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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451) : 이춘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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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元의 仙駕가 구름 가운데서 내려오니, 上元仙駕下雲中/ 西王母와 서로 맞이하여 紫宮을 지나가네. 金母相邀過紫宮/ 천화가 옥 같은 ?隱을 불태우니, 天火一燒瓊?隱/ 神女는 靑童을 부를 것을 다시 번민하네. 更煩神女詔靑童/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2, <韓國文集叢刊> 66冊 365쪽. <漢武帝內傳>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53수 중 제2수이다. 한무제는 長生術을 즐겨 名山大澤에 기도하고 신선을 찾았으며, 元封元年에는 嵩山에 제사하고 神宮을 세웠다. 어느 날 밤 무제가 承華殿에서 東方朔과 董仲舒와 마주 앉아 있는데, 푸른 옷을 입은 女仙이 홀연 나타나 자신은 서왕모의 사자인데, 무제가 임금의 신분으로 仙道를 구하여 산에 제사함을 서왕모가 보고 기특히 여기고 있으니, 百日齋戒하고 기다리면 7월 7일에 만나러 온다는 것이었다. 과연 7월 7일 밤 구름 속에서 음악소리와 人馬의 소리가 들리더니, 16, 7세 정도 된 미인인 두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서왕모가 올라왔다. 왕모는 갖가지 진귀한 물건을 가져왔고 ‘五嶽眞形圖’와 ‘六甲靈飛’ 등을 주며 나중에 ‘오악진형도’는 董仲舒에게 ‘육갑영비’ 등을 李少君에게 전수케 하라고 하였다. 그 후 무제는 이 둘을 손으로 베껴 황금상자에 넣어 栢梁臺 위에 秘藏하고 이를 拜讀하였는데, 天火를 입어 栢梁臺가 불탈 때 이 두 신령스런 경전도 소실되고 말았다. 이는 무제가 왕모의 정성을 어기고 夷狄을 遠征하여 항복한 군졸을 坑殺하고 궁전을 짓느라고 백성들을 괴롭힌 업보 때문이라 하였다. 李鍾殷, <韓國漢詩上의 神僊思想> (<한양대학교 논문집> V.13, 1979, 40쪽 참조.) 1·2·3구에서는 고사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고, 마지막 4구에서는 神女의 입장에서 느낌을 덧붙여 놓고 있다. 여기에서 신녀란 서왕모를 가리키는 듯하다. 상원부인과 서왕모는 도가의 대표적 女仙 중 하나이다. 한무제는 儒學을 尊崇하여 百家와 異端을 배척하고 학문을 振作시킨 황제였으나, 한편 신선술에 혹하여 갖가지 설화를 남겼다. 그는 李少君·少翁·欒大 등 方士를 통해 安期生·?門을 찾으려 애썼고 不死의 仙藥을 얻으려 하였다고 한다. 李鍾殷, <韓國漢詩上의 神僊思想>, <한양대학교 논문집> V.13, 1979, 40쪽. 上元은 도교의 여선의 하나인 上元夫人을 일컫는 것이고, 金母는 西王母를 지칭하는 말이다. 紫宮은 天帝가 거처하는 곳을 이른다. 體素는 무제가 선녀를 만나는 것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후에 그가 정성을 다하지 못하여 靈經이 불타 버리는 내용을 통하여, 온전한 덕을 갖추어야 선계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神女가 靑童을 다시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덕을 고루 갖추어 성선의 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체소는 은연중에 그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시에도 이러한 생각이 드러나 있다.
새로이 淮南을 향하여 八公이 내려오니, 新向淮南降八公/ 잠깐 사이에 백발 늙은이 靑童으로 변했네. 須臾白?變靑童/ 長安의 使者가 그 남은 흔적을 구하고자 했으나, 長安使者求遺迹/ 아득한 노을 중에 구름깃발 피는 것만 웃으며 가리키네. 笑指雲旌杳靄中/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6, <韓國文集叢刊> 66冊 365쪽. <신선전> <淮南王 劉安>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제6수이다. 劉安은 漢高帝의 손자로 유학을 尊崇하고 占術에도 능통했다. 언제나 착실히 공부하여 博學하고 재능이 뛰어났으며, 무제에게 정치의 득실을 말하거나 賦와 頌을 지어 바치기도 하였다. 천하의 圖書를 널리 구하고 방술의 선비가 있으면 천리도 멀다하지 않고 말을 낮추고 예를 두텁게 하여 불렀다. 八公은 유안 앞에서 금새 어린아이로 변하기도 하고 다시 늙은이로 변하기도 하는 등 선술을 보여주어 그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그는 팔공에게 선도를 얻어듣게 되었다. 그런데 유안에게 죄를 지은 雷被와 伍被라는 자가 유안이 모반을 꾀한다고 모함하여, 천자가 궁내대신으로 하여금 사건의 처리를 맡게 하였다. 팔공은 유안이 몸을 숨기기를 권하였고, 같이 산에 올라 크게 제사 지낸 후 승천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궁내대신이 일의 전말을 알게 되고, 뇌피와 오피는 친족까지 멸문을 당하였다. 