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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5:가락예천읍종친회-가마귀 밥 여름나무
작성자장병창 @ 2018.03.27 19:38:56

  도청신도시 예천 5 : 가락예천읍종친회-가마귀 밥 여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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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락예천읍종친회(駕洛醴泉邑宗親會 定期總會 開催) [記事] : 가락예천읍종친회(회장 김수남) 정기총회가 200433일 오전 11시 예천읍 홈웨딩 뷔페에서 170여 명의 종친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총회에서 김수남 회장은, 󰡒많은 종친 회원이 참석해 일가의 동질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고 하고, 󰡒숭조돈목의 화합과 단결로 가락국 김수로대왕의 후예로 자부심과 긍지를 갖자󰡓고 당부했다. 이어진 임원 선출에서는 김운경(바르게살기 예천군연합회장) 씨가 회장, 김종길(서울우유대리점 대표) 씨가 수석부회장에 선임됐으며, 이사진 및 사무장은 다음 월례회 때 뽑기로 했다.(醴泉新聞 2004-03-11 13:51:01)

 

  가락예천읍종친회(駕洛醴泉邑 宗親會) [記事] : 가락예천읍 종친회(회장 김운경)200535일 오전 11시 예천읍 홈웨딩뷔페에서 예천읍 거주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종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허씨는 시조인 김수로 대왕이 태자는 왕통을 잇고 두 왕자는 출가를 해 왕비가 늘 외로워하자 시조 왕비를 위로하는 뜻으로 모후의 성을 계승케 했다. 그런 이유에서 김해 김씨와 허씨(許氏)와 인천이씨는 가락국 시조 대왕을 시조로 하는 동일 혈족이라 종친회를 함께 개최해 오고 있다. 김운경 회장은, "뿌리가 없는 자손은 있을 수 없다", "가락종친회는 왕손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뿌리 깊은 조상들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에 우리 모두 앞장서자"고 말했다. 김수남 고문은, "종친들이 보여준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군정을 돌보겠으니 잘못된 점이나 시정되어야 할 점이 있으면 종친들이 나서서 지적해 줄 것"을 당부했다. 김종배 가락예천군 종친회장은, "조상을 받들고 종친간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인 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되며, 3월과 6월에 개최되는 대제에 많이 참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3-05 오후 1:42:56)

 

  가락지나물, 소스랑개비 [植物] : 예천군의 들, 논밭두렁에서 자생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학명은 Potentilla Kleiniana Wight et Arnott이고, 장미과에 속한다.

 

  가락지 노래[民謠] : 개포면 가곡리 어룡(魚龍)에서 불리어지는 노동요(勞動謠)이다. [內容] : 앙금 상금 삼가락지/ 호작걸로 닦아내서/ 저태보니 다른 너라/ 먼지 보니 큰 처녈새(處女일세)/ 그 큰 처녀 자는 방에/ 숨소리 들려오네/ 방밖에도 신 한 커리(켜레)/ 방 안에도 신 한 커리/ 내가 반해 항달봉상/ 오라바시(오라버니)/ 그 집(그 짓) 말씀 말아시소(마십시요)/ 동지 섣달 설안풍에/ 문풍지가 떠는 소리/ 숨이 가네 숨이 가네/ 비개(벼게)머리 숨이 가네/(한철수)

 

  가람산 : 알산봉

 

  가람이엔씨(대표자:구광식)에 대한 국문 신용분석보고서(()가람이엔씨(代表者:구광식)國文 信用分析報告書(CR2)) [報告書] : 한국신용평가정보에서 200873일에 발행하였다. [본문 요약] : ()가람이엔씨에 대한 재무제표 및 기업정보를 중심으로 분석한 상세보고서(종합신용등급, 현금흐름등급, Watch등급, 기업개요, 주요재무상황, 주요재무비율, 재무신용평정, 신용도 분석의견, 기업현황, 주요 주주현황, 경영진현황, 관계사현황,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현금 흐름표, 주요재무진단, 신용모니터링, 법정관리/화의, 소송계류정보 등 포함)이다. 상호명 : ()가람이엔씨 / 본사주소 : (757-805) 경북 예천군 예천읍노하리 72-11 ()가람이엔씨 / 결산일자(재무제표 최근 결산일자) : 20071231/ 기준일자(신용등급, 개요정보 변동일자) : 20080703(daum 2008)

 

  가래(眼子菜) [植物] : 예천군의 연못, 논에 나는 다년생 초본으로, 학명은 Poamogeton Fran Chetti A. Benn et Baag이고, 가래과에 속한다.

