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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615:장병창(11)-장병철-장병호-장복영-장복추-장봉기-장봉환(1)
작성자장병창 @ 2016.12.12 06:17:20

  예천의 자랑(4615) : 장병창(11)-장병철-장병호-장복영-장복추-장봉기-장봉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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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창 : *제천 가족 여행 : 20161 1일에는 식구 6(춘우(숙명여대 졸), 익상(박사, 특허청 사무관), 혜원(세명대 졸), 서영(대전 어은중1), 정안(대전 어은초4)이 제천을 다녀왔다.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부터 갔다. 청풍은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 쟁탈지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으나 1978년부터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이곳이 수몰되자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들을 한 곳에 모아 문화대단지를 조성했다. 단지 내에는 53점의 문화재와 유물전시관, 수몰역사관 등의 전시 시설이 있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국가명승 제20호로서 삼한시대에 축조된 대한민국 最古의 수리시설인 義林池를 갔다. 이 의림지는 신라 진흥왕(6세기) 때 우륵이 쌓았다는 설과 그 후 700년 뒤 현감 박의림이 쌓았다는 설도 있다. 의림지 내에는 200-300년 된 소나무 200그루와 버드나무 등이 의림지소나무숲을 이루고 있고, 영호정, 경호루 등의 정자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주변에 놀이시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이 의림지 소나무 밑에서 부모님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지금도 갖고 있다.단양을 거쳐 예천 상리면으로 와서 상리초등학교 정문 앞내를 건너서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 식당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조 면장 가족 5명도 있어서 우리가 들어가니까 반가워했다. 조 면장 사모님은 임진왜란 때 가족(조카인 서애 유성룡의 3자인 柳袗, 1629(인조 7)에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부임, 1630(인조 8)에 이임, 무덤이 호명면 원곡리 등암산)들을 상리면에 있는 겸암굴에 피난시킨 풍기군수 겸암 유운룡의 후손이시다. 이곳은, 고려 말기 易東 禹倬經書, 易學 등의 도를 닦던 곳이라 하여 道村里라 하였고, 도를 깨달은 곳을 오디재(悟道)라고 한다. 그리고 상리우체국 뒷산에 우탁의 묘가 있는데, 후손들이 도굴 위험 때문에 다른 곳 2곳에도 묘를 썼다고 하나, 얼마 전 후손들이 무덤을 파헤쳐 놓았다고 한다. 또 이곳 상리면은 금년 2월에는 효자면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이는 상리면에 있는 효자 도시복생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도시복(都始復) : 1817(순조 17)-1891(고종 28), 상리면 용두리 313번지 야항 출신, 자는 사홍(士弘), 호는 야계(也溪), 본관은 성주, 이억(以億)14세손, 상진(尙震)과 강릉 유씨(劉氏)와의 장자이다. 야목(也項)이라는 조그마한 동리는 워낙 깊은 골짜기였으므로, 이곳 주민들은 산비탈에 감자와 옥수수, 콩 등을 심어 그것을 유일한 양식으로 하고, 숯을 구워다 팔아 생계를 유지해 오는 곳이었다. 이 마을에 가난한 살림을 하며,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도씨 부부가 있다. 비록 집안은 가난했지만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는 일에 남달리 효성이 지극했다. 이날도 도씨는 아버님의 찬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구어다 놓은 참나무 숯을 짊어지고 50여 리나 되는 예천 읍내장(邑內場)으로 갔다. "곧 팔려야, 오늘 저녁 반찬을 마련해 갈 텐데..." 그 날은 웬 일인지 쉽게 팔리지가 않아 늦게 서야 겨우 다 팔게 되었다. 갈 길이 먼 도씨는 곧 쇠고기를 사서 지게에 얹고 집으로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벌써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곧 가면 이것으로 저녁 반찬을 해 드릴 수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바쁘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는데 난데없는 독수리가 지게 위의 고기를 툭 차고 산 너머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멀리 독수리가 사라진 곳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이가 없었다. '그냥 가자니 반찬 없는 진지를 올리기 죄스럽고, 시장에 가서 다시 사오려니 돈도 없고...' '정말 어찌하란 말이냐?' 이리저리 생각하다 못해 그 쇠고기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쇠고기 장사꾼에게 사정 이야기를 다하고, 이 다음 장날 틀림없이 돈을 갚을 테니, 외상으로 달라고 했다. 안면이 없는 그에게 외상이 통할 리 없건만, 그의 진실된 표정과 효심에 감동했었던지 두 말 않고 쇠고기를 내어 주었다. 벌써 사방이 어둑어둑하였다. 머나먼 50여 리 길을 걸어 집에 들어갔다. "아이고! 이제 오슈? 오늘 저녁엔 독수리가 차고 갔다 떨어뜨리고 간 고기로 아버님 저녁 반찬을 해 드렸답니다." 라고 아내가 말했다. 그러자 도씨는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그렇게도 저주스럽고 밉던 독수리를 새삼스럽게 고맙게 여겨져 부인과 함께 기뻐했다고 한다. 이처럼 미물까지도 돕던 효자 도씨에게 걱정스러운 일이 생겼다. 어느 늦은 봄 날, 그렇게 지성으로 모시던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시름시름 앓던 병은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낫지를 않고 점점 심해만 갔다. 온 정성을 다해 밤낮으로 아버지의 병환을 간호하고 조약을 다려다 드렸으나, 아무 효험 없이 미음 한 숟갈 넘어가질 아니 했다. "얘야, 홍시를 먹고 싶구나. 그 달고 시원한 홍시 말이다." 도씨의 마음은 심히 걱정스러웠다. 이렇게 늦은 봄까지 홍시를 남겨둔 집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구해나 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그 날부터 인근 동리를 두루 헤매었고 점차로 먼 마을까지 헤매었지만 홍시 한 개 구하질 못했다. 날이 저물어 어느 산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그의 앞에는 큰 호랑이가 나와 버티고 서 있었다. 깜짝 놀란 도씨가 주춤하고 서자, 그 호랑이는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어 도씨에게로 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해칠 것 같지 않아 호랑이가 하는 데로 보고 있노라니까 호랑이는 가까이 와서 등을 갖다 대었다. 그래도 도씨는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호랑이는 몸짓으로 도씨에게 내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만에야 호랑이의 뜻을 알게 된 도씨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앉았다. 귀에서 바람 스치는 소리가 윙윙하고 났다. 어디를 가는지? 또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호랑이는 수 백리 길을 내달아 어느 집 앞에 도씨를 내려놓았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그 집엔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을 찾는 도씨는 자기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와 야밤중에 방문한 이유를 말했다. "! 그렇습니까? 오늘이 가친(家親)의 기일(忌日)입니다. 가친께서 생전에 홍시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해마다 기일까지 홍시를 두었다가 쓰는데 한 두 개 밖에 성한 것이 남지 않더니, 올해는 유독 더 많이 남았습니다. 아마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과 같은 효자에게 드리라는 계시였나 봅니다. ! 이걸 가져 가셔서 어른께 드리십시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도씨는 뛸 듯이 기뻐,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홍시를 얻어 가지고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호랑이가 가까이 와 타기를 권한다. 그 홍시를 먹은 아버지는 도씨 부부의 효심과 지극한 간호의 덕분으로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명에는 한이 있어 노환으로 1864년에 돌아가시니 도씨 부부의 슬퍼함은 헤아릴 수 없었다. 상례(喪禮)를 치르고 나서부터 삼년 동안 산소에 가서 시묘살이를 하니 호랑이가 나와 벗을 하면서 가정에 알릴 심부름까지 했다고 한다. 그 후 1876년 가을 서리가 너무 일찍 내려 모두가 농사를 망쳤는데, 도시복의 논과 밭에는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효행이 지극한 도씨가 죽은 뒤 선비들이 유림장(儒林葬)으로 상리면 명봉리 지경터에 장례를 치르고, 용궁면 덕계리 덕봉의 경효사(景孝祠)에 제향되었다. 도씨가 태어난 곳을 기념하기 위해 바위에 글을 새겼다고 한다. 오랜 세월로 말미암아 지금은 이야기만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도시복 효자는 출천지 효자(出天之孝子)로서 <명심보감(明心寶鑑> 효행편(孝行篇)에 기록되어 후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의 공덕을 기려 1978년 향토 유림에서 지역 유지들과 힘을 합해 예천읍 공설운동장 건너 보문통로에, '효자야계공정려비(孝子也溪公旌閭碑)'를 세웠다가 그 후 상리면 용두리로 옮겼다.(明心寶鑑, 醴泉郡誌 1939, 醴泉大觀 1982, 也溪集, 碑文, 내고장전통가꾸기 1981, 醴泉郡報 1992.6.30, 醴泉新聞 1992.10.8, 우리 故庄의 자랑 孝子 都始復 醴泉文化院, 醴泉新聞)(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16.1.4)

