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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450;이춘영(5)
작성자장병창 @ 2016.07.08 06:13:27

  예천의 자랑(4450) : 이춘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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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이제 거의 그칠 만한데도, 兵革?可止/ 5년이 되도록 아직도 그치지 않네. 五年猶未休/ 타향에서는 발붙이기 어려운데, 殊方難着足/ 고향을 몇 번이나 돌아보았던가? 故國幾回頭/ 해가 저물어 벌레는 겨울옷 짜기를 재촉하고, 歲暮?催織/ 긴 하늘 기러기는 근심을 몰고 오네. 天長?引愁/ 桃源은 어디에 있나? 桃源何處是/ 돌아가는 꿈 林丘에 떨어지네. 歸夢落林丘/ 바쁜 일상 속에 늙기 다하였으니, 盡於忙裏老/ 누가 죽음 전에 휴식을 취하겠는가? 誰向死前休/ 세월의 맛은 닭의 갈비와 같고, 歲味?徒肋/ 이름 날리는 곳에서는 자라 머리 움츠리듯 하네. 名場鼈縮斗/ 곰곰히 지난날 생각해 보니, 悠悠懷往事/ 분명히 한가한 근심만 품고 있었네.        歷歷抱閑愁/ 예나 지금이나 끝내 무엇을 얻겠는가? 今古終何得/ 진실로 한 언덕에 사는 담비와 같도다. 眞同?一丘/ 李春英, <體素集> 上 5言律詩 ‘次端川韻 二首’, <韓國文集叢刊> 66冊 353쪽. 그는 벼슬살이를 하는 5년 동안 여러 번의 탄핵을 당하였고, 반대파의 비방은 끊이지 않았으며, 두 번이나 유배를 당하기도 하고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을 겪었다. 전쟁 중에는 존경하는 스승인 松江의 죽음도 맞이하였다. 비록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겪은 일들이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많은 것을 잃고, 상처받게 하였던 큰 사건들이었다. 1595년 함경도 定平으로 귀양을 간 그는 1597년까지 정평에 있었다. 외진 귀양지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걱정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계에 몸담은 5년 동안 두 번의 귀양살이를 하고 거듭 탄핵을 당하면서 인생 자체에 깊은 허무를 느끼게 되었다. 인생은 닭갈비처럼 아무 가치가 없고,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면 시기하는 자들의 시샘을 받게 되니,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펼치고자 하는 포부를 가슴에 가득 품고 있었으나, 그것 또한 한가한 근심에 불과했었다고 자조하며, 마지막 구절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사는 형편이 변함이 없다는 탄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생에 대한 허무와 갈등은 ‘桃源’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신선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출되고 있다. 즉 ‘桃源’은 현실의 갈등을 극복하고 작자가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도달점이자 이상향이다. 문집을 보면 정평에서의 귀양살이 이후 유독 신선에 관한 시가 많이 나타난다. “유선시의 커다란 두 가지 주제가 세상과 만나지 못한 근심의 詠懷와 선계에 노니는 즐거움” 鄭珉, <韓國道敎思想의 理解>,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아세아문화사, 101쪽 참조. 임을 볼 때, 이는 체소가 그만큼 현실에서 큰 좌절을 겪고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다음의 시에는 그의 이러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벼슬살이하면서 위기를 밟는 것 仕宦履危機/ 집에서 편안히 지내는 것만 못하네. 不如家食宜/ 몸소 밭갈며 長沮와 桀溺을 사모하였더니, 躬耕慕沮溺/ 도리어 남에게 부지되는 신세. 反爲人所持/ 처세함에 한번 발을 잘못 디디었더니 處世一失足/ 오년 동안 여전히 불행과 근심이라네. 五年仍禍罹/ 虛舟는 이미 無心한데, 虛舟已無心/ 소자는 도리어 알지 못하네. 小子顧未知/ 웃으며 아홉 번이나 꺽어진 비탈길 올라 笑登九折坂/ 험한 길 밟기를 평지 밟듯 하네. 履險如?夷/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보존할까나, 桑楡保晩景/ 바야흐로 스스로 어지러움을 거두어들이네. 收斂方自?/ 머리를 풀고 깊은 산에 들어가 披髮入深山/ 영원토록 遊仙詩를 지으려네. 永賦遊仙詩/ 李春英, <體素集> 中 5言古詩 ‘赴中山平康道中’, <韓國文集叢刊> 66冊 410쪽. 이 역시 정평에서 지은 시다. 詩題가 ‘赴中山平康道中’이라 되어 있는데, ‘中山’은 定平의 다른 이름이다. 