역시 1·2·3구에서는 고사를 묘사해 놓고, 4구에서 제3자의 시선으로 감상을 덧붙여 놓았다. 유안은 왕족으로 억울한 모함을 받아 도피하는 몸이 된다. 이는 체소의 상황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체소의 집안은 왕족의 일가이고, 그 역시 정쟁의 대립 속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유안을 산으로 인도하여 입선하게 했던 팔공은 “대체로 王族의 籍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 誣告를 당했을 경우에는 그 무고한 자는 즉시 죽어 없어지는 것이니 伍被등은 장차 베임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체소는 이런 유안의 고사를 통하여 더 없는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4구에서는 흰 구름과 붉은 노을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승천한 유안에 대한 부러움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아래의 시는 세상에서 異蹟을 행하며 주위의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가 신선계로 승천하는 주인공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옥 같은 조서로 새로 藍采和를 부르니, 玉詔新招藍采和/ 구천의 궁궐은 푸르게 우뚝 솟아 있네. 九天宮闕碧嵯峨/ 신과 적삼을 아래로 던지니 찾을 데가 없는데, 靴衫擲下無尋處/ 인간세상에서는 공연히 醉踏歌만 전하네. 人世空傳醉踏歌/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22, <韓國文集叢刊> 66冊 366쪽. <태평광기> 권21 ‘藍采和’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제22수이다. 藍采和는 출신이 어딘지 분명하지 않은 異人이다. 남색 누더기를 입고 검은 나무 허리띠를 매고, 한쪽 발만 장화를 신고 다녔다. 여름에는 솜옷을 입고, 겨울에는 눈밭에 뒹굴고, 항상 성안의 저자거리에서 술 취해 노래하며 걸식하였다. 또한 익살스럽고 재기가 흘러 늘 사람들이 뒤따라 구경하였는데, 미친 듯 하기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길을 걸을 때는 拍板으로 신을 치며 踏歌를 불렀는데, 그의 노래는 대개 신선의 志趣여서 세상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동냥으로 번 돈은 가난한 사람에게 모두 나누어주기도 하고, 술집에 모두 주기도 하였다. 그는 천하를 주유했는데, 어떤 사람은 아이 때부터 노인에 이를 때까지 그를 보았으나, 그의 용모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濠梁의 酒樓에서 답가를 부르며 승천했는데, 적삼과 장화와 허리띠와 拍板만 떨어지고 아득히 사라져 버렸다. 성격이 강개하고 호방하여 주위의 자잘한 예법에 구속됨이 없었던 체소는 주위의 어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천하를 주유하였던 남채화에게서 자신의 일면을 발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남채화는 인간의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다가 술 마시고 취하여 승천하였다. 이 시에는 불로장생하며 자유롭게 사는 신선에 대한 동경이 짙게 배어있다. 이 시를 통해서 우리는 체소가 주인공의 크고 넓은 정신세계에서 오는 활달하고 자유로운 기상을 바탕으로 우울하고 암담한 현실을 해소하고자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神仙界를 그리워하면서 長生不死와 자유를 누리는 신선에 대한 동경은 다음의 시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芙蓉峯 아래에서 술병을 기울이는데, 芙蓉峯下酒壺傾/ 솔가지 어루만지자 웃음소리 들렸다네. 撫掌松梢有笑聲/ 부러워라! 山仙과 毛女는, 堪?山仙與毛女/ 오히려 난리를 만났다가 長生을 얻었다네. 却因離亂得長生/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35, <韓國文集叢刊> 66冊 366쪽. 53首 중 제35수로 역시 <신선전> 안에 들어있는 ‘毛女’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시다. 모녀는 도가의 대표적인 女仙의 하나로 온몸에 털이 나 있어 ‘모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녀는 본래 진시황의 궁녀였으나 시황의 몰락 때 산 속으로 도망쳐서, 소나무에서 자란다는 仙藥의 하나인 茯?을 먹고 신선이 되었다. 芙蓉峯은 蓬萊山, 崑崙山 등과 일맥상통하는 낙원의 異稱이다. 세상의 난리를 피하여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모녀는 오히려 부용봉이라는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신선의 신분이 되었다. 