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4583:임춘(2)(祝군청,은풍중/예천방문1,432)
작성자장병창 @ 2016.11.09 06:24:01

  예천의 자랑(4583) : 임춘(2)((附 예천군, 정보지식인 도대회 최우수상 수상...축하합니다/은풍중학교, 학생체육 도대회에서 좋은 성적 올려...축하합니다/예천방문 1,432)

---

 

  임춘 : 暮春聞鶯 /- 林椿 | 書卷氣/文字香/ 2009.08.18/ 暮春聞鶯 (늦은 봄에 꾀꼬리 소리를 듣다) - 林椿 田家?熟麥將稠 농가에 오디는 익고 보리도 곧 익으려는데 綠樹初聞黃栗留 푸른 나무 사이에 꾀꼬리 소리 처음 들리네. 似識洛陽花下客 낙양의 꽃 아래 노니는 손님인가 여겼더니.../ //cafe.daum.net/hanjalove2/ ★漢字사랑★(daum 2010)

 

  임춘 : 西河 임춘(林椿)의 시 贈演之/ 2010.09.11/ 西河 임춘(林椿)의 시 贈演之 西河 임춘(林椿)의 시 贈演之贈演之(연지에게 주다)-임춘(林椿)風生虛閣抵千金풍생허각저천금滿院荒凉碧樹深만원황량벽수심不覺天西殘月落불각천서잔월락終宵空伴草蟲吟종소공반초충음허전한 누대에.../ //am25.tistory.com/ 태그: 西河 임춘(林椿)의 시 贈演之(daum 2010)

 

  임춘 : 동양화, 문인화의 역사.....중국,한국./ 2010.08.18/ 같은 문인화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시기에 이인로(李仁老)'시화일률론'을 개진한 것을 비롯하여 임춘(林椿최자(崔滋) 등도 화론 전개에 일정한 기여를 했지만, 보다 투철한 의식과 이론적 사유체계에 의해 자신의 견해를.../ //blog.daum.net/ 나의 공간(daum 2010)

 

  임춘 : 임춘 (고려 문인) [林椿]/ 2008.11.26/ ~? 고려 중기의 문인. 고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 고려 건국공신의 자손으로 할아버지 중간(仲幹)은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충경(忠敬)이라는 시호를.../ //blog.daum.net/samhang61/ 茗田의 차사랑(daum 2010)

 

  임춘 : 淸白傳家八百年 / 여초 김응현| 2010.07.08/ 전서, 초서, 갑골문 등에 걸쳐 여초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가득했었는데, 두 점의 해서 대작(林椿의 足庵記’ 10曲屛, 白雲和尙의 興聖寺入院小說‘ 8曲屛)이 또한 즐거운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여초의.../ //blog.daum.net/samhang61/ 茗田의 차사랑(daum 2010)

 

  임춘 : 西河 林椿의 西河集 한시를 찾아서/ 2008/04/13 21:42/ //blog.naver.com/munsuan/ 西河 林椿의 西河集/ 西河 林椿의 字는 耆之다. 고려 시대 學士였던 임종비의 조카다. 그는 문집 6권을 남겼는데, 그 문집은 품격이 그다지 빼어나다는 평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중간에 자취를 감추었다가 전해오는 과정의 일화가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점으로 인해 한때 세간의 화제가 된 책이었다. 그가 죽고 그의 문집은 자취를 감춘 채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채 전해오지 못했다. 뒤에 지금의 비구니 전문 승가대학이 위치한 청도 운문사의 사문 인담이 서하집과 관련해서 꿈에 어떤 도사를 만났다. 그 도사는 손으로 어느 곳을 印淡에게 가리키면서 여기를 파면 하나의 기특한 보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인담은 꿈에서 깨어나 도사가 가르쳐 준 곳을 찾아가 땅을 파 보았다. 과연 그곳에서는 하나의 銅塔이 나오고 그 탑 속에 구리로 만든 항아리가 있었다. 인담은 그 항아리 속을 열람해 보았다. 도사가 꿈속에 알려준 기특한 보배란 임춘이 남긴 6권의 서하집이었다. 기묘하게도 소장자는 발굴자의 법명과 앞뒤 글자가 서로 뒤바뀌어 있는 淡印이었다. 이 사실을 뒷날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저 우연의 일치치고는 묘한 느낌의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 문집의 서문은 이인로에 의해 작성되어 있다. 그곳에서 이인로는 의왕의 말년에 온 집안이 화를 입을 때 홀몸으로 겨우 현장을 벗어나 강의 남쪽으로 잠시 피신했다가, 여러 해 뒤에 서울로 돌아와서 항상 삼분의 치욕을 씻으려고 생각하더니, 마침내 一名도 성취하지 못하였다. 대신 그의 뛰어난 시문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해동에서 포의로서 세상을 주름잡은 이는 바로 이 한 사람뿐이다.” 고 하였다. 西河 林椿의 詩를 보고 李奎報는 이렇게 소감을 시로서 읊는다.// 一枝丹桂雖無分/ 百首淸詩合有聲/ 英魄如今何處在/ 兒童猶解說君名// 한 가지 계수나무 비록 나누지는 못했지만/ 백수의 청아한 시는 명성 얻기 합당하다/ 꽃다운 넋 이제 어느 곳에 있다하더라도./ 아이들도 아직껏 그대 이름 이해하여 말하고 있다네.// 그러나 성호 이익은 시격이 그다지 고상하지 못하고 말의 구조도 치밀하지 못하니, 한때의 운사에 지나지 않았을 뿐, 영원한 세대에 전하여 기억할만한 불후의 명작은 못된다고 하였다. 그의 시 가운데 다음에 소개하는 내용은 演之에게 준 시다.// 贈演之(연지에게 주다)-임춘(林椿)// 風生虛閣抵千金/ 滿院荒凉碧樹深/ 不覺天西殘月落/ 終宵空伴草蟲吟// 허전한 누대에 이는 바람 천금의 값어치/ 정원에 황량함 가득하나 푸른 나무 깊다./ 서쪽 하늘에 쇠잔한 달 지는 줄 모르고/ 밤새도록 풀벌레와 함께 벗 삼아 읊다.// 그는 고려 후기에 시와 술을 즐기며 마땅한 이치를 즐겨 논한다는 강좌칠현 (江左七賢)의 한 사람이었다. 즉 강좌칠현(江左七賢)이라고 하면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였다. 그들은 중국 진()나라 때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빗댄 표현으로 1170(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난 이후, 문인들이 강호로 몸을 피해 시와 술을 벗삼아 인생을 보내게 된 게 하나의 계기였다.

