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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 4935 : 황여일(7)(附 예천방문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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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광해 5, 癸丑)년 봄 관직을 그만두고 귀가하여서는, 춘추(春秋)를 좋아하여 손수 연의(演義) 책 2권을 썼는데, 책의 이름은 인경연의(麟經演義)이다. 1615(광해 7, 乙卯)년에 동래(東萊)부사를 제수받았다. 당시 동래(東萊)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왜적들의 소굴이 되어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여러 고을이 피폐해져 있었다. 해월(海月) 선생은 먼저 백성의 주거(住居)를 안정시키는 것을 급선무로 하였다. 거주하는 곳이 안정되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체통이 서지 않는다며, 전쟁에 불타 버린 곳을 깨끗이 씻어내고, 지붕을 잇게 하고, 처하는 일마다 태만히 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데 엄숙하고 의지가 굳으니, 왜인들이 삼가 공경하고 복종하였다 한다. 또한 정치가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학교 세우는 일을 늦출 수 없다 하여, 학문을 하는 선비를 찾아서 사대(使臺)라는 직함을 주어 훈도(訓導)의 소임을 맡기고, 정부(政府)의 재정을 축내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봉록(俸祿)으로 일을 시켜 목적하는 바를 이루었다.
1618(광해 10, 戊午)년 8월에 관직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 해월헌(海月軒)을 만귀헌(晩歸軒)이라고 고쳐 불렀다. 9월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제수받았다. 1619(광해 11, 己未)년에는 약포(藥圃) 정탁(鄭琢) 선생의 행장을 찬(撰)했다. 1620(광해 12, 庚申)년 가을에는 조정의 대신(大臣)들이 경상도 감사(嶺伯)로 추천했으나, 시를 써서 정중히 거절하였다. 1622(광해 14, 壬戌)년 4월 2일 병이 심해지자 부인 이씨에게 이르기를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이라"고 이르고는, 자제들을 가르쳐 훈계하기를(敎訓) "집을 잘 돌보는 것이(保護門戶) 내가 깊이 기원하는 바이다(深祝)" 라고 하고는 살아가기 위하여 하는 일(産業)과 죽은 뒤의 일(後事)에 대하여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家席) 편안히 운명하셨으니, 이때 선생의 나이 향년 67세였다. 이때 나라로부터,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겸동지 경연 의금부 춘추관 성균관사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세자좌부빈객(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 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提學藝文館提學 世子左副賓客)이라는 직함을 증직받았다. 8월 13일 평해군의 서쪽 오태산(五台山)에 간좌지원(艮坐之原)으로 안장(安葬)하였다. 선생의 위패(位牌)는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중부(仲父)인 대해(大海) 선생과 함께 모셔져 제향(祭享)되고 있다. 1774(영조 50년, 甲午)년에 문집(文集) 간행(刊行)을 시작하였고, 1776(영조 52년, 丙申)년 청명절(淸明節), 문집(文集) 7책 14권이 목판(木版)으로 완간(完刊)되었다. 책 서문(序文)을 보면, 영조(英祖) 50년인 1774(甲午)년 봄에 판각(板刻)을 시작하여 영조(英祖) 52년인 1776(丙申)년 봄 청명절(淸明節)에 목판(木版) 인쇄(印刷)를 끝냈다고 나와 있는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의 문집(文集) 서문(序文)은 이상정(李象靖, 1711(肅宗 37)년∼1781(正祖 5)년) 선생이 쓰셨던 것이다. 이상정(李象靖) 선생은 본관이 한산(韓山)이고, 호가 대산(大山), 자는 경문(景文)이며, 1735(英祖 11)년에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1739년에는 연원찰방(連原察訪)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대산(大山) 서당을 짓고, 제자들의 교육과 학문 연구에 힘썼다. 1753년에 연일 현감이 되었는데, 이 때에 퇴도서절요(退陶書節要), 심동정도(心動靜圖), 이기휘편(理氣彙編), 경제잠집설(敬齊箴集說) 등 사상적(思想的) 기초를 정립한 저술(著述)을 남겼으며, 또한 사례상변통교(四禮常變通巧), 심무출입설(心無出入說), 주자어절요(朱子語節要), 독성학집요(讀聖學輯要) 등 그 밖에도 많은 저술(著述)을 남겼다. 영남학파(嶺南學派)의 근원(根源)이 되는 이황(李滉) 선생의 사상(思想)을 계승하고 전승하는 입장에서 사상적(思想的) 터전을 마련한 분이다. 그는 정조(正祖)가 왕위에 오른 뒤 병조참지, 예조참의 등에 발탁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고종(高宗) 때 이조판서로 추증이 되었다.
