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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 4781 : 조원하(2)-조윤제-조은애(1)(附 무학정(신태학, 이상배, 도동섭, 주영봉, 권정미), 14일 경주 호림정에서 열린 도대회에서 우승함/풍양초 김상연, 도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우수상 입상...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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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하 : 조선왕조실록/ 고종 32권, 31년(1894 갑오 / 청 광서(光緖) 20년) 12월 27일(기사) 2번째 기사/ 총리대신이 영남 지방 관리들의 정사의 평가를 보고하고 그 처벌을 아뢰다/ 총리대신(總理大臣)이 아뢰기를, “방금 영남 위무사(嶺南慰撫使) 이중하(李重夏)의 장본(狀本)을 보니, 관리들의 정사를 잘하고 못한 데 대하여 열거하였습니다. 경상 전 감사(慶尙前監司) 이용직(李容直)은 순전히 백성을 괴롭히는 것만 일삼아서 그 해독이 만백성에게 미쳤는데 탐오한 돈이 47만 6,356냥(兩) 6전(錢) 9분(分)이고, 전전 통제사(前前統制使) 민형식(閔炯植)은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재물을 약탈하는 것이 세 도(道)에 다 미쳤는데 탐오한 돈이 72만 1,277냥입니다. 감사(監司), 병사(兵使), 수사(水使)의 책임은 더없이 중요한데도 백성을 학대하고 나라를 저버린 것이 대번에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없이 통분하여 차라리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 해당 아문(衙門)에서 나문(拿問)하여 정죄(定罪)하고 탐오한 돈은 받아내어 공금을 충당해야 할 것입니다. 민형식은 위리안치(圍籬安置)하라는 명이 내린 후에도 귀양지에 가지 않았으니 더구나 심히 놀랍고 통분한 일이어서 문목(問目)에 더 넣을 것입니다. ... 인동 부사(仁同府使) 조응현(趙應顯)은 비적(匪賊)을 잡아서 두목의 머리를 베었고 무마하는 일을 잘하였으며, 예천 군수(醴泉郡守) 조원하(趙爰夏)는 백성들을 격려하여 적을 쳐서 각 고을에서 기세를 올리게 하였습니다. 창녕 현감(昌寧縣監) 조병길(趙秉吉)은 함부로 거두어들이는 일을 철저히 없애고 여러 가지로 은혜를 베풀었으며, 초계 군수(草溪郡守) 이찬희(李贊熙)는 대오(隊伍)를 결속하여 비적을 잡고 자기 녹봉을 내어 구제를 잘하였습니다. 모두 표리(表裏) 1습(襲)을 줄 것입니다. 경상도(慶尙道) 중군(中軍) 박항래(朴恒來)는 군무(軍務)를 정리하고 적의 소굴을 소탕하였으니 방어사(防禦使)의 이력을 허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원본】 36책 32권 72장 B면 /【영인본】 2책 533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상-동학(東學)(//db.history.go.kr/2014)
조원하 : 조선왕조실록/ 高宗 32卷, 31年(1894 甲午 / 청 광서(光緖) 20年) 12月 27日(己巳) 2번째 기사/ 총리대신이 영남 지방 관리들의 정사의 평가를 보고하고 그 처벌을 아뢰다/ 總理大臣奏: “卽伏見嶺南慰撫使李重夏狀本, 則論列吏治贓否矣。 慶尙前監司李容直, 專事浚剝, 流毒萬姓, 贓錢爲四十七萬六千三百五十六兩六錢九分。 前前統制使閔炯植, 貪虐攘奪, 遍及三道, 贓錢爲七十二萬一千二百七十七兩。 藩梱責任顧何如? 而虐民負國, 一至於此, 痛恨之極, 寧欲無言。 竝令該衙門拿問定罪, 所犯贓錢, 徵納充公。 而閔炯植圍置命下之後, 尙不到配, 尤極駭?, 問目中添入。 前監司幕裨玄明運·安鍾祐、前前統制使幕裨洪永疇、衙客秋柏燁, 居間騙財, 作爲?賊, 亦令照法嚴懲。 晉州前兵使閔俊鎬, 徒懷愚怯, 厚待匪類, 河東告急, 不送一卒, 拿問重勘。 星州前牧使吳錫泳, 徑避潰衆, 空城與賊之罪, 已經勘配, 勿論, 順興府使李寬稙, 任猾胥而公納無期, 護亂類而衆憤益甚, 玄風縣監金華埴, 重?生弊, 闔境怨?, 彦陽縣監尹弘植, 濫斂致擾, 百度?錯。 竝罷黜。 咸陽郡守金永順, 病不行步, 難任重地, 改差。 山淸縣監鄭宓源, 盡心救?, 失之太柔, 推考。 聞慶府使金禎根, 演武設約, 邪類竝伏, 許用水使履歷。 居昌府使丁觀燮, 兵餉捐?, 屢?隣賊; 安義縣監趙元植, 奮勵忠義, 掃蕩妖邪。 竝加資。 仁同府使趙應顯, 捕匪斬魁, 撫綏得宜, 醴泉郡守趙爰夏, 勵衆擊賊, 列邑增氣。 昌寧縣監趙秉吉, 痛革濫斂, 惠?備至, 草溪郡守李贊熙, 作隊捕匪, 捐?備賑。 竝賜表裏一襲。 慶尙中軍朴恒來, 整理軍務, 掃蕩賊窟, 許用防禦履歷何如?” 允之。/【원본】 36책 32권 72장 B면 /【영인본】 2책 533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상-동학(東學)(//db.history.go.kr/2014)
