛을 밝히면서 일제히 일어나서 큰소리로, “안동의 구원병 3,000여 명이 올 것이다. 너희 적도들이 어디로 달아나겠는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적병들은 이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모두 동남쪽 들판의 논과 못으로 달아났는데 상당수는 못에 빠져 죽었고 나머지는 모두 옷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났다. 부병들은 이들을 추격하여 논에서 많이 때려 죽였다. 얼마 후 숲속은 텅 비어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저들의 의관과 총·창·양곡·솥·마필 등을 거둔 것이 이루 셀 수 없었다. 부병들은 고을로 돌아와 관정(官庭)에 들어가 뛰면서 춤을 추었다. 부중의 남녀노소도 모두 눈물을 닦고 웃음을 지으며 서로 축하하였다.
한창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부의 북쪽 부모산(父母山)에서 망을 보던 병사가 총을 쏘고 고함을 지르며, “금곡의 적병 수만 인이 간명현(?鳴峴) 《군의 북쪽 5리 지점에 있다》] 에서 달려와서 이미 광천사장(廣川沙場) 《부의 동쪽 2리 지점에 있다》에 도착하였습니다. 북소리와 호각소리가 하늘을 진동하며 함성이 땅을 울립니다”라고 하였다. 부병들은 급히 춤추던 것을 멈추고 맹렬한 기세로 일어나서 일제히 양천(?川) 《부의 동쪽 1리 지점에 있다》의 물가로 달려갔다. 이들은 횃불을 전부 끄고 숨소리를 죽이고 서쪽 언덕에서 잠복하였으며, 병사를 나누어 일부는 하류에서 몰래 물을 건너 밭 사이의 풀 속에 잠복하였다. 그러고서 살펴보니 적병들이 모래사장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북을 치고 호각을 불며 부르고 대답하는 소리가 원근에 진동하였다. 장차 물을 건너 고을을 침범하려고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양쪽에서 총성이 울리며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자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많은 숫자가 죽었다. 한순간에 무너져 흩어져서 우계(愚溪)와 광천의 들판과 산골짜기로 달아났다. 동서를 구분하지 못하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서로 밟혀서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부병들은 귀산현(龜山峴) 《부의 동쪽 10리 지점에 있다》까지 추격하여 수십 인을 붙잡아 죽이고 조총·창·칼·금고(金鼓)·나팔·마필 등을 매우 많이 획득하였다. 부병들이 부로 돌아와서 대오를 정비하니 밤은 이미 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방곡(坊曲)에 호령을 전하여 각자 안정을 되찾도록 하였다. 부내(部內)로 도망쳐 온 자들은 여자들에게 많이 잡혀 죽었다. 이들은 혹은 돌로 치기도 하고 혹은 불로 태우기도 하였다. 김노연은 관사(館舍)에 묶어두었는데 당시 사태가 급박하여 아무도 그를 지키지 않아서 구금을 풀고 달아나버려서 사람들이 모두 분하게 여겼다.
29일 계유 [二十九日癸酉] : 부병들이 사방 산의 요해처를 순찰하다가 적들이 설치해 둔 반색(絆索), 올가미와 새끼줄을 많이 찾아내었다. 새벽에 집강과 여러 집사들이 관부에 들어가서 군수를 만나 적을 격파한 일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군수는 크게 기뻐하며 관부의 주방에 명령하여 술을 내려서 마시도록 하였다. ○ 사시에 안동의 구원병 3,031명이 도착하였다. 소를 잡아서 이들을 위로하고 대접하였다. ○ 순영문의 감결이 도착하였다. 그 내용에, “지금 부항감리서(釜港監理署)의 전보를 보니, 함창·태봉(胎峰) 등지의 동도들이 일본군 사관을 해쳤다고 한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즉시 영리한 교졸(校卒)을 보내 소란을 피운 우두머리와 그 추종자들을 체포하고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해산시켜라. 만약 늦어진다면 책임이 돌아갈 것이니 아주 조심히 거행하라. 그리고 인근의 각 읍과 서로 은밀히 연락하여 기회를 포착하는 즉시 잡아들일 것이며 소홀히 하여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일본군 53명과 통역·화병(火兵) 10명이 도착하였다. 이들을 장청(將廳)에 머물러 쉬도록 하면서 읍에서 물품을 제공하였다. 일본인이 말하기를, “이달 26일에 동도가 산양(山陽)에 모여서 일본육군 1명을 살해하였다. 그래서 이들을 토벌하고자 하였는데 뜻밖에도 동도들이 귀군민보군에게 패배를 당하였으니 매우 다행이다. 동도를 공격하고자 한다면 우리들이 선봉에 서서 무찌를 것이니 귀군은 단지 뒤를 따르기만 하라”라고 하였다. 