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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567) : 임병태-임병화(附 예천군, 7일 공무원정보지식인 도대회 최우수기관 수상...축하합니다/예천군, 20일 국방부장관 표창 수상...축하합니다/예천경찰서 이상준 경장, 21일 행자부장관 표창...축하합니다/용문면 출신 박시영, 11일 대한민국신지식인 선정...축하합니다/한내글모임, <낙엽이 서러울 때> 출판...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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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태(林炳泰) : 예천 출신, 숭실대 사학과, 고려대 대학원 졸업, 73년 숭전대(崇田大) 박물관장이다. 저서로는 <한국사대계(韓國史大系, 共)>가 있고, 논문으로 <신라소경고(新羅小京考)>, <한강유역 무문토기(漢江流域無紋土器)의 연대>, <한국 지석묘(支石墓)의 형식 및 연대 문제> 등이 있다.
임병태 : [임병태]지석묘는 전사지의 무덤/ 작성자 : 고사회/ 조회수 : 1919/ 2005-01-20 16:21:00/ 아래 글은 한국고고학회장을 역임한 임병태(1936-1995)교수의 <한국청동기문화의 연구>1998-학연문화사 발행의 일부로 제2장 지석묘 2.후기 지석묘사회의 성격 3)지석묘의 성격에서 발췌한 글로 고인돌이 무공을 세운 전사자의 무덤이란 설을 제기하고 있다. ♦지석묘의 성격 : (1)부족장 묘로서의 지석묘 : 지석묘에 매장된 주인공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일찍부터 관심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그것으로 지석묘 사회의 성격을 이해하려 한 것도 당연하다. 지석묘가 조사 연구되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학설은 부족장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이 학설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다만 유물과 구조상의 특징에 따라 부족장의 가족묘로도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충되어 왔을 뿐이다. 부족장의 무덤으로 추측하게 된 것은 우선 그 규모에서 기인된다.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대표적 지석묘로서 흔히 우리는 황해도 은율군 관산리 지석묘를 예로 들고 있다. 탁자식인 이 지석묘는 상석의 크기가 8.15m×4.5m×0.31m이며, 2매의 지석만 남아 있는 석실의 크기는 3.3m×1.4m×2.15m(높이)이고 상석의 무게는 약 40t에 이른다. 이런 거대한 지석묘가 요동지방에 많이 있고 강화도 부근리를 비롯 한강유역에도 여러 곳에 있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지석묘는 보다 작은 다른 지석묘군과 함께 위치하고 있다. 거대한 지석묘를 축조하기 위해서는 그 큰 석재를 구하여 특정한 장소까지 옮겨야 하고, 그것으로 탁자식의 지석묘를 축조하기 위하여 높이 들어 올려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 진행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어려운 작업과 이에 소요된 노동력에 관심을 가지고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었다. 이를 종합 검토한 것으로 하문식의 연구가 참고된다. 여기서 대개 동감하는 학설은 한 사람이 100㎏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볼 때, 1t을 움직이려면 10명이 힘을 합하여야 하고 그것을 들어 올려놓는데 그 배에 가까운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돌을 떼어내어 얼마만한 거리를 어떤 위치로 옮기느냐에 따라 노동력의 양은 달라지겠지만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되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앞에 제시한 은율군 관산리 지석묘를 예로 들어 대략 계산해 보자. 40t의 상석을 표고 80m의 구릉 상에 옮겨 2.15m 석실 위에 올려놓았으니, 멀리 옮겨온 것은 차치하고 들어올리는 데만도 1,000여 명이 동시에 힘을 합하여야 한다. 만약 이 돌을 10㎞만 옮겨 왔다고 가정하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소요되었겠는가? 