 

  장병창(醴泉 百科事典인 鄕土史學者, 張炳昌|스승/ 한결/2016.04.10. 07:30/ 대창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출발하여 교감을 거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장병창 선생님은 예천 향토사를 조사 연구 정리하여 지금까지 276권의 방대한 자료를 출판 상제하였으며 이 놀라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년을 퇴임한지 12년이 되었지만 아직 지난날의 정정한 모습/ 그 때의 제자들이 드린 감사패/ 그의 열정과 사랑과 삶을 웅변으로 말해줍니다./ 항상 켜져 있는 서재의 컴퓨터 이것이 있었기에 그의 작업은 가능했을 것입니다. 컴퓨터 워드의 달인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대한 저술을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관계 기관과 국립도서관에도 기증 정리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 장병창 선생 자료는 기회 있는 대로 더 첨부하겠습니다. 제자 분들은 장 선생님의 일화를 답글이나 댓글로 올려주길 바랍니다. (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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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철 : 석유대리점 코슨문 닫는다/ 출자 석유대리점인 코슨()(대표 장병철, Korea Oil Sales Network)이 문을 닫게 될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12일 고정자산 취득결정 공시를 통해 국내 판매망 재정립을 목적으로 계열사인 코슨의 자산을 취득할 것이라고.../ www.cyberpetro.com/mobile/bbs (daum 2016)