조원하 : 仁同府使 趙應顯·醴泉郡守 趙爰夏·昌寗縣監 趙秉吉·草溪郡守 李贊熙 등에게 表裏 一襲을 하사하라고 綿紬 각 2段씩 8盛이 든 함을 내려 보낸다는 關子가 도착했다는 來牒./ 서명 公文編案/ 발신자 慶尙道觀察使/수신처 度支衙門/ 날짜 1895-03-08/ 분류 문서 > 개항기 > 공문편안/ 서명 公文編案/ 청구기호 奎 18154/ 책수 18冊/ 제공 규장각한국학연구원(//www.history.go.kr/2014)
조원하 : 仁同·醴泉·昌寧·草溪의 수령에게 명주 2필씩을 나누어주고 그 경과를 보고하라는 去關./ 서명 公文編案/ 발신자 度支衙門/ 수신처 嶺營/ 날짜 1895-01-30/ 분류 문서 > 개항기 > 공문편안/ 서명 公文編案/ 청구기호 奎 18154/ 책수 18冊/ 주요내용 嶺南慰撫使 李重夏의 장계를 받은 총리대신이 지난 해 12월 27일 仁同府使 趙應顯과 醴泉郡守 趙爰夏· 昌寧縣監 趙秉吉· 草溪郡守 李贊熙의 치적을 왕에게 말씀드리고 재가를 받아 명주 2필씩 모두 8필을 궤에 넣어 내려 보내니 嶺營에서 네 고을에 나누어주라는 것./ 제공 규장각한국학연구원(//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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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趙潤濟, 1904~1976) : 號는 陶南이며 咸安人이며 知保里에서 출생함. 醴泉公立普通學校 입학, 大邱高等普通學校와 서울大學校의 전신인 京城帝大豫科를 거쳐 京城帝國大學校 法文學部 출신으로 朝鮮語學 朝鮮文學을 전공함. 1930년 京城帝國大學 法文學部의 助手로 國文學 연구에 몰두하다가 1931년 4월 中央佛敎專門學校(現 東國大學校) 講師로 취임하여 우라 學問을 강의하였으며, 1932년에는 京城師範學校 敎諭로 임명되었으며, 震檀學會를 조직하기도 하고, 朝鮮詩歌史網을 출간하기도 하여 荒蕪地에 가깝던 國文學의 기초를 닦았다. 1939년 校註 春香傳을 발간하여 國文學 古典의 註釋을 다는 嚆矢가 되었다. 朝鮮語學會 사건에 연루하기도 하고 日帝의 우리 말 말살시책에 따라 儆新學校, 梨花女子專門學校, 養正中學校, 東星商業學校, 中央中學校, 天主敎神學校 등의 강사를 거쳤다. 1945년에는 강사 자리에서 쫓겨나 귀향을 한 적이 있으며 해방이 되자 상경하여 京城大學校 法文學部 再建 責任을 맡고 일제탄압으로 없어졌던 震檀學會를 재조직 강화하였다. 1946년 3월 京城大學校 法文學部 部長으로 임영되고, 8월에는 京城大學이 서울大學校로 개편되자 동 大學院 副院長 겸 文理科大學 敎授로 임명되었다. 1948년 4월에 朝鮮詩歌의 硏究라는 論文集을 출간, 1949년에 國文學史를 출간하였고, 10월에는 서울大學校 文理科大學 學長에 취임하고 1950년 3월에 사임을 하였으며 6?25 사변으로 인민군에 피납되기도 했으며, 10월에 서울大學校를 사임하고 成均館大學의 敎授로 轉任하였다가 12월에 還故하여 침거생활 중 芝圃八景을 지었음. 1952년 成均館大學이 부산에서 재개교하자 거기서 강의를 하였으며, 3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國文學博士學位를 서울大學校에서 받았다. 1953년 4월에 成均館大學校 大學院長에 취임하였고 8월에 高等考試委員에 위촉되었다. 1955년 1월에 成均館大學校 副總長에 잠간 머물다가 사임하고 10월에는 國文學槪說이라는 책을 출간, 1960년 4월 25일 在京 각 大學敎授團의 데모를 주도하여 학생들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하였으며, 5월 29일에는 韓國敎授協會를 결성하여 의장에 피선되었으며, 6월에는 다시 成均館大學校 大學院長에 補任되었다. 1963년 7월에 大韓民國 學術院에서 第8回 學術院賞을 받았으며, 그 뒤 大邱 嶺南大學校에서 國文學 講義를 한 적이 있었다.(知保面홈페이지 2013)