해월(海月) 선생의 문집(文集)은 전체가 7책 14권으로 되어 있으며, 1∼4권까지는, 시(詩)이고, 5권은, 부(賦)와 대책(對策)과 론(論)이며, 6권은, 서(書), 7권은, 소(疏), 장계(狀啓), 교(敎), 전(箋), 표(表), 송(頌), 기(記), 서(序), 발(跋), 8권은, 잡저(雜著), 제문(祭文), 9권은, 은사시(銀○詩), 10∼12권은, 은사일록(銀○日錄), 13권은, 전(傳), 묘지(墓誌), 행장(行狀), 14권은,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해월(海月) 선생 문집(文集)의 발문(跋文)을 쓴 이세택(李世澤, 1716(肅宗 42)년∼1777(正祖 1)년) 선생은 조선 후기의 문신(文臣)으로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자는 맹윤(孟潤), 호는 조은(釣隱)이며 예안 출신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의 8대손이다. 1753(英祖 29)년에 정시문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1762년에 우부승지에 오르고,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으나, 신임사화의 죄인인 이광사(李匡師)를 정계(停啓)하지 않았다 하여 삼사(三司) 모두가 유배(流配)를 당하였다. 도승지 홍명한(洪名漢)과 병조판서 이지억(李之億) 등이 임금의 뜻에 따라 정계(停啓)에 응할 것을 권(勸)하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성격 또한 대쪽같이 곧은 품성(品性)을 지닌 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正祖)가 즉위하자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며, 또한 찬집당상이 되었다. 또한 해월(海月) 선생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쓰신 분은 이유원(李裕元) 선생인데, 이항복(李恒福) 선생의 후손인 것이다. 이유원(李裕元, 1814(純祖 14)년∼1888(高宗 25)년) 선생은, 조선 말기의 문신(文臣)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춘(京春), 호는 귤산(橘山) 묵농(默農)이다. 1841(憲宗 7)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규장각 대교를 거쳐, 의주 부윤, 함경도 관찰사를 지내고, 고종(高宗) 초에 좌의정(左議政)에 올랐으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의 반목으로 1865(高宗 2)년 수원 유수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 해 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전임되고, 1873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실각(失脚)하자 영의정(領議政)이 되었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서임되었다. 또한 학문(學問)에 능하여 임하필기(林下筆記), 가오고략(嘉梧藁略), 귤산문고를 남겼으며, 예서에도 능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은 국가에 큰 공(大功)을 세우고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일인자(一人者)로 일컬어졌던 당대(唐代) 한유(韓愈)의 여우양양서(與于襄陽書)에 나오는 다음 구절들을 보면, 그 이유를 잘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士之能享大名顯當世者 莫不有先達之士負天下之望者爲之前焉./ 士之能垂休光照後世者 亦莫不有後進之士負天下之望者爲之後焉莫爲之前 / 雖美而不彰 莫爲之後 雖盛而不傳』 / 선비(士)로서 명성을 올려 그 시대에 유명하게 되는 자는, / 그 사람보다 선배(先輩)로서 천하(天下)의 인망(人望)을 갖고 있는 자가 앞서서 추천(推薦)하지 않는 일은 없고, / 또 선비(士)로서 뛰어난 공적을 남겨 후세까지 명성을 나타내는 자는, / 그 사람의 후배로서 천하의 인망(人望)을 얻고 있는 자가 뒤에서 이를 밀어 세우지 않는 자가 없다. / 앞서서 추천하지 않으면 후배는 아무리 아름다운 재주와 덕을 지니고 있어도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고, / 뒤에서 이를 밀어 세우지 않으면 선배의 사업이 아무리 성대(盛大)해도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不傳).(daum 2010)