 

  장병철 : 코슨 흑자전환 성공/ 현대오일뱅크 계열 석유대리점인 코슨(대표 장병철)이 지난 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코슨은 지난 5일 감사보고서를 통해 20053 2100만원의 당기 순손실에서 2006 753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흑자전환을 이뤘다고 밝.../ www.cyberpetro.com/mobile/bbs (daum 2016)

 

  장병철 : '고객사랑' 실천, 유류시장의 선봉장 : 2015.12.2 10:23 <출향인인터뷰> ()코슨 장병철 대표이사 사장 20031004() 12:33:59 “고객에게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류 판매...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주식회사 코슨(대표이사 사장 장병철·호명면 본포.../ www.ycnews.co.kr/news (daum 2015)

 

  장병철 :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 해결에 총력”/ 부회장, 나완배(GS칼텍스() 사장) 부회장과 감사직을 사임한 진근(전 삼미상사 대표이사), 이사직을 사임한 장병철(전 코슨() 대표이사) 이사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또한 유사석유 사용자 처벌 및 근절에 공로가 큰 안철식.../ energydaily.co.kr/news (daum 2016)

 

  장병철 : KISReport - NICE평가정보 기업정보 기업명 ()코슨 기업형태 폐업, 대기업 대표자 장병철 설립일자 1990.01.15 사업자번호 108-81-***** 상장일자 법인번호 110111-******* 산업명 (G47711)차량용 주유소 운영업 주소 서울 동작구 양녕로*** 2012.01.02 O.../ www.kisreport.com/embedded (daum 2016)

 

  장병철 : 세미 프로님을 모십니다. 최상민 / 등록일 : 2006-11-23 / 조회 : 895/ 영보 골프클럽 장병철 1998 70 2 최상민 면접시 결정 이메일 레슨비 안녕하십니까 가양동에 있는 ()코슨에서 경영하는 영보골프클럽입니다. 새로 입회비와 레슨 포함.../ test.klpga.co.kr/SUBmenu8 (daum 2016)

 

  장병철 :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며 로그인 장병철/ 2007-08-07 17:27:25, 조회 : 79, 추천 : 3/ 재경 중앙18동기회 직전 회장 장병철입니다. 276개월 동안 현대그룹의 여러 개 회사에(현대 중전기. 현대 중공업. 현대정유. 코슨) 전전하며 열심히 근무하다가, 지난.../ host.aliz.net/no_account (dau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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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호(장병호 醴泉警察發展委員會 委員長) [記事] : 장병호(54) 동성연탄 대표가 20116 14일 예천경찰행정발전위원회 임시총회에서 참석 위원 만장일치로 새 위원장에 추대됐다. 장 위원장은 수락인사에서 경찰과 상호 협력해 군민을 위한 참봉사를 실천하는데 앞장서겠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단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장병호 신임 위원장은 예천읍 태생으로 단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지난 2006년부터 경찰행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0년 경북지방경찰청장 감사장을 받은 바 있으며 군번영회 운영위원, 군체육회 이사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정은정(50) 씨와의 사이에 1남을 두고 있다.(醴泉新聞 20110629() 17:06:38)

 

  장병호 : 경찰발전위원회 예천서 용궁파출소 방문 격려/ 2012.05.24 | 예천인터넷방송/ 박창호 서장과 경찰발전위원회(위원장 장병호)는 지난 23일 오후 630분 용궁파출소를 방문해 군민의 평온한 생활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장병호 위원장...(daum 2012)

 

  장병호 : 예천서 경찰발전위원회 정기회의 개최/ 2012.02.23 | 예천인터넷방송/ 경찰서 3층 대회의실에서 경찰발전위원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회의를 개최했다. 박창호 서장은 그동안 예천치안을 위...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장병호 경찰발전위원장은 학교폭력...(daum 2012)

 

  장병호 : 예천서 경찰발전위원회 소외계층에 사랑의 연탄 나눔 행사/ 2011.12.27 | 예천인터넷방송/ 예천경찰서(서장 박창호)와 경찰발전위원회(위원장 장병호)27일 연말연시를 맞아 소외된 이웃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사랑의 연탄 나눔 행사를 펼쳤다. 이번 행사는 연말연시를 ...// 관련기사 『예천서, 경찰발전위원회』소외계층에 사랑의 연탄 나눔 행사”/ 2011.12.27 | 영남타임즈(daum 2012)

