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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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600) :장만석(2)-장말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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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석 : 울산시, ‘명장(名匠)의 전당’ 조성/ 2011.09.23/ ( 名匠 )의 전당'이 조성됩니다. 울산시는 9월 22일 경제부시장실에서 장만석 경제부시장 주재로 울산공업센터 50주년 기념사업 추진상황 보고회를 갖게 되는데요.../ cafe.daum.net/masterhand200... 대한민국 2000년 명장회(daum 2012)
장만석 : [녹색성장/녹색성장체험관] 자동차산업 녹색성장 기여.../ 2011.12.16/ 온실가스 및 에너지 관리 시스템 구축 사업의 완료보고회를 ( 재 ) 울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 이사장 장만석 경제부시장 ) 주관으로 열었다 . 지식경제부가 추진하고.../ cafe.daum.net/egghall2/LtCQ... 녹색성장체험관(daum 2012)
장만석 : 국토해양부 기술고시/ 2011.04.23/ [다급] → 現 건설수자원정책실장 [가급] 기시16회 : 장만석 [연세대 토목 - 54년생] - 교통정책관 [다급] → 現 울산광역시 경제부시장 기시16회 : 조종환 [연세대 토목.../ cafe.daum.net/posthoolis/K7... 훌리건 천국(daum 2012)
장만석 : 동북아오일허브 부분 민자방식 건의/ 2011.06.01/ 53억2000만원의 예산 반영을 요청했다. 앞서 장만석 시 경제부시장도 국토해양부와 지경부 차관 등을 잇따라 만나 오일허브 울산사업을 부분민자방식으로 추진해 달라고.../ cafe.daum.net/ulsanapt2/63n... 울산아파트(daum 2012)
장만석 : 오는 8월부터 시내버스 요금 조정 내용/ 2011.06.23/ 오는 8월부터 울산지역 시내버스 요금이 15% 오른다. 울산시는 22일 오후 2시 본관 4층 국제회의실에서 '물가대책위원회'(위원장 장만석 경제부시장)를 열어.../ cafe.daum.net/misozium2007/... 울산 미소지움아파트(daum 2012)
장만석 : 세종공업이면 삼식이 테스트 했던데 아닌가요?/ 2011.12.21/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온실가스 및 에너지 관리 시스템 구축 사업’의 완료 보고회를 (재)울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이사장 장만석 경제부시장) 주관으로 개최했다. 이 사업은 총 24억8100만 원(국비 10억4800만 원.../ stock.daum.net/item/bbs.daum... Daum 증권 > 종목토론방 | 3S(daum 2012)
장만석 : 산업통상자원부(구, 지식경제부) 대변인 주간 정례브리핑.../ 2014.03.10/ 3.3(월) 16:00~ /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 참석자 : 윤상직 산업부장관, 장만석 울산부시장,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 김동철 S-OIL CEO Deputy 등 15명 정도 <.../ blog.naver.com/mttimes/ 의료관광신문(daum 2016)
장만석 : ㈜덕양 1천억 투입 제3울산공장 준공 (울산신문)/ 2014.07.03/ 내걸고 산소를 포함한 산업용 가스 판매업으로 시작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장만석 울산시 부시장을 비롯 600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이날 기념식에서 이덕우 회장은.../ blog.naver.com/kbm_edu/ 울산광역시교육감 김..(daum 2016)
장만석 : 市 공장장협의회-울산대 ‘산학 선진산업안전문화 추진협.../ 2014.07.09/ 출범식 기념사진 촬영한 모습. 왼쪽부터 유한봉 울산시 고용노동지청장, 장만석 울산시 경제부시장, 박종훈 울산대 산학협력추진위원장, 문대인 울산시 공장장협의회.../ blog.naver.com/simml/ KOREA 글로벌 첨단 화..(daum 2016)
장만석 : 생기원, 온실가스 감축 적극 해결 나선다/ 2014.04.08/ 대응으로 연계한 국내 최초 융합기술센터다. 이번 개소식 및 세미나에는 울산광역시 장만석 부시장, 산업통상자원부 김호철 온실가스감축팀장, 한국생산기술연구원.../ blog.naver.com/kitechblog/ 한국생산기술연구원..(daum 2016)
장만석 : [산업부] ‘지역친화 자원순환 네트워크 시범사업’ 추진/ 2014.07.24/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업무협약식은 이관섭 산업부 산업정책실장, 울산시 장만석 부시장을 비롯해 대구, 충남, 당진시 등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안병도 한국산.../ waterjournal.blog.me/ 워터저널(www.water.. (daum 2016)
장만석 : 수소산업協, 韓 수소산업 대표한다 (신소재경제)(13.12.9)/ 2013.12.24/ 육성 및 이해 제고를 위한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울산광역시 장만석 부시장, 수소생산업체(SK에너지, S-Oil 외), 수소유통업체(덕양.../ blog.naver.com/simml/ KOREA 글로벌 첨단 ..(daum 2016)
