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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322:이동표(5)-이동혁-이동훈-이동흡(1)(祝박계수)
작성자장병창 @ 2016.03.24 06:23:22

  예천의 자랑(4322) : 이동표(5)-이동혁-이동훈-이동흡(1)(附 유천면 출신 박계수, 백두대간 3회종주, 한국 최고기록 인증받아...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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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표 : 苟全先生文集/ 2009.08.26/ ...받았다. 저자의 시문은 문인 塔窩 南亨會가 저자의 손자 金楊烈과 함께 遺文을 수습하여 10여 권을 만들어 懶隱 李東標(1644~1700)에게 교정을 부탁하였는데 교정이 끝나기도 전에 이동표가 졸하였다. 이에 저자의 外玄孫인 訥隱.../ //blog.daum.net/mudongju/ 無俗軒(daum 2010)

 

  이동표 : 금성규 - 조선 후기의 문신·서예가 금성규에 대해 알려주세요/ 2004.10.15/ ...뜻을 두어, 벼슬을 버리고 하향하여 서예공부에 힘을 기울여 독특한 필법을 세웠다. 당대에 이름이 높아 많은 사람이 그의 글씨를 얻으려 하였으며, 경학(經學)에 밝던 승지 이동표(李東標), 학자 권두인(權斗寅) 등과 교유하였다.../ 답변수: 1 | 조회수: 35(daum 2010)

 

  이동표([不遷位 紀行. 44] 懶隱 李東표(1644∼1700년)) [記事] : 나은(懶隱) 이동표(1644~1700)가 1691년 겨울 사간원 헌납에 임명되면서 이조좌랑과 시강원(侍講院) 사서(司書)를 겸하게 되었다. 얼마 후 이조전랑에 승진, 관리를 등용하고 물리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외압에 휩쓸리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청렴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삼았다. 당시 전랑장(銓郞長)인 이조판서가 권세가 자제인 류재와 이수인 두 사람을 청선(淸選: 학덕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규장각, 홍문관 등의 벼슬인 청환(淸宦)의 후보자)에 넣으려 하자 나은은 마땅하지 않다고 허락하지 않았다. 류재는 문망(文望)이 없고 이수인은 중궁손위(中宮遜位: 인현왕후 폐위) 때 성균관 유소(儒疏)의 소수(疏首)가 되었음에도 회피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집권자 민암의 아들 민장도(閔章道)의 청선록을 통과시키려 하자, 민장도는 옳지 않은 행위로 사류(士類)가 천시하는 인물이므로 지금의 정승 아들이라고 해서 쓸 수는 없다며 청선록에서 빼버렸다. 동료들이 놀라며 말렸으나 나은은 “이 사람들 모두 물의가 있는데 권세와 가문의 힘이 있다고 해서 어찌 함부로 넣겠는가”라며 거절했다. 이조판서도 성이 났으나 어찌할 수 없자, 사람을 보내 나은에게 타이르기를 민장도의 등용을 통과시켜 준다면 자신도 나은이 하는 청을 무엇이라도 들어주겠노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은은 탄식하며 “전랑장은 공평을 다루는 직책에 있으면서도 사적으로 사람을 유혹하려드니 함께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그날로 사표를 낸 뒤 서울을 떠났다. 그때(1692년 6월)가 조정의 중대한 모임이 임박한 시기인 데다 비가 많이 내리는 데도 도롱이를 갖추고 배에 오르니, 조정 동료들이 전송 나와 서로 돌아보면서 ‘오늘날의 소퇴계’라 하였다.

 