 

  장병호 : 예천서 경찰발전위원회 정기회의 개최/ 2011.08.26 | 예천인터넷방송/ 위해 많은 관심을 보내준 경찰발전위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도 범죄와 교통사고가 없는 안전하고 살기좋은 예천을 만드는데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장병호 경찰발전위원장과 위원들은...(daum 2012)

 

  장병호 : 학교폭력과 교통사고 근절에 경발위가 앞장선다......./ 2012.02.23 | 새경북인터넷뉴스/ 3층 대회의실에서 경찰발전위원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회의를 개최했다. 박창호 서장은 그...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장병호 경찰발전위원장...(daum 2012)

 

  장병호 : 장병호 예천경찰발전위원회 위원장/ 2011.07.09 | Daum 카페/ 장병호 예천경찰발전위원회 위원장 201106 29() 17:06:38 예천신문/ 장병호(54) 동성연탄 대표가 지난 14일 예천경찰행정발전위원회 임시총회에서 참석 위원 만장일치로 새 위원장에 추대됐다.../ cafe.daum.net/yckun 예천군민회(daum 2012)

 

  장병호 : 예천경찰서 행정발전위원회 정기회의/ 2006.09.19 | Daum 카페/ 예천경찰서 행정발전위원회 정기회의 예천경찰서(서장 이상정)13일 오후 5시 경찰서 3층 예경마루에서 경찰서장, 각 과장 및 지구대장, 경찰행... 정기회의를 가졌다. 이날 이상정 서장은 장병호(예천읍), 안천식(풍양면.../ cafe.daum.net/yckun 예천군민회(daum 2012)

 

  장병호 : 예천인터넷방송/ - 예천서 경찰발전위원회 정기회의 개최/ 웹문서/ 없는 안전하고 살기좋은 예천을 만드는데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장병호 경찰발전위원장은 학교폭력과 교통사고가 근절될 수 있도록 경찰발전위원회가 앞장서서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2012-02-23 오전 10:05:47 문경소방.../ iyctv.com(daum 2012)

 

  장병호 : 예천인터넷방송 - 예천서 경찰발전위원회 정기회의 개최/ 웹문서/ 집단급식소 식중독 예방 교육 실시/ 예천서 경찰발전위원회 정기회의 개최 예천경찰서(서장 박창호)25일 오후 5시 경찰서 3층 대회의실에서 경찰발전위원 등.../ iyctv.net(daum 2012)

 

  장병호 : 제66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유공 경찰관, 민간인 표창/ 웹문서/ 축구경기를 하며 경찰의 날을 자축했다.〈유공 경찰관, 민간인 표창〉 △경찰청장 감사장: 장병호 예천경찰발전위원회 위원장 △경북지방경찰청장 감사장: 강희수·최호규 △경찰서장 감사장: 모범운전자회 이규섭, 예천파.../ ycnews.co.kr(daum 2012)

 

  장병호 : 예천의 자랑 2132 : 예천체육 14(附 예천방문 580)/ 작성 장병창/ (예천건설환경) 변형우(태창광고 대표) 권도식(예천군축구협회장) 윤창호(제일화재보험) 권정호(대성기업 대표) 장병호(동성연탄 대표) 이필주(황금보석 대표) 김용호(연대건설 대표) 이상영(국토개발 대표) 김원혁(도민일보 기자.../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장병호 : 예천의 자랑 3553 : 남연-남염-남영진-남용수-남우호-남융달-남응주-남자-남점순-남정/ 작성 장병창/ 상리초등학교 학생 에버랜드 다녀와/ 4년전, 200753/ ...올 수 있도록 관광차를 보내주신 예천 동성연탄 장병호 사장님과 우리학교 선배님이신 30회 남우호 선배님께서 전교생이 놀이기구를 마음대로 탈 수 있는 자유이용.../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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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복영(張復永) : 1805(순조 5)-1869(고종 6), 용궁면 송암리 인암(印岩) 출신, 자는 군필(君必)명여(命汝), 호는 법고재(法古齋), 본관은 인동, 유학(幼學) 홍규(弘奎)의 장자, 복한(復韓)의 형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28(순조 28) 식년 생원시에 390위로 합격하였다. 묘는 도리산 건좌(道里山乾坐)에 있다.(竺山勝覽 1934, 族譜, 司馬榜目, 醴泉郡誌 1939)

 