결국 이런 계산은 이 지석묘를 축조하기 위하여 많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고 또 이에 따른 경제력도 소유한 부족장의 무덤이란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이런 무덤은 결국 주인공의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념물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로써 지석묘는 부족장의 권력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무덤이고, 지석묘 사회는 부족 단위의 국가가 성립된 사회였다고 보는데 이의가 없었다. 또한 대형 지석묘 옆에 혹은 다른 지역에 있는 소형 지석묘들은 부족장의 가족묘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지석묘가 조사되면서 필자는 이 지석묘의 주인공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첫째, 대형 지석묘가 있는 곳에 소형 지석묘가 너무 많다는 점과, 둘째, 지석묘군이 좁은 지역 내에 너무 밀집되어 있다는 점, 셋째, 지석묘의 출토유물이 너무 빈약하다는 점에서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지석묘는 부족장의 무덤, 부족장 가족의 무덤으로 보아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2) 분포상으로 본 지석묘 주인공 : 최근 여러 지역에서 다목적 댐의 건설로 강 유역의 수몰지역에 대한 유적조사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지석묘가 가장 많은 유적으로 조사 대상이 되었다. 많은 댐 유역들에서 지석묘가 조사되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지석묘가 조사된 곳은 전라남도 승주군 주암댐 수몰지역이라 하겠다. 이 주암댐 수몰지역 지석묘의 분포상태를 예로 들어 분석해 보면서 지석묘의 성격에 대하여 재검토해 보고자 한다. 주암댐 수몰지역은 1986년에 조사 발굴되었는데 많은 지석묘가 발굴조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몰지구를 벗어나는 주변 지역에도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주암댐은 보성강 상류를 막아 축조한 댐으로 승주군 주암면을 비롯하여 보성군 지역과 화순군 지역을 포함하여 약 40㎞ 유역이 수몰되었다. 수몰지역은 보성군 지역의 본류와 화순군 지역의 지류를 포함하여 좁은 골짜기로 형성된 유역이 약 40㎞에 이르는데 거의 그 전 지역에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었다. 이 골짜기는 경작지를 기준으로 하면 2㎞ 내외의 폭을 가진 좁은 유역인데 그 경작지들도 대개는 강 양안의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가히 산 계곡에 해당한다 하겠다. 이 좁은 유역에 약 2,000여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다. 이것들은 많게는 4·50기에서 2·30기씩의 군을 이루어 분포하고 있다. 이 중 40기 이상 군을 이루고 분포한 곳이 5개소, 30기 이상 군이 7개소에 이른다. 수몰되기 이전 이곳 유역에는 약 30여 개의 마을이 있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면 현재의 민가 수보다 지석묘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밀집되어 있는 많은 지석묘를 부족장 혹은 그 가족, 나아가 지배층의 무덤으로 불 수 있을까? 장기간에 걸쳐 축조되었다면 그렇게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지석묘는 그 출토 유물로 보면 거의 동일 시기의 것이다. 무문토기 중기에 해당하는 4~5세기로 편년되는 것이, 집중적으로 많다. 이 좁은 지역에 2·300년 사이에 이렇게 많은 지석묘가 축조된 것을 어떤 신분의 무덤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부족장의 무덤으로 보아온 이제까지의 설은 설득력을 상실하였다고 본다. 이런 분포상의 문제는 전국적으로도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으며, 특히 전라남도 지역에는 그 예가 많다. 이영문의 집계에 의하면 전남지역에만 16,369기의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석묘들은 대개 밀집군을 이루고 있다. 직경 5~10㎞의 지역을 단위로 밀집군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은데 그 중에는 350기 이상 밀집 지역이 5개소, 250기 이상 밀집 지역이 9개소, 150기 이상 밀집지역이 26개소에 이른다. 이런 상황은 역시 부족장의 무덤일 수 없음을 말해 준다고 할 것이다.