 

  그가 지은 가전체설화(假傳體說話) 가운데는 국순전(麴醇傳)도 있다. 내용이 술을 의인화(擬人化)하여 풍자한 교훈체 작품으로 술로 인생을 소모하면서 몸을 음욕에 빠져 들게 하여 결국 패망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을 경계하고 있으며, 조선 전기의 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다. 그 밖에 그의 작품으로는 앞에서 말한 서하(西河)선생집, 공방전(孔方傳)이 있으며 문과 당시(唐詩)에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순전(麴醇傳) 내용의 요약 : 순의 90대 할아버지 모()가 후직을 도와 공로가 많고 청렴하므로 중산후에 봉해졌고 국씨 성까지 받았다. 그의 5세손은 강왕 때 금고(禁錮)되었고, 위나라 때 순의 아버지 주()가 출세하였다가 진이 어지러워지매 벼슬을 버리고 죽림에서 놀았다. 순은 도량이 넓고 풍류가 있어 국처사라는 칭호와 신임을 얻어 국가의 중대사에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왕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예법(禮法) 지사의 지탄을 받았다. 또 왕의 보호 아래 돈을 거둬 함부로 써서 비난을 받다가 벼슬에서 물러나서 죽었다는 이야기다./ [출처] 西河 林椿의 西河集 |작성자 문수의눈(daum 2010)

 

