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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48 : 감로루...감로재(附예천방문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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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루 : 예천 감로루/ 예천 감로루(醴泉 感露樓)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원류리에 있는, 함양 박씨 정랑공 박종린의 무덤을 수호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의 부속건물이다. 1995년 12월 1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92호로 지정되었다. 함양 박씨 정랑공 박종린의 무덤을 수호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의 부속건물이다. 1600년대에 세워졌으며, 감로루.../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daum 2016)
감로루 : 예천 희이재사/ 예천 희이재사(醴泉 希夷齋舍)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원류리에 있는, 예천 함양 박씨 입향조인 박종린의... 오미봉 사이의 희이곡에 자리하고 있다. 남서향으로 건물의 축을 설정하여 경사진 대지 위의 전면에 중층의 감로루(感露樓)를 앉히고 뒤편에는 대지를 한 단 높게 조성한 후 일자형 평면의 희이당(希夷堂)을 세웠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daum 2016)
감로루 : 예천군(경상북도) (醴泉郡(慶尙北道))/ 문화재자료 제141호), 지보면 만화리에 만의서재(晩義書齋), 용문면 제곡리에 예천 야옹정(醴泉野翁亭,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30호), 원류리에 예천 감로루(醴泉感露樓,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92호)가 있다. 정자로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05호)이 있다. 고건축물로는 용문면 죽림리에 예천권씨종가별당(醴泉權氏宗家別堂.../ 태그 경상북도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daum 2016)
감로재(感露齋) [齋舍] : 1) 용문면 두천리 418번지 뒤낫에 있는 재사로, 경주인 운암 손진후(雲岩孫鎭厚, 1794-1839, 宣傳官)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1900년(광무 4) 7월에 후손들이 세웠다. 근년에 보수하였고, 1977년에 이건(移建)하였다. 2) 지보면 송평리 고슬(鼓瑟)에 있는 재사로, 안동인 권득립(權得立), 권상진(權尙眞)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1933년에 후손들이 창건하였다.
감로재(感露齋) [齋舍] : 용문면 두천리 418번지에 있는 재사로, 경주인 운암(雲巖) 손진후(孫鎭厚)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900년(광무 9)에 세웠는데, 1977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정면 5칸, 측면 2칸, 목조와가 겹처마이다.(醴泉鄕校誌 2004)
감로재(感露齋) [齋舍] : 용문면 두천리 418번지 소재, 운안(雲岩) 손진후(孫鎭厚)를 기리기 위해 1900년에 건립하여 근년에 중건한 재사로, 정면 5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는데, 담장의 정면에는 산형대문을 세웠고 좌측에는 협문을 내어 출입케 하였다.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기둥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전면의 툇간은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평면은 2칸 규모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2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우측 온돌방의 전면 칸은 마루칸으로 구성하였고,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이익공집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감로재(醴泉杜川里 甘露齋) : *위치 : 예천군 용문면 두천리 346(두천길 50-1), *연대 : 1900년, *규모 : ‘-’자형 재실 1채, 문간채 1채/ 용문면 두천리 감로재는 경주인 운암(雲岩) 손진후(孫鎭厚)를 기리기 위한 재사로, 1900년 건립하였다. 