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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연보8:1592-1593(祝오병인/현은수)
작성자장병창 @ 2017.11.30 06:14:39

  예천의 연보 8 : 1592(선조 25) 7-1593(선조 26)(附 지보면 귀농인 오병인, 2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장관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지보면 출신 현은수, 11일 국제협력사업 적정기술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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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宣祖 25) 7: 5일 경상우병사 박진(慶尙右兵使朴晋)이 고령(高靈)에서 안동(安東) 쪽으로 오면서 먼저 공문을 발송하기를, "용궁, 예천의 적이 깃발을 올리고 물러가기를 서두르고 있으니, 각 읍 수령(守令)들은 군졸을 집합해서 복병(伏兵)하여 쳐부셔 큰 원수(怨讐)를 갚도록 하라."라고 함. ᄋ 영천 의병장 정대임(永川義兵將鄭大任), 신령 의병장 권응수(新寧義兵將權應銖)와 함께 예천 흑응산성(醴泉黑鷹山城)에서 왜군(倭軍)을 격퇴시킴. 9일 안집사 김륵(安集使金勒)이 영천(榮川, 榮州)에 있으면서, 초유사 김성일(招諭使金誠一)과 서로 연락하고 격문을 보내어 향병(鄕兵)을 모았는데, 예천에서는 전 현감 이유(前縣監李愈, 虎鳴松谷人), 진사 이광옥(進士李光玉), 권욱(權旭, 龍門渚谷人) 등이 호응함. 그래서 김륵은 이유(李愈)로 예천 수성장(醴泉守城長)으로 삼고, 예천 고을 군무를 담당하게 함. 이유는 안동인 생원 김익(金翌), 진사 김윤사(進士金允思), 정로위 안숙(定虜衛安淑) 등과 더불어 각 마을 안에 장정을 모집하여 예천의 속현(屬縣)인 다인(多仁)의 적을 방어함. 이 때 창의(倡義)한 사람은 윤섭(尹涉, 知保 新豊人), 이영문(李榮門, 龍門下金人), 장정운(張正運, 醴泉 德滿人), 강진(姜震), 권시(權時, 龍門 渚谷人), 권양(龍門 渚谷人), 이광윤(李光胤), 반인후(潘仁後), 김영수(金永壽, 下里人), 전협(全協, 知保 岩川人), 박헌(開浦 琴里人), 권우(權祐, 龍門人), 권응성(權應星, 知保 大竹人), 전삼락(全三樂, 龍宮人), 전삼성(全三省, 龍宮人), 정수민(鄭壽民), 남융달(南隆達), 최확(崔確), 최의(崔儀), 전대성(全大성), 고상안(高尙顔, 義兵將), 고승복(高承福) 등임. ᄋ 객지에 가서 의병 활동을 한 사람은 이준(李埈, 下里人, 鄭經世와 더불어 의병 수 천을 모집하여 故모潭에서 敗戰함), 이덕창(李德昌, 虎鳴 松谷人, 宣祖를 白衣 扈駕하고 三從兄 光庭을 따라 倡義함), 김세일(金世鎰, 守門將으로 扈聖功臣이 됨), 반운익(潘雲翼, 守門將), 강주(姜주, 慶尙左道 召募使), 권덕령(權德齡, 軍餉) 등임. 27일 적이 예천, 안동, 의성, 군위 등의 고을에 나누어 둔쳐 사방으로 나와 분탕질을 함. 이 때 소실된 것은 보문사(普門寺)의 나한전(羅漢殿)과 산신각(山神閣), 초간정(草澗亭, 龍門), 예천권씨 종가(醴泉權氏宗家)의 행랑(行廊, 龍門), 용궁향교(龍宮鄕校), 송계암(松溪庵, 知保), 완담사(浣潭祠, 知保), 낙포서사(洛浦書舍, 知保), 사괴정(四槐亭, 龍門上金), 덕만정(德滿亭, 醴泉 通明), 남포백씨 종가(藍浦白氏宗家, 龍宮 武夷) 등임

 