계속되는 당쟁과 그로 인한 유배생활로 현실에서 큰 좌절을 겪은 체소는 이러한 모녀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이러한 마음은 3,4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직접 ‘부러워라’라고 말하며 선계를 향한 동경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상에서 선계의 동경을 통하여 현실의 갈등을 해소하려 한 체소의 시를 살펴보았다. 이들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의 제재로 쓰인 신선설화의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현실에서 무고를 당했거나, 난리를 당하거나, 편안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지만, 결국 선도를 얻어 신선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영원히 죽지도 않고 세상의 물리적인 힘이나 권력에도 구애받지 않는 선계의 동경을 통하여 현실에서 받는 갈등과 고통을 해소하려 했던 체소의 심정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무제내전>의 무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처럼 온전한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선계로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유안이나 남채화같은 인물은 유학을 존숭하고, 박학하고 겸손하며, 활달하고 고원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임을 볼 때, 체소의 유선적 지취는 단순한 현실도피만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과 인격의 도야를 통하여 참된 인간의 본성에 이르고자 했던 그의 의지임을 알 수 있다. <독신선전> 53수에는 神仙과의 遭遇를 주제로 한 시들이 또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고사의 내용을 보면 평범한 남자가 女仙을 만나거나, 평범한 여자가 男神을 만나 연애의 과정을 통해 득선하는 이야기다. 神仙과 人間사이의 연애는 본래 신선설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列仙傳>에서의 江妃二女와 鄭交甫, 簫史와 弄玉, 犢子와 陽都女, 園客과 夜來女와의 관계 같은 것들이 人神戀愛類型의 관계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인신연애유형 신선설화에서는 男神과 凡女, 女仙과 凡男의 결합이 곧 凡男凡女의 득선 이라는 일률적인 등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鄭在書,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233~234쪽. 따라서 체소의 시에 신선과의 만남을 통한 득선의 시가 많이 나타난 다는 것은 득선 의지의 또 다른 고백이라 할 것이다. 아래 몇 편의 시를 통하여 이러한 그의 득선 의지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촛불 켜진 밤 만발한 꽃 향기로운 瑞露酒, 燭夜花繁瑞露香/ 못가 누대 곳곳마다 난새와 봉황이 춤추네. 池臺處處舞鸞凰/ 뭇 신선들이 바야흐로 예상곡을 연주하니, ?仙正奏霓裳曲/ 벽옥당에는 높게 쳐졌던 옥 휘장이 걷히네. 瑤幄高開碧玉堂/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38, <韓國文集叢刊> 66冊 366쪽. <태평광기> 神仙 卷50 ‘嵩岳嫁女’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제38수이다. 太學生인 田?와 鄭韶는 群書를 博覽하고 文采가 뛰어나 상하를 구분 짓기 어려웠다. 또한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한 친구로,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오른 어느 날 술을 한 병씩 쥐고 함께 달을 감상하려고 서로 찾아가던 도중에 길에서 만나게 된다. 이때 청백마를 타고 온 어떤 異人이 자기에게 달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가 있으니 함께 가기를 권한다. 異人과 함께 도착한 곳에는 촛불이 밝혀져 전혀 어둡지도 않고 온갖 꽃이 만발하여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또 난새와 쌍학이 춤추며 樓臺 주위를 날고, 異人이 내어온 瑞露酒는 세상의 어떤 술보다도 달고 향기로워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었다. 