(3) 유물로 본 지석묘의 주인공 : 지석묘의 출토유물로는 석촉과 석검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무문토기, 홍도 등이 많다. 그 외 여러 종류의 석기와 청동기, 그리고 장신구의 순으로 출토되고 있다. 이영문이 집계한 다음 표를 참고하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위의 집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석촉과 석검이 절대적으로 많고, 다음 석부, 도끼, 청동검, 장신구, 방추차, 어망추의 순서이다. 여기서 출토유물의 기능을 보면 무기, 용기, 장신구, 생활도구로 나뉘어 지는데 거의가 무기류라 하겠다. 이들 유물들을 지석묘 주인공의 생시 역할과 신분에 관계있는 것으로 본다면 주인공은 대부분이 전투와 관계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무기는 사냥과 호신용으로도 사용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전투용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보면 지석묘의 주인공은 전투를 하던 사람이라 추측할 수 있다. 부족장이 권력의 상징인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러나 그 무기로 외적을 막는 지휘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통치권이 부여되는 것이므로 결국 부족장의 무기도 당초에는 전사의 무기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석묘의 주인공은 대부분이 전투적 임무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지석묘 출토유물은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 무기류들이 완전한 것은 많지 않고 대부분 파손된 것이다. 그 중에 석검이나 석촉의 첨단부 파편만이 출토하는 지석묘가 많이 있다. 이것을 부장유물로 볼 때 어떻게 해석하여야 옳을까? 그 예를 우선 주암댐 수몰유적 지석묘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① 승주군 송광면 우산리 내우 4-1호, 5호, 6호, 23호, 44호, 53호(석촉)
② 승주군 송광면 우산리 내우 4-1호(석검)
③ 승주군 송광면 대곡리 2호, 3호, 4호, 7호, 8호(석촉)
④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다”군 7호, 11호(석촉)
⑤ 보성군 복내면 시천리 6호, 13호(석촉), 2호, 16호(석검 파편 반파된 손잡이 부분)
⑥ 승주군 송광면 신평리 1호(석검, 손잡이 부분 파편)
⑦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나”군 4호
위의 7개소의 지석묘에서는 무기인 석촉이 파손된 것으로 끝 부분 만이 출토하거나, 손잡이 부분이 남은 반파된 석검이 출토하고 있다. 그 중 몇 곳은 아무런 유물도 없이 이 파손된 석촉이나 석검만 한 점씩 출토한다. 이것을 부장품이라고 볼 때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특히 석촉 날 조각 한 점만 출토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부장품이 유실되고 석촉만 남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대개는 석실이 완전하고 무너진 흔적이 없어 다른 유물의 유실을 상상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유실된다면 석촉 파편과 같은 작은 것이 먼저 유실되었어야 할 것이다. 이 석촉 편만의 출토 예에 대하여 우리에게 큰 시사를 해주는 예가 일본에서 발견되었다. 일본 구주의 복강현 영강유적 옹관에서 유골이 출토되었는데, 그 인골에 동검 끝 파편이 박혀 있었다. 이것은 옹관의 주인공이 동검에 찔려 전사한 사람임을 말해 준다. 동검이 부러진 채 몸속에 남은 것은 전투 중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라 쉽게 추측되는 일이다. 이 예를 참고로 교구달야는 일본 전국에 53개 옹관 등 무덤에서 동검, 동모, 동과의 첨단부 파편이 출토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이것들은 전투 중에 몸속에 박힌 무기의 파편이 그대로 매장되어 시체가 부식함으로써 무기편만 남게 된 것이라 보았다. 이 청동무기의 첨단 부분이 전사자의 몸에 남아 있었다고 본 견해는 우리나라 지석묘 출토 석촉, 석검의 첨단부 파편의 출토 경우에도 적용되리라 본다. 즉 화살을 맞거나 석검에 찔려 전사한 사람이 그것을 뽑아내지 못하고 매장되어 시체는 부식되고 석기편만 석실에 남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런 석촉, 석검 편들이 출토하는 지석묘들은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의 무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반파된 손잡이 부분의 석검이 부장된 지석묘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것 역시 전사자의 무덤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투에 공을 세우고 전사하였는데, 그 전투에서 적을 찔러 죽임으로써 석검의 첨단부는 적의 몸에 찔려서 부러지고 자신도 적의 공격으로 전사하였을 경우를 생각할 수 없을까? 결국 이 전사에서 이 전투에서의 기념물은 적을 무찌른 반파된 석검만이 유일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지석묘에서 절대적으로 많이 출토하는 석촉, 석검, 석부 등은 바로 주인공들이 전투에서 사용하던 무기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석기류들이 권력의 상징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발굴하면 거의 모든 주거지에서 석촉이 나오고 석부, 석검도 많이 출토된다. 이것을 보면 이때 모든 사람들이 사냥이나 호신용으로 이런 석기들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들이 특수한 신분의 권력 상징용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저 생활에 필요한 무기였을 뿐이다. 부족과 부족 사이에 전투가 일어날 때, 각자 소지한 무기들은 들고 전투에 임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전투에서 전사한 부족원에 대한 기념비적 무덤이 지석묘이고, 그 지석묘에는 그 전투와 관계있는 각자의 소지품을 부장하였다고 생각된다. 이 전투는 온 부족이 총동원될 경우(방어전)도 있었을 것이므로 남녀노소 구분없이 전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상시 일반적인 죽음과 부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사와는 구별되었을 것이므로 전사자의 무덤을 지석묘로 축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전사자 중에서도 씨족장, 부족장이 있을 수 있고, 이들의 무덤은 구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덤이 기념물로 되면서 대형화, 화려화해 지는 것을 보면, 지석묘는 분명 기념물로서 전사자의 무덤이 되었으며, 그 규모나 형식의 차이로써 씨족장, 부족장을 구별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탁자식과 기반식이 많지 않고 큰 규모인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소규모의 개석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권력과는 상관없이 전사한 부족원의 공훈묘라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개석식의 상석의 무게를 보면 5t 미만의 것도 많고 거의가 10t 미만의 것이다. 이것은 부족장의 기념물적인 무덤으로서는 적합지 못하다.
