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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735:정지량-정지순-정지유-정지익(祝군청,예천진호양궁클럽)
작성자장병창 @ 2017.04.05 06:17:20

  예천의 자랑 4735 : 정지량-정지순-정지유-정지익(附 예천군, 도로명주소업무로 국무총리표창 수상...축하합니다/예천진호양궁클럽, 2일 대구양궁협회장배대회에서 수상 쾌거...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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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량 : 11(을미)/ 서명 해사일기(?日記)|해사일기(?日記) 1|계미년(1763/ 저자 조엄(?)/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기행류(紀行類)/ 초록 정지량(鄭至良)|이정환(李晶煥)|홍대원(洪大源)|강한(姜翰)|신경조(申景祖)|신대손(申大孫)|이언중(?)|정언충(?)|홍역(?), 예천(醴泉)|용궁(龍宮)|상주|예천|나주, 금산 군수(金山郡守)|비안 현감(比安縣監)|찰방|순흥 부사(順興府使)|봉화 현감(奉化縣監)|풍기 군수(?基郡守)|나주 목사(羅州牧使)/ 내용 음. 예천(醴泉)에 닿았다.일찍 출발하여 낮에 용궁(龍宮)에서 쉬는데, 그 고을 원 정지량(鄭至良)ㆍ금산 군수(金山郡守) 이정환(李晶煥)ㆍ비안 현감(比安縣監) 홍대원(洪大源)/ 자료제공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한국고전종합DB(//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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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순 : 승정원일기/ 정조 5113(병술) 원본1478/탈초본81(7/20) 1781년 乾隆(/高宗) 46/ ○ 有政。吏批, 判書李衍祥進, 參判金夏材實錄廳進, 參議李敬養進。以鄭志儉爲副提學, 李性源爲右參贊, 沈念祖爲奎章閣直提學, 金魯鎭爲戶曹參判, 任觀周爲敦寧都正, 鄭一祥爲同經筵, 李性源爲奉常提調, 蔡弘履爲司饔提調, 洪秉聖爲宗簿正, 金光岳爲軍資正, 朴禮源爲司僕主簿, 徐命全爲儀賓都事, 金履中爲引儀, 李樂培爲延安府使, 金安默爲白川郡守, 金樂豊爲咸陽府使, 故郡守李國輔贈吏參例兼, 學生李命臣贈吏議, 故檢閱李潤朝贈弘文應敎例兼, 以上慶尙監司李文源, 本生家三代追贈, 鄭持淳爲醴泉郡守, 呂萬永爲咸安郡守, 崔夢??基郡守。(//db.history.go.kr/2014)

 