  장복영(張復永) : 본관(本貫) 인동(仁同)/ 이력(履歷)/ 인동장씨 사마(司馬)방목(榜目)/ ◎張復永(장복영) 父弘奎(부홍규) 純祖(순조)28年 戊子(무자)(1828) 式年生員試 入格(식년생원시 입격)(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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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복추(張福樞) : 한풀/ 2004.02.14. 05:05/ //cafe.daum.net/myojy/6MKD/ 장복추(張福樞), 호 : 경하/사미헌, 시대 : 조선시대/ 공은 1815년 출생하였는데, 골상(骨相)이 비범하고 오른손에 인자형(仁字形)의 손금이 있었다.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 본관은 인동(仁同), 여헌(旅軒) 현광(縣光) 8세손 굉의 장자로서 백부인 관에게 출계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효순(孝順)하여 조금도 어버이의 뜻에 거슬리는 바 없었다. 사대봉사(四代奉祀)를 하는데 가세가 청빈(淸貧)하여 매년 봄과 여름이면 백미가 떨어지는지라, 추수기에 제수용(祭需用)의 쌀은 따로이 정장하여 비록 식량이 떨어져도 봉사(奉祀)에는 군색함이 없었고 혹시 생어(生魚)를 보내주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건어(乾魚)를 만들어 두었다가 제사가 쓴 뒤에 봉친(奉親)과 손님을 접대하였다. 이렇듯 효성이 지극할 뿐 아니라 우애 또한 유별하였으니 아우 두 분과 더불어 밤낮으로 한방에 거처하며 따스한 옷과 앉을 자리를 서로 사양하고 별미(別味)가 있으면 손수 먹여 주어 늙어서도 마치 어린아이를 거두 듯하였다. 공은 총명이 비상한 자질로서 소시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경전(經傳), 자사(子史)에 능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또한 옛날 성현의 가르침을 독신(篤信)하고 실천을 역행(力行)하니 세인이 추중(推重)하여 원근의 유생들이 청학(請學)하려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 이와 같이 학문이 뛰어남에 따라 조정에서 은일(隱逸)로서 선공감역(繕工監役), 장원서별제록(掌苑署別提錄),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의 벼슬을 잇달아 제수하였으나 모두 나아가지 아니하고 오직 후진교도에 전념하니 문인(門人)이 무려 4백여 명에 이르렀다. 1884(고종 21)에 의제개혁(衣制改革)에 대한 소()를 올리고 아울러 성학(聖學)을 권면(勸勉)하고 민정(民情)을 품진(稟陳)하여 그 우국충정(憂國衷情)에 우러난 사연이 매우 간곡하였다. 1894년에 절충장군 용양부호군(折衝將軍 龍 衛副護軍)을 제수하고 이어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서(陞敍)하였으나, 이를 모두 사퇴하였고 1900(광무 4)에 졸하니 향년이 86세이었다. 칠곡군 기산면 각산동에 묘비가 있으니 농산(農山) 장승택(張升澤)이 비문을 지었고 평산인(平山人) 신의균(申意均)이 글씨를 썼다. 공의 저서로 문집 11권이 있고, 그 밖에 가예보의(家禮補疑), 사서차의(四書箚疑), 숙흥야매잠집설(夙興夜寐箴集說), 사서계몽(四書啓蒙), 문변지론(問辨至論), 역학계몽(易學啓蒙) 등이 있다.(daum 2010)

 

  장복추 : 2007.10,27, 四未軒 張福樞의 文學과 思想()/ 정우락/ 첨부화일1 : 사미헌1.jpg (227008 Bytes)/ 첨부화일2 : 사미헌2.jpg (269754 Bytes)/ 四未軒 張福樞의 文學과 思想()/ ◇일 시 : 2007 1027() 오전 11/ ◇장 소 : 경북대학교 2합동강의동 101/ ◇주 최 : 한국문학언어학회/ ◇후 원 : 칠곡군청, 사미헌선생기념사업회/ 모시는 말씀 : 四未軒 先生 張福樞는 평생 爲己之學에 침잠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조선 말기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입니다. 선생의 학문은 朱子나 退溪를 학문의 종주로 삼았지만, 사색과 통찰을 통해 자득의 경계를 이룩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선생의 학문은 많은 영역에서 성과를 이룩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탐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본 학회는 이를 인식하면서 지난해 경북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四未軒 張福樞의 文學과 思想()’이라는 주제로 특별 학술대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의 학술대회를 이어 四未軒 선생의 학문세계를 더욱 깊이 탐구하고자 합니다. 선생의 시세계는 물론이고 經學이나 문인분석 등도 함께 연구하여 한국유학사에서의 위상까지 밝히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발표가 四未軒 선생의 문학과 사상의 세계가 남김없이 발현되고, 이로써 영남학은 물론이고 한국학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발판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본 학술대회가 더욱 빛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200710월 한국문학언어학회장 홍사만/ 등록 10:30-10:50 개회 10:50-11:20 사회 : 정우락(경북대)/ 11:00-11:10 개회사 : 홍사만(한국문학언어학회장)/ 11:10-11:20 축 사 : 이현시(사미헌선생기념사업회장)/ 주제발표 11:20-15:20/ 11:20-11:50 송재소(성균관대)/ -사미헌 선생의 묵방십절에 대하여/ 11:50-12:20 황위주(경북대) -사미헌 장복추의 시세계/ 12:20-13:30 점심식사/ 13:30-14:00 최석기(경상대) -사미헌 장복추의 중용 해석과 그 의미/ 14:00-14:30 우인수(경북대) -사미헌 장복추의 문인록과 문인집단 분석/ 14:30-15:00 최영성(한국전통문화학교) -사미헌 장복추의 조선유학사에서의 위상/ 15:00-15:20 휴 식/ 종합토론 15:20-17:00 좌장 : 송재소(성균관대) 토론자 : 강구율(동양대) 이세동(경북대) 이수환(영남대) 이구의(상주대)(daum 2010)

