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예천의 연보 30 : 1925.8.12.-1926.10.26(附 조봉래 예천농업기술센터 친환경바이오담당,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됨...축하합니다)
---
ᄋ 12일 예천 형평분사, 예천경찰서의 해산 명령을 받음(韓國共産主義運動史硏究, 東亞日報 1925.8.16, 日帝侵略下36年史). ᄋ 13일 재대구예천학우회(在大邱醴泉學友會), 예천심상소학교(醴泉尋常小學校)에서 예천소년정구대회(醴泉少年庭球大會)를 열었는데, 예천공보(醴泉公普)팀이 우승함. ᄋ 15일 경상북도 사상단체 화성회(火星會), 예천 형평분사 습격사건의 진상조사단을 파견함(韓民族獨立運動史). ᄋ 15일 예천동우회(醴泉同友會, 會長 李翊鎭), 예천읍 남본리 장철영 가(張喆永家)에서 창립됨. ᄋ 17일 여자청년회(女子靑年會) 등 경북 10개 단체, 예천 형평분사 습격사건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고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의함(東亞日報 1925.8.19, 韓民族獨立運動史).ㅇ 17일 조선청년총동맹, 예천형평분사습격사건의 진상조사단을 파견함. ᄋ 18일 재경해방운동 단체(서울계), 경성청년연합회관에 모여 예천 형평분사 사건에 대한 조사위원 파견 등의 결의를 함(韓國共産主義運動硏究). ᄋ 19일 조선노동총동맹 등 23단체 대표 50여 명(북풍계), 4단체 합동위원회관에서 예천 형평분사 습격사건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고 진상규명 결의문을 채택하고 실행위원을 선출하여 진상 규명을 결의함(韓國共産主義運動史硏究, 東亞日報 1925.8.21, 韓民族獨立運動史). ᄋ 19일 형평사 중앙총본부, 예천 형평분사 습격사건을 듣고 긴급회의를 열고 전국 형평사원의 총출동 의결 및 결의문을 발표함(韓民族獨立運動史). ᄋ 21일 예천형평사 습격사건에 대해 각지 사상단체, 조사위원을 파견할 것을 결의함(東亞日報 1925.8.24, 日帝侵略下36年史). ㅇ 21일 예천형평분사 습격사건에 대하여 군산 14개 단체가 조사위원을 파견할 것을 결의함. ᄋ 25일 대구의 10여 사상단체, 협의회를 개최하여 예천농민형평사 습격사건에 대해 진상 조사를 하고, 형평운동을 원조할 것을 결의함(韓國共産主義 運動史硏究, 東亞日報 1925.8.27, 日帝侵略下36年史). ᄋ 25일 유전노동친목회(柳田勞動親睦會, 執行委員長 康弼漢), 용문면 하금곡리에서 창립됨. ᄋ 26일 예천불교포교당(醴泉佛敎布敎堂), 김태흡(金泰洽)의 '조선 문화에 대한 불교의 지위'란 주제로 강연회를 염. ᄋ 29일 안동 12개 단체, 예천형평사건(醴泉衡平事件)의 가해(加害) 책임자를 예천청년회와 예천노농회(醴泉勞農會)로 발표함
1925.9: 1일 예천우편소(醴泉郵便所)에서 취급한 금융 통계(金融統計)는, 위채취급구수(爲替取扱口數)가 10,796구, 금액이 648,583원, 저금취급구수(貯金取扱口數)는 6,358구, 금액은 696,042원, 진채저금구수(振替貯金口數)는 6,036구, 금액은 459,980원에 이르러 전년(1924)에 비하여 총 2,881구와 금액 318,716원이 증가되었을 뿐 아니라 우편 발착(發着)이 934,000여 통(通)에 이르러 약 8할이 증가됨. ᄋ 6일 보문청년회(普門靑年會), 보명서숙(普明書塾)에서 창립됨. 집행위원 서무부(庶務部)에 윤태희(尹泰熙) 김두규(金斗圭), 동 교양부에 윤봉희(尹鳳熙) 김영달(金榮達), 동 조사부에 김규하(金圭夏) 김응기(金應基)임. ᄋ 서부청년회(西部靑年會, 開浦)가 창립됨. ᄋ 7일 예천신흥청년회(醴泉新興靑年會), 예천청년연맹(醴泉靑年聯盟)으로 조직 개편하여 창립총회를 개최함.