  ◆“원수는 갚을지 몰라도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 1692년 6월 이후 1693년 봄에 이르기까지 헌납(獻納), 교리(校理), 사인(舍人: 의정부 관직), 집의(執義: 사헌부 관직) 등 여러 직첩이 13차례나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2월 다시 집의가 제수되자 임금의 특별한 대우와 명을 거역하기가 어려워 부득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자, 조정이나 민간 모두가 기뻐했다. 그리고 당시 거리의 아이들 사이에는 서로 다투거나 할 때 “네가 이사인(李舍人)과 같은 덕망이 있느냐”는 말을 하게 되면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사간이 되어 시정을 논한 논시정소(論時政疏)에서 “사대부의 출처거취가 올바르지 못해 승진을 다투어 관기(官紀)가 극도로 혼탁함에도 대각(臺閣: 사헌부와 사간원)이 바로잡지 못함은 직책을 다했다고 할 수 없고, 전하가 간신(諫臣)을 대하는 도리 또한 다하지 못해 10대간(臺諫)이 굳이 다투어도 1대신(大臣)의 말 한마디로 제지되어, 잘난 듯이 남의 뜻을 꺾으면서 가슴을 헤쳐 받아들이는 아량이라고는 없으니 오늘날 언로가 막힌 것이 어찌 제신(諸臣)들만 탓하겠습니까. 임금과 신하가 서로 정의(情意)가 통하지 못해 독촉과 견책이 따르게 되니, 신하는 임금의 뜻에 어긋날까 두려워 아유구용(阿諛苟容: 아첨하는 일)을 일삼아서 이른바 ‘황공대죄(惶恐待罪) 승정원(承政院)이요, 상교지당(上敎至當) 비변사(備邊司)’라는 옛말이 불행히도 오늘의 현상”이라고 비판하고, 백관의 임용과 파면에 대해서도 “등용할 때는 마치 무릎에라도 올려놓을 듯이 하다가 쫓아낼 때는 마치 깊은 못에라도 떨어뜨릴 듯하여 환국이 있을 때마다 형벌과 살육이 자행되니 어찌 국맥이 병들지 않으며 인심이 동요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제신을 위해 은혜와 원수를 쾌히 갚았다고 하겠으나 나라의 위망(危亡)이 따라올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 사(私)를 억누르시고 이목(耳目)을 밝히신다면 귀위(貴威)들이 입을 열지 못할 것이요, 저희들 청의(淸議)를 가진 신하들이 임금을 더 의지할 것입니다”라며 실정을 직간했다.

 

  ◆최우선 순위로 한림(翰林) 적격자에 추천돼 : 숙종시대 인물을 평하는데 있어서 나은 이동표에 대해서는 모두가 명신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기사년의 변’(인현왕후를 폐하고 장희빈을 왕후로 봉한 일)을 당했을 때 소를 올려 바른 말을 했고, 또한 권귀(權貴)의 무리를 배척해 혼탁한 조정의 분위기를 맑게 하고자 누구보다 앞장서 노력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문학(文學)과 행의(行誼)는 당대의 으뜸’이라는 평을 들었던 나은은 1644년 예천에서 태어났다. 14~15세 때 경서와 사기에 정통했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더니 항상 말하기를 “장부로 태어나서 마땅히 성현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나은은 명리에 뜻이 없어 30세가 넘도록 과거에 응하지 않았으나, 아우가 병사하고 여동생 또한 요절해 모친을 위로하기 위해 32세에 과거(東堂試)에 응시했다. 당시 시관(試官)이 나은의 명성을 듣고 “이번 과장에는 이모가 반드시 장원을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나은이 이 소문을 듣고는 웃더니 시험 당일 아침에 머리를 고의로 1천 번을 빚으면서 시작 시간을 넘김으로써 응시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이천소(李千梳)’라는 병칭을 얻게 되었다. 1675년 모친의 명에 따라 생원시에 합격하고 1677년 증광과에 수위(首位)로 합격했으나 파방(罷榜: 합격자 발표 취소)으로 실패하고, 1683년에 비로소 문과에 급제했다. 권지성균관학유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1689년 한림(翰林) 적격자를 추천하라는 임금의 명에 따라 나은이 영위(領位)로 추천되었고, 당시 수상 권대운은 “임금의 말씀이 이동표는 문학과 조행(操行)이 당세에 짝할 사람이 없으니 마땅히 옥당에 둘 일이지만 요직에 임용하기가 바쁘니 순서를 기다릴 수가 없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나은은 특명으로 성균관 전적에 임명되었고, 이틀 만에 다시 홍문관 부수찬에 발탁됐다. 나은이 부임하지 않고 사양하자 다시 사간원헌납에 임명했다.

 

