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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334:이문좌(2)-이문표(1)
작성자장병창 @ 2016.04.04 18:33:41

  예천의 자랑(4334) : 이문좌(2)-이문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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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순효(孫舜孝)는 의논하기를, ꡒ예전에 관(官)을 설치함에 있어 반드시 대관을 중히 여겼는데, 이는 대간이 중한 것이 아니라 조정을 중히 하는 까닭입니다. 대간은 모름지기 제 1류(流)의 사람을 써서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분발하여 말을 다하여 숨기지 아니한 연후에야 조정이 바르고 만백성도 바르게 될 것입니다. 옛날 〈한(漢)나라〉 소망지(蕭望之)가 간의 대부(諫議大夫)로서 외직(外職)에 보임(補任)되자 상소(上疏)하기를, ꡐ간관(諫官)을 내어 보내어 군수(郡守)에 채우는 것은 이른바 그 끝을 근심하고 근본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조정에 간하는 신하가 없으면 임금이 허물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ꡑ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그럴 듯합니다. 세종조(世宗朝)에 집현전(集賢殿)의 여러 선비가 대간에 나들었으며, 혹시 수령 가운데 청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자로서 특별히 간관을 제수하기도 하였으나 대관(臺官)을 외직에 채우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수령이 비록 중하다 하더라도 어찌 대간보다 중하겠습니까? 또 인재(人才)는 한도가 있는 것인데, 곧은 도(道)로 과감히 말하는 선비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세종조에 하연(河演)이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있을 때에 정갑손(鄭甲孫)은 대사헌(大司憲)이 되었고 이의흡(李宜洽)은 집의(執義)가 되었는데, 하루는 조계(朝啓)에 하연과 정갑손이 같이 들어와서, 정갑손이 하연이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판 일을 곧게 말하자, 얼마 되지 아니하여 정갑손은 함길도 감사(咸吉道監司)가 되고 이의흡은 영흥 부사(永興府使)가 되었으니, 지금 말하는 자가 이르기를, ꡐ하연이 해친 것이다.ꡑ합니다. 만약 예사로 간관을 외임에 보(補)하면 아마도 곧은 말을 하는 선비가 없을 것이며, 비록 있다 하더라도 어찌 하연처럼 중상(中傷)하는 일이 없겠습니까? 신이 원하건대, 간신(諫臣)은 외임에 보하지 말게 하소서. 신이 또 마음에 품은 바가 있어 진술하기를 원하는 것은, 근래의 정사에서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김전(金銓)을 예안 현감(禮安縣監)으로 삼았는데, 신은 김전의 사람됨을 압니다. 능히 기르면 다른 날 문장의 재주가 될 만하니, 이같은 사람은 많이 얻을 수 없습니다. 육기(六期)를 외직에 있으면 반드시 그 학업을 잃을 것이니, 이는 그 재주를 버리는 것입니다. 세종께서 문장의 선비를 골라서 집현전에 두고 양성하였는데, 정창손(鄭昌孫)․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홍응(洪應)․노사신(盧思愼)․이극감(李克堪)․서거정(徐居正)․강희맹(姜希孟)․이승소(李承昭)․이효첨(李孝瞻)․이파(李坡) 등의 무리가 오래 집현전에 있으면서 그 학업을 오로지하고 그 마음을 수양하여 유악(?幄)22322) 에 조용히 모시어 결함을 돕기를 의논하고 생각하였는데, 모두 수령을 지내지 아니하였으나 마침내 원훈(元勳)과 석보(碩輔)가 되었으니, 어찌하여 반드시 수령을 지낸 뒤에야 어진 선비가 되는 것이겠습니까? 신이 또 듣건대, 계씨(季氏)22323) 가 자고(子羔)22324) 를 비재(費宰)로 삼으니, 공자(孔子)가, ꡐ남의 아들을 해친다.