손진후의 아들 손종하(孫鍾夏, 1862-?)는 1892년(고종 2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손자 석은(石隱) 손영두(孫永斗, 1874-1947)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손진후가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또한 매우 총명하여 그날 배운 부분은 몇 번 읽으면 능히 암송할 수 있었기에, 그의 스승은 범상치 않은 아이라고 하며 칭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전한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이 일어났을 때에는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경학의 이치를 탐구하였다. 손진후의 아들과 손자의 효성은 남달랐으며, 학문적인 성취와 사회적인 성취를 이루게되자 재사를 건립하여 손진후를 비롯한 선조를 추모하였다. 두천리는 영월신(辛)씨가 개척했다고 하나 지금은 경주손씨 동성마을이다.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흔히 ‘뒤낫’, '두인(逗仁)‘, ’두천(杜川)‘, ’인천(仁川)’, ‘인곡동(仁谷洞)’ 등으로 불리며, 국사봉 북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에는 120여 호에 이르는 대촌으로 면내에서는 용문면소재지 다음으로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현재 40호의 마을로 35호가 경주손씨들이다. 제사는 원래 현 위치의 왼쪽인 동쪽에 있었으나 지축이 꺼져 내리기 시작하여 13년 전에 이건하였다. 원래 있던 위치에는 아직까지 ‘제막(주소)’은 그대로 있으며, 재사 주위에 있던 느티나무들도 그대로 있다. 재사는 시월 묘사에 제물 마련이나 음복처로 이용하는데, 시제일은 음력 10월 초정(初丁)이다. 감로재가 있는 용문면 두천리는 예천읍과 용문면을 연결하는 928번 지방도로 용문경천로를 따라 접근하며, 이 접근로는 용문면소재지와 초간정, 운암지, 두천리 앞을 지난 후, 문경시 동로면에 이른다. 두천리의 가옥들은 용문경천로를 향한 골짜기에 터를 마련하고 있다. 감로재는 두천리의 한 골짜기에 터를 잡은 마을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용문경천로에서 남서측으로 난 두천길을 따라 접근한다. 감로재는 두천길 서측에 터를 마련하고, 동북향을 하고 있다. 감로재는 사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두르고 있으며, 토석담장 내 바닥은 시멘트로 포장했다, 정면 담장에는 ‘-’자형 대문채가 있고, 우측 담장에는 일각문이 있다. 배면은 콘크리트 축대를 쌓은 후 위에 토석담장을 두르고 있다. 대문 앞에는 마당이 있고, 마당 아래로 밭이 있다. 우측 협문 앞에도 마당이 있고, 마당 아래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좌측 담장 너머에는 급경사 아래에 밭이 있으며, 배면 담장 너머에는 이웃집들이 있다. 대문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으로 대문간을 중심으로 좌측에 온돌방이 있고, 우측에 헛간이 있으며, 좌측 온돌방 측면에는 한 칸을 덧달아내어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자연석 주초를 놓고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 가구와 지붕을 받도록 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일각문은 신방목 위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 가구와 지붕을 받도록 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감로재는 전퇴가 있는 정면 5.5칸, 측면 2칸의 ‘-’자형의 건축물이다. 평면은 전면에 마루를 꾸미고, 툇마루 뒤쪽으로 방과 대청을 꾸몄다. 전면의 툇마루는 기둥 밖으로 마루 끝을 확장한 후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그리고 재사는 좌우측면 기단과 툇마루를 통해 오르내리도록 했다. 우측은 전면 툇마루 측면을 이용하지만 좌측은 세로 열에 툇마루를 만들어 오르내린다. 중앙의 대청마루간은 전면에 네 짝 여닫이 띠살들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으며, 후면에는 머름을 꾸미고 머름 위에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아 놓았다. 후면 기단에 쪽마루를 대청과 좌측 방의 후면 창문 앞에 깔았다.
