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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연보20:1894.9.1-1896.1.13(祝이현준/예천군청)
작성자장병창 @ 2017.12.11 18:07:57

  예천의 연보 20 : 1894(고종 31).9.1-1896(고종 33).1.13(附 이현준 예천군수, 11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2017 대한민국 베스트 인물대상 혁신행정자치단체장부문 대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예천군, 11일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조사에서 경북 군부 2위를 수상함, 전국 상위권을 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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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高宗 31) 9: 1일 화지접(花枝接)을 공격하여 거점을 빼앗음. ᄋ 예천군 동도 수접주 최맹순(首接主崔孟淳)은 소야(蘇野) 기지에서 강원도 평창으로 피신함. ᄋ 일본군, 안동 방향으로 떠남. 2일 안동병, 철수함. 예천읍 시장에는 상포를 사러 오는 사람이 많음. 4일 경상 감사 조병호(趙秉鎬)가 파견한 병방 신태휴(兵房申泰休)가 지휘하는, 남영병(南營兵) 250명이 예천읍내에 와서 1박하고 문경 쪽으로 떠남. 5일 남영병, 용궁으로 가서 소야 부접주 고상무(副接主高商武) 3형제를 체포하여 효수(梟首).

 

  ᄋ 13일 집강소, 금곡(金谷) 일대의 마을을 수색하여 접사 정명언(接司 鄭明彦)을 처형함. 15일 용문면 대제리 장정 80여 명이 예천읍에 와서 읍을 방비하는데 협조함. 의정부 계언에 의하면 영남 선무사 이중하의 보고로 동학교도 4-5천 명이 내범하니, 예천군의 관리와 백성이 일제히 협력하여 격퇴하였다고 함. 15일 조정에서 집강소 설치 주도자(鄭戴一)와 민군의 지휘자(張文健과 黃松海)를 영남 감사에게 조사하여 포상을 건의하도록 지시함(이들 3명은 갑오군공록에 오름). 15일 갑오농민전쟁 당시 군공이 있는 사람들의 명단 중에 예천이방(醴泉吏房) 정대일(鄭戴一, 設法諭賊 殺獲無嗣), 예천민(醴泉民) 장문건(張文建)과 황송해(黃松海, 奮身倡率 瞬平匪黨)가 있음(甲午軍功錄 奎17185 軍部篇).915일 동학농민군이 예천군으로 처들어오자 예천 백성이 합력하여 이를 격퇴함.18일 앞서 일본 특명전권대사 대조규개가 외무대신 김윤식에게 공문을 보내어 경성, 부산 두 곳으로부터 일본병 약간을 파견, 일본병을 원조하여 삼남 동학교도를 토벌할 것임을 통보하고, 또 이 뜻을 각 지방관 및 출정대관(出征隊官)에 동유(洞諭)할 것을 요청한 바 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음. "지난 7.8월부터 경상, 전라, 충청도에서 동학교도들이 재기하여 양민을 잔해(殘害), 재물을 약탈하고 있으니, 여기에 패잔 청병(敗殘淸兵)이 가세하여 일본인의 배척, 일본병의 공격을 성토하여 천안, 용궁, 문경 등지에서 일본인을 습격하여 살해하고 일본병과 교전하는 등 그 창궐이 극에 달하고 있다..."라 함(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日記 高宗 31, 舊韓國外交文書 3日案 3216號 高宗 31 918, 3221號 高宗 31, 駐韓日本公使館記錄 明治 27, 東學黨ニ關スル件附巡査派遣ノ件 (1) 202號 明治 27). 19일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왕에게 아뢰기를, "예천 이민(吏民)이 동학교도를 토벌한 바 있으므로 예천군 선창 토적인(先唱討賊人)을 모두 위임하여 즉시 다른 곳의 동학교도를 초토하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하여 윤허받음(日省錄, 高宗實錄, 議定存案, 官報). 20일 일본 공사 대조규개(大鳥圭介)가 외무대신 김윤식(金允植)에게 공문으로 이르기를, “동학교도들이 지난 7.8월부터 천안, 용궁, 문경 등지에서 일본인을 습격하고 살해하고 일본병과 교전하는 등 창궐을 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관들은 이를 제지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혹은 돈이나 재물을 주어 동학도들을 초무(招撫)하되 만약 귀순하지 않을 때는 파병 토벌해야할 것을 권하고, 이 때에는 일본병을 파견하여 원조할 것임을 밝힌 바 있으나 아직 그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함. 27일 순영(巡營)에서는 공문을 예천군의 각 면, 각 동 그리고 이웃 읍()에까지 돌렸는데, 그 내용은 위급한 일이 일어나면 서로 힘을 합해 돕자는 것임. 29일 용문면 큰맛찔에 동회(洞會)가 열려서 동집강(洞執綱)에 권경천(權景天)이 당선됨.