ꡑ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바로 자고가 바탕은 아름다우나 아직 배우지 아니하여, 갑자기 백성을 다스리게 하면 다만 해롭게만 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이문좌(李文佐)는 나이가 젊고 재주가 있어 갑과(甲科)에 합격하였는데, 갑자기 안협 현감(安峽縣監)으로 제수하자 사문(斯文)22325) 에서 모두 애석해 하였는데, 이제 또 김전을 현감으로 삼았으니, 어진이를 기르는 뜻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재주를 구하고자 하면서 기르지 아니하는 것은 비유컨대 옥(玉)을 갈지 아니하고서 문채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ꡐ성인(聖人)은 어진이를 길러서 만백성에게 미치게 한다.ꡑ고 하였으니, 신은 청컨대 김전에게 다시 홍문관의 직을 주어서 기르게 하소서. 신이 마음속에 품은 바가 이와 같으므로, 감히 덧붙인 말을 아룁니다.ꡓ ...하였는데, 어서(御書)에 이르기를, ꡒ내가 생각하건대, 예전에 나라를 세우매 모름지기 안과 밖이 서로 견제하도록 하고 경중(輕重)을 서로 알맞게 하였는데, 주(周)나라와 당(唐)나라는 밖을 중히 하고 안을 경(輕)히 하였고, 진(秦)나라와 위(魏)나라는 밖을 경히 하고 안을 중히 하였으니, 경중을 치우치게 하고 안팎을 차별하는 것이 어찌 가하겠는가? 국가에서 사람을 쓰는 데에 비록 안팎의 다름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대부는 진실로 경중을 가리는 마음이 있다. 대간의 임무를 내가 어찌 가볍게 여기겠는가? 임금의 이목(耳目)이요 조정의 기강(紀綱)이 되어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고 재상의 실수를 공격하니, 이른바, ꡐ말이 승여(乘輿)에 미치면 천자가 얼굴을 고치고 일이 낭묘(廊廟)22326) 에 관계되면 재상이 대죄(待罪)한다.ꡑ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그 예기(銳氣)를 기르고 중한 권력을 빌려 주어서 간악한 싹을 꺾고 정치를 깨끗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땅이 좁고 인재가 많지 아니하므로, 학문이 넓고 지식이 풍부한 선비를 한때의 인선(人選)을 극진히 하여 조석으로 시종(侍從)시키니, 유익함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반드시 세무(世務)에 통하고 이사(吏事)에 밝으며, 경술(經術)을 쓰고 교화를 펴며 풍속을 후하게 하고 전리(田理)22327) 를 편히 할 자가 있을 것이다. 백성을 가까이 하는 관리를 옛부터 누가 이를 중히 여기지 아니하였겠는가? 이제 관직에 구애되어, 그 어려서 배우고 장년(壯年)에 벼슬하여 임금을 돕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효(?)를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장차 어디에 그 어질고 능함을 시험할 것인가? 나는 안팎을 고르게 하고 사체(事體)에 통하여 현량(賢良)한 사람을 뽑아서 수령에 보임(補任)하여 우리 적자(赤子)22328) 를 편히 하려고 하는데 이제 여러 의논을 보건대, 내가 미치지 못하겠다. 그러나 특명에 있는 것은 무방하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1책 615면/ 【분류】 *행정(行政)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註 22318]문한(文翰) : 문필(文筆). ☞ / [註 22319]성학(聖學) : 임금의 학문. ☞ / [註 22320]구중(九重) : 구중 궁궐. 곧 임금을 가리킴. ☞ / [註 22321]우천(右遷) : 높은 관직이나 지위로 옮김. ☞ / [註 22322]유악(?幄) : 경연(經筵). ☞ / [註 22323]계씨(季氏) : 춘추때 노(魯)나라 대부(大夫). ☞ / [註 22324]자고(子羔) : 공자(孔子)의 제자. ☞ / [註 22325]사문(斯文) : 유림(儒林). ☞ / [註 22326]낭묘(廊廟) : 의정부. ☞ / [註 22327]전리(田理) : 촌락(村落). ☞ / [註 22328]적자(赤子) : 백성. ☞(www.history.go.kr 2009)