  임춘 : name 임춘/ subject 동행기(東行記) - 임춘(林椿) / 2004.01.09 09:43:49/ 동행기(東行記) - 임춘(林椿)/ 세상에서 산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강동(江東) 지방을 가장 좋은 곳이라 하는데 나는 그렇게 믿지 아니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하늘이 물()을 창조할 때에 어디는 좋게 어디는 나쁘게 하려는 마음이 본시부터 없었을 터이니, 어찌하여 한 쪽 지역에만 후하게 했는가,"하였었다. 그러다가, 남쪽 지방으로 다니면서 경치가 기절한 곳을 모조리 찾아다니며 실컷 보았다. 그리고 천하의 좋은 경치라는 것이 아마 이 이상 더 나은 곳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또 그 곳을 떠나서 동쪽으로 갔는데 명주, 원주의 경계부터는 풍토가 특별히 달라지는데 산은 더욱 높고 물은 더욱 맑았다. 일천 봉우리와 일만 골짜기는 기절과 수려함을 <서로> 경쟁하는 듯하였다. 백성들이 그 사이에 거주하는데 비탈에서 밭을 갈고 위채롭게 거두어둘이는 것을 보니, 완연히 특별한 세계가 따로 이루어진 듯하여, 과거에 다니며 보던 곳은 마땅히 여기에 비하여 모두 양보하고 굴복하여 감히 겨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야 태초에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순수하고 웅장한 기운이 홀로 어리어서 이 곳이 된 줄을 알게 되었다. 죽령에서 서쪽으로 20여리를 가면 당진이라는 물이 있다. 아래에는 자갈이 많은데 모양이 둥글고 반질반질하며 푸른빛이 난다. 빛은 투명하여 물이 푸르게 보이며 잔잔하여 소리가 나지 아니하고, 물고기 수 백 마라가 돌 사이에서 장난을 하고 있다. 좌우편은 모두 어마어마하게 깎아 세운 듯 산이 솟아서 만 길이나 될 듯한데 붉은 바탕에 푸른 채색을 올린 것처럼 보인다. 벼랑과 골짜기의 모양은 요철같아 움푹하기도 하고 불룩하기도 하며 굴 같기도 하다. 기이한 화초, 아름다운 대나무가 엇갈리게 자라서 그림자가 물 밑에 거꾸로 비친다. 이러한 것은 그 대략만을 적었을 뿐이요, 그 기묘하고 수려한 점은 무어라 형언할 수가 없다. 마침내 끊어진 벼랑 어귀에서 말에서 내려 석벽이 있던 자리에서 배를 띄었다. 배 안에서 사람이 말을 하면 산골짜기는 모두 메아리를 친다. 곧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 만족스럽게 놀면서 하루 종을 돌아설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어두운 저녁빛이 먼데서부터 스며들었다. 그 경지가 너무 싸늘하여 오래 머무를 수가 없기에 시 한 편을 읊어서 거기에 써놓고 그 곳을 떠났다.// 푸른 물 출렁출렁 빛깔은 쪽빛과 같은데,/ 물결에 비친 푸른 절벽은 험한 바위가 거꾸로 서 있는 듯하다./ 표연한 만릿 길에 동으로 가는 나그네는,/ 홀로 돛대 한 폭을 가을바람에 달고 가네// 내가 동쪽 지방으로 수레바퀴와 말발굽을 끌고 다닌 곳이 많았으나 여기보다 저 좋은 곳은 없었다. 만일 서울 부근에 가까이 있었다면, 놀기 좋아하는 귀족들은 반드시 하루에 천 냥씩이라도 값을 올려 가면서 다투어 사들일 것이다. 다만 먼 지역에 외따로 있기 때문에 오는 사람이 적고 간혹 사냥꾼이나 어부가 여기를 지나지만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것은 반드시 하늘이 장차 여기를 숨겨 두었다가 우리같이 궁하고 근심 있는 사람을 기다린 것일 듯하다. 명주의 남쪽 재를 넘어서 북으로 해변에 이르니, 조그마한 성이 있는데 동산이라 한다. 민가가 사는 촌락은 쓸쓸하고 매우 궁벽하였다. 그 성에 오라서 바라보니 어스름 저녁빛이 어둑어둑하여지는데, 길 옆에 고기잡이하는 집에는 등불이 깜박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워하게 하며 고장을 떠난 서글픔에 쓸쓸한 감상이 일어나서 슬픔을 자아내게 하였다. 밤에 객주집에서 잤다. 석벽을 기대고 불안한 자세로 않으니 강물 소리 출렁거리며 그칠 줄을 모른다. 우레가 터지는 듯, 번개가 치는 듯, 사람의 머리끝은 쭈뼛하게 하였다. 부견이 군사 백만을 거느리고 와서 강남을 공격할 때에 군사를 지휘하여 퇴각시키다가 겁결에 대오가 무너져 걷잡을 수 없이 장비와 물자를 다 내버리고 빨리 달아나던 모양과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 웅장한 것인가.

 

  마침내 시를 썼다. 이르기를,// 주민들은 서글퍼, 바다에 나간 사람 반이나 된다./ 백 길이나 되는 산마루에 높은 건물이 솟아 있구나./ 돛대 그림자 가볍게 날아오니 생선 파는 시장은 넓어만 가고,/ 물결이 다투어 주름지니 바다의 어귀는 아득하여라./ 싸늘한 황혼이 달빛을 띠고 말안장에 실려 왔는데,/ 밤중 밀물 소리에 나그네의 베게머리는 시끄럽구나./ 오강정 위에서 바라보는 운치만 못하지 않아,/ 붉은 단풍 푸른 귤이 긴 다리에 비쳤어라.// 새벽에 마을에서 들려오는 닭소리를 듣고 떠나서 낙산 서쪽을 지나는데, 길옆에 외따로 서 있는 소나무가 있었다. 마디와 눈이 또렷하고 가지와 줄기가 구불구불하여 땅을 덮고 있는데, 그 그늘이 미친 곳이 몇 십보나 되었다. 이상하다. 소나무로서 이렇게 기괴하게 생긴 것이 세상에 또다시 있을까. 골 안은 깊숙하고 고요하며 구름 어린 물은 흐릿하며 아마도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요. 신선이 거주하는 곳인 듯, 높은 선비의 유적이 완연히 있었다. 나는 옛날 신라의 원효와 의상 두 법사가 신선굴 속에서 관음보살을 직접 보았다는 사실을 생각했는데, 스스로 범상한 몸과 속된 정신이라 신선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감을 탄식하였다. 남긴 사적을 물어보려 하였으나 다만 산만 길게 뼏혔고, 물만 흐르고 있음을 볼뿐, 수 백 년 동안에 옛집과 남은 풍속이 모두 없어졌다. 곧 절구 두 편을 지어 이를 그리워하였다.// "일찍 들었노라. 거사인 늙은 유마힐(維摩詰),/ 지팡이를 휘날리며 허공을 건너서 만릿길을 지나갔다./ 벌써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보내어 문병하러 왔으니,/ 일 없이 비야리(毗耶離)를 나오지는 않았으리라."// 이것은 원효를 가리킨 것이다.// "지팡이를 휘날리며 좋은 곳을 찾아 외로운 바닷가에 이르렀으니,/ 묘한 양상 바라보니 허무에서 나왔도다./ 대사로 인연하여 신령한 응답을 돌리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신룡의 진주 한 덩이를 얻어 낼 수 있었으랴."// 이것은 의상을 가리킨 것이다. 한성에서부터 북쪽은 가보지 못하였다. 세상에서 전하는 총석, 명사 같은 곳은 모두 보지 못하였다. 그런즉 지금 강동에서 구경한 것은 정말 극히 그 일부분에 불과하다. 가령 모조리 구경하였더라면 비록 수 만장의 종이를 다 쓰며 천 자루의 붓을 다 부러뜨릴지라도 어떻게 모두 적을 수 있었으랴. 옛날에 사마태사(司馬太史)는 일찍 회계에 가서 우혈을 구경하여 천하의 장관을 다 보았으므로, 정신이 더욱 기결하고 커져서 그 문장이 소탕하고 웅장한 기운이 있었다. 무릇, 대장부가 널리 돌아다니며 먼 곳으로 구경을 다니어 천하를 휘졌는다면, 장차 그 가슴 속의 수려한 기운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만일 명예나 벼슬 속에 얽매어 있었다면 반드시 그 기절함을 끝까지 찾아다니면서 그 이상함을 채집하여 평소에 가졌던 뜻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이 나에게 후한 혜택을 베풀어 주셨음을 볼 수 있다. () () ()는 적는다./ * -고려조의 기행문-/ * 고려시대의 기행문 가운데 강원도 지방 여행기를 감상과 함께 그려낸 임춘의 동행기. "동문선"에 포함된 글들이다.(daum 2010)