 

  장복추 :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예학과 『가례보의(家禮補疑)/ 페이지 : 32 페이지/ 등록일/발행년 : 09.09.22 / 2008/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유사자료 : 이 자료와 유사한 자료를 98건 찾았습니다 연관자료 더보기 사미헌 장복추의 「숙흥야매잠집설(夙興夜寐箴集說)」 연구 기획논문 사미헌 장복추의 문학과 사상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에서의 사미헌(四未軒).. 기획논문 사미헌 장복추의 문학과 사상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한시세계(.. 기획논문 조선조말 사미헌 장복추의 정치사상 사미헌(四未軒) 장복추가(張福樞家) 예학(禮學)의 가학(家學) 원류(源流)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주희의 생애 기획논문 사미헌 장복추의 문학과 사상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중용(中庸.. 기획논문 사미헌 장복추 예설(禮說)의 논례(論禮) 경향 -『가례보의(家禮補疑)』를 중.. 기획논문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학통과 영남 유림(儒林)에서의 위상에 대한.. 기획논문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학술(學術)과 그 의미(意味)/ 논문 미리보기는 2페이지까지만 제공합니다. 라인논문 초록 사미헌 장복추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1862년의 농민봉기를 시작으로, 1882년의 임오군란과 제물포협약, 1884년의 갑신정변, 1895년의 갑오개혁과 그 뒤를 이은 단발령 등, 주자학적 세계의 붕괴를 예고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몸소 체험하였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이 시대적 격변기에 대항하여 취하였던 정지적 행동은 `청물개의제소(請勿改衣制疏)`를 상주한 것이 전부였다. 그는 오히려 그러한 시대적 변화를 뒤로 한 채 『가례보의』라는 예서 편찬에 평생의 정력을 바쳤다. 그렇다면 주자학적 세계의 붕괴를 예고하는 이 일련의 사태가 그에게는 무의미한 일로 비쳤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그는 대다수 영남 남인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주자학적 삶을 통해 그 시대의 풍랑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 글은 논제에 밝힌 것처럼, 구한말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사미헌 장복추의 『가례보의』를 중심으로 그의 예학적 특성 및 사상사적 위상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사미헌의 『가례보의』는 퇴계학설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영천지역에서 활약하였던 정만양·규양 형제의 『의례통고』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인 정중기의 『가례집요』, 그리고 그의 선조인 장현광의 예설 등, 영남남인의 예학을 대거 수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김장생의 『가례집람』과 『상례비요』, 이재의 『사례편람』, 이의조의 『가례증해』 등 서인 예학도 폭넓게 수용한 예서이다. 따라서 이 글은 사미헌의 『가례보의』를 영남 예학의 집대성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가례보의』에 등장하는 예학자와 예설들을 재구성하여 영남 남인예학의 전개과정을 추적하는 한편, 그것을 기반으로 『가례보의』의 예학사적 특성 및 위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daum 2010)

 

  장복추 : [張福樞(장복추)] 숙흥야매잠집설서(夙興夜寐箴集說序) -/ Daum 블로그 | 7달전, 201025 ()/ 人於天地之間 以묘*然之身 能參三才 靈萬物者 惟其有心耳 *-눈목변에 적을소(目少) 인어천지지간 이묘연지신 능삼삼재 영만물자 유기유심이 夫心之爲物 虛而具衆理 感而應萬事 其禮則本眞矣 其用則本善矣 부심지위물.../ blog.daum.net/leehw49/ | 계림 숲이 많은 곳(daum 2010)

 

  장복추 : [張福樞(장복추)] 숙흥야매잠집설서(夙興夜寐箴集說序)-2/ Daum 블로그 | 7달전, 201025 ()/ 肆昔南塘陳先生 卽其躬行心得之餘 而箸之爲箴 사석남당진선생 즉기궁행심득지여 이저지위잠 言句簡嚴 意寄精深與朱夫子敬齋箴爲表裏 언구간엄 의기정심여주부자경재잠위표리 而有地頭時分 相須之工矣 이유지두시분 상수지공의 .../ blog.daum.net/leehw49/ | 계림 숲이 많은 곳(daum 2010)