 

  가래나무(楸木) [植物] : 예천군에서 자생하는 갈잎 큰 키 나무로, 학명은 Juglas mandshurica Maxim이고, 호도나무과에 속한다. 그 씨는 식용(食用), 약용(藥用)으로 쓰인다.

 

  가래미, 가나미, 가라산, 나산(蘿山) [마을] : 용궁면 월오2(月梧二里)에 있는 마을로, 담쟁이가 많은 가래산(佳蘿山, 葛蘿山) 밑에 있다. 가라산(加蘿山)에서 나산(蘿山)이라 불렀다. 조선 성종 때 성주인 나암(蘿庵) 이문흥(李文興)이 처음 개척하였다. 25가구 154(1980)이 살다가, 25가구(1992) 중 순흥 20가구, 성주 5가구가 살고 있다.

 

  가래미(蘿山) : 月梧里 소속으로, 가래산 밑에 있고 마을 뒷산에 담쟁이가 많아서 가라산(佳蘿山)이며 여기서 지명을 따 나산으로 불렀다 하며 이문흥(李文興)이라는 이가 마을을 처음 개척하였다고 한다.(龍宮面홈페이지 2013)

 

  가래산, 가라산(加羅山, 加蘿山, 佳蘿山), 갈라산(葛蘿山), 나산(蘿山) [] : 용궁면 월오리 장평(長坪)마을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예천군 서쪽 30리에 있다.(醴泉郡誌 1939)

 

  가래질 소리 [民謠] : 풍양면 공덕리(公德里)에서 전승되어온 가래질할 때 불리어진 노래(勞動謠), 가래질을 할 때 가래장구를 잡은 1명과 가래 끝에 궁저구에 줄을 좌우 대칭이 되게 매어둔 가래줄을 잡는 2명 등 3명을 한 가래꾼이라고 하고, 2명이 가래줄을 댕기기에 힘이 부치일 때는 하나의 궁저구에 가래줄을 둘씩 매어 4명이 줄을 잡는다. 이때도 가래장구는 한 사람이 잡아야 되나, 겹가래꾼은 5명이 한 팀이다. 3명이거나 5명이거나 가릴 것 없이 가래질 노래는 작업의 성격이 같으므로 달라질 수 없다. 앞소리는 가래장구를 잡은 사람이, 뒷소리는 줄을 잡은 사람이 받는 것이 일반적이나 3명이나 5명 중 누가 앞소리를 불러도 상관없다. [內容] : (앞소리/뒷소리) ᄋ 당겨라/당긴다 ᄋ 가래줄을 당겨라/당긴다 ᄋ 휘휘 당겨라/당긴다 당긴다 ᄋ 앞을 보고 당겨라/폭폭 되여라 얼마든지 당긴다 ᄋ 가래장 빼앗듯이 당겨라/가래장을 꼭 쥐여라 당겨 보자 ᄋ 휘휘 당겨라/당겨 보세 당겨 보세 ᄋ 한 쪽 사람 덜 당기매/어느 사람 덜 당기는고 ᄋ 오른쪽 사람 덜 당겨매/오른쪽 사람 힘을 써라 ᄋ 손바닥에 불이 나내/같이 당겨주자 가래줄을 ᄋ 가래줄 놓아다고/그렇코 말고 놓아주지 ᄋ 줄 힘으로 흙이 간다/당겨 보세 당겨 보세 ᄋ 산더미 같은 흙이다/태산(泰山) 같아도 당겨 보세 ᄋ 땀을 내라 땀을 내라/구슬같은 땀이 절로 난다. ᄋ 우리 농군(農軍) 이 일을 누구가 아나/우리 농군 이 재미로 살아간다. ᄋ 머리에 쓴 수건 비껴라/그래자 쓴 수건 땀을 닦자 ᄋ 목마른 우리 군사/우리 군사 우리들은 농군일세 ᄋ 탑탑한 막걸리 춤 넘어가 듯이/텁텁한 막걸리 어뒤 있는고 ᄋ 부지런히 당기면 막걸리 나온다/당기 보세 당기 보세 얼시구 좋다. ᄋ 껌은 얼굴 광이 나듯/번절번절 땀이 나내 ᄋ 선비들은 팔자(八字) 좋아/그렇코 그렇코 말지 ᄋ 이런들 저런들/선비들은 모를 거야 ᄋ 우리 팔자 한탄말고/휘휘 당기 보세 ᄋ 줄을 놓아라 멈추어 보세/멈추어 보세 휴휴(醴泉文化 四 32-34)