장만석 : 울산, 여왕벌론에서 일벌론으로 선회/ 2013.05.15/ 14일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울산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 토론회’에서 장만석 경제부시장은 “대기업에 요소를 투입해 성장하는 패러다임은 이제 한계에 직면해 있다”며.../ blog.naver.com/ujeil4000/ 울산제일일보(daum 2016)
장만석 : '어느 공무원의..' 칼럼집, 장만석 울산 경제부시장/ 2014.08.06 | 매일경제 | 다음뉴스/ 장만석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칼럼집 '어느 공무원의 에피소드 그리고 엉뚱한 생각'을 펴냈다. 장 부시장은 33년에 이르는 공직생활에 대한 소회와...// 관련기사// 장만석 경제부시장, 농산물 재배시설 방문 2014.08.05 | 울산제일일보// 장만석 경제부시장, 버섯재배시설 농장 등 방문 2014.08.05 | 울산포커스(daum 2016)
장만석 : 장만석 부시장, 33년 공직생활 한 권의 책으로/ 2014.08.04 | 경상일보/ 뿐입니다." 장만석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33년 동안의 공직생활의 소회를 엮어낸 `어느 공무원의 에... 있다. 또 울산시 경제부시장으로 부임한 이후 3년...// 관련기사// 장만석 경제부시장, 33년 공직생활 소회 담은 책 펴내 2014.08.04 | 울산매일// 33년간의 진솔한 공직일화 ‘고스란히’ 2014.08.04 | 울산제일일보(daum 2016)
장만석 : 있고 일·가정 양립 가능” 33년 공직생활 마감하는 장만석 울산시 경제부시장/ 2014.08.25 | 울산매일/ 울산시 장만석 경제부시장이 공직생활 33년을 마감하고 27일 퇴임한다. 중앙부처에 이어 지난 3년 6개월간 울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일하면서 지역 중소기업...(daum 2016)
장만석 : [뉴스파일] 울산-창춘 자매결연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2014.03.24 | 국민일보 | 다음뉴스/ 25일 울산문화예술회관 회의실에서 '울산~창춘 관계의 발전적 미래 모색'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심포지엄 개최에 앞서 장만석 경제부시장과 짱찡영 창춘시 부시장이 ...// 관련기사// 울산-中 창춘시 자매결연 20주년 맞아 교류·협력 통한 공동발전 도모 MO... 2014.03.25 | 경상일보(daum 2016)
장만석 : 산업부장관 울산 방문 '외국계기업 투자 활성화돼야'/ 2014.03.03 | 뉴시스 | 다음뉴스/ 현장방문에는 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동철 에쓰오일 수석부사장, 장만석 울산시 부시장이 참석해 부지매각 진행경과와 비축유 저장시설 지하화 계...// 관련기사// 산업부장관 울산 방문, 투자사업의 추진 현황 등 점검 2014.03.03 | 파이낸셜데일리// 윤상직 산업부장관, 울산 방문 '투자사업 추진현황' 점검' 2014.03.03 | 시사뉴스// 윤상직 산자부장관, S-OIL 석유비축기지 투자사업 현황 점검 2014.03.03 | 경상일보// 관련기사 4건(daum 2016)
장만석 : 울산 행정·경제부시장, 재난안전·공단환경 점검 나서/ 2014.08.07 | 노컷뉴스 | 다음뉴스/ 울산시 행정부시장과 장만석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재난안전과 공단환경을 위해 현장 점검에 직접 나선다. 박성환 행정부시장... 개설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박 부시장은 배수로 확보와 배수.../ 10301^//v.media.daum.net/v (daum 2016)
장만석 : 지방선거 끝나자마자 광역단체장 '세종行' 러시/ 2014.06.09 | 머니투데이 | 다음뉴스/ 나눴다. 윤한홍 경남부지사, 김정삼 강원부지사, 류순현 대전부시장, 장만석 울산부시장, 이영활 부산부시장, 조명우 인천부시장을 비롯해 전북, 충북, ...(daum 2016)
장만석 : 정부, 지역친화자원순환 네트워크 시범사업 추진/ 2014.08.04 | 전력산업신문/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약식은 이관섭 산업부 산업정책실장, 장만석 울산시 부시장, 대구, 충남, 당진시 등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안병도 한국...(daum 2016)
장만석 : 울산-중국 창춘시 발전적 미래 모색 심포지엄/ 2014.03.24 | 뉴시스 | 다음뉴스/ 유아군 연구원(길림성사회과학원)이 '울산~창춘 문화관광 협력 네트워크 구축' 방안에 대해 발표한다. 심포지엄 개최에 앞서 장만석 경제부시장과 짱찡영 창춘시 부시장이 공동 발전을 위한 ...// 관련기사// 울산~창춘 관계의 발전적 미래 모색 2014.03.24 | 울산데일리// 울산시 25일 장춘시와 발전방안 심포지엄 개최 2014.03.27 | 경남도민일보// 관련기사 4건(daum 2016)
장만석 : 현대제철, 열택배로 지역사회 공헌/ 2014.07.23 | 스틸앤메탈뉴스/ 사업 관계자 간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이관섭 산업부 산업정책실장, 울산시 장만석 부시장을 비롯해 대구, 충남, 당진시 등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안병도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이.../ 10301^//www.snmnews.com/news (daum 2016)