아름다운 풍광에 젖어 이곳저곳 구경을 하던 두 사람이 피곤하여 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잠시 앉아 쉬려고 하자, 청백마 異人이 그곳에 앉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이제 곧 온갖 신선들이 이곳에 모여 집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곧 북쪽 하늘로부터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華燭이 온 하늘에 가득한 가운데 신선들이 떼지어 내려와 ‘霓裳羽衣曲’을 연주하였다. 衛符卿·李八百·茅盈·劉綱·麻姑·謝自然·西王母 등이 한자리에 모이자, 서왕모는 오늘 혼례에 참석할 사람이 왔느냐고 물어본다. 이에 두 사람을 데려왔던 선인이 두 사람을 碧玉堂 위로 올려 보낸다. 이곳에서 신선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오니, 그들이 달을 감상하러 떠났던 그날로부터 벌써 1년이나 지나 있었다. 설화 속에는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여선과 연애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西王母·上元夫人·麻姑·謝自然·神女 등 女仙들이 대거 등장한다. 또 주인공인 田?와 鄭韶가 청백마를 타고 온 선인에 의해 선계로 인도되어 온 것이 선녀와의 혼례를 치르기 위한 목적임을 서왕모가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1·2구에서는 선계에 대한 묘사를 그림을 그리듯 아름답게 풀어놓고, 3·4구에서는 선녀와 두 범인의 혼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신선들이 예상곡을 연주하는 이유가 두 주인공의 혼례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벽옥당의 옥 휘장이 걷힌다’는 표현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선녀와의 결혼을 통하여 득선의 과업을 이루는 이야기는 다음의 시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藍橋(藍橋 : 지명으로 지금의 陝西省 藍田縣 동남쪽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이곳에 역참이 있었으므로 藍橋驛이라고 불렀다.)에서 돌아오다 아름다운 선녀를 만나, 藍橋歸去遇仙?/ 옥 같은 음료 한번 마시니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네. 一飮瓊漿感?烟/ 신령스런 영약 찧어 신선의 課業이 이루어지면, 靈藥搗成仙課滿/ 곧바로 雙鶴 타고 청천에 오른다네. 直騎雙鶴上靑天/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40, <韓國文集叢刊> 66冊 366쪽. <태평광기> 神仙 50 ‘?裵?의 傳記’ 에 나오는 ?裵航?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제40수이다. 裵航은 長慶年間 사람으로 과거에 낙방하여 친구에게 노자를 얻어 배를 타고 長安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배에서 樊夫人을 만나 서로 詩를 교환하고 헤어졌는데, 배항은 시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 그가 藍橋驛 부근을 지나다가 몹시 목이 말라 어느 허름한 집에서 물 한잔을 청해 마셨는데, 물을 내어온 그 집 손녀의 미모가 지상의 여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또 그녀가 내어온 물을 한 모금 마시니 이는 신선들이 마시는 玉液으로 금방 색다른 향기가 짙게 퍼지는 것이었다. 배항은 그녀의 할머니에게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청하였다. 그런데 손녀를 데려가려면 어떤 신선이 준 영단이 있는데, 그것을 다 빻아야 비로소 복용할 수 있으므로 영단을 빻을 수 있는 옥 절구와 절구공이를 구해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파의 요청대로 옥 절구와 절구공이를 구해 와서 다시 영단을 다 빻은 후 선약을 복용하고, 함께 선계로 올라갔다. 1·2·3구에서는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설화의 내용을 묘사해 놓았고, 4구에서 작자의 희망사항 이기도 한 감상을 더해 놓았다. 배항이 학을 타고 승천한다는 이야기는 설화의 내용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작자는 아마도 주인공이 아내인 여선 雲英과 더불어 학을 타고 승천했으리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푸른 하늘과 흰 학의 색이 선명하게 대비되며, ‘直騎雙鶴上靑天’에서 알 수 있듯이 작자의 득선의 의지가 강하게 표출되는 부분이다. 다음의 시는 凡女가 신선을 만나 득선 하여 함께 승천하는 내용이다.