1925.10: 2일 박심수(朴尋洙, 龍門大渚), 용문면내 빈민(貧民) 181호에 대하여 1925년도 제2기 호세(戶稅) 25원 89전을 대납하였고, 빈가 아동 17명의 학비 및 식비를 부담하고 전부 취학케 하였음. 김익동(金翼東, 醴泉通明), 동내 빈민 163호에 대한 1925년도 제1기분 호세(戶稅) 48원 90전을 대납하고, 제2기분에도 식량 절핍(絶乏)된 빈민에게 호세 4원 36전을 대납함. ᄋ 3일 예천군농회(醴泉郡農會), 군내산(郡內産) 완초엽(莞草葉) 37,000근(斤)을 공동 판매함. ᄋ 11일 예천공립보통학교(校長 岡本), 57종의 경기로 추계 대운동회를 염. ᄋ 11일 예천예수교회, 교회 내에서 외국선교사(外國宣敎師)였던 이대영 목사(李大榮牧師)의 초청 강연회를 염. ᄋ 16일 경북도 문화선전활동사진대(文化宣傳活動寫眞隊, 隊長 權寧世), 예천공보교(醴泉公普校) 운동장에서 임업, 위생, 근검(勤儉) 등의 영화를 상영함. ᄋ 17일 호명면 학우친목회(學友親睦會, 會長 李鍾華), 오천서숙(오川書塾)에서 제4회 정기총회를 열고 임원을 개편하여 회장에 이찬영(李燦英)을 선임함
1925.12: 30일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의하면, "예천면 노상동 황지곤(黃之坤)은 신불심(信佛心)이 두터워 80세에 하세(下世)하고, 3년 후 그 선월(禪月)에, 행장(行杖)의 종말(終末)에 명주(明珠)가 생(生)함을 보고 당지 인사가 운집하여 관광하는 이마다 고금에 히한한 일이라 칭하나 무슨 구슬인지 모르다가 용문사 승 최취허(僧崔就墟)가 보고 사리(舍利)라고 증명하여 예천군 하리면 부용암(芙蓉庵) 승 황영국(僧黃永國)이 소문을 듣고 사리를 봉안코자 일반 신도 여러 명의 동정을 얻어 음력 11월 15일 경에 부용암(현 蓮華寺, 하리 시항 산1번지)에 이안(移安) 한다더라"고 함
1926.1: 하리면 일본인 지주 이등군조(伊藤軍造)의 소작인 159명, 소작료 체납에 의한 소작 해제에 항의하여 쟁의를 하였으나 주모자 25명의 피검으로 종결됨(高等警察關係年表, 日帝侵略下36年史)
1926.2: 주지 최성환(住持崔成煥), 보문사(普門寺)를 중수함. ᄋ 농암정(農岩亭, 龍門 下鶴), 권렴(權濂)을 위해 후손에 의해 이건됨. ᄋ 병암정(屛岩亭, 龍門 渚谷), 권기에 의해 창건됨. ᄋ 2일 예천형평사건(醴泉衡平事件)의 제1회 공판(公判)이 개정(開廷)됨. 피고는 남흥세(南興世), 이수암(李守岩), 목용택(睦龍澤), 박만수(朴萬壽), 황우춘(黃又春), 서북술(徐北述), 장재화(張在和), 김흥운(金興雲), 김경만(金敬萬, 以上 路上人), 명용이(明龍伊), 황인한(黃仁漢, 以上 東本人), 금병익(琴秉翊, 南本人) 등 12명임. ㅇ 3일 예천형평사(醴泉衡平社) 사건 공판에서 50원의 벌금형 언도함. ᄋ 6일 예천형평사건의 선동자로 명예훼손 당한 예천청년회장 김석희(金碩熙) 등이 고소한 안동 12단체 대표들에 대한 재판에서 벌금 50원씩 각각 언도됨. ᄋ 14일 예천을 중심으로 한 대표자 90여 명, 예천에서 6군(醴泉, 金泉, 尙州, 安東, 奉化, 榮州) 연합 경북선 연장(점촌~예천간)을 위한 경북철도기성대회를 개최함(東亞日報 1926.2.17 1926.2.18, 日帝侵略下36年史). ᄋ 19일 개포푸로청년동맹, 개포노동친목회관(開浦勞動親睦會館)에서 발기됨. ᄋ 23일 예천 신흥청년회(新興靑年會), 동 회관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황창섭(黃昌燮), 장동억(張東億), 김상기 (金相起)를 상무집행위원(常務執行委員)으로 선정함. ᄋ 23일 예천동우회(醴泉同友會), 예천면 노하동(醴泉面路下洞) 정세명 집(鄭世明家)에서 제1회 집행위원회를 열고 위원 보선 및 상무위원(常務委員)을 정함
1926.3: 초 풍산소작인회(豊山小作人會) 은풍출장소(殷豊出張所, 下里), 소작쟁의(小作爭議)를 일으켜 간부 이용만(幹部李用萬) 외 4인이 체포됨. ᄋ 3일(陰) 백미(白米)의 시장가(市場價)는 3냥 6전, 벼값(租價)는 1석에 92냥 10전임. ᄋ 7일 개포(開浦)푸로청년동맹, 창립됨. ㅇ 7일 예천서부프로청년동맹, 창립됨. ᄋ 16일 상해임시정부원(上海臨時政府員) 엄태섭(嚴泰燮, 醴泉 鳳山人), 원산형무소(元山刑務所)에서 탈옥 도주함. ᄋ 21일 예천기자단(醴泉記者團), 창립되어 언론 신장 등을 주장함(朝鮮日報 1926.3.24, 日帝侵略下36年史). ㅇ 22일 예천군농회, 설립 인가됨.
