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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624) : 장윤덕(2)-장윤정-장윤희-장의식(1)(附 예천동부초등학교 어머니회, 국민독서경진 도대회 최우수상 수상...축하합니다/ 천군승마협회 김수호, 17일 영천별마무과제 기사부분 장원...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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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덕(7月의 慶尙北道 獨立運動家 “惺菴 張胤德 先生” 選定 : 올곧은 性品으로 不義와 不定, 不法과 妥協하지 않는 舊韓末 慶北의 義兵將 -) [記事] : 경상북도(김관용 도지사)는 2012년 7월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로 성암(惺菴) 장윤덕(張胤德) 선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장윤덕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및 매국대신을 처단할 계획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며 300명의 의병으로 이강년 의진에 합류하여 일본군경을 대상으로 문경 갈평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는 쾌거를 이루어 낸 공로로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7월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의 항일투쟁 역사를 살펴보면 성암 장윤덕 의사는 예천 출신, 한말 의병장이었으며 본관은 단양, 자는 원숙(元淑), 호는 성암(惺菴)이며, 1872년 7월 6일 예천읍 노상리에서 장재안(張載安)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학(漢學) 수학과 예천군 수서기(首書記)를 지냈다. 1905년 12월,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상실될 위기에 이르자, 국민들에게 항일 구국 정신 고취와 친일 반역 행위를 규탄하는 민중들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1907년 4월, 일제의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롯한 매국대신들을 처단할 계획이었으나 배신자의 밀고로 실패하였으며,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이 의병을 일으키자 장윤덕도 격문을 각지에 발송, 300여명의 의병을 규합, 편성하여 이강년 대장 휘하 의병장으로서 주로 풍기(豊基), 봉화(奉化), 문경(聞慶), 용궁(龍宮), 예천(醴泉)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9월, 이강년(李康秊), 민긍호(閔肯鎬) 등의 의진과 합세하여 1,0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문경 갈평리(葛坪里)에서 일경 나가타니(永谷) 경시(警視)와 미하라(三原) 소위(少尉)가 인솔한 경찰대 및 수비대와 격전하여 일본군 3명과 한인 순검 2명을 사살하고 적을 격퇴시켰다. 또한,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대구 수비대를 격파하고자 상주읍(尙州邑)을 공격하여 일본인 자위단(自衛團)과 교전하던 중, 대구 수비대에서 출동한 다나카(田中) 대위의 1개 중대와 격전을 벌였으나 패하면서 장윤덕 의병장은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이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혀를 끊고 함구로 저항하다가, 1907년 9월 16일 상주군 함창면(咸昌面) 구향리(舊鄕里) 뒷산에서 총살 순국하였다. “내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의거하여 강도 너희 놈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붙잡혔으니 오직 죽음을 바랄 뿐이며, 너희 놈들과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 [ 장윤덕 의사 어록중 ] 경북도 관계자는 “선생의 항일투쟁과 구국활동은 일반인들에게 크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 걸고 이룩한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민중의 큰 지도자이셨으며, 올곧은 성품으로 불의와 불법과 타협하지 않는 오로지 나라사랑과 항일투쟁 정신은 우리 민족의 암흑기를 버텨낸 큰 희생이었기에 그 빛은 영원히 바래지 않을 것이며, 선생의 희생과 실천의 삶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민족의 정신이다 “고 말했다. 경북대학교 교정에 기념비가 있다.(醴泉뉴스 2012년 06월 29일)
장윤덕(慶北道 `이달의 獨立運動家` 6名 選定 : 後孫에 記念牌 傳達) [記事] : 경북도는 2012년 7월 9일 도지사 접견실에서 2012년 하반기 `이달의 독립운동가` 6명을 선정, 유족(후손)에게 기념패와 기념품을 전달하고 위로·격려했다. 경북도는 지난 4월부터 경북지역 출신인 자랑스러운 독립 운동가를 매월 한 분씩 선정해 그 공적을 널리 알려오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독립운동가로 포상을 받은 전국 1만2천846명 중 경북 출신은 2천5명(일본강점기 행정구역 편제 및 지난 3월 1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제일 많다. 이번에 선정된 7월의 독립운동가 장윤덕 선생(1872~1907)은 경북 예천출신으로 의병대장으로 활동했으며, 이토 히로부미 등 매국 대신 처단을 시도하는 등의 공적으로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8월의 독립운동가 남자현 선생(1872~1933)은 경북 영양출신.