천년 된 소나무 뿌리에 복령이 자라고, 千歲松根長茯?/ 왕가의 젊은 아낙은 능히 신령과 통할 수 있다네. 王家少婦解通靈/ 女冠은 또한 신선의 품격(仙骨)이 없었으니, 女冠也是無仙骨/ 구걸하여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하늘에 올랐네. 乞與他人上紫冥/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46, <韓國文集叢刊> 66冊 367쪽. <列仙傳> 에 나오는 ‘赤松子’의 고사를 인용한 것인 듯 하다. 제46수이다. 적송자는 神農 때의 雨師인데, 선약인 水晶을 복용하였다. 종종 곤륜산 위에 이르러 늘 서왕모의 석실 안에서 머물렀는데, 바람과 비를 따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炎帝의 막내딸이 그를 좇아 역시 신선이 되어 함께 떠나갔다. 복령은 소나무 뿌리에서 자란다는 선약의 일종이다. 왕가의 젊은 아낙이란 염제의 딸을 일컫는 듯하다. 그녀는 본래 선골이 없었으나, 적송자를 만나 선도를 배워 선계에 오를 수 있게 된다. 평범한 인간이 신선과의 조우를 통하여 득선의 경지에 이르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체소는 암울한 현실을 탈피하여 선계로 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신선과 관련한 고사들 중에는 仙緣이 있는 범인이 ‘선계로의 출발-입문-최후의 歸宿의 도식’ 鄭在書,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149쪽.을 가지는 것들이 많다. 그 구체적인 단계를 살펴보면 ① 神仙인 異人이 남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적한 곳에 살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 → ② 仙緣이나 仙骨이 있는 어떤 사람이 그 異人의 행적을 눈여겨보거나, 우연한 기회로 선계에 가게된다[출발]. → ③ 異人에게 신선이 되는 방도를 배워 수련을 한다[입문]. → ④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겪으나 끝까지 참아낸다[수련]. → ⑤ 마지막 단계만 넘기면 신선이 되거나, 신선이 되게 하는 丹藥을 완성시킬 수 있는데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좌절]. → ⑥ 깊이 탄식하며 인간세계로 돌아오거나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최후의 歸宿]. 이러한 도식은 각 단계별로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讀神仙傳’ 53首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가진 고사에 대한 시가 많다. 이들은 神仙三品說 (神仙三品說 : 신선의 등급을 3종으로 구분한 것으로 신선가들이 고래의 신선설화를 종합한 결과 귀납적으로 이끌어낸 구분법이다. ‘天仙’, ‘地仙’, ‘尸解仙’의 3등급으로 나뉜다. 천선은 곧바로 승천하여 천계의 선관이 되는 것으로 신선의 가장 이상적인 경지이다. 지선은 승천하지 아니하고 명산에서 불로장생하는 존재이다. 시해선은 일단 죽음의 절차를 거쳐 육체를 거듭나게 한 신선으로, 시해는 득선의 방법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에 나타난 ‘天仙形’, ‘地仙形’, ‘尸解仙形’ 외의 ‘기타형’에 속하는 것 鄭在書,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130~142쪽 참고. 들이라 할 수 있다. 體素가 신선계를 갈구하면서 왜 하필 신선이 되지도 못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이렇듯 관심을 가지는지, 또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몇 편의 시를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래의 시는 평범한 인간이 地仙을 만나 선계에 입문하였으나 成仙의 도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내용이다.
신선을 따라 푸른 옥 호리병 속으로 잘못 들어갔더니, 誤入眞人碧玉壺/ 천상계와 같은 연기와 달이 樓居를 봉하고 있네. 同天烟月鎖樓居/ 長房은 분명 신선의 분수가 없어, 長房的是無仙分/ 어떤 어려움도 너그러이 넘겼으나 겨우 한 마리 구더기는 먹지 못했네. 綽虐難餐一才?/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10, <韓國文集叢刊> 66冊 365쪽. 葛洪의 <神仙傳>에 들어있는 ‘壺公’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53수 중 제10수이다. 호공은 저자에서 주전자를 파는 사람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病을 무료로 치료해 주기도 하였다. 費長房이라는 사람이 그런 호공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어느 날 호공이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게 된 장방은 그와 함께 신선이 되고자 하여 호리병 속으로 따라 들어가 신선이 되기 위한 수련을 하게 된다. 온갖 어려움과 육체적 고통을 다 감수하였던 장방도 마지막 관문인 人糞속에 들어있는 구더기를 먹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오고 만다. 범인에 지나지 않는 장방이 신선이 되고자 하여 수련을 거치는 것은, 宗敎·祭儀的인 성격으로부터 출발했던 유선시가 魏晉시대에 이후 인간의 정서에 바탕을 둔 문학작품으로 승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鄭在書,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214쪽. 평범한 인간이 成仙의 도를 구하다가 실패하는 이야기는 다음 시에도 나타난다.