  정지순 : 승정원일기/ 정조 5129(임인) 원본1479/탈초본81(40/41) 1781년 乾隆(/高宗) 46/ ○ 辛丑正月二十九日午時, 上御誠正閣。左副承旨, 下直守令, 同爲入侍時, 左副承旨沈念祖, 假注書趙衍德, 記事官朴行淳·鄭東浚, 安州牧使金履禧, 咸陽府使金樂豊, 通津府使柳孝源, 豊基郡守崔夢?, 密陽府使金履鐸, 咸安郡守呂萬永, 延安府使李樂培, 丹陽郡守黃?, 醴泉郡守鄭持淳, 祥原郡守鄭駿采, 白川郡守金安默, 南海縣監張益大, 以次進伏訖。上曰, 進前。履禧進伏。上曰, 職姓名。履禧奏曰, 安州牧使金履禧矣。上曰, 爾其下往善爲也, 七事則姑置, 宣諭則自政院聽受, 可也。命履禧先退, 樂豊進伏。上曰, 職姓名。樂豊奏曰, 咸陽府使金樂豊矣。上曰, 前以連中見遞乎? 念祖曰, 然矣。... 持淳進伏。上曰, 職姓名。持淳曰, 醴泉郡守鄭持淳矣。上曰, 爾在桂坊時, 與姜趾煥同遞乎? 持淳曰, 然矣。上曰, 向在嶺邑時, 下考於李性源手乎? 持淳曰, 然矣。上曰, 爾之固執最欠, 必以周通爲政, 可也。觀其狀貌, 極甚佳好, 何不觀科乎? 念祖曰, 未知其故矣。命持淳先退, 駿采進伏。上曰, 職姓名。駿采曰, 祥原郡守鄭駿采矣。上曰, 夫馬上來乎? 駿采曰, 姑難下去, 故夫馬還爲下送矣。命駿采先退, 安默進伏。上曰, 職姓名。安默曰, 白川郡守金安默矣。上曰, 曾經幾邑乎? 安默曰, 只經長水, 而以點下落任矣。上曰, 今番則必以剛果爲治, 可也。安默曰, 謹當?念擧行矣。命安默先退, 翼大進伏。上曰, 職姓名。翼大曰, 南海縣令張翼大矣。上曰, 爾以何薦出六乎? 翼大曰, 本以宣薦, 而爲武兼出六矣。上曰, 爾是初邑乎? 翼大曰, 然矣。上曰, 爾其善治, ?前官之恥, 可也。命翼大先退。上曰, 兼春秋亦兼兵曹郞廳, ?隨凡節, 雖在詣閤之時, 必爲申飭也。命退, 承史以次出。(//db.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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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유 : 비변사등록 99 > 영조 12 4> 이번 試券의 折封 이하를 單子로 써 들일 것인지를 묻는 承政院의 계에 대해 써 들여 반포하라는 전교와 그 單子(1736-04-28())/ 기사제목 이번 試券의 折封 이하를 單子로 써 들일 것인지를 묻는 承政院의 계에 대해 써 들여 반포하라는 전교와 그 單子/ 연월일 영조 12 17360428()/ 政院啓曰, 入格試券, 折封以下則例爲單子書入而頒布矣, 今此試券, 折封已下, 單子書入, 仍爲敢稟, 傳曰, 規例如此, 單子書入, 爲先頒布, 鄕居與否, 問于備局以啓,/ 幼 洪啓萬 廣州/ 金泰儉 開城府/ 尹光理 草溪/ 進 李鎭儀 平山/ 生 申孝源 平山/ 進 宋載和 懷德/ 鄭錫台 楊根/ 韓師春 靑山/ 鄭光寧 陽城/ 丁志有 醴泉/ 朴道鳴 南陽/ 金漢最 瑞山/ 黃再僖 楊州/ 權益明 衿川/ 鄭就河 昌平(//db.history.go.kr/2014)

 

  정지유 : 비변사등록 99 > 영조 12 4> 鄕儒로 別科에 입격한 사람들의 居鄕與否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하는 成均館 官員의 啓(1736-04-29())/ 기사제목 鄕儒로 別科에 입격한 사람들의 居鄕與否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하는 成均館 官員의 啓/ 연월일 영조 12 17360429()/ 成均館官員, 以大司成意啓曰, 因備邊司啓辭, 今此鄕儒別科入格人居鄕與否, 令本館査問事命下矣, 卽爲訪問於泮中留接儒生及各其主人處, 則金兌儉居開城府, 尹光理居草溪, 李鎭儀居平山, 申孝源居義城, 宋載和居懷德, 韓師泰居靑陽, 丁志有居醴泉, 金漢最居瑞山, 鄭光寧居陽城, 鄭就河居昌平, 竝爲世居鄕中, 而洪啓萬則自十年前, 居籍於廣州云, 鄭錫泰·朴道鳴·黃再僖·權益明四人, 旣無泮中主人, 又無相知儒生, 其居鄕與否, 無以聞知矣, 今此許多儒生之自本館査問, 不過探得於泮中主人之所告, 及相親儒生之相傳, 則其所言說, 難保其眞的, 今若考出數三式年戶籍, 則可以明知, 令漢城府卽爲考籍以稟何如, 傳曰, 允。(//db.history.go.kr/2014)