으로 1925년 조선총독 주살을 시도했으며, 임시의정원 교통위원 또는 부의장을 역임했다. 9월의 강원형 선생(1862~1914)은 경북 칠곡 출신. 1905년 대한 13도 유약소 설치, 을사5적 처단 요구 등의 공적이 있다. 10월의 류도발 선생(1832~1910)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10년 일제 국권침탈 소식에 단식으로 순절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1월의 독립운동가엔 영덕출신 신돌석 의병장(1878~1908)이 선정됐다. 1896년 영해의진 중군장으로 활동했으며, 영덕을 중심으로 일군을 격파하는 등 혁혁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12월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김상덕 선생(1891~1956)은 경북 고령출신으로 1919년 2.28 독립선언서 국내 홍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지냈으며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서인교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2.07.10)
장윤덕('抗日 救國 抗爭에 앞장선 義兵將' : 特輯 慶北道 選定 7月의 獨立運動家 … '張胤德 先生') [記事] : 경상북도가 7월의 독립운동가로 예천이 낳은 한말 의병장 성암(惺菴) 장윤덕(張胤德) 선생을 선정 발표했다. 우리나라 대표 시인 중 한명인 박목월은 ‘일제의 간악한 마수가 뻗쳐 이 나라 이 강산을 삼키려 할 때 밤하늘 높이높이 횃불 켜들어 겨레를 깨우쳐 한 몸 사루신 아아 장윤덕 의사 의로운 뜻은 영원히 빛나리라 겨레와 함께’ 라는 추모가를 써 선생의 의기와 뜻을 기렸다. 성암 장윤덕 선생의 본관은 단양, 자는 원숙(元淑), 호는 성암(惺菴)이며, 1872년 7월 6일 예천읍 노상리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장재안(張載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품이 뛰어났으며, 지조가 굳고 담력이 컸다. 애국심 또한 투철해 항상 국가의 쇠퇴함을 개탄하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했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였다. 한학(漢學)을 배우고 일찍이 보문사에 들어가 공부했으며, 예천군 수서기(首書記)를 지냈다. 1905년 12월,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상실될 위기에 이르자 이에 비분강개하여 수서기직을 그만두고, 국민들에게 항일 구국 정신을 강조했으며, 친일 반역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등 민중들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후 1907년 4월 분연히 일어나 일제의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롯한 매국대신인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단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으나 배신자의 밀고로 실패, 고향으로 내려와서 재기를 꾀하였다. 1907년 4월,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이 영춘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장윤덕 선생도 7월에 격문을 각지에 발송하고 3백여 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진을 편성, 이강년 의병과 합세하여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주로 풍기(豊基), 봉화(奉化), 문경(聞慶), 용궁(龍宮), 예천(醴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9일에는 일본경찰대와 교전하여 일본인 보조원(補助員) 3명과 한인 순검 2명을 사살하였다. 그해 8월 27일 의병 3백여 명을 인솔하고 풍기 일경분파소를 습격하여 1명을 사살하고 31일에는 봉화분파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불태웠다. 1907년 9월 3일 문경읍을 공격하여 일본인 2명을 사살하고 일본인의 가옥을 불태웠으며, 동월 10일에는 이강년(李康秊), 민긍호(閔肯鎬) 등의 의진과 합세하여 1천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문경 갈평리(葛坪里)에서 일경 나가타니(永谷) 경시(警視)와 미하라(三原) 소위(少尉)가 인솔한 경찰대 및 수비대와 격전하여 일본군 3명과 한인 순검 2명을 사살하고 적을 격퇴시켰다. 9월 12일, 예천읍 공격에 이어 3백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대구수비대를 격파하고자 상주읍(尙州邑)을 공격하여 일본인 자위단(自衛團)과 교전하던 중, 대구수비대에서 출동한 다나카(田中) 대위의 1개 중대와 격전을 벌였으나 패하면서 장윤덕 의병장은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장윤덕 선생은 “내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의거하여 강도 너희 놈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붙잡혔으니 오직 죽음을 바랄 뿐”이라며 “너희 놈들과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고 하여 일경을 크게 꾸짖고, 갖은 악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앞니로 혀를 끊어 끝내 함구로 저항하였다. 1907년 9월 16일 상주군 함창면(咸昌面) 구향리(舊鄕里) 뒷산에서 총살 순국하였다. 당시 선생의 나이는 겨우 35세였다. 그 후 일본군 수비대가 장윤덕 의병장의 집을 불태우는 등 탄압이 극심해지자, 부인 함녕김씨(咸寧金氏)는 어린 두 아들 시환(時煥)과 인환(寅煥)을 데리고, 낮에는 보문면 수계리 산속 토굴에서 지내고 밤에는 논, 밭으로 다니며 보리와 벼이삭으로 연명하였다. 부인 함녕 김씨는 1942년 장윤덕 의병장의 순국 35주년 되던 기일(忌日) 날에 세상을 떠났다.
