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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연보 3 : 1390(고려 공양왕 2)-1413(조선 태종 13)(附 예천군, 24일 경북 에너지효율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예천 출신 최혁영, <사랑의 대화 2> 펴내...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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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恭讓王 2) : 은풍현(殷豊縣), 안동부(安東府)의 속읍(屬邑)에서 기주현(基州縣)으로 옮겨 예속되고, 은산(殷山)이라는 별호를 가짐. ᄋ 김사형(金士衡)이 사헌부 대사헌으로 되었는데, 상소하기를, "윤이(尹이), 이초(李初)의 무리들이 모두 먼 곳으로 귀양갔는데, 권중화(權仲和, 柳川星坪人), 장하(張夏, 丹陽人) 등은 아직도 수도에 남아있으니 죄는 같은데, 처벌은 다르게는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모두 좇아버리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으나 왕은 그들의 범죄 정형이 아직 명백하지 않으며, 또 사건이 대사령(大赦令) 발표 이전에 있었다 하여 허락하지 않음. 그가 다시 요청하였으나 모두 아무런 보람이 없음. 이에 대사헌 김사형, 지평 조용(趙庸, 虎鳴沙月人) 등이 사직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고 계속 직무를 보게 함. 그들은 또 모두 병이 났다고 핑게하고 나오지 않음. 형조의 관원들이 또 글을 올려 권중화, 장하 등을 귀양보내자고 요청하였더니 왕이 그 상소문을 도평의사사에 내려 보내어 심의하라 함. 도평의사사에서는 사헌부와 형조의 요청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는데 다만 찬성사 정몽주(鄭夢周)만은 , "윤이 이초의 무리들의 죄는 본래 명백하지 않은 데다가 또 대사령이 내린 후이니 다시 논할 수 없다."라고 함. 왕이 하는 수 없이 권중화, 장하 등을 유형케 함. 김사형 등이 정몽주를 탄핵하고, 또 좌상시 정우(左常侍鄭寓, 前 知甫州事) 등을 탄핵함. 헌납 이반(李蟠) 등은 조용 등을 탄핵하니, 사헌부와 형조의 관원들이 이 때문에 나오지 않아서 정사들이 텅 비게 됨. 또한 이반, 정우 등도 모두 귀양을 감(高麗史 卷第104 列傳 第17 金方慶). ᄋ 4월 18일(辛亥日) 조용(趙庸), 지평(持平)으로 임명됨(高麗史 45卷)
1391(恭讓王 3) : 11월 6일(戊子日) 권중화(權仲和, 柳川星坪), 삼사좌사로 임명됨. 윤이와 이초의 사건에 관련되어 죄를 받고 있다가 이 때에 와서 모두 복직됨(高麗史 46卷)
1392(恭讓王 4) : 1월 권중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使)로 임명됨(高麗史 46卷). ㅇ 2월 9일 용궁현 등지에 지진이 일어남. ᄋ 2월 20일(辛未日) 찬성사 권중화(贊成使權仲和), 영복군 왕격과 함께 원(元) 나라 서울에 답례하는 사명을 가지고 감(高麗史 90卷 列傳 3). ᄋ 3월 이성계(李成桂), 정도전(鄭道傳)을 보주(甫州, 醴泉)에 가둠. ㅇ 3월 7일 예천 등지에 눈이 1자 정도 내림. ㅇ 5월 18일 예천 등에 우박이 내려 벼가 많이 상함. ᄋ 7월 5 일(甲申日) 공양왕이 이방원(李芳遠), 사예 조용(司藝趙庸, 後 醴泉 귀양)을 불러서 말하기를, "내가 장차 시중 이성계(侍中李成桂)와 함께 맹서를 하려는데 그대들이 나의 말을 시중(侍中)에게 전하여 시중의 말을 듣고 맹서문 초고(盟誓文草稿)를 작성하여 가지고 오라."라고 하고, 또 이어서, "반드시 고사(故事)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함. 