 

  임춘 : subject 경북 인물열전 (29): 송곳을 꽂을 만한 땅도 없어 고생했던 임춘(林椿)/ 가전체 『국순전(麴醇傳)』과 『공방전(孔方傳)』으로 널리 알려진 고려 인종 때의 문인 임춘(林椿)은 그 정확한 생몰년을 알 수가 없다. 그의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로 예천(醴泉) 임씨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고려 건국공신의 자손으로 아버지 광비(光庇)와 큰아버지 종비(宗庇) 모두 한림원의 학사직을 지내는 등 정치적 기반과 경제적 여유를 지니고 있어 음보(蔭補;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로도 벼슬길에 나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육갑(六甲)을 외우고 백가서(百家書)를 읽는 등 재능이 있어 큰아버지에게서 학문을 배우면서 청년기에 벌써 문명을 날리는 등 귀족의 자제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에 실력으로 자립하겠다는 의지로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운이 없었는지 번번이 낙방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나이 20세를 전후한 1170(의종 24)에 무인란[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고, 문신들에 대한 1차 대살육 때 일가가 화를 당하여 조상 대대의 공음전(功蔭田)조차 빼앗겨 버리고 간신히 피신하여 개성 근처에서 숨어 지내면서 출사(出仕)의 기회를 엿보았으나 여의치 않자, 4년 후 여름 경상도 예천(醴泉)으로 내려가 지내다가 상주(尙州)로 옮겨가 7년여의 고단한 생활을 했다. 현재 전하는 그의 글 중 대부분은 이때에 쓴 것들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대체로 실의와 고뇌에 찬 생활고를 하소연하는 글이다. 당시 정권에 참여한 지인(知人)들을 통해 여러 번 자천(自薦)을 시도하여 정권에 편입하려고도 했으나 여의치 않자 다시 개경으로 올라와 과거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얼마 뒤 경기도 적성(積城)의 감악산(紺嶽山) 장단(長湍) 가에 초당을 짓고 우거하다가 요절했다. 그때의 처지를 『파한집(破閑集)』에서는 강남으로 피지(避地)한 지 거의 10여 년 만에 서울로 돌아왔으나 송곳을 꽂을 만한 땅도 없어서[無托錐之地] 우연히 한 절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인로가 그의 문집 서문에 "청춘삼십 백의영몰"(靑春三十白衣永沒)이라 하였는데, 그가 남긴 글 가운데 "나이 40에 양귀밑털이 다 희어졌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인로와 동년배쯤이었으며, 40대 초반 무렵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김포 가련산(佳連山) 아래 남압사(南鴨寺) 동구(洞口)에 묻혔다.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조통(趙通),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李湛之) 등과 함께 술을 벗하며 문학을 논하여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비견되는 죽림고회(竹林高會; 海左七賢 또는 江左七賢이라고도 함)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성호사설(星湖僿說)29권 시문문(詩文門) 임서하(林西河) 조에서는 그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문집 6권을 남겼는데, 이인로(李仁老)는 서문을 짓기를, ‘의왕(毅王)의 말년에 온 집안이 화를 입을 때 홀몸으로 겨우 벗어나 강()의 남쪽으로 가서 피신했다가, 여러 해 뒤에 서울로 돌아와서 항상 삼분(三奔)의 치욕을 씻으려고 생각하더니, 마침내 일명(一名)도 성취하지 못하였다. 그의 시문은 해동(海東)에서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로서 세상을 주름잡은 자는 이 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였다. 뒤에 그의 유집(遺集)은 드디어 민멸되고 전하지 못했더니, 근자에 청도(淸道) 운문사(雲門寺) 중 인담(印淡)이 꿈에 한 도사(道士)를 만났는데, 그 도사가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를 파면 기보(奇寶)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므로, 꿈을 깨고 나서 그 말과 같이 하였더니, 바로 동탑(銅塔)이 나오고 그 탑 속에 구리로 만든 항아리가 있고 항아리 속에는 『서하집(西河集)』이 있었다. 그리고 탑에 글자가 새겨 있는데, 바로 중 담인(淡印)의 소장이었다 한다. 소장자는 담인이요, 발굴자는 인담이니 어찌 그리 신기한가! 나는 이 시문집을 얻어서 열람하니, 기격(氣格)이 그다지 고상하지 못하고 말의 구조도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니, 한때의 운사(韻士)에 지나지 않았을 뿐, 영원한 세대에 전하여 불후(不朽)할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오히려 불감(佛龕; 불상을 모셔 두는 방이나 집)에 비장되어 거의 반천 년 만에 다시 나왔으니, 이는 우연한 것이 아닌 듯하다. 이것이 바로 이치의 궁구하지 못할 점이기도 하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서는 그에 대한 평이 더욱 좋지 못하니, 그는 아마도 용사(用事; 옛 사람의 典故를 많이 인용하는 일) 위주의 글쓰기를 하였던 모양이다. “세상에서 임춘의 글이 옛 사람의 체를 본받았다고들 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모두 옛 사람의 말을 훔쳐서 썼다. 심지어는 연달아 수십 자를 따다가 자기의 말로 삼았다. 이것은 곧 옛 사람의 체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빼앗은 것이 된다.” 조선 후기 역사가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14권 문예(文藝) 전고(典故) 문장 조에서는, “우리나라 문장이 최치원(崔致遠)에서 처음으로 발휘되었다. …임춘(林椿)은 면밀하였으나 윤택하지는 못하였[我國文章 始發揮於崔致遠 林椿 能縝密而不潤]”다고 하였다.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권하(卷下)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기도 하다. “서하(西河) 기지(耆之)가 생활에 싫증이 나서 성산군(星山郡)에 가서 묵을 때 군수가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오던 터이라, 기생 하나를 보내어 천침(薦枕; 잠자리를 모심)케 했는데 그만 밤이 되자 도망가 버렸다. 기지가 원망스러워 시를 지어 이르기를, ‘누대에 올랐을 때는 퉁소를 부는 짝이 되지 못했고(『列仙傳』에 蕭史가 퉁소를 잘 불어 秦穆公이 딸 弄玉을 주었다고 함), 달로 도망가니 속절없이 약을 훔친 선녀가 되었도다(『淮南子』에 ?가 西王母에게서 불사약인 天桃를 얻어 두었는데, 그의 아내 姮娥가 훔쳐가지고 月宮으로 도망갔다 함). 장관(長官)의 엄한 호령도 겁내지 않고, 부질없이 나쁜 인연이라 행객(行客)에게 성내도다.’하였다. 그의 고사를 사용하는 솜씨가 더욱 정교하여 고인(古人)이 말한 금실로써 수를 놓았다[蹙金結繡; 「麗人行」에 나오는 말]’고 할 만한 것으로 조금도 (고사를 사용한) 흔적이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8권 경상도 성주목(星州牧) 누정(樓亭) 청운루(靑雲樓) 조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웅재 동원대 교수(慶北新聞 522008.10.31)