두 그루 회나무 그늘 가운데 붉은 치마 입은 사람, 雙檜陰中絳?人/ 약 달이는 솥에 선약을 달이니 자색 빛이 새롭구나. 藥爐初鍊紫光新/ 千變萬化하는 덧없는 인생사, 仍將萬變浮生事/ 넘어지고 거꾸러지는 것 城南의 杜子春과 같다네. 顚倒城南杜子春./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12, <韓國文集叢刊> 66冊 365쪽. <太平廣記> 神仙16 ‘杜子春’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제12수이다. 두자춘은 北周·隋나라 때의 사람으로 젊은 시절에 正業에 힘쓰지 않고 술 마시고 노는데 가산을 탕진하였다. 궁하고 힘든 생활을 하던 중 어떤 노인이 나타나 아무 대가없이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그 돈을 탕진하면 다시 노인이 나타나 돈을 빌려주기를 두 번이나 하였다. 나중에 그는 노인이 빌려준 돈을 잘 경영하여 큰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과 과부들을 도와주며 지내다가, 다시 그 노인을 만났을 때 함께 華山 雲臺峯에 올라 수련을 하게 되었다. 노인이 두자춘에게 요구한 수련법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장방과 마찬가지로 그도 어떤 어려움도 다 견뎠지만, 마지막에 자식의 죽음을 당하여 ‘아!’ 한마디를 내뱉고 만다. 노인은 두자춘이 喜·怒·哀·懼·惡·欲의 관문을 모두 넘겼으나, 愛라는 마지막 관문을 넘기지 못하여 仙藥이 완성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위 시에서 체소는 인간의 감정을 잊지 못하고 결국 나약한 인간으로 돌아오고 마는 두자춘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듯 하다. 千變萬化하는 인생사는 결국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자조가 세 번째 구절에 나타난다. 평범한 인간이 신선계에 입문하는 과정에 항상 나타나는 것이 선계로 인도해 주는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다. 長房의 경우는 壺公이, 杜子春의 경우는 檜나무 老人이 그러한 인도자들이다. 인간이 成仙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당사자인 인간이 仙界와의 인연을 다하지 못해서 그러한 것이지만, 아래의 시에서는 地仙의 사람 보는 안목이 부족하여 그러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누가 조롱박을 타고 푸른 하늘에 올랐는가? 誰跨葫蘆上碧空/ 水精으로 된 樓臺와 궁전 아득한 곳으로. 水精臺殿杳冥中/ 麻婆는 오히려 天眼이 없었으니, 麻婆却是無天眼/ 藍鬼(藍鬼 : 무엇을 일컫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太陽夫人>의 고사에는 ‘廬杞’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내용으로 보면 ‘藍鬼’가 아니라 ‘廬杞’여야 맞다.)가 어떻게 紫宮에 살겠는가? 藍鬼何由住紫宮/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47, <韓國文集叢刊> 66冊 367쪽. <태평광기> 女仙64 ‘太陽夫人’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제47수이다. 廬杞는 어릴 때 집이 무척 가난하여, 허름한 초옥에 살았는데, 그의 옆집에 麻婆라는 과부가 살고 있었다. 마파는 그가 아플 때 간호도 해주고, 선녀와 중매를 서 조롱박을 타고 선계에 함께 가게 된다. 선녀는 그에게 천상계로 올라가 상제를 곁에서 모시거나, 선계에서 영원한 신선이 되거나, 인간계로 다시 돌아가 부귀와 권력을 가지는 3가지 중 택일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선계에 남기로 약속하였던 여기는 마지막에 인간계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하고 만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여기의 곁에 항상 마파가 머물렀던 것은 그가 선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영원히 불로장생하는 선계의 생활을 버리고, 유한한 인간계로 돌아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 3首의 시가 어렵게 선계에 입문하였으나, 나약한 인간을 버리지 못해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한탄과 덧없는 인생에 대한 자조를 읊은 것이라면, 아래의 시는 신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 시야의 유한함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바람을 타고 관사에와 낮에 연회를 베푸니, 扶風官舍晝開筵/ 속세의 눈으로 어찌 大仙을 알아 볼 수 있으리. 