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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371) : 은산9곡과 은산8목(1)(附 이윤환, 26일 국회복지위원장 표창 수상...축하합니다/이수필과 장병국, 1일 도산별과대전 병과 급제...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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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9곡과 은산8목
작성 국가기록원 민간조사요원 장병창
은산9곡과 은산8목에 대한 채정희 하리면 전 이장님의 부탁으로 다음과 같이 도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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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산9곡
은산(殷山)은 은풍현(殷豊縣)의 옛 별호(別號)였다. 은산9곡은 다음과 같다.
1곡 부푸실, 2곡 밤실(栗谷), 3곡 쇠실(하곡), 4곡 읍실(邑室), 5곡 오래실, 6곡 소내실, 7곡 구도실(求道室), 8곡 사실(沙谷), 9곡 보곡(甫谷)(의병정신선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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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곡 : 부푸실, 부포실(芙浦室, 芙布室), 부초(芙草) [마을] : 하리면 부초리(芙草里)에 있는 마을로, 앞산 지형이 병풍을 펴놓은 것 같이 온화하고 아름다워서 부푸실이라고 하였다. 삥 둘러가면서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경지는 대부분 계단식이다. 조선 효종 때 남재영(南在榮)이 풍산(豊山) 새마에서 처음 이거하였다. 지금은 간이 상수도가 집집마다 들어섰고, 마을 어귀에 정미소도 세워졌다. 마을 구매소, 이발관 등이 있어 동민의 편리를 도모하고 있다. 60가구(1973) 중 영양 南 43가구, 진성 李 8가구, 朴 4가구, 신 2가구, 全 1가구, 안동 權 1가구, 金 1가구가 살다가, 50가구 350명(1973)이 살았다. 그 후 47가구 252명(1980)이 살고 있다. [傳說] : 옛날 어느 도사가 이 마을의 권씨, 그리고 김씨와 더불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중 백발이 휘날리는 도사가 두 선비에게 묘터를 봐주려고 묻기를, "인절미가 같은 숫자로 두 그릇에 담겨져 있는데, 한 그릇에는 온 개로 있고, 한 그릇에는 반으로 잘라서 두었다면, 어느 그릇의 것을 먹겠소?" 라고 묻자, 권 선비는 대답하기를, "나는 반 개의 떡을 먹겠소."라고 대답하고, 김 선비는, "나는 온 개의 떡을 먹겠소." 라고 대답했다. 그런 뒤 도사는 권씨의 묘터는 황개재궁 뒷산으로 정하고, 김씨의 묘터는 물 건너 앞산으로 정해 주었다. 그 후로는 권씨 가문에서는 후손이 성하였다. 왜냐하면 떡을 반으로 잘라 놓아서 많은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김씨가문에서는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쩔쩔매었다. 왜냐하면 떡 온 것을 한 사람씩 나누어 주면, 반 개짜리 보다 1/2 더 적은 숫자가 되기 때문이다.
부푸실(芙浦室, 芙草) : 조선 효종 때 남재영이란 분이 풍산 새마에서 이사를 와 지형이 아름다워서 부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부푸실로 불리어진다.(下里面홈페이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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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곡 : 밤실, 율곡리(栗谷里) [里] : 하리면에 속한 행정 리로, 1927년 5월 25일 밤 11시반 경 강도(30세쯤)가 곤봉 1개, 권총(?) 1개, 단도 1개를 갖고 이 마을 이창우(李昌雨 : 41세, 농업) 집에 침입하여 밤 2시에 경에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키가 5척 5촌쯤, 사냥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회색 학생복형 양복 상하의를 입고, 피해자의 침실에 침입하여 피해자를 깨우고 금품 제공을 강요하고, 가택 안을 수색하여 피해자의 아내 외 1명을 구타하며 돈을 내라고 협박하므로 반지를 제공하겠다고 말하였더니, 물건은 필요 없고 돈을 내라고 했다. 의복 등은 보지도 않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다. 문 앞으로 나가서 총소리를 2회 내고, 외부에서 망을 보던 다른 범인과 함께 용문면 쪽으로 도주하였다. 현장 부근에서 광산용 도화선이 타다 남은 약 1촌 길이의 것 3개와 삼짚신 한 짝씩 2개를 발견했다. 도화선은 도주에 즈음하여 추적을 피할 수단으로 사용한 것 같다. 짚신의 모양을 보면 발끝이 벌어진 사람인 것 같다. 일본식으로 생활하는 자가 아닌가 의심된다.(重要犯罪報告書, kuksa.nbcc.go.kr 2002)