 

  임춘 : 다시 보고 싶은 여인-戱贈(희증 장난삼아)-林椿(임춘)/ 2009.05.27 14:28 | 기본폴더 | 나그네/ //kr.blog.yahoo.com/ 다시 보고 싶은 여인-戱贈(희증 장난삼아)-林椿(임춘)// 憶曾淸夜醉華茵(억증청야취화인)/ 同賞樽前一닉身 手+=닉 잡을 닉(동상준전일닉신)/ 奇語앵앵須好在 앵=++鳥 꾀꼬리앵(기어앵앵수호재)/ 會應重見老詩人(회응중견로시인)// 생각난다. 맑은 밤 화려한 자리에 술에 취해/ 함께 보던 술상 앞의 아름답게 춤추던 여인/ 소식전하노니 꾀꼬리 여인아 모름지기 잘 계시라./ 언젠가는 꼭 늙은 시인 다시 만날 것이니// 어느 날 술자리에 아름다운 몸매로 춤을 추던 그 여인을 두고두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꼭 만나보고 싶은 염원이 담겨있는 듯한 글인 것 같다. 임춘(林椿 1148-1186): 고려 인종 때의 문인. 자는 기지(耆之). 강좌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한문과 당시(唐詩)에 뛰어났다. 저서에 서하(西河)선생집, 작품에 국순전(麴醇傳), 공방전(孔方傳)이 전하고 있다.(daum 2010)

 

  임춘 : 시대별 차문화와 차인들3/ 2010.08.23 | 여주시민신문 | view 투다(鬪茶)라고 하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주로 승려들 간에 행해졌다. . 임춘(林椿, 생몰년 미상) 고려 의종(재위 1146~1170)~명종(재위 1170~1197)때의 문인으로 호는 서하(西河). 여러 번...(daum 2010)

