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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연보 16 : 1764(영조 40)-1785(정조 9)(附 예천군, 6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청렴 자치단체로 평가...축하합니다/풍양면 출신 정재송 제이스텍 대표, 5일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서울)에서 5억불 수출탑을 수상함...축하합니다/<예천서예인연합전 제16회(2017)>., 6일 발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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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英祖 40) : 1월 유계서당(柳溪書堂), 도유사(都有司)는 박대검(朴大儉)임. ᄋ 1월 옥동리사(玉洞里祠), 도유사(都有司)는 신광도(辛光道)임. ᄋ 1월 도정서원(道正書院), 원장은 김미석(金眉錫)임. ᄋ 3월 10일 군수 신경조(申景祖), 연막청(蓮幕廳)을 상량함
1767(英祖 43) : 취허설탄(翠虛雪綻), 용문사 대장전(龍門寺大藏殿)의 중수상량문(重修上樑文)을 지음. ᄋ 보문사 극락보전 탱화(普門寺極樂寶殿幀畵) 2축(軸)이 그려져 봉안(奉安)됨
1768(英祖 44) : 10월 16일 영남 암행어사 김치공(金致恭)이 장계(狀啓)로 복명하자, 왕이 김치공을 입시시켜, "용궁현감 채도공(蔡道恭) 등을 잡아다 국문하라."라고 명령함.
1770(英祖 46)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예천의 장시는 읍내장(邑內場, 醴泉, 2 7日), 유등천장(柳等川場, 柳川蓀基, 4 9日), 화음장(華陰場, 開浦新陰, 3 8日), 읍내장(邑內場, 龍宮鄕石, 2 7日) 4처임. ᄋ 4월 서악사(西岳寺, 醴泉大心), 불탱(佛幀)을 완성하여 봉안함
1771(英祖 47) : 죽고각(竹皐閣, 知保新豊), 윤사석(尹師晳)을 위해 후손에 의해 창건됨.
1774(英祖 50) : 7월 1일 예천군과 용궁현, 돗자리(席子)를 진상함.(備邊司謄錄 15卷 212面上)
1777(正祖 1) : 농암정(農岩亭, 柳川), 박몽성(朴夢聖)을 위해 후손에 의해 상퇴치동(上退致洞) 진천 산록(陳川山麓)에 창건됨
1778(正祖 2) : 5월 5일 영남 등 4도에 지난 정월부터 시작한 진휼(賑恤)을 마치었는데, 영남에서 공적인 진휼로 예천, 용궁 등 고을에 구급(救急)한 굶주린 백성이 총 13,283명, 진휼한 곡식이 9,527석임. ᄋ 7월 20일에 윤면 등이 국방에 대한 상소문으로 왕에게 아뢰기를, "황산(黃山)의 임경산성(臨鏡山城), 토천(兎遷)의 노고산성(老姑山城)에는 모두 구첩(舊堞)이 있어 수선(修繕)할 수 있습니다. 황산의 길을 막으면 용궁, 예천과 조령으로 향하는 길이 막힙니다."라고 함. ᄋ 10월 30일 공조참판 김용겸(金用謙)을 승지로 삼고, 이(理)와 기(氣)에 대해 대화하다가, 임금이 말하기를, "근래의 징사(徵士)들을 경이 모두 알고 있는가?"하니, 대답하기를, "그 가운데 신의 5촌이 있는데, 인품이 자못 온아합니다."함. 왕이 이르기를, "김민재(金敏材)의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하니 대답하기를, "예천 땅으로 떠나가서 살고 있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함. ㅇ 12월 13일 왕, 예천(醴泉) 한오량(韓五良) 사건의 곡절(曲折)에 대해서,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조사해서 아뢰도록 하라고 명함. 즉, 형조가 예천의 동몽(童蒙) 한오량을 다시 문초하여 초기(草記)한 것을 인하여, 하교하기를, 해당 군수를 우선 해부(該府)로 하여금 나수(拿囚)하여 엄하게 신문하도록 하라. 그리고 구두로 공초한 본 사건의 곡절에 대해서도 해당 도신으로 하여금 직접 자세히 조사하여 즉시 아뢰도록 함으로써, 사실을 잘 조사하여 실상을 캐내어 조처하는 바탕으로 삼도록 하라.함.(日省錄)