장만석 : 산업단지 폐자원, 지역사회 에너지로 활용한다/ 2014.07.23 | 헤럴드경제 | 다음뉴스/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울산시청에서 열린 업무협약식에는 산업부 이관섭 실장, 울산시 장만석 부시장, 한국산업단지공단 안병도 부이사장을 비롯해 현대제철, 신라엔텍 등 사업 관계...// 관련기사// 산업단지 폐자원이 지역사회 에너지로 2014.07.23 | 에코타임스// 산업부, 산업단지 폐자원 지역사회 E 활용 2014.07.24 | 신소재경제신문// 산업단지 폐자원 활용 지역사회 에너지 공급 2014.07.23 | 에너지데일리// 관련기사 9건(daum 2016)
장만석 : “울산, 수소산업 육성 최적 전진기지로”/ 2013.12.09 | 울산매일/ 이해를 높이고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장만석 울산시 경제부시장을 비롯해 수소 관련업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장만석 부시장은 축사에서 "수소의 60% 이상을 생산하는...// 관련기사// 수소산업協, 韓 수소 산업 대표 한다 2013.12.09 | 신소재경제신문(daum 2016)
장만석 : “울산 수출 2,000억 달러 달성 촉매”/ 2013.09.26 | 울산매일/ 5차 워크숍·최종 성과보고회 열어 5년간 5개 기술 개발 매출 4,000억 장만석 부시장 "성공적 완료" 극찬 울산테크노파크의 자동차용 미래형 첨단 친환경 정밀화학 소재개발이 울산시 수출 2.../ 10301^//www.iusm.co.kr/news (daum 2016)
장만석 : 울산 웅촌지역 발전 방안, 민관 머리 맞댔다/ 2014.05.08 | 경상일보/ 맞댔다.울산시는 8일 장만석 경제부시장 주재로 ‘회야하수처리시설 증설 관련 관계기관 및 주민대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만석 부시장은 “협의체...(daum 2016)
장만석 : 울산융합신소재센터' 비전 선포/ 2013.10.11 | 헤럴드경제 | 다음뉴스/ 열렸다. 또한, 미래 혁신기술 구현 방안에 관한 전략도 논의됐다. 장만석 부시장은 "국가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는 울산의 우수한 산업인프라와 UNIST의 원천기술, KIST의 응용분석 기술.../ 10301^//v.media.daum.net/v (daum 2016)
장만석 : 울산시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 육성 박차/ 2013.11.19 | 파이낸셜뉴스 | 다음뉴스/ 박사가 '울산산업의 환경변화와 울산의 경제'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가졌다. 앞서 울산시는 지난 2008년부터 장만석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산학연관협의회를 신설하고 산하에 기술개발, 기...(daum 2016)
장만석 : ‘울산 기능경기대회’ 6일의 열전 돌입/ 2014.04.09 | 경상일보/ 대회는 울산공고에서 열리고 로봇 배틀도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다. 울산시 장만석 경제부시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울산 기능경기대회는 산업수도 울산.../ 10301^//www.ksilbo.co.kr/news (daum 2016)
장만석 : 울산시 머쉬랜드·블루베리 농장 애로사항 수렴/ 2014.08.05 | 뉴시스 | 다음뉴스 기자 =/ 울산시는 5일 버섯재배시설인 머쉬랜드와 블루베리 농장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만석 경제부시장은 이날 오후 울주군 삼동면 작동리 머쉬랜드를 찾아 농...(daum 2016)
장만석 : “산·학·연·관 공조 고부가지식산업 도약하자”/ 2014.03.23 | 울산매일/ 통한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장만석 부시장은 축사를 통해 "지난해 울산지역 화학산업의 수출액은 121억 달러로 울산 전체 수출의...(daum 2016)
장만석 : 울산시 ‘국가품질경영 우수 지자체’ 선정 대통령 표창/ 2013.11.28 | 울산매일/ 유공단체, 분임조가 품질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 울산시에서는 장만석 경제 부시장이 참석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이와 함께 (주)풍산 울...(daum 2016)
장만석 : 울산광역시 장만석 경재부시장/ 2014.01.09/ cafe.daum.net/GPSG/FOYW... 지역정책연구..(daum 2016)
장만석 : [경상일보] [울산, 국제도시로 한 단계 도약할 때입니다].../ 2014.01.03/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강석구 울산중소기업협회 회장)는 제안도 내놓았다. ▲ 장만석 울산시부시장 한계에 도달한 제조업의 업그레이드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cafe.daum.net/newpolicy... 정치개혁과지.. | 댓글 1(daum 2016)
장만석 : 산업통상자원부(구, 지식경제부) 대변인 주간 정례브리핑.../ 2014.03.10/ 3.3(월) 16:00~ /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 참석자 : 윤상직 산업부장관, 장만석 울산부시장,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 김동철 S-OIL CEO Deputy 등 15명 정도 < 기술표준.../ cafe.daum.net/meditimes... 의료관광협동..(daum 2016)