시의 전반부에는 벼슬살이에서 겪은 좌절과, 귀양지에서의 궁벽한 생활을 읊고 있고, 중반부에는 그로 인한 인생에 대한 짙은 허무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이러한 허무한 인생에 대한 대안으로 신선계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失足’·‘禍罹’·‘履險’ 등의 단어는 작자가 현실에서 겪는 좌절이 어떠한가를 드러내고, ‘虛舟’·‘無心’은 그러한 좌절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가 배우고자 했던 마음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論語>에 보이는 ‘長沮’와 ‘桀溺’의 이야기를 따온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과 인륜에 대한 관심을 끊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虛舟’는 <莊子> ‘山木’편의 宜僚와 魯候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높은 지위와 많은 부는 모두 사람에게는 재난의 원인이 될 뿐이니, 자기를 텅 비게 하고서 욕심도 감정도 없이 무심히 세상을 노닐면 아무런 근심도 해도 없게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체소는 <장자>에 나타난 이러한 자세를 배우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깊은 산에 들어가, 영원토록 유선시를 짓겠다.’는 것은 이러한 괴로운 현실을 떠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선계를 찾아 현실에서 겪는 슬픔과 좌절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를 타나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披髮’과 ‘深山’이라는 단어는 작자가 이제 세상적인 제도를 거부하고, 세속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현실에서 겪은 가정적·사회적 불행은 체소로 하여금 더 이상 현실에 머물지 못하고, 제도권 밖에서 방황하게 하였다. 특히 벼슬살이를 시작한 이후 겪은 사회적인 불행은 그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비판과, 내면을 돌아보게 하였고, 그 결과 비슷한 시기 같은 서인계 문인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방외적인 성향을 지니도록 하였다. 다음 장에서는 그의 그러한 방외인적 성향이 시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 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2) 方外人的 性向 : 방외인 문학에 대한 정의와 개념에 대해서 林熒澤 교수는 ‘방외인 문학’을 관료적 문학과 처사적 문학에 대립되는 존재로 파악하면서, ‘방외인’은 관료적 세계와 처사적 세계 그 어느 쪽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도덕적 사회적 규범을 초탈한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라고 보았으며, 규범 밖에서 노는 방외인적 삶의 자세는 곧 부당한 현실을 거부하는 저항의 한 표현이며, 그들은 일종의 반항적인 인간형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방외인적 정신을 구현한 문학을 ‘방외인 문학’의 성격이라고 한 후, 이들 문학을 주자학적 도덕주의를 극복하려하고, 사대부 사회의 모순에 대결하는 데서 열려지고 있는 진취적인 문예사조라고 보았다. 林熒澤, <朝鮮 前期 漢文學>, <한국사> 11, 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 1974, 252~253쪽. 또 학자적 양심을 지켜 정치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의리를 존숭하고 행실을 돈독히 하여 규범적이며, 성리학의 세계에 침잠하는 산림학자의 부류인 처사형과는 달리 이들 방외인은 격렬한 비분, 과격한 비판의 자세가 체제에 용납되지 못하므로, 결국 현실권 밖으로 자기를 이탈시켜 버린 부류, 氣節을 숭상하면서 사회적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는 放達不羈의 인간형이며, 성리학에 몰입하기보다는 문학의 세계에서 자아를 찾으려 한다고 보았다. 林熒澤, <朝鮮前期 文人類型과 方外人文學>, <한국문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 1982, 246쪽. 이와 같은 정의를 토대로 體素의 시들을 살펴보면 방외인적 성향을 가지는 것들을 여러 편 볼 수 있다. 