조용이 이에 대답하기를, "맹서를 좋다고 할 수 없으니 성인도 나쁘게 여겼습니다. 만일 열국(列國) 간의 동맹이라면 옛날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금과 신하의 동맹은 경적(經籍)이나 고사(古事)에서 상고(詳考)할 데가 없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어쨌든 작성만 하라!"라고 함. 조용(趙庸)과 이방원(李芳遠)이 이성계에게 가서 왕이 말한 대로 전하니 이성계가,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너희가 임금의 말대로 초안(草案)을 작성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함. 조용이 물러나와 초안을 작성하기를, "그대가 아니더라면 내가 어찌 이에 이를 수 있었으랴? 그대의 공과 덕을 내가 감히 잊을 수 없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은 위에서 곁에서 이것을 굽어보고 있을 것이다. 대대로 우리 자손이 서로 해치지 말 것이다. 내가 그대를 저버린다면 이 맹서를 증거로 하라!"라고 함. 조용과 이방원이 이 초고(草稿)를 왕에게 올리니, 왕이 "좋다"라고 말함(高麗史 46卷) ᄋ 7월 28일 태조의 즉위 교서에서 강회백(姜淮伯, 甘泉人)은 장(杖) 100 대를 친 후 그 직첩(職帖)을 회수하여 먼 지방을 방치하고, 정우(鄭寓, 전 예천군수), 안준(安俊) 등은 그 직첩을 회수하고 먼 지방(慶南 宜寧)으로 방치하라고 함. 안준은 나중에 의령에서 개포면 경진리 노포(蘆浦)로 귀양 장소를 옮김.ㅇ 8월 18일 용궁현에 남풍이 크게 불어 큰 피해가 남. ㅇ 10월 16일 예천 등지에 천둥이 침. ㅇ 12월 13일 예천에 지진이 발생함. ᄋ 조선 초에는 고려의 편제(編制)를 그대로 답습한 편이어서 경상도의 암렴도관찰출척사(按廉都觀察黜陟使)를 상주(尙州)에 개관함에 따라 보주(甫州)는 그의 통치를 받음.
1393(太祖 2) : 7월 27일 왕이 조선 건국에 공이 있는 윤상(尹祥, 醴泉邑 別洞人), 권중화(權仲和, 柳川面 星坪人) 등에게 포상토록 교지를 내리기를, "동판내시부사 윤상(同判內侍府事尹祥) 등은 보조(補助)의 이익이 많이 있었으니 공을 기록할 만하며, 삼사좌복야 권중화(三司左僕射權仲和) 등 8인은 신씨(辛氏)가 왕위를 도적질하여 세상이 극도로 어지러워 다스려지기를 생각하던 때부터 세상의 안위를 모두 나에게 뜻을 두었으니, 그들을 포상하는 은전(恩典)을 유사(有司)는 거행하라."함.
1394(太祖 3) : 2월 예천백 권중화(醴泉伯權仲和), <동국역대제현비록촬요(東國歷代諸賢秘錄撮要)>를 저술함.
1395(太祖 4) : 5월 전 지보주사(前知甫州事, 醴泉郡守) 전백영(全伯英), 경상도 도사(都事, 副知事)로 부임함.
1397(太祖 6) : 양홍달(楊弘達), 왕이 발병(發病)할 때 의원(醫員)으로서 신속히 입궐하지 않은 죄로 축산(竺山, 龍宮)에 유배(流配)됨. ᄋ 4월 28일 왕이 선차 권전(宣借權專)을 보내어 좌승지 이문화(李文和)를 보주(甫州, 醴泉) 상차(喪次)에서 부르게 하고, 인하여 권전에게 명령하여 도관찰사, 도절제사에게 전지(傳旨)하기를, "왜인(倭人)이 배신하고 갔는데, 만일 잡지 못하면 죄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였음.
1398(太祖 7) : 형조전서 조용(刑曹典書趙庸), 예천에 귀양와서 제자들을 가르침. ᄋ 2월 전 지보주사(前知甫州事) 안성(安省), 경상도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 道知事)로 부임함. ᄋ 9월 1일 권중화(權仲和), 예천백(醴泉伯)에 봉해짐.
1399(定宗 1) : 5월 예천백 권중화(醴泉伯權仲和),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과 그 부록 <집성마우의방(集成馬牛醫方)>을 저술함.