율곡리 [記事] : [서명]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40 獨立軍資金募集 9/ [기사명] 중요 범죄 보고/ 新民府 군자금 모집 사건(國漢文)/ 검사신문조서/ 문서제목 중요 범죄 보고/ 작성일 소화 二년 五월 二六일/ 발송자 醴泉경찰서장/ 수신자 慶尙北道경찰부장 귀하/ 수신자 인접 각 경찰부장 귀하/ 수신자 관하 각 주재소수석 귀하/ 一, 죄명 강도 미수/ 一, 범죄 일시 소화 二년 五월 二五일 오후 一一시 반경 침입하여 익일 오전 二시경 도주/ 一, 범죄 장소 및 피해자 醴泉郡下里面栗谷里 농업 李昌雨 당 四一세/ 一, 흉기 곤봉 一개, 권총의 유사물 一개, 단도 一개/ 一, 범인의 인상 등 주소, 성명 미상, 모두 나이 三○세쯤/ (甲) 키 五척 五촌쯤, 수척한 체구, 기타 특징 불명, 흰색 복두건모 쓰고, 회색 학생복형 양복 상하를 입고 흰 양말에 삼짚신을 신음./ (乙) 키 五척 四촌쯤, 기타 특징 불명, 사냥 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회색 학생복형 양복 상하를 입고, 기타 불명./ 一, 범죄 방법 범인 甲은 피해자의 침실에 침입하여 피해자를 깨우고 금품 제공을 강요하고, 가택 안을 수색하여 피해자의 처 외 一명을 구타하며 돈을 내라고 협박하므로 반지를 제공하겠다고 말하였더니, 물건은 필요 없고 돈을 내라고 했다. 의복 등은 보지도 않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함. 문 앞으로 나가서 총소리 같은 소리를 二회 내고, 외부에서 망을 보던 乙범인과 함께 도주한 자이다. 도주처는 醴泉郡龍門面에서 聞慶郡東魯面 방면 같음./ 一, 유류품 기타 현장 부근에서 광산용 도화선이 타다 남은 약 一촌 길이의 것 三개와 삼짚신 한 짝씩 二개를 발견하다./ 도화선은 도주에 즈음하여, 추적을 피할 수단으로 사용한 것 같다. 짚신의 모양으로 보면, 발끝이 벌어진 사람인 것 같다. 일본식으로 생활하는 자가 아닌가 의심됨./ [날짜] 1927-05-26/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율곡리(栗谷里) 마을의 구성, 율곡리 [里] : 율곡리는 하리면(下里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하리행 지방도(下里行地方道)를 따라 가다가 용문면과 하리면의 경계에서 약 700m 지점에서 왼편으로 길게 뻗어 솔경지를 감아 흐르는 냇물을 건너게 되고, 건너편 낮은 기슭에 논티(魯峴)가 있고, 논티를 넘어 깊숙히 길을 따라 들어가면 수령(樹齡) 400년의 느티나무 2그루 사이로 마을이 펼쳐지는데, 이 마을이 작은밤실이다. 한편 작은밤실에서 등을 넘어 가거나, 아니면 솔경지에서 오류골 입구로부터 남쪽으로 냇물가를 따라 골짜기 입구 길을 찾아들면 지금도 사람이 사는 마을인지를 잘 알 수 없는 큰밤실에 도달할 수 있다. 경지 면적 86.8㎢ 중 밭 35.8㎢, 논 51㎢로서 논농사 중심으로 고추, 담배 등을 재배하고 있다. 1974년에 대통령 하사금 100만원으로 논티에 건평 25평의 마을창고를 건립하였다. 81가구 498명(1975)이 살다가, 72가구(1980) 중 삼척 金 17가구, 경주 李 7가구, 안동 金 6가구, 밀양 朴 6가구, 파평 尹 5가구, 단양 禹 4가구, 안동 權 4가구, 기타 23가구가 살았다. 그 후 69가구 343명(1992) 중 삼척 金 16가구, 경주 李 4가구, 밀양 朴 4가구, 안동 金 4가구 등이 살고 있다. 율곡리의 연도별 인구 현황은 다음과 같다.(醴泉統計年報)
年度 1972 1974 1976 1977 1978 1979 1992 1995 1996 1999 2004
家口 83 81 80 79 77 74 57 54 53 54 50
人口 501 498 496 479 458 422 237 197 189 179 142
율곡리(栗谷里) 연혁, 율곡리 [里] : 율곡리는 하리면(下里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658년(신라 무열왕 5) 적아현(赤牙縣) 소속이다가,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 은정현(醴泉郡殷正縣) 소속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예천군 은풍현(醴泉郡殷豊縣) 소속이 되었고, 1018년(현종 9)에 안동부은풍현(安東府殷豊縣) 소속으로 넘어갔다. 1390년(공양왕 2)에 기주 은풍현(基州殷豊縣) 소속이 되었고, 1450년(세종 32)에 풍기군 은풍현(豊基郡殷豊縣) 소속이 되었다가, 임진왜란(1592) 직후에 풍기군 하리면(豊基郡下里面) 소속이 되었다. 1914년에 영주군 하리면(榮州郡下里面) 소속이 되면서 율곡동 일부(栗谷洞一部)를 오류리(五柳里)로 넘겨주고 율곡동(栗谷洞)이라 하였다. 1923년에 예천군 하리면 율곡동(醴泉郡下里面栗谷洞이 되었고,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율곡사(栗谷寺) [寺刹] : 하리면 율곡리(栗谷里) 논티에 있는 사찰로, 김임순이 주택을 개조하여 창건하였다.(醴泉郡誌 1988)
