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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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559) : 임광비(2)-임국철-임귀지-임기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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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비 : 서하 임춘/ Daum 블로그 | 2009.05.27/ ...의하면 근시직(近侍職. 현, 왕의 비서)에 종사하였다. 백부는 당시 이름있는 재사(才士)였으며 선생의 부친(林光庇) 역시 문명(文名)을 날린 인물이였다. 선생은 7세에 육갑을 외웠고 경서를 통달했으며 재능이 풍부한 신동이었다.../ //blog.daum.net/yplim48/| 세상이야기(daum 2010)
임광비 : 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인터파크 도서 | 2010.07.21/ ...보인다. 그의 할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임중간(林仲幹)이며, 그의 아버지는 상서(尙書)를 지낸 임광비(林光庇)였다. 그의 집안은 귀족으로서 상당한 기반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큰아버지인 임종비(林宗庇)와.../ (daum 2010)
임광비 : 임하춘(林河春)/ 신종우의 인명사전 | 2010.07.06/ ...관(官)은 검교서(檢校西) 조부(祖父): 임중간(林仲幹) 관(官) 낭장(郎將) 충경공(忠敬公) 묘(墓) 부(父) 임광비(林光庇) 관(官) 좌승정(左承政) 문절공(文節公) 모(母) 배(配) 자(子) 녀(女) 신원경(辛元慶) 고려? 1330 ~ ? 영산人.../ (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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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철 : 錦岸 醴泉林公(國哲) 墓碣銘/ 상위서지 예천의 금석문 1/ 분류 도서 > 영남유교문화연구자료/ 예천의 금석문 1/ 錦岸 醴泉林公(國哲) 墓碣銘/ 제공 유교넷(//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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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지 : 제목 | 임귀지(林貴枝)/ 제작일 | 2007-10-30/ 설명 | 임귀지(林貴枝, 1435~1508)는 유천면 율현리 출신으로, 호는 삼송(三松)이다. 본관은 장흥이고, 임우소(林雨所)의 손자다.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충남 부여에 있는 홍산현감을 지냈는데, 백성을 사랑하고 정치를 잘하여 그곳 선비와 백성이 선정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不事二君)”고 하면서 벼슬을 그만두고, 율현리로 와서 숨어 살면서 삼송정(三松亭)을 지었다. 이곳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면서 선비들과 사귀었다./ (daum 2010)
임귀지(林貴枝) : 본관(本貫) 장흥(長興)/ 이력(履歷)/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임귀지(林貴枝)/ #경상도(慶尙道) 예천(醴泉)/ *상덕사(尙德祠) 유천면 율현리/ 제향. 임득(본장흥). 임우소(본장흥). 임귀지(현감 본장흥)./ 祭享. 林得(本長興). 林雨所(本長興). 林貴枝(縣監 本長興).(daum 2010)
임귀지 : 국가지식포털 - 요약정보 - 삼송정(三松亭)/ 삼송정(三松亭)은 예천군 유천면 율현리에 있다. 이 건물은 임귀지(林貴枝, 1435~1508)가 건립한 정자인데, 1927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정자는 군부대 뒤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이다. 전면에는.../ (daum 2010)