그러나 체소는 이른바 체제 밖의 삶을 살지 않았고, 또한 그의 시에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과 비판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그를 적극적인 의미의 방외인 문인이라 지칭하기는 어렵지만, 그 외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절실한 개인적 경험을 담아내는 시도 있고, 도·불가류의 시도 더러 보이고, 시에 드러난 내면의 세계에는 방외인의 기질이 다분히 엿보이며, 무엇보다도 문인이기를 자처했던 고독한 지식인임을 통해서 그 또한 방외인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鄭珉도 그를 林悌·李達·任?·趙纘韓·權克中과 더불어 성향에 있어 丹學派 제1세대들이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외적 처세로 삶의 궤적을 유지했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鄭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 개관과 출현동인>, <韓國 道敎思想의 理解>, 아세아문화사, 1990, 128쪽. 다음은 그러한 그의 성향을 보여주는 몇 편의 시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나그네 베갯머리 잠은 오지 아니하여, 旅枕苦無睡/ 책을 읽어도 새벽은 쉬 오지 않네. 讀書難喚晨/ 늘그막에 오래도록 나그네 되니, 殘年長作客/ 浮世에 어찌 이 몸 허용하리요. 浮世豈容身/ 문득 새봄이 멀지 않음 깨달으니, 又覺靑陽逼/ 흰머리 늘어난 것 새삼 놀라네. 頻驚白髮新/ 계절과 세상사를 생각하노라니, 天時與人事/ 오늘도 눈물로 수건 적시네. 今日更沾巾/ 李春英, <體素集> 上 5言律詩 ‘西林客夜有感’, <韓國文集叢刊> 66冊 356쪽. 시제가 ‘西林客夜有感’인데, 西林은 平安北道 鐵山郡 西林面을 지칭하는 것으로, 시가 지어진 연대는 1601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이때는 체소가 이덕형의 탄핵으로 예천군수에서 물러나 다시 한번 뼈저린 좌절을 맛보았을 때이다. 동인이 득세한 정계에서 몰락한 서인인 체소를 끝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저런 세상일에 대한 고민으로 작자는 쉬 잠들지 못하고 있다. 불혹의 나이는 벌써 넘겼건만 아직도 세상에 대한 포부는 펼치지 못하고 여전히 나그네 신세인 처지가 한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제4구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처럼 그가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방외로 밀려나 있는 것이 꼭 당쟁으로 인한 힘겨루기의 패배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지럽고 모순된 현실과 뜬구름처럼 덧없는 세상에 자신의 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결의가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현실을 걱정하고 눈물지으며 현실을 끝내 저버리지 못하는 儒者의 면모가 7?8구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현실에 대한 갈등과 방황으로 가슴 아파하고, 부질없는 인생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면서도 세상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는 작자의 모습은 다음 시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본래 산림 중 호탕한 사람이라, 我本山林浩蕩人/ 우연히 세간으로 내려와 벼슬살이 하였다네. 偶來城市絆朝紳/ 공명은 창으로 기장을 찧는 것과 다르지 않고, 功名不異戈?黍/ 시와 술만 오히려 내 몸의 그림자 되어주네 詩酒猶如影伴身/ 천리 나그네 길 여전히 임금을 그리워하고, 千里旅遊還戀闕/ 새벽 꿈속에서 괴롭게 부모님 생각하네. 五更歸夢苦思親/ 영고와 득실은 잠깐 사이의 일 榮枯得失須臾事/ 영대를 바라보니 한 조각 봄기운이 도네. 看取靈臺一片春/ 李春英, <體素集>, 上 5言律詩 ‘偶題’, <韓國文集叢刊> 66冊 376쪽. 첫째 구의 ‘山林浩蕩人’과 둘째 구의 ‘城市絆朝紳’은 대구를 이루며, 작자가 현실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암시하고 있다. 작자의 벼슬살이의 목적은 부질없는 功名의 추구가 아니었다. 호탕한 성격은 이러한 공명의 추구인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했을 것이고, 이것은 작자가 정치권 밖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즉 ‘功名’과 ‘詩酒’는 서로 대구를 이루며 의미상 ‘자아’와 ‘세계’의 대립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시와 술이 내 몸의 그림자 되어주네’란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詩酒’가 자아의 異稱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선행연구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그림자’란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것으로, ‘비쳐진 나’이다. 