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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23:개무덤...개방형임용제도..(祝예천동부초)
작성자장병창 @ 2018.07.08 06:10:23

  도청신도시 예천 123 : 개무덤...개방형임용제도...(예천동부초등학교, 27일 제15회 경북도지사기 전국 양궁대회에서 단체전(신효정, 장보슬, 박정현, 이가영) 금메달, 개인전 금메달(장보슬), 은메달(신효정)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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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무덤(狗塚) [傳說] : ㅇ 위치 : 지보면 마산리 어화실, ㅇ 내용 : 옛날 동래 정씨 문중(東萊 鄭氏門中)의 어느 분이 아내와 아들 둘과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흉년(凶年)이 들어 먹을 양식마저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정씨는 가족을 모아 놓고 이르기를, 우리 한양(漢陽)으로 가서 먹고 살 궁리를 해 보자.“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정씨 가족은 서울로 떠났다. 그러나 서울에 가서도 일거리가 없자 낮으로는 구걸(求乞) 생활로 연명했으며, 밤에는 짚신을 만들어 팔아서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간신히 구걸신세를 벗어나게 된 어느 날, 한 짐의 짚신이 모두 팔려서 정씨는 기분이 좋아 개다리를 하나 사서 귀가(歸家)하였다. 온 신구들이 좋아하면서 그 개다리를 삶기 시작했다. 개다리가 다 삶아 갈 무렵, 어디에서 왔는지 도깨비 세 마리가 나타났다. 세발 장대만한 도깨비들이었다. 도깨비들이 말하기를, ”어서 개다리를 내 놓으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겁이 나고 해서 아깝지만 얼른 주고 말았다. 맛있게 먹은 도깨비들은, ”고맙다. 그렇지만 모월 모일(某月某日)에 이곳에 또 올 테니, 그때 개 한 마리를 다시 삶아 놓으시오.“라고 하였다. 두려움에 떨던 정씨는 도깨비가 다시 온다는 그 날까지 짚신을 열심히 만들어 팔아 중개 한 마리를 사서 삶아놓으니, 수많은 도깨비들이 들이 닥쳤다. 모두들 맛있게 먹고는 이르기를, ”모월 모일 어화실로 오시오.“라고 하면서 사라졌다. 정씨 가족은 약속한 날 어화실로 내려왔다. 어화실 뒷산에 있는 선조(先祖)의 묘소를 찾아보니, 누구의 소행인지 묘를 옮겨갔다. 이상히 생각하며, 마을로 내려오던 정씨는 이씨(李氏)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호령하고 있는 도깨비들의 소리가 들렸다. 도깨비들은 이씨 집안은 어서 빨리 마을을 떠나지 못할까? 라고 호령하였다. 이씨들은 겁에 질려 이 마을에서 모두 떠나자, 정씨는 옛날. 자기가 살던 옛집으로 찾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고양이는 밥도 먹지 않다가 사흘 째 되던 날, 슬그머니 집을 나가 버렸다. 세월이 흐른 후 정씨는 큰 개 두 마리를 사서 키우고, 그의 아들들은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다. 고양이가 떠난 지 20년 되던 해의 정씨 생일에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나타났다. 마당에서 개 두 마리와 고양이가 싸우기 시작했다. 싸우기를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되던 날, 개 한 마리가 죽고, 어두워 질 무렵 고양이도 죽어 개 한 마리만 남았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개 한 마리를 곱게 길렀으나 그로부터 몇 년 못가서 죽고 말았다. 그래서 정씨는 개의 무덤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만약, 그때 개가 없었다면 정씨 집안은 모두 망했을지도 모른다.(知保面홈페이지 2013)

 