 

  장복추 :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예학과 『가례보의(家禮補疑)/ 국가지식포털/ | 2달전, 2010722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지식DB 국가학술연구 DB 매체유형 원문 기술언어 한글 권호정보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예학과 『가례보의(家禮補疑)- 목차 Ⅰ. 서언 Ⅱ. 주자 예학의 전개와 『가례보의』 Ⅲ. 『가례보의』의 특성.../ www.knowledge.go.kr(daum2010)

 

  장복추 : 기획논문 : 장복추(張福樞)「문변지론(問辨至論)」에서의 성리학적 이론구조 해피학술 | 지난달, 201081 ()/ ...하였다. 영문초록 The characteristics of the XingLi(性理) theory (Neo-Confucianism) of `Jang Bok-Chu(張福樞)` with the pen name of `Samiheon(四未軒)` were discussed with his writing Munbyunjilon(問辨至論.../ happyhaksul.com(daum 2010)

 

  장복추 : 청주양씨세고목판(淸州楊氏世稿木板)/ Daum 블로그 | 작년, 2009108/ ...높았다. 이 청주세록(淸州世錄)의 서문은 한주 이진상(寒洲 李震相)이 썼고, 발문은 사미헌 장복추(四未軒 張福樞)가 지었다.」 이 세록(世錄)은 卷一 : 충헌공암곡사실(忠憲公岩谷事實) 卷二 : 졸헌유고(拙軒遺稿) 卷三~:.../ blog.daum.net/win690/| 역사와야생화(daum 2010)

 

  장복추 :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예학과 『가례보의(家禮補疑)/ 레포트넷 | 2달전, 2010723 ()/ 2008 1| 이승연 ( Seung Yeon Lee ) 내용미리보기 보관 파일정보 32페이지.../ www.reportnet.co.kr(daum2010)

 

  장복추 : [탐방]조마면 신곡리 구로제실강희삼씨 제실 보존에 안간힘!/ 김천인터넷뉴스 | 작년, 2009710/ (이일봉창익) 李錦厓章益(이금애장익)이라 記를 쓴 사람은 곧 覺幹公의 孫子인 玉山 張福樞이다 一八八五年 乙酉黃梅郞에 玉山張福樞는 謹識(근식)하노라 九老齊重建記 어떤일에 뜻을 두는.../ //gcinews.com(daum2010)

 

  장복추 : 완역 이옥 전집. 01/ e-Book/ 이옥 지음 |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1900.01.01/ 책본문 : ...바 있다. 조선조에 노수신盧守愼은《숙흥야매잠주소夙興夜寐箴註疏》를, 장복추張福樞는《숙흥야매잠집夙興夜寐箴集》을 각각 지어 <숙흥야매잠>에 대한 주석서 및 해설서를.../ 115페이지(daum 2010)

 