그것은 분명 나를 닮았을 것이고, 외면적인 나의 投射된 모습 尹柱弼, <朝鮮前期 方外人 文學에 관한 當代人의 認識 硏究>,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논문, 1990, 150쪽. 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림자’는 나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또 다른 나’인 것이다. ‘詩와 술’이 이러한 그림자가 된다고 하였으니, ‘詩酒’는 작자가 평생 추구하고자 했던 작자의 자화상이자, 일생을 함께 한 동반자임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물러나 시와 술로 일생을 보내려 하였지만, 5·6구에는 앞의 시에서도 나타났던 세상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는 작자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는 비록 방외에 있었으나 유교국가의 윤리질서 속에 위치하여, 그 사회와 완전히 등질 수는 없었으며, 몸은 세상을 버렸으나, 마음은 세상을 떠나지 못했던 방외인의 또 다른 성향을 그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들 방외인의 출신은 사대부이거나, 사대부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사대부적인 의식의 영향하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태생적 계층이 무엇이든 당대의 깨어있는 지식인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녔으며, 조선조 사회가 그들의 삶의 근거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러한 성향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은희, <石洲 權? 文學의 一性格 - 方外人的 傾向을 中心으로>, 덕성여대논문집 제29집, 1998, 253쪽. 다음의 시에는 변방에서 여전히 나그네로 지내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신세 한탄과, ‘虞卿’이라는 대상을 통한 자아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누각에서 자다 깨니 변방 피리소리 흐느끼듯 들리고, 睡起高樓咽塞?/ 삭풍이 나무 가지를 흔들어 새벽 갈가마귀 흩어지네. 朔風吹樹散晨鴉/ 타향에서 또 한해가 지나가는 것을 한스러워 하니, 殊方又作?年恨/ 중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길 잃은 탄식뿐이네. 中歲仍爲失路嗟/ 시와 술이 때때로 마음 달래 주지만,      詩酒有時堪遣興/ 꿈길에선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밤이 없다네. 夢魂無夜不歸家/ 虞卿도 바야흐로 궁하여 근심하는 날을 맞았지만, 虞卿正値窮愁日/ 절의는 이루었으니 스스로 자랑할 만하네.   節義篇成自可誇/ 李春英, <體素集> 上 7言律詩 ‘睡起’, <韓國文集叢刊> 66冊 377쪽. 첫째 구와 둘째 구에서는 작자가 거처하고 있는 주변 환경을 묘사함으로써 변방의 쓸쓸함과 추운 겨울날씨의 을씨년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변방[塞]’, ‘피리소리[?]’, ‘삭풍[朔風]’, ‘갈가마귀[鴉]’의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자는 춥고 외로운 타향에서 변함없는 나그네 신세로 또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한해의 바뀜은 단순한 세월의 흐름이 아니다. 셋째 구에서 그는 이렇게 지나가는 한해가 한스럽다고 하였는데, 그가 이토록 한스러워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은 다음 구절에 드러난다. 불혹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찾아야 할 길, 즉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점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인생의 목표란 가슴속에 품은 壯志를 펼쳐 모순 투성이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슴속의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쓸쓸히 변방의 나그네로 살아가는 작자에게 벗이 되어 주는 것은 여전히 詩와 술뿐이다. 그러나 7·8구에 이르면 ‘虞卿’이라는 인물과의 대비를 통한 자아인식이 드러난다. 우경은 戰國時代 趙나라의 孝成王에게 유세하여 조나라의 上卿까지 오른 인물로, 虞 땅을 봉읍으로 받았으므로 그렇게 불렀다. “…虞卿者, 游說之士也. ???登趙孝成王, 一見 賜黃金百鎰 白璧一雙, 再見 爲趙上卿, 故號爲虞卿.