우물마루를 깐 대청 좌우의 온돌방은 대청 쪽에 네 짝 여닫이 띠살들문과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다. 좌우 온돌방은 툇마루 쪽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아 외부를 조망하도록 했다. 우측의 2칸 규모의 온돌방은 중간에 네 짝 미닫이문을 달아 실내를 둘로 나누고 있으며, 온돌방의 후면 툇간은 마루를 깔고 백장을 꾸며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좌측의 온돌방은 측면 뒷칸에 벽장을 꾸며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좌우 온졸방의 아궁이는 튓마루 아래 기단 면에 있는데, 굴뚝은 개조하여 확인할 수 없다. 감로재의 기단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단의 기단은 지면과 같은 높이이고, 상단의 기단은 자연석을 쌓아 구성하였다. 하단에는 자연석을 놓고 누하주를 세워 누마루와 상층 툇기둥을 받도록 했다. 전면 열의 툇기둥은 원기둥이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며, 전면 열의 원기둥 상부는 초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고, 주간은 소로를 끼워 장식했으며, 나머지 좌우측면과 배면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 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이고주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벽면과 서까래 사이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처마도리에는 ‘甘露齋’ 편액이 걸려 있으며, 툇마루에 ‘西齋’와 ‘東齋’ 편액이 걸려 있다. 감로재는 건립 이후 부분적으로 변형된 곳은 있지만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문중에서 잘 관리하여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따라서 감로재는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 활용 및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을 한다면 건축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은 건물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362-364쪽)
감로재 : 예천의 자랑 4134 : 안질(2)-안집-안찬-안창모-안창열(1)/ 작성 장병창/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동려문집(東旅文集)著 감로재(感露齋), 옥호정(玉壺亭), 하정(荷亭) 축조... 안창열 : 작성 장병창/ 예천군청홈페이지 자유게시판/ 1847(헌종 13)-1925, 용문면 하학리 순흥 안씨 입향조, 자는 순.../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감로재(感露齋) [齋舍] : 지보면 송평리 177번지에 있는 재사로, 안동권씨 시조인 권행(權幸, 太師公)의 25세손인 별장공파(別將公派)의 권득립(權得立, 贈刑曹參議), 26세손인 권상진(權尙眞, 贈工曹參判)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상하(上下) 2동 와가 목조 건물로 1933년에 창건하여 보존하고 있다. 1936년 겨울에 진성 이기호(李麒鎬)가 쓴 ‘감로재 중수기’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을 말하자면 독주산과 진영산이 호랑이와 용이 서로 읍을 하는 곳에 산소가 편안하고 온화한 곳이다. 그 마을 이름은 고실이고 뽕나무와 삼밭이 우거져 가리운 곳에 우뚝 솟은 재실은 덕망이 한 번 지나보면 권씨들의 재실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찍이 용선(龍善), 유영(維永), 영주(永柱), 희영(禧永) 등 여러 젊은이가 감로재라는 글씨를 보이면서, ”우리들은 안동군 와룡면에서 갈려온 지 십여 세에 이르고 선대들의 묘가 주로 오산(烏山)과 독주산(獨走山)과 진영산(陣嶺山)과 고실(古室) 사이에 있고, 기거하면서 지키는 곳과 재숙할 곳이 용이하지 못하여 한스럽게 여겨지다가 계유년 시제 때 중수하기로 의논하여 책임자를 천거하고 합심하여 집을 지으니 높은 와가에 여섯 칸 큰방과 강당이 환기가 잘 통하게 하였고, 동서재가 있고 주방과 곡간이 있고, 토석으로 담장을 쌓고 외관상도 잘 되었습니다” 하면서, “어르신께서 기문을 지어주십시오” 한다. 용선이 내게 와서 글을 배웠는데, 사양할 수 없어서 글을 지어주고 다시 이르노니 착하도다. 그대들이 조상 위하는 성의가 있으니 이 집을 지었도다....”