1779(正祖 3) : 1월 13일 왕이 예천 군수는 당일에 하직 인사하라고 명함. 즉, 하교하기를,진휼하는 고을의 수령은 잠시도 비워둘 수 없다. 예천 군수는 하비(下批)를 기다려 당일에 하직 인사하게 하고, 말을 지급하여 내려보내라.함(編年國譯書의 日省錄). ㅇ 1월 30일 전 예천 군수(醴泉郡守) 정동신(鄭東藎)을 나처(拿處)함. 즉, 영의정 김상철이 아뢰기를,전 예천군수 정동신은 비록 다른 죄로 이미 배소로 출발하였으나 관직에 있으면서 불법을 자행한 죄상이 어사의 장계에 들어 있으니, 엄히 조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부(該府)로 하여금 나처하게 하소서.하여, 왕이 그대로 따름(編年國譯書의 日省錄). ㅇ 5월 29일 영남 등의 진구(賑救)를 마쳤는데, 용궁, 예천 등 영남의 기민(飢民) 총수는 741만 1,558명, 진곡(賑穀)은 13만 5,087석임. ᄋ 6월 14일 영남 암행어사 황승원(黃昇源)이 복명하면서 용궁현감 박기정(朴基正) 등이 잘 다스리지 못한 것을 논핵하였는데, 감죄(勘罪)하였고, 예천군수 정동신(鄭東藎)을 탄핵하여 이임시킴. 그리고, "인재로는 예천의 전 참봉 박손경(朴孫慶)은 효성과 우애, 재주와 학식이 훌륭하여 좌도(左道) 인사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데, 깊은 산속에서 흰 머리로 가난을 지키면서 글만 읽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1780(正祖 4) : <예천군읍지(醴泉郡邑誌)>에 의하면, 예천군의 편호(編戶)는 7,380호, 인구는 25,841명인데, 남자가 11,693명, 여자가 14,148명, 승호(僧戶)가 89호이고, 면수(面數)는 23개임. ᄋ <용궁현읍지(龍宮縣邑誌)>에 의하면, 용궁현(龍宮縣)의 편호(編戶)는 2,864호, 인구는 12,038명인데, 남자가 5,693명, 여자가 6,345명이고, 승호(僧戶)가 43호이고, 승정(僧丁)이 64명임. ㅇ 4월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아내를 데리고 예천으로 옴(國譯 茶山詩文集 1982). ᄋ 12월 21일 예천군수 정재원(丁載遠, 茶山 丁若鏞의 父), 영남 암행어사 이시수(李時秀)의 탄핵으로 이임함. 그리고 이시수가 왕에게 아뢰기를, "예천 겸임 풍기군수 심중규(沈重奎), 용궁현감 김상두(金尙斗) 등은 환곡(還穀)을 더 나누어 주거나 멋대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이포(吏逋)나 반작(反作, 吏屬들이 虛僞文書 作成으로 還穀 否定 出納)이 있기도 하였고, 형구(刑具)가 규정을 어긴 것이 있기도 하였는데, 모두 잡아다 문초하였습니다... 예천 등 네 고을의 사노(寺奴)의 수량이 가장 많았습니다."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음
1781(正祖 5) : 12월 28일 경상도관찰사 조시준(趙時俊)이 상소하기를, "진상(進上)하는 돗자리(席子)에 관한 폐단으로 예천, 용궁 등 여덟 고을은 매년 2월이나 8월에 장흥고(長興庫), 상의원(尙衣院)에 바치는 돗자리가 1,300여 장인데, 경사(京司)에 상납할 즈음에 점퇴(點退)하는 폐단과 정채(情債)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배로 불어나서 여덟 고을의 석장(席匠)들이 땅을 팔고 집을 팔아 가산이 탕진되어 떠돌아 흩어진 사람이 10의 8,9는 차지합니다. 그리하여 각 고을의 석장들 가운데 지금 남아있는 것이 8명에서 5명도 못되기 때문에 매양 진상하는 계절을 당하게 될 적마다 침탈이 족린(族隣)에게 파급되고 폐해가 인사(姻査)에 미치는 탓으로 심지어는 혼인길이 끊기게 되었으니, 이도 또 화기(和氣)를 손상시키는 한 가지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추환(秋還)에 대한 폐단입니다. 예컨대 좌도의 예천 등 고을은 그 폐단이 있는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도는 이전(移轉)하는 일로(一路)에 달려있습니다. 준령(峻嶺) 아래에 있어 목도(木道)로 물길따라 내려보낸 것도 이미 그런 형세가 없고, 육로로 전수(轉輸)하자니 번번이 소요을 일게 합니다. 때문에 지금같이 곡식을 옮겨 백성을 진구(賑救)할 때에는 부근에 있는 약간의 고을에 나아가 왕래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따라서 가장 외진 산읍(山邑)의 곡식에 이르러서는 본디 그대로 있어 해마다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실정이니, 이를 바로잡아 고치는 방도는 무천(貿遷)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신은 내년 가을 적곡(적穀)을 받아들일 때에 예천 등 아홉 고을에 있는 각곡(各穀)의 다과(多寡)를 헤아려 참고해서 한결같이 민원에 따라 시가에 의거 돈으로 대봉(代捧)한 다음 연읍(沿邑)에 고르게 분배하여 이무(移貿)하게 하는 것이 편의에 합당할 듯 합니다. 또 예천, 인동(仁同)의 포곡(逋穀)에 대한 폐단입니다. 