 

1894(高宗 31) 10: 8일 예천읍의 집강(執綱)이 통문(通文)을 각 면()에 돌렸는데, 내용은 동학도로서 전사한 자와 도망한 자의 토지 및 곡물을 샅샅이 조사하여 보고하라는 것임. 몰수하기 위한 것이라 함. 19일 읍리(邑吏)가 면 집강소(面執綱所)에 나와서 동학도(東學徒) 가운데 죄가 있는 자의 토지와 곡식, 가축을 모두 몰수하여 감

 

  ½ &1894'(高宗 31) 11: 2일 예천읍에서 동학군을 무찌르는데 성공한 후로는 도처에서 동학군이 패하여 마치 추풍낙엽과도 같았음. 11 1일 중앙 정부에 보고된 것에 의하면, "영남 일대는 5월 이후 크게 가물어 대천(大川)이 끊어지고, 저수지에서 먼지가 일 정도였다. 우심(尤甚)은 경주 등 37()이고, 지차는 예천, 용궁 등 21, 초실(稍實)은 청송 등 13읍으로 나누지만, 그 차이는 크게 구별될 수 없다."라고 함. 16일 남접동학군(南接東學軍)과 대일(對日) 항전에 합세한 후 공주 전투에서 패한 북접군 수 천 명이 무주(茂朱)에서 다시 집결하고, 영남 지역을 위협하자, 상주 소모영(召募營)에서 할당한 포군 정예자(砲軍精銳者) 600명을 예천읍에서 파견함. 도총(都摠) 장문건(張文健) 황송해(黃松海), 좌우 검독(左右檢督) 황돈일(黃敦一) 김시규(金時圭), 군향도감(軍餉都監) 배영진(裵永鎭), 참모(參謨) 황세하(黃世河) 황돈해(黃敦海) 등으로 조직된 집강소군이 출정할 때 군수 조원하(趙爰夏)5리까지 출송(出送). 17일 부병을 뒤따른 100여 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함창현에서 동숙(同宿). 18일 상주 도착, 무주의 동학군이 황간, 영동을 거쳐 북상하다가 해산하므로서 예천부병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음. 19일 부병, 회군하여 용궁현에서 숙박함. 한편 은풍(殷豊, 상하리면) 윗마을과 아랫마을에서는 문령(蚊嶺), 축령(축嶺), 우수령(우樹嶺) 그리고 고항령(古項嶺) 등 네 고개를 단양의 동학군을 방위함. 20일 집강소군, 예천군에 돌아옴. 군수 이하 군민이 대대적으로 환영함. 22일 소야를 중심으로 동도를 규합하여 예천군 48 7만여 동학농민군을 지휘하던 관동수접주 최맹순(關東首接主崔孟淳)은 그의 아들(汗杰) 및 접사 장복극(接司張卜極)과 함께 체포되어 처형됨. 22일 부세(賦稅)로 징수하는 무명(1893年 結價)을 예천군은 가장 낮은 10냥으로 항정(恒定)하고, 용궁군은 13 5() 3분으로 징수해 달라는 경상도의 보고가 있었음(公文編案05 18154, 度支部篇).

 

1894(高宗 31) 12: 3일 영남 북서부 15읍을 관할한 상주 소모영이 예천집강소에 전령을 내리기를 앞으로는 고지법사(告知法司)하고 무절제한 보복을 하면 참형에 처하겠다고 함. 5일 상리면 백석(白石) 마을은 거의 동학촌(東學村)이 된 바 있으나, 지금은 모두 귀화함. 당초부터 동학군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 두 사람이었는데, 남주경(南周卿)과 박()ᄋᄋ였다고 함. 9일 소모사(召募使)가 보낸 공문에 창의와 토동비(討東匪), 그리고 의병책(義兵策)에 관한 지시가 담겨있다고 함. 10일 경북도내 각 읍의 수재 상황에 대해 등급으로 나누어 보고한 관찰사의 보고서에 의하면, 예천, 용궁 등 21읍은 2등임(公文編案05 18154 度支部). 15일 밤중에 예천읍에서 마을의 말들을 몰아갔는데, 그 광경이 소란함. 행군할 계획이라 함. 16일 안동 포군 6백 명과 예천읍의 포군이 6백 명, 그리고 각 읍에서 징병한 자까지 합하면 1만여 명이나 됨