1400(定宗 2) : 용궁향교(龍宮鄕校), 소실(燒失)되었으나 곧 복구됨. ᄋ 8월 4일 중승 안성(中丞安省), 지보주사(知甫州事)에 부임함. ᄋ 12월 별동 윤상(別洞尹祥, 西本), 보주 유학 교수(甫州儒學敎授)로 부임함
1401(太宗 1) : 1월 25일 공후백(公侯伯)의 호를 고치었으니, 참람되게 중국을 모방할 수 없기 때문임. 예천백 권중화에게 고쳐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으로 봉함. ᄋ 7월 상주(尙州)의 안렴도관찰출척사(按廉都觀察黜陟使)를 안렴사(按廉使)로 개칭함
1403(太宗 3) : 조용(趙庸),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 200명의 상소로 예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오름
1404(太宗 4) : 12월 5일 고려 때의 예천군수 조운흘(趙云흘)이 죽음.
1405(太宗 5) : 7월 29일 보주 등에 물이 범람하여 화곡(禾穀)을 상하고, 큰 나무가 뽑히었음.
1407(太宗 7) : 권중화(權仲和, 柳川星坪), 영의정(領議政)이 됨. ᄋ 예천향교(醴泉鄕校), 예천읍 대심리 작은하무실에 중건됨. ᄋ 6월 21일 궁중에서 석척 기우(祈雨)를 행하였는데, 순금사대호군(巡禁司大護軍) 김겸(金謙)이 말하기를, "전에 보주 수령으로 있을 때 소동파의 시를 보니, '독 가운데 석척이 참으로 우습다'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그 주(註)에 비를 비는 법이 갖추 실려 있으므로 제가 그 법에 따라 시험해서 과연 비를 얻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왕이 이 말을 듣고, 이 날 김겸을 불러 물어보고 곧 관연루 아래에서 시험할 것을 명령함.
1408(太宗 8) : 4월 10일 왕이, 세자를 수행한 전 호군 이지성(護軍李之誠)을 편전(便殿)에 불러 비밀히 물어볼 때 불충한 말을 하여 용궁현으로 귀양을 보냄. ᄋ 11월 23일 영의정 권중화(權仲和, 醴泉伯)가 죽음.
1409(太宗 9) : 1월 2일 풍헌관을 사정을 끼고 탄핵한 죄로, 김맹성(金孟誠)은 보주에 부처하고... 그의 죄는 수종(隨從)한 것이니, 한 등을 감하여 장(杖) 100대에 도(徒) 3년임. ᄋ 4월 17일 경상도 보주에 지진이 있었음. ᄋ 5월 4일 이백강(李伯剛)의 명 나라 사행(使行) 때 금물(禁物)을 수색하면서 금대(金帶)를 빼앗았다고 권수기(權守紀)를 보주로 유배시킴.
1410(태종 10) : 4월 21일 전 지보주사 신이충(前知甫州事愼以衷)이 탄핵받았으나, 왕이 이를 용서해 줌.
1412(太宗 12) : 지영천사 임즐(知榮川事林즐, 醴泉西本), 효행으로 서본리에 정려(旌閭)됨. ᄋ 2월 15일 이언(李彦)을 숨겨준 자들인 보주의 전 지사 이영주(李英柱) 등 9인의 사령장(告身)을 거두라고 왕이 명하였음.