임귀지 : 국가지식포털 - 지식DB별 디렉토리 검색 > 역사 유교문화 종합 DB/ * 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삼송정(三松亭)/ 삼송정(三松亭)은 예천군 유천면 율현리에 있다. 이 건물은 임귀지(林貴枝, 1435~1508)가 건립한 정자인데, 1927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정자는 군부대 뒤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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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상(書藝家 임기상 氏 12日까지 慶北大 博物館 展示室서 作品 展示) [記事] : 예천읍 백전2리 태생의 임기상(57) 씨가 2004년 11월 8일(오후 5시)부터 12일까지 경북대학교 박물관 전시실(1층)에서 서예전시회를 갖는다. 경암(敬菴) 임기상 씨는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경북대 법과대학 행정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신라미술대전 입선 및 특선, 대구미술대전 입선 및 특선,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을 차지한 바 있으며,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임씨는, 붓을 든지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몇 년이 지났다며, 40여 년 가까운 공직을 이제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두렵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졸작을 여러 선생님들께 보여드리고 많은 질책과 조언을 거울삼아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醴泉新聞 2004-11-04 16:49:03)
임기상 : ▨▨ 가족사랑을 세상에 뿌리세요...홀트아동복지회 대구종합복지관 ▧▧/ 2009.02.17 | 웹문서/ 수료 꽃꽂이 임춘숙 서라벌꽃예술중앙회 희원 클럽 운영자 사물놀이 최순옥 수성늘푸른농악단 단장 서예 임기상 각종 서예대전 입상 수지침 최재필 고려수지침학회 복현지회 회장 요리교실 조혜정 우리복지관 전임강사 요가.../ (daum 2012)
임기상 : 제26회 영남서예대전 보도자료/ 웹문서/ 주최 : (사)대구서예가협회(이사장 정성근) ▶ 주관 : 영남서예대전... 황방자, 김영훈 ▶ 심사위원 : 김동영(심사위원장), 류영길, 남상진, 임기상(한문) 박춘영, 김영희(한글), 송낙준, 손영배, 전성지(문인화), 전일주.../ dgcaa.or.kr(daum 2012)
임기상 : 제14회 대구학생서예휘호대회/ 2012.05.14 | Daum 블로그/ 보기가 좋았다. 수중과 같이 운영을 맡고 심사는 임기상 선생과 이향원, 김정숙이 맡아 무사히 잘 치렀다. 각종 과외에 시달리는 어린 꿈나무들이 우리의 고유 예술인 서예에 뜻을 두고 300여명의 초, 중 ,고 ,학생들이.../ blog.daum.net/bcrjh/ 청석헌의 아침(daum 2012)
임기상 : <서예대전 특선, 입선자 명단>/ 1993.03.22 | 연합뉴스/ 염정모 유지창 이무희 박영현 김균진 신정범 장상두 박금숙 서정룡 이장환 최규인 김옥인 권수문 임기상 이은설 박기진 추진호 하영섭 이권일 이은규 김수한 조미옥 조향영 박노종 이윤옥 김.../ newslink.media.daum.net/news(daum 2012)
임기상 : 제22회 한국미술협회 서예대전 입상자 명단/ 웹문서/ 강영숙 권오희 나승호 장용순 박금숙 신윤철 김성균 윤명수 이수옥 신창규 이행숙 문영숙 김진호 양호승 김금자 임기상 최환재 김유연 이혜숙 김석호 이선자 - 전 각 - 최병규 김옥봉 이형재 박찬희 윤종득 김혜옥 - 한글소.../ dojung.net(daum 2012)
임기상 : 친환경미술협회전/ 2011.03.19 | Daum 블로그/ 이중근,임기상,장경구,장충홍,정성석,정양희,정옥태,정희연,채영숙,추영태,추진호 전시회비 면제 연회비=40,000원 일반회원 27명 고금화,고명희... 반지선, 황새잎, 이민혁, 김혜영, 이다경, 김혜정-25명 ♣ 서예 최우수상 : .../ blog.daum.net/idrophj/ 웰빙가족(daum 2012)
임기상 : 을미묵운乙未墨韻전/ 2015.01.08/ 담은 전시. 대구를 대표하는 서예 문인화 작가 김균진... 예병애, 오광웅, 이미란, 이영숙, 이영애, 이용남, 임기상, 임기영, 정성근, 정성석, 주재호, 채녕화, 채재연.../ cafe.daum.net/mooninhwa/4WCT/ 대구문인화협회 | 댓글 6(daum 2016)
임기상 : 웃는 얼굴 아트센터 기획초대전…서예·수묵화가 작품 40점 소개/ 2015.01.13 | 영남일보/ 이용남 임기상 임기영 정성근 정성석 주재호 채녕화 채재연 최수현 등이 참여한다. 대구미술협회 박병구 회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대구의 대표적 서예,...(daum 2016)
임기상(폼생폼사, 모델 爲主 '自動車' 文化 바꿔야" : 自動車 10年 타기 길라잡이, 임기상 自動車市民聯合 代表) [記事] : 브리사, 포니, 코티나, 프레스토…. 이제 거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추억의 승용차들이죠. 20년, 30년 된 이 차들을 직접 몰고 다니면 자동차를 10년 이상 타자고 목소리를 높여온 분이 계십니다. 2008년으로 10주년을 맞은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의 임기상 대표. 그는 원래 평범한 자동차정비소 사장이었는데요. 10년 전, 우리 사회가 IMF 외환 위기를 겪을 당시, 평균 4년에 한 번 양복과 구두보다도 더 빨리 자동차를 바꾸는 세태를 변화시켜 자원 낭비를 막고자 시민단체를 만들었답니다. 