  ◆지극한 효심, 모친상 후 시묘살이하다 별세 : 얼마 후 인현왕후가 폐위되었다.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 그 잘못을 극간하면서 직언한 신하들에게 특전을 내려줄 것을 호소하는 상소문을 작성해 궐내에 들여보냈다. 당시 임금은 신하들의 반발에 크게 진노하며 모두 엄한 형벌로 다스림은 물론, 다시 항소(抗疏)하는 사람은 역률(逆律)로 논하겠다고 했다. 이 때 나은은 죽음을 무릅쓰고 극간하려고 마음먹으면서도 모친에게 근심을 끼칠까 염려되어 그 뜻을 모친에게 이야기하니 모친도 허락해 상소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경직(硬直)하여 보는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모두 그 일로 인해 목숨을 바친다 해도 충(忠)에 보탬이 되지 않고 효(孝)에도 어긋날 뿐이라며, ‘옥산의 새 무덤(장희빈 부친 묘소)에는 양마석(羊馬石)이 솟아있고(玉山新阡羊馬嵯峨)/여양의 옛집(인현왕후 친정집)에는 근심과 걱정에 싸여 있다(驪陽舊宅氣像愁慘)’ 등의 문구를 삭제했다. 그러나 나은은 원래 내용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그 후 양사와 옥당이 인현왕후의 백부 민정중(閔鼎重)의 안률(按律: 죄를 조사해 다스림)을 합계(合啓)할 것을 청하니, 나은은 낯빛을 붉히며 반박하기를 “그대들이 중궁께서 손위되실 때 목숨을 걸고 다투지 못하며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놓고, 지금 또 이 사람의 죄를 논하려 하느냐. 그렇게 되면 성모(聖母)에게도 화가 미칠 터이니 그것을 어찌할 것이냐”라고 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이 나은에게 붓과 벼루를 내밀며 억지로 계초(啓草)를 쓰게 하자 목청을 돋우어 “내 비록 보잘 것 없으나 경연관(經筵官)으로 있으면서 어찌 남을 위해 대필하는 일을 하겠는가” 하고는 사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광주목사를 거쳐 1696년 53세에 삼척도호부사로 부임해서는, 어사가 최고의 치적을 쌓은 것으로 상주(上奏)할 정도로 선정을 펼친 뒤 1698년에 귀향했다. 그 해에 모친상을 당했다. 홀로 남은 모친의 상을 당한 후 슬퍼함이 지나쳐 몸을 부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은이 지나치게 집상(執喪)할 것을 염려해 모친이 병중에 유계(遺戒)를 써두었는데, 집안사람이 그것을 보여주며 슬픔을 자제할 것으로 권했으나 그것을 읽어보며 더욱 통곡하기도 했다. 지나친 슬픔으로 건강을 해쳐 삼년상을 다 치르지도 못하고, 결국 모친 묘소 앞 여막에서 1700년 7월에 별세하였다. 정조 9년(1785) 영남의 선비들이 나은의 덕을 진술해 시호를 내릴 것을 청하니 임금이 허락했고, 태상관(太常官)들의 의견에 따라 ‘충간(忠簡)’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청렴강직하고 대의에 따라 출처를 분명히 했던 나은은 “남자는 모름지기 천 길의 절벽에 선 듯한 기상이 있어야 한다”며 항상 스스로를 경계했다.

 

  ■ 이동표 약력 : △1644년 예천 출생 △1675년 생원시 합격 △1683년 문과 급제, 성균관 학유 △1691년 이조좌랑 △1693년 노모 봉양 위해 전라도관찰사 사양하고 광주목사 자원 △1696년 삼척도호부사 △1698년 춘양 은거 △1700년 모친 집상(執喪) 중 여막에서 별세 △1741년 이조판서 추증 △1785년 시호 충간(忠簡: 危身奉上曰忠 正直無邪曰簡)(김봉규 記者 嶺南日報 2012-02-22)

 