1926.4: 4일 예천군 용문면 하금노동친목회(下金勞動親睦會),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하금농민회(下金農民會)로 개칭함(朝鮮日報 1926.4.8, 日帝侵略下36年史)
1926.5: 불교유일학원(佛敎唯一學院), 경북도지사(慶北道知事)의 인가를 받아서 능인학원(能仁學院)이라 개칭함
1926.7: 1일 체신국(遞信局), 예천 시내 전화 교환 업무를 개시함(加入者 45名). ᄋ 24일 예천불교진흥회(醴泉佛敎振興會, 會長 金碩熙)와 군내 6개 사찰 대표들의 연합회의(能仁學院)가 열림. ᄋ 24일 예천 상주 선산 3군 연합 면작입모품평회(棉作立毛品評會) 및 녹비대두품평회(錄肥大豆品評會), 상주잠망공동판매장(尙州蠶망共同販賣場)에서 2천여 명의 농민 집회 하에 상품수여식(商品授與式)을 함. ᄋ 24일 예천불교진흥회(醴泉佛敎振興會, 會長 金碩熙), 예천능인학원(醴泉能仁學院)에서 군내사찰 대표와 연합회의를 열고, 예천불교포교당(醴泉佛敎布敎堂) 건축, 능인학원(能仁學院) 존폐(存廢) 등에 대하여 토의함. ᄋ 25일 예천군내 사찰연합회, 군내 6개 사찰 대표 14명으로 창립됨(理事 徐萬俊 外 5人)
1926.8: 1일 감천공립보통학교(甘泉公立普通學校)가 설립 인가됨. ᄋ 9-11일 예천군 소년부(醴泉軍少年部)팀, 안동공립보통학교 여자부(女子部) 코드에서 열린 제2회 경북 정구대회에서 우승함. ᄋ 18-19일 대창학원(大昌學院), 군청 앞 면화판매소(棉花販賣所) 안에서 예천 초유(初有)로 아동가극회(兒童歌劇會)를 열어 대성황을 이룸. ᄋ 22일 예천경찰서, 제2회 예천소년회 정기총회 개최를 금지함. ᄋ 27일 용문면 하금곡동농민회(會長 康弼漢), 본 회관에서 제2회 정기총회를 열고, 생산부 설치, 검사위원회(檢査委員會) 증설, 예천군농민연맹 발기, 조선민흥회(朝鮮民興會) 문제, 집행위원 권경섭(權景燮) 외 14인 선정 등을 결의함. ᄋ 28일 용문사(龍門寺, 住持 崔龍鳴), 예천사설 능인학원(能仁學院) 경영에서 탈퇴하고 9월 5일까지 공동 경영자인 군내 5개 사찰에서 회답이 없으면 학원폐지계(學院廢止屆)를 당국에 제출하겠다는 성명서를 군내 사찰연합회와 5개 사찰측에 발송함. ᄋ 28일 예천소년팀, 교남소년정구대회(嶠南少年庭球大會) 예선전에서 문경 산북학교(山北學校) 와 싸워 우승함
1926.9: 1일 감천공립보통학교, 개교함. ㅇ 15일 예천하금농민회(醴泉下金農民會) 예천신흥청년회(醴泉新興靑年會) 예천오오회(醴泉五五會) 등 3개 단체,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朝鮮社會團體中央協議會) 창립 때에 가입함(동아일보 1926.9.15). ᄋ 21일 감천공립보통학교, 개교식을 거행함(東亞日報 1926.9.25, 日帝侵略下36年史 8卷 260쪽). ᄋ 24일 예천교육연구회(醴泉敎育硏究會), 지보공립보통학교(知保公立普通學校)에서 추기 교육연구비평회(敎育硏究批評會)를 개최함. ᄋ 30일 예천군사찰연합회, 능인학원(能仁學院) 문제를 논의했으나 원만치 못함