 

  이문좌(李文佐) : 블로그/ 2009.09.13/ 22世 이문좌(李文佐) *평리성암공파 1461년(세조 7)~1491년(성종 22) [문과] 성종(成宗) 14년 (1483) 계묘(癸卯) 춘당대시(春塘臺試) 갑과(甲科) 1[장원(壯元)]위 [생원진사시] 성종(成宗) 11년 (148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 //blog.daum.net/| 야촌(이재훈)(daum 2010)

 

  이문좌(李文佐)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성종(成宗) 14년, 과거시험연도 : 1483 계묘, 시험명 : 춘당대시(春塘臺試), 등위 : 갑과1(甲科1)/ [인적 사항] 성명(姓名) : 이문좌(李文佐), 자 : 현도(顯道), 본관(本貫) : 경주(慶州)/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480(경자) 생원시, 전력(前歷) : 생원(生員), 관직(官職) : 전적(典籍)/ [가족사항] 부(父) : 이계상(李繼祥), 조부(祖父) : 권생(權生), 증조부(曾祖父) : 권진(權進), 처부(妻父) : 권선(權善)(daum 2010)

 

  이문좌 : 이보현(李寶鉉) 블로그/ 2010.07.15/ 이보현(李寶鉉) *평리성암공파 22世 細村공 李文佐의 후손 1893년(고종 30)∼1968년. 일제강점기 유학자·한의사. 자는 응선(應善)이고, 호는 봉은(鳳隱)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강원도 양양(襄陽) 지내리(池內里) 출신이다.../ //blog.daum.net/ 야촌(이재훈)(daum 2010)

 

  이문좌 : (남양주)영의정 이유원(裕元)묘·수장비-경주이씨-블로그/ 2010.07.14/ ...)이시술(李時術) : 이조참판, 아들-①세장(世章) ②세필(世弼) ●(28세-①)이세장(李世章) : 오천군 (29세)이문좌(李文佐) (30세)이종악(李宗岳) : 도사 (31세) 이경일(李敬一) : 좌의정 , 오은군, 효정공, 생부-종열(宗悅)-홍좌(弘佐) .../  (daum 2010)

 

  이문좌 : ■ 경주 이씨 벌열(閥閱) - 1 블로그/ 2009.03.29/ ...李集龜)(순조조) 이 철(李 鐵)(선조조) 이숭수(李崇壽)(성종조) 이 오(李 塢)( ) 이 절(李 節)(명종조) 이문좌(李文佐)(성종조) 이종지(李種地)(세종조) 이문병(李文炳)( ) 이인신(李仁臣)( ) 이중협(李重協)(정조조) 이 통(李 通.../ //blog.daum.net/ 경주(慶州-月城)이씨(daum 2010)

 

  이문좌 : 慶州 李氏(경주이씨) (118).블로그/ 2010.03.14/ 副統領을 지낸 李始榮(이시영)과 財界의 巨木이었던 三星그룹의 李秉喆會長이 있다. ▣ 科擧及弟者(朝鮮時代) 李文佐(이문좌) : 文科 成宗14年(1483) 春塘臺試 甲科 壯元及弟 李乙奎(이을규) : 文科 中宗30年(1535) 別試2 甲科.../ //blog.daum.net/kyk548/ 아까돔보(daum 2010)

 

  이문좌 : Re:성씨의 종류... 경주이씨...카페/ 2010.07.16/ ...지낸 이시영(李始榮)과 재계의 거목이었던 삼성그룹의 이병철회장이 있다.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문좌(李文佐) : 문과(文科) 성종14년(1483) 춘당대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을규(李乙奎) : 문과(文科) 중종30년(1535) 별시.../ //cafe.daum.net/mugige.com/CXRS/5 | 무지개동산에서 休~~// 경주이씨(慶州氏, 월성) 블로그/ 2008.10.23// 경주이씨(慶州氏) 익재공파 웹문서/ 2010.07.28(daum 2010)

 

  이문좌(李文佐) : 본관(本貫) 경주(慶州), 시대(時代) (1461-1491), 자(字) 현도(顯道), 호(號) 세촌(細村)/ 이력(履歷)/ 이문좌(李文佐) :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현도(顯道), 호는 세촌(細村). 감무 계상(繼祥)의 아들이다. 일찍이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 등과 더불어 김종직(金宗直)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다. 1483년(성종 14)생원으로 춘당문과(春塘文科)에서 갑과 1인으로 급제하여 문명을 떨쳤다. 그렇지만 안협현감(安峽縣監)에 임명되어 당시인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으며, 사화의 후유증으로 크게 중용되지 못하고 전적에 머물렀다. 예천의 인산서원(仁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國朝榜目, 醴泉邑誌/.〈朱雄英>(daum 2010)

 