  이동표(壯元及第 取消된 ‘한 선비의 便紙’ 發見) [記事] : 조선시대 과거 회시(會試·과거 초시 합격자들이 2차로 치르던 시험)에 장원급제했으나 응시생들의 부정행위가 발각돼 합격이 일괄 취소되는 피해를 입은 한 선비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한글편지가 발견됐다. 이래호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 어문생활사연구소 전임연구원은 2012년 9월 19일 오후 4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한중연에서 개최하는 ‘제7차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과거를 보고 조정의 결정을 기다리던 선비 이동표(李東標·1644∼1700)가 파방(罷榜·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발표를 취소함) 소문에 대한 초조함을 누르고 걱정하실 어머니를 달래기 위해 쓴 편지 2통을 소개한다. 이날 ‘진성이씨 이동표가 언간’을 발표할 이 연구원에 따르면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이동표는 1677년(숙종 3년) 2월 실시된 과거 회시에서 장원급제 대상이었지만 다른 응시자들이 과거 시험장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바람에 초시와 회시 합격이 모두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나주목사 윤이익(尹以益)과 청산현감(靑山縣監) 홍제형(洪濟亨) 등 10여 명이 차서(借書·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지 글씨만 대필해 주는 일)나 차술(借述·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 내용을 작성해 주는 일)의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발각되자 숙종과 대신들이 논의 끝에 시험을 취소하는 파방을 결정했던 것이다. 이동표는 1677년 2월 그믐날(29일)에 이어 3월 4일 예천에 계신 어머니에게 쓴 한글편지에서 “과거를 이틀 동안 다 무사히 본 후에 선비들이 남을 데리고 든 사람이 있다고 하여 (합격자) 방을 내지 않고 그 과거를 파장(罷場)하고 다시 회시(會試)를 보게 하여 처음에는 (회시 보는 날을) 8일로 정하였다가 또 16일로 연기했는데 그날이나 반드시 볼지(시험이 치러질지), (이후로) 머물기가 민망하고 민망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원은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소식을 듣고 놀랄 어머니만을 걱정하고 있지만, 이동표가 같은 해(1677년) 8월과 10월에 다시 실시된 초시와 회시에 응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때의 충격이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동표는 그 후 1683년 실시된 과거에서 향시 2등, 회시에서는 장원을 하며 과거에 급제했다.(최영창 記者 文化日報 20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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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혁(仁川 나은병원 名勝地 探訪團 醴泉訪問) [記事] : 인천광역시 `나은병원'(루가의료재단) 하헌영 병원장을 비롯한 수간호사 30여명이 제5차 명승지 탐방을 위해 2014년 3월 22일 예천을 찾았다. 이번 명승지 탐방은 나은병원 고문으로 있는 용문면 태생의 이동혁 씨가 추천해 이뤄졌다. 탐방단은 용문면 초정연구원에 도착해 초정 권창륜 선생과 김상동 예천부군수의 환영을 받고 기념촬영 후 초간정을 거쳐 금당실 전통마을, 병암정, 예천읍 전경, 회룡포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이날 오후 6시 문경에 도착한 탐방단은 권영훈(전 대법원 근무) 씨의 이화령 별장에서 고윤환 문경시장과 담소를 나눈 후 문경관광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문경새재 1∼2관문, 도예가 천한봉 씨의 도자기 공장, 오미자·와인 공장 등을 견학했다. 이동혁 고문은 “예천의 빼어난 명승지를 보고 모두 감탄을 연발했다”며 “고향 예천을 소개하고 알릴 수 있어 더욱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동혁 씨는 이날 용문초등학교 동창인 초정 권창륜 선생에게 서예 연구 발전기금 1백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醴泉新聞 2014년 03월 26일 (수) 20:02:51)

 

  이동혁 : 예천의 자랑 2388 : 예천대사전 제118권 오늘 나와(祝 황영식. 정경은)/ 작성 장병창/ (독립운동가), 이동조(2008년 <히든카드>의 저자, 23477-23479쪽), 이동표(나은, 1689-1693년, 23479-23481쪽), 이동혁(MC), 이동훈(시인), 이령(1653년생, 지와집), 이만갑(예천읍장, 1952년), 이만지(1689-1696년, 23483-23487...../ 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 (daum 2015)

 

  이동혁 : 예천의 자랑 2191 : 예천체육 73(祝 우지민/예천방문 611)/ 작성 장병창/ 시간을 가졌다. 한편 이 날 하리면청년회 권경준(전임 사무차장) 김태호(전임 부회장) 씨가 표창패를 받았으며 MC 이동혁 씨가 감사패를 받았다.../ 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 (daum 2015)

 

  이동혁 : 기사번호: 5110/ (재경예천중동문회장) 김정희(재경예천여중고동문회장)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2부순서에서는 협동심계주, 모래가마니계주 등을 읍면대항으로 경기를 가졌으며 이어 MC 이동혁 씨의 사회로 노래자랑과 행운권 추첨으로 상품을.../ ycnews.co.kr/news (daum 2015)

 

  이동혁 : 용문노인회관에 30만원 기탁 : 2015.6.12/ MC 이동혁 씨가 지난 11일 모교인 용문초등학교 총동창회(회장 김철훈) 정기총회에 참석, 2부 행사를 재미있고 재치있게 진행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동혁 씨는 이날 용문.../ ycnews.co.kr/news/ (dau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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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훈(한맥文學 詩部門 新人賞 登壇) [記事] : 그 어릴 때 외딴 시골 토방에/ 호롱불 켜 놓고/ 구운 밤 익어가는 화롯가에 둘러앉아/ 옛날 옛적 사랑의 이야기 꽃피우고// 바깥 하늘에는/ 주먹 같은 별이/ 숲속의 검은 어둠을/ 무섭지 않게 지켜주고/ 산짐승도/ 몰래 마을로 내려와/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는/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간다(ꡐ설야ꡑ 전문). 용문면사무소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동훈 씨가 월간 한맥문학 8월호에ꡐ예천진호국제양궁장ꡑ 외 4편의 시로 신인상을 수상 등단했다. 이씨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도 공무원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醴泉新聞 2005-08-19 09:46:24)