  장복추 : 퇴계학파와 리철학의 전개/ e-Book/ 금장태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0.04.05/ 책본문 : ...역할을 하였다.寒岡─許 穆…李 瀷→安鼎福→黃德吉→許 傳→許 薰→張志淵─張顯光─… …… 張福樞→宋浚弼─權益隣…→權相一─鮮于浹→愼 懋④그 밖에 퇴계의 私淑학맥으로서 강원도 原州法泉의.../ 15페이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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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봉기(오늘 慶北肢體障碍人指導者大會) [記事] : `22회 경북지체장애인지도자대회`2014121일 경주 보문단지 내 더케이호텔에서 열린다. 이날 장애인 복지에 기여한 인사 등에 대해 도지사 등 각급 기관장의 표창장도 주어지는데 △김관용 도지사 표창=김창현(안동지회장김다래(경주지회 사무차장김삼섭(상주지회 분회장최성운(군위지회 사무국장장봉기(예천지회 대리) △장대진 의장 표창=안석배(김천지회 운영위원)·... 또 평소 장애인 복지 활동을 충실히 수행한 울진지회(지회장 장무광)가 최우수지회, 경주지회(지회장 이상인)가 우수지회 표창을 받는다.(황재성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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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환(張鳳煥) : 1869(고종 6)-1929, 호명면 원곡리 안질 출신으로 예천읍으로 옮겨 살았다. 자는 자익(子翼), 호는 죽오(竹塢), 본관은 인동, 판윤 화식(判尹華植)2, 1888(고종 25)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 입학하여 영어, 수학, 정치경제, 지리 등의 교육을 받고, 그 이듬해 4월에 왕명으로 의친왕궁(義親王宮)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가 그 해 8월에 전라도 감시(監試)에 합격하여 외무아문 주사(外務衙門主事, 1893)에 올랐다. 주미공사관 서기관(駐美公使館書記官, 1893.2)이 되어 미국으로 갈 때, 고종이 이르기를, "그대는 나라의 일을 성심으로 수행하라"라고 하면서 관복과 약품을 하사하였다. 귀국(1898.5)하여 원외랑(員外郞)에 임명된 후 법부 주사(法部主事, 1895)가 되었으나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으로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사임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 후 궁내부 참서관 겸 내사과장(宮內部參書官兼內事課長, 1897)에 승진하고 황제의 밀령(密令)을 받고 중국 상하이로 가서 외세를 살피고 돌아왔다. 궁내부 시종원 시종(宮內部侍從院侍從), 육군 정위(陸軍正尉)로 있다가 다시 왕명으로 미국으로 가서(1898.8) 외세를 살피고 돌아와서 종2품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 1898.10)으로 승진했다. 1900(광무 4) 2월에 현재 고등법원 검사(檢事)에 해당되는 평리원 칙임 검사(平理院勅任檢事)에 임명되어 민비 시해에 가담했던 안경수와 권형진을 자수 당일로 심리(審理)를 끝내고 판사(判事)와 협력하여 사형 판결을 하고, 이튿날 새벽에 임금께 보고도 없이 처형하고, 사직 상소를 올리고 임금의 벌을 기다렸다. 친일 세력의 압력으로 황해도 철도(黃海道鐵島)라는 섬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1901(광무 5)에 육군 참령(陸軍參領)에 임명되어 그 해 4, 옛날 단종 때 지보면 대죽리 사람이었던 죽림 권산해(竹林權山海)의 시호(諡號)를 청하는 상소를 올릴 때 영남 사림(嶺南士林)의 대표가 되었다. 이때 임금의 허락을 받았다. 그 후 친위대대대장(親衛隊大隊長), 헌병대장(憲兵隊長) 등 여러 군대 요직을 역임하다가 육군 부령(陸軍副領, 1906)에 올라 훈장(勳章, 勳四等八卦章)을 받았다. 고종 퇴위(1907) 때 벼슬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왔다. 효도와 우애(友愛)가 지극하였고 청렴하였다. 묘는 호명면 황지리 팔미산 손좌(八尾山巽坐)에 있고, 유고(遺稿)가 있다.(醴泉大觀, 族譜, 醴泉郡邑誌 1895 1899, 醴泉郡誌 1939)

 

  장봉환 : 한국사료총서/ 5집 大韓季年史 上(한국사료총서 제5) > 大韓季年史卷之四 高宗皇帝 > 光武二年戊戊(自十一月) > 光武二年 戊戌(十一月)/ 六日 舊曆九月二十三日 원주 萬民共同會, 使摠代委員 趙秉璿 等五人, 致書于 參政 趙秉式 · 軍部大臣署理 兪箕煥 · 時 箕煥 以 贊政軍部協辦 , 署理軍部大臣 事務 원주 法部協辦 李基東 , 敬啓者, 披閱本日出刊漢城新報, 則雜報欄內揭載云, 間對昨曉以來捕縛, 聞閭巷唱道, 則自三四日前, 兪箕煥 氏, 與 參政 趙秉式 氏· 法務協辦 李基東 氏, 潛然謀劃見獨立協會背後之無勢力, 斷然行鎭壓之策, 人民等對此事件有仰質者, 玆仰佈照諒, 本日下午七點鍾, 賁臨干 警務廳 門前萬民共同會席爲望, 又使總代委員 李箕善 等五人, 致書于各部大臣曰, 敬啓者披閱本日出刊漢城新報, 則雜報欄內揭載, 侍從 張鳳煥 氏, 又以雇來外國保護兵五百人之事, 十餘日前潛往上海, 本報又揭載自三四日前 兪箕煥 氏, 與 參政 趙秉式 氏· 法部協辦 李基東 氏, 潛然謀劃見獨立協會背後之無勢力, 斷然勵行鎭壓之策, 此說的確, 則訝惑滋甚, 對此事件有仰質之義務玆仰佈照諒, 本日下午七點鍾?期賁臨于 警務廳 門前萬民共同會爲望, 同日 秉式 等皆?以事故而不答, 惟 外部大臣 閔種默 答曰, 逕覆者現接准兩度貴?, 而當日午後仕進仍直於政府, 則不能?期趨造抱?殊深, 照諒爲要, 鳳煥 之父 華植 致書于會中, 言其子以母病昨月受由往其鄕第醴泉郡, 願自會中派員探其虛實, 是日詔曰, 諸會爲名者一切革罷, 而近日所謂萬民公同 會是何名目, 煽惑愚民?張浮訛, 擧措駭悖莫此爲甚, 勅下之後如有依前黨聚者, 自法部嚴拿照律, 以各該署言之, 若或玩?任其跳?, 則亦難免不飭之科, 嚴加團束, 各坊曲統首頭民一體査察, 無至失檢抵罪事, 令內部, 申飭 漢城警務廳 。(//db.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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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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