조윤제(國文學 硏究 開倉·民族解放 獻身한 實踐的 知識人 : 醴泉이 낳은 國文學者 陶南 조윤제 博士, 1904年 知保面 知保里서 出生 京城帝國大學 第1回 文科學生 民族解放을 爲해 學問에 專念 論文 發表·사적 硏究 等 獻身) [記事] : 예천군을 충(忠)효(孝)의 고장이라고 한다. 충은 이순신을 구한 약포(藥圃) 정탁(鄭琢) 대감을, 효는 효자 중의 효자 명심보감에 나온 야계(也溪) 도시복(都孝子)을 말한다. 2015년 예천군(군수 이현준)은 경북의 중심 도청이전 신도시 건설을 앞두고 지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선현 발굴과 충효정신, 선비정신, 동학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정립해 나가기로 했다. 15세기 예천군은 야은 길재, 강호자 김숙자, 사육신 하위지(河緯地)와 생육신 이맹전(李孟專) 등이 활약한 선산과 더불어 퇴계 이전에 유학의 중심지였다. 예천 출신의 유학자인 송정 조용 16년, 별동 윤상 16년, 나암 이문흥(1423(세종 5)∼1503(연산군 9) 20년 등 50년 이상 조선 초의 유학과 문묘의 관리를 맡은 성균관의 책임자인 정3품 대사성(지금의 서울대 총장)이 되어 조선의 학문을 책임졌던 인물들은 모두가 예천 출신의 유학자였다. 또 현재 법조인, 경제인, 문학인, 장군, 학자들이 지금도 인구비례 타 시군에 비해 월등히 인재가 많이 배출된 곳이다. 이에 경북일보가 시대를 풍미했던 지역 출신의 역사적인 인물인 국문학의 개척자인 조윤제 박사를 소개한다.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출생으로 민족과 통일을 위한 학문에 전념했던 도남 조윤제(趙潤濟·1904~1976) 박사는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도남(陶南)이다. 아버지 용범(鏞範)과 청주 한씨(淸州韓氏) 사이의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1924년 3월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豫科)가 창설되자 제1회생으로 문과에 입학했다. 이어 1926년 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문학과에 진학, 조선어문학을 전공하는 유일한 학생이 됐다. 1929년 3월에 동 학부를 졸업, 문학사의 학위를 얻었다. 이어 동 학부의 촉탁(囑託)·조수를 거쳐 1932년 3월 경성사범학교 교유(敎諭 : 일제 때, 중등학교의 교원)로 임명돼 그 해 4월에 그의 첫 저서가 된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을 쓰기 시작했다. 1939년 3월 경성사범학교를 사임, 자유의 몸으로 당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도서관장이던 손진태(孫晉泰)와 대학 후배인 이인영(李仁榮)과 모여 학문 연구방법론을 토론하고, 그 결과 민족사관의 입장을 밝혔다. 그 뒤 경신학교·양정중학교·동성상업학교·천주교신학교 등의 강사를 지냈다. 1945년 8월 조국광복과 함께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건의 책임을 맡았으며, 이어 동 대학의 법문학부장, 개편된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부원장, 문리과대학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고, 다시 성균관대학교 교수, 대학원장 및 부총장을 역임한 뒤 청구대학·영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가 71세 때인 1974년 2월 영남대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그의 저서로는 일제하에서 자비로 출간한 '조선시가사강'(1937)을 필두로 '교주 춘향전(校註春香傳)'(1939)·'조선시가(朝鮮詩歌)의 연구'(1948)·'국문학사(國文學史)'(1949)·'국문학개설(國文學槪說)'(1955)·'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1963) 등 20여권에 이른다. 논문으로는 1929년 2월 '동아일보'에 발표한 '조선문학과 한문학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50여 편, 수필·잡문 등은 거의 100편에 이른다. 도남은 경성제국대학 조선 문과 제1회 단 한 사람의 학생으로 입학 졸업한 분으로, 우리나라 국문학 연구의 개창자이다. 그는 당시 출세가 보장되는 법과나 의학부를 지망하지 않고, '망국의 어문'인 조선어문학과를 지원하여 외롭고 힘든 길을 선택해, 민족을 위한 학문이 독립을 위한 길이라 여기면서 학문에 몰두했다.