율곡지(栗谷池) [못] : 하리면 율곡리(栗谷里)에 있는 저수지로, 저수량은 4,500t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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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곡 : 쇠실(하곡, 金谷) [傳說] : 하리면 금곡1리에 있는 자연 마을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선에 원병 왔을 때 이곳을 지나다가 산천을 바라보니 매우 수려하여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 생각하고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하여 데리고 온 지관에게 물으니, ꡒ이 마을 뒷산은 명당으로 인물이 많이 나는 곳ꡓ이라 하자, 이여송은 인재가 많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뒷산에 있는 명당자리에 혈을 끊으려고 쇠말뚝을 박았다고 해서 `쇠실'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한 순천 김씨가 임진왜란 때 이 곳으로 피신하여 처음 정착한 곳이라 `쇠실'이라고도 전해진다.(醴泉新聞 2004.4.19)
쇠실, 금곡(金谷) [마을] : 하리면 금곡리(金谷里)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뒤 매봉재 산세가 좋아 훌륭한 인물이 배출될 곳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명(明) 나라의 이여송(李如松)이 혈을 끊기 위해 쇠말둑을 박은 곳이라고 한다. 상주 함창(尙州咸昌)에서 상리면 명봉(上里面鳴鳳)으로 임진왜란을 피난 왔던 순천인 김광엽(金光燁)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김씨가 사는 곳이어서 쇠실이라고 한다. 15가구 68명(1980)이 살고 있다.
쇠실 [傳說] : 하리면 금곡리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1592)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조선에 원정 왔을 때 이곳 산천을 보니 훌륭한 인물이 많이 태어날 곳이라 하여, 그것을 막기 위해 요소에 혈(穴)을 끊으려고 쇠말뚝을 박은 곳이라 하여 '쇠실'이라 한다. 또 순천(順天) 김씨가 임진왜란 때 여기서 피난하고 처음 정착한 곳이라 하여 '쇠실'이라 부르기도 한다.(慶北 홈페이지 2000)
쇠실 : 마을 뒷편에 산세가 좋아 훌륭한 인물이 배출될 곳이라고 했는데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穴을 끊기 위해 쇠말둑을 박은 곳이라고도 하며 상주 함창 金光燁 公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김씨가 사는 곳이라 하여 쇠실이라 하였다고 한다.(下里面홈페이지 2013)
쇠실(金谷) [傳說] : ㅇ 위치 : 하리면 금곡1리(쇠실 뒷산), ㅇ 내용 : 임진왜란 때 명(明)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선에 원병(援兵)왔을 때 이곳을 지나다가 산천(山川)을 바라보니 매우 수려(秀麗)하여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 생각하고 조선의 맥(脈)을 끊기 위하여 데리고 온 지관(地官)에게 물으니, “이 마을 뒷산은 명당(明堂)으로 인물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며, 이것을 막기 위해 요소가 있는 마을 뒷산에 혈(穴)을 끊으려고 쇠말뚝을 박았다고 하여 「쇠실」이라 하였다. 또한 순천(順天) 김씨(金氏)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곳으로 피신(避身)하여 처음 정착(定着)한 곳이라 하여 「쇠실」이라고도 전해진다.(下里面홈페이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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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곡 : 읍실(邑室, 邑谷), 웁실, 장터, 시장(市場), 하리시장(下里市場) [마을] : 하리면 우곡1리(愚谷一里)에 있는 마을로, 주변 마을의 중심지이다. 은풍 구곡 팔목(殷豊九谷八項) 중의 하나이다. 고려 중엽 정생(鄭生)이 처음 살기 시작했다. 마을 주변 산세가 와우형(臥牛形)이므로 우곡(牛谷)이라 하다가 우곡(愚谷)으로 개칭하였고, 이 곳이 하리면 소재지로서 해방(1945) 후부터 은산시장(殷山市場)을 대신하여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고, 지금도 4일, 9일에 장이 열린다. 85가구 404명(1980)이 살고 있다.