임기상 씨가 시민운동을 시작할 당시엔 10년 된 자동차를 운행하는 운전자가 겨우 3% 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무려 30%까지 늘었다는데요. 자동차정비소 사장이 시민운동가가 된 사연.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운동연합 임기상 대표를 2008년 2월 12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10년 이상된 자동차, 10년 전에는 3%에서 지금은 30%로 늘어나] : [relNewsPaging]▶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운동연합이 벌써 10년이나 되었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차 몇 잔 마시고 눈 깜짝 몇 번 하니까 10년이 흘러가네요. 이렇게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면 그때는 저나 배 선생님은 노인정에 앉아있겠죠.(웃음)/ ▶ 지난 10년 동안 자동차를 10년 이상 타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나셨다면서요? =네. 98년 1월 1일에 우리 자동차 10년타기가 출범했는데요. 그 당시의 우리나라 자료를 보니까, 10년 넘은 자동차가 전체의 3%밖에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승용차를 사서 할부 끝나면 교체하고 또 파는 거죠. 또 7.6년 되면 폐차를 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2007년도 작년말 기준으로 하니까 10년 넘은 자동차가 30%로 늘어났고요. 10년 전에는 7.6년 쓰고 폐차를 했는데 지금은 7년 넘은 차가 50%를 차지하고 있어요. 500만 대에 달하는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자동차를 경제적으로 사용해야겠다, 자동차를 오래 탄다고 하는 문화는 IMF의 아픈 추억도 있고 경험도 있고 많이 정착은 된 것 같은데, 좀 더 가다듬어져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자동차가 10년이 되면 못 타는 차를 탄다, 폐차할 차를 탄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1년을 타도 10년을 탄 것 같은 차가 있는가 하면, 10년을 타도 1년 같은 차가 있다고 봐요. 잘 관리해서 안전하게 경제적으로 친환경적으로 오래 타자는 것이지 무작정 고무줄처럼 수명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죠. ▶ 외국의 통계는 어떤가요? =보통 미국의 경우 16년 정도 타고요. 일본의 경우는 17년 정도, 유럽의 경우에는 18년 정도 타는데,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많은 운전자 분들 중에서 외제차는 차가 좋으니까 오래 타고, 국산차는 국산이니까 10년도 못 타는 것 아니냐?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우리나라 자동차가 오대양 육대주로 다 수출됩니다. 그 자동차를 만든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차를 7~8년, 10년도 못 쓴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우리나라 차를 수입해서 타는 외국인들은 그 차를 정말 20년까지 사용하고 하는데, 저는 이런 자동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차에도 수명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10년 전 자동차의 수명은 50만 km였습니다. 지금은 100만 km정도 됩니다. 그러면 10년 전 수치로 본다면 50만 km인데, 한국인이 하루에 보통 50km를 탑니다. 1년이면 18만 km이고, 결국 50만 km를 타려고 한다면, 25년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7~8년 정도 사용하고 약 14만 km 정도 되면 폐차를 했어요. 자동차는 제2의 재산인데 그 제2의 재산을 4분의 1만 사용하고 폐차를 했어요.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IMF가 온 거예요. 바꾸어 말하면, 가정에서 주부가 참기름을 4분의 1만 먹고 버린다면 이혼사유 아닙니까? 어린 자녀들이 연필 4분의 1만 쓰고 버리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집안의 화장지 4분의 1만 버리는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 작은 것은 알뜰살뜰히 쓰면서 이 자동차는 4분의 1만 쓰고 버렸던 이유는 자동차를 말 그대로 폼생폼사, 모델 위주, 고장나면 고치기보다는 갖다 버린다고 하는 간편주의 사고로 인해서 자동차를 타왔기 때문에 정말 소비지향적이고 비경제적인 자동차 생활을 했던 것이죠.