1926년 비밀결사를 조직해 순종의 장례식 때 폭동을 선동하는 삐라를 뿌리려다 실패하기도 하고, 만주의 고려혁명당을 찾아서 망명할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자 우리나라 민족정신의 결정인 고전문학의 연구로 방향을 바꿨다. 졸업 후 도남은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수로 임용되어 3년간 연구실 생활을 하며 학자로서의 기초를 착실히 다지는 한편, 1931년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의 후배들과 조선어문학회를 결성하고 국문학 잡지로서는 최초인 '조선어문학회보'를 발간했다. 1934년 도남은 계몽주의적 사조에서 탈피해 실증적인 과학적인 학문을 하자는 것과 일본에 대한 학문적인 항쟁을 하고자 이병도, 송석하, 손진태 등과 함께 '진단학회'를 결성하여, 우리민족의 정신을 주장했다. 1937년 '조선시가사강'을 저술해 국문학역사상 개척적인 업적을 세웠고, 1949년 '한국문학사', '한국시가의 연구', '국문학개설' 등 사대저서를 남겼으며, 서울대, 성균관대, 영남대학의 교수 및 대학원장을 역임하면서 학계활동에서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도남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가 단순한 학자에 그치지 않고, 민족 해방과 통일을 위해 헌신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특히 1948년 김구, 조소앙의 남북협상에 동행하고 4·19혁명 때 대학교수단 시위를 주도하고 그 이후 고조된 통일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으며, 1965년 한일 협정 비준 때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했다. 이같이 도남은 우리나라 국문학연구의 개척자이자, 오로지 민족과 통일을 위한 학문에 전념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경북 도민의 숙원사업이던 도청이전을 올 하반기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예천군은 새로운 천년의 도읍지로서 옛 선현들의 업적과 발굴작업을 통해 예천의 정체성을 정립해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고 있다.(이상만 記者 慶北日報 201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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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애 : 제25회 회장기전국대학실업양궁대회 경기결과 (여자대학)/ 2008.08.05/ 순위 타겟 선수 소속 70M... 2 330/12 12/5 348/23 24/9 1316 55 19 16 29B 박보람 목원대학교 323/4 10/2 323/27 11/5 324/21 11/3 346/30 22/10 1316 54 20 17 22A 조은애 .../ blog.naver.com/archerycyc/ 양궁 스케치(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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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정(신태학, 이상배, 도동섭, 주영봉, 권정미), 14일 경주 호림정에서 열린 도대회에서 우승함.
무학정(武學亭,慶尙北道弓道協會長旗 '優勝') [記事] : 예천 무학정(사두 허후길)이 2017년 5월 14일 경주시 호림정에서 열린 제1회 통합 경상북도궁도협회장기 대회에서 지난 도민체전의 부진을 말끔히 씻는 우승을 차지했다. 도내 30개 정 80개 팀 5백여 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에서 무학정은 신태학, 이상배, 도동섭, 주영봉, 권정미 등 5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무학정은 예선전 통과 후 8강전에서 포항 송호정을, 4강전에서 울릉 성무정을 차례로 꺾고 결승전에서 경주 호림정과 접전 끝에 우승했다. 허후길 회장은 "이현준 군수와 예천군체육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에 감사하다"면서 "궁도의 고장 예천을 알리고, 10월에 열리는 제3회 예천세계활축제와 세계활연맹 창설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무학정은 오는 10월 12일부터 3일 동안 열리는 예천군수배 전국 대회 준비에 힘을 쏟고 있다.(醴泉新聞 2017년 05월 18일 (목) 09: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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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초 김상연, 도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우수상 입상...축하합니다.
풍양초등학교(豐壤初, 慶北 學生科學發明品競進大會 ‘優秀賞’ 入賞 : 生活科學Ⅰ部門에서 4學年 김상연 學生 受賞) [記事] : 풍양초등학교(교장 박희성)은 경상북도과학교육원에서 주최하는 제39회 경상북도 학생과학 발명품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지난 3월, 예천군 발명품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작품을 보완하여 생활과학Ⅰ부문에서 4학년 김상연 학생이 고안한 ‘아기와 엄마를 행복한 꿈길로 인도하는 공갈 젖꼭지’는 평소에 자주 놀러가는 옆집 아기가 공갈 젖꼭지가 떨어질 때마다 우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젖꼭지가 떨어지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이 발명품을 제작하였다. 김상연 학생은 “대회 당일 심사위원의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어요. 대회 전날 제 자신이 충분히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감이 생겨 잘 할 수 있었다.”고 하며 지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다음에도 주변의 힘든 점을 발견하여 훌륭한 발명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풍양초 박희성 교장은 “기초과학 교육에 충실한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과학인재 양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醴泉뉴스 20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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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