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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657:전광우(6)-전규선
작성자장병창 @ 2017.01.23 06:11:11

  예천의 자랑 4657 : 전광우(6)-전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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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우 : 오늘의 영상뉴스. 2011. 01. 26. ./ 2011.01.26/ 네티즌본부'카페연합 공동작성 게시물. 'Netizen Photo News'. ▣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과거 20년 평균 7.3%인 연 투자수익률.../ blog.daum.net/skyseon/ 내 가슴의 별(daum 2016)

 

  전광우 : 금융위기 이후 녹색산업에 세계자본 몰린다/ 2011.03.09/ 인증을 받아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다."고 설명했다. 세계 4대 연기금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전광우 이사장은 "전 세계 연기금들이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녹색산업과.../ simh100.tistory.com/ 하얀나라(daum 2016)

 

  전광우 : [장애를 껴안으면 능력이 보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2011.04.11/ 보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신입사원 10% 장애인으로 뽑을 것" 이인열 기자 국민연금공단 전광우.../ blog.daum.net/79baejinhee/ 예전엔 미처 몰랐던..(daum 2016)

 

  전광우 : 한국엔 각서 받았던 IMF, 왜 그리스 빚은 깎아주려 하나.../ 2015.07.08/ 유럽 통합은 없다며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던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채무국이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틸 때까지 버틴 후, 부채를.../ blog.daum.net/obk2030/ 학성산의 행복찾기(daum 2016)

 

  전광우 : 2013 810일 오후 122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2013.08.10/ 탁월한 리더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실천적이고 종합적인 해법을 담은 책 - 전광우(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석동(금융위원회 원장), 장용성(MBN 대표이사), 윤창현.../ blog.naver.com/reminder7/ reminder..생각나게..(daum 2016)

 

  전광우 : 7/10() 오늘의 경제지표 및 주요일정 살펴보기 - 제이.../ 2015.07.10/ 게 국민연금의 의무... 전광우 前 이사장 * 그렉시트보다 무서운 놈이 나타났다 '차이나겟돈' * 대표기업들 경영권방어에 노심초사... 일손 못 잡고 소모적 분쟁에 힘만 빼.../ blog.naver.com/people8947/ 제이비스탁[골드] ..(daum 2016)

 

  전광우 : 15 710() 오늘의 주요이슈/ 2015.07.10/ 게 국민연금의 의무... 전광우 前 이사장 * 그렉시트보다 무서운 놈이 나타났다 '차이나겟돈' * 대표기업들 경영권방어에 노심초사... 일손 못잡고 소모적 분쟁에 힘만 빼.../ blog.naver.com/bin3885/ L-Artist(daum 2016)

 

  전광우 : 오늘의 주요뉴스/ 2015.07.10/ 게 국민연금의 의무... 전광우 前 이사장 * 그렉시트보다 무서운 놈이 나타났다 '차이나겟돈' * 대표기업들 경영권방어에 노심초사... 일손 못잡고 소모적 분쟁에 힘만 빼.../ happystock.tistory.com/ 블로그글 전체보기(daum 2016)

 

  전광우 : 100세 이상의 장수 국민연금 수급자를 위한 축하행사 가져/ 2012.10.12/ 퇴색퇴어 가는 경로효친 사상을 되새기고 고령화시대에 국민연금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건데요, 이날 전광우 이사장과 공단의 전국 7개 지역본부장은 노후 소득 보장기.../ blog.daum.net/gyrudo-o/ 냐하하하하하하하ㅏ..(daum 2016)

 

  전광우 : '행복노후설계센터' 활용한 노후 준비 노하우/ 2015.07.16/ 4 14일 국민연금공단 본부에서 열린 '노후설계 서비스 선포식'. 관련 기관 주요 인사들과 함께한 보건복지부 진수희 장관과 국민연금공단 전광우.../ blog.daum.net/life24kn/ 라이프24경남(daum 2016)

 

  전광우 : 승자의 안목 (센추리원) 10/ 2013.03.20/ 속에서 원칙과 정도를 추구하는 미래 리더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만물유전(萬物流轉).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무엇.../ blog.daum.net/skrtodzldzk/ Discovery(daum 2016)

 

  전광우 : 『국민연금 웹 EDI 서비스』무료 이용 개시/ 2012.04.06/ 『국민연금 웹 EDI 서비스』무료 이용 개시 - 시간과 장소에 제약받지 않고 4대보험 신고/신청 가능 - □ 국민연금공단(이사장 전광우)은 올해부터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blog.daum.net/ 무등산(daum 2016)

 