대저 포흠(逋欠), 반작(反作)된 곡식을 감색(監色)이 부흠(負欠)했거나 관장(官長)이 범했거나를 막론하고 현발(現發)된 뒤에는 장문(狀聞)하여 논죄하는데, 비록 구포(舊逋)를 탕감시키는 때를 만나더라도 그 가운데 참여시켜 논할 수 없습니다. 이 번 예천 등 두 고을의 포흠과 반작 가운데 만일 한 푼이라도 받아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찌 다른 의논을 용납할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예천군의 구환(舊還) 가운데 280석은 이것이 바로 두 번 지나간 1716년(숙종 42)에 색리(色吏)가 축낸 것으로 지금까지 거의 70년이 됩니다. 포흠을 낸 색리는 물고(物故)된 지 이미 오래고, 또 자손과 족속(族屬)가운데 850석을 바로 무자년(1768)에 본부의 전 부사 심명희(沈命希)가 범용(犯用)한 것인데, 심명희가 유용(流用)하여 가져다 쓰고는 미쳐 충보(充報)하기도 전에 관에서 죽었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이미 조정에 발문(發聞)하였습니다만, 모두 지징(指徵)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매양 구환(舊還)을 봉상(捧上)하는 때를 당하면 후손이 없는 포리(逋吏)가 범한 것과 사망한 관장이 쓴 것을 숫자에 보태어 민간에게서 나누어 징수하여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숫자를 채우고 있는데, 어리석고 미열한 소민(小民)들은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번번이 조령(朝令) 이외에 더 받아들이는 것으로 의혹하여 원망하고 있으니, 이는 진실로 차마 못할 정사(政事)인 것으로 단지 간사한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는데 도움을 주기에 족할 뿐입니다. 대개 예천 등 두 고을의 포곡은 비록 100년이나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미 거두어 들이기는 어렵고, 한갓 평민들에게 폐만 끼칠 뿐이니, 이는 탕감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하니, 왕이 답하기를, "폐단에 대한 말한 조항은 모두 매우 근거가 있는 것이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겠다."하였음.
1782(正祖 6) : 1월 15일 예천, 포곡(逋穀)의 폐단이 있음(備邊司謄錄 16卷 123面上)
1783(正祖 7) : 왕의 원자 문효세자(元子文孝世子)의 태실(胎室)이 용문사(龍門寺)에 봉안(奉安)됨. ᄋ 8월 5일 원자(元子)의 태봉(胎封)을 예천에다 정함. 처음에는 원주(原州)에다 정했는데, 연신(筵臣)의 말이, "태봉 근방의 땅에 백성의 무덤(民塚)이 있으므로 마땅히 파내어 옮겨야 합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신하들의 의논이 모두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여긴다면, 차라리 다시 딴 곳을 구해야 한다. 이 항아리 하나를 간수하기 위해 사람들의 무덤을 옮기는 것은 내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하니, 연신이 말하기를, "원주 이외에는 다만 예천에 한 곳이 있습니다."하니, 드디어 상지관(相地官)을 보내어 살펴보도록 하여 결정하게 한 것임. ᄋ 8월 18일 서유성(徐有成)을 의금부의 의언(議언)에 따라 용궁현에 귀양을 보내면서, 왕이 판하(判下)하기를, "요사이 시험장에 분경(紛競)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번에 짓밟히어 생명을 잃은 수가 6명이나 되었다. 과장(科場)이 엄해지도록 하고 사람의 생명을 중히 여겨야 하는 도리에 있어서 단지 예에 따라 감죄(勘罪)만 할 수 없으니, 바로 그 과장하던 고을에다 도 3년(徒三年)으로 정배(定配)하여 영외(營外)의 인사들에게 사죄하게 하도록 하라."함. ᄋ 9월 5일 용궁현에 정배한 죄인 서유성(徐有成)을 놓아줌.
1785(正祖 9) : 명봉사(鳴鳳寺) 경내에 있는 문종대왕 태실(文宗大王胎室)을 가봉(加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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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6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청렴 자치단체로 평가...축하합니다.