 

  이동훈 : ‘우리詩’ 8월호와 연꽃/ 2010.08.13/ 남유정 ‘그늘’ 등 외 각 1편씩을 실었다.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는 성민희의 ‘겨울보리, 그 건강한 생명력’, 이동훈 ‘내 마음의 인사동’, 연재되고 있던 ‘알기 쉬운 詩창작 교실’은 18회이자 최종회인 임보의 ‘당신도 좋은 詩를 쓸.../ //blog.daum.net/jib17/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daum 2010)

 

  이동훈 : 이윤호 소설가와 글로세운집에서 막걸리 한잔~~~/ 2011.07.08/ 만났습니다. 제가 이육사문학관에 근무하는 지도 모르고 찾아 오셨는데... 예천에서 활동했던 이동훈 시인이 갑자기 병환으로 별세해서 문상을 왔다고 했습니다. 늦게.../ blog.daum.net/weebal2004/ 된장담그는시인(daum 2015)

 

  이동훈 : 흔들리는 즐거움/ 2014.09.24/ 경북 예천 출생, 안동고등학교 졸업,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 대구국어교사모임 회장, 전) 심인고등학교 국어교사, 현재 새글터문학회 회장, 진검베기연구모임.../ blog.naver.com/amhbook/ 한 권의 책, 만 번의 ..(daum 2015)

 

  이동훈 : 후유증으로 6/27일 작고한 예천 이동훈 시인을 회고하며.../ 2011.07.04/ cafe.daum.net/gjmh1962/... 경주문인협회(daum 2015)

 

  이동훈 : 故 이동훈 시인 1주기 장안사에서/ 2012.07.18/ 故 이동훈 시인 1주기 2012년 7월 15일 오전 10시에... 예천군 장안사에서 1주기를 마치고 안동 이퇴계 후손 납골당 진선궁에도 들렸다 왔습니다. 2012년 7월 15일 시인.../ cafe.daum.net/bakgidong... 시도반  | 댓글 1(daum 2015) 

 

  이동훈 : 고 이동훈 시인 1주기/ 2012.06.15/ 이동훈 시인의 1주기를 예천 용궁면 장안사에서 7월 15(일) 아침 10시에 거행합니다.- (당초에는 14(토요일)... 대구에서는 정삼일, 이행우, 성전중 시인이 함께할.../ cafe.daum.net/bakgidong... 시도반(daum 2015)

 

  이동훈 : 故 이동훈 詩人 영결식 근무지 하리면사무소에서 -2-/ 2011.06.30/ 소개 ...... 박기동 시인 <약력> 경북 예천군 호명면 출생... 가은읍 수예리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예보」시비가 있음. 예보 이동훈 기압이다. 온몸이 욱신욱신 뭐가.../ cafe.daum.net/penclubda... 국제 펜 대구..(daum 2015)

 

  이동훈 : 이동훈 詩 - 굼실능청 (택견코리아 펌글)/ 2011.09.15/ 이동훈(李東熏) 시인은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안동고,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을 하고, 현재 대구 심인중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2008 문장 21 시조 신인상, 2008.../ cafe.daum.net/tkyon/2lL... 택견지킴이(daum 2015)

 

  이동훈 : 씀바귀(이동훈)/ 2009.05.13/ 씀바귀 이동훈 속세의 맛 씨그므리 하다해서 씀바귀로... 옹기종기 모여 가느다란 긴 꽃대 노란꽃 피워 꽃길 만들었지 예천군 호명면 출생의 시인으로 카페지기의 학교 .../ cafe.daum.net/yms1/Ksak... 용문중학교 제..(daum 2015)

 

  이동훈 : 고 이동훈 님의 49재!/ 2011.07.03/ 새롭게 발심할 수 있는 산 자의 법회이기도 하다. 회룡포 시인 고 이동훈 님의 49재 일시가 정해졌습니다. 경북 예천 회룡포 전망대 인근 '장안사'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cafe.daum.net/bakgidong... 시도반(daum 2015)

 

  이동훈 : 보리수 제259회 낭송모임 결과/ 2007.06.04/ 보리수 시낭송모임을 마쳤습니다. 보리수 시인들과 연천의 네 분 문인..그리고 예천의 이동훈 시인과 고령의 차아란 시인이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저녁에는 진지한 토론이.../ cafe.daum.net/koreabori... 보리수 시낭송..  | 댓글 6(daum 2015)

 