읍실장(邑室場) [터] : 예천군 북쪽 20리에 있던 일제 때의 5일장(五日場)으로, 4일과 9일에 개시(開市)하였다.(醴泉郡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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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곡 : 오래실(五來洞) [터] : 임진왜란(1592) 직후 풍기군 하리면(豊基郡下里面) 소속의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1914년 영주군 하리면 오류동(榮州郡下里面五柳洞) 오래실(五來室)이 되었고, 1923년 예천군 하리면 오류동(醴泉郡下里面五柳洞) 오래실(五來室)이 되었다. 1988년에 동(洞) 리(里)로 개칭하였다. →오래실
오래실(五來洞), 오래동(五來洞) [마을] : 하리면 오류1리(五柳一里)에 있는 마을로, 금곡교(金谷橋)를 건너지 않고 곧바로 하리면소재지 쪽으로 약 300m 더 올라가면 나타나는 남향 마을이다. 뒷편이 병풍처럼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고, 확터진 마을 앞에는 넓게 뻗힌 논들, 그 논들 사이에는 개울이 사시사철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35가구 134명(1980)이 살고 있다. [傳說] : 고려 강종(康宗, 1212-1214) 때에 이 곳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 둘레가 오각(五角)으로 되어 있었고, 최길선(崔吉先)이 이 연못을 오류(五溜)라고 불렀다. 이 연못에는 세월을 낚는 태공(太公)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특히 다섯 사람이 자주 모여 오래 묵어가서 오래실(五來室)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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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곡 : 소내실, 솔내실, 송아실, 송천동(松川洞) [마을] : 하리면 송월리(松月里) 은풍 피난지 구곡팔목(九曲八項) 중의 하나로, 마을 앞 냇물이 맑고 마을 뒤 동산재에 소나무 숲이 우거졌고, 양옆으로는 참나무, 밤나무가 우거져 송천(松川)이라고 했다. 조선 중종 때 평해 황씨가 소백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다가 산세가 좋아서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33가구 262명(1980) 중 풍기 秦을 비롯하여 안동 金 2가구 등이 살고 있다.
소내실(솔내실, 松川) : 은풍의 피난지 구곡 팔목 중의 하나로 마을 앞 냇물이 맑고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송천이라 했다.(下里面홈페이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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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곡 : 구도실(求道室), 구두실(求斗室), 구두곡(邱斗谷), 구도(九道) [마을] : 상리면 두성리(斗星里)에 있는 마을로, 왕곡에서 같은 개울을 따라 윗쪽에 있다. 우탁(禹倬)이 오랫동안 이곳에서 공부하여 도(道)를 깨져 대성(大成)하였다. 동구(洞口)에 구도바우(求道岩)가 있다. 20가구 90명(1980)이 살고 있다가, 12가구(1992)가 살고 있다.