감로재(感露齋) [齋舍] : 지보면 송평리 177번지 소재, 안동 권씨 별장공파의 묘하 재사로, 1760년(영조 36)에 건립하여 1995년에 보수하였다.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재사의 전면 좌우에는 3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 익사를 배치하였으며, 주위에는 블록담장을 두르고 정면에는 대문을 설치하였다. 시멘트로 마감한 기단위에 좌연석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툇간 전면 3본만 원주를 사용하였다. 평면은 어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우측 온돌방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홑처마집이다.(醴泉郡誌 2005)
감로재(醴泉송평리 感露齋) : *위치 : 예천군 지보면 송평리 177(송평길 46), *연대 : 1760년(1995년 중수), *규모 : ‘-’자형 재실 1채, ‘-’자형 동서재 2채/ 감로재는 지보면 송평리 독주산(獨走山) 아래 고실(古室)마을 송평천 북안 가에 남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감로재는 송평천 남안 수월리 수동(首洞)에 세거하는 안동권씨들의 재실이다. 안동권씨는 원래 안동 가구(佳丘)에 살다가 예천으로 이거하였다. 이 재사는 1760년(영조 36) 두항(斗恒)·두영(斗英)·두정(斗貞)·두형(斗衡) 4형제가 입향조 영통(永通, 訓練院判官)과 그의 아들 필(필, 參奉), 손자 극수(克守, 掌樂院正), 증손 득립(得立, 刑曹參議), 현손 상진(尙眞, 工曹參判)의 묘를 수호 관리하고 향례를 올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1995년 대대적인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이때 재실 앞에 중수비석 및 입향조 권영통과 현손 권상진의 묘갈도 함께 세웠다. ‘감로재중수기’에 의하면 서기 1760년 창건된 재사로, 이후 증개축을 거듭해 왔다고 한다. 고실은 달리 고슬(鼓瑟)이라고도 하며, 호명면과의 경계에 위치한 마을로, 동쪽으로 매봉이 있고, 남쪽으로는 다인의 비봉산(飛鳳山)이 수려하고, 서쪽으로는 고려 말에 흥건적을 정벌한 김득배(金得培) 장군의 군졸들이 주둔했다는 진령산(秦嶺山)이 높이 솟았고, 북으로는 내성천이 흘러 가까이는 수월천이 흘러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며, 지형 또한 탄금형(彈琴形)으로 사람들이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재실은 묘소 관리, 위토 관리, 그리고 시사 때 제물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었다. 특히 위토 답품 시 어른들의 화합이 있기도 하였다. 송평리 감로재는 지보면을 관통하는 28번 지방도로 예지길에서 서측으로 난 송평길을 따라 접근한다. 송평길은 서측의 나지막한 야산 끝자락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데, 좌측에 논이 있고, 우측에 야산이 있다. 감로재는 송평길의 서측 산자락에 터를 마련하고 동남향을 하고 있다. 가로재는 1932년 건립된 이후 1995년 대대적인 중수를 하면서 동서재 구건물을 헐고 신축하였고, 재실 또한 개보수를 했다. 감로재는 산자락 평지에 터를 마련하였고, 폐기와를 올린 시멘트담장을 사면에 두르고 있다. 출입은 정면 담장에 시멘트기둥을 세우고 널판문을 달아 이용한다. 대문 앞에는 송평길이 지나가고 있고, 길 너머에는 논이 있다. 대문과 송평길 사이에는 향나무를 심어 식재조경하였다. 감로재 좌측 담장너머에는 ‘感露齋重修記’ 비와 ‘贈工曹參判安東權公之墓’ 비가 있다. 서측의 대나무숲은 감로재 비의 배경이 되고 있다. 우측에는 넓은 밭이 있다. 담장 안 안마당 및 외부공간은 시멘트로 포장했다. 재실 배면의 우측 담장 모서리에는 콘크리트 구조의 화장실이 있다. 감로재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배면에 ‘-’자형 재실이 있고, 좌우측에 ‘-’자형 동서재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재실은 정면에 퇴를 구성한 ‘-’자형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1.5칸이다. 정면 툇간은 마루간과 좌측 온돌방에만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좌측에는 한 짝 우리판문을 달았다. 마루간은 배면에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았고, 좌우 벽면은 판벽으로 구성했다. 좌측 방은 대청 쪽에 네 짝 여닫이 띠살들문을 달았고, 툇마루 쪽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고, 좌측 벽면에는 한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다. 우측 방도 정면 기단 쪽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고, 우측 벽면에는 한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다. 우측 방의 아궁이는 우측 기단에 있으며, 굴뚝은 배면 담장 앞에 FVC 파이프를 세워 사용하고 있다. 