 

  정지유 : 국역비변사등록 99 > 영조 12 4> 이번 試券의 折封 이하를 單子로 써 들일 것인지를 묻는 承政院의 계에 대해 써 들여 반포하라는 전교와 그 單子(1736-04-28())/ 기사제목 이번 試券의 折封 이하를 單子로 써 들일 것인지를 묻는 承政院의 계에 대해 써 들여 반포하라는 전교와 그 單子/ 연월일 영조 12 17360428()/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입격시권(入格試券)을 절봉(折封) 이하는 단자(單子)를 써들여서 반포하는 것이 예()입니다. 이번에 시권(試券 : 시험 답안지 )도 절봉 이하를 단자를 써들일 것인지를 감히 묻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규례가 이와 같으니 단자를 써들여서 먼저 반포하고 향거(鄕居) 여부(與否)에 대하여는 비국에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 홍계만(洪啓萬) 광주(廣州), 김태검(金泰儉) 개성부(開城府), 윤광리(尹光理) 초계(草溪), () 이진의(李鎭儀) 평산(平山), () 신효원(申孝源) 평산(平山), () 송재화(宋載和) 회덕(懷德), 정석태(鄭錫台) 양근(楊根), 한사춘(韓師春) 청산(靑山), 정광영(鄭光寧) 양성(陽城), 정지유(丁志有) 예천(醴泉), 박도명(朴道鳴) 남양(南陽), 김한최(金漢最) 서산(瑞山), 황재희(黃再僖) 양주(楊州), 권익명(權益明) 금천(衿川), 정취하(鄭就河) 창평(昌平)(//db.history.go.kr/2014)

 

  정지유 : 국역비변사등록 99 > 영조 12 4> 鄕儒로 別科에 입격한 사람들의 居鄕與否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하는 成均館 官員의 啓(1736-04-29())/ 기사제목 鄕儒로 別科에 입격한 사람들의 居鄕與否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하는 成均館 官員의 啓/ 연월일 영조 12 17360429()/ 성균관의 관원이 대사성의 뜻으로 아뢰기를, “비변사의 계사로 인하여 이번에 향유(鄕儒)로써 별과(別科)에 입격한 사람의 거향여부(居鄕與否)에 대하여는 본관에서 조사하라고 명령이 내렸습니다. 즉시 반중(泮中)에 유접(留接)한 유생과 각기 그들의 주인이 있는 곳을 방문하였더니 김태검은 개성부에 살았으며 윤광리는 초계에 살고, 이진의는 평산에, 신효원은 의성에, 송재화는 회덕에, 한사태는 청양에, 정지유는 예천에, 김한최는 서산에, 정광녕은 양성에, 정취하는 창평에 모두 대대로 그 고을에서 살고 있으며, 홍계만은 10년 전부터 광주에 호적이 있었다고 하며, 정석태·박도명·황재희·권익명 네 사람은 이미 반중에 주인이 없었고, 또 서로 아는 유생도 없어서 그들의 거향여부에 대하여는 어디에도 물어서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허다한 유생들을 본관에서 조사한 것은 반중주인(泮中主人)의 말에서 탐지하고 서로 친한 유생들이 전해주는 말에 불과하니 그들의 말이 진실인지는 보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만약 수삼년(數三年) 동안의 식년(式年) 때의 호적을 참고하면 분명하게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성부로 하여금 즉시 호적을 참고하여 아뢰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db.history.go.kr/2014)

 