1592(宣祖 25) 8: 1일 별장 권응수(別將權應銖)가 의병장 정대임(鄭大任) 등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군하다가 영천(永川)의 박연(朴淵)에서 적병을 만나 격파하고 그들의 병기와 재물을 가두었음. 이 일이 알려지자 상으로 권응수는 방어사가 되었으며, 정대임(鄭大任, 1553-?)은 의병 공을 병사 박진(兵使朴晋)이 치계(馳啓)하여 예천 군수가 됨. 1일 용궁현감 우복룡(禹伏龍)을 안동 대도호부사로 삼음. 우복룡은 유학(儒學)으로 벼슬길에 올라 용궁 현감이 됨. 용궁은 조령(鳥嶺)과 가깝고 문경현(聞慶縣)에 접하여 있음. 변란 초기에 수령들이 모두 도망하여 흩어졌으나, 우복룡은 홀로 관할 지역을 떠나지 않고, 군사 1천여 명을 모집하였다가 적을 만나 패하여 흩어졌음. 그러나 다시 수 백 명을 모아 밤에 예천의 소둔(小屯)을 습격하여 적을 베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음. 체찰사가 계문하여 자급(資級)을 올려 안동 부사로 삼으니, 이로써 명성이 드러났음. ᄋ 정대임, 비안(比安)과 용궁(龍宮)의 왜적을 격파함. 3일 예천, 안동, 의성의 적은 또한 동류(同流)를 이끌고 풍산 구담(豊山九潭)으로 물러가 둔()을 치다가 상주(尙州)로 물러가 합침. 4일 경상좌도 순찰사 김성일(慶尙左道巡察使金誠一)이 장계(狀啓)하기를, "지난 6월 초순이후까지도 예천, 용궁 등 10여 고을이 아직 적의 수중에 들지 않더니, 이제는 예천, 용궁은 함몰(陷沒)이 되어 적들이 각기 고을의 원이라 칭하고 집을 짓고 농토를 가꾸어 오래 머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 통문(通文)을 돌려 선비 중에 유식한 자를 선택하여 소모관(召募官)을 시키고, 무변(武弁) 가운데 재주있는 자를 가장(假將)으로 삼았습니다."라고 함. 9일 안동 임하현(臨河縣) 동쪽 기토리(耆土里)에서 이유(李愈) 등이 모여 거병(擧兵)을 모의함. 27일 김성일(金誠一)의 격문(檄文)이 간신히 경상좌도(慶尙左道) 각 고을에 전해져서 의병에 참가하기를 격동시켰는데, 예천에서 이유(李愈), 권욱(權旭), 이광옥(李光玉) 등이 호응하여 일어나서 모두 예안현감 김핵(禮安縣監金핵)의 통솔을 받음. ᄋ 이유(李愈), 손박(孫박), 현사필(玄思弼), 김인, 안승순(安承順) 등이 용궁(龍宮)에서 왜적을 많이 사살(射殺)하고 이유(李愈) 등은 전사함. 이희(李憙)와 현황(玄황)이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리려 가다가 쌍령(雙嶺)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가 자결함. ᄋ 송복기(宋福基, 高坪), 예천의 수성장(守城將)으로 왜적 수 100명을 유인 작전으로 몰살함. ᄋ 이개립(李介立, 甘泉 縣內人), 산음현감(山陰縣監)으로 의병(義兵)을 모음. ᄋ 우담(禹澹, 龍宮人),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전사함. ᄋ 정윤우(丁允祐, 龍門福泉人), 선무원종일등훈(宣武原從一等勳)이 됨. ᄋ 고경복(高景福), 곽재우(郭再祐)와 정경세(鄭經世)를 따라 의병으로 공을 세워 <용사록(龍蛇錄)>에 실림. ᄋ 정탁(鄭琢, 醴泉高坪人), <용사일기(龍蛇日記)>, <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 <임진기록(壬辰記錄)> (寶物 494)을 기록함. ᄋ 이일도(李逸道), 선무원종훈신(宣武原從勳臣)이 됨

 

1592(宣祖 25) 9: 24일 왜적이 함창 당교(咸昌唐橋)에 모여 큰 진이 되어 용궁(龍宮) 등지를 횡행하면서 두 번째 내지(內地)로 침범하려 하니 경상좌도 감사 한효순(慶尙左道監司韓孝純)이 안동에 있으면서 장기현감 이수일(長기縣監李守一)을 대장(大將)으로 삼아 만호 민정홍(萬戶閔廷鴻) 등을 거느리고 용궁(龍宮)을 지키게 하고, 또 안동부사 우복룡(安東府使禹伏龍)으로 도지휘대장(都指揮大將)을 삼아서 예천 땅에 진을 치게 하고 영천(永川)의 향병(鄕兵)과 춘양(春陽)의 의병들이 합세하여 나아가 치다가 크게 무너져 돌아감. ᄋ 왜장 우희다수가(倭將宇喜多秀家) 등이 예천향교(醴泉鄕校)에 들어가려 하자, 들보가 저절로 번득여 먼지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대낮이 그믐밤 같아지니, 왜장 등이 겁내어 들어가지 못하고 도망치면서 "이 곳에 옛 명장(名將)의 사당(祠堂)이 있느냐?"라고 묻길래, 읍 사람들이 "고려 충신 임지한(林支漢) 장군의 의충사(毅忠祀)가 있다."라고 대답하니, 왜장들이 분향(焚香)하여 제사를 지내고, 졸도(卒徒)들에게 타이르기를, "예천은 옛 명장(名將)의 신령(神靈)이 계시니, 함부로 방화 약탈(放火殺掠)하지 마라"라고 하여 병화(兵火)를 면함