1926.10: 1일 용문청년회(龍門靑年會), 용문면 상금곡동에 청년회관(靑年會館)을 준공함. ᄋ 2일 동아일보, 예천읍내 시장도로 중앙에 있는 정호(井戶)는 언제까지 존치할 것인지? 시장정리안(市場整理案)에 존치(存置)하기로 되어 있다면 함정의 방비를 설(說)함이 필요할 것이라고 게재함. ᄋ 2일 용문청년회, 동 회관에서 제3회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 위원으로 박창호(朴昌鎬) 외 10명을 선정함. ᄋ 2일 용문사(龍門寺, 住持 崔龍鳴), 능인학원(能仁學院)의 학감(學監)과 교사에게 사직권고서(辭職勸告書)를 발송함. ᄋ 3일 용문사(龍門寺), 능인학원(能仁學院)의 학감(學監)과 교사에게 면직처분서(免職處分書)를 발송함. ᄋ 4일 용문사(龍門寺), 능인학원의 아동과 학부형에게 휴학통지서(休學通知書)를 발송하고 아동을 귀가시키고 휴교 조처함. ᄋ 5일 예천경찰서, 개포면 경진동 푸로청년동맹과 농민회회관을 수색함. ᄋ 6일 개포면 금동의 계동학원(啓東學院), 교원들의 사상 불온을 이유로 폐교 명령을 받음(東亞日報 1926.10.12, 日帝侵略下36年史). ᄋ 9일 예천경찰서, 용문청년회에서 불온 축사를 하였다고 박창호(朴昌鎬)를 검거함. ᄋ 16일 안동지청 검사분국(安東支廳檢事分局), 개포농민회(開浦農民會) 간부 박윤상(朴胤祥), 김창진(金昌鎭), 박맹삼(朴孟三)을 구인함. ᄋ 21일 안동지청 검사분국, 개포농민회 간부 박동호(朴東鎬)를 검거함.
ᄋ 21일 보창강습소(普昌講習所, 豊壤 槐堂), 임원회를 열어 강습소 경비 문제를 의론함. ᄋ 23일 예천군의 현황을 보면, 12면 173동리에 호수 (戶數)가 17,224호, 인구가 96,797명이고, 그 중에 일본인이 99호 303명이 있음. 자동차교통이 빈번하고, 읍내에 전화를 설치했고, 전등을 넣을 예정이고, 김천 안동 간의 철도가 개통될 예정인데, 그 때에는 자연히 일대 도시를 이룰 것이니, 실로 경북 북부에 있어서 물산의 집중과 교통의 중심지가 될 것임. 논은 1모작(一毛作) 6,869정보(町步), 2모작이 3,637정보이고, 밭은 11,510정보로서 군내 총 면적의 35% 이상을 찾이하고, 농가 호수는 15,297호에 99,813명 중 일본인이 13호 46명임. 연 생산액은 쌀이 11만여 석(石), 보리가 9천여 석, 두류(豆類)가 2만8천여 석의 순이고, 기타는 잡곡인데, 쌀은 대부분 김천 방면으로 수출되고, 그 대신에 만주의 조를 가져와 식량에 이용하는데, 빈약한 자작농과 소작농가는 추수 후 얼마 안 되어서 벌써 조를 팔아서 잡곡을 사서 먹다가 여름철에 이르러서는 거의 굶주린 상태를 보이는 형편임. 예천은 옛부터 상업이 발달된 곳인데, 막을 수 없는 것은 타지 사람들의 세력임. 더구나 상업가가 모두 옛부터의 구습관(舊習慣)만 지키고, 대세의 변화를 생각지 않으므로 많은 좋은 기회를 잃는 한편 상업에 특별한 기능을 가진 중국, 일본인 등은 계속 기반을 찾이하게 되었고, 포목(布木)은 원래 조선인이 세력이 컸으나 중국인이 점차 대규모로 발전하는 중임. 잡화(雜貨)는 아예 일본인 만이 시가지의 요지를 점령하고 있음. 신설 시장인 남본동 매립지는 아직 외인의 시설이 없으니, 조선인 유력자는 참고해야 함. 1년 매매고가 농산물 4만여 원, 수산물 4만5천여 원, 직물 약 3만 원, 축산 약 15만 원, 기타 12만여 원, 합계 40만여 원인데, 그 중 예천읍시장(醴泉邑市場)에서 매매고(賣買高)가 30만여 원이고, 영주, 봉화 등지의 곡물은 예천읍에 집산한 후 김천 방면에 반출하므로 근래 곡물상 (穀物商)이 급증(急增) 중임. 공업에 있어서는 공장이라고는 1개소도 없으나, 예천읍 명주는 옛부터 명성이 자자하고, 누에 고치, 지물(紙物), 볏짚 제품 등은 연 산액(年産額)이 100만 원을 넘는 편이니, 공장을 세울만 함. 