  이동훈 : 도저히 빗속에 가보기 어려운 속세와 이별한 깊은 산속의.../ 2011.07.03/ * 구제역방역시 과로로 6/27 타계하신 예천군 이동훈 시인님의 영면을 국제팬/한국문협 문인여러분 함께 애도합니다./ cafe.daum.net/jwi0907/K... 금목문학(金木..  | 댓글 1(daum 2015)

 

  이동훈 : 첫 눈을 맞는 단상/ 2008.12.10/ 기쁨이 내리는 날은 쓸쓸함으로 가벼워진 낙엽처럼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눈 쌓이는 만큼의 수다를 떨고 싶다 * 眉山 : 구미 성전중 시인, * 매란당 : 예천 이동훈 시인/ cafe.daum.net/bakgidong... 시도반  | 댓글 3(daum 2015)

 

  이동훈 : 번번이 동행하던 문학기행.......행/ 2011.07.13/ *구제역 방역 과로에 의한 희생,예천 (고)이동훈 시인(제 옆의 맨가의 진한 밤색 바지),생전의 모습./ cafe.daum.net/jwi0907/K... 금목문학(金木..(daum 2015)
 

 

  이동훈 : 제272회 보리수 시낭송 모임을 마치고/ 2008.10.15/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예천이 고향인 박기동 시인의 말에 의하면 매년 동신제를 지내며... 회룡포를 끝으로 점촌터미널에서 이동훈 시인과 박기동.../ cafe.daum.net/koreabori... 보리수 시낭송..  | 댓글 2(daum 2015)

 

  이동훈 : 예천의 자랑 2388 : 예천대사전 제118권 오늘 나와(祝 황영식. 정경은)/ 작성 장병창/ MC), 이동훈(시인), 이령(1653년생, 지와집), 이만갑(예천읍장, 1952년), 이만지(1689-1696년, 23483-23487쪽), 이말손(방산재), 이명(1723년, 23488-23494쪽), 이목현(예천읍의장, 1952년), 이몽쌍(독립운동가), 이문좌(세촌), .../ 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 (dau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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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흡(李東洽) : 1956- , 호명면 출신, 일본 교토대 농학부 대학원 농학박사이다. 임업연구원 임산공학부 목재가공과 목재보존연구실 임업연구관이다.(松園金敎容先生傘壽紀念論文集 1997, 朝鮮日報 DB 2003)

 

  이동흡 : 산림연구원 이동흡 실장 충격보고/ 엑스레이 200회 촬영과 같다 편집국 ◈콘크리트 충격보고서와 대안 목재의 필요성 ▲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이동흡 최재원기자1979년까지만 해도 국내 목재산업은 세계 1위의 합판생산국으로 동남아시아로부터 대량의 원목을.../  (daum 2010)

 

  이동흡 : 리기다 옹벽 개발자 산림청(산림과학원) 이동흡 박사의 말말말/ 08. 12.05 11:33/ 조회: 407/ △ 친환경 운하의 평면도. 이동흡 박사는 “운하 건설 시 필요한 수심인 최저 6m를 위한 방벽도 목재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운하… 목재로 가능하다 ‘경부운하’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큰.../ (daum 2010)

 