 

1592(宣祖 25) 10: 23일 안동별읍향병(安東別邑鄕兵, 1592.8.20 組織, 大將 金핵)이 전날 안동에서 왜적의 주된 근거지의 하나인 함창 당교(咸昌唐橋)를 향해 진군(進軍)을 시작하여 예천 진장(醴泉陣場)에 주둔하고, 복병장 이선충(伏兵將李選忠), 조전장 박호인(助戰將朴好仁)이 군관(軍官) 8인과 정병(正兵) 130명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감. 24일 예천군리(醴泉郡吏)가 예천군 의병부대(醴泉郡義兵部隊)와 왜적의 동향을 김핵 대장에게 보고함. 상주, 당교(唐橋) 등지의 왜적이 용궁 사언리(龍宮沙焉里)를 분탕(焚蕩)하였고, 용궁 현리(龍宮縣吏) 가운데 철환(鐵丸)에 맞아 중상한 이가 있었음. 25일 김핵, 노포(蘆浦, 開浦面 京津里)로 진을 옮김. 아침에 군관(軍官) 이적(李適), 최두와 우부장 이정백(右副將李庭栢)이 복병(伏兵)을 위해 떠남. 장서 신경립(掌書辛敬立)이 저녁에 용궁현(龍宮縣, 鄕石里)에 도착하여 북산(北山)에 복병(伏兵)을 진치게 하고, 용궁현의 동쪽 마을 석현(石峴)에서 계속 유숙(留宿). 26일 김핵 대장, 노포(蘆浦)에 유진(留陣). 우부장 이정백은 일찍 용궁현감(龍宮縣監)과 모여 도지휘대장 김수일(都指揮大將金遂一) 진소(陣所)로 향함. 가는 도중에 들으니 왜적이 용궁현의 서쪽에 돌입했다고 하기에 바로 돌아옴. 왜적의 선봉이 이미 용궁향교(龍宮鄕校)가 있는 동리(洞里, 鄕石里)로 이미 들어 왔기에 복병장 이선충이 말을 달려 이를 격퇴하여 용궁 사람들이 화해(禍害)를 면하게 됨. 계원장 우선경(繼援將禹善慶)이 정병(正兵) 50명을 거느리고 석진(石陣)으로 감. 27일 복병장 이선충과 조전장 박호인이 결사대를 거느리고 반암(盤岩)의 왜적을 습격하여 말 2필을 획득함. 28일 대장(金핵)과 좌우부장(左右副將 : 李庭栢, 裵龍吉), 각기 군관(軍官)과 수후장 권극인(守侯將權克仁)을 거느리고 복병진(伏兵陣)에 도착해서 다시 정병(精兵)을 추려 나누어 보냈는데, 좌부장 이정백(左副將李庭栢)은 장서 김윤안(掌書金允安)을 이끌고 본진(本陣)으로 돌아와서 군사를 추림. 우부장 배용길(右副將裵龍吉)은 장서 금몽일(掌書琴夢馹)을 데리고 계원장(繼援將)에 달려가 정병(精兵)을 추려 떠나게 하고, 대장 김핵은 장서 신경립(掌書辛敬立)을 거느리고, 도지휘대장 이수일 진소(都指揮大將李遂一陣所)에 가서 병사(兵事)를 논의함. 29일 대장 김핵, 용궁(龍宮)으로부터 안동으로 돌아감. 30일 우부장 배용길, 군사를 거느리고 단밀(丹密)로 향함.