…”(司馬遷, <史記> 卷76 ‘平原君 虞卿列傳 第16’, <漢文大系> 6冊, 292쪽) 그는 효성왕을 잘 보필하여 당시 강국으로 천하통일을 꿈꾸던 秦나라의 침략을 막아내었다. 이 일로 우경은 城 하나를 봉읍으로 받았다. 이렇게 조나라에서 높은 대우를 받으며 오랜 봉사를 하다가 魏齊의 사건으로 곤궁한 날을 당하게 된다. 魏齊는 魏의 제상이었는데 秦의 范?와는 원수지간이었다. 범수가 후에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제의 목을 강력히 요구하자, 위제는 친구인 우경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우경은 위제를 구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함께 大梁으로 달아났다가 위제는 자살하고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곤궁 속에서도 그는 국가 득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虞氏春秋>라는 저술을 남기게 된다. 사마천은 친구의 역경을 보고 참지 못하여 부귀를 버리고 곤궁함을 自取한 우경의 태도는 ‘義’ 때문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太史公曰: … 虞卿料事?情, 爲趙?策, 何其工也! 及不忍魏齊, 卒困於大梁, 庸夫且知其不可, 況賢人乎? 然虞卿非窮愁, 亦不能著書以自見於後世云.”(司馬遷, <史記> 卷76 ‘平原君 虞卿列傳 第16’, <漢文大系> 6冊, 300쪽.) 즉 체소는 ‘의’를 지키기 위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버리고 곤궁함을 선택한 우경의 모습을 통하여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온갖 괴로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方內적인 가치를 과감히 버리고 ‘의’를 택한 우경의 모습은 체소가 취하고자 하였던 이상적인 자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의 ‘절의는 이루었으니 스스로 자랑할 만 하다’는 것은 중의적인 표현으로, 우경의 절의를 칭찬하는 듯 하면서 사실은 자신 또한 우경처럼 의를 위하여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궁함을 자취한 것이라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시에는 오랫동안 나그네로 지내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슬픔과, 체제의 바깥에 있으면서 지키고자 했던 자신의 뜻과 포부가 모두 헛된 것이었다는 자조가 드러난다.

 

  나그네 신세 오래니 어느 때 돌아갈까, 客久何時返/ 삼경은 길기만 해 새벽은 오지 않네. 更長不可晨/ 한갓 천리의 뜻을 품기만 하더니,      徒懷千里志/ 부질없이 백년의 몸을 저버리네. 虛負百年身/ 즐거운 일은 날로 적어지고, 樂事隨時減/ 근심의 단서만 세월을 좇아 새로워지네. 憂端逐歲新/ 이미 거울 가득한 흰머리를 보고,   已從霜滿鏡/ 공연히 수건에 눈물만 가득 적시네. 空有淚盈巾/ 李春英, <體素集> 上 5言律詩 ‘西林客夜有感’ 其二, <韓國文集叢刊> 66冊 356쪽. ‘久’·‘長’, ‘千里’·‘百年’, ‘隨時’·‘逐歲’, ‘霜滿鏡’·‘淚盈巾’ 등 전체적으로 대구의 수법을 통하여 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첫째 구에서는 나그네 생활에 지친 작자가 안식처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고민은 작자로 하여금 새벽까지 잠 못 들게 하고 있다. 둘째 구에 나타나는 ‘천리의 뜻’은 도성에서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펼치고 싶어했던 작자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천리’란 서림에서 한양까지의 거리를 나타낸 말로, 작자가 처해있는 곳이 서울에서 아주 먼 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즉 한갓 도성을 향한 마음만 늘 품고 있었다는 뜻이다. 도성은 정치가 이루어지는 핵심적인 곳으로 체소의 정치에 대한 포부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千里’의 대구인 ‘百年’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유한한 數의 개념은 자신이 품었던 壯志와 인생이 유한한 것이라는 自嘲로 이어진다. 이는 예전에 품었던 기대감과 현재의 좌절감이 대비되면서 현재 자신이 처한 고난이 어떠한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꿈과 유한한 인생은 작자의 삶에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늙어만 가는 자신에 대한 신세 한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 시에는 晩年의 쓸쓸한 생활상을 통하여 이러한 자조와 한탄을 표현하였다.