또 지석묘의 주인공이 전투에 참가한 전사라는 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지석묘 출토 인골에서도 추측할 수 있다. 지석묘 출토 인골에 대한 조사가 하문식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총 21개소로 집계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7개체 분에서 그 연령을 측정하였는데 5개체가 남자로서 모두 20대와 30대이고 여자 1인은 20세, 1인은 어린이로 밝혀져 있다. 이 조사를 보면 남녀 모두 청장년이고 한 사람만 어린이다. 지석묘에 노인의 인골이 없다는 것 역시 부족장의 무덤일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한다. 역시 전투에 참가할 핵심적 연령층이라는 생각인 드는 것이다.
4) 후기의 지석묘 사회상 : 후기에 내려오면서 지석묘가 많아짐을 알 수 있고 특히 호남지방에는 밀집 분포한 지역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좁은 지역에 밀집하고 있음을 보아 부족장의 무덤이라 볼 수 없으며 출토유물을 검토한 결과 전사자들의 기념물로서 지석묘가 영조되었음을 짐작케 했다. 그렇다면 전사자들의 기념물로서 이렇게 많은 지석묘가 축조되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전사자들의 무덤이 많아졌다는 것은 한마디로 전쟁이 많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면 전쟁이 많아진 사회는 어떠한 사회이며, 전쟁은 왜 갑자기 많아졌는가? 이것은 청동기시대 후기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항이라 생각된다. 청동기시대는 농경이 주생업으로 등장하고 신석기시대에 비하여 인구가 늘어났으며 그 분포도 해안이나 대하 유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거의 전 국토에 골고루 확대되었음을 알고 있다. 또 주거지는 과거 해변이나 강안 낮은 지역에서 구릉상으로 올라가며 내륙으로 확대되었음도 알고 있다. 농경은 신석기시대부터 화북지방의 농경을 받아들였는데 이때는 밭농사였다. 청동기시대에도 처음에는 밭곡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중기부터 벼농사가 들어와 점차 수전으로 발전하고 결국 중요 농작물로 되어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청동기시대의 제반 상황들과 지석묘를 연관시켜 보는 것이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선 밭농사에서 수전농사로 바뀌면서는 농경지의 입지조건이 달라진다. 오늘과 같은 발달된 농경술이 없던 당시 수전을 개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며 따라서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수전농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초기에 수전농사는 대게 좁은 골짜기 소하천변이 유리하였다고 하는 일본학계의 연구를 참고하면 우리나라도 이것과 유사한 현상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여간 농경의 발전은 새로운 유리한 조건의 농경지를 확보하고 그것을 확대하려는 노력들이 각 부족, 각 지역에서 일어나게 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현상은 결국 쟁탈과 방어에서 소규모 전투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의 증거물이 바로 많은 전사자의 기념물인 지석묘라 하겠다. 소규모의 전투는 지역을 단위로 점차 연맹체를 형성하게 되고 이 협동적인 연맹체는 차차 하나의 지휘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어 결국 지역 단위의 소국가들을 출현시켰던 것이다. 이영문은 그가 집계한 전남지방의 11개 지석묘 밀집 분포지역이 천관우가 마한 소국으로 비정한 지역들과 일치함을 지적하고, 전남지방의 지석묘사회가 마한 소국들의 형성 배경이 되었으리라고 보았다. 소국 형성 지역은 결국 많은 인구를 가진 지역이고 전투도 그만큼 많이 치루면서 지역의 중심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석묘는 전사자의 공훈을 기린다는 목적에서 축조하였지만 그 축조과정은 힘의 결집을 필요로 하면서 지역 주민, 나아가 부족의 단결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하 유역에서 관개를 위한 협동이 정치권력을 출현시킨 것과 유사한 현상이라 하겠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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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태 : 고인돌의 역사적 사실/ 2010.04.07/ ...바탕으로 상세히 설명을 하여 보겠다. 지석묘의 개념과 명칭은 여러 논문들을 찾아서 비교 해본 결과 임병태의 한국 지석묘의 형식 및 연대 문제에서 자세히 다루어져 있어서 이를 인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따로.../ 답변수: 1 | 조회수: 301(daum 2010)