여러 집사들이 말하기를, “동도들은 이미 모두 격파되어 흩어졌으니 공(公)을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다”라고 하고는 편히 쉬게 하였다. 잠시 뒤에 부병이 들판에서 적의 잔당과 화약을 짊어지고 가던 자 2명을 잡아서 돌아오자 일본인들은 즉시 그들을 죽이라고 하였다. ○ 오후에 안동의 후군(後軍)과 정원 외에 따라온 500여 명이 또 도착하였다. 당시 본군의 내·외병이 1,500여 명이었고 안동의 병사가 3,500여 명이어서 군량을 공급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관부와 민간의 저축분은 모두 고갈되었다. 그래서 부중의 민가에서 나누어 담당하도록 하여 시정(市井)의 술과 음식이 모두 고갈되기에 이르렀다. 부민들에게 명령을 내려 비축해 둔 보리를 모두 꺼내 군량에 보태도록 하였다. ○ 패하여 흩어진 동도 수천 명이 금곡에서 도회를 갖고 장차 다시 침범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부중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래서 부병과 안동의 병사를 보내어 그들을 공격하였으나 저들은 이미 흩어진 뒤였다. 병사들은 저들이 설치한 접소와 접주의 거처를 불태우고 돌아왔다. 군수가 적을 격파한 사정을 순영에 보고하였다./ (daum 2010)
윤치문 : 1894년 농민전쟁연구 5/ e-Book/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역사비평사 | 2003.04.25/ 책본문 : 1888년에 빈민구제를 했고(이이화, 1994 앞의 책 참조), 김산의 농민군 지도자 尹致文의 父는 19세기 이후 飢民救濟에 錢穀을 헌납(신영우, 1988 앞 논문참조)함으로써 이들 자신과.../ 188페이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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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수 : 1945-2008, 용궁면 대은리 출신, 본관은 파평, 위현의 장자, 연세대 경영학과 수석 졸업, 효성(曉星)그룹 동양(東洋)나이론에서 영업부장, 섬유회사인 (株)대영과 진부령 알프스 리조트 등의 회장이다.(醴泉新聞 1993.3.18)
윤태수 : ▶윤태수 前 ㈜대영 알프스리조트 회장 별세, 석 미국 CHOWAN대 교수·관 블루런 벤쳐스 대표·지현 주부 부친상, 양재호 HP아시아태평양 이사 장인상, 고봄나 주부·구연경 주부 시부상=21일 0시 10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25일 8시/ (daum 2010)
윤태수 : [부음]윤태수씨(전 대영 알프스리조트 회장) 별세 외/ 2008.06.22 | 세계일보 | 미디어다음 윤태수씨(전 대영 알프스리조트 회장) 별세, 석(미국 CHOWAN대 교수)·관씨(블루런벤처스 대표) 부친상, 양재호씨(HP 아시아태평양 이사) 장인상=21일 0시10분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정이만씨(㈜한화6...// [부고] 윤태수 김규철 外 2008.06.23 | 헤럴드경제 | 미디어다음// [부음] 윤태수씨(전 대영 알프스리조트 회장... 2008.06.22 | 매일경제 | 미디어다음// [부고] 윤태수 前대영알프스리조트회장 별세... 2008.06.22 | 한국경제 | 미디어다음// 관련기사 총 4건(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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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전(윤태전 稅務士 城南진주로타리클럽 第4代 會長으로 就任) [記事] : ꡒ회원 증강에 혼신을 다하고 주위와 지역 사회의 불우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진정한 로타리안이 되겠다.ꡓ 유천면 사곡리 태생의 윤태전(50) 씨가 2005년 6월 14일 성남진주로타리클럽 제4대 회장에 취임했다. 윤 회장은 화남초등(20회), 예천중(21회), 예천농고 토목과, 강남대 세무학과,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국세청에서 25년(행정사무관)을 근무했다. 윤오석(작고) 박분남(작고) 씨의 차남인 윤 회장은 부인 유정숙(49) 씨와의 사이에 딸 민주(고려대 정보통신대학 2년)를 두었다. 고향 유천에는 형님 윤태영(61) 씨가 살고 있다.(醴泉新聞 2005-06-18 10:24:10)