▶ 우리나라가 외국에 수출도 많이 하는데요. 우리가 보통 외국에 수출하는 차는 철판도 다르다면서? 엔진도 다르다면서?하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뭐가 좀 다른 것은 사실이예요. 예를 들어 캐나다로 수출한다고 하면, 캐나다는 우리나라보다 더 춥거든요. 그래서 혹한에 잘 맞는 자동차를 만들다 보면 보완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또한 습도가 높거나 온도가 높은 나라라고 한다면 아연철판이라든지 부식방지를 위한 방청처리를 더 해서 수출하게 되는데, 문제는 뭔가 하면 우리도 보통 그렇잖아요. 집에서는 완전히 함부로 하다가 대문만 나서면 많이 부드러워지고 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흔히 여자분들이 밖에서는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집에서는 왜 이 모양이냐?고 하는 것처럼 자동차도 그 동안 수출용 차량은 수출차라고 해서 좀 더 대접해서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예요. 그러나 국내차는 그동안 사실 줄서서 기다렸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다소 소외시했던 부분은 있어요. 자동차 회사에서 반성할 부분은 과감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요즘 소비자들은 아버지가 식당을 해도 맛이 없으면 나가서 먹습니다. 절대 애국심에 의존해서 우리나라 사람이니까 타겠지. 하는 것은 20세기 경영 방식이죠. 정말 더 대접해야 합니다. ▶ 자동차를 오래 탄다는 것이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자원측면에서 경제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로군요. =예. 한 예를 들어본다면, 자동차 회사들이야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겠습니다만, 신문을 보니까 동남아에서 우리나라 중고차들이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은 동남아에 수출도 많이 하고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단편적으로 본다면 국산차 좋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합니다. 멀쩡한 차가 나갔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거예요. 멀쩡한 차를 왜 수출합니까? 모델이 구형이라서 수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낭비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에게 자동차를 좀 오래 탈 수 있도록 만들라고 하면, 아니, 소비자가 왕인데, 왕이 3~4년 타고 바꾸고 7~8년 되면 폐차시키는데, 이걸 10년 타는 차로 만들면 자원의 낭비이고 원가의 상승이다. 소비자가 원하는데 왜 오래 타는 차를 만드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동차 오래 타게 되면 생산자는 오래 타는 소비자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오래 타는데도 고장 안 나는 차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주 바꾸니까 바꾸는 만큼만 고장없이 타게끔 하는 것이고, 수출하는 차는 오래 타니까 보완해서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꼭 자동차 회사에게만 책임을 맡기는 것도 맞습니다만, 그 차를 타는 깐깐하고 날카로운 소비자가 있어야만 좋은 제품을 쓸 수 있는 여건 조성이 된다고 하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 자동차를 오래 타면 경제적 효과는 확실히 있는 거죠? =물론 자동차의 정비비용이 추가로 들겠습니다만 만약 지금 우리나라 1천만대 자동차의 폐차 주기를 1년 연장해보면 10조원의 자원이 절약됩니다. 일본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는 일본에게 썩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자동차 타는 것만은 제가 참 좋은 감정이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모델을 4년마다 바꿉니다. 그런데 일본은 수출용 모델의 자동차는 4년마다 바꾸고, 내수용 모델은 약 10년마다 바꿉니다. 한 차를 오래 탈 수 있도록 해주니까, 차 한 대 폐차를 할 때 나오는 환경유해물질이라든지 자원의 낭비를 막아주는 것이죠. 폐차를 하게 되면 다 고철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새 차를 살 때는 kg당 2만5천원~3만원인데, 팔 때는 1만5천원입니다. 그러니까 국민 한 사람당 폐차 주기를 1년만 연장을 해도 정비비용을 제외하고도 10조원의 자원절약을 기대할 수 있죠. 어마어마한 돈이죠.