장만석 : 예천의 자랑 2463 : 정광하 敎授(祝 이진규. 장만석. 정원호)/ 작성 장병창/ 울산시는 신임 경제부시장에 장만석(57) 국토해양부 건설수자원정책실장을 선임했다고 2011년 2월 8일 밝혔다. 장 경제부시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석사(토목공학) 학위를 받.../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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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말손(張末孫) : 1431(세종 13)-1486(성종 17), 호명면 원곡리 안찔 인동 장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입향조(入鄕祖), 자는 경윤(景胤), 호는 송설헌(松雪軒), 시호(諡號)는 안양(安襄), 옥산군 안양(玉山君安良)의 3자, 1453년(단종 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459년(세조 5)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 6위로 급제, 1463년(세조 9)에 승문원 박사(承文院博士)를 거쳐 한성부 참군(漢城府參軍),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1465년(세조 11)에 함길도 병마도사(咸吉道兵馬都事), 예조 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禮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官), 세자시강원 우부빈객(世子侍講院右副賓客) 등을 지내고, 1467년(세조 13)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강순(康純)을 따라서 토벌에 공을 세워 정충출기 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2등이 되고,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에 승진했다. 1469년(예종 1) 공신록(功臣錄) 1본(本)을 하사(下賜)받았고, 1470년(선동 1)에 장악원 부정(掌樂院副正)을 거쳐 1471년(성종 2)에 장악원 정(正), 오위 부사직(五衛副司直), 1473년(성종 4)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1476년(성종 7)에 사직(司直)에 오르고, 1479년 해주 목사(海州牧使)를 지내고, 1482년(성종 13) 연복군(延福君)에 봉(封)해졌다. 만년(晩年)에는 예천군 화장(花庄, 現 聞慶市)에 송설헌 학사(松雪軒學舍)를 세우고 여생을 보냈는데 17세기에 그의 주손(冑孫)이 영주시 장수면화기리(榮州市長壽面花岐里) 18번지에 이주하면서 이건(移建)하였고, '화계정사(花溪精舍)'라고 개칭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7.57mx4.45m) 팔작(八作) 지붕이다. 묘는 호명면 원곡리 호명산 병좌(虎鳴山丙坐)에 있다. 화기리(花岐里) 꽃개에 있는 <장말손영정(張末孫影幀, 1489年 下賜, 寶物 502號), <장말손홍패(張末孫紅牌, 1459)>, <장말손백패(張末孫百牌, 1453, 寶物 501號>가 있다.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가 족보를 편찬한 것은 계해보(癸亥譜, 1683), 신묘보(辛卯譜, 1771), 계해보(癸亥譜, 1803), 갑술보(甲戌譜, 1874), 경신보(庚申譜, 1930), 을미보(乙未譜, 1955), 병진보(丙辰譜, 1977)이다. 병진보에 의하면 동정공파(同正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 안양공파(安襄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 등 4파로 나뉘어 있는데, 말손은 안양공파에 속한다.(成宗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海東雜錄 4卷,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70 1786, 醴泉郡誌 1939, 嶠南誌 1937, 文化遺蹟總攬)
장말손(張末孫) : 1431~1486, 본관은 인동(仁同)이요, 字는 경윤(景胤)이며, 옥산군(玉山君) 안량(安良)의 아들이다. 1453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1459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고,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平定)하는데 큰 공을 세워 정충포의 적개공신(精忠布 義 敵愾功臣)의 훈호(勳號)를 받고 가선대부 예조참판(嘉善大夫 禮曹參判)으로 연 복군(延福君)으로 봉군(封君)되었고 시호(諡號)는 안양공(安襄公)이며 호명리 원곡에서 살았다.(虎鳴面홈페이지 2013)
장말손 : 보물 제502호-장말손 초상(張末孫 肖像) -조선/ 작년, 2009년 6월 4일/ 종목 보물 제502호/ 명칭 장말손 초상(張末孫 肖像)/ 수량/면적 1폭/ 지정일 1969.02.19/ 시대 조선시대 /장말손은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문신(文臣)으로서 자는 경윤(景胤),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그는 세조(世祖) 13년(1467) 예.../ cafe.daum.net/tang-hwa/ 조계사 불화반(daum 2010)