황여일 : 해월 황여일(海月 黃汝一)/ 경북 울진군 기성면(기성면)에 있는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 1556~1623)의 별당/ 지정번호 : 경북문화재자료 제161호/ 지정연도 : 1985년 8월 5일/ 소재지 :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 시대 : 조선시대/ 크기 : 정면4칸 측면3칸/ 분류 : 누(정)각/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1588년(선조 21) 해월 황여일이 세운 별당으로 황의석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원래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沙洞里) 산꼭대기에 있던 것을 후손들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정면의 앞쪽 1칸은 마루를 깔고 난간을 돌렸으며 지면에서 떨어져 지었다. 해월의 유품으로 보이는 서각·물통·화살·숟가락·제기·청동등잔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녹각(鹿角) 3점 등의 유물과 교지 수십 점이 있으며, 《천군기(天君記)》 등의 서적과 한호(韓濩) 글씨라는 병풍 1점이 있는데 낙관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해월헌 앞쪽에는 ‘해월헌기(海月軒記)’‘제해월헌(題海月軒)’‘용청강운(龍淸江韻)’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해월헌기(海月軒記) : 내한(內翰) 황군(黃君)이 마악(馬嶽) 아래 작은 집을 짓고 헌(軒)을 이름 하여 해월(海月)이라 하고는, 나에게 기(記)를 지어주기를 청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천하 만물 중 능히 본체를 잃지 않는 것이 드무니, 쇠보다 강한 것이 없지만 녹이면 둥글거나 짧은 것을 손길 가는 대로 이룰 수 있고, 둘보다 굳은 것은 것이 없지만 부수면 모래도 되고 가루도 되어 문드러진 채 바람에 흩날려버리고 만다. 뿐만 아니라 높은 바위산과 멧부리도 무너져 내릴 때가 잇고 깊은 하천과 강물도 터져 쏟아질 때가 있다. 그러나 유독 바다란 것만은 온갖 시내를 다 받아들이고도 넘치지 않고 미려(尾閭)가: 주)바닷물이 빠져나간다는 구멍.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천하의 물중에 바다보다 큰 것이 없으니, 모든 시내가 물려드는 것이 어느 때나 그칠지 모르지만 물이 차지 않고, 미려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어느 때나 끝날지 모르지만 물이 줄지 않는다.” 하였다. 끊임없이 물을 삼키는데도 줄어들지 않으며, 눈처럼 흰 풍랑이 이리저리 미친 듯이 치달리고 교룡과 고래, 악어 등이 물기둥을 내뿜으며 출몰하여도, 결코 터지거나 깨어질 근심이 없다. 그리고 달이 허공에 있음에 구름이 가리면 맑고 깨끗한 광채를 사람들이 볼 수 없지만 구름이 걷힌 다음 우러러보면 그 밝은 빛은 여전하며, 차고 이우는 상사(常事)와가리우고 먹히는 변고가 천지가 있은 이래로 얼마나 많이 있어 왔는지 모를 지경이지만 그 둥근 바퀴와 하얀 달빛은 오랠수록 더욱 새로우니, 군자가 달에서 취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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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1,488
예천세계활축제 제3회(醴泉활祝祭場 觀覽客들로 시끌벅적.. 이틀만에 累積 觀覽客 11萬 記錄!!!) [記事] : 축제 첫날 3만6천여 명, 둘째 날 6만5천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며 성공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제3회 예천세계활축제장 및 2017 예천농산물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한천변 일대에는 일요일을 맞아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대거 몰려들어 주최측은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개막 첫날 지역 주민들이 축제장에 많이 관람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둘째 날은 외지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3만6천여 명이라는 관람객들이 방문하여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체험 및 전시, 공연장 등을 둘러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영화배우 태현실 씨를 비롯한 전국 재래시장 투어단 400여 명이 관광버스 10대에 나눠 타고 예천 상설시장에서 시장을 본 뒤 축제장을 찾아 환영행사와 예천세계활축제장 관람, 예천농산물축제장에서 예천의 우수농산물을 대량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축제장 건너편에 마련된 식당가로 향하는 다리 위는 항상 만원사례로 분주해 10여 개의 식당들이 오전 9시~오후 10시까지 성업 중으로 준비한 음식이 떨어져 일찍 문을 닫는 식당들이 있을 정도로 혼잡,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이다. 또한, 예천군이 15억여 원을 들여 한천에 건설한 음악분수는 평소 저녁 8시 30분부터 9시까지 30분 동안 운영했으나 축제 기간 중에는 연속적으로 가동하여 축제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멋지게 솟아오르는 분수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며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2017 예천우수농산물 축제장에는 12개 읍면에서 생산한 예천산 사과, 파, 마늘, 표고버섯, 고추 등 품질좋고 맛깔스런 농산물을 전시.