 

  마흔 세 해 보내는 동안, 四十三年過/ 인간 세상 길 험난했네. 人間世路難/ 살쩍은 새해에 서리 더하고, ?添新歲白/ 얼굴은 젊은 날의 붉은 빛 사라졌네. 顔減舊時丹/ 서툰 계책 쓸데없는 일에 안주하고, 拙計安蛇足/ 고단한 삶은 하찮은 일에 매달리네. 勞生付鼠肝/ 외로운 등불 켜고 근심 겨워 잠들지 못하고, 孤燈愁不寐/ 가는 비 소리에 남은 밤을 보내네. 細雨送宵殘/ 李春英, <體素集> 上 5言律詩 /除夜逢雨‘, <韓國文集叢刊> 66冊 356쪽. 이 시는 1606년에 지어진 것으로, 그가 세상에 살았던 마지막 1년을 맞이하면서 지은 것으로 보여진다. 작자는 44세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早失父母, 반려자였던 부인의 죽음, 스승인 松江의 몰락과 유배, 당쟁으로 인한 또 한 차례의 유배, 현실정치에서 밀려나 오래도록 타관을 떠돌며 방랑하는 등 인생의 여러 가지 고통을 맛보았다. 말년에는 淸州의 田舍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 이렇게 계속되는 고난은 작자로 하여금 인생 자체에 대한 회의와 함께 젊은 날 품었던 포부나 계책도 ‘蛇足’처럼 쓰잘 데 없는 것이었다는 자조를 품게 하였다. ‘蛇足’이나 ‘鼠肝’등의 단어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험난한 인생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가치 또한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이러한 인생에 대한 깊은 슬픔과 자조는 생의 마지막까지 그를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잠못 들게 하고 있다. 7·8구의 ‘孤燈’이나 ‘細雨’를 통하여 작자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다음 시에는 이렇듯 현실에서 겪는 아픔과 괴로움의 대안으로 체소가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초가을 내린 비 온 땅 적시니, 澤國新秋雨/ 높은 누각에서 오랜 나그네 마음 달래네. 危樓久客心/ 구름 낀 산은 근심 속에 멀기만 하고, 雲山愁裏遠/ 푸른 바다는 바라보니 깊기만 하네. 滄海望中深/ 衰病이 어느덧 이르렀는데, 衰病居然及/ 신선은 아직도 찾지 못했네. 神仙未可尋/ 난간에 기대어 흰머리 긁으며, 憑欄搔白首/ 천지만 길게 읊조리고 있네. 天地入長吟/ 李春英, <體素集> 上 5言律詩 ‘北樓逢雨’, <韓國文集叢刊> 66冊 356쪽. 작자가 나그네가 된 것은 당쟁의 한가운데에서 반대파의 숙청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타협할 수 없는 현실과의 대립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밀려난 나그네의 시선에는 산과 바다가 멀고 깊게만 느껴진다. ‘雲山’과 ‘滄海’, ‘愁裏遠’과 ‘望中深’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두 경물 사이의 먼 거리와, ‘遠’과 ‘深’이라는 단어는 작자의 좌절감과 슬픔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이는 자아와 현실이 부합하지 못하고 그 둘의 간격이 좁아지지 못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작자는 현실과 자신과의 좁혀질 수 없는 갈등에 대한 대안으로 ‘신선’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안인 신선마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였으니 그의 좌절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큰 좌절감은 체소로 하여금 더욱 신선사상에 빠져들게 하였고, 그는 무한하고 환상적인 신선계의 동경을 통하여 현실갈등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다음 장에서 그의 이러한 정신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3. 