장말손 : 문무(文武)를 겸비한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작년, 2009년 8월 10일/ 문무(文武)를 겸비한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충의(忠義)와 도(道)를 실천하다.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1431~1486)의 자는 경윤(景胤)이고 아버지는 현감(縣監) 안량(安良)이며 어머니는 단양지씨(丹陽池氏)로.../ cafe.daum.net/mundann/ 구선재(daum 2010)
장말손 : 종목 보물 제502호/ 명칭 장말손 초상(張末孫 肖像)/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면적 1폭/ 지정일 1969.02.19/ 소재지 경북 영주시/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장덕필/ 관리자 장덕필/ 일반설명 | 전문설명 : 조선시대 문신인 장말손을 그린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107㎝, 세로 171㎝이다. 장말손(1431∼1486)은 세조∼성종 때의 문신으로, 이시애의 난(1467)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이 되었는데 이 그림은 그 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3폭으로 연결되었는데, 얼굴부위가 들어있는 가운데 폭과 양어깨를 표현한 2개의 폭이 이어져 있다.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얼굴을 살색으로 칠한 후 갈색으로 윤곽을 잡았으나 선의 짙음과 흐림이 없는 옛 기법을 사용하였다. 입술은 붉은 기가 돌고 눈매의 표정이 살아있으며,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느낌을 준다. 목 위로 바짝 올라간 관복, 팔뚝 아래에 있는 의자의 손잡이, 가지런한 두 발, 각진 옷의 윤곽선, 금실로 공작을 수놓은 흉배에서는 조선 전기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머리에 쓴 사모의 꼬리가 잠자리 날개 모양에 수평으로 퍼져 있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 몸의 풍채가 과장되지 않고 옷자락이 벌려져 있는 점은 조선 중기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 초상화는 흉배의 공작모양에서 장말손이 연복군으로 봉해진 성종 13년(1482)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조선 전기의 초상화가 몇 점 전하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초상화 연구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신도라 할 수 있다./ cafe.daum.net/ashaabc/ 함안초등학교 제56회 동기생들의방(daum 2010)
장말손 : 보물881호 (장말손 유품 )| …─ 보물/ 미탁 | 2010.08.26. 09:48/ //cafe.daum.net/inje66/NWfK/ 적개공신 회맹록/ 패도/ 장말손 유품 보물881호/ 소재지; 경북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18/ 이 유품은 연복군(延福君)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패도(佩刀)와 적개공신회맹록(敵愾功臣會盟錄)이다. 패도(佩刀)는 조선 세조(世祖) 12년(1466)에 함경도(咸鏡道) 회령(會寧)에서 야인(野人)을 물리친 공(功)을 세워 왕(王)으로부터 옥적(玉笛) 1정(丁), 은배(銀盃) 1쌍(雙)을 함께 하사(下賜)받았다. 칼자루는 용(龍)의 머리를 조각하고 모발문(毛髮文)과 비늘 등을 묘사하여 금(金)으로 도금(鍍金)하였다. 칼집은 죽피(竹皮)이며 상아(象牙)로 장식하여 은사(銀絲)로써 5등분으로 엮었다. 칼의 총길이는 13.8cm, 너비는 1.4cm이다. 적개공신회맹록(敵愾功臣會盟錄)은 세조 13년(1467)에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이 되어 예종(睿宗) 원년(1469) 3월에 내린 회맹록(會盟錄)이다. 이 회맹록은 비단 4폭(幅)을 이어 5단으로 하였고, 위로 첫단은 왕의 교서(敎書), 아래 4단에는 1등 10명, 2등 23명, 3등 12명 공신들의 군호(君號), 관작(官爵), 성명(姓名) 이 적혀 있다. 특히 3등 이하의 공로자(功勞者) 명단(名單)과 훈호(勳號)를 볼 수 있어 이시애 난에 참전한 인물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적개공신 회맹록 보물881-1호/ 소재지; 경북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18/ 적개공신(敵愾功臣)이란 세조 13년(1467)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종 원년(1449)에 작성된 것으로 비단 4폭을 이어서 5단으로 하였다. 위의 첫단은 왕의 교서이고, 아래 4단에는 1등 10명, 2등 23명, 3등 12명 공신들의 군호, 관작, 성명이 적혀 있다. 여기서 장말손(張末孫)은 2등 공신에 봉해졌다. 또한 3등 이하의 공로자의 명단도 적혀있는데, 이는『조선왕조실록』에는 나와 있지 않다. 이 점은 이 문서가 이시애의 난에 참가한 인물들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패도 보물881-2호/ 소재지; 경북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18/ 패도(佩刀)는 세조 12년(1466)에 함경도 회령에서 오랑캐를 물리친 공으로 왕으로부터 옥적(옥피리) 1정(丁)과 은배(은잔) 1쌍과 함께 하사받은 것이다. 칼자루에는 용머리를 새기고 용의 머리카락과 비늘 등을 표현하여 금을 입혔으며, 칼자루는 대나무 껍질이고, 코끼리의 상아로 장식하여 은실로 5등분해서 엮었다. 총길이는 13.8㎝, 너비는 1.4㎝이다. 오랜 기간동안 지하에 묻혀 있어서 패도(佩刀)의 일부가 부식되어 당초의 모습을 약간 잊은 것이 아쉽다.(daum 2010)