  정지유 : 승정원일기/ 영조 12429(계사) 원본824/탈초본45(14/17) 1736년 乾隆(/高宗) 1/ ○ 李重協, 以成均館官員, 以大司成意啓曰, 因備邊司啓辭, 今此鄕儒別科入格人居鄕與否, 令本館査問事, 命下矣。卽爲訪問於泮中留接儒生及各其主人處, 則金兌儉居開城, 尹光理居草溪, 李鎭儀居平山, 申孝源居義城, 宋載和居懷德, 韓師泰居靑陽, 丁志有居醴泉, 金漢最居瑞山, 鄭光寧居陽城, 鄭就河居昌平, 竝爲世居鄕中, 而洪啓萬, 則自十年前, 居籍於廣州云。鄭錫台·朴道鳴·黃再僖·權益明四人, 旣無泮中主人, 又無相知儒生, 其居鄕與否, 無以問知矣。今此許多儒生之自本館査問, 不過探得於泮中主人之所告及相親儒生之相傳, 則其所言說, 難保其眞的, 今若考出數三式年戶籍, 則可以明知, 令漢城府卽爲考籍以稟, 何如? 傳曰, 允。(//db.history.go.kr/2014)

 

  정지유 : 이번 試券의 折封 이하를 單子로 써 들일 것인지를 묻는 承政院의 계에 대해 써 들여 반포하라는 전교와 그 單子/ 서명 국역비변사등록 99/ 날짜 1736-04-28()/ 분류 고전국역서 > 역사 > 정서류(政書類)/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입격시권(入格試券)을 절봉(折封) 이하는 단자(單子)를 써들여서 반포하는 것이 예()입니다. 이번에 시권(試券 : 시험 답안지 )도 절봉 이하를 단자를 써들일 것인지를 감히 묻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규례가 이와 같으니 단자를 써들여서 먼저 반포하고 향거(鄕居) 여부(與否)에 대하여는 비국에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 홍계만(洪啓萬) 광주(廣州), 김태검(金泰儉) 개성부(開城府), 윤광리(尹光理) 초계(草溪), () 이진의(李鎭儀) 평산(平山), () 신효원(申孝源) 평산(平山), () 송재화(宋載和) 회덕(懷德), 정석태(鄭錫台) 양근(楊根), 한사춘(韓師春) 청산(靑山), 정광영(鄭光寧) 양성(陽城), 정지유(丁志有) 예천(醴泉), 박도명(朴道鳴) 남양(南陽), 김한최(金漢最) 서산(瑞山), 황재희(黃再僖) 양주(楊州), 권익명(權益明) 금천(衿川), 정취하(鄭就河) 창평(昌平)/ 제공 한국사데이터베이스(//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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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익 : 승정원일기/ 영조 24621(갑술) 원본1030/탈초본56(25/46) 1748년 乾隆(/高宗) 13/ ○ 以洪龜錫爲司宰主簿, 田光玉爲司畜別提, ... 趙榮?爲濟用判官, 鄭志翼爲醴泉郡守, 李日成爲良才察訪, ...(//db.history.go.kr/2014)

 

  정지익 : 승정원일기/ 영조 30925(신축) 원본1111/탈초본61(19/21) 1754년 乾隆(/高宗) 19/ ○ 又以義禁府言達曰, 慶尙·黃海兩道監司狀達, 據刑曹粘目內, 醴泉前郡守鄭志翼·柳恕, 金郊前察訪安聖時等, 移本府處之事達下矣。柳恕·安聖時, 今方待令於本府, 卽爲拿囚。而鄭志翼以平壤庶尹, 時在任所云, 依例發遣府羅將拿來, 何如? 令曰, 依。(//db.history.go.kr/2014)

 