  이문좌 : <예천 신문 고장의 인물>/ 이문좌(1461-1491)는 용문면 하금곡리 사람으로, 자는 현도(顯道), 호는 세촌(細村), 본관은 경주, 상(祥)의 맏아들,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풍채가 늠름하고 덕행이 남과 달랐다. 문장에 능하고 성리학에 통달하여 1480년(성종 11)에 진사가 되고, 1483년(성종 14)에 식년 문과에 갑과로 장원 급제하였다. 국립대학인 성균관에 들어가 학유에 기용되고, 곧 박사, 전적(1484)으로 승진되었다. 이어서 서장관(1484)으로서 중국 명 나라에 다녀올 때 부사(副使)가 비리를 범하므로 논박하여 바로 잡았으나, 부사의 원망을 사게 되었다. 귀국하여 정랑에 임명되었다. 이어 승문원 교검으로 옮기고, 춘추관 기주관과 편수관을 겸하였다. 그리고 사헌부 감찰로 물망에 올랐으나, 융통성 없는 너무 곧은 성격 때문에 훈구파들의 방해로 헛일이 되었다. 더욱이 밀려나서 안협 현감(1486)으로 좌천되었다. 안협은 토질이 기름지지 못하였다. 여러 해 가뭄이 들자, 백성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문좌는 세금을 줄이고, 형벌을 가볍게 하고, 정부미를 풀어 도와주었다. 벼슬을 그만 두려하자(1488), 안협 현민들이 가마에 매달려 울면서 말리었다. 할 수 없이 그냥 머물다가, 그 후 6년 동안 벼슬을 더 하다가 관아에서 31살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모두 슬퍼하였다. 하금곡2리 유전동 개금자의 인산서원(仁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이문좌는 하금곡리 사람 권오복(權五福)과 친하여, 권오복의 여동생인 권선(權善)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나중에 권오복이 사형 당하고, 김종직의 제자들이 모두 화를 입은 무오사화(1498)가 일어났다. 이 때 이문좌는 이미 타계하였기에 화를 면하였으나, 부인과 아들인 절(節, 1491-1578)은 바닷가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1506)으로 풀려났다. <장병창 논설위원> / (daum 2010)

 

  이문좌 : <국조 문과 방목>/ 이문좌(李文佐) More Info. 성종(成宗)14년(1483년), 춘당대시(春塘臺試) 갑과1(甲科1)/ > 인적사항 자(字) 현도(顯道), 본관(本貫) 경주(慶州)/ > 가족사항 부(父) 이계상(李繼祥), 조부(祖父) 권생(權生), 증조부(曾祖父) 권진(權進), 처부(妻父)   권선(權善)/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480(경자) 생원시, 전력(前歷) 생원(生員), 관직(官職) 전적(典籍)(daum 2010)

 

  이문좌 : 문헌(文獻)/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이문좌(李文佐) #경상도(慶尙道)  예천(醴泉)/ *인산서원(仁山書院)/ 영조을사건(英祖乙巳建) (1725) 용문면 하금곡리/ 제향. 권맹손(호송당 판서 본예천). 이문좌(호세촌 안협현감 본경주). 권오기(호졸재 좌통례 본예천). 이광윤(호양서 부제학 증도승지 본경주) 김경언(호눌재 병조정랑 본순천). 권용(호선계 상서원직장 수중추부사 본예천)./ 祭享. 權孟孫(號松堂 判書 本禮泉). 李文佐(號細村 安峽縣監 本慶州). 權五紀(號拙齋 左通禮 本禮泉). 李光胤(號讓西 副提學 贈都承旨 本慶州) 金慶言(號訥齋 兵曹正郞 本順天). 權墉(號仙溪 尙瑞院直長 壽中樞府使 本禮泉).(daum 2010)

 

  이문좌 : Re:경주이씨 조사표-조선조 급제자정록에~카페/ 2010.03.07/ 世祖12년, 高城春試 2등 이종윤(李從允): 世祖14년, 式年試, 乙科 이 여(李 呂): 睿宗1년, 秋場, 丙科 이문좌(李文佐): 成宗14년, 式年試, 甲科 이종준(李宗準): 成宗16년, 別試, 甲科 이 오(李 鰲): 成宗17년, 式年試, 丙科 이 원.../ //cafe.daum.net/Leeseokgyu/7Jlj/25 | 경주 백봉(daum 2010)

 