장말손 : 연복군(延福君) 장말손(張末孫)/ 연복군(延福君) 장말손(張末孫), 1431~1486 본관 인동장씨(本貫 仁同張氏)는 우리 숙천공파(肅川公派)의 파조(派祖)이신 9세조 휘 임정(諱 林楨)할아버님의 장자이신 10세조 상호군공(上護軍公) 휘 인량(諱 寅亮) 할아버님의 장인(丈人)되신다. 우리 숙천공후 영남파를 이룩하게 된 것은 단지 연복군께서 1482년(성종13년) 52세의 나이로 예조참의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의 벼슬을 사임하시고 영남땅 예천(醴泉) 화장(花庄)으로 낙향(落鄕) 하실 때 장인을 따라 같이 낙향함으로서 시작 되었다 할 것이다 . 그 후 500여 년간(금년으로527년) 화장과 예천 일원에 散在하여 후손(後孫)이 세거(世居) 중이며 현재는 3천여 호에(이북황해도 신계제외) 종원이 8천여 명을 헤아리고 있다. 영남의 숙천공파 후손은 모두가 연복군의 외손(外孫)이 된다. 연복군은 1431년(세종13년) 태어나시고 명(名)은 말손(末孫), 자(字)는 경윤(景胤), 이고 호(號)는 송설헌(松雪軒), 시호(諡號)는 안양(安襄)이시다. 1453년(단종1년)에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셨는데, 이때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과 동방(同榜)하였다고 한다. 1459년(세조5년)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셨는데 이때에도 점필재(?畢齋) 선생과 함께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점필재(?畢齋),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貴澾)과 서신을 왕래하며 교분이 두터웠다고 하였다. 그 후 연백군은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함길도 병마도사(兵馬都使)로 부임하였고 함길도 절제사 강순(康純)의 막하에서 활약 하셨으며 북평사(北評事)에 임명되어 경성절도사 허종(許倧)의 막하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인심(人心)을 얻었다. 1467년(세조13년)에 예조좌랑 겸(禮曹佐郞兼) 예문관응교(禮文館應敎)에 오르셨는데 그 해 5월 함경도 길주(吉州)에서 이시애(李施愛)가 난(亂)(세조13년)을 일으키자 연복군은 강순(康純)의 막하에서 반란(反亂)을 평정하는데 공훈(功勳)을 세웠고 그 공으로 적개공신이등(敵愾功臣二等)에 책봉(冊封)되었다. 그 후 1476년(성종7년) 왕의 명(命)으로 충훈부(忠勳府)에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서의 영정(影幀)이 그려졌다고 한다. 1482년(성종13년) 52세의 나이로 예조참의(禮曹參議) 겸(兼)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莩摠官)의 벼슬을 사임(辭任)하고 예천(醴泉) 화장(花庄)으로 물러나와 송설헌(松雪軒)을 지으시고 한운야학(閑雲野鶴)을 벗 삼아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든 그 해에 연복군에 봉해지고 영정각(影幀閣) 기공비(紀功碑)가 세워졌으며 적개공신록권(敵愾功臣錄券)을 하사(下賜)받았다. 1483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 연복군이란 군호를 받으셨으며 1486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자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춘추관, 성균관사, 세자 시강원찬선에 증직되었고 안양(安養), 성행화순왈안인사유공왈양(性行和順曰安因事有功曰襄)이란 시호(諡號)를 받으셨다. 그 후 1489년 충훈부에서 그려 놓았던 영정을 내리시고 불천지위를 명하셨고, 1847년 원 영정과 같게 이모 한 부본을 그려 받아 현재 함께 봉안하고 있다. 화기(花岐)리에 있는 종택(宗宅)은 연복군의 손자이신 생원공 장응신이 30세에 요절(夭折)하면서 장자(長子) 인통훈대부 부사직 장윤희에게 ‘벼슬도 하지 말고 부자도 되지 말고 남의 앞에 나서지도 말며 조상과 후손을 보존할 수 있는 터를 찾아 은둔하며 살라’고 유언을 남겨 연복군의 현손(玄孫)이신 총좌위대호군 장언상이 선조 때에 이곳 화계(花溪)(영주시, 장수면, 화기리[꽃계])로 이주하여 400년 이상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1971년에 국비로 영정각을 세웠고 1988년에 국비로 유물각을 준공하였으며 2005년에 유물각을 재차 개축하였으며, 유물각에는 연복군의 6대손인 장계의 고려홍패, 연복군의 홍패, 백패, 3점이 보물501호, 연복군 영정이 보물502호, 상훈교서가 보물 604호, 공신회맹록과 패도 2점은 보물881호, 인동장씨 고문서 11점과 녹패 1점과 장언상 교지 6점이 보물1005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종택 내에는 사당과 영정각, 유물각, 송설헌이 있으며 유물각내에는 많은 고문서(古文書)와 교지(敎旨)등이 소장(所藏)되어 있다.
