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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339) : 이번(2)-이범석-이범용-이범익(1)(附 예천군, 도 향토음식 발굴·육성 아카데미 운영 선정...축하합니다/예천방문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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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記事] : 중종실록 44권/ 중종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3월 10일(정사) 3번째 기사/ 이번 등이 야대․역사 등에 관해 상소하다/ 대사간 이번(李蕃) 등이 상소하기를, ꡒ그윽이 보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부지런히 다스려지기를 바라시고 천명(天命)을 경외(敬畏)하시는데 근자에 음양(陰陽)이 조화를 잃고 재해가 겹쳐 일어 겨울에 뇌성하고 지진(地震)이 일며 흙 같은 눈이 내리고 화기(火氣)가 비치는 변이 생기므로 이미 성상께서 진념(軫念)하시게 되었는데다, 또한 따뜻한 봄철에 눈이 내리고 서리가 왔습니다. 신 등이 비록 연유한 데를 알 수는 없습니다마는 선민(先民)들이 ꡐ인간의 일이 잘못되면 하늘의 변이 나타난다.ꡑ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천변이 어찌 까닭없이 생기는 것이겠습니까? 임금은 천지가 만물을 애호하는 책임을 담당하고 만백성의 부탁을 받은 것이니, 마땅히 하늘을 아버지처럼 섬기고 땅을 어머니처럼 섬기며 백성을 자식처럼 양육하여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요, 조금이라도 미진함이 있으면 천지가 진노(震怒)하고 모든 생물이 안정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노하여 견책(譴責)함은 인애(仁愛)하는 마음이 발동하여 그것이 모두 붙잡아 안전하게 하려는 뜻을 다하는 것이니 임금으로서 부모된 마음을 체득하여 자식처럼 양육하는 책임을 생각하기를 어찌 조금이라도 게을리할 수 있겠습니까? 이래서 하늘의 견책에 응답하는 실지는 덕을 닦기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서경》에 ꡐ황천(皇天)은 친한 이가 없고 오직 덕 있는 사람을 돕는다.ꡑ10912) 했고, 또 ꡐ서직(黍稷)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오직 명덕(明德)이 향기로운 것이다.ꡑ10913) 했으니, 이른바 덕이란 다른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맑혀 다스려가기에 달린 것입니다. 마음을 맑혀 다스려가는 요법은 학문의 근본을 알고 조종(祖宗)의 법도를 지키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으니, 반드시 법령을 신봉(信奉)하고 검약을 숭상하며 곧은 말을 듣기 좋아하고 부지런히 백성의 고통을 돌볼 뿐인 것입니다. 옛 성왕(聖王)들이 감히 자신의 총명을 믿지 않고 반드시 부지런히 학문을 한 것은 장차 착한 본연의 성(性)을 밝혀 잠시도 성실하지 않는 일이 없고자 한 것이니, 당 문황(唐文皇)10914) 이 학사(學士)들을 인견(引見)하여 고금의 성패(成敗)를 토론하기를 해가 기울고 밤이 깊도록 하여 일찍이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송(宋)나라 열성(列聖)들이 명유(名儒)들을 뽑아 조용히 맞아들여 자문하고도 반드시 더 야대(夜對)를 한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임금의 한 마음은 침해하는 것이 많아 경연(經筵)에서는 온종일 진신(搢紳)들이 둘러 있으므로 이때에는 해이해지지 않을 수가 있지만 어두운 밤 깊은 궁(宮)에서는 접하는 사람이 내시 아니면 곧 궁녀들이 어서 이때에는 해이해지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니, 진 서산(眞西山)10915) 의 이른바 ꡐ야대의 유익함이 낮에 자문하는 것보다 더욱 크다.ꡑ 한 것이 이를 말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경연에 부지런히 나아가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강(進講)한다는 것이 훈고(訓?)의 잘잘못에 지나지 않고, 또한 일찍이 조용하게 자문하지 않는데다 한번 읽어가기만 할 뿐이며 어두운 밤에 소대하시지 않은 지 오래니 신 등은 전하의 상념(想念)이 안일하고 태만한 때가 있으신가 싶습니다. 옛적의 어진 신하들이 임금에게 경계를 진달(進達)할 적에 반드시 ꡐ조종(祖宗)의 법도에 따라 하고 변방 일에는 유의하지 말기 바랍니다.ꡑ 한 것이 어찌 안일만 추구하고 방비를 잊게 하려 한 것이겠습니까? 내정(內政) 다스리기를 앞세우고 외적 방비를 뒤로 돌리게 하려 한 것입니다.