임병태 : 청동기시대의 생활모습을 3분 이내에 써주세요/ 2007.03.05/ ...이동하고 그만큼 확산한 것을 알 수 있다. 역삼동 유적은 경부고속도로 동측에 있으며 1966년에 숭실대학 임병태(林炳泰) 교수에 의해 주거지가 1개소 발굴되었다. 이 주거지는 해발 90m의 야산 사면에 있으며 한강으로부터 약 3㎞의.../ 답변수: 11 | 조회수: 3,102 | 추천수: 5(daum 2010)
임병태 : 고인돌 - 전 세계 고인돌 중 70% 이상이 한국에 있다./ 2011.08.21/ 북방식·남방식·개석식(蓋石式) 고인돌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 작고한 임병태(林炳泰) 전 숭실대 교수는 이를 외형에 따라 탁자식(卓子式)·기반식(碁盤式)·무지석식.../ blog.daum.net/hhlee9/ HyangHee.Lee(daum 2016)
임병태 : [한국사 미스터리] (17) 완주 갈동 거푸집 발굴 의미/ 2012.04.09/ 모든 노력을 쏟았으나 결국 확인하지 못하고 타계했다. 뒤를 이어 제자인 숭실대학교 임병태 교수 역시 스승의 뜻을 따라 출토지 확인 조사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결국.../ blog.naver.com/van111a/ Vanilla's Naver Blog(daum 2016)
임병태 : 예천의 자랑 2014 : 예천대사전 제104권 오늘 나와(祝 배구 等 7件)/ 작성 장병창/ (일본 호세대 교수), 이덕수(영남대 교수), 이영대(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이한유(영남대 교수), 임병태(숭실대 교수), 임종욱(청주대 교수), 정석호(서울대 교수), 정승영(경남대 교수), 정인재(한국과학기술원 교수), .../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임병태 : 예천의 자랑 1897 : 예천대사전 제95권 오늘 나와(祝 예묵회/예천방문 422)/ 작성 장병창/ (경북대 교수), 윤학준(호세대 교수), 이경광(한국생명공학연구소 선임연구부장), 이흥락(경북대 교수), 임병태(숭실대 교수), 전무부(계명문화대 학장), 전상준(수필가), 정석호(서울대 교수), 정우열(경운대 교수), 조두섭(대구.../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임병태 : 임병태(景中 林炳泰)/ 마치고, 1962년 숭실대학 사학과, 1964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숭실대학교박물관 연구원을 거쳐 1968년부터 숭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숭실대학교 박물관장, 학생처장, 교무처장, 총무처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하였다. 1974년과 1982년의 두 차례에 걸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수학하였... 태그 선사시대 , 현대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daum 2016)
임병태 : 임병태(전직 대학교수), [출생] 1936년, 서울, [사망] 사망, [직업] 전직 대학교수,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소속] 숭실대학교, 출처 인물백과(dau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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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화(임병화 氏 4級 書記官 陞進) [記事] : 감천면 장산리 태생의 임병화 부신시청 감사기획계장이 2014년 7월 8일자 인사에서 4급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임 서기관은 부산시청 문경시·예천군 출신 공무원 모임인 문예회 총무를 맡고 있으며, 이번 인사에서 부산시의회 해양도시소방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승진 발령됐다. 임 서기관은 감천초등, 감천중, 대창고, 경성대, 부산대학원을 졸업했다.