사당은 학사 김응조의 추원제기의 기록에 의하면 선조 계사년에 7대손 장주남이 건립하여 현재까지 523년간 보존되어 왔으며 불천위 제사를 받들고 있다고 한다. 음력 3월과 9월의 초정일에 추원사에서 향사를 올렸는데 시절이 바쁜 관계로 요즈음은 첫째 주 일요일에 올린다고 한다. 이때는 생식을 위주로 하며 전국의 후손 60~70여명이 참여하며(명절에는 100여명 정도) 10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예천 범우리에서 묘사를 지내며 기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한 종택에 이렇게 많은 유물(遺物)을 소장하고 있는 연복군(延福君)의 종택인 이곳이야말로 우리 지역의 또 다른 자랑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아끼고 널리 알려야 할 일임이 분명할 것이다.(숙천공후, 박원우(동일), 조사정리)(daum 2010)
장말손 :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張末孫(4)/ 2006-01-29 01:19:4/1 조회 (447) | 世祖實錄 十三年(1467)>十三年 五月/ ○壬辰/都摠使浚軍官金伯謙, 執吉州知印李英發、內需司奴玉山等來。 英發等齎李施愛啓書, 其書曰:/ 軍官玄得利供招云: “康孝文與本道將士謀逆, 遺書于都體察使韓明澮及申叔舟、金國光、韓繼禧、盧思愼相約云: ‘孝文稱有邊警, 領兵向平安道, 明澮啓孝文謀反, 盡率京中兵, 會于中路, 稱兵向京。’ 我於去三月, 持此書如京, 密付諸處。 且道前件事意, 皆云: ‘汝所言合兵之計甚當。’ 唯明澮則答書云: ‘詳在玄判官, 不煩我。 將此書密付孝文, 幷報所答。’ 言孝文曰: ‘大事可成也。 將以到泊厚羅土島, 舟師從大軍之後, 躪殺道內婦女孩兒無遺矣。’ 其始謀, 吾不細知, 吾於年前十一月十一日上京時, 孝文與我潛說此謀。 評事張末孫亦與謀, 吳凝及都事曺克治, 與孝文數相會議, 交結明白。” 臣據此, 竊意明澮等與孝文等, 中外相應, 回泊下三道兵船。 請兵于兀狄哈, 待發兵向京之後, 乘其空虛, 盡殺道內遺存婦女小童, 遂傾社稷。 幸而孝文及黨與, 未遂其謀, 自底滅亡, 兵船時亦不知去向。 臣於應變諸事, 盡心措置。 聞平安道及江原道, 與本道連境之地, 屯兵作陣, 聲息頗喧, 但未知某軍耳。 必是賊黨, 聞孝文之死, 自知其罪, 發憤興兵。 且下三道水陸諸將, 業已抄送舟師, 難掩其過, 恐亦發兵向京。 緣此沛鄕軍民, 日夜憂懼, 道途阻遠, 恐不及?衛。 故臣會議軍民, 領一千餘兵, 出咸興府待命。/ 上御思政殿, 召英發等, 問施愛反狀。 英發不以實對, 但曰: “本道人民皆云: ‘微施愛, 吾其魚肉矣。’” 上怒命杖之。 猶不直言, 姦詐百端, 搜其衣裝, 則有施愛稱節度使發馬文, 蓋爲施愛反間?朝廷者也。 上欲立斬之, 以其或有更鞫事, 姑囚義禁府獄。 玉山乃上之潛邸時奴也。 命永順君^溥、都承旨尹弼商、巴山君^趙得琳問之, 玉山對曰: “奴非親受此書於施愛而來, 奴前日來京, 還往吉州本家, 路遇萬自, 萬自授此書云: ‘汝潛邸時隨從人, 可易達此書, 終受賞賚。’ 故持來。” 其言直實, 命饋酒食, 付內需司。 伯謙啓曰: “龜城君屯兵不發, 以待大軍。” 上嘉之曰: “龜城先遣兵, 據鐵嶺以守, 一可也; 觀勢持重不急進, 二可也; 招諭本宮奴, 使知施愛反逆, 三可也。” 伯謙又啓曰: “魚有沼所領軍士, 因?雨, 軍裝器械, 殆不可用。” 上曰: “雖百萬之衆, 器械不利, 將焉用之?”/ 도총사(都摠使) 이준(李浚)의 군관(軍官) 김백겸(金伯謙)이 길주(吉州)의 지인(知印) 이영발(李英發)과 내수사(內需司)의 종 옥산(玉山) 등을 잡아 왔다. 이영발 등이 이시애(李施愛)의 계서(啓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군관(軍官) 현득리(玄得利)의 공초(供招)에 이르기를, ‘강효문(康孝文)이 본도의 장사(將士)와 반역을 꾀하고, 글을 도체찰사(都體察使) 한명회(韓明澮)와 신숙주(申叔舟)·김국광(金國光)·한계희(韓繼禧)·노사신(盧思愼)에게 주어 서로 약속하기를, 「강효문이 변경(邊警)이 있다고 칭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평안도(平安道)로 향하면, 한명회(韓明澮)는 강효문이 반역을 꾀하였다고 아뢰어 경중(京中)의 군사를 모두 거느리고 중로(中路)에서 모여, 군사를 들어 서울로 향하자.」고 하여, 내가 지난 3월달에 이 글을 가지고 서울에 가서 몰래 여러 곳에 부치고, 또 전건(前件)의 사의(事意)를 말하였더니, 모두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합병(合兵)의 계교는 매우 마땅하다.」고 하였는데, 오직 한명회는 답서하기를, 「상세한 것은 현 판관(玄判官)에게 있으니, 나를 번거롭게 하지 말고, 이 글을 가지고 가서 몰래 강효문에게 부치고, 아울러 대답한 바를 보고하라.」 하고는, 강효문에게 말하기를, 「대사(大事)가 성취될 만하니, 장차 후라토도(厚羅土島)에 정박한 주사(舟師)를 가지고 대군(大軍)의 뒤를 따라 도내의 부녀자와 아이들을 짓밟아 죽여서 남김이 없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처음의 모의는 내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나, 내가 연전(年前) 11월 11일에 상경(上京)할 때에 강효문이 나와 더불어 은밀히 이 모의를 말하였고, 평사(評事) 장말손(張末孫)도 또한 이 모의에 참여하였으며, 오응(吳凝)과 도사(都事) 조극치(曹克治)도 강효문과 더불어 자주 만나 서로 회의(會議)하였으니, 교결(交結)한 것이 명백합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것을 근거하여 가만히 생각하니, 한명회 등이 강효문 등과 더불어 안팎으로 상응(相應)하여, 하삼도(下三道)의 수륙 제장(水陸諸將)의 병선(兵船)을 회박(回泊)시키고, 올적합(兀狄哈)에게 군사를 