  정지익 : 승정원일기/ 영조 301026(신미) 원본1112/탈초본61(13/13) 1754년 乾隆(/高宗) 19/ ○ 甲戌十月二十六日申時, 上御崇文堂。御製編次人來待入侍。儒臣追後入侍時, 戶曹判書李喆輔, 左承旨徐志修, 假注書尹光暹, 記注官李鉉玉, 記事官李聖圭, 以次進伏訖。上曰, 毓祥宮祭文釐正然後, 可以用之。祭文先讀之, 可也。李喆輔奉讀時, 上曰, 兼春秋出去, 儒臣持自省編入侍事, 分付, 可也。... 上曰, 書跡最多於嶺南, 而此猶無之, 則他道則似必無有矣。東星曰, 至於安東則尙多有古時書跡, 有柳文一帙, 在於權姓家, 而乃是鄭圃隱子之受賜冊也。鄭志翼爲醴泉時, 往見得來矣。上曰, 安東蓋多尙文者矣。其冊豈不貴乎? 上曰, 方物封?, 再明當爲之乎? 志修曰, 然矣。仍傳曰, 今番方物封?, 御覽稟單子置之, 只表筒箋筒御覽。考?承旨, 左副·同副承旨擧行。出榻敎 上曰, 承旨入直者, 誰也? 志修曰, 臣與李得宗伴直, 而右副承旨朴師訥, 則與都承旨有應避之嫌, 故尙未出肅矣。上曰, 然乎? 仍傳曰, 右副承旨許遞, 前單入之。出榻敎 諸臣以次退出。(//db.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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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도로명주소업무로 국무총리표창 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醴泉郡, 道路名住所業務 優秀機關으로 選定 : 國務總理表彰 受賞 榮譽 안아) [記事] : 예천군(군수 이현준)은 올해(2017) 전국 243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도로명주소업무추진 평가결과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국무총리 기관표창을 수상했다. 이번 평가결과는 도로명주소 홍보실적, 도로명주소 시설물설치 실적, 도로명주소 군민체감지표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우수기관을 선정했다. 특히, 예천군에서는 예천아카데미, 지적민원현장방문, 농업인교육 등 군민에게 홍보할 수 있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도로명주소 홍보로 바뀐 제도가 생활 속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예천군 종합민원과장은 이번 업무평가에서는 국무총리표창에 그쳐 조금 아쉬운 점도 있지만, 도청이전으로 경북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예천의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고 군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도로명주소 정책을 펼쳐 다음평가에는 더 좋은 결과를 낳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醴泉뉴스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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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진호양궁클럽, 2일 대구양궁협회장배대회에서 수상 쾌거...축하합니다.

 

  예천진호양궁클럽(예천진호양궁클럽 同好人大會 受賞 快擧 : 團體戰 헌팅部 1, 個人戰 헌팅部 1, 2, 3位 휩쓸어) [記事] : 예천진호양궁클럽(회장 김상익)20174 2일 대구시 앞산 양궁장에서 열린 6회 대구 양궁협회장배 동호인 양궁대회6(경기부 1, 헌팅부 5)이 참가해 헌팅부 단체전과 개인전을 모두 석권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번 수상으로 예천진호양궁클럽은 예천군의 양궁을 대표하는 동호인 단체의 면모를 대내외에 알리고 활의 고장 예천의 이미지를 더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이날 대회에 참가한 전국의 동호인들에게 올해 1013일부터 1016일까지 개최되는 3회 예천세계활 축제성공개최를 위한 홍보에도 주력했다. 예천진호양궁클럽은 20155 26명의 회원으로 창립했으며 정기적인 습사와 회원들의 경기력 향상 및 성적향상을 위해 매월 1회 이상 정기전을 가지며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하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단체이다. 특히, 전국 양궁 동호인대회에 지속적으로 참가해 지난 20168 287회 괴산군 전국 동호인 양궁대회에서 컴파운드 헌팅부 개인전 2위와 올해 25일 보은에서 개최된 30회 한국양궁지도자협의회 전국 실내대회에서도 컴파운드 개인전 헌팅부 2위와 경기부 장려, 단체전 헌팅부 1위 및 경기부 3위를 달성한바 있다. 예천진호양궁클럽에서는 양궁에 관심이 있고 색다른 취미생활을 원하는 분들의 가입을 언제나 환영하며 동호회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항상 문을 열어두고 있다.(醴泉뉴스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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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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