장윤덕 의병장의 묘지는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에 위치한 보문사(普門寺) 근처에 있으며, 전 재대구군민회장을 역임한 장기웅 씨가 손자다. 묘비는 장윤덕 의사 기념사업회에서 1967년 9월 16일 장윤덕 의병장 서거 60주년을 맞이하여 세웠는데, 묘비 전면에는 ‘義兵大將惺菴張胤德先生之墓(의병대장 성암 장윤덕 선생지묘)’라 적혀있다.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그리고 묘갈명(墓碣銘)은 김인(金仁) 경상북도지사가 지은 것이다. 장윤덕 의병장 묘갈명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사직(社稷)이 무너질 제 일천년 의병 몰아/ 왜적을 무찔다가 의혈(義血) 뿌리시니/ 의혈(義血) 영켜 반석(盤石) 되고 반석(盤石) 위에 나라 섰네./ 이제사 비 바람친다 쓰러지리,/ 임이여! 원한(怨恨)의 두 눈 감으옵소서.' 광복 20주년이 되던 1965년 10월 30일 장윤덕 의사 기념사업회에서는 대구시 산격동 경북대학교 캠퍼스 안에 큰 규모의 돌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는 맨 위에 세로로 크게 ‘장윤덕의사순국기념비(張胤德義士殉國紀念碑)’라 음각으로 새겨 넣었고, 그 아래 기념비 비문이 역시 작게 음각되어 있다. 위의 “張胤德義士殉國紀念碑” 글자는 장의병장의 동생 장윤강이 썼으며, 기념비문은 배학보가 짓고 최원봉이 썼다고 적고 있다. 비문에 새겨진 ‘조국이 광복된 지 스무 해 되는 오늘 나라의 기둥 될 준재들이 모인 이곳 경북대학교 뜰에 드높이 돌을 세우고 의로운 사적을 새겨 이 땅의 젊은 학도들에게 길이 전하니 후진들은 명심할지어다.’ 라는 글귀가 장윤덕 의사의 발자취를 통해 후학들에게 호국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대통령표창,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12년 08월 16일 (목) 09:20:57)
장윤정 : 예천의 자랑 1712 : 예천대사전 제87권 오늘 나와(祝 최정숙. 박상진 等/예천방문 238)/ 작성 장병창/ 장영희(국어국문학 박사), 장용호(예천군청 양궁선수, 17265~17267쪽), 장용환(광무 8년 용궁군수), 장원경(호 일은), 장위규(이인좌의 난 평정자, 17268~17274쪽), 장윤광, 장윤덕(의사), 장윤정(미스대구선발대회 본선 진출), .../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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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張允僖) : 소속 법무법인광장, 출생 1983년, 직업 변호사, 학력 서울대학교(daum 2016)
장윤희 : 변리사, 이지은 변리사, 강동운 변리사, 강아름별 변리사, 장윤희 변호사 입사, 신재식 변리사가 2014년 12월 8일부터, 이지은 변리사, 강동운 변리사, 강아름별 변리사, 장윤희 변호사가 2015년 1월 1일 유미특허법인에 합류하여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신재식 변리사 프로필 학력: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 www.youme.com/2005/ko (daum 2016)
장윤희 : 장윤희(張允僖), 장윤희 변호사는 2012년 법무법인 광장에 합류한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서 특허, 상표, 저작권, 직무발명, 라이센스 등 각종 지적재산권 분쟁 사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요처리사례 ㆍ걱정인형 상표 및 저.../ www.leeko.com/kor/professionals (daum 2016)
장윤희 : 장윤희 (張允僖 / 변호사), [출생] 1983년, [직업] 변호사, [학력] 서울대학교, [소속] 법무법인광장, 출처 인물백과(dau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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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식(故鄕은 恒常 새로운 에너지 솟게 해 : ■인터뷰 장의식 醴經포럼 事務局長) [記事] :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정겨운 곳, 고향은 항상 새로운 에너지를 솟아나게 합니다.” 사단법인 예천경제인포럼 장의식(50) 사무국장의 마음속에 각인된 고향의 이미지다. 그는 지난 2009년 예천출신 경제인들의 교류 모임인 예경포럼 발족 때 간사로 참여한 뒤 이듬해부터 사무국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고향 출신 기업인들이 모여 서로 돕고, 경제 교류와 고향 발전에도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무국 일원으로 보좌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천읍 대심리 장정남(74) 이귀순(73) 씨의 3남 1녀 중 둘째인 장 국장은 예천초등(64회), 예천중(28회), 대창고(27회), 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언론대학원을 수료했다. 