 

1895(高宗 32) : 하 신부, 예천 허리띠공소를 방문함. 김경수, 도장공소 제3대 회장이 됨. 1 <예천군읍지(醴泉郡邑誌)>, 간행됨. 그에 의하면, 예천군(醴泉郡)의 편호(編戶)6,356, 인구는 23,742명인데, 남자가 10,665, 여자가 13,077명임. 승호(僧戶)89호에 승정(僧丁) 109명임. 서당조(書堂條)에 노계서당(魯溪書堂, 普門繩本), 대제서당(大渚書塾, 龍門), 연봉서당(蓮峰書堂)이 추가로 설립되어 있음. 1 20일 예천용궁안동함창개령남영군으로 편성된 상주방어군 1,000여 명, 동학농민군을 막기 위헤 상주에 집결함. 2월 예천집강소, 해체됨. ᄋ 중춘(仲春) 반재원(潘在元, 고평), <예천갑오척사록>을 저술함. 2 8-10일 예천군, 대동전(大同錢)의 미수세(未收稅)1201()(公文編案18 18154 度支部篇). 3 8일 왕, 예천군수 조원하(趙爰夏)에게 비단을 내림(賜表裏一襲 謹奉聖旨依允矣 綿紬各二段式 入盛冠子下送事 冠子到付)(公文編案18 18154 度支部篇). 4 28일 예천군수 조원하(趙爰夏) 면직함(內部請議書1 17721 內閣편록과篇).

 

  ᄋ 5 8일 경상도관찰사, 예천군과 용궁군의 세금 목록을 매결(每結) 20냥 정가(定價)로 탁지부에 보고함(公文編案18 18154 度支部篇). 5 26일 칙령 제98호로 전국 23부제(府制) 실시의 부목군현(府牧郡縣)의 일괄적 군() 정비에 따라 용궁현(龍宮縣)이 군()으로 승격되고, 안동부 관하(安東府管下) 예천군(醴泉郡), 용궁군(龍宮郡)이 됨(內部請議書1 17721 內閣편록과篇). 526일 예천군과 용궁군, 안동부의 소속이 됨. 612일 예천 등지에 호우로 내와 도랑의 범람, 제방의 붕괴, 전답과 인가의 피해가 있음.612일 호우로 인하여 안동부의 봉화, 문경, 예천 등 3군에서는 내와 도랑이 범람하여 제방이 여러 곳 허물어지고, 창고 18동과 파수(把數) 3,572와 전답 1,000여 두락이 물에 잠기고, 인가 10여 호가 허물어 짐(官報 開國504.7.26). 7 9일 내부에서 내각에 보고하기를, "6 11일의 비에 용궁 등 5읍은 내와 도랑이 넘쳐 흘러 방축이 붕괴하고, 전답이 모래로 덮히고, 집이 무너진 곳이 비일비재합니다."라고 함(內部來文01 17761 議政府篇). 7 17일 안동부(安東府) 관내 용궁군의 큰비로 인한 수재 상황은 방축이 무너진 것이 허다함(官報 開國504.8.16, 8.28, 10.5). 717일 홍수로 용궁 등지의 제방이 무너짐.724일 안동부관찰사 보고에 의하면 612일의 비에 예천 등은 내와 도랑이 범람하여 제방이 여러 곳 무너져 없어졌으므로 창고 18, 방축 붕괴 3,572()와 전답 1,000여 두락이 포락(浦落)이 되고, 인가 10여 호가 표퇴(漂頹)되었다고 함(內部來文01 17761 議政府篇). 7 26일 호우(豪雨)로 인하여 예천 등 3군에서 내와 도랑이 범람하여 제방이 곳에 따라 무너져 창고 18, 3,572(), 논밭 1,000여 두락이 포락(浦落)되고, 인가 10여 호가 무너짐(官報). 8월 박주상(朴周庠, 龍門上金), 을미사변(乙未事變) 후 사재(私財)를 털어 각 사림(士林)에 통문(通文)을 보내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의병대장(義兵大將)에 추대됨. 8 14일 안동부관찰사 보고에 의하면, 6 12일의 비에 예천군 인가 표퇴(漂頹)26, 전답 포락(浦落)3,960여 두락, 방축 붕괴가 6,030여 파(), 717일의 비에 용궁 등 8읍은 내와 도랑이 넘쳐 흘러 방축 붕괴가 많다고 함(內部來文01 17761 議政府篇). 9 5일 칙령 제164호로 예천 군수 3, 용궁 군수 4등의 군수 관등이 반포됨(內部請議書2 17721 內閣편록과篇). 95일 예천군은 3등군, 용궁군은 4등군으로 됨.929일 경상도관찰사, 예천군은 각() 800(), 용궁군은 각 250석으로 환곡 수매수(還穀收買數)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탁지부(度支部)에 보고함(公文編案18 18154 度支部篇). 10 27일 큰 바람이 불어 지붕이 날아갈 것만 같음. 1111일 경상도관찰사, 예천군의 세금 징수를 탁지부에 보고함(醴泉郡 司甕院 折受 田畓陳縫은 依前縫下하고, 時起結價 折受例 施行事 質稟함. [答信] : 所稟 중 醴泉結은 難以準懲結政이니 參酌 民情하여 更定 結價 報來 施行할 것)(公文編案18 18154 度支部篇). 11 29일 경상북도 관찰사가 관내 여러 고을에 단발령(斷髮令) 공문을 보냈다고 하는데, 예천 군수는 즉시 사표를 냈고, 이방(吏房) 몇 사람도 함께 사표를 던졌다고 함