잠업은 그 품질로나 생산량이 경북에서 1.2위를 찾이하는데, 연 산액(年産額)이 4천여 석(石), 가액(價額)이 30여만 원이라 농가의 큰 부업임. 면작업도 근래 잠업과 같이 농가의 큰 부업으로써 연산액(年産額)이 123만여 근 가격 18만5천여 원으로서 경북 굴지의 목화 산지임. 산림 수산 등에 대하여는 볼 것이 없으나, 하리면에서 산출하는 풍기준시(豊基樽柿)는 조선의 명산으로써 외부 사람의 주문(注文)도 많아 연산액(年産額)이 30-40만 개인데, 그 가액(價額)이 5,6천 원에 달하는 바 1925년 6월에 시업조합(柿業組合)을 조직하고 면장 김석정(面長金錫貞)이 조합장이 됨. ᄋ 24일 용궁공립보통학교(龍宮公立普通學校), 용궁공립심상소학교(龍宮公立尋常小學校) 및 용궁청년회와 연합하여 추계 대운동회(大運動會)를 염. ᄋ 26일 은풍소작인회(殷豊小作人會)의 소작쟁의(小作爭議) 사건에 대한 대구지방법원의 언도공판의 판결은 다음과 같음. 이용만(李用萬) 징역 1년 6개월, 김영희(金永熙) 남병인(南炳寅) 각 10개월, 이중기(李中基) 남태영(南太榮) 각 8개월임.
---
* 조봉래 예천농업기술센터 친환경바이오담당,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됨...축하합니다.
조봉래(農業技術센터 조봉래 擔當 '地方行政의 達人' 選定! 醴泉郡 세 番째 行政達人 排出..) [記事] : 예천군 조봉래 친환경바이오 담당이 '2017 제7회 지방행정달인'으로 선정되어 수상함으로써 예천군이 3명의 지방행정 달인을 배출하여 최고의 농업기술을 보유한 기관임을 다시 한 번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곤충산업화 기술개발 보급 달인으로 선정된 조봉래 담당은 농가현장 산업화 꿀벌 육종연구 사업을 지자체 최초로 실시했으며, 정부장려품종 1호 '장원벌' 개발에 기여해 국내 꿀 생산량을 6,300t 증가로 농가소득 700억 원 향상에 일조했다. 또한, 울릉도에 전국 최대(1만6000㎡) 여왕벌 생산기지를 조성해 2017년 장원여왕벌 3,000마리를 공급 하는 등 우량꿀벌 생산 보급 산업화로 국내 양봉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곤충식품 매뉴얼 개발, 곤충 농장학교 운영 및 곤충치유 교육 프로그램 도입 등 곤충농가 신 소득원을 개발하고 있으며, 꿀, 화분 등 봉산물의 부가가치 향상을 위한 브랜드개발과 봉독의 친환경 축산분야 활용 등 곤충산업화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앞서, 군 농업기술센터에서는 2012년 최효열 농촌지도사가 고품질 사과 생산의 달인으로 최초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김진원 농촌지도사가 친환경미생물 활용 연구 공적으로 수상한 이력이 있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제7회 지방행정의 달인에는 전국 68명의 후보자가 응모하여 서류심사, 현지심사, 발표심사 등 공정한 심사를 거쳐 6개 분야 10명의 달인이 선발되어 행안부에서 시상했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7-12-20 오전 9:23:41)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