그의 좌우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좌우명에서도 알 수 있듯 주위에서는 그를 누구보다 성실하고 반듯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장 국장은 지난 2008년부터 소비자 경제신문인 컨슈머타임스(서울 종로구) 편집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컨슈머타임스가 미국의 컨슈머리포트처럼 우리나라 최고의 소비자 언론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1987년 농민신문사 공채 1기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후 서울경제신문 기자(1988∼1994년), 문화일보 기자와 차장(1994∼2006년)을 거쳐 2008년부터 컨슈머타임스에 몸담고 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잣대로 취재 보도한 기사를 읽고 호응을 해 주는 독자들을 대할 때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한국편집기자협회상 등 언론 관련 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을 만큼 언론인으로서도 모범적인 길을 걷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는 예천 출신 언론인들의 모임인 예천언론인회 총무를 맡는 등 고향을 위한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집안 대소사나 각종 모임과 행사 참석을 위해 매달 부모님이 계신 고향 예천을 찾는다. 찾을 때마다 고향의 의미는 더 크고 각별하게 다가온다고.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올 해 개최되는 예천곤충엑스포 등 고향 예천 발전을 위한 홍보에 힘을 보태고, 나아가 예경포럼이 우리나라 최고의 경제 포럼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이어 “예천이 과거의 폐쇄적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경북도청시대를 맞아 경북의 청정도시 및 새로운 관광메카로 육성 발전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옥자(49) 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었다.(醴泉新聞 2012년 02월 17일 (금) 10: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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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동부초등학교 어머니회, 국민독서경진 도대회 최우수상 수상...축하합니다.
예천동부초등학교 어머니회(醴泉東部初等 어머니會 第36回 大統領旗 國民讀書競進慶北大會 '最優秀賞' 受賞!) [記事] : 예천동부초등학교(교장 김종상) 어머니회는 새마을문고중앙회가 주관하는 '대통령기 제36회 국민독서경진경상북도대회'에서 강혜경 외 5명이 초등부 단체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으며 귀감이 되고 있다. 독후감, 편지글 양식의 자유주제로 펼쳐진 이번 대회에 동부초등 어머니회는 독후감 부문에 참가, 자유롭게 선정한 도서를 읽고 12매 내외의 분량으로 6편의 독후감을 대회에 제출한 결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동부초등학교는 학생들의 독서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평소 다양한 독서 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함께 독서를 생활화 하는 등으로 학생 1인당 년간 3~5권의 책을 읽고 있다. 김종상 교장은 "평소 학생들이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지원해주시는 학부모님들께서 이와 같이 좋은 성과를 거두어서 매우 기쁘고 앞으로도 본교와 가정이 힘을 합쳐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끊임없이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6-12-20 오전 9: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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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승마협회 김수호, 17일 영천별마무과제 기사부분 장원...축하합니다.
김수호(말 달리며 활 쏘고 창 던지고 : 영천별마무과제2) [記事] : 영천 휘명승마장에서 2016년 12월 17일, 도내 최초로 ‘2016 영천 별마 무과제’가 재연됐다. 영천 휘명승마장에서 지난 17일 도내 최초로 조선시대 무과시험인 ‘2016 영천 별마 무과제’를 재연, 새로운 말문화 콘텐츠 창출로 주목받고 있다. 영남지역 민간승마장으로 가장 규모가 큰 영천시 신녕면 연정리 휘명승마아카데미(대표 유정휘, 2천432㎡)는 마사회의 2016 말문화축제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2016년 영천 별마 무과제’를 개최했다. 세종장헌대왕실록 오례의 절차로 구성한 연출에 따라 신녕풍물단을 앞세운 경상감사와 고시관, 감시관, 무과응시자들의 입장퍼레이드에 이어 보사(서서 활쏘기), 기사(달리는 말위에서 활쏘기), 기창(달리는 말위에서 창으로 과녁맞히기) 등 3개의 과목을 무과대회를 겸해 시범을 보였다. 중간중간 마상재, 진검베기, 쌍검무와 같은 전통무예공연을 곁들임으로써 전통문화 진미를 선보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4개 단체의 한국 전통무예단의 참가자들이 기령을 겨룬 결과 보사(步射)부문에는 봉화군 승마교육원의 최치영 씨, 기사(騎射)부분은 예천군승마협회 김수호 씨, 기창(騎槍)부문에는 마필문화사업단 여명 박세용 씨가 각각 무괴(武魁-무과 장원)로 입격(합격)했다.(서영진 記者 大邱新聞 2016-12-19, 21: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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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