윤태전 : 인터넷 > 서울21(2010년 05월호) > 인물(p104)/ 세무행정에 관한 일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는 한빛세무법인 대표 윤태전 세무사/ 2010-04-30 20:09:41/ 국가의 존립은 국민과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에 의해 가능하다. 세무행정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세무전문가 한빛세무법인 대표세무사인 윤태전 세무사를 서울 21인물 포커스에 소개하고자 한다. 윤 대표 는 세무행정 시작을 강원도 원주세무서 총무 및 부가세과에 초임 발령을 받으면서 세무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동안 국내 서울과 지방의 웬만한 세무서는 근무를 했고 2002년 세무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국가에 봉사를 마치고 그동안 세무전문가로 경험하고 쌓았던 실력을 사회에 나와서 새로운 각오로 세무행정 전문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 윤태전 세무회계사무소를 개업하게 된다. 세무사는 납세자의 위임에 의하여 조세에 관한 각종 신고 신청 청구 등을 대리하고 납세자의 의견지술대리 개별공시지가에 대한 의의 신청의 대리 조세에 관한 신고서류의 확인 및 기타 부대임무를 하는 조세자격사라고 한다. 특희 윤 대표는 업무를 수행하는 바쁜 일과 중에서도 학업과 연구를 병행하여 고려대 대학원마치고 경제학 석사로서 각 대학 및 전문교육기관 세법 및 부동산학 전임 교수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 개인 세무회계사무소를 키워서 많은 세무전문가들을 모아서 국내 몇 안되는 톱클래스의 세무회계전문법인 한빛세무회계법인을 설립하여 대표세무사로 있다. 현재 한빛세무법인이 소재하고 있는 경기도 성남 분당에서는 업무 외에도 주민들과 친목 및 지역 발전을 위해 많은 분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윤 대표는 정말 호롱불 밑에서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으로 어려웠던 옛 시절을 생각하며 고향을 잊지 않고 사랑하며 고향발전을 위해 물심양면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고 주변 분들의 자랑이다. 늘 고객들에게 겸손과 정성으로 대하며 업무적으로는 최고의 질적 써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성을 지닌 세무전문가로서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납세의무의 성실한 이행에 조력자로서 최고의 일인이 될 때까지 윤 대표의 노력과 역할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기대를 해보기로 한다. (정리 박덕서)// 한빛세무법인 윤태전 대표 세무사 약력 : 경북 예천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경제학석사)/ 동수원 수원 ,성남세무서, 법인,소득,부과 조사계장/ 국세청 심사과 등 25년 근무 명예퇴직 (행정사무관)/ 대한공인중계사 세법 전임 교수/ 성남 세무서 공정과세협의회 심의의원/ 조세의 날 경제부총리 표창/ 국무총리 표창/ 성남시장표창/ 고려대학교 세정학회 회원/ 대한재정정책학회 회원/ 중소기업청 경영 ,제도개선 자문위원// 주요 업무 : 세무상담 및 고문/ 기장및 신고대리/ 법인 및 개인세무조정계산서 작성/ 양도,상속, 증여세 신고업무/ 조세불복 청구/ 세무조사 대행업무/ (daum 2010)
윤태전 : 윤태전세무회계사무소/ 윤태전세무회계사무소 분당구 야탑1동 358-2 윤태전세무회계사무소 영업시간 : 홈페이지 : 주차정보 : 좌석 : 할인혜택 : 부가정보 : 신규 업체 등록을 원하시거나 업체 내용이.../ (daum 2010)
윤태전 : 영세사업주가 꼭 알아야 할 노동법 규정 10가지/ 윤태전세무회계사무소ㆍ작성일 2007-11-05 (월) 16:37ㆍ조회: 119 ㆍ영세사업주가 꼭 알아야 할 노동법 규정 10가지 영세사업주가 꼭 알아야 할 노동법 규정 10가지 ■ 근로자를 채용할 때에는 반드시.../ (daum 2010)
윤태전 : 실질적 영세민은 외면, '법적 영세민' 돼야 혜택 받을.../ 2007.11.20/ ...있으면 영세민으로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공립어린이집 ⓒ 윤태전세금 높고 대출 없으면 고소득층? 알고보면 실질적인 영세민인데....전세 8천만 원짜리 빌라! 이 전세 얻기 위해.../ //yuntae.com/ 새롬이 아빠 윤태 동화세상 (yuntae.com)(daum 2010)
윤태전 : 법무법인 율진 소개/ 2007.10.18/ ...대표변리사 윤여강), (주)종합 건축사 사무소 F.L(대표이사 건축사 한오석), 한빛 세무 회계 법인(대표세무사 윤태전) 등과의 업무제휴를 통해 보다 전문적이고 질 높은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blog.daum.net/yuljin/ 노영희변호사(daum 2010)
윤태전 : 예천경제인포럼 발기인 명부/ 2009.01.31/ 한서메탈 대표이사 hsmt0703@empas.com 유천면 0 윤장진 현대오토넷 대표 jjyoon1206@chol.com 예천읍 0 0 0 윤태전 한빛세무법인 세무사 유천면 0 ㅡㅡㅡ 윤희육 모닝스타코리아㈜ 대표이사 yoony@momingstar.co.kr 유천면 0 0 0 .../ //cafe.daum.net/woruddPcjsrns/ 재경예천군민회(daum 2010)