  개무덤[傳說] : ᄋ 위치 : 지보면 마산리(어화실 뒷산), ᄋ 내용 : 옛날 동래정씨 문중(東萊鄭氏門中)의 어느 분이 아내와 아들 둘을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마저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정씨는 가족들을 모아 놓고 이르기를, "우리 한양으로 가서 먹고 살 궁리를 해보자."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정씨 집안은 서울로 떠났다. 그러나 서울에 가서도 일거리가 없어서 낮으로는 구걸(求乞) 생활을 계속했다. 기껏 밤으로 짚신을 만들어 팔아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면면히 이끌어갔다. 세월이 흘러 간신히 구걸 신세는 벗어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짐의 짚신이 모두 팔려서 정씨는 기분이 좋아 개다리를 하나 사서 귀가하였다. 온 식구들이 기뻐하면서 그 개다리를 삶기 시작했다. 얼마 후 어디에서 왔는지 도깨비 세 마리가 나타났다. 세 발 장대만한 도깨비들이었다. 도깨비들은 이르기를, "어서 개다리를 내놓으시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정씨 집안은 하는 수 없이 개다리를 모두 주고 말았다. 맛있게 그 개다리를 먹은 도깨비들은, "고맙다. 그렇지만 모월 모일(某月某日)에 이곳에 다시 올 테니, 그 때 개 한 마리를 다시 삶아 놓으시요."라고 하였다. 두려움에 떨던 정씨는 짚신을 열심히 만들어 중개 한 마리를 사서 삶아놓으니, 수많은 도깨비들이 들이닥쳤다. 모두들 맛있게 먹고는 이르기를, "모월 모일 어화실로 오시오."라고 하였다. 정씨들은 약속된 날에 어화실로 내려왔다. 어화실 뒷산에 있는 선조(先祖)의 묘소를 찾아보니, 누구의 소행인지 묘를 옮겨갔다. 이상히 생각하며, 마을로 내려오던 정씨는 이씨(李氏)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호령하고 있는 도깨비들의 소리가 들렸다. 도깨비들은 이르기를, "이씨 집안은 어서 빨리 마을을 떠나지 못할까"라고 하는 호령이었다. 이씨들이 마을을 떠나자, 이 정씨는 정씨 집만 남은 이 마을로 들어갔다. 정씨가 자기 집에 들어가 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마루에서 주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고양이는 밥도 먹지 않다가 사흘 째 되던 날, 슬그머니 집을 나가고 말았다. 세월이 흐른 후 정씨는 큰 개 두 마리를 사들이고, 그의 아들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다. 집을 떠난 고양이가 20년 후인 정씨 생일 날! 모든 가족이 모인 가운데 나타났다. 마당에서 개 두 마리와 고양이가 싸우기 시작했다. 싸우기를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되던 날, 드디어 개 한 마리가 죽고, 그 날 어두워질 때 고양이가 죽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씨는 살아남은 개 한 마리를 곱게 길렀다. 그러나 그 개는 그로부터 몇 년 못 가서 죽고 말았다. 그래서 개는 정씨의 손으로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만약 그 개가 없었더라면, 정씨 집안은 모두 망했을 것이라는 것이다.(張炳昌 2001.6.29 醴泉郡廳 編纂 豫定 <醴泉傳說> 寄稿文)

 

  개묵골[] : 보문면 독양리(篤陽里) 건넝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개미자리[植物] : 예천군의 뜰길가에 자생하는 1년생 작은 풀로, 학명은 Sagina japonica Dhwi이고, 석류과(石榴科)에 속한다.

 

  개미취[植物] : 예천군에 자생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학명은 Aster tataricus Linne이고, 국화과(菊花科)에 속한다.

 

  개밀[植物] : 예천군의 길가에 자생하는 2년생 초본으로, 학명은 Aropyrum semicostatum Nees이고, 화본과(禾本科)에 속한다.

 

  개밑, 포저(浦底) [마을] : 호명면 본포리(本浦里)에 있는 마을로, 범우리 동쪽 밑에 있다. 내성천(乃城川) 남쪽 유역 등암산(藤岩山) 기슭에 있고, 원곡리(原谷里) 안찔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앞 농토가 비옥하여 논농사를 주로 하고 있고, 서울나들이 나루터가 있었다. 원래 이곳에 연일인 포은 정몽주(圃隱鄭夢周)의 후손인 왕포 정세좌(旺浦鄭世佐)가 친척 정종소(鄭從韶)가 예천 군수로 있던 것을 인연으로 이조 성종 때 정착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3가구 밖에 살지 않고, 모두 개포면 갈마(葛麻), 상주 이안(尙州利安), 서울 등지로 이거(移居)하였다. 20가구 112(1980)의 인동 , 안동 , 연일 등 각성촌(各姓村)이다.