[◇ 자동차 정비업소를 하면서 잘못된 운전습관과 자동차 문화를 보고 시민운동 시작] : ▶ 임기상 대표는 원래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자동차 3급 정비업소를 1987년도에 시작했습니다. 하게 된 동기는 제가 차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가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가서 아홉 번 만에 붙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운전면허시험을 한 번 만에 붙은 분을 보면 대단히 존경을 해요. 제가 아홉 번 떨어진 이유는 학원을 안 다니고 시험보러 갔기 때문이예요. 떨어지면서 배운 거죠. 저는 제 나름대로 면허는 어렵게 따야만 어렵게 운전을 한다, 면허를 쉽게 따면 운전을 쉽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면허를 아홉 번 만에 따고 제가 그 때 봉고 나인이라는 차를 가지고 가족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폼 잡으면서 달리다가 고장이 났어요. 팬벨트가 끊어진 거예요. 근데 제가 팬벨트 하나 교환 못하는 거예요. 그 당시만 해도 팬벨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요. 제가 그 다음날 자동차 정비학원을 등록해서 1년 동안 다녔어요. 그래서 자동차를 더 깊이 알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제가 정비업소를 시작했는데, 정비업소를 하면서 못 볼 것을 참 많이 받고 경험도 많이 했어요. ▶ 못 볼 것이라는 것은 어떤 건가요? =고객 한 분이 오셨는데, 어떤 때 보면 엔진오일 교환하러 오시는데 안대를 하고 오시는 거예요. 눈에 안질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에도 안대를 하고 오시는 거예요.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안전띠를 안 해서 핸들에 눈을 부딪혀서 실명을 했다는 거예요. 또 어떤 분은 목발을 짚고 오시는 거예요.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되는 것을 제가 참 많이 봤어요. 한 단골 고객은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을 했어요. 이러한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니까 저 분은 정말 학교도 좋은 곳 나오고 돈도 잘 벌고 인격도 참 좋은데 핸들만 잡으면 정말 너무 과격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정비업소에서 차를 고치면서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조급하게 과격하게 무지 상태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이죠. 이 상태로 둔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 한 20년 전만 해도 지금과 비교하면 운전문화가 정말 허술했죠? =지나간 이야기입니다만, 그 당시에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을 해서 교통경찰한테 걸리면 돈 5천원, 1만원 주면서 말 잘하면 다 지나가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지금은 없습니다만, 그 때는 그런 식으로 말 잘하고, 우리 삼촌이 누군데...이런 식으로 하니까 이것이 만연이 되었고 법규 위반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멋처럼 보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때 교통사고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사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1만2천명이 넘었어요.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만, 사실 교통사고 사망자, 중부상자 부분에 대해서는 강조할 부분이 있는데요. 성수대교 무너졌을 때 얼마나 난리가 났습니까? 그 때 29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때 200여명이 사망했고요. 삼풍백화점 무너졌을 때 500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압축한다면 하루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성수대교 무너졌을 때 사망자 숫자와 같고, 일주일 모으면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와 사망자 수가 같고, 보름 모으면 삼풍백화점 사고 사망자 숫자와 같습니다. 10년을 모으니까 중,경 부상자 숫자가 6.25전쟁 때 중,경 부상자 숫자와 같아요. 우리는 매일같이 성수대교 하나씩 무너지고, 일주일 마다 대구 지하철, 보름마다 삼풍 백화점, 10년을 모으면 6.25 전쟁과 같은 부상자의 교통사고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총성없는 도로전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고, 많은 사회 개혁과 함께 이러한 교통문화도 개선이 되고 있습니다만, 문화가 바뀐다고 하는 것은 돈만으로도 안됩니다. 오랜 장시간의 피해와 많은 국민의 의식개선, 반성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죠.