윤태전 : 세무회계사무실 직원 모집/ 2003.07.16/ 177 권명호세무회계사무소 서울 강남구 무관 무관 신입/경력 무관 사무장 무관 2003/7/16 6 176 윤태전세무회계사무소 경기 성남시 여자 24세↓ 1년미만 무관 평직원 자격자우대 2003/7/16 10 175 곽만순세무회계사무소 경기.../ //cafe.daum.net/newkr/ 뉴서울회계경리학원(daum 2010)
윤태전 : 재경예천군민회cafe/ 2011 재경유천면민회 임원 현황/ 지난달, 2011년 3월 29일 (화)/ ...: 박정목 * 상임부회장 : 윤대상 박찬형 / 최옥진 박춘옥 * 상임감사 : 윤희범 / 윤태전 * 사무국장 : 노상인 * 재정차장 : 박미분 * 사무차장 : 장경덕 / 최혜숙 심미자 *.../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윤태전 : "제29차 2010 유천면민의 날" 행사 안내문/ 작년, 2010년 10월 17일/ 박찬형 배춘화 장인덕 윤대상 윤희범 이치영 강승구 윤희우 배도진 최옥진 홍해선 이재인 윤태전 최기선 김정희 박항구 엄상춘 배세달 이재영 이갑동 배전호 김현철 정연우 최윤열 노상인 김원중.../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윤태전 : 재경예천군민회 직능단체장 / 지역대표/ 2년전, 2009년 7월 8일/ 기관단체 성 명 수원향우회 현종성, 군포향우회 조현갑, 성남향우회 윤태전, 부천향우회 최형욱, 예인회 김장환/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윤태전 : 예천경제인포럼 발기인 명부/ 2년전, 2009년 1월 31일/ 0 윤장진 현대오토넷 대표 예천읍 0 0 0 윤태전 한빛세무법인 세무사 유천면 0 ㅡㅡㅡ 윤희육 모닝스타코리아㈜ 대표이사.../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윤태전 : 분당, 성남, 판교·위례지역 납세자들의 튼튼한 조력사/ 2015.02.24 | 연합뉴스보도자료 | 미디어다음/ 납세자들의 고충을 보다 가볍게 덜어주는 것이 이들의 역할. 그 중에서도 윤태전 세무사는 성남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감사로써 성남시의 공익을 위해 앞장...(daum 2015)
윤태전 : 예천의 자랑 2388 : 예천대사전 118권 오늘 나와...(祝 황영식. 정경은)/ 작성 장병창/ (처사), 윤진형(증호조참판), 윤창하(독립운동가), 윤철(장악원정), 윤치락(효자), 윤탁(참의), 윤태원(효자), 윤태전(세무사), 윤학준(호세대 교수), 윤형구(관세청 창의혁신담당관), 윤희성(코레일 강원지사장), 윤희준(인간자.../ 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 (dau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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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중(尹泰重) : 유천면 화지리 출신, 유천초등, 예천중, 서울 균명고, 경남대(慶南大) 정경학과 졸업, 소위로 임관하여 소령으로 제대하기까지 22년 간을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 바쳤다. 74년 7월에 서울시 메리야스공업협동조합에 상무이사로 발탁되었다. 정부 시책에 의해 서울시 메리야스 중소제조업체들에게 경제적 지위 향상과 권익 옹호를 위하는 것이 주업무인 그는 3백여 개의 회원 업체를 원활하게 유대를 갖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자체 자본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조합이 공동 구매 사업을 벌여 면방업체와 계약을 해서 시중가(市中價)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조합업체에 공급하는 등 회원들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도모하였다.(嶺友俱樂部 99號 1982)
윤태중 : 재경예천군민회cafe/ 2011 재경 유천면민회 임원 현황/ 지난달, 2011년 3월 29일 (화)/ 차장 : 박미분 * 사무차장 : 장경덕 / 최혜숙 심미자 * 고문 : 최종활 김종영 김성수 윤태중 김필진 박대일 김정동 도광호 박찬호 임병훈 장영기 * 원로 : 배정호 배천용 박국의 심석암 .../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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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백두대간 황태 미니클러스터 일자리 창출 사업 선정...축하합니다.