俗眼何曾識大仙/ 응당 세상의 교만한 기운을 꺾어야 하기에, 應折世間驕氣累/ 잠시 神吏로 하여금 뽕나무 채찍을 쓰게 하네. 暫敎神吏施桑鞭/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31, <韓國文集叢刊> 66冊 366쪽. <神仙傳> ‘麻姑’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제31수이다. 漢 孝桓帝 때에 신선인 王遠과 여선인 麻姑가 蔡經의 집에 강림하여 잔치를 베풀고 채경의 집사람들에게 보화와 맛난 술을 대접하며 잔치를 베푸는 이야기를 읊은 시이다. 마고의 고사에 등장하는 신선들은 모두 나이가 19, 20세 정도로 젊어 보이고, 화려한 의관과 온갖 아름다운 장신구를 하고 있다. 또 잔치에 나온 음식과 술도 지상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향기로운 것이다. 채경이 마고의 손톱을 보고 등을 긁을 때 쓰면 좋겠다는 불경한 생각을 했을 때 왕원이 이를 알아채고 채찍으로 그를 때리게 한다. 그런데 채찍이 채경의 등에 닿는 것은 보이나 째찍을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체소는 이 시에서 인간이 진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교만함 때문이라 말하고 있다. 그 교만함을 없애야 신선의 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왕원에게 째찍질을 당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그의 제자가 된 채경은 위에 소개했던 다른 시의 주인공과는 달리 尸解法을 전수 받는 데에 이른다. 다음 시에는 신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여 어리석은 일을 행하는 인간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그려놓고 있다.
골짜기 입구의 이름난 꽃 늦은 봄 아름답게 피니, 谷口名花艶暮春/ 金天의 少女는 이곳에 수레를 멈추네. 金天少女此停輪/ 촌 아낙이 어찌 眞仙의 모습을 알겠는가? 村婆豈識眞仙態/ 우습구나 崔家여 사람을 잘못 알았도다. 可笑崔家錯料人/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讀神仙傳 53首’ 其45, <韓國文集叢刊> 66冊 367쪽. <태평광기> 권63 ‘崔書生’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으로 제45수이다. 당나라 開元·天寶 年間에 최서생이라는 사람은 각종 꽃과 나무 가꾸기를 좋아하였다. 봄날에 꽃이 만발하여 온갖 향기를 내 뿜으며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는데, 최서생은 아침마다 나와서 꽃을 감상하였다. 어느 날 서쪽에서 좋은 말과 수레를 타고 지나는 여자를 보게 되었는데, 그녀의 뒤로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십 명이 뒤따랐다. 최서생은 날마다 그녀를 위해 좋은 술과 차와 과일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지만 여인은 언제나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의 수행자 중 한 노인이 여인에게 쉬어가자고 하여 최서생은 이들과 인연을 맺게되고, 여인의 동생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최서생의 어머니는 그녀가 요사를 부려 그를 상하게 할까 걱정이 된다며 헤어지기를 요구하였다. 이를 알게 된 여인은 울면서 최서생에게 귀한 보물이 든 옥합만 주고 떠나게 된다. 여인이 떠난 뒤 어떤 승려가 탁발을 하러 왔다가 그 옥합을 보고는, 최서생의 아내였던 여인은 西王母의 셋째 딸로 그녀와 1년만 같이 살았어도 온 가족이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었을 거라고 안타까워한다. 1구와 2구에서는 고사의 내용을 묘사해 놓았고, 3구와 4구에서 작가의 감상을 덧붙여 놓았다. 체소는 자신의 가족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복을 전해줄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요사한 사람이라 내쳐버리는 인간의 무지한 시각을 가소롭다고 비웃고 있다. 이상의 시들은 한결같이 나약하고, 어리석고, 무지하고, 눈앞의 것밖에 볼 줄 모르는 인간들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고사에 나타나는 주인공이 겪는 온갖 고통은 작자 자신이 현실에서 겪는 고통과 맞물리고, 주인공이 취하는 求仙의 태도 또한 작자가 希求하는 바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끝내 신선이 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하여 어리석고 약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작자 자신에 대한 자조를 나타낸다. 