▶ 어릴 때부터 차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저희 아버님이 철강업을 하셨는데, 자동차회사에 납품하는 부품회사에 원자재 공급을 많이 해줬어요. 옛날만 하더라도 가내수공업 형식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브리사 픽업 같은 차예요. 거기다가 그런 부품을 싣고 중학교 모자를 쓰고 가서 자재과의 싸인도 받아오고 그 차를 타고 왔다갔다 했어요. 5시까지 자재과에 물건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데 그 때는 자동차 과열 현상이 많았어요. 가다 보면 과열현상으로 보닛을 열고 있게 되고, 운전자 아저씨는 차를 지키고 제가 물뜨러 다니고 차는 고장이 왜 날까, 고장 없는 차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보면 동네에 차 한 대가 오면 뒤 머플러에 코를 가져다 대고 뒤에 매달려 가다가 떨어지고 등 다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죠. ▶ 고향은 어디셨나요? =저는 서울에서 자랐는데, 아버님 고향이 경북 예천이시다 보니까 찻길없는 동네에서 많이 살다보니까 우리도 차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차를 정말 광적으로 많이 바꿨어요. 제가 20대 때 오픈카를 탔던 경험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광적이었죠. 제가 차를 너무나 많이 바꾸다 보니까 젊은 시절에 번 돈도 없었지만 벌어서 차 바꾸는데 다 썼어요. 제가 그런 과외비용을 많이 내다보니까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어떻게 하면 공학적으로,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탈까 하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교과서에 없는 부분에 대해서 고심도 많이 하고 외국의 사례수집도 많이 하게 되었죠.
▶ 운전 후진국 문화를 바꾸는 일을 하자는 것이 시민단체를 만드는 계기가 되신 건가요? =그렇죠. 첫 번째 계기는 그것이었죠. 제가 30대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정비업소를 30대 후반부터 해서 그 때 당시 돈을 좀 벌었습니다. 왜냐하면 1987년도만 해도 차가 나오면 임시넘버 작업이라고 해서 다 다시 해야 했어요. 타이어도 다 떼어내고, 바닥 카페트, 문짝, 범퍼까지 다 떼어서 다시 작업을 했어요. 그 때는 1800cc 차를 뽑아서 다 2000cc 차로 다 개조를 하니까 정비업소의 부가가치가 상당히 많았어요. 그 때는 정말 1천만원짜리 차가 나오면 1~2백만원은 임시넘버 작업을 했어야 했어요. 차에다가 이것저것 많이 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다 아련한 추억이겠습니다만, 차 뒤에 커다란 안테나도 달아야 했고, 그 때 당시에는 스텔라 같은 자동차에도 카세트도 잘 안 들어있고 라디오만 있었어요. 그래서 차가 나오면 카세트가 들어가는 오디오로 바꾸고 스피커도 바꾸고 하다보니까 그 때 정비업소로 돈 번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저도 그 때 당시에 돈을 좀 벌었는데, 결국 보니까 젊은 시절에는 다른 분들은 안 그렇겠습니다만 저는 느는 것은 술밖에 없더라고요. 폼나게 술 먹고 돈 잃었다가 다시 지갑에 돈 넣어놓는 재미로 살았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돈 버는 일에만 열중한다면 이 사회는 다 어찌할까? 이 사회 사람들이 장사의 논리로만 간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고 좀 고민을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자동차의 지식을 사익이 아닌 공익으로 한 번 활용을 해보자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 그래서 자동차 10년타기 운동을 펼치게 되신 거로군요. =예. 10년 동안 정비업소를 하고, 1998년 1월 1일부터 하게 되었는데, 제 나름대로는 결심입니다. 그 당시 그런 생각을 했죠. 자동차의 문화, 교통사고, 자동차를 올바르게 타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국민 개개인의 의식이고, 선진국처럼 가정교육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아버지가 자식을 태우고 중앙선을 침범하고 교통법규를 어기는데 자식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이렇게 운전해야 되는 거야. 하고 하나의 상식이 되어 버리는 거죠.