 

  임춘 : 중국 신화의 세계(4)/ 2010.06.21 | 독서신문 (吳世才), 이인로(李仁老) 등과 함께 죽림고회(竹林高會)를 결성, 폭압적인 현실로부터 일탈하려 했던 임춘(林椿)의 「기몽(記夢)」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항아 신화, 서왕모 신화, 성수 신화 등의 내용적 특성을 솜씨있게...(daum 2010)

 

  임춘 : [칼럼] '돈 필요론' vs '돈 폐지론'/ 2010.06.08 | 소비자가만드는신문 10월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통되기 시작한 돈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 반면 폐단도 적지 않았다. 임춘(林椿)'공방전(孔方傳)'에서 지적했다. "모든 권력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 마침내 공경대부 같은 높은 벼슬아치도...(daum 2010)

 

  임춘 : 고조선 영토는 평양 아닌 발해만 인근”/ 2010.05.03 | 사이언스타임즈 시대 오세재(吳世才), 이인로(李仁老) 등과 죽림고회(竹林高會)를 결성하고, 폭압적인 현실에 저항했던 임춘(林椿)기몽(記夢)’이란 작품을 보면, 항아(姮娥) 신화, 서왕모(西王母) 신화 등의 내용들을 솜씨 있게 적용하고 있다...(daum 2010)

 

  임춘 : 고제희 지음| 다산초당 펴냄 | 2008-09-01/ 책본문 : 170 ● 손감묘결에 실어 노래하였다. 고려 때 임춘林椿은 이 산의 머리에서 끝까지 여러 주를 걸터앉아, 하늘 밖에 날 듯한 것이 봉황 같은데.” 하였다. 하지만 감악산은 용혈도처럼.../ 174페이지(daum 2010)

 

  임춘 : 단재 신채호 일대기(사르비아총서 104)/ / 임중빈 지음| 범우사 펴냄 | 2003-12-15/ 책본문 : 시성(詩聖) 단테는 그 붓끝에서 건국의 아버지마치니를 낳았건만, 고려 중기 임춘(林椿) 같은 대시인의 작품은 거의 잊혀져 왔을 뿐이다. 더욱이 고려 말 최영장군의우렁찬 시조에도.../ 147페이지(daum 2010)

 

  임춘 : 한국인의 돈/ / 김열규, 곽진석 지음| 이숲 펴냄 | 2009-07-25/ 책본문 : 성취와 융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방 이야기「공방전(孔方傳)」은 고려 후기 임춘(林椿)이 돈과 관련된 고사를 의인화하여 그 폐해를 비판한 소설로서 그 줄거리는 이러하다..../ 116페이지(daum 2010)

 

  임춘 : 완역 이옥 전집. 02/ /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 2009-03-09/ 책본문 : , 不離手라는 기록이 보인다. 24_ 국생麴生| 술을 의인화한 표현.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 이규보의 <국선생전麴先生傳>은 술을 의인화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25... 396페이지(daum 2010)

 

  임춘 : 한국사 이야기 6:무신의 칼 청자의 예술혼/ / 이이화 지음| 한길사 펴냄 | 1999-01-01/ 책본문 : ...있었으나 돈을 대표하는 동전의 위력은 자못 컸다. 12세기 무신집권기에 살았던 임춘(林椿)은 의천과는 달리 돈을 죄악시하였다. 그는 동전을 의인화하여「공방전」(孔方傳)이라는.../ 51페이지(daum 2010)

 

  임춘 : 생활 한자 공부 사전/ / 김성일, 박충순 지음| 시대의창 펴냄 | 2007-03-12/ 책본문 :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가 쓴 가전체假傳體 작품), 麴醇傳국순전(고려시대, 임춘林椿이 쓴 가전체 작품) 麴명.子곡자(누룩) .?냉면(차게 해서 먹는 국수), ?온면(더운 장국에.../ 438페이지(daum 2010)

 

  임춘 : 한국사 이야기 12:국가 재건과 청의 침입/ / 이이화 지음| 한길사 펴냄 | 2000-02-15/ 책본문 : 리얼하323 3. 문학이여, 시대를 바라보라 사랑을 노래하라「공방전」고려 때 임춘(林椿)이 쓴 가전체 소설. 임춘은「공방전」을 써서 화폐의 부도덕성과 상업을 천시하고 농업 .../ 327페이지(daum 2010)

 

  임춘 : 한국사학의 성과와 전망/ / 민현구 지음| 고려대학교출판부 펴냄 | 2006-08-25/ 책본문 : 의미를 지니는 또 다른 하나는 秦星圭 譯註《西河集》(一志社, 1984)의 출간이다. 林椿의 문집을 註釋을 곁들여 번역함으로써 앞으로 이 자료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230페이지(daum 2010)

 

  임춘 : 부자의 길 전도/ / 서신혜 지음| 시대의창 펴냄 | 2008-03-12/ 책본문 : 양취급하여 그의 일생을 그린 허구적인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문신 임춘林椿이 지은 것이 처음이다. 조선 후기 이후 나온 작품 중 홍길주의《상씨종족전常氏宗族傳》.../ 212페이지(daum 2010)