  전광우 : 제3회 아시안리더십 컨퍼런스 이모저모/ 2013.03.29/ 협력해야 한다. 나만 잘 되는 것은 아무 필요가 없다. 행동이 중요하다.” 국민연금공단 전광우 이사장 : “자본주의가 위기지만 이런 논의가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blog.naver.com/crenche/ Crenche- 창조와 변..(daum 2016)

 

  전광우 : [사회복지사 뉴스]2차 인구 고령화 포럼 개최(보건복지.../ 2013.02.15/ 열렸다. ○ 보건복지부(장관 임채민)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원장 박용주), 국민연금공단(이사장 전광우)214() 아침(07:30~09:30) 서울 롯데호텔에서 2.../ dreammoa_.blog.me/ 이야기원격평생교육..(daum 2016)

 

  전광우 : 2012 1020Twitter 이야기/ 2012.10.20/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국민 노후 말아 먹으라고 아주 작정을 했군요.../ blog.daum.net/bosohub/ 보험이용자협회(daum 2016)

 

  전광우 : 서울시 부동산개발업 등록업체 현황 -2010.10.30일 기준/ 2011.05.11/ 상지건설㈜ 유지호 강남구 청담동 6-5 리츠타워12, 국민연금공단 전광우 송파구 신천동, 지에스건설㈜ 이휘성 허창수 우상룡.../ blog.naver.com/thsudb/ 마지막다이어트는 ..(daum 2016)

 

  전광우 : 전성천 사망했다. 시신은 성남교회에서 장례를 마친 뒤 경기도 용인시 기흥면의 선산에 안장되었다. 아버지 : 전옥영 어머니 : 김남이 동생 : 조카 : 전광우(1949- ,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역임) 조카며느리 : 하정화(1953 - ) 다섯째 동생 : 전상근(全相根, 19271018 - ), 과학기술처 종합상황실장, 삼전복지재단.../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daum 2016)

 

  전광우 : 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위원장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관세청장&건설교통부 차관 정부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이명박 정부 초대 전광우(全光宇) 200831 ~ 20091 20일 서울 서울대 경제부총리 특별보좌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국제금융센터 원장&딜로이트코리아 회장 2대 진동수(陳棟洙) 20091.../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daum 2016)

 

  전광우 : 전광우(全光宇, 194957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금융인이고 전 정무직 공무원이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교수, 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 국제금융센터 원장,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 코리아 회장, 포스코 이사회 의장, 대한민국 국제금융대사 등을 거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초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2009년부터 2013 4월까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였다. 2013 5월 이후 현재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학력 :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Executive Program, 인디애나대학교 경제학 석사, 경영학 석사, 경영학 박사,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졸업, 고입 검정고시 합격(daum 2016)

 

  전광우 : 전광우 대한민국의 기업인, 출생일 1949-05-07,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대한민국의 공무원, 대한민국의 기업인, 대한민국의 금융인, 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명박 정부의 장·차관급 공직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인디애나대학교 동문,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동문, 미시간주립대학교의 교수(daum 2016)

 