송 신종(宋神宗)이 범순인(范純仁)10916) 에게 묻기를 ꡐ경(卿)이 섬서(陜西)에 있으면서 반드시 변방 일에 조예를 쌓았을 것인데, 성곽(城郭)이나 갑병(甲兵)이 어떤가?ꡑ 하자, 순인이 아뢰기를 ꡐ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변방 일에 너무 깊이 유의하지 마소서. 변방 지키는 신하들이 관망(觀望)하다가 공을 세우려고 일을 저질러, 이적(夷狄)들과 사단이 맺히고 생민(生民)들을 잔해(殘害)하게 되며, 오직 지금에 있어 목전의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앞날에 의외의 우환을 가져오게 될까 싶습니다. ꡑ 하였고, 부필(富弼)이 또한 아뢰기를 ꡐ폐하께서는 마땅히 백성에게 은덕을 펴야 하니 변방 일에 유의하지 마시고 먼저 해내(海內)를 유족하고 안정되게 하소서.ꡑ 하였습니다. 범순인과 부필의 말이 모두 깊은 뜻이 있었었는데, 신종이 살피지 않고 마침내 서희(徐禧)10917) 를 신임하여 영락성(永樂城)을 쌓았었는데, 성이 함락되어 죽은 사람이 10만여 명이고 서희도 죽음을 면하지 못하자 임금이 통곡하였으니,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국가의 관방(關防)에 관한 말은 조종(祖宗)들께서 친히 계획하신 바가 극진하게 되지 않은 것이 없는데도, 더러 한 구석의 이해만 보고 즉각 개혁하여 이익은 없고 손해만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공을 세우려는 사람들이 범수인이나 부필처럼 원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경솔하게 변공(邊功)세우기만 아뢰고, 전하께서는 신종의 후회를 생각해보지 않으시어 피폐한 백성들에게 때아닌 역사를 시키시니, 신 등은 전하께서 원려(遠慮)하여 생각을 되돌리지 않으시다가는 반드시 앞날에 의외의 염려를 남기게 될까 싶습니다. 법령(法令)은 다스리는 도구로서 백성들의 뜻이 안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선왕(先王)들이 시의(時宜)를 짐작하여 한 시대의 규모를 창립해 놓은 것이니, 후사(後嗣)된 분들은 마땅히 그대로 거행할 뿐입니다. 맹자는 ꡐ선왕의 법대로 준행하고서 잘못되는 사람은 없다.ꡑ10918) 하였고, 《서경》에는 ꡐ법령이란 일단 내면 오직 시행되어야지 번복해서는 안 된다.ꡑ 하셨습니다. 법을 준행하지 않거나 법령을 내고서 자주 번복하면 아래서는 위를 믿지 않고 위에서는 아래를 통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열성(列聖)들께서 서로 계승해와 법령이 착하지 못하거나 아름답지 못한 것이 아닌데, 더러는 한때의 폐단이나 한 사람의 소견 때문에 일정함이 없이 폐했다 세웠다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종잡을 수 없게 하니 국가를 위한 염려 중에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습니까? 보통 사람들도 자식을 두면 좋은 결과를 맺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검약(儉約)으로 시범하여 혹시라도 교만 방자해질까 염려하는 법인데, 하물며 임금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자신이 검소하심에는 진실로 이의가 없게 하시나, 제군(諸君)의 혼인을 너무 빨리 시키시되, 자장(資粧)과 의복 등을 화려하게 하기 힘쓰고 제택(第宅) 건축을 호화스럽게 하여 소비되는 재물이 헤아릴 수 없으니, 성덕(盛德)에 휴손됨이 어찌 유감스러운 바가 없겠습니까?