  이동흡 : 죽은 나무로 환경 살리는 박사님/ 이동흡 산림과학원 과장/ 2010.04.19 00:01 입력 / [중앙경제]/ 창조 : 분홍빛 진달래가 활짝 피고 나무에 연초록 새잎이 막 돋기 시작한 8일 오후 서울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공학연구동 옆의 양지 바른 뜰에는 점심시간을 맞아 수목원 내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원들이 ‘벤치그네’를 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그네는 보통 그네가 아니었다. 발로 굴러 그네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등을 기댄 편안한 자세에서 위에서 늘어뜨린 줄을 당겨 움직였다. 줄은 도르래 세 개를 거쳐 벤치 뒤쪽에 연결돼 있었다. 줄을 당기면 의자가 뒤로 당겨지고, 줄을 놓으면 의자가 앞으로 가는 식이었다. 그네를 즐기던 박영란(26·여) 연구원은 “손으로 당기니 힘이 덜 들고 편하다”고 했다. 이 벤치그네는 휴일마다 개방되는 홍릉수목원의 명물이 됐다. 특히 어린이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를 고안해 낸 산림과학원 이동흡(54·환경소재공학과장) 박사는 “발을 구를 힘이 달리는 노인을 위해 만들었는데 젊은 사람들도 좋아한다”며 웃었다. 줄을 당기는 힘을 이용해 조명까지 밝힐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들이 점심시간을 맞아 이동흡 박사가 만든 벤치그네를 타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그네는 발로 구르는 대신 손으로 줄을 당기도록 돼 있어 힘이 덜 들고 훨씬 편안한 자세로 탈 수 있다. [조용철 기자]/ 이야기를 해보니 그의 ‘작품’은 그네뿐만이 아니었다. 아까시나무를 통째로 다듬어 만든 벤치나 산책로를 따라 반딧불이처럼 반짝거리는 산책길 안내등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안내등은 지름 8㎝, 높이 80㎝ 정도의 나무 원통을 파낸 뒤 태양광 축전기와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광센서를 설치했다. 낮 시간에 햇빛으로 전기를 만들어 뒀다가 어두컴컴해지면 불이 약하게 깜빡거린다. 숲 속까지 길게 전깃줄을 드리울 필요가 없게 한 것이다. 이 박사는 “자전거 길이나 올레길·숲길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밤에 조명이 없으면 신변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이런 안내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까시나무 벤치는 통나무가 터지거나 뒤틀리지 않도록 심을 파냈고, 벤치 중간에는 꽃을 심을 수 있게 화분을 곁들였다. 그의 발명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야채 타워’다. 사각 틀에 흙을 채워 만든 화분이다. 윗면이 아니라 옆면에 작은 틈을 내고, 거기에 상추·치커리·토마토·부추 같은 걸 심는다. 야채타워는 모터로 회전한다. 아파트 발코니에 세워놓으면 회전 모터로 네 면이 골고루 햇볕을 받게 된다. 분수를 설치해 화분 아래 물통의 물을 자동으로 끌어올려 화분을 적신다. 이 박사를 도와 목공일을 하는 임학순(67)씨는 “상추를 심으면 4~5인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란다”고 전했다. 그는 “전기요금이 일주일에 1800원 정도 들지만 실내 습도 조절과 어린이 식물 체험까지 할 수 있으니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야채 타워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회전시킬 수 있어 일반 화분보다 채소를 많이 기를 수 있다. 산책길 안내등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반짝거리고, 태양광 발전을 이용하므로 전기선 연결이 필요 없다. 그는 40여 개의 특허를 낸 산림과학원의 최다 특허자다. 농학박사인 그가 본연의 연구 분야에서 ‘살짝’ 벗어나 이처럼 아기자기한 발명에 손대기 시작한 건 6년 전쯤이다. 불쏘시개로 쓰이기 일쑤인 간벌재의 활용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할 무렵이다. 국내 목재 자급률이 9%에 불과한 상황에서 숲가꾸기 작업 후 버려지는 연간 15만6000㎥의 간벌재를 활용할 방도가 없을까 고민했다. 그가 간벌재를 활용할 곳으로 처음 떠올린 건 도시의 콘크리트 옹벽을 덮는 목책(나무 담장)이었다. 담장과 옹벽 사이에 흙을 채우고 거기에 풀을 심어 푸르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벽면을 목재로 가리고, 목재와 옹벽 사이를 흙으로 채운 뒤 풀과 나무를 심는 방식이다. 2008년 경남 진주에 설치한 간벌재 벽면은 올 10월 전국체전을 앞두고 녹색도시로 변모하려는 진주시에 큰 도움이 됐다. 이 박사는 간벌재를 하천 가꾸기에도 활용한다. 흔히 폭우와 급류로 인한 세굴(강바닥이 파헤쳐지는 것)을 막으려고 계곡이나 하천에 콘크리트로 돌을 붙여 호안(벽)을 쌓는데, 그는 간벌재로 사각틀을 짜고 거기에 돌을 채우는 방식을 개발했다. 시멘트를 쓰지 않아도 되고, 돌 틈에 물고기가 자랄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실제로 서울 양천구 목2동 주민센터 뒷산 계곡을 복원하는 데 이 방법을 적용했다.

 

  강원도 영월의 국유림 계곡 200m 구간에도 연내 설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 박사는 “뭐든 아이디어를 내고 처음 만들어 나갈 때에는 현장에 나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챙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주에서 옹벽을 쌓을 때는 연구실을 떠나 몇 달씩 현장에서 지내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그는 1979년 산림과학원에 들어온 이후 주로 목재 방부제나 신소재 분야 연구에 주력했다. 96~97년 전국 사찰을 돌며 흰개미가 목조 건축물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연구를 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나무는 물속에서 썩지 않고 200년 이상 버틸 수 있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₂)를 광합성으로 흡수해 저장하는 효과가 있다”며 “하천 살리기를 기후변화 대응 방안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라고 말했다.(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간벌재=나무를 촘촘히 심어 놓고 놔두면 콩나물처럼 가늘게 자라는 목재로서의 쓸모가 줄어든다. 그래서 숲이 될 때까지 서너 차례 솎아내기를 하는데 그때 베어낸 나무를 간벌해 얻은 목재라 해 간벌재 혹은 간벌목이라고 한다.(daum 2010)