遊仙詩에 投影된 現實認識-讀神仙傳 53首를 中心으로- : 시의 분류에 있어 ‘遊仙詩’라 命名하게 된 것은 魏나라 때 曹丕·曹植 형제로부터 비롯했다고 한다. 이들 형제가 최초로 ‘遊仙’이라고 작품에 題名을 했고, 晉 이후 이것이 일반화되어 마침내 ‘유선’의 제명이 유선시를 분류하는 한 표준이 되었다. 鄭在書,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211쪽. 유선시의 의미에 대해서는 <論語> ‘述而’편의 ‘遊於藝’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遊於仙’하는 경지를 음영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鄭在書,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204쪽. 梁나라 때 蕭統의 <文選>의 注에서 李善은 遊仙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리고 있다. 모든 유선의 작품은 속세를 더럽게 여기고 부귀영화를 하찮게 여기고 천상에서 노을을 먹고 낙원에서 옥을 복용하는 것을 한결같은 내용으로 하고 있다. “凡遊仙之篇, 皆所以滓穢塵網, ?銖纓?, 食霞倒景, 餌玉玄都.” (李善 注, <昭明文選> 郭璞 ‘遊仙詩’) 현대의 유선시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洪順隆 : “시가의 체재로서 시인과 仙人의 교제, 선계에의 환상적 여행을 표현하고 煉丹·服食등의 정신세계를 묘사한 것” 洪順隆, <六朝詩論>, ‘詩論六朝的遊仙詩’, 文津出版社, 1978. 이 유선시라고 정의했다. ② 鄭在書 : 유선시란 신선설화를 제재 내지 주제로 한 시가형식이라고 하면서, 유선시의 바탕이 신선설화이고 신선설화의 기본정신이 장생불사 사상이니까 이러한 취지에 입각한 작품이 유선시에 속할 수 있다고 하였다. 鄭在書,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204쪽. ③ 姜信碩 : “유선시는 신선사상의 영향하에 ‘神仙遊戱’적 색채가 짙은 시의 한 형태로 속세의 현실을 떠나는 일탈행위와 정신적으로 선계의 이상향을 추구하려는 ‘超越意識’이 반영되어 있는 시” 姜信碩, <郭璞의 <遊仙詩>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석사학위 논문, 1989, 10쪽 참조.

  라고 하였다. ④ 鄭珉 : 遊仙詩란 “신선전설을 제재로 仙界傲遊와 鍊丹服藥을 통해 불로장생의 염원을 노래하거나, 혹은 移塵去俗하는 선계에서의 노님을 통해 현실에서의 갈등과 질곡을 서정, 극복하려 한 시” 鄭珉, <16, 7세기 遊仙詩의 자료 개관과 출현동인>, ‘韓國 道敎思想의 理解’, 아세아문화사, 1990, 102쪽 참조. 라고 정의하였다. 이상의 유선시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것을 찾을 수 있는데, ④번 정민의 이 그러한 것을 종합적으로 가장 잘 정리하여 정의한 것으로 보인다. <體素集>에는 /讀神仙傳‘ 53首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신선과 도가에 관한 시가 들어 있다. 鄭珉에 의하면, 한시 문학사에서 “16,7세기 유선시의 창작이 돌출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는 學唐의 영향과, 여러 차례의 사화와 당쟁, 그리고 7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혼란한 사회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연산·중종 이래 거듭된 사화와 정쟁으로 인한 암흑과 사회의 혼란은 뜻있는 선비들에게 현세에의 혐오를 불러일으켰다. 체소 개인에게 있어서도 유선시의 창작은 이러한 사회 현상과 맞물린 자신의 불행에 대한 깊은 좌절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체소는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인들 보다 遊仙詩의 편수가 많은데, 특히 ’讀神仙傳‘ 53首는 분량으로도 許蘭雪軒의 ’遊仙詞‘ 다음으로 많다. 그는 유선시의 창작을 통하여 현실에서 겪는 좌절과 아픔을 선계를 향한 동경으로 표출하였다.