대신과 대간은 그들의 직책이 비록 다르기는 하지만, 가부를 논하여 서로가 바로잡아주는 것은 마치 서로 수레를 밀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니, 대개 마음을 수레에다 주력하여 가게 해야 할 뿐이요 사(私)를 영위(營爲)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요사이 대간이 가하다 하면 대신이 반드시 불가하다 하여 매양 서로 거스르게 되어 나라에 일정한 공론이 없으니 이는 편벽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도 사리를 헤아려보지 않으시고 한결같이 대신들의 의논이 옳다고만 하시며 대간의 말을 자못 막으십니다. 전일 의주(義州)의 역사(役事)에 대해 대간이 바야흐로 논집(論執)하고 있는데 앞질러 대신을 보내 기일을 정하여 쌓았다가 쌓은 지 두어 달 만에 곧 무너져버려 한갓 백성의 힘만 수고롭게 하고 국가에 도움이 없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또 남쪽 변방에 진(鎭) 설치하는 것에 대해 신 등이 여러 날 논계(論啓)하자 대신들이 또한 억제하고서 한창 농사철이 되었는데도 시급하지 않은 역사를 일으키면서 ꡐ큰 일을 하려면 소소한 폐단은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ꡓ 하니, 신 등은 진실로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서경》에 ꡐ백성은 오직 국가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ꡑ 하였고, 《역경》에 ꡐ법도가 맞게 절약하여 재물을 손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ꡑ 하였으며, 또 ꡐ아래에서 덜어다가 위가 유익하게 하는 것을 손(損)이라 하고, 위에서 덜어다가 아래가 유익하게 하는 것을 익(益)이라 한다.ꡑ 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연분(年分)10919) 은 9등급인, 손실(損實)10920) 을 답사하는 법이 역시 성인들이 남긴 뜻과 합치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남쪽은 크게 풍년들지 않았는데 조세 징수가 전보다 배나 되었고, 경기(京畿) 백성은 주림이 더욱 심했는데 경창(京倉)의 곡식을 봄이 되고서야 받았으니, 전하께서 비록 백성을 돌보려는 생각을 가지시지만 백성들이 어찌 알게 되겠습니까? 원망하고 한탄하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 이는 비록 받들어 거행하는 사람들의 잘못이기는 하지만 또한 성상의 생각이 두루 미치지 못하는 데가 있는가 합니다. 무릇 이 두어 가지 일은 모두 하늘의 노여움을 고취(鼓吹)하여 천재를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인데, 전하께서는 오늘날의 국가 사세를 안정되었다고 여기고 국가 정사를 태평하다고 여기십니까? 신 등은 진실로 의외의 염려가 조석 사이에 생겨 장차 바로 잡지 못하게 될까 싶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몸을 뒤척이며 생각하시어 실답게 하늘에 응답하시고 경연(經筵)에 나아가서는 부지런히 의리를 탐구하고 다스리는 도리를 자문하시며, 변방 염려에 있어서는 우선적으로 성규(成規)를 지키고 나라 본근을 튼튼히 하소서. 법령을 신의 있게 시행하고 아랫사람을 검소로써 거느리며, 간하는 말을 허심 탄회(虛心坦懷)하게 들어주고 백성을 상해입은 자를 보듯 사랑하여, 하는 일을 한 가지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신다면 천심(天心)을 편케 할 수 있고 태평 세대를 열수 있게 될 것이니 어찌 신 등만의 다행이겠습니까. 진실로 조종(祖宗)들의 한없는 복일 것입니다.ꡓ하였는데, 전교하기를, ꡒ지금 상소를 보건대, 한 말이 당연하다. 야대(夜對)는 예로부터 날마다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드물어지게 되었으니, 내가 스스로 짐작하여 하겠다. 