  이문좌 : 경주(慶州) - 이(李)웹문서/ 2010.07.31/ ...) 1674 갑인 경주(慶州) - 이(李) 甲科 1위 이규팽(李圭 ) 1791 신해 경주(慶州) - 이(李) 甲科 1위 이문좌(李文佐) 경주(慶州) - 이(李) 甲科 1위 이석표(李錫杓) 1704 갑신 경주(慶州) - 이(李) 甲科 1위 이영철(李永喆) 1739 기미.../ (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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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표(李文標) : 1663(현종 4)-1731(영조 7), 호명면 종산리 고미(古山) 출신, 자는 정칙(正則), 호는 인헌(仁軒), 본관은 진성, 충(沖)의 현손(玄孫), 박익(博翼)의 3자, 재종형 나은 이동표(再從兄懶隱李東標)의 제자, 문장에 능하여 1713년(숙종 39)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33위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 필선(世子侍講院弼善),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역임하고, 외직(外職)으로 강원도 도사(江原道都事), 보령(保寧)과 부안 현감(扶安縣監)을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고, 특히 부안 현감(扶安縣監)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1728)이 일어나 군사적 공로가 많았으나 1728년(영조 4) 6월 29일 사간 강필경(姜必慶)이 상소하기를, "김수종(金守宗)이 부안에 살면서 읍내의 여러 사람과 체결하여 함께 반란하였는데, 전 부안 현감 이문표는 몰랐습니다. 나문(拿問)하여 죄를 주소서."하니 윤허하였고, 1729년(영조 5) 4월 30일에야 당시의 공이 인정되어 석방되어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지냈다. 그러나 관찰사의 시기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 호명면에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문집(文集)이 있다. 묘는 군 남쪽 뇌방산 유좌(磊方山酉坐)에 있다. 천부적 자태가 순결하고 기품이 관후(寬厚)하였다(族譜, 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41, 醴泉郡誌 1939, 朝鮮寰輿勝覽 1929, 文科榜目, 英祖實錄). [承政院日記] : 성균관 학유(學諭, 除授 1716.2. 15), 전적(典籍, 除授 1716.5.20), 형조 좌랑(刑曹佐郞, 除授 1717.5.12), 겸춘추관 기사관(兼春秋館記事官, 除授 1717.5.14), 병조 좌랑(除授 1717.9.4), 겸춘추관 기사관(除授 1717.12.7), 보령 현감(保寧縣監, 下直 1718.3.12, 離任 1719.3.2)을 지냈다.(承政院日記)

 