  전광우(전광우 理事) [記事] : 전광우(지보면 출생) 전 금융위원장이 2016 318일 코리안리 사외이사에 선임됐다.(醴泉新聞 20160325() 10: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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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선 : 자료일람/ 예천 금당실 농민군 전규선, 손자 두형/ 대상인물 전규선(全奎選) : 1869~1894. 예천 금당실 출신. 살기 좋다고 해서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히는 금당실은 아랫금당실과 윗금당실로 나뉘며, 윗금당실은 세력이 가장 큰 명문 함양 박씨가 모여살고 아랫금당실에는 여러 성씨들이 모여살고 있음. 이 마을 옥천 전씨가의 한 사람인 전규선은 동학에 입도하여 활약했음./ 증언인물 전두형(全斗瀅)/ 가계도 정리자 신영우/ 출전 다시피는 녹두꽃/ 미리 예고 없이 찾아가서 100년 전의 갑오년 사건과 조부에 관한 일을 물었다. 1986222일은 찬바람이 불어와 쌀쌀한 날이었다./ 동학 당시에 그 어른이 나가셨다는 얘기만 들었지, 사실 들은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동학에 나가서 그 어른이 돌아가셨다, 나가신 날은 8월 초열흘날로 알고, 그래가지고 나가신 날에 행사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어요. 얘가 우리 집 큰애인데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때가 되면 조부님 산소에 가서 성묘하곤 했지만 그 산소는 빈 산소라요. 그러면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증언자는 느딘없이 조부에 관해 묻는 말에 상기된 모양이었다. 혼자서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온 오래된 사연이 비로소 말로 변해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과장은 없었다./ 조부님이 나가신 날은 조모님뿐 아니라 집안어른들, 종조부가 계셨으니께 나가신 날이라고 그래서 그날로 제물을 놓고 제사만 지냈을 뿐이지 그 뒤 어디 가셨는지 어찌 되셨는지 다른 것은 아는 것이 없습니다. 동학에 관계됐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당시 규자 철자[奎轍, 1880~1960]하는 종조부가 계셨고 그와 같은 얘기를 전해주셨지요. 집에 또 조모님이 계셨지만 당신만의 말 못할 사정으로 여겨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계셨지요./ 18946월 말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했다는 소식이 전국에 퍼졌다. 각지의 동학 조직은 즉각 스스로의 힘으로 일본의 침략행위를 징벌하고 축출하기 위해서 무장봉기를 준비했다. 예천의 농민군도 무기를 모으고 군량을 확보하는 등 활동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읍내에 결성된 민보군과 충돌하게 되었다. 동학농민군이 떼를 지어 무장을 하고 부잣집을 들이쳐서 돈과 곡식을 강제로 걷는 것을 화적과 같다고 본 것이다. 89일 밤 조총, , 철퇴를 든 농민군 11명이 군량과 무기를 모으며 다니던 중 민보군에게 사로잡혔다. 이들은 예천 일대를 압도하던 동학의 큰 세력을 믿고 우리는 모두 동학도인인데 우리를 죽인 후 너희들이 감히 살 수 있을 것 같으냐?”하며 민보군을 협박하였다. 그러자 격분한 민보군은 이들을 한천가로 끌고 가 생매장해버렸다. 이 사건은 농민군과 민보군 사이에 일대 결전을 벌이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전규선이 이들 11명 중의 하나라고 밝혀주는 기록은 없다. 민보군은 문초 기록도 남겨놓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그렇다고 추정할 근거는 있다. 옥천 전씨의 족보에 전규선이 작고한 날을 8 10일로 밝혀놓은 것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예천의 북부였다. 금당실과 가까운 곳이다. 그리고 한천가의 사건이 일어난 날이 10일이었다. 가족들은 그 내용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떠난 날인 10일을 족보에 기일로 기록하고 제사를 지내왔다. 그리고 그날을 집 나간 날이라고 말해왔을 것이다. 증언자 전두형 씨는 조부가 해를 입은 곳이 문경 산양의 어느 곳이라고 한다. 그해 829일 예천의 농민군은 문경 부근 석문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다. 이때 많은 농민군이 희생되는데, 바로 여기서 해를 입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집 나간 날짜를 기일로 정해온 것은 예천 사건이 일어난 날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당실에 처음 오게 된 것은 지금 내 대까지 하면 삼대지요. 여기 오셔서 백여 년이 좀 넘었어요. 이 어른들이 여기 오셔서 자리잡고 살았지요. 본래 하리[下里] 우곡이라는 데 살았어요. 아주 예전에는 봉화 이산면 의곡 의실이라는 데 살았지요. 그때하고 여기 하리 올 때만 해도 그렇게 잘살았다고 해요. 그래가지고 모여있던 집들이 뿔뿔이 헤어져서 여기도 오고 저기도 가고 그랬다고 해요. 하리에서 여기 온 까닭은 전부 이분들이 글만 읽고 그러니 살림도 폐하고 여기 와서 상당히 땅도 있고 그랬는데, 당시 글만 하다 보니께 다 없어져버리고 또 증조부 되는 이 어른도 여기 와서 문학하고 그랬단 얘기를 들었어요. 이건 영산에 가면 이경구 씨가 있지요. 거기서 같이 문학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그 어른이 그래요. 아직도 내가 다만 얼마 가지고 있는 한적본 책은 다 세전되어온 겁니다./ 옥천 전씨가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하리에서 금당실로 이주했다. 그것은 사회분위기를 보여주는 현상의 하나였다. 19세기에 들어와 사회혼란이 심해지자 난을 피할 수 있다는 명당과 길지를 찾아 새로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름난 산 주변에는 마을이 생겨나는 변화도 나타났다. 금당실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조부님의 능력이 어떻다 하는 얘기는 듣지 못했어요. 다만 동학 때문에 나가서 집이 망했다는 말만 들었지요. 하여튼 살기는 그 당시 여유있게 살았어요. 종조부 그 어른이 두 집 살림을 같이 하시면서 살았지요. 전씨는 금당실에 십여 호가 모여 살았는데 갑오년 이후 동학 때문에 모두 외지로 떠났지요. 우린 조부님이 돌아오시지 않고 아버님이 어려서 그대로 마을을 떠날 수 없었지요./ 집안에서 젊고 활달한 장남이 갑자기 없어지면 여러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아들을 중시했던 관행을 생각하면 전씨가의 혼란이 어떠했을까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894년에 14살이었던 전규선의 아우 전규철이 집안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처리하는 중심이 되었다. 동학에 입도한 일가들은 후환 때문에 모두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집안의 대들보가 들어오지 않은 채로 집을 옮길 수는 없었다./ 여기 오셔서 조부님과 종조부님 대부터 권씨네와 계를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권씨와 전씨 두 성만 하고 있는 계지요. 계의 절목이란 게 별로 없어요. 선세수계 선세속계[先世修契 先世續契]라 해서 예전 어른들이 하던 계를 지금도 따라한다는 것이죠. 요즘 말로 하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한다는 거죠. 한때 문제가 있어 모이지 않기도 했지만 다시 옛 어른의 뜻을 이어서 해나가고 있어요. 그 권씨 중에 한 집의 어느 분이 할배하고 같이 나가서 제사를 한 날에 지내고 있지요. 여기 권씨는 양반 예천 권씨래요. 그 중에도 한 분이 동학에 들어가서 나갔다는 거죠. 그 집에 가서 이 일을 확인할라하면, 지금 그 집에는 안양반이 혼자 살아요. 자세한 얘기는 못 들을 거예요./