(醴泉新聞 2014년 08월 04일 (월) 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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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7일 공무원정보지식인 도대회 최우수기관 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醴泉郡, 慶尙北道 公務員情報知識人大會에서 '最優秀機關賞' 受賞!...) [記事] : 예천군은 2016년 10월 7일 도청 정보화교육센터에서 실시된 ‘2016년 경상북도 공무원정보지식인대회’에 4명이 참가해 우수한 실력으로 최우수기관상을 수상했다. 경상북도 주관으로 열린 이번 대회에 예천군 대표로 참가한 4명의 참가자는 5급 이상에 조해진 곤충연구소장, 6급 이하에는 종합민원과 이정오, 건설교통과 박수경, 유천면 윤희득 주무관이 참가해 120분 동안 열전을 펼쳤다. 평가 방법은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는 방식으로 시험과목은 정보화 종합지식 평가로 객관식 30문제와 정보화 정책역량평가로 보고서형 1문제와 약술형 1문제를 작성하는 대회였다. 예천군은 이번 경상북도 대회를 위해 지난 4월 27일 군청 정보화교육장에서 실과소 읍면 공무원을 대상으로 ‘2016 공무원 정보지식인 대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성적 우수자를 도 대회 참가자로 선발했다. 특히, 이번 수상으로 최근 4년 동안 우수상 3회 장려상 1회라는 쾌거를 올렸으며, 또한 개인상으로도 3명이 우수상을 받는 등 예천군의 정보화 역량을 도내에 널리 알리며 신도청시대 경북의 중심도시로 도약하는 예천의 영예를 드높였다. 또한, 이와 같은 성과는 정부 3.0시대를 이끌어갈 핵심이 되는 정보지식공무원을 양성하고 예천군의 정보화 역량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평가된다. 예천군 관계자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보화 시대에 최고의 행정서비스를 군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공무원 개개인의 정보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 하겠다.”고 밝혔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6년10월21일 14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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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20일 국방부장관 표창 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慶北道·聞慶市, 世界軍人體典 '大統領表彰') [記事] : 경북도는 2016년 10월 20일 도청 화백당에서 2015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 성공개최 주역들에 대한 표창 시상식을 가졌다. 2015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 성공 개최에 공이 큰 경북도와 문경시가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경북도는 20일 도청 화백당에서 김관용 도지사 주재로 2015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 성공개최 주역들에 대한 시상식을 가졌다. 단체는 경북도와 문경시가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을 비롯해 경북교육청과 포항시가 국무총리 표창, 문경중학교, 김천시, 안동시, 영주시, 영천시, 상주시, 예천군이 국방부장관 표창을 각각 받았다. 개인은 훈·포장 27명, 대통령표창 44명, 국무총리표창 64명, 국방부 장관 115명, 도지사표창 108명 등 모두 347명이 받았다.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는 세계 유일한 분단국의 인구 8만 작은 소도시 문경에서 세계 117개국 군인 7천45명이 모여 국적과 인종, 이념과 종교를 넘어 스포츠를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의 이상을 구현하는 등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을 받았다.(양승복 記者 慶北日報 2016년10월20일 20시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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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경찰서 이상준 경장, 21일 행자부장관 표창...축하합니다.