청하여, 〈강효문〉 군사를 발하여 서울로 향한 뒤를 기다렸다가 그 공허(空虛)한 틈을 타서 도내에 남아 있는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마침내 사직(社稷)을 무너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다행히 강효문과 그 도당이 모사를 이루지 못하고 밑바닥까지 멸망하였으며, 병선(兵船)도 이제 또한 간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신이 응변(應變)에 대한 제사(諸事)를 마음을 다해 조치하였습니다마는, 평안도와 강원도는 본도와 경계를 연한 땅인데, 둔병(屯兵)이 진(陣)을 만들어, 성식(聲息)이 자못 시끄럽다고 하는데, 다만 어떤 군사인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는 필시 반적의 무리들이 강효문의 죽음을 듣고, 스스로 그 죄를 알고 발분(發憤)하여 군사를 일으킨 것이고, 또 하삼도(下三道)의 수륙 제장(陸諸將)이 이미 주사(舟師)를 뽑아 보내어 그 허물을 가리기 어려워서, 군사를 발하여 서울로 향하는 것인가 두렵습니다. 이로 인하여 패향(沛鄕)의 군민(軍民)들이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길이 막히고 멀어서 방위[?衛]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신이 군민을 모아 의논하고, 1천여 군사를 거느리고 함흥부(咸興府)에 나와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이영발 등을 불러 이시애의 반역한 정상을 불으니, 이영발이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고, 다만 말하기를, “본도의 인민(人民)이 모두 이르기를, ‘이시애를 숨기고 우리는 그 어육(魚肉)이 되겠다.’고 합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이 노하여 곤장을 치도록 명하였는데, 오히려 직언(直言)을 하지 않고 간사(姦詐)하기가 백단(百端)이므로 그 의장(衣裝)을 수색하였더니, 이시애가 절도사(節度使)라 칭하고 발급한 마문(馬文)이 있었다. 이는 대개 이시애의 반간(反間)이 되어 조정(朝廷)을 염탐하는 자이었다. 임금이 곧 참(斬)하려고 하였으나, 혹 다시 국문할 일이 있을까 하여 우선 의금부(義禁府)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내수사 종〉 옥산(玉山)은 바로 임금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의 종이었다.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와 도승지(都承旨) 윤필상(尹弼商)·파산군(巴山君) 조득림(趙得琳)에게 명하여 신문하게 하니, 옥산이 대답하기를, “이놈이 친히 이 글을 이시애한테서 받아 온 것이 아니고, 이놈이 전일에 서울에 왔다 길주(吉州)의 본집으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만자(萬自)를 만났는데, 만자가 이 글을 주며 이르기를, ‘너는 〈성상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 따랐던 사람이니, 이 글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며, 마침내는 상사(賞賜)를 받을 것이라.’고 한 까닭에, 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니, 그 말이 진실이므로 명하여 주식(酒食)을 먹이고, 내수사(內需司)에 붙이었다. 김백겸(金伯謙)이 아뢰기를, “귀성군(龜城君)이 군사를 주둔시켜 놓고 발정하지 아니하고 대군(大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가상히 여기고 말하기를, “귀성(龜城)이 먼저 군사를 보내서 철령(鐵嶺)을 점거하여 지키니, 첫 번째로 옳은 것이고, 형세를 관망하여 신중히 하고 급히 진격하지 않으니, 둘째로 옳은 것이고, 본궁(本宮)의 노복을 초유(招諭)하여 이시애의 반역(反逆)을 알게 하였으니, 셋째로 옳은 것이다.” 하였다. 김백겸이 또 아뢰기를, “어유소(魚有沼)가 거느린 군사(軍士)는 흙비[?雨]로 인하여 군장(軍裝)과 기계(器械)가 거의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백만의 무리라 하더라도 기계(器械)가 날카롭지 못하면 장차 어찌 쓰겠느냐?”하였다.(daum 2010)
장말손(張末孫)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세조(世祖) 5년, 과거시험연도 : 1459 기묘,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3(丙科3)/ [인적 사항] 성명(姓名) : 장말손(張末孫), 자 : 경윤(景胤), 본관(本貫) : 인동(仁同)/ [이력 및 기타 사항] 시호 : 안양,적개공신/연복군(安襄,敵愾功臣/延福君), 소과 : 1453(계유) 생원시, 전력(前歷) : 생원(生員)/ [가족사항] 자(子) : 장맹우(張孟羽), 부(父) : 일명:안량(一名:安良), 조부(祖父) : 장경원(張敬源), 증조부(曾祖父) : 장순효(張純孝), 외조부(外祖父) : 고승안(高承顔), 처부(妻父) : 권영신(權永愼)(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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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