 

  개밑(浦底) : 本浦里 소속으로, 乃城川 남쪽 流域 등암산 기슭에 자리잡은 범우리 동쪽 마을이고 안찔과 境界를 이루고 있는 30여 가구의 各姓村이며 마을 앞 農土가 肥沃하여 논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 마을이고 서울나들이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虎鳴面홈페이지 2013)

 

  개밑: 김계구(金季龜)/ 고장의 인물> 김계구(1432-1509)는 호명면 본포리 사람으로, 자는 경중(... 하다가, 1498(연산군 4)의 무오사화 때 피해를 입고 본포리로 와서 대대로 살았다. 무덤은 본포리 개밑(浦底) 월암(越岩)에 있고, 후손 김명래(金命...(daum 2016)

 

  개밑: 삼성홀딩스 홈페이지입니다./ 철콘 2015.03.26. 289-00 철근. 콘크리트 공사업 본포리(개밑) 배수로 정비공사//(예천군) 경상북도 예천군 경상북도 예천군 경북 예천군 2015/03/22-18:00 2015/03/23-10:00 2015/03/23-11:00 97,000,00088,181,818.../ www.kordic.co.kr/public (daum 2016)

 

  개밑골(浦底谷) [] : 호명면 본포리(本浦里) 개밑 앞에 있는 골짜기이다.

 

  개밑골: 개밑골, 주소(지번) 경북 예천군 호명면 본포리, 카테고리 관광,명소 > 계곡(daum 2016)

 

  개밑골: PDF 27. 호명면.pdf 원곡리(회관 옆 국시골) L=80 4,408 종산1리 농로포장 종산1(양지마) L=420 16,461 본리 농로포장 본리(가름밭) L=250 10,642 백송리 농로포장 백송리(남산꿈들) L=300 11,175 본포리 농로포장 본포리(개밑) L=150 5,539 형호리.../ www.ycg.kr/download/open.content/ko/admini.. (daum 2016)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에 관한 선진국의 역할(開發途上國經濟發展先進國役割 : 經濟援助 中心으로) [論文] : 예천읍 우계리 출신인 장세기(張世基, 1940- , 誠信女大 敎授)의 논문으로, 성신여자대학교에서 1980년에 발행한 <연구논문집(硏究論文集)> 131283-301(19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서론, 2) 경제 발전의 의의, 3) 경제 원조의 성격, 4) 경제 원조의 효과, 5) 대외 기업 진출의 성과, 6) 특혜 공여(特惠供與)의 과제, 7) 결론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덕성여대, 상명대(서울), 서강대, 성균관대(중앙), 연세대이다.(keris 2003)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에 관한 선진국의 역할(開發途上國經濟發展先進國役割 =THE ROHE OF ADVANCED COUNTRY ON ECONOMIC DEVELOPMENT IN A DEVEHOPING COUNTRY : 經濟授助 中心으로) [學術저널] : 감천면 출신인 장세기(張世基, 1939- , 大昌高 卒業, 誠信女大 敎授)의 논문으로,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Sungshin Women's University)에서 1980년에 발행한 <연구논문집(硏究論文集 (SUNGSHIN JOURNAL)> Vol.13 283-301(19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제어번호 2088665, KDC 040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영남대(중앙), 성균관대(서울중앙), 서강대(로욜라중앙), 덕성여대(중앙), 상명대(중앙), 연세대(중앙)이다. [초록] : The outline of this paper is summaries as follows: Upon comoletion of World War, the international ecomony has entered into a transferring period for a new economic system. Since the conclusion of the Eretton-Woods Agreement, the relationship between developed countries and develepiong countries were deviated from the course of the past practice of dominating and dominated./ Thereafter, the international economic interchange is aimed for developing country to ptomote economic development to improve trade transaction, increase employment, stimulate rapid commitment of civilian investment, and then develop sound national economy, and, further, maintain a mutual and equal-based economic cooperation with developed countries. Only this firm economic system of a developing country enable a international economic cooperation to improve the mutual ties./ Through such international economic interchange, the economic development of development of developing country can narrow the gap of income level from developed countries and, in order to increase income level of developing country, a target should be set which is ideal enough to persuit with all means. On the part of developed countries, they should assist developing country with a clear intention that it may attain its substential goal set for implementation.