예천경찰서(醴泉警察署 '第71周年 警察의 날 記念式' 가져...이상준 警長 행자부장관 表彰!) [記事] : 예천경찰서(서장 이양호)는 2016년 10월 21일 오전 11시 3층 회의실에서 김태명 경우회장, 양찬모 경찰발전위원장, 박승후 보안협력위원장, 권혁도 생활안전협의회장, 박재길 방범연합대장, 모범운전자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7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예천경찰은 최근 오패산터널 총격사고로 순직한 고 김창호 경감과 예천경찰서 근무 중 순직한 고 김승환 경감, 김천경찰서 고 정기화 경감, 영덕경찰서 고 박경록 경장에 대한 추모 묵념을 올리는 등 잇따른 경찰관 순직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양호 서장은 박승후 보안협력위원장에게 "귀하는 평소 경찰을 이해하고 적극 협조하여 오셨으며, 특히 경찰행정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제71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감사장"을 전했다. 이어 이정식.권혁도.박재길.강성호.김영선씨에게 지방청장 감사장을 전달하고 위로. 격려했다. 이어 "평소 경찰을 이해하고 적극 협조하여 준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제71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감사장을 전한다."며 경우회 김정호 씨, 녹색어머니회 손용매, 보안 배중원, 자율방범 김현민. 김동년, 호명자방대 신재기 씨에게 경찰서장 감사장을 수여했다. 또 경무과 이상준 경장이 행자부장관 표창, 생안과 김구남 경감, 수사과 조정묵, 용궁파출소 오원식 경위가 경찰청장 표창, 생안과 남순진 경위 지방청장 표창을 전수하고, 조정현 경위, 권규환 경사, 이현철 경사, 이태수 경위, 경무과 윤나은, 김영진.김동호에게 서장 표창을 수여했다. 이양호 경찰서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질서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 경찰관 여러분과 경찰관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고 계신 경찰 가족, 전국 135만 경우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순직. 전몰 경찰관들과 유가족들께도 존경과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경찰은 대한민국 수많은 역경을 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 행복과 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국민이 힘들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언제나 경찰은 가장 먼저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국민의 삶을 지키는데 헌신해 왔습니다. 법과 규정의 미비가 경찰 업무 수행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경찰이 정부를 믿고 각자의 소임을 충실히 실천해 줄 것"을 당부하고 "국민들도 과중하고 위험한 업무에 임하고 있는 경찰관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당부드린다."는 대통령 치사를 대독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지역 치안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예천경찰은 현 정부의 최대 치안 정책인 4대악(성, 학교, 가정, 불량식품) 근절에 앞장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천군민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늘 곁에서 든든한 안전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6-10-21 오전 9: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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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출신 박시영, 11일 대한민국신지식인 선정...축하합니다.
박시영(醴泉郡 龍門面 出身, 박시영 農業會社法人 水酒村(株)代表 2016 大韓民國 新知識人 選定) [記事] : (사)세계신지식인협회는 2016년 10월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문경, 영주, 예천 지역구 최교일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국회의원들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6년 신지식인 인증식 및 우수신지식인 유공자 시상식을 가졌다. 신지식인이란 학력에 상관없이 지식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한 사람으로 기존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사람을 신지식인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이날 중소기업, 특허, 벤처, 농업 등 10개 분야별로 진행된 인증식에서 전국의 61명이 2016년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인증을 받았다. 특히 예천군(용문면 성현리)에 거주하는 농업회사법인 수주촌(주) 대표이사 박시영은 대구경북에서 유일하게 농업분야 신지식인으로 인증을 받았다. 박시영 대표는 현재 예천군 제2논공단지의 입주기업으로 선정이 되어 2017년 공장 준공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향후 지역 농민과 더불어 발전하고 지속가능한 농식품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젊은 사업가이다. 앞으로 우리지역의 농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젊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지역의 기반이 되어 새로운 앞날을 개척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6년10월23일 09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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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내글모임, <낙엽이 서러울 때> 출판...축하합니다.
한내글모임(2015 스물여덟번째 한내글모음 <낙엽이 서러울 때> 출판) [記事] : 김소내가 꾸민 책으로, 23cm, 사진, 188쪽이다. 한내글모임 앞일꾼 변두연이 펴내어 바름협동조합에서 2015년 12월 9일에 출판하였다. 목차는 머릿글(변두연) =4// 회원 시// 김소내 =11/ 변두연 =27/ 손범석 =37/ 손호석 =47/ 이기준 =51/ 강준용 =57/ 김도희 =71// 초대의 글// 상주 들문학회 =87/ 영주 작가회의 =105// 회원 수필// 김순 =115/ 김소내 =120/ 손호석 =134/ 이기준 =140/ 강준용 =142/ 윤동희 =151// 초대의 글// 김대학 =168/ 이현숙과 송난수 =174// 한내 발자취 =179//(이 책을 2016 예천아리랑제가 열린 도효자공원에서 저에게 주신 분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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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