 

1895(高宗 32) 12: 3일 예천군에 삭발 관문(削髮關文)이 당도함. 10일 경병(京兵, 官軍) 20-30명이 적성(赤城, 동로)과 금곡(金谷, 용문)을 지나 예천읍에 이름. 그들은 사람을 안동에 보내어 이 사실을 통보함. 이 경군(京軍)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왜군의 옷을 입음. 10일 왜적이 8일 밤에 패주하여 장회에서 유숙하고자 하여 그 동민을 협박하여, "가서 의병의 동정을 탐지하여 오라. 그렇지 않으면 죽인다."라고 겁박한즉 그 동민 중에 기개를 가진 한 사람이 얼마 안 가서 급히 돌아와서 크게 부르짖어 이르기를, "의병이 크게 온다."하니, 저 왜놈들은 창황이 도망쳐 청풍 지경에서 묵고, 다음날(9) 사잇길로 단양 사인암에 머물렀다가 복병이 있을까 두려워 장림에 내려가지 못하고, 하룻날 하룻밤을 산에 올라 후망하다가 마침내 10일 예천으로 퇴거하였다(인터넷 my.netian 2001). 12일 경군은 계속 예천읍에 머뭄. 안동 의병과의 일전(一戰)을 기다리고 있는 듯함. 13(양력 1896.1.12) 경병 60여 명이 또 금곡을 거쳐 예천읍에 와서 자고 있는데 관아의 이방들이 그들을 접대하고 있다고 함. 14일 예천읍에 머무르고 있던 경군이 밤에 안동으로 쳐들어감. 안동 의병들은 경군을 막을 길이 없었고, 예천읍민들은 짐보따리를 짊어지고 피난하는데, 그 행렬이 길을 메움. 15일 향회(鄕會)가 열림. 16일 향회를 예천향교로 옮겨 열기로 하고, 삭발을 하지 않기로 결의함. 17일 선유사 이규진(宣諭使李圭鎭)이 예천읍에 당도하여 영기(令旗)를 나부끼면서 강제로 삭발하지 않겠다는 조칙(詔勅)을 포고함. 그러나 강제 삭발은 계속됨.