판매하여 대도시 소비자들은 예천의 우수농산물을 대량 구입하여 농민들은 여러 차례 농산물을 다시 진열하며 '오늘만 같아라.'고 즐거운 비명이다. 특히, 예천우수농산물 전시장을 찾은 대도시에서 온 관람객들은 "예천의 농산물이 좋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접해보니 우수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축제장 곳곳에는 활쏘기 체험, 활사냥 체험(남산공원), 활서바이벌 체험, 에어 활쏘기, 목궁 만들기, 무사복 입기, 신기전과 대형석궁 쏘기, 화살투호 전통놀이, 추억의 7080 상점, 페인트건 체험, 나라별 전통의상 입기, 어린이 활쏘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예천세계활축제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커피, 녹차 등 무료차 나눔쉼터(예천군녹색희망연대) 등을 운영하여 좋은 호평을 받고 있다. 또한 축제 성공에 크게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도 바쁘게 움직여 관람객들이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편, 메인무대에서는 시간대별로 한국안데스 문화원 공연, 평양통일예술단 공연, 메인스트림 밴드 공연, 예천색소폰동호회 공연, 아프리카 콩고팀 공연, 경북도립무용단 공연, 예천그린실버관악합주단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축제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편, 축제 마지막 날 군민의 날 기념행사, 중국소수민족 공연, 예천연예예술인협회 공연, 세계전통활문화포럼, 6개 시.군장기대회, 품바공연, 코믹마임 공연 등 다양한 체험과 공연 그리고 태진아 등 인기 연예인이 출연하는 '낙동7경 문화마당' 공연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7-10-15 오후 12: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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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서예연구원(초정서예연구원에서 '2017 近·現代 名家 書品展' 오늘부터 3週間 열린다!!) [記事] : '2017 근.현대 명가 서품전'이 2017년 10월 15일 오전 10시 초정서예연구원에서 개막식을 갖고 3주간 한국, 중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5개국을 대표하는 저명 서예작가의 작품 90여점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아시아 5개국이 서예문화로 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행사에 예천에서는 이현준 군수, 조경섭 군의장, 김태철 경찰서장, 도기욱.안희영 도의원, 권창용 문화원장 등 많은 내빈이 참석했으며, 주최 측에서는 쉬핑 길림대학 교수, 양홍성 중국 남개대학 교수, 야규마코토 일본 천리대학 교수, 정태수 교수(계명대학교), 곽노봉 교수(동방문화대학원), 박재복 교수(경동대학교), 임태규 교수(성균관대학교), 장영식 소장(고려대장경연구소), 김용권 교수(동덕여대), 채홍기 차장(예술의 전당 서예부), 민승준 관장(서예도서관), 김윤배 교수(대진대학교) 등 국내 서예계의 큰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초정 권창륜 선생은 인사말에서 "5개국 서예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근.현대 명가서품전 개최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평소 문화예술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신 이현준 군수님과 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초정 선생은 이어 "충효와 예절의 고장인 예천에서 제3회 예천세계활축제와 더불어 열리는 명가서품전은 궁도는 심신단련에, 서예는 정신수련에 특별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시회가 계속 이어져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을 밝혔다. 이현준 군수는 축사에서 "근.현대 명가 서품전 개최를 위해 애쓰신 초정 선생님과 관계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이번 전시회가 한국의 서예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전시된 여러 나라의 문화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문화로 하나 되는 화합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하공연은 한국국악협회 예천군지부장인 장경자 명창과 수하생들은 초정서예연구원 잔디 마당에서 우리 귀에 익은 민요와 밀양아리랑과 예천아리랑, 수하생들의 멋진 춤 등을 공연하여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오후에는 동방문화대학원 문화콘텐츠 연구소와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 학술대회는 '문화예술의 향유와 국제화'란 주제로 중국, 일본, 한국 교수진이 참여한 가운데 한.