 

  이 시는 7언절구로 되어 있는데, 이는 유선시의 특징상 신선설화를 바탕으로 많은 고사를 끌어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5언이나 율시보다 시의 창작에 제약을 덜 받는 7언과 절구를 선택한 듯하다. 체소의 ’독신선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선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지은 시이다. 그러나 허균의 ’列仙贊 幷引‘이나 郭元祖의 ’列仙傳贊‘이 시의 대상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에 비해, 체소의 시에는 그 구체적 대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 전체 53수 중 그나마 시 속에 대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제2수의 ‘上元夫人’,·‘西王母’, 제3수의 ‘三千童女’, 제5수의 ‘周狄山’·‘素書’, 제6수의 ‘淮南王’, 제10수의 ‘長房’, 제12수의 ‘杜子春’, 제21수의 ‘月宮仙娥’, 제22수의 ‘藍采和’, 제26수의 ‘綠髮翁’, 제35수의 ‘毛女’, 제39수의 ‘衛符卿’, 제47수의 ‘麻婆’, 제48수의 ‘姚氏三子’, 제49수의 ‘姮娥’, 제50수의 ‘織女’, 제53수의 ‘(楊)貴妃’의 17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의 내용을 통하여 어떤 이야기를 읽고 지은 것인지를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다. 鄭珉은 체소의 ‘독신선전’이 단순 묘사에 그쳐 수준이 허난설헌보다 조금 떨어진다고 하였다. 鄭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 ‘韓國 道敎思想의 理解’, 아세아문화사, 1990, 111쪽. 그러나 전체 시를 살펴보면 고사를 단순히 묘사만 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구절에 스스로의 느낌이나 평을 덧붙여 놓은 것이 다수 있다. 예를 들면, 제3수는 진시황의 명으로 봉래산을 찾으러 떠났던 三千童女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인데, 첫째 구와 두 번째 구에서는 삼천 동녀가 樓船을 타고 봉래산을 찾아가 신선이 되었다는 고사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와 네 번째 구에서는 이들이 비록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기는 하였으나, 아방궁에서 진시황과 함께 죽어 황천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고 말하고 있다. “三千童女泛樓船, 去作蓬萊??仙. 猶勝阿房宮裏伴, 死隨鳧?掩黃泉.”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3, <韓國文集叢刊> 66冊 365쪽.) 이런 식의 自評을 덧붙여 놓은 시가 대략 16首 정도 된다. 물론 체소의 ‘독신선전’이 난설헌에 비해 음영대상에 대한 명확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이토록 방대한 양의 유선시를 지은 것은 유선시의 창작을 통하여 그가 나타내고자 한 것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유선시의 창작을 통하여 투영된 그의 현실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유선시의 도입 부분은 대부분 세속적, 현실적 한계에 대한 불만을 비분강개하게 토로하면서 현실 초월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鄭在書는 신선설화에서 주인공의 떠남이 科擧에의 실패·重病·遺棄·失踪·권력층으로부터의 은퇴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상황으로부터 유래하도록 얘기되고 있다고 하였는데, 鄭在書,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219쪽. 체소의 경우도 정치적 불우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좌절은 어떤 식으로든 ‘유선시’에 음영을 드리웠을 것이고, 유선시를 통하여 현실에서 겪는 갈등을 해소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는 선계에 대한 동경과 현실을 버리고 승천하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난다. 아래의 시는 신선계에 대한 묘사와 天仙形 신선으로 대표되는 漢武帝와 西王母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그의 선계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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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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