  이문표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청대일기 / 淸臺日記 上 / 己亥(1719, 肅宗 45) / 三月  / 十五日  / 回送介奴, 修書于家親, 買送藥?蟹十六介․石魚十尾. 館?持來今月朝紙來納, 略見則三月初二日, 忠淸道十邑, 大同米未收守令, 拿問現告, 洪州前縣監 趙錫命․時任牧使 李庭濟․瑞山郡守 李命大․結城縣監 李基聖․連山縣監 李玄徵․海美郭?和․藍浦前任洪時傑․時任李太元․燕?前任金?․保寧 李文標․稷山前任黃夏民․時任沈珙․木川 姜碩泰. 初三日, 權參判珪上書, 辭今番加資, 呈政院, 還出給. 五道儒生, 生員李萬和等上書, 大?文正公 宋時烈․宋浚吉兩先正, 道德之懿, 門路之正, 不可不陞配聖廟, 而尙?從祀之典, 士林之抑鬱, 如何哉. 玆以申請, ?稟大朝, 快施盛典, 以定士?以幸斯文事, 入達. 答曰, 今以兩先正從祀文廟事, 諸道章甫合辭陳請, 尊賢之誠, 余甚嘉尙, 而尙?準許者, 非有他意, 盖所以重其事也. 答持平 李重協書曰, 今玆書陳, 盖出憤?, 而若以移咨恐動, 則易被生梗, 辱國非細, 非思之不深也, 此非獨余意, 聖敎如此矣. 初四日, 答執義 李鳳翼書曰, 書陳之事, 此非承善․宮官之不善周旋之致, 譴罷之情, 殊涉太過. 慶科異於他科, 不宜退行矣.(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청대일기 / 淸臺日記 上 / 癸卯(1723, 景宗 3) / 四月, 小  / 二十日  / 聖懲來訪, 聞月初龍咸四十餘人, 作遊山行, 到陽山留一日而歸. 日昨洪主簿丈爲訪申察訪 仙遊洞書齋, 仁?․齎予諸人隨往, 要余同行, 蓋有宿約也, 無馬未去, 極歎極歎. 作書仁?, 聞都政今初七日爲之, 嶺人惟丁勉?得平安都事, 柳明彦得禮佐, 李文標丈日前自京下歸云.(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英祖 1년(1725) 10월 좌목 ./ 왕 재위년도  영조 1년  / 좌목(座目) / 영의정(領議政) 정호(鄭澔) / 좌의정(左議政) 민진원(閔鎭遠) / 우의정(右議政) 이관명(李觀命) / 당상(堂上) / 행부사직(行副司直) 홍만조(洪萬朝)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심수현(沈壽賢) / 행의정부좌참찬(行議政府左參贊) 홍치중(洪致中) 유사  / 행이조판서(行吏曹判書) 이의현(李宜顯) 유사  / 병조판서(兵曹判書) 조도빈(趙道彬) / 행부호군(行副護軍)/ 호조판서(戶曹判書) 신사철(申思喆) 유사  / 행사직(行司直) 오명항(吳命恒) / 형조판서(刑曹判書) 김흥경(金興慶) / 예조판서(禮曹判書) 심택현(沈宅賢) /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이병상(李秉常) 유사  / 행부호군(行副護軍) 이재(李縡) /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홍석보(洪錫輔) / 행승정원도승지(行承政院都承旨) 권업(權) /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이봉상(李鳳祥) / 행부호군(行副護軍) 장붕익(張鵬翼) / 행부사직(行副司直) 이진망(李眞望) / 형조참판(刑曹參判) 조관빈(趙觀彬) /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황귀하(黃龜河) / 행성균관대사성(行成均館大司成) 이교악(李喬岳) / 행부사직(行副司直) 정형익(鄭亨益) / 문낭청(文?廳) / 봉상시정(奉常寺正) 이자(李滋) / 이조좌랑 이유(李瑜) / 병조정랑(兵曹正郞) 이문표(李文標) / 1원은 임명되지 못함  / 무낭청(武?廳) / 부사정(副司正) 최명주(崔命柱) / 선전관(宣傳官) 윤화정(尹和鼎) / 부사정(副司正) 홍태두(洪泰斗) / 부사정(副司正) 윤택정(尹宅鼎) / 부사정(副司正) 이현(李玹) / 부사과(副司果) 이윤지(李允之) / 부사정(副司正) 이사응(李思膺) / 훈련원주부(訓鍊院注簿) 신재하(申在夏)(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英祖 1년(1725) 11월 좌목 ./ 왕 재위년도  영조 1년/ 좌목(座目) / 영의정(領議政) 정호(鄭澔) / 좌의정(左議政) 민진원(閔鎭遠) / 우의정(右議政) 이관명(李觀命) / 당상(堂上) / 행부사직(行副司直) 홍만조(洪萬朝)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심수현(沈壽賢) /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홍치중(洪致中) 유사  / 행이조판서(行吏曹判書) 이의현(李宜顯) 유사  / 병조판서(兵曹判書) 조도빈(趙道彬) / 행부호군(行副護軍) 권성(權) / 호조판서(戶曹判書) 신사철(申思喆) 