 

  임춘 : 보한집(사르비아총서 208)/ / 최자 지음| 이상보 옮김| 범우사 펴냄 | 2001-04-30/ 책본문 : 시호를 문청공(文淸公)이라 했다. 최자가 생존했던 당시 한시단(漢詩壇)에는 임춘(林椿)과 이인로(李仁老)의 계열에 속하는 일파(一派)와 이규보(李奎報)의 계열에 따르는 파의 .../ 12페이지(daum 2010)

 

  임춘 : 우리 선비들은 자연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 정병헌 지음| 사군자 펴냄 | 2004-06-11/ 책본문 : ...익재난고(益齋亂藁),《 익재집(益齋集),《 역옹패설( 翁稗說)》등이 있다. 임춘(林椿: ??) 서하(西河) 출신으로 예천 임씨의 시조이며, 자는 기지(耆之)이다. 과거에 여러 번.../ 133페이지(daum 2010)

 

  임춘 :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사 인물 이야기/ / 윤희진 지음| 책과함께 펴냄 | 2006-09-27/ 책본문 ; 552임준기(林俊基) 494임진왜란 14, 299, 308~310, 316, 318, 326, 330~332 임춘(林椿) 180 임해군(臨海君) 330 임효록 268《입당구법순례행기》94, 98ㅈ 자격루 264, 271《자산어보.../ 624페이지(daum 2010)

 

  임춘 : 어문학에 담긴 술의 멋/ / 김응모 엮음 지음| 박이정 펴냄 | 1997-09-20/ 책본문 : 42 어문학에 담긴 술의 멋 2. 가전체 소설 2.1. 국순전(麴醇傳) …… 임춘 고려 때 林椿 著 가상적인 傳記說話 의인체로서 술을 대상으로 하여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되고 더러는 술 때문에.../ 46페이지(daum 2010)

 

  임춘 : 한국 근대문학과 전통/ / 김찬기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2-09-17/ 책본문 : 제10, 민족문학사학회, 1997. 곽정식, .假傳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方法論 探索 - 林椿의 <孔方傳>을 중심으로- ., ..국어교육..92,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96. 이채연,../ 17페이지(daum 2010)

 

  임춘 : 세계의 고전을 읽는다 1/ / 강태권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 2005-12-05/ 책본문 : ...稗說).. 등과 같은 잡록식 패관(稗官) 문학과, 임춘(林椿)의「국순전(麴醇傳)」「공방전(孔方傳), 이규보의「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등과 같은 가전체(假傳體) 문학에.../ 367페이지(daum 2010)

 

  임춘 : 아버지 우리 조상은 누구예요/ / 해바라기 지음| 문공사 펴냄 | 2000-09-05/ 책본문 : 임중량(林仲樑)과 영조 때의 학자 임익빈(林益彬), 시와 학문에 뛰어났던 임춘(林椿) 등이 대표적이지. 또 임한호(林漢浩)는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해 이조판서의 자리에 올랐으며.../ 67페이지(daum 2010)

 

  임춘 : 한국 소설은 어떤 것인가/ / 김장동 지음| 새미 펴냄 | 2004-08-20/ 책본문 : 소설이란 용어가 고려조에 와서야 당대의 가전체와 같은 가전으로 나타났는데 임춘(林椿).국순전(麴醇傳)이 효시였다. 그로부터 가전, 가전체, 의인체로 지칭되어 왔다. 뒤에.../ 154페이지(daum 2010)

---

 

  *예천군, 정보지식인 도대회 최우수상 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2016 慶北 公務員 情報知識人大會 最優秀 醴泉郡永川市, 榮州市 優秀, 尙州市, 奉化郡, 漆谷郡 獎勵賞 受賞) [記事] : 경상북도는 2016 10월에 열린 ‘2016년 경상북도 공무원 정보지식인대회종합성적 집계 결과, 예천군(최우수), 영천시, 영주시(우수), 상주시, 봉화군, 칠곡군(장려) 6개 기관이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개인별 우수자는 최우수 박찬식(칠곡군, 행정5), 박현석(상주시, 행정7), 우수 조해진(예천군, 농업5), 윤희득(예천군, 농업8), 이정오(예천군, 시설8), 장려 허윤홍(성주군, 행정5), 최영진(구미시, 행정8), 신영률(포항시, 행정9), 권택화(상주시, 농업7)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대회는 시군별 자체 예선대회를 거쳐 선발된 시군공무원 80여명이 참가했으며, 대회 시험출제는 정보화 종합지식과 정책역량 등 2개 분야 3개 항목에 대해 평가했다. 최우수 기관상을 수상한 예천군은 평소 직원들의 정보화능력 강화를 위해 자체 정보화교육장을 활용해 최신 정보기술교육을 실시했고, 도 대회 입상자에게 배낭여행 인센티브를 제시 하는 등 대회에 적극 참가를 유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한편, ‘경상북도정보지식인 대회는 참가자의 개인적 역량과 정보화 시책의 우수성을 검증하고 매년 발전하고 변화하는 전자지방정부의 정보화 지식과 정책역량에 대한 종합평가 대회로, 지역정보화 발전과 전자지방정부 성장에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만복 경상북도 자치행정국장은 이번 정보지식인대회를 통해 경상북도 공무원들의 정보화 역량과 지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직원들의 정보화 역량강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과 시책을 발굴해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醴泉뉴스 2016.11.08.)