성 쌓기와 진 설치는 내가 일을 좋아하여 한 것이 아니라 대신과 유사(有司)들이 변방 백성을 위하여 부득이 건의한 것이니, 변진(邊鎭)의 일은 조정과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가하다. 제군(諸君)의 길례(吉禮)와 제택 건축 등의 일은 그들의 연령에 따라 차례차례 하므로 사세가 자연 번거롭고 잦은 것처럼 된 것이다. 대신과 대간이 서로 일의 가부를 의론 함은 그를 것이 없다. 대저 근래에 재변이 없는 해가 없으니 나의 공구하는 마음을 어찌 늦출 수 있겠는가? 상하가 마땅히 더 수성(修省)해야 한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105면/ 【분류】 *농업-농작(農作)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재정-상공(上供)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군사-관방(關防)/ [註 10912]ꡐ황천(皇天)은 친한 이가 없고 오직 덕 있는 사람을 돕는다.ꡑ : 《서경(書經)》 채중지명(蔡仲之命)에 있는 말이다. ☞ / [註 10913]ꡐ서직(黍稷)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오직 명덕(明德)이 향기로운 것이다.ꡑ : 《서경(書經)》 군진(君陳)에 있는 말이다. ☞ / [註 10914]당 문황(唐文皇) : 문황은 당 태종(唐太宗)의 시호. ☞ / [註 10915]진 서산(眞西山) : 서산은 송대의 학자 진덕수(眞德秀)의 호. 자는 경원(景元: 뒤에 경희〈景希〉로 고침)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대학연의(大學衍義)》․《사서집편(四書集編)》․《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 《송사(宋史)》 권437․《송원학안(宋元學案)》 81. ☞ / [註 10916]범순인(范純仁) : 송대의 학자이자 명신, 자는 요부(堯夫), 시호는 충선(忠宣). 범중엄(范仲淹)의 아들. ☞ / [註 10917]서희(徐禧) : 자는 덕점(德占), 시호는 충량(忠良). ☞ / [註 10918]ꡐ선왕의 법대로 준행하고서 잘못되는 사람은 없다.ꡑ : 《맹자(孟子)》 이루(離婁) 상에 있는 말이다. ☞ / [註 10919]연분(年分) : 해마다 농사의 풍작․흉작에 따라 토지를 상상(上上)․상중․상하․중상․중중(中中)․중하․하상․하중․하하(下下)의 9등급으로 나누던 제도. 조선조 4대 세종(世宗) 28년(1448)에 실시하였다. ☞ / [註 10920]손실(損實) : 잘 여물지 않은 것과 잘 여문 것. ☞(www.history.go.kr 2009)
이번 [記事] : 중종실록 44권/ 중종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4월 23일(기해) 4번째 기사/ 손중돈․성세창․이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손중돈(孫仲暾)을 공조 참판으로, 성세창(成世昌)을 강원도 관찰사로, 김희수(金希壽)를 이조 참의로, 이기(李?)를 공조 참의로, 이번(李蕃)을 동부승지로, 김안정(金安鼎)을 홍문관 교리로, 원계채(元繼蔡)를 부수찬(副修撰)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11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이번 [記事] : 중종실록 56권/ 중종 21년(1526 병술 / 명 가정(嘉靖) 5년) 3월 8일(신묘) 3번째 기사/ 이희보․이번․허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희보(李希輔)를 공조 참의로, 이번(李蕃)을 승정원 동부승지로, 허위(許渭)를 호군(護軍)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허위는 사람됨이 휴휴(休休)13511) 하여 장자(長者)다운 기풍이 있었다. 다만 풍병(風病)이 있어 근시(近侍)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논계(論啓)하여 체직되므로 공론이 애석하게 여겼다. 이희보는 글재주가 있었다. 그러나 폐조(廢朝) 때에 응제(應製)13512) 하면서 영합(迎合)하려는 뜻이 많았으므로 공론이 천하게 여겼기 때문에 논박받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50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 [註 13511]휴휴(休休) : 상냥하고 너그러움. ☞ / [註 13512]응제(應製) : 임금의 특명으로 시문(詩文)을 짓는 것. ☞(www.history.go.kr 2009)