감로재의 기단과 기단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주초는 자연석주초이며, 정면 열 주초 위 기둥만 원형기둥이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다. 원기둥 상부는 직절익공방식으로 보아지와 창방이 짜 맞춤을 한 후 주두를 놓고, 짜 맞춤을 한 보와 도리받침장혀, 납도리를 받는다. 장혀아 창방 사이는 소로만을 끼워 마감했다.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짜 맞춤을 했다. 마루간의 중앙열 가구는 오량이며, 좌우 온돌방 상부는 일고주 오량이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를 올려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으로 추녀마루와 용마루, 내림마루 끝을 망와로 마감했다. 내부 천정은 고미반자이며, 벽체와 앙토는 회바름을 했다. 서까래 마구리만 흰색을 칠했으며, 나머지는 석간주색으로 가칠단청을 했다. 처마도리에는 ‘感露齋’ 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간에는 ‘感露齋重修記’와 ‘晩歸亭上樑文(乙亥)’과 ‘晩歸亭上樑文(己亥)’이 있으며, 종도리 받침장혀 밑에는 ‘太歲甲戌三月十八日壬申辰時開基同月二十三日丁丑酉時定礎四月初二日乙酉未時立柱同月初八日辛卯午時上樑乾坐戊戌生成造’라고 쓰여 있다. 동재는 1995년 개축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방과 입식부엌, 욕실, 보일러실로 구성되어 있다. 방과 부엌은 안마당 쪽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였고, 보일러실은 샤시문을 달아 놓았다. 방과 입식부엌 사이는 네 짝 여닫이 샤시문을 달았다. 기단과 기단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주초는 가공한 방형주초이며, 주초 위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벽면은 콘크리트벽으로 흰색칠을 했다. 서재는 동재와 같이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실내는 통간구조를 하고 있다. 정면의 각 칸 벽면에는 안마당 쪽으로 외여닫이문을 달아 놓았다. 기단과 기단바닥은 시맨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주초는 가공한 방형주초이며, 주초 위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벽면은 콘크리트벽으로 흰색 칠을 했다. 현재 감로재는 대대덕인 보수를 하여 정확한 원형을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감로재는 증개축하기 전 모습을 찾아 이에 따라 보존 및 활용계회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393-3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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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1,508
예천진호국제양궁장(2018年 “春季 生活體育 洋弓大會” 開幕 : 生活體育 活性化와 洋弓 底邊 擴大) [記事] : 생활체육 활성화와 양궁 저변확대를 위한 2018년 「춘계 생활체육 양궁대회」가 2018년 4월 28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개최됐다. 대한양궁협회 주최로 열린 이날 대회는 이현준 군수, 대한양궁협회 김기찬 부회장, 선수 및 임원, 지역 주민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9시 10분 개회식을 갖고 열전에 들어갔다. 이번 대회는 양궁을 사랑하는 순수 동호인들의 대회로 대한양궁협회에 등록한 클럽팀 선수 외 전문선수경력(초등, 중등, 고등, 대학, 일반부 등록선수)이 있는 선수는 참가할 수 없다. 경기종목은 리커브, 컴파운드, 베어보우 등이 있으며, 경기방식으로 리커브 개인전 경기는 일반부 30m, 20m, 고등부 30m, 20m 중등부 20m, 10m, 초등부 10m, 컴파운드 경기는 50m, 30m, 베어보우는 20m, 10m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록 합계 순에 따라 최상위자를 가리며, 단체전은 3명 기록 합계 순에 따라 최상위 기록팀을 우승팀으로 결정한다. 군은 이번 대회가 생활체육 양궁 동호인들의 저변확대와 친목도모, 우정을 나누는 축제의 장이 되었으며 예천의 관광명소를 전국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환영사에서 “이번 대회를 계기로 양궁이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로 사랑을 받고 많은 동호인 클럽이 결성돼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한양궁협회 김기찬 부회장은 “생활체육 양궁발전을 위해 우리 양궁 동호인들이 중심이 되어 많은 제안과 협조를 해주시길 바라며 협회에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해 나가겠다.”는 정의선 회장의 대회사를 대독했다.(醴泉뉴스 201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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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