 

1592(宣祖 25) 11: 1일 장서 신경립(掌書辛敬立), 우부장 배용길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반암(盤岩)으로 나가라는 대장 김핵의 명령을 전하고 저녁에 안동으로 돌아감. 2일 우부장 배용길, 군사를 거느리고 반암(盤岩)으로 나아가 진을 침. 3일 우부장 배용길, 군사를 이끌고 단밀천(丹密川)을 향하다가 갑자기 왜적의 선봉과 마주침. 관군(官軍)이 패주함에 퇴각함. 4일 우부장 배용길, 용궁(龍宮)에서 안동으로 돌아감. 부사(府使)도 용궁에서 안동으로 돌아옴. 11일 병마사(兵馬使), 예천을 향해 출발하여 풍산(豊山)에 주둔함. 12일 병마사, 예천에서 안동으로 돌아감. 18일 지난 날 여러 장수가 패전하니, 서쪽의 왜적이 더욱 날뜀. 순찰사(巡察使)가 제장(諸將)에게 명령해서 예천에 계속 머무르게 함. 또 풍기(豊基), 영천(榮川, 現 榮州), 예안(禮安), 봉화의 정병(正兵)이 와서 모임. 안동의 군사도 풍산으로 출진함. 병마사(兵馬使)가 달려와 모여 안집사(安集使)가 따로 군마(軍馬)를 보내 감천(甘泉), 영천(榮川)에 진을 치니 향병(鄕兵)은 여기에 따름. 며칠이 지나자 서쪽의 적이 차차 약해짐. 안집사(安集使)는 물러나며 돌아감. 병마사(兵馬使)도 안동부(安東府)에 들어감

 

1592(宣祖 25) 12: 경상우순찰사 한효순(慶尙右巡察使韓孝純)이 장계(狀啓)하기를, "함창 당교(咸昌唐橋)의 적은 좌우도(左右道)의 인후(咽喉)가 되는 곳에 있어 그 세력이 심히 치성(熾盛)하니 비록 일도(一道)의 힘을 다하여서라도 반드시 먼저 적을 치기를 목표로 삼겠습니다. 병사 박진(兵使朴晋), 우후 권응수(虞侯權應銖), 밀양부사 이수일(密陽府使李守一) 및 의병대장 정대임(義兵大將鄭大任) 등이 모두 예천, 안동 등지에 모여서 경영하고 엿본 지가 이미 수 개월이 가까웠으나 적이 편리한 지점에 점거하고 있고, 더구나 중간에 큰 내가 가로 막혀 장수들이 모두 어렵게 여기어 아직까지 한 번도 공격하지 못하오니, 통분하고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수일(李守一)을 대장(大將)으로 삼아 만호 민정홍(萬戶閔廷鴻) 등을 거느리고 용궁(龍宮)을 지키게 하고, 또 안동부사 우복룡(安東府使禹伏龍)을 도지휘사(都指揮使)로 삼아 예천에 진을 치고 정예한 군사 2천 명을 선발하여 권응수(權應銖)에게 맡겨서 기회를 보아 밤에 습격하도록 하였으며 군량이 극난하니 군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싸가지고 오도록 하자니 민간에 한 되 한 말의 저축이 없어 굶어 죽은 송장이 잇달았으며 관량(官糧)을 주자 하니 각 고을의 창고가 간 곳마다 비었으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함. 18일 향병대장 김핵(鄕兵大將金핵), 예천향병(醴泉鄕兵)에게 대답하는 글에서 이르기를, "유병(儒兵)은 외롭고 약하여 꼭 있어야 할 관군(官軍)의 과단(果斷)함이 교제(敎弟)의 기대와 같은 지도 알지 못한데, 장상(將相)들의 대책이 언제 정하여 질 것인지 모르며, 못난 이 사람의 생각인 즉, 군사의 어려움을 먼 곳에서나마 헤아려 볼 때, 열읍(列邑)의 여러 진에서 비록 20일에 모여 서로 의론할 때에나마 앞으로 며칠 뒤에 제진(諸陣)의 복병(伏兵)과 정예로운 자들을 가려 뽑은 수가 만약 500-600만 되어준다면, 관군과 함께 합세해서 한쪽 방면을 감당할 수가 있겠지만, 만약 적세(敵勢)가 사납게 날뛰고, 관군(官軍)이 협력하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도 500-600의 정예로운 군사가 한 곳에 뭉쳐 번갈아 싸울 것을 나누어 맡아 나아가면서, 낮에는 가이 적들을 쫓아 베이면서 잡아오고, 밤에는 가이 적진(敵陣)을 부수고 분탕(焚蕩)하십시오. 귀 진영(貴陣營) 의 군사가 반드시 관군을 기다려 뒤에 움직이며 혹시 기회를 잃어 버리고, 일도 이루어지지 못할까 두려워집니다."라고 함. 21일 우후(虞候), 예천으로 옴. 23 일 대장 권응수(大將權應銖)의 급보에서 이르기를, "당교(唐橋)의 왜적이 용궁에 들어와 현()의 뒷산, 관아(官衙), 객사(客舍), 원당(元堂), 신당(神堂), 고월곡(古月谷), 지동(紙洞), 석현(石峴), 무이곡(武夷谷) 등지에 진을 쳤습니다."라고 함. 저녁에 적이 당교로 돌아감. 26일 김핵의 복병장 이선충(伏兵將李選忠)이 정병(正兵) 30명을 거느리고 용궁으로 감. 28일 대장 김핵, 이 날 바람이 불어 새벽에 사람을 보내어 복병장 이선충에게 야격(夜擊)은 신중하게 하도록 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옴. 대장 김핵, 선몽대(仙夢臺, 虎鳴面)에 나가 멀리 적진을 가리키며 스스로 탄식하기를, '병졸이 외롭고 약하여 나아가 치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고, 용궁을 거쳐 왕태동 서산(旺泰洞西山)에 올라가 적세를 살핌. 저녁이 되어서 안동으로 돌아오는데, 사람이 살던 곳이 모두 타버렸고, 백골(白骨)이 재가 되었으니, 장수와 졸병이 서로 돌아보면서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지으며 분개한 마음이 솟구쳐서 <제명시(除名詩)>를 지음. 돌아오면서 송구(松邱)에서 유숙함. ㅇ 겨울 기봉(岐峯) 유복기(柳復起), 예천 송구촌(松邱村)에서 왜적을 만나 기구(機構)를 설치해서 적의 목을 베거나 포로로 잡은 바가 많았음.(ryuongin.com.ne.kr 2003)