구두동(邱斗洞) [터] : 임진왜란(1592) 직후 풍기군 상리면(豊基郡上里面) 소속의 행정 동리 중 하나로, 1914년 영주군 상리면 두성동 구두(榮州郡上里面斗星洞邱斗)가 되었고, 1923년 예천군 상리면 두성동(醴泉郡上里面斗星洞) 구두(邱斗, 구두실, 求道谷)가 되었다.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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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곡 : 사실(沙室, 沙實), 사곡(沙谷), 상사(上沙), 하사(下沙) [마을] : 상리면 사곡리(沙谷里) 은풍골 9실 8목(殷豊谷九室八項) 중의 하나로, 사곡리의 중심 마을이다. 마을 뒷편에 명봉사(鳴鳳寺)가 있어 사곡(寺谷)으로도 불리었고, 역동 우탁(易東禹倬)이 공부를 하였다는, 이곳 백운봉(白雲峰)이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이다. 웃사실(上沙)와 아랫사실(下沙)로 나뉘어 진다. 71가구 364명(1980)이 살고 있는데, 상사와 하사에 비슷한 가구가 살고 있다. 상사에는 경주 崔를 비롯하여 강릉 金, 동래 鄭 등, 하사에는 경주 崔를 비롯하여 김해 金 등이 살고 있다.
사곡리(住民化合의 場이 열렸어요! 上里面 3個里 마을 새해 윷놀이 行事 開催) [記事] : 상리면 사곡리 마을 주민들은(이장: 한동수, 노인회장:반병래) 2007년 2월 26일 오전 11시부터 마을회관(사곡리 경로당) 앞마당에서 상리면 노인회 임원 5명 및 주민 100여 명(하사곡, 상사곡, 대바우 마을 주민)이 참여한 주민화합과 경로잔치를 겸한 새해 윷놀이대회를 가졌다. 이날 주민화합 윷놀이 대회에는 박시옥 농협조합장, 김명수 상리면장, 변장섭 농협지점장 등이 참석하여 격려와 축하를 해주었다. 1부 윷놀이, 2부 경품추첨과 노래자랑 등으로 이날 윷놀이 대회에는 한동수 이장(상리면 소방대장)이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3개 마을 노인과 주민들은 모처럼 한마음이 되어 흥겨운 하루를 보냈다.(김상국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7-02-26 오후 2:56:21)
사곡리(STX엔진 農村 일손 돕기 나서) [記事] : STX엔진 경영관리본부 임직원 40여 명은 2008년 11월 8일 1사 1촌의 일환으로 경북 예천군 상리면 사곡리 산간지역 과수원을 방문해 사과나무 과일수확 및 자연정화활동을 벌였다.(강종효 記者 뉴시스 2008.11.10 17:58)
사곡리 논콩생산단지(논콩 生産 對策 中央評價 받아) [記事] : 상리면 사곡 논콩생산단지가 2003년 10월 15일 지보면 수월리 고품질쌀 생산단지 중앙평가에 이어 또다시 농림부에서 실시하는 논콩 생산 대책 평가에 경북도를 대표해서 동년 10월 23일 현지에서 중앙 평가를 받았다. 이 번 평가는 쌀 수급 안정을 기하고 적정한 벼 재배 면적 유지를 위하여 전작 보상 형태의 논콩재배사업을 예천군에서 중점 추진해온 상리면 사곡리 논콩생산단지가 동년 10월 9일 도에서 실시한 예비 평가에서 우수단지로 선정돼 도 대표로 중앙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상리면 사곡리 논콩생산단지는 배수가 양호한 사양토로서 8.7ha 규모로 27농가(대표 한동수)가 참여해 일반 콩 우수 품종인 태광을 주로 재배하고 있으며, 당일 5필지를 지정해 1.5kg의 시료 2점을 채취 농림부 심사 기준에 따라 평가받게 된다.(醴泉新聞 2003-10-31 11:27:17)
사곡리(沙谷里) 마을의 구성, 사곡리 [里] : 사곡리는 상리면(上里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높은다리에서 명봉리(鳴鳳里) 쪽으로 산재한 마을들로 이루어졌다. 어림성(御臨城) 동록의 배바우와 백운봉(白雲峰) 밑의 상사(上沙), 하사(下沙), 높은다리 등 4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경지 면적 81.9ha 중 밭이 43.9ha, 논이 38ha로, 대부분 밭농사 위주이다.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마늘 재배 면적이 늘어나서 밭은 물론이고, 논의 대부분도 마늘과 벼의 2모작을 하고 있다. 이 마늘은 아주 굵고 단단하여 예천군의 특산품이 되었고, 전국의 상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로 인한 사곡리(沙谷里)의 연간 소득은 다른 이동에 비해 매우 높다. 59가구(1992)가 농가이다. 사곡리는 바위가 많고, 농토가 협소하여 다른 이동의 농지를 경작하는 농가가 많지만 새마을정신으로 동민이 단합하여 새마을사업을 실시한 결과 골목마다 차량이 내왕할 수 있도록 하였고, 1977년에 자립마을로 승격되어 대통령 하사금 150만원을 받아 새마을 창고 1동을 세웠다. 동네에는 감나무가 많다. 110가구(1973)중 경주 崔를 비롯하여, 강릉 金, 광산 卓, 밀양 朴, 咸, 李, 潘, 洪, 申, 尹, 韓, 鄭 등이 살고 있다가, 101가구(1980) 중 경주 崔 25가구, 광산 卓 10가구, 강릉 金 8가구, 기타 56가구가 살았다. 그 후 72가구 274명(1992, 남132,여142) 중 경주 崔 16가구, 경주 金 14가구, 밀양 朴 10가구 등이 살고 있다. 상리면 사곡리의 연도별 인구 현황은 다음과 같다.(醴泉統計年報)