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죠. [◇ 내 차는 37년된 코티나... 눈, 비가 올 때는 절대 운행 안해요] : ▶ 시민단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어땠나요? =저는 맨 처음에 이것을 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야, 돈 되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또 자동차를 10년 타자고 하니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습니다만, 아니, 내가 내 돈 주고 4년마다 차 바꾸겠다는데, 당신이 뭐 보태준 것 있어?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물론 말이 되죠. 그런데 제가 10년을 타야 된다고 했을 때 많은 운전자 분들이 우리나라 차가 10년을 탈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서 굉장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차는 그렇게 못 탄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자동차 10년 타기를 하고 나서 그 다음 해에 포니, 브리사, 스텔라, 맵시나와 같은 차 10대를 모아서 서울을 출발해서 서해안 도로를 통해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서 한려수도, 남해안 도로를 거쳐서, 또 동해안 도로를 타고 고성까지 갔다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3박4일 동안 3천km를 달려봤어요. 하루에 1천km를 달린 겁니다. 잠을 못 잤어요. 정말 자동차에 대단한 의욕을 가진 참여자들이 열 대를 가지고 3천km를 돌았습니다. 이렇게 국토 종단을 하고 오니까 야, 포니가 달린단 말이야? 3박4일 동안 시동도 안 끄고, 3천km를 달리다니. 국산차가 그렇게 좋단 말이야? 포니도 달리는데 내 차는? 하는 반향이 많이 일어났어요. 그런 계기가 있었죠.
▶ 우리나라 자동차에 대한 고객들의 불안이 좀 많았군요. =아무래도 좀 그랬죠. 지금도 할부 끝난 다음에는 국산차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4년 지나면 국산차는 고장이 나요. 그러면 이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고장이 난다고 보지 않아요. 제가 감기에 걸렸다고 한다면, 부모로부터 선천적으로 그런 몸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가 감기 걸리게끔 뭔가를 한 거예요. 위장병 걸렸다고 한다면, 식사 규칙적으로 안 하고 위장병 걸리게끔 식생활을 가졌기 때문에 걸린 거예요. 차도 고장이 났다고 하면 차가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부품을 교환할 시기에 부품을 교환하지 않아서 고장이 난 거예요. 자기가 고장을 만든 것이죠. 그런데 국산 자동차는 4년 정도 타면 주요 소모성 부품의 교환 시기가 됩니다. 타이어, 배터리, 타임벨트, 쇽업쇼버, 브레이크 패드 등 말이죠. 그러면 소모성 부품이 4년 쓸 만큼 써서 바꿔주면 고장이 안나요. 그런데 4년 지나도 소모성 부품 교환을 안 해주니까 고장이 나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 스트레스가 오는 거죠. 에잇, 바꾸자.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국산차 만드는 제조사들도 그걸 아는 거죠. 트러블 마케팅을 하는 거죠. 4년 되면 권태기도 오고 고장 나게끔 만들어서 신모델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교체한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인데, 그것은 고장이 아니라 적기에 부품 교환을 해주면 고장은 없는 것이죠. 비행기가 고장날 때 기다리면 떨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미리미리 그 때 되면 부품 내구에 맞춰서 교환해주면 저는 자동차의 고장은 없는 것이라고 봐요. ▶ 그럼 임기상 대표는 현재 타고 있는 차가 몇 년 된 겁니까? =제가 지금 차 몇 대가 있는데요. 하나는 37년 된 뉴코티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24년 된 포니 픽업차가 하나 있어요. 그리고 20년 된 포레스토, 이렇게 차 세 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나 겨울철에 좀 멀리 갈 일이 있으면 렌터카를 이용해서 다니고요. 제가 차 세 대를 가지고 있다 보니까 에피소드도 아주 많고 재미난 일도 많았습니다.