 

  가루깍지벌레 [動物] : 예천군의 배나무, 뽕나무 등 과수(果樹)에 가해(加害)하고, 특히 배나무의 피해가 큰 해충으로, 학명은 Pseudo coccus Comstock이고, 깍지벌레과에 속한다.

 

  가르재, 가릿재 [고개] : 상리면 사곡리 상사(上沙)에서 명봉리(鳴鳳里)로 넘어가는 고개로, 칼로 갈아놓은 듯하다. [傳說] : 임진왜란(1592)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이 산혈(山穴)을 잘랐다고 한다.

 

  가르재, 가릿재, 가리재 [] : 1)상리면 사곡리(沙谷里) 가릿재 밑에 있던 마을로, 최근 화전(火田) 정리 때 전부 떠나 버려서 지금은 마을이 없다. 2)상리면 명봉리(鳴鳳里)에 있던 마을로, 임진왜란 때 이 곳에서 피란을 하였는데, 앞산이 가로 막혀 있어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가르재라고 하였다. 15가구(1970) 중 경주 , 경주 , 수원 , 등이 살고 있었으나, 산 속이라서 모두 떠나가고(1981) 집터만 남아 있다.

 

  가른밭, 갈음밭, 갈음전(葛陰田), 기전(岐田) [마을] : 호명면 본리(本里)에 있는 마을로, 새랄 서남쪽에 있다. 1790년 김준걸(金俊杰)이 마을 앞 냇가의 갈대밭을 일구어 옥토로 만들고 마을을 이루었고, 갈림길이 있다. 또 주위 산에 칠기가 많았다. 32가구 152(1980) 중 김해 김씨(金氏)가 살고 있다.

 

  가른밭(岐田) : 本里 소속으로, 새날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 냇가의 갈대밭을 일구어 옥토로 만들고 마을을 이루었으며 갈림길이 있는 金海 金氏가 사는 마을이다. 이 마을 남쪽에 변 바지들이 있고 그 뒷골에 변바지라는 마을도 있으나 지금은 모두 가른밭이라고 부른다.(虎鳴面홈페이지 2013)

 

  가리[인터넷] : 195071일 미군 폭격기가 유천면 가동에 폭격을 하여 원주민-1가족 3명을 폭사시킴과 1명을 중상 입힘.(//bbs2.hani.co.kr 2005)

 