 

1896(高宗 33, 건양 1) 1 : 하 신부, 천주교 허리띠공소도경리공소청호리공소를 방문함. 5일 박주상(朴周庠)이 예천의병장으로 추대되었으나 신병(身病)으로 인하여 의병소에 사직 단자(單子)를 보냄. 6일 순포(巡捕)들이 예천읍에 들어와서 공전(公錢)을 내라, 무기를 납부하라, 삭발을 하라면서 제멋대로 구는데 관가(官家)에서는 한결같이 이를 거역하지 못함. 1 6일 안동부(安東府) 아래 각 군 중 예천, 용궁, 순흥군은 작년 동학농민운동 때 그 진압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할 길이 없다는 내용을 탁지부에 보고하니, 답하기를, "3읍 동학농민운동 때에 그 진압비는 배정되어 있으되, 예천은 그 수가 경연(勍然)하니, 조사하여 감할 수 있고, 용궁, 순흥 두 읍은 보고대로 옛 미납분 중에서 감할 것"이라고 함(公文編案29 18154 度支部篇). 19. 의병에게 살해된 관리들 : 강제로 단발을 행하다가 의병들에게 살해된 자들은 춘천관찰사 曺寅承, 안동관찰사 金奭中, 충주관찰사 金奎軾 등이며, 관찰사 이하로는 의성군수 李觀永, 영덕군수 丁在寬, 예천군수 柳寅衡, 안동경무관 林炳元, 우체국주사 金載潭, 청풍군수 徐相耆, 단양군수 權潚, 천안군수 金炳塾, 나주參書官 安宗洙, 摠巡 朴善昊, 양양군수 楊命學, 고성군수 洪鍾憲, 강릉경무관 高俊植, 三水군수 柳完秀, 함흥참서관 睦裕信, 主事 皮相國洪丙贊, 해주경무관 李敬善, 총순 黃穆, 세무관찰 印錫輔, 砥平군수 孟英在, 廣州府尹 朴基仁, 忠州府主事 洪裕政 등임(梅泉野錄 第2).13일 안동의병대장이 의병을 거느리고 예천읍에 당도하였는데, 읍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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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예천군수, 11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2017 대한민국 베스트 인물대상 혁신행정자치단체장부문 대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이현준(李鉉濬 郡守 '大韓民國 베스트 人物 大賞 受賞') [記事] : 이현준 예천군수는 2017 1211일 오전 11시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된 `2017 대한민국 베스트 인물 대상' 시상식에서 혁신행정 자치단체장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은 대한뉴스신문()2017 대한민국베스트 인물대상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대한뉴스, 코리아뉴스, 크리에이티브코리아와 도서출판 녹명이 주관한 것이다. 2017 대한민국 베스트 인물 대상은 대한민국을 정치, 지역경제 등 각 분야별로 이끌어 온 인물을 대상으로 경영혁신, 의정활동, 지역경제, 브랜드별 전략 등에 관한 평가와 소비자인지도 설문 조사를 통해 1차 심사하고 이중 사회 각계각층 전문가들과 유권자들의 시각에서 높은 지지도를 얻은 인물을 중심으로 최종 심사 의결을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이 군수는 예천세계곤충엑스포, 예천세계활축제의 성공적 개최로 세계 속의 국제도시로 입지를 다져나가는 한편, 지역 산업 근간인 농․축산․임업의 기반을 강화해 경쟁력을 높이고 도청 신도시와 연계한 지역개발 확충 기반을 다진 것에 대해 높은 평가 받으며 미래 성장가능도시로의 변신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현준 군수는 군민들이 다함께 노력해 준 덕분에 예천군이 성장 가능성 있는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되었다.”, “지역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성원과 협조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신()미래성장의 예천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醴泉新聞 20171211() 15: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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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11일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조사에서 경북 군부 2위를 수상함, 전국 상위권을 유지함

 

  예천군 수상(醴泉郡, 淸廉度 照査 慶北郡部 2, 全國 上位圈) [記事] : 경북 예천군이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에서 7.83점을 받아 2년 연속 2등급을 기록하며 경북 군부 2, 전국상위권을 유지했다. 20171211일 군에 따르면 권익위에서 매년 조사하는 청렴도는 측정 대상기관의 부패경험과 부패인식에 대해 업무경험이 있는 국민, 소속직원,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와 부패사건 발생 현황을 반영한 점수를 종합해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군은 청렴도 향상을 위해 공직자 청렴가이드북 제작 배포, 청백-e 상시모니터링을 통한 예방감사, 공직감찰 실시 행동강령 이행을 촉구, 외부강사 초청 청렴 특별 교육을 실시 등 신뢰받는 공직 풍토를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예천군 관계자는 청렴도 측정결과를 군 홈페이지에 1개월 이상 공개해 국민들이 예천군의 청렴수준을 손쉽게 열람하게 하고 공직자들의 청렴의식에 경각심을 주는 등 청렴도 측정에 대한 관심을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김성권 記者 헤럴드經濟 2017-12-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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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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