예천군 선정(醴泉郡, 地域幸福生活圈 先導事業 2年 連續 選定 : “白頭대간 黃太 미니클러스터 일자리 創出” 事業 選定) [記事] : 예천군(군수 이현준)은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공모한 2016년도 지역행복생활권 선도사업(연계협력사업)에 응모해 “백두대간 황태 미니클러스터 일자리 창출 사업”이 최종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지역행복생활권 선도사업은 주민의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지역생활권에서 양질의 기초인프라, 일자리, 교육, 문화, 의료, 복지 서비스를 서로 공유하기 위해 생활권내 지자체가 협력하여 추진하는 사업으로, 예천군은 2015년도에 2건, 올해 1건이 선정되어 2년 연속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올해 선정된 사업은 예천군이 주관하고 상주시, 문경시가 참여하는 사업으로 3개 시ㆍ군이 공통으로 보유한 황태가공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생활권 내 황태가공 일자리 창출 1,000개를 목표로, 홍보와 마케팅, 가족사업체 발굴 등 황태가공산업의 클러스터화를 지원하게 된다. 선정 당시 총사업비는 3년간 약 19억 원이며, 추후 지역발전위원회의 컨설팅을 거쳐 최종사업비를 확정하고 총사업비의 80%를 국비로 지원받게 된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2016년도 행복생활권 선도사업 선정으로 예천을 비롯한 상주, 문경 3개 시군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황태가공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예천군은 지난해 예천, 상주, 문경생활권에 ‘으뜸 농·특산물 홍보ㆍ판매장 공동 운영’과 안동중추도시생활권에 ‘다문화 결혼이주여성 관광일자리 창출사업’이 각각 선정되어 올해부터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醴泉뉴스 20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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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면 출신 양승복, 대통령 표창...축하합니다.
양승복(양승복 敎師 大統領 表彰) [記事] : 재경풍양면민회 양승복(서울 무학중학교 교사) 사무총장이 2015년 12월 대한민국 자원봉사 우수자 정부 표창식에서 자원봉사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영예의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공처농요의 고향인 풍양면 공처 출신인 양승복 교사는 20여년 동안 계속된 기부활동과 봉사활동을 전개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현재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청소년봉사단연맹 총괄처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청소년자원봉사단연맹 활동과 학부모자원봉사단을 이끌어 가면서 자원봉사자 지도자 양성과정 강사로 활동하면서 수년 간 시설봉사활동으로 가평꽃동네, 시립동부노인요양원에 있는 중증 치매 및 장애우 섬김 활동을 하였다. 또한 국립현충원 봉사, 농촌일손돕기 봉사, 관내 독거노인 연탄기부배달 및 성동희망푸드마켓 식품 나눔 기부활동, 연말 구세군 자선냄비활동을 하면서 따뜻하고 온기가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醴泉新聞 2016년 02월 05일 (금) 11: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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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 예천신문 발행·편집인, 2일 전국 시도회장협의회장 추대...축하합니다.
김도영(김도영 大韓洋弓協會 市道會長協議會 會長) [記事] : "모든 역량을 바쳐 경북 양궁과 대한민국 양궁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김도영(59) 경상북도양궁협회장이 2016년 2월 2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대한양궁협회 2016년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시도회장협의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김 회장은 예천경찰서 발전위원장, 민주평통자문회의 예천군협의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경북도체육회 가맹경기단체협의회장, 2016 예천세계곤충엑스포 대외협력위원장 등을 맡아 지역 발전을 위한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10년 상생과 공영의 평화통일 기반 조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명옥(53)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본관은 의성, 취미는 스포츠.(醴泉新聞 2016년 02월 05일 (금) 11: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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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한 예천불교총연합회 사무국장, 대한불교청년회 경북지회장 취임... 축하합니다.
황성한('황성한 大韓佛敎靑年會 慶北地區 會長') [記事]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불교청년회가 신행공동체와 지역사회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주력하겠습니다." 황성한(45) 예천불교총연합회 사무국장이 (사)대한불교청년회 제19대 경북지구회장에 취임했다. 황 신임회장은 그동안 예천불교청년회장, 예천불교총연합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불자들의 화합과 포교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뿐만 아니라 예천군번영회(회장 김세진) 홍보분과위원장으로 지역 사회활동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미옥(43)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醴泉新聞 2016년 02월 05일 (금) 1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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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