예천군 선정(慶事났네! 道廳 新都市 雄飛하는 禮泉郡 國民權益委 全國 淸廉 自治團體로 評價!) [記事] : 매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청렴도 측정을 실시하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가 2017년 12월 6일 전국 573개 공공기관에 대한 '2017년 측정 결과 발표'에서 예천군이 경상남도 창녕군, 충청북도 보은.옥천군 등 3개 군에 이어 2등급을 받아 청렴지역으로 평가했다. 권익위 관계자에 따르면 "예천군은 종합청렴도(7.83, +0.03), 외부청렴도(7.98, +0.15)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자치단체들의 의견이 있는 내부청렴도 평가(7.46, -0.47)에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고객평가단'으로부터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청렴도는 측정 대상기관의 부패경험과 부패인식에 대해서 국민(외부청렴도)과 소속 직원(내부청렴도)및 전문가(정책고객평가) 등의 설문조사 결과와 부패사건 발생현황 감점을 적용하는 방식을 통해 예천군이 전국 청렴도 2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도 설문조사에 참여한 국민은 전체 23만 5,600명으로, 측정 대상기관의 업무 경험이 있는 민원인 15만 2,000명, 소속 직원 6만 3,200명, 학계 및 시민단체 등 2만 400명이 올해 8월~11월(4개월간)까지 조사(전화, 스마트폰, 이메일)를 진행했다. 예천군이 청렴도 우수군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들은 "2010~2011, 2014년 청렴 최우수군, 2015년 2등급에 이어 올해도 전국 청렴도 2등급을 받은 것은 평소 공직자들의 청렴을 강조해 온 이현준 군수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며 '예천군민으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7-12-07 오전 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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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면 출신 정재송 제이스텍 대표, 5일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서울)에서 5억불 수출탑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정재송(정재송 제이스텍 代表 5億佛 輸出塔 受賞) [記事] : 풍양면 삼강리 태생의 정재송(59·인천시 부평구) 대표이사가 경영하는 ㈜제이스텍이 2017년 12월 5일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서울 코엑스)에서 5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정재송 대표는 이날 기념식 단상에 올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5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무역의 날 행사는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수출 증대에 매진해온 무역인들을 격려하는 자리다. 제이스텍은 1995년 설립 후 반도체 자동화장비 및 디스플레이 자동화장비 전문기업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 분야와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의 발전과 첨단기술 개발에 기여해왔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자동화장비를 제작하여 국내외 유수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에 장비 공급 및 수출을 함으로써 국가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고객중심 경영, 투명 경영을 실현하여 주주와 고객, 임직원이 모두 이익을 공유하는 공동체 경영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에이에스티와의 합병을 거치면서 TSP,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 분야에 지속적이고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정재송 대표는 "창의, 도전, 성취, 인화의 사훈 아래 모든 구성원들이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완벽한 품질보증 서비스, 철저한 사후 관리를 통해 고객에게 고품질의 장비를 제공하고 생산성 향상을 지원함으로써 고객이 언제나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제이스텍은 지난 2007년 1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됐다. 한편, 정재송 대표는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 물품 기부, 불우이웃돕기 성금 기탁, 각종 행사 지원 등 고향 발전을 위한 봉사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醴泉新聞 2017년 12월 07일 (목) 10: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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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서예인연합전 제16회(2017)>., 6일 발행됨.
예천서예인연합전 제16회(2017년)(醴泉書藝人聯合展 第16回(二0一七年)) [冊] : 예천서예인연합회(회장 남전순)이 2017년 12월 6일에 발행한 책으로, 80쪽, 사진, 도표, 30cm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연혁 =1// 인사말(남정순 회장) =4// 격려사(이현준 군수) =5// 축사(조경섭 군의장) =6// 축사(권창용 문화원장) =7// 작품들 : 권경섭 =8// 권두섭 =9// 권오성 =10// 권재봉 =11/ 권재화 =12// 권준호 =13// 김경숙 =14// 김영순 =15// 김영훈 =16// 김용희 =17// 김정섭 =18// 김창일 =19// 유정희 =20// 박균만 =21// 박근노 =22// 박나영 =23// 박우희 =24// 변국화 =25// 변성녕 =26// 변태연 =29// 송고흠 =28// 송재옥 =29// 김대수 =30// 신동영 =31// 신석환 =32// 안상일 =33// 엄봉흠 =34// 우형윤 =35// 윤민식 =36// 윤승식 =37// 윤승희 =38// 윤은식 =39// 이국문 =40// 이도식 =41// 이보희 =42// 이성호 =43// 이승훈 =44// 이연화 =45// 이청숙 =46// 이필원 =47// 이한정 =48// 전도석 49// 전병탁 =50// 정대교 =51// 정석홍 =52// 정용일 =53// 정일교 =54// 정종모 =55// 조장규 =56// 조현창 =57// 지용오 =58// 최부열 =59// 최현묵 =60// 홍승란 =61// 남정순 =62-63// 고문 : 정의걸 =65// 장병국 =66// 김학윤 =67// 한중섭 =68// 수상현황`회원주소록 =70-80//(作成 張炳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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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