중.일간의 문화예술 콘텐츠 교류 및 발전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한편, 근.현대 명가 서품전의 명가 작품들은 10월 15일~11월 5일(3주간)까지 초정서예연구원에서 만나 볼 수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이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7-10-15 오전 10: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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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세계활축제 제3회(大舶!!! 第3回 醴泉世界활祝祭場 '글로벌示演團 異色 활쏘기 示演' 人氣 짱.) [記事] :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는 '제3회 예천세계활축제장'에는 글로벌 활쏘기 시연단이 '무예활쏘기 및 곡예활쏘기' 등 이색공연으로 축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2017년 10월 13일 개막과 함께 시작한 이들의 공연은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그리스, 볼리비아, 부탄, 일본, 터키 궁사 등 15개국 20명의 궁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활시위를 당기는 퍼포먼스와 이색공연을 실시했다. 이 시연은 축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축제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로 각 나라의 신기한 활과 전통복장을 한 궁사들의 화살이 과녁에 꽂힐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글로벌시연단 중 특히 인기를 끄는 것은 키르키즈스탄의 곡예활쏘기 공연으로 몸을 거꾸로 세워 발가락으로 화살을 과녁에 맞춰 관중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다양한 글로벌 시연단의 복장만큼이나 생김새도 각양각색인 세계의 전통 활들이 선 보였다. 약 50cm정도의 작은 활에서부터 양팔을 벌린 넓이만한 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활까지 저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화살도 그 모양이 다양하다. 축제 관계자는 "축제의 볼거리를 더하고 만족도를 배가시키기 위해 이 이벤트를 마련했으며 글로벌 활쏘기 시연은 축제 기간 중 매일 2회 축제 공연마당에서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활 축제에 참가한 15개국의 활 관계자들은 활쏘기 공연 외에도 축제장을 다니며 관광객과 사진을 촬영해 주기도 하고 세계활쏘기 체험장을 운영하면서 각국의 활쏘기를 지도하고 홍보한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7-10-15 오후 3: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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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예천지회(醴泉全國歌謠祭 大賞에 金泉市 出身 김미진 氏 受賞(施賞金 4百萬 원)!) [記事] : 제2회 예천 전국가요제가 2017년 10월 14일 오후 4시 한천체육공원 세계활축제장 메인무대에서 (사)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예천지회(회장 황윤석) 주관으로 개최됐다. 이번 예천 전국가요제는 지난 9월 17일 전국 각지 176팀의 참가자들이 치열한 예심경쟁을 펼쳐 16팀의 본선 진출자를 선발했다.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16팀 본선 진출자의 가수 못지않은 실력과 16인조 밴드의 뛰어난 연주 실력은 축제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참가자들의 신나는 춤과 끼가 넘치는 무대는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였고, 초대가수 문연주, 나도경, 박미영 씨와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정수성 씨의 공연은 열기를 더욱 더했다. 이날 대상에는 김미진 씨(김천시), 금상 조경희 씨(구미시), 은상 배하나 씨(예천군), 동상 송진순 씨(안동시), 가창상 배영철(의성군), 인기상 김유진, 김진영 씨(예천군)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7-10-14 오후 8: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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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