이번(李蕃)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연산군(燕山君) 10년, 과거시험연도 : 1504 갑자,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20(丙科20)/ [인적 사항] 성명(姓名) : 이번(李蕃), 자 : 덕림(德林), 본관(本貫) : 덕산(德山)/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496(병진) 진사시, 전력(前歷) : 진사(進士), 관직(官職) : 대사간(大司諫)/ [가족사항] 부(父) : 이운달(李云達), 조부(祖父) : 이사계(李師季), 증조부(曾祖父) : 이유(李愉), 외조부(外祖父) : 신보동(辛寶童), 처부(妻父) : 노모(盧瑁)(daum 2010)
이번(李蕃) : 본관은 덕산, 연산군 때 대사간이 되었으며 후에 참의가 되었다.(開浦面홈페이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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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 郡守奏本 / 신문명 황성신문 1901/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황성신문/ 신문명 皇城新聞/ 창간일 1898년 03월 08일 (光武二年 三月八日)/ 소장처 국립 고궁박물관/ 발간정보 간기:일간 언어:국한문/ 일자(양력) 1901년 10월 12일 (大韓光武五年 十月 十二日 土曜)/ 일자(음력) 1901년 09월 01일 (陰曆 辛丑 九月 初一日)/ 형태정보 크기:36.3*26.8cm 면수:04 단수:04/ 기사유형 雜報/ 기사위치 02면 04단/ 기사본문 : ⊙郡守奏本/ 昨日 內部의 奏下된 郡守奏本이 如左?니 廣州 李鎬奭 星州 朴炳翌 咸平 金相一 茂長 李昌翼 醴泉 李範錫 長? 張漢基 泗川 李梓奎 利原 朴秉斗 昆陽 李丙儀 龍宮 金進洙 喬桐 趙重淵 報恩 李炳珪 靑山 趙秉吉 鎭川 金鴻圭 鎭岑 金益慶 昌平 白南圭 庇仁 申觀? 定平 金裕秀 咸安 金永珪 江東 金志鵬 价川 白虎燮 固城 徐丙璘 朔寧 曹有承 錦山 柳濟寬 雲峰 李敎承 鎭海 李圭穆 平昌 朴龍勳 密陽 金宗源 梁山 李啓弼 彦陽 朴珪煥 機張 孫永禧 延豊 李承在 忠州 鄭寅國 沔川 崔文煥 高城 金建漢 軍威 徐丙緯 高敞 金圭鉉 沃川 洪祐奭 殷山 李錫珪 潭陽 趙漢鏞 同福 朴源明 安義 沈在淑 石城 金容範 陽川 洪鳳觀 金川 閔佑鎬 洪原 張烈 鎭安 李孝稙 鬱島 姜泳禹 新寧 吳悳根 ?原 李在淵 狼川 沈圭澤 新溪 尹致祚 淸河 李完洙 麟蹄 柳喬榮 瑞興 柳錫膺 襄陽 尹斗漢 淳昌 李根洪 金溝 沈選澤 萬頃 金靖圭 泰仁 孫秉浩 山淸 尹榮升 居昌 金商弼 原州 ◈允鼎 三陟 申炳休 咸陽 金炳定 丹城 李元? 眞寶 慶必◈ 興海 朴準成 天安 南萬里 龍潭 權宅洙 平澤 金祺中 交河 韓聖會 淸安 李範學 靑陽 李秉奎 草溪 閔泳原/ 제공 미디어가온 고신문(//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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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李範容) : 분류 인물 > 독립운동가자료 > 독립운동자공적자료/ 발행일 1998/ 사건발생일 1854-11-29/ 발행자 국가보훈처/ 초록 본적 :龍宮/ 주소 :慶北 醴泉 開浦 佳谷/ 자료제공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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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익 : 중추원조사자료/ 醴泉郡 특종소작 기타에 관한 건 회답/ [醴泉郡 특종소작 기타에 관한 건 회답](1918-07-02, 李範益(醴泉郡守)) 1.특종소작 관습2.入會 관습3.개간소작 관습 4.借家 관습 (daum 2014)