1413(太宗 13) : 10월 전국을 8도(道)로 정하고 각 도군현(道郡縣)의 칭호를 고칠 때 군현면(郡縣面)에 주(州)로 부르는 곳은 산(山). 천(川) 2자(二字)로 대신하라고 함에 따라 보주(甫州)를 보천군(甫川郡)으로 고치고, 용궁군(龍宮郡)을 용궁현(龍宮縣)으로 고쳐 감무(監務) 대신 현감(縣監)믈 두고 경상도(慶尙道) 소속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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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24일 경북 에너지효율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醴泉郡 에너지效率評價 最優秀賞) [記事] : 예천군이 2017년 11월 24일 오전 11시 안동과학대학교 학계도서관에서 개최된 `2017 경상북도 에너지효율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상사업비 7천5백만 원을 받았다. `에너지효율평가'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시책에 부응하고 에너지의 합리적 이용과 절약 의식을 확산하기 위해 2001년부터 경상북도에서 추진하는 특수시책이다. 예천군은 이번 평가에서 에너지 절약 추진체계구축, 신재생에너지사업 확대보급, 에너지 절약관련 특수시책 추진 등 7개 평가항목에서 고루 높은 점수를 받아 수상하게 됐다. 특히, 금년 문화체육시설 LED조명 교체사업으로 문화회관, 진호국제양궁장, 공설운동장, 청소년수련관의 가로등을 LED조명으로 교체하여 에너지절약 및 경관개선에 기여하였고, 감천면, 지보면, 풍양면의 LED조명등 3백여 개 교체를 마지막으로 12개 읍면 행정복지센터의 조명을 LED조명등으로 전부 교체하여 공공기관의 에너지효율을 높였다. 이현준 군수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시책을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하는 한편 공무원의 솔선수범으로 에너지절약 실천 운동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醴泉新聞 2017년 11월 24일 (금) 11: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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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출신 최혁영, <사랑의 대화 2> 펴내...축하합니다.
최혁영("21世紀 知識基盤 社會 必要한 人才 育成에 앞장") [記事] : "리더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격을 갖춰야 하고 또 과감하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을 위하여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이사장 최혁영) "할아버지께서 보내 주신 편지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특히 '모든 말을 존중하고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하신 점은 제가 요 근래 읽었던 책인 「기울어진 저울」의 내용과 일맥상통해서 제게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예천여고 유나정 올림) 재단법인 최혁영장학회의 최혁영(지보면 수월리 출생) 이사장이 최근 장학생들과 대화하고 멘토링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사랑의 대화 2」를 펴냈다. 지난 2015년 2월 「사랑의 대화」 첫째 권을 발간한 지 2년 8개월만이다. 이번에 펴낸 「사랑의 대화 2」에는 블로그에서 최혁영 이사장과 장학생 및 장학생 부모와 서로 소통하면서 주고 받은 글들이 수록됐다. 1부에는 '인성 도약을 위한 6가지 구성 요소', '수신을 위한 9가지 행동원칙', '인생 10훈' 등 최 이사장이 멘토로서 장학생들의 바른 성장을 돕는 데 지침이 될 내용을 담았다. 2부에는 최혁영 이사장이 사랑하는 장학생과 장학생 학부모에게 쓴 편지글 46편을 수록했다. 3부에는 장학생과 장학생 학부모들이 최 이사장에게 쓴 감사와 상담, 근황 등을 쓴 편지글 1백76편이 담겼다. 4부에는 장학생 및 학부모와 가진 간담회, 장학회 행사 기념사진으로 꾸몄다. 「사랑의 대화 2」는 미래 우리나라를 이끌 장학생(인재)들이 지녀야 할 주옥같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자기 계발서로 활용 가치가 매우 크다. 최혁영 이사장은 "장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생활비를 지원하고, 편지로 멘토링 하고, 자주 만나 소통하고, 해외 연수도 지원하여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재로 길러내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3년 12월 5일 설립된 '최혁영 장학회'는 △인성이 풍부한 인재 육성 △창의와 혁신을 선도하는 인재 육성 △모든 사물과 사업을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변화를 리드하는 인재 육성 △특수한 사물과 사업에서 세계 1인자가 되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영남대, 원광대, 대창고, 예천여고, 서울외국어고, 서울과학고, 한성과학고, 한여외국어고, 이화여자외국어고, 경산과학고 등에서 매년 50여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장학금과 기숙사비 등을 지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억 원이 넘는 장학금과 학교 발전 기금을 지원했다. 특히 2개월에 1회씩 멘토 편지 보내기, 장학생 및 학부모 간담회 및 식사 등은 '최혁영 장학회'에서만 볼 수 있는 교감의 장이 되고 있다. 최혁영 이사장은 대창중(10회), 대창고(8회),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 서초구에서 ㈜ 미혜산업과 삼우개발을 경영하고 있다.(醴泉新聞 2017년 11월 24일 (금) 11: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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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