  가리(農振廳, 雜穀專用 脫穀機 開發 醴泉서 試演會 가져) [記事] : 최근 조와 수수, 기장 등 잡곡이 참살이 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잡곡 재배면적은 타 작물에 비해 소규모다. 재배와 수확, 탈곡, 정선 등 생산 전 과정에 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잡곡 탈곡은 경운기로, 잡곡 정선은 어레미와 자연바람 등 원시적인 방법을 벗어나지 못해 농민들이 재배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오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농민들의 이런 불편을 획기적으로 줄여 줄 잡곡전용 탈곡기를 개발, 시연회를 가졌다. 농진청은 201110 25일 경북 예천군 유천면 가리 잡곡프로젝트 시범사업 가공공장에서 농진청을 비롯한 학계, 산업체 관계자, 농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잡곡전용 탈곡기성능 실증시험을 실시했다. 농진청과 충남대학교 공동으로 3년 만에 개발된 잡곡전용 탈곡기는 잡곡의 탈곡과 정선을 한번에 할 수 있는 기계로, 전통적인 방법보다 최대 50배의 노동력 절감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잡곡 껍질은 균일하게 벗겨지고 알곡 손실은 줄어들어 잡곡 생산량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참석자들의 평이다. 한편, 농진청은 이번 농가 실증 시험을 거쳐 올해 안으로 특허청에 이 기계를 특허 출원할 계획이다. 또 산업체에 기술 이전을 통해 내년에는 잡곡재배 전 농가에 확대 보급할 방침이다. 농진청 정기열 박사는 이번에 개발된 잡곡전용 탈곡기는 잡곡생산 기계화의 가능성과 함께 잡곡농사가 힘들다는 기존관념을 깨고, 잡곡이 강소농 시대의 대표 작물로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며, “앞으로도 생력화를 위한 기계화와 생산비 절감 재배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잡곡의 자급률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醴泉인터넷放送 2011-10-25 오후 3:38:02)

 

  가리 : 국사봉에서 산줄기가 이곳까지 뻗어왔는데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와우형)과 같고 소의 가리뼈에 해당되는 곳에 마을이 있다 해서 가리골이라 했으며 경치가 산고수려하여 가곡리라 함. 17세기 전반기에 진주인 강홍제(감찰)가 개척하여 가리곡이라 부르다가 가동리가 됨.(柳川面홈페이지 2013)

 

  가리: 가리 마을의 구성, 가리 연혁

 

  가리 건네 골 [] : 감천면 유리(酉里) 권정자 동남쪽 건너에 있는 골짜기이다.

 

  가리곡: 가릿골

 

  가리(佳里) 마을의 구성, 가리 [] : 가리는 유천면(柳川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면 소재지이다. 국도(國道)와 철도변이다. 동으로는 화지리, 서로는 매산리, 남으로 개포면 이사리, 북으로는 광전리에 접하고 있다. 열두 가릿골이라 하여 가리(佳里)의 골골에 마을이 생겼다. [1(가리곡, 수실골, 장가리, 옛터마)] : 83가구 491(1980) 중 진주 54가구, 안동 7가구, 기타 22가구가 살다가, 72가구(1990) 중 진주 63가구, 안동 3가구 등이 살고 있다. [2(음지마, 양지마, 새마, 장터마, 접신골, 가산, 큰가랫골)] : 155가구 728(1980) 중 충주 46가구, 진주 41가구, 반남 15가구, 경주 13가구 등이 살다가, 144가구(1990) 중 밀양 30가구, 충주 26가구, 안동 16가구, 진주8가구, 경주 6가구 등이 살고 있다. [가리의 연도별 인구] : 그 현황은 다음과 같다.(醴泉統計年報)

1里 年度 1972 1974 1976 1977 1978 1979 1992 1995 1996 1999 2004

家口 85 89 86 81 85 80 72 73 72 72 71

人口 496 493 481 501 477 464 309 269 255 237 195

2里 年度 1972 1974 1976 1977 1978 1979 1992 1995 1996 1999 2004

家口 118 115 164 155 153 155 136 131 134 125 123

人口 670 680 899 871 857 755 480 425 421 356 292

 

  Garrison의 노예제도 폐지론(Garrison奴隸制度 廢止論) [學術저널] : 예천읍 출신인 김종길(金宗吉, 1943-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대구사학회(URL //www.daeguhistory.org)에서 1977년에 발행한 <대구사학 =DAEGU SAHAK(THE DAEGU HISTORICAL REVIEW)> Vol.12 No.1 485-507(23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제어번호 3074684, KDC 905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덕성여대(중앙), 대구대(중앙), 이화여대(중앙), 연세대(중앙)이다.(keris 2006)

 