年度 1972 1974 1976 1977 1978 1979 1992 1995 1996 1999 2004
家口 98 100 97 96 89 82 62 60 61 60 57
人口 606 580 518 506 464 415 245 198 187 160 131
사곡리는 상리면(上里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원래 658년(신라 무열왕 5) 적아현(赤牙縣) 소속이다가,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 은정현(醴泉郡殷正縣) 소속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예천군 은풍현(醴泉郡殷豊縣) 소속이 되었고, 1018년(현종 9)에 안동부 은풍현(安東府殷豊縣) 소속으로 넘어갔다. 1390년(공양왕 2)에 기주 은풍현(基州殷豊縣) 소속이 되었고, 1450년(세종 32)에 풍기군 은풍현(豊基郡 殷豊縣) 소속이 되었다가, 임진왜란(1592) 직후에 풍기군 상리면(豊基郡上里面) 소속이 되었다. 1914년에 영주군 상리면(榮州郡上里面) 소속이 되면서 상사동(上沙洞), 하사동(下沙洞), 신기동(新基洞) 일부를 병합하여 사곡동(沙谷洞)이라 하였다. 1923년에 예천군 상리면(醴泉郡上里面) 소속 사곡동(沙谷洞)이 되었고,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사곡리 호두기름공장(호두기름으로 富者될래요) [記事] : 2004년 12월 24일 오후 2시 상리면 사곡리 호두기름 공장이 김수남 군수를 비롯한 지역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갖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예천군이 농촌 여성 일감갖기 사업으로 추진한 상리면 호두기름 공장은 총 사업비 5,000만 원으로 건평 30평에 호두 볶는 솥, 유압기, 정제기 등을 갖추고 앞으로 위생적인 공정을 통해 깨끗하고 맑은 호두기름을 생산(250㎖단위) 판매하게 된다. 호두는 뇌의 활동을 촉진시키고 머리를 명석하게 하는 등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호두의 48%가 지방으로 인체에 매우 유익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리 지방의 호두는 불포화 지방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등 웰빙 식품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성인이 1일 티스푼으로 한 스푼씩 아침 저녁 공복에 복용하고, 소아인 경우는 티스푼으로 반 스푼씩 아침, 저녁 공복에 복용하면 효능을 볼 수 있다. 예천군은 앞으로 농촌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다양한 농촌 일감사업을 발굴하고 여성들의 보유 기술을 상품화해 농가 소득 증대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윤현숙 醴泉인터넷뉴스 2004-12-24 오전 9:52:32)
사곡지구 수맥도 조사보고서(沙谷地區水脈圖調査報告書) [冊] : 상리면 사곡리의 수맥 조사 보고서로, 농촌진흥공사에서 1983년에 편찬하였다. 총 18쪽, 삽도는 26cm + 수맥도는 82-9-27-25(1:5000)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청구기호는 8261-129-99)되어 있다.(韓國文獻目錄情報 C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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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곡 : 보곡(甫谷), 보실(甫室, 甫實), 상보곡(上甫谷) [마을] : 상리면 보곡리(甫谷里)의 으뜸 마을로, 은풍골 9실 8목(殷豊谷九室八項) 피난지 중의 하나이다. 동가재봉(東佳哉峰) 중턱에 있다. 1653년 성주 도씨가 마을을 개척할 때, 뒷산 동가재봉에 보국사(甫國寺)가 있어서 보국(甫國)이라고 하다가, 1780년경 사찰이 없어지고 1914년 지명 제정 때 보곡(甫谷)이라고 하였다. 학구(學區)는 은계초등학교(殷溪初等學校)인데, 장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야 한다. 31가구 126명(1980)이 살고 있다.