이범익 : 중추원조사자료/ 特種小作 기타에 관한 건 > 醴泉郡 특종소작 기타에 관한 건 회답 > [醴泉郡 특종소작 기타에 관한 건 회답]/ 慶北醴泉財 제1858호/ 大正7년(1918) 7월 2일/ 醴泉 郡守 李範益 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귀중/ 특종소작 기타에 관한 건 회답/ 올해 6월 12일 朝樞發 제150호로 조회하신 위 제목의 건을 조사하였더니 아래와 같았으므로 이를 회답합니다./ 記 (daum 2014)
이범익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3권 > 1916년 2월 17일 > 朝鮮總督府 郡守 成斗植을 南海郡,/ 연월일 1916년 02월17일/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지방행정,관서 > 군수/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16.2.19/ 朝鮮總督府 郡守 成斗植을 南海郡, 同 孫之鉉을 慶山郡, 同 朴英鎭을 聞慶郡, 同 李命源을 盈德郡, 同 李範益을 醴泉郡, 同 李容漢을 達城郡, 同 金翰殷을 漆谷郡 , 同 李瓚永을 居昌郡 , 同 金泰興을 昌原郡 , 同 兪相範을 統營郡에 在勤을 命하다. (daum 2014)
이범익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삼천리 제5권 제9호/ 발행일 1933년 09월01일/ 기사제목 朝鮮人 道知事 人物觀/ 필자 心耕生/ 기사형태 논설/ 朝鮮人 道知事 人物觀/ 心耕生/慶北道知事 金瑞圭 氏, 江原道知事 李範益 氏, 忠北道知事 南宮營 氏, 全北道知事 高元勳 氏, 黃海道知事 鄭僑源 氏/ 朝鮮人知事의 人物評을 쓰라구요... 1년에 한차레씩 밧게 열니지 안는 總督府의 道知事會議에는 依例히 출석하려고 상경하겟지만 우리가튼 名色업는 신문기자로서는 面晤對話할 영광을 입지 못한다느니 보다 너무들 밧부게 다니어 가기 때문에 좀 뵈올 기회을 엇지 못하니 그 인물에 대한 형형색색의 인상을 건망증 잇는 나로 충분히 못할 노릇이라. 이 평을 완전히 하지 못할 결함 잇스나 그는 미리 양해를 구하여 두어야 하겟다. 현재 朝鮮總督府의 행정구역이라야 13道 밧게 안되는 그 중에서 「鮮人知事」「軟骨」官吏道長官은 겨우 다섯 분―약념가치 희귀한 그분들은 과연 누구이며 어떠한 인물들인가, 어느 지방에서 출생하여 어떠한 학력으로 출세하고 도지사―1道의 장관으로 되엿스며 그분들은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는 어떠한 것을 행정 「못-토-」로 하고 잇나? 這間열닌 道知事會議에서는 이분네들 (朝鮮人)知事로서 어떠한 것을 요구하엿스며 ??한 氣焰?을 토하엿는가? 엇잿든 各道知事의 印象記에 붓을 옴기자. ... 江原道知事 李範益 氏 : 明治16년 11월 14일 忠淸北道 丹陽郡에 출생하여 (금년 51세) 明治363년 거금 30년 전에 外國語學校 敎官으로 被任한 것이 氏의 官界生活의 스타-트엿다, 그 후 陸軍通譯官으로 明治37,8년 日露戰役에 從軍하야 明治40년에 此大戰役의 유공자로서 賞勳局에서 상금 8,000원을 바덧다 한다, 이어 度支部技師로 잇다가 얼마 후에 韓國 皇太子께옵서 日本에 御留學하옵시자 陪從의 光榮을 입엇스며 귀국하야 農商工部 秘書官 及 內部 秘書官을 역임하엿다. 大局의 변동을 따라 大正元年에 朝鮮總督府 郡守(春川郡 在勤)으로 被任되어 達城, 醴泉, 金山(現 金泉), 漆谷(現 慶南 咸安附近)等地를 경유하야 大正10년 2월 總督府 事務官으로 內務局 在勤이 되엿섯다. 다시 黃海道 內務部長을 지나 昭和2년 6월 2일 慶尙南道 參與官으로 被任하야 昭和4년 11월 28일 江原道知事 昇任으로 2등2급이 되엇다. 氏가 부임한지는 於焉 4년, 그 공적은 무엇일고. 소화6년 關東, 關北一帶에 잇섯든 未曾有의 大水害와 東海岸 海嘯로 數百生靈이 수장되고 피난, 遊離民이 수를 헤일 수 업스매 道長官으로서 草履감발하고 자신이 各處의 이재민을 慰問하엿다는 것만은 政治民衆化의 理想一端의 표현이라 할는지? 山村僻地, 교통 불편한 江原道에서 모든 시설이 不備하고 현대문명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江原道로서 知事行政이 곤란할 것도 업지 안을 것이다. 