 

  동학을 같이했던 이웃 권씨 중 한 사람도 같은 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처럼 가까왔던 마을사람들과는 대를 이어서 지금껏 계를 이어나가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인근의 양반 지주들은 동학도들의 행동을 못 잊고 오래도록 이들을 백안시했을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계는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여기 땅은 임종상이란 사람과 이중화 씨 것이 많이 있었지요. 이중화 씨는 양주대감 이유인의 아흔아홉 칸 집을 사가지고 온 사람이죠. 법부대신을 지낸 이유인이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하는데 그 얘기는 대중이 없지요. 밑에 일을 하는 사람이 그랬다는 거죠. 금당실에서는 논이 많아서 벼농사를 많이 했는데 왜정 때는 목화를 많이 갈았죠. 그때는 강제로 목화를 심었죠. 백 년 전은 몰라도 왜정 때는 여기서 면화가 잘 되었어요. 우리도 많이 갈았고 내가 직접 봤어요. 조모님은 면포를 많이 짰지요. 암만요. 그건 많이 했어요. 혼자 계신 분들이 소일하고 그러자니 또 거북하고 그러자니 많이 짰지요. 재산요? 내가 가진 토지는 선대부터 내려온 것을 더 사지도 팔지도 않은 상태지요. 모두 용문에 있는데 밭이 삼천 평이고 논이 삼천 평이지요. 밭은 삼백 평이 한 마지기로 치기 때문에 열 마지기고, 논은 이백 평이 한 마지기여서 열다섯 마지기예요. 갑오년에 살던 집은 맨 여기래요. 이 집은 육십오년 되어서 내하고 한 동갑이요. 내가 어른들한테 들으니 나하고 한 동갑이예요. 조부님이 살던 집은 다 없어졌어요. 새로 지었지요. 면포는 예천장에 팔았어요. 이건 을사년 애감록[哀感錄]인데, 이것 보세요. 예천, 풍기, 안동의 유생들이 조문을 왔지요. 생원, 진사, 지평도 있어요. 권원장 상룡은 양반들이 모이던 서원의 원장 권상룡입니다./ 금당실은 지금도 이유인(李裕寅)에 대한 이야기가 떠돈다. 이유인은 민비에게 접근해서 출세를 거듭한 사람이다. 그는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충주로 피신한 민비가 대궐로 돌아갈 때를 예언해서 신임을 얻은 무당 진령군(眞靈君)에게 접근해서 양주 목사, 경상 감사를 역임한다. 대한제국 때는 법부대신을 지내고 예천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금당실에 99칸짜리 저택을 짓고 군림했다. 1900년에는 민보군의 주축이 된 향리를 억누르고 동학의 재기를 막으면서 농민들을 통제하는 향약을 만들어서 약정이 된다. 예천 일대는 면화가 잘 되어 많이 심었다 면포를 짜서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농촌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중심이 되기도 했다. 1894년 이후에는 동학 때문에 일찍 남편을 잃은 부인들이 면포를 짜며 시름을 달랬다는 일화가 여러 집에서 전해지고 있다.(//db.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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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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