이는 有限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無限하고 자유로운 존재인 신선이 되고자하는 바람의 반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고사에 나타나는 실패하는 주인공들은 작자와 작자주변에서 함께 고통당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영원한 선계를 동경하고 끝없이 갈구하면서도 끝내 인간과 사회에 대해 무관심 할 수 없는 작자의 마음이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신선설화에 나타나는 많은 인물들 중 하필이면 성선의 도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는 인물을 시의 제재로 잡고, 또 그런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많이 풀어낸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다음의 시들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體素는 정통 유학자인 외조부와 솔선수범을 교육의 한 방법으로 내세웠던 성혼의 문하 朴均燮, <牛溪 成渾의 敎育思想 硏究>,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185~192쪽 참고. 에서 수업했던 사람이다. 또한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국난 극복의 원천적 역량을 감당했던 호남 의병의 의병장들이 대부분 松江·牛溪·高峯 奇大承(1527~1572)·霽峰 高敬命(1533~1592) 등의 서인계 일색이고 鄭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 <韓國 道敎思想의 理解>, 아세아문화사, 1990, 127쪽. , 체소 또한 송강·우계 등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던 사람임을 볼 때 이들의 현실참여 인식을 그도 상당 부분 가지고 있었으리라 본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조선 도가의 대표적 문집인 <청학집>에 나타나나는 문인들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세상의 일에 전혀 개의치 않고 소요자적해야 할 터인데도 오히려 현실에 대한 근심과 우려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즉 이들이 연연치 않은 것은 부귀나 헛된 명예이지, 민족이나 국가에까지 무심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백성에 대한 애정과 조국의 장래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하다. 李鍾殷, <道家의 漢詩硏究-?靑鶴集을 중심으로>, <韓國學論集> 제11집, 1987, 134쪽. 이들은 ‘활동적인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웠던 인물들’ 車柱環, <韓國道敎思想史硏究>, 서울대학교출판부, 1983, 219쪽. 로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포부를 펼 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체소 또한 이러한 문인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그의 선계로의 탐닉은 정치적 실패, 그로 인한 유배생활, 전쟁,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던 서인의 몰락 등 현실의 불행에 의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던데 기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참여의식은 그로 하여금 사회와 고통받는 백성에 대해 무관심 할 수 없게 하였다. 그래서 遊仙詩의 창작을 통하여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누리고자 하면서도 인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遊仙詩 안에서도 세상에 관심을 끊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다음의 시에는 비록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울분과 갈등으로 도가에 심취하기는 하였지만, 救世에의 마음을 끝내 저버리지 못하고 고개 돌려 세상을 바라보는 體素의 면모가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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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