貧窮民과 火田民이 이가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서 春窮期의 식량결핍의 빈농 수 83,143戶를 엇지 구제할 것이며 關東의 행정이라 李知事의 메스는 장차 얼마마한 수술을 할 것이며 학교시설, 문맹퇴치 등 그 장래에 氏의 수완을 엿볼 재료가 만히 남을 줄 안다. ... 知事數爻는 그 전보다 다소 늘어 慶北, 全北, 黃海가튼 要處아닌 要地라는 道에도 朝鮮人 知事를 두게 된 것은 이 소위 朝鮮民度發展의 一反映이라 할가. 그러나 朝鮮總督府 所屬官署 數萬官公吏中 朝鮮人 몃 명이며 매 주일마다 열니는 總督府局課長會議, 朝鮮의 週間行政狀況을 보고하는 그 자리에 朝鮮人으로서 朝鮮의 현실을 보고하는 분은 누구인가? 엇잿든 이 붓은 여기에서 멈추노라. <65>/ <62-65>/ 이름 : 金瑞圭 , 李範益 , 南宮營 , 高元勳 , 鄭僑源 , 金瑞圭 , 李範益 , 南宮營 , 高元勳 , 鄭僑源 , 韓圭復 , 李軫鎬 (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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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도 향토음식 발굴·육성 아카데미 운영 선정...축하합니다.
예천군 농·특산물(地域 農特産物로 ‘더 맛나게’ 慶北道, 鄕土飮食 發掘·育成 靑松·義城 等 아카데미 運營 : 地域別 힐링푸드 敎育도 실시) [記事] : 앞으로 경북의 향토음식이 식단에 올라와 관광객들의 입맛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농촌관광음식으로 자리매김할 향토음식은 지역특산물이 주재료로 사용되고 관광객들에게 건강식으로 제공된다. 이에 경북도는 도내 고유의 농·특산물에 지역 문화가 가미된 향토음식 발굴ㆍ육성에 나선다. 도가 추진하는 향토음식 육성사업은 한ㆍ중 FTA 등 시장개방에 따른 국내산 농산물 판로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외식업체의 품질을 고급화하기 위한 사업이다. 올해 도는 지역별 관광상품과 연계한 6차산업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청송ㆍ의성ㆍ예천군을 도 대표 향토음식 아카데미 운영 시ㆍ군으로 선정했다. 이들 지자체는 3천만 원씩을 지원받아 외식업체 종사자 120명을 집중 교육한다. 아울러 도는 지역별로 향토음식에 외식문화 및 건강을 더한 힐링푸드 교육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외식업체의 고급화 이미지 구축과 질적 향상을 도모, 농촌관광 음식산업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주요 교육은 약선요리 발굴, 지역의 농·특산물을 이용한 한식밥상 메뉴 개발, 향토음식 상품화 교육, 향토음식의 계량화ㆍ전문화를 통한 기술보급 체계구축, 친절서비스 및 조리 교육 등이다. 지금까지 향토음식 개발 메뉴는 사과김치, 사과닭가슴살 냉채, 다슬기 덮밥 등이다. 수료한 음식점은 ‘향토음식 지킴이’로 지정돼 지역 향토음식 홍보요원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청송군에서는 향토음식 아카데미 수료생들이 ‘청송 맛깔손’이라는 모임을 구성해 군 공식행사 때 건강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신기훈 경북도 FTA농식품유통대책단장은 “지역에서 특별하게 생산되는 식자재를 이용, 경북만의 맛깔스러운 향토음식을 개발하기 위해 향토음식 아카데미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통계청은 가구당 월평균 외식비가 지난 2011년 29만2천940원에서 2014년에는 32만5천308원으로 증가, 식생활 외부 의존도가 연간 5%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김창원 記者 大邱日報 20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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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1,355