보곡리(上里面 農村일손돕기 支援) [記事] : 예천녹색희망연합(회장 권종항)과 상리면, 군 종합민원과, 곤충연구소 직원 50여명은 2010년 11월 4일 오전 9시부터 장기 입원으로 일손이 부족해 애를 태우는 상리면 보곡리 이풍우 농가의 사과밭 10,000㎡에서 일손돕기를 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아울러 딴 사과를 저온 창고에 넣어주고 새참과 중식도 자체 준비하는 등 어려운 농가의 시름을 덜어줬다.(醴泉인터넷放送 2010-11-04 오후 5:05:29)
보곡리(하늘아래 첫 農場에서 ‘無農藥’ 블루베리 本格 出荷 : 親環境 液肥로 관수, 昨年 國立農産物品質管理의 無農藥 認證 獲得) [記事] : ‘신이 내린 자연의 야생 선물’, ‘<타임>지가 선정한 슈퍼푸드’ 등의 수식어로 대형마트 등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블루베리’는 대부분 수입산 냉동블루베리와 건블루베리다. 이런 가운데 청정 두메산골에서 자란 ‘무농약’ 친환경 블루베리가 본격 출하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소백산 700m 하늘아래 첫 동네인 경북 예천군 상리면 보곡리 A농원이다. 이 농원에서 생산된 불루베리는 2010년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으로부터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흙이 좋아 4년 전 이곳으로 귀농한 B씨는 각종 전문서적과 전국 블루베리 재배 선도농가를 찾아보고, 수년간 시행착오를 한 결과 고품질 친환경 블루베리 재배방법을 발견했다. 밀과 쌀겨, 미생물을 일정 비율에 따라 혼합하고 3일간 발효시킨 친환경 액비로 관수하는 농법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이 농장 6000㎡에서 블루베리 1500㎏를 생산해 3천여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올해는 작황이 좋고 전국에서 구매가 많아 6천여만 원의 소득이 예상된다. B씨 부부는 “귀농하여 처음에는 우리 4가족이 어떻게 살지 막막하였는데 흙은 정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새로운 터전에서 열심히 살아가겠다.”며 검게 그을린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번졌다. 블루베리는 기능성 식품으로 뇌졸중 및 심근경색 등의 예방과 함께 안토시아닌이 다량 함유돼 항산화 작용, 노화에 의한 신체기능 저하억제, 막막 쇠퇴 억제 및 시력강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醴泉뉴스 2011년 0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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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환, 26일 국회복지위원장 표창 수상...축하합니다.
이윤환(이윤환 理事長 國會福祉委員長 表彰 受賞) [記事] : 인덕의료재단 이윤환 이사장이 '2016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인증돼, 2016년 4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수상했다. 이윤환 이사장은 환자들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노인의료의 선진국인 일본의 존엄케어를 벤치마킹해 한국형 요양병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고, 감사나눔경영을 도입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요양병원 최초로 경영부분에서 신지식인에 선정됐다. 최근 이 이사장의 노력으로 효심케어, 효도케어 등 존엄케어가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요양병원 업계 사이에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윤환 이사장은 "존엄케어는 '내 부모님처럼' 모신다는 효(孝)를 바탕으로 시작한다. 힘들었지만 재단 내 모든 임직원들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존엄케어와 감사나눔경영 실천을 통해 우리 재단만의 기업 정신으로 브랜딩하여 따뜻한 대한민국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醴泉新聞 2016년 05월 04일 (수) 1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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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필과 장병국, 1일 도산별과대전 병과 급제...축하합니다.
이수필과 장병국(慶北 醴泉 名聲 떨치는 '醴泉漢詩會' 이수필 會長·장병국 顧問 安東 도산別科 大展 丙科 及第) [記事] : 2016년 5월 1일 안동시 도산서원에서 열린 제23회 도산별과 대전에서 예천한시회 이수필(79) 회장과 장병국(79) 고문이 각각 병과에 급제했다. 이날 시제는 퇴계 선생을 추모하는 춘일 방 계상학림(春日 訪 溪上學林)이고, 운자는 심·음·금·흠·심(尋·陰·襟·欽·心)이다. 이수필 회장과 장병국 고문은 매년 전국 한시백일장 및 과거시험 재현 행사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예천 한시회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醴泉新聞 2016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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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