---

 

  *은풍중학교, 학생체육 도대회에서 좋은 성적 올려...축하합니다.

 

  은풍중학교(殷豐中, 53回 慶尙北道學生體育大會에서 좋은 成績 올려...) [記事] : 은풍중학교 문하은 학생은 2016 1026~283일간 문경시민운동장 및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3회 경상북도학생체육대회에서 여중 창던지기36m18을 던져 1등을 차지했다. 27일 개최된 여중 포환던지기 부문에서도 12m13을 던져 1등을 하였으며, 2학년 문다은 학생도 여중 멀리뛰기 3등과 여중 세단뛰기에서 1등을 하여 예천교육지원청과 우리학교의 명예를 드높였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6-11-08 오전 9:48:31)

---

 

  @예천방문 1,432

 

  예천군 도청신도시(新都市 有關機關團體 誘致 順調롭게 進行, 慶北開發公社 等 機關誘致로 活性化 期待) [記事] : 20162월 경북도청 이전에 따른 신도시 활성화의 초석이 될 도 산하기관 및 유관기관단체 등의 유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예천군에 따르면 예천지역인 제2행정 타운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추진 중이거나 유치가 확정된 기관단체 등이 12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경북개발공사는 골조 공사가 마무리 되어 내년 하반기에 입주한다. 신도시 첨단스마트 기술이 융합된 행정, 교통, 방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U-City통합운영센터도 내년 하반기 완료되고, 경북선관위·예천군선관위·안동보훈지청 등이 입주하게 될 정부지방합동청사가 내년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해 2019년 신도시에서 업무를 볼 계획이다. 또한, 경북지방청 315 의경대와 일·가정양립지원센터, 신문사,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경지부, 경북근로자종합복지공단 등이 부지를 확보하고 2017년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 신도시 문화컴플렉스(옛 산합지역) 내에는 경상북도 도립도서관이 현재 실시설계 경제성 검토 등을 거쳐 201812월에 완공 목표로 추진 중에 있으며, 도립박물관, 도립미술관, 도립문예관 등도 개발계획에 의거 순차적으로 들어설 계획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도 단위 기관단체와 사업소는 이전으로 인한 경제적인 파급효과가 큰 만큼 예천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 많은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유관기관단체의 이전은 예산이 수반되고 생활터전 등의 변화를 우려해서 선뜻 이전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예천군에서는 경상북도와 긴밀한 협의를 유지하고 취득세 감면 지원 등 인센티브도 제시해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유치로 신도시 활성화에 기여할 계획이다.(醴泉新聞 20161108() 13:46:55)

 

  예천군 사진공모전(寫眞"醴泉"魅力에 빠져 보자! 昆蟲寫眞 醴泉觀光寫眞 公募展 施賞式 展示會 開催) [記事] : 예천군에서는 2016예천세계곤충엑스포 기념 곤충사진 및 예천관광 사진 공모전 시상식과 전시회가 예천군청소년수련관 갤러리에서 2016118일 오후 4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곤충사진 및 예천관광사진 공모전2016예천세계곤충엑스포를 기념하고 청정한 곤충도시 예천과 예천관광지를 전국에 알리기 위해 지난 91일부터 26일까지 접수했다. 곤충과 예천을 담은 많은 작품들이 출품됐으며 그 중 활의 고장 예천을 대표할 수 있는 사진을 담아낸 예천읍 안현주 씨가 금상을, 은상 2(문경시 고기태, 감천면 정학진), 동상 4(안동시 권선자, 구미시 이종인, 인천시 김명주, 화성시 김대겸), 가작 6, 입선 48명으로 총 61명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이번 전시회는 곤충도시에 걸맞은 여러 가지 곤충사진과 아름다운 예천의 모습을 다양한 기법을 통해 표현한 60여점의 사진작품들을 만나보는 좋은 기회이며 무엇보다 출품된 사진들은 예천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홍보할 수 있는 사진으로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숨겨졌던 예천 곳곳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양한 시선으로 감상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천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를 널리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모전에 출품된 신비로운 곤충사진 및 아름다운 예천의 모습이 담긴 사진작품들은 예천청소년수련관 갤러리에서 15일까지 만나 볼 수 있다.(醴泉뉴스 2016.11.08.)

 

  용궁면(農家 일손보태기 `農村奉仕活動` 實施 : 大邱韓醫大 總學生會) [記事] : 대구한의대학교 총학생회(회장 이석현)2016112일부터 4일까지 예천군 용궁면 일원에서 농촌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이번 농촌 봉사활동은 △고추밭 비닐제거 작업 △마을주변 환경정리 △축사청소 및 땅콩수확 △독거노인 방문 봉사 △초··고생 학습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농촌의 일손 부족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석현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현재 농촌이 처한 어려움을 느끼고 공감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심한식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6.11.08.)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