  Garrison의 노예제도 폐지론(Garrison奴隸制度 廢止論) [學術저널] : 예천읍 서본리 출신 김종길(金宗吉, 1943- , 大昌中 卒業,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대구사학회에서 1977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Garrison파의 노예제도 폐지 운동(Garrison奴隸制度 廢止 運動) [學術저널] : 예천읍 출신인 김종길(金宗吉, 1943-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경북사학회에서 1984년에 발행한 <경북사학(慶北史學)> 71111-143(33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Garrison파의 노예제도 폐지운동(Garrison奴隸制度 廢止運動 =Garrison Abolition Movement) [學術저널] : 예천읍 서본리 출신 김종길(金宗吉, 1943- , 大昌中 卒業,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경북사학회에서 1984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 序言/ . LundyGarrison/ . New England Anti-Slavery Society組織運營/ . Garrison黑人植民地 建設 反對運動/ . 結言(daum 2009)

 

  가리(佳里) 연혁, 가리 [] : 가리는 유천면(柳川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원래 신라 때 수주촌(水酒村) 소속이었고, 658(무열왕 5)에 수주군(水酒郡) 소속이었다. 757(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醴泉郡) 소속이었고, 936(고려 태조 18)에 보주(甫州) 소속이었다. 1172(명종 2)에 기양현(基陽縣) 소속이었고, 1204(신종 7)에 보주(甫州) 소속이었다. 1413(조선 태종 13)에 보천군(甫川郡) 소속이었고, 1416(태종 16)에 예천군(醴泉郡) 소속이었고, 임진왜란(1592) 직후에 예천군 유등천면(醴泉郡柳等川面, 柳川面) 소속이었다. 1728(영조 4) 예천현 유등천면(醴泉縣柳等川面) 소속이었고, 1738(영조 14) 예천군 유천면 가리동(醴泉郡柳川面佳里洞)이었다. 1914년 예천군 유천면 가동(醴泉郡柳川面佳洞)이 되었고, 1931년에 1,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을 리()로 개칭하였다.

 

  가리재: 가르재

 

  가리토시 [民間療法] : 예천군에 전승되어온 주술적 요법(呪術的療法)으로, 망아리가 맺히는 환부의 중앙에 '()' 자를 쓰고, 사방에 '()' 자를 쓴다. 특히 독사(毒蛇)의 꼬리에 붙은 침을 뽑아 두었다가 환부을 '()' 자로 그으면 효과가 크다고 믿었다.

 

  가릿골, 가동(佳洞), 가리골, 가리곡(嘉里谷) [마을] : 유천면 가1(佳一里)에 있는 마을로, 국사봉(國師峰) 줄기가 뻗어온 곳에 있다. 누워 있는 소의 가리뼈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곳 경치가 산고수려(山高秀麗)하다. 17세기 전반기에 진주인 감찰(監察) 강홍제(姜弘濟)가 개척하였다. 아릇마와 새터마로 세분(細分)된다. 21가구 143(1980)이 살다가, 46가구(1990)의 진주 강씨(姜氏)들이 살고 있다.

 

  가릿재: 가르재

 

  가마골(烏松) : 松坪里 소속으로, 옛날에 숯가마가 있던 곳이라기도 하며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긴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가마골이라 불린다. 朴某가 개척한 터라 하나 지금은 龍宮全氏들이 살고 있다. 처음에 朴氏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앞들에 우물을 팠더니 밤마다 그 우물에서 龍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므로 그 우물을 메우고 또 딴 곳에 우물을 파도 역시 龍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니, 朴氏들이 살터가 아니므로 龍이 노했다고 여긴 朴氏들이 떠나버리고, 그 뒤 淸州鄭氏들이 옮겨 와서 가마골이라고 마을이름을 삼았으며, 그 뒤로는 龍이 마을을 잘 지켜주어 부촌이 되었다고 口傳한다.(知保面홈페이지 2013)

 

  가마골: 까막수리

 

  가마귀 밥 여름나무 [植物] : 예천군에서 자생하는 갈잎 떨기나무로, 학명은 Ribes fasciculatum Siebet Zucc Var. Japonicum Jancegewaky이고, 범의귀과에 속한다. 그 열매는 붉게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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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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