 

1593(宣祖 26): 경상좌우도(慶尙左右道)를 합하여 성주 팔기(星州八기)에 경상도 감영(慶尙道監營)을 둠. ᄋ 윤흠신(尹欽信), 윤흠도(尹欽道) 형제(普門 眉湖人), 창의(倡義)하여 의병을 이끌고 봉화 소천전투(奉化小川戰鬪)에서 삼길성(森吉成)의 일본 대군과 싸우다가 전사함. 김성일(金誠一)의 계청(啓請)으로 정려(旌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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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보면 귀농인 오병인, 2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장관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오병인(歸農人 오병인(知保面) 氏 食文化大展 長官賞 受賞) [記事] : 지보면 오병인 씨가 2017 11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개최된 제14회 대한민국 향토 식문화대전에서 대상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지난 2016년 귀농한 오병인 씨는 평소 노력하고 연구하는 귀농인으로 지난 5월에도 제14회 서울국제푸드앤테이블웨어박람회에 출전해 대상으로 국회의장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요리 경연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현재 곤충유통사업단 사무국장과 파브르 곤충문화음식연구회 대표로 식용곤충이 들어간 고소애 고추장과 된장, 쌈장을 개발·생산하여 판매하고 있으며, 예천군귀농인연합회 나눔실천봉사 단장으로 지역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 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오병인 씨는 예천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로 다양한 향토요리를 개발하고, 특히 식용곤충을 이용한 요리 대중화에 심혈을 기울일 계획이라 하며, “다가오는 12AT센터에서 개최되는 제4회 식용곤충요리 경연대회에 참가해 산 좋고 물 맑은 곤충의 고장 예천군을 널리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醴泉新聞 20171129() 13: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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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보면 출신 현은수, 11일 국제협력사업 적정기술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현은수(적정기술 公募展 最優秀賞 : 中央大學校 '촌농사팀') [記事] : 지보면 태생의 현은수 군이 2017 111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가 공동 주최한 2017'국제협력사업(ODA) 적정 기술' 전국대학 공모전에서 중앙대 '촌농사팀(팀장 현은수)'으로 출전해 최우수상인 농식품부 장관상(상금 3백만 원)을 차지했다. 공모전은 국제농업협력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개도국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농업, 농촌 분야 적정 기술을 발굴하기 위해 기획됐다. 6점이 입상한 가운데 '촌농사팀'은 빈곤율이 높고 홍수로 인한 산사태가 잦은 네팔 농촌 마을에 저수·정수시설을 결합한 공동축사를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로 최고상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가축을 임대하고 공동축사를 제공해 농업인 소득을 높이고, 축사 지하부에는 빗물 수집 저수조를 만들어 홍수피해를 동시에 예방하는 아이디어다. 현재 중앙대 4학년 휴학 중인 현은수(사회기반시스템 공학부) 군은 향후 농촌 관련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모는 지보면 현석화,손현미(醴泉新聞 201711 29() 11: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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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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