▶ 어떤 재미난 일이 있었나요? =첫 번째는 그 차들이 오래된 차지만 너무 안전해요. 오래됐는데 뭐가 안전하냐고 하실 텐데요. 일단 그 차들은 과속방지 카메라에 적발이 안돼요. 왜냐하면 저는 카브레타식이라서 아무리 밟아도 100km예요. 과속을 안 하니까 사고 날 일이 없는 거예요. 안전속도로 다니니까, 안전속도가 곧 경제속도니까 연료도 적게 드는 것이고, 안전속도, 경제속도로 다니니까 사고도 없고 그것이 바로 행복속도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도난의 우려가 없습니다. 차도둑들도 비싼 차 끌고 가지, 보험기준시가가 1십만원밖에 안 되는 차는 안 끌고 가거든요. 뉴코티나 끌고 간다고 해서 형벌이 적고, 대형고급차 끌고 간다고 해서 형벌이 더 무거운 것은 아니거든요. 또 어디 가면 오래된 차라고 예우를 해줍니다. 한 예로 저는 술을 그렇게 별로 안 합니다만, 혹시라도 음주단속 걸리면 이거 무슨 차예요? 하면서 물어보다가 그냥 가라고 합니다.(웃음)또 한 가지 오해를 사는 것은, 제가 37년된 뉴코티나를 가지고 있지만 간수를 잘 했어요. 그걸 타고 한 번 나갔더니 어떤 분이 시민단체 하시더니 돈 버셨나보네. 외제차 타고 다니시네요. 하시는 거예요. ▶ 그렇게 오래된 차를 일반인들이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요? =사실 일반인들이 타기에는 어려움이 좀 있죠. 저는 인간보다 더 정직한 것이 기계라고 봅니다. 자동차는 고장날 때쯤이 되면 사전 징후현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차가 과열이 돼서 오버이트가 될 것 같다고 하면 온도 게이지가 높아지고 차에서 타는 냄새가 나죠. 그리고 브레이크 패드 교환할 시기가 됐다고 하면 밟을 때 끽, 끽 소리가 나죠. 그리고 아무래도 엔진오일이 줄어들었다 싶으면 경고등도 뜨죠. 사전 징후현상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 사전 징후현상이 있을 때 알아서 고쳐주면 돼요. 그런데 바쁘다 보니까 시기를 놓치기 때문에, 또 오래된 차들은 부품이 없지 않습니까? 부품이 있어야 고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다 생존의 원리가 있더라고요. 요즘에 포니차 가지고 계신 분들을 보면, 예를 들어서 장기기증이 이루어집니다. 만약에 포니차가 접촉사고가 나서 수리해서 고쳐쓰기가 불가능 하다고 한다면 포니 가진 분들에게 연락을 합니다. 다 모여라. 이 차가 수명이 다해서 이 세상을 떠나가는데, 부품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겠다.라고 하면, 전조등 가져가는 사람, 문짝 가져가는 사람 해서 다 그것을 나눠줘요. 또 그 차를 타는 사람들은 다 평소에 준비성이 있어서 미리 갖춰놓습니다. 그러면 다 모여서 거의 90% 다 가져갑니다. ▶ 자동차 10년타기 운동은 단순한 클래식카 문화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전국민이 자동차를 아껴 타고 자동차에 대한 사랑을 하자는 큰 뜻이 있으신 거죠? =제 원래의 사고는 자동차를 10년 타자는 겁니다. 10년을 타자고 하는 것은 하나의 명칭입니다. 인간도 100세를 타기 위해서는 평소에 건강관리를 해야 하고 큰 수술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자동차를 10년 타기 위해서는 사고가 나지 않아야 10년을 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10년 타기 위해서 교통법규 지키자, 사고 안 나기 위해서 과속하지 말자, 오래 타기 위해서는 평소에 점검관리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100세까지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것처럼 자동차도 10년을 타는 것은 두 번째다, 안전하게 10년을 타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입했어요. 3~4년 정도 타고 할부 끝나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 3~4년 지나면 내 차가 아닌데 운전 부드럽게 하겠습니까? 그냥 밟는 거죠. 어차피 3~4년만 탈거니까요. 그러나 차를 구입해서 나는 10년 이상 이 차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타겠다.라고 하면 아무래도 운전할 때 조심하게 되고 사고없이 운전하는 거죠. 아니,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하면서 3년 있다가 이혼한다고 하면 그 집안이 평온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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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