 

  이동흡 : [삼호개발] 리기다 소나무 옹벽 개발자 (산림청 이동흡 박사)/ 2009.03.24/ 최근 국립산림과학원 이동흡 박사는 “이러한 친환경 운하는 목재를 사용할 때 가능하다 ” 며, 목재를 이용해 만든...“목재를 이용한 운하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상태가 된다”는 이동흡 박사는 “목재를 이용한 공법은 간벌재를 일정한.../ Daum 증권 > 종목토론방(daum 2010)

 

  이동흡 : [삼호] 리기다 소나무 옹벽 개발자 (산림청 이동흡 박사)/ 2008.12.09/ 최근 국립산림과학원 이동흡 박사는 “이러한 친환경 운하는 목재를 사용할 때 가능하다 ” 며, 목재를 이용해 만든...“목재를 이용한 운하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상태가 된다”는 이동흡 박사는 “목재를 이용한 공법은 간벌재를 일정한.../ Daum 증권 > 종목토론방(daum 2010)

 

  이동흡 [專門資料] : [] 국내산 리기다소나무를 이용한 목재 모형 사방댐의 강도 성능 평가 1 (11p)/ 이동흡, 김상우...  | 한국목재공학회  | 2008 | 태그:  erosion control dam , pitch pine ...(daum 2010)

 

  이동흡 [專門資料] : [] 비파괴 검사에 의한 전통목조건축물의 흰개미 열화 특성 조사 (9p)/ 서울시 내에 소재한 현재까지 이용되고 있는 목조건물에 대한 열화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된 목조건물은 겨울철임에도 흰개미에 의한 피해가 진행되고 있었다. 목조건물의 흰개미 피해 실태 및 원인을 조사하기.../ 이동흡, 손동원...  | 한국목재공학회  | 2008 | 태그:  Koean traditional wooden house , termite ...(daum 2010)

 

  이동흡 [專門資料] : [] 야외사용을 목적으로 공장라인에서 생산한 방부합판의 성능평가 (8p)/ 이동흡, 손동원...  | 한국목재공학회  | 2008 | 태그:  decks , preservative treated plywood , PTP , copper azole ...(daum 2010)

 

  이동흡 [專門資料] : [] 학술포스터발표회 : 환경 친화형 산책로 조성을 위한 포장 재료의 개발 (4p)/ 이동흡, 신동규 , 김대영 ...  | 한국환경생태학회  | 2007(daum 2010)

 

  이동흡 [專門資料] : [] 원저 : CCA(Chromated-copper-arsenate) 처리 방부목재의 열분해와 중금속 회수 (5p)/ 이동흡, 손동원...  |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구 한국...  | 2006 | 태그:  CCA-treated wood , Low temperature thermal decomposition ...(daum 2010)

 

  이동흡 [專門資料] : [] 해양어초사용을 위한 방부목재의 해수 용탈성 평가 (11p)/ 이동흡, 이명재...  | 한국목재공학회  | 2005 | 태그:  fish-breeding ground , Leaching stability ...(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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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면 출신 박계수, 백두대간 3회종주, 한국 최고기록 인증받아...축하합니다.

 

  박계수(最高齡 白頭大簡 3回縱走, 大韓民國 最高記錄 認證받아 : 柳川面 出生 박계수 氏) [記事] : 유천면 태생의 출향인 박계수(77·서울) 씨가 2016년 2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4회 도전포럼 및 인증식에서 '백두대간 최고령 3회 종주'로 대한민국 최고기록 인증서를 받았다. 박씨는 50세, 60세, 70세 때 백두대간을 종주해 우리나라 최고령 3회 종주 대한민국 최고 기록 인증서를 받았다. 그는 "조만간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하여 임진각까지 90일 동안 2천8백여km를 걷는 세 번째 해안선 종주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15년 동안 5권의 '외손주 육아 일기' 책을 써서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최고기록을 인증받은 바 있다. 한편, (사)도전한국인운동협회·도전한국인본부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도전 포럼은 일상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도전을 하는 사람들과 세계 속에서 끝없이 도전해 온 도전인을 발굴, 시상 하는 행사이다.(醴泉新聞 2016년 03월 23일 (수) 13: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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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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