유사  / 행사직(行司直) 오명항(吳命恒) /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 김흥경(金興慶) / 예조판서(禮曹判書) 심택현(沈宅賢) /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이병상(李秉常) 유사  / 행부호군(行副護軍) 이재(李縡) / 행성균관대사성(行成均館大司成) 홍석보(洪錫輔) / 행승정원도승지(行承政院都承旨) 권업(權) /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이봉상(李鳳祥) / 행부호군(行副護軍) 장붕익(張鵬翼) / 행부사직(行副司直) 이진망(李眞望) / 형조참판(刑曹參判) 조관빈(趙觀彬) /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황귀하(黃龜河) / 행사간원대사간(行司諫院大司諫) 이교악(李喬岳) / 행부사직(行副司直) 정형익(鄭亨益) / 문낭청(文?廳) / 봉상시정(奉常寺正) 이자(李滋) / 이조좌랑(吏曹左郞) 이유(李瑜) / 병조정랑(兵曹正郞) 이문표(李文標) / 1원은 임명되지 못함  / 무낭청(武?廳) / 부사정(副司正) 최명주(崔命柱) / 선전관(宣傳官) 윤화정(尹和鼎) / 부사정(副司正) 홍태두(洪泰斗) / 부사정(副司正) 윤택정(尹宅鼎) / 부사정(副司正) 이현(李玹) / 부사과(副司果) 이윤지(李允之) / 부사정(副司正) 이사응(李思膺) / 훈련원주부(訓鍊院注簿) 신재하(申在夏)(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2년 2월 15일 (병자) 원본492책/탈초본26책 (9/23)  1716년 康熙(淸/聖祖) 55년/ 李萬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기를 청하는 吏曹의 계목/ ○ 吏曹啓目, 權知成均館學諭, 李萬休․李義宗․權孚․金潭․崔嶢․李命夔․李倚天․李喜春․朴志聲․李文標․陳翼漢․李師徵․朴世登․洪?․韓斗一․河大淵․李台徵․吳命季․權大規․朴聖毅․李安國․金慶衍․文在中․金聖欽․趙昌來․李光國․朴必興․張世文․金宇樞․崔齊恒․李道瞻爲等如, 口傳施行, 何如? 啓依允。又啓目, 權知校書館副正字李?英․金益謙․申維翰․崔允?․吳與昌․金象三․李秀蓂․鄭再僑․宋秀賢․朴敏古․文德謙․鄭重興․柳漢柱․方萬規․田時雨爲等如, 口傳施行, 何如? 啓依允。(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2년 5월 20일 (기묘) 원본495책/탈초본26책 (11/11)  1716년 康熙(淸/聖祖) 55년/ 李光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李光佐爲弘文提學, 愼惟益爲禮賓正, 趙鎭周爲繕工監役, 安相元爲工曹正郞, 李文標爲典籍, 洪萬朝爲社稷提調, 申弼誨爲兼春秋。以上朝報(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3년 5월 12일 (을축) 원본502책/탈초본27책 (22/22)  1717년 康熙(淸/聖祖) 56년/ 權尙夏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權尙夏爲右議政, 金取魯爲文學, 李文標爲刑曹佐郞, 李秉淵爲戶曹佐郞, 姜纘爲禁府都事, 李太元爲典籍, 李?命爲世子傅, 權尙夏單付承文都提調, 鄭重岱單付奉常參奉。以上吏批政事(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3년 5월 14일 (정묘) 원본502책/탈초본27책 (18/19)  1717년 康熙(淸/聖祖) 56년/ 李敏英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李敏英爲承旨, 金台壽爲司書, 金潤海爲兵曹佐郞, 金始煥爲伊川府使, 崔重鼎爲韓山郡守, 黃龜河爲兼文學, 李文標單付兼春秋。(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3년 8월 8일 (기축) 원본503책/탈초본27책 (10/27)  1717년 康熙(淸/聖祖) 56년/ 李?命에게 傳諭한 결과를 보고하는 李文標의 서계/ ○ 記事官李文標書啓, 臣承命馳往于興仁門外新村左議政李?命所住處, 傳宣聖批, 則以爲, 臣瀝盡肝血, 疾聲再?, 庶冀天地父母曲加矜諒, 卽者史官, 又宣聖批, 不惟不賜允兪, 敦勉慰諭, 愈往愈勤, 至有貴相知心之敎, 臣擎讀未半, 感涕被面。噫, 臣雖冥迷甚頑, 豈不知日月之明, 俯燭無餘, 乃敢自阻於恩山德海之中也, 特以今日所遭, 卽千古之所罕聞, 所?之地, 卽下民之所具瞻, 未敢將此汚穢之身, 重辱淸朝, 豈爲臣一身之計哉? 臣自有此事, 神情隕穫, 五內迷茫, 每奉恩旨, 胸膈抑塞, 置身無地, 造次仰復, 不能盡心腑之懇。且於聖體靜攝之時, 逐日煩瀆, 至爲惶恐, 謹當稍俟一兩日, 收召神識, ?