예천세계곤충엑스포 2016(飼育 新技術부터 未來食糧까지…昆蟲産業 새 비전 提示 : 醴泉 世界昆蟲엑스포, 昆蟲의 모든 것 ‘한자리에’) [記事] : 2016예천세계곤충엑스포가 예천에서 2016년 7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예천공설운동장과 곤충생태원 일원에서 개최된다. 세계곤충학회에서 인증한 세계 최대의 곤충 박람회인 2016예천세계곤충엑스포가 곤충의 고장 예천에서 오는 7월 30일(토)부터 8월 15일까지 예천공설운동장과 곤충생태원 일원에서 개최된다. 7월 30일 개장식과 개막식을 시작으로 8월 15일 폐막식까지 17일간 전시, 체험, 행사, 이벤트가 다채롭게 열리는 이번 엑스포는 2007년 ‘미래를 여는 친환경 농업! 곤충바이오산업’, 2012년 ‘곤충과 함께 여는 친환경 세상’이후 ‘곤충의 꿈 이야기’란 주제로 세 번째로 개최된다. 예천공설운동장에 위치한 주행사장은 곤충주제관, 곤충놀이관, 곤충산업관, 파브르의 정원, 벅스워터파크, 농특산물 판매장으로 이루어질 계획이다. 곤충주제관에서는 곤충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종합적으로 선보인다. 특히, 미래 식량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곤충을 활용한 음식, 국내 및 세계곤충식품 조리대회, 곤충식품 체험존, 곤충식품 쿠킹 콘서트 등 곤충식품에 관한 모든 것을 만나볼 예정이다. 곤충놀이관에는 아이들이 교육과 놀이를 함께 즐기고 뜨거운 열기를 식히며 곤충관련 학습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 곤충산업관에서는 곤충사육 신기술 및 곤충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파브르의 정원에서는 곤충이 서식하는 자연환경을 그대로 조성하여 자연속 곤충의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앞서 곤충에 대한 학습과 체험으로 곤충에 대하여 알아보았다면 대형 물놀이 시설인 벅스 워터파크에는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줄 에어바운스, 워터슬라이드, 워터파크 내 무대에서 펼쳐지는 문화공연 등이 부모와 어린이들을 위해 준비돼 있다. 주 행사장에서 예천읍 시가지까지 맛 고을 곤충전동차를 운행해 관람객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예천읍의 전통시장을 돌아보며 예천의 생활문화도 즐길 수 있다. 예천공설운동장은 주행사장, 예천곤충생태원은 부 행사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주행사장에서 부 행사장까지는 안락하고 쾌적하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효자면 곤충생태원에 위치한 부행사장에는 곤충생태체험관, 곤충체험온실, 곤충정원, 곤충멀티체험관, 수변생태원, 벌집테마원, 벅스하우스, 나비관찰원, 동굴곤충나라, 살아있는 곤충 체험원, 곤충전망대가 있다.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호박벌, 호랑나비 등 살아있는 곤충을 직접 만져보며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고 세계 희귀종, 멸종 위기종 등을 전시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입장권은 보통권 성인 1만원, 청소년 8천원, 초등생 6천원, 미취학영유아 4천원이다. 사전예매의 경우 성인 9천원, 청소년 7천원, 초등생 5천원, 미취학영유아 3천원, 단체로 구매하면 성인 7천원, 청소년 6천원, 초등생 4천원, 미취학은 2천원이다. 입장권에는 예천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환급쿠폰도 포함돼 있다. 2월부터 농협중앙회 예천군지부에서 사전예매를 실시하고 있으며, 인터넷 예매는 4월경 대행사 선정 후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권용갑 記者 大邱日報 20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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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