盡危苦之情, 且請逋慢辜恩之罪云矣, 敢啓。傳曰, 知道。(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3년 9월 4일 (을묘) 원본504책/탈초본27책 (16/17)  1717년 康熙(淸/聖祖) 56년/ 李健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李健命爲同義禁, 魚有龜爲副應敎, 洪啓迪爲副校理, 李宖爲弼善, 李文標爲兵曹佐郞, 李天翊爲洪原縣監, 李時輝爲康翎縣監。雲峯縣監全翊聖武通政仍任事, 承傳。礪山君枋爲宗府[宗簿]提調, 崔守範單付奉敎, 權?單付待敎。(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3년 12월 7일 (정해) 원본505책/탈초본27책 (20/21)  1717년 康熙(淸/聖祖) 56년/ 金台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金台壽爲掌令, 閔鎭遠爲刑曹判書, 李弘述爲右尹, 李聖肇爲兵曹參知, 洪啓迪爲楊州牧使, 金遇華爲奉常正, 韓配厚爲尙衣直長, 具益亨爲平安都事, 成震齡爲典籍, 李德英爲承旨, 林益彬單付養賢主簿, 柳聖洪單付承文博士, 李文標單付兼春秋。以禮曹判書望單子, 傳曰, 吏曹參判鄭澔, 除授禮曹判書, 鄭澔, 今超資憲除授事, 傳敎。(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3년 12월 28일 (무신) 원본505책/탈초본27책 (13/24)  1717년 康熙(淸/聖祖) 56년/ 金昌集에게 傳宣한 결과를 보고하는 李文標의 書達/ ○ 記事官李文標書達, 臣承令, 馳往于領議政金昌集所住處, 傳宣令旨, 則以爲臣衰邁已甚, 疾病又劇, 積月沈篤, 無望復起, 不得不尋單請急, 而未蒙準許, 方深悶蹙, 又此別諭之令, 十行徽旨, 反復諄諄, 臣奉讀以還, 不覺感涕之被面也。臣之病情, 苟可以時月起動, 則何敢於此時瀆擾, 而不顧邸下獨憂於上哉? 誠以臣?冒, 則職務?曠, 國事可憂, 遞免, 則調息有路, 軀命可全, 故必欲速解匪分之職, 少延將死之喘, 此非但爲一身之計而已。至於人言, 前後所被, 雖皆罔極, 猶有所未暇言者矣。今邸下, 疑臣之陳懇, 專由於此, ?許敦迫, 若是勤?, 臣不勝抑鬱焉。今臣神精慌亂, 未能悉暴仰對, 當俟少定, 謹以文字, 請被違慢之罪云矣, 敢達。令曰, 知道。(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4년 3월 12일 (신유) 원본507책/탈초본27책 (2/15)  1718년 康熙(淸/聖祖) 57년/ 朴世挺 등이 하직함/ ○ 下直, 昌原府使朴世挺, 保寧縣監李文標, 法聖僉使卞世標, 柒浦萬戶池成浩。(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원년 9월 8일 (임인) 원본600책/탈초본32책 (11/18)  1725년 雍正(淸/世宗) 3년/ 趙德?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趙德?爲司諫, 李秉泰爲獻納, 朴致遠爲兵曹參議, 尹?爲持平, 林柱國爲兵曹正郞, 成震齡爲弼善, 李文標爲兵曹佐郞, 崔重鼎爲刑曹正郞, 趙榮世爲司僕正, 李滋爲奉常正, 張世文爲保寧縣監, 安相朝爲禮山縣監, 申思稷爲江原都事, 李厚敬爲贊議, 朴琮爲金川郡守, 安鍊石兼春秋單付, 魚有龜領敦寧單付。 咸院府院君魚有龜, 前主簿鄭守成, 閑良蘇漢明, 譯官丁大興, 今加通政, 奏請使先來軍官譯官加資事, 承傳。 以西平君橈爲謝恩兼冬至正使, 金有慶爲副使, 趙命臣爲書狀官, 權?爲正言。(www.history.go.kr 2009)

 

  이문표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원년 10월 3일 (정묘) 원본602책/탈초본32책 (19/38)  1725년 雍正(淸/世宗) 3년/ 朴弼正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朴弼正爲掌令, 兪拓基爲判決事, 李錫仁爲金浦郡守, 金光遠爲扶餘縣監, 孫命大爲礪山府使, 趙文命爲校理, 權?爲修撰, 李友松爲內資主簿, 鄭亨晉爲掌院別提, 尹慶一爲司饔主簿, 柳重謙爲氷庫別提, 宋秀賢爲活人別提, 成世頊爲禁府都事。 繕工假監役宋有源, 童蒙敎官李靜鎭相換。 金瑞龜學諭單付。 鄭匡濟爲正言, 李顯祿爲檢祥, 李文標爲兵曹正郞, 宋必煥爲工曹正郞, 金道浹爲司?主簿, 原?都正熙, 原陽都正炅, 原平守燮, 原興守煦, 以上在喪終制。 以李顯祿舍人單付。(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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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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