 

  However, developing country faces problems in what type and on what condition it should accept economic cooperation, while, for developed countries, they also have responsibility for how sincerely they implement ideal of economic cooperation, including divilian base investment, immidiate, medium and long term loan, and other assistance./ Intended are effective change and improvement of a international economic exchange system, including improvement of international economy tariffs problem between north and south trade, goods transaction problem, mutual fund problem, trade principle, economic condition, between two countries, environmental condition, labour condition, technical dondition industry formation condition, raw material, production condition of raw material, domestic circulation structure condition, foreign exchange situation, and political elements. Both on materializatign of the condition and situation which should be established on developing country, and on effective effort by developed countries for economic assistance, enterprise extension, and provision of advantage, the further of the international economic cooperation will be dependent. [목차] : . 序論/ . 經濟發展意義/ . 經濟援助性格/ . 經濟援助效果/ . 對外企業進出成果/ . 特惠供與課題/ . 結論(keris 2006)

 

  개방(開芳), 개뱅이, 개배이 [마을] : 용문면 방송리(芳松里)에 있는 마을로, 반송(盤松) 북동쪽에 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때의 척화신(斥和臣)인 의성인 불구당 김주(不求堂金迬, 1606-1681)5자인 신재 김이갑(新齋金爾甲, 生員)이 병자호란(1636) 후 반송(盤松)에서 옮겨와 개척하면서 아버지의 충절이 활짝 꽃피라고 개방(開芳)이라고 하였다. 16가구 78(1980) 중 의성 등이 살다가, 14가구(1992) 중 의성 등이 살고 있다.

 

  개방(開芳, 개뱅이, 개배이) : 盤松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丙子胡亂(1636) 後 金爾甲이, 本來 살던 盤松에서 이곳으로 와 마을을 開拓하면서, 先代 김주(金迬)의 忠節이 활짝 꽃피라고 붙인 이름이라 한다.(龍門面홈페이지 2013)

 

  개방: 내 고향에 대한 회상/ 2007.11.19/ 대한민국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방송리 중에서도 개방이라는 자연부락이 태허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1636) 후 반송에서 살다가 개방을 개척하였으며 1710.../ taeherjae.tistory.com/1 (daum 2016)

 

  개방: 검색결과 총 : 11건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방송리 141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개방길 21 141, Yongmun-myeon, Yecheon-gun, Gyeongsangbuk-do21, Gaebanggil, Yongmun... 방송리 147 우사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개방길 23 우사 Woosa 147, Yong.../ m.post119.co.kr/?area1=경상북도&area2=예천군&area3=용문면&area4=개방길&tp.. :::::::::: LOVE 용문 :::::::::: 1913년에 제고면으로 개칭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반송동과 개방동 일부, 사라동 일부를 병합하여 용문면 방송동이라 하였다. 1988년에 방송리 개칭되었다. 개방(개뱅이, 개배이) 반송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병자호란.../ www.yongmun.org/hometown/home2f.html (daum 2016)

 

  개방: 방송리 유래/ 2008.06.25/ 개칭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반송동과 개방동 일부, 사라동 일부를 병합하여 용문면 방송동이라 하였다. 1988년에 방송리 개칭되었다. 개방(개뱅이, 개배이).../ cafe.daum.net/yongmun13/2zua/ 용문중13회 동기모임(daum 2016)

 

  개방: 權奇模의 풍수칼럼(3)-행정체제 개편과 예천의 지명.../ 2009.02.11/ +, 읍부리=신읍 동부, 향석리 =향사+석정 7. 용문면: 내지리 =+둔지, 노사리=노곡+사라, 덕신리=덕암+, 방송리=개방+반송, 성현리=성암+와현, 원유리= 신원+본류.../ cafe.daum.net/woruddPcjsrns/1PV7/ 재경예천군민회(daum 2016)

 

  개방: 예천지역의 일제에 의한 지명 개명(행정구역개편)/ 2008.10.17/ 신읍 + 동부 △ 향석리 = 향사 + 석정 7. 용문면: △ 내지리 = + 둔지 △ 노사리 = 노곡 + 사라 △ 덕신리 = 덕암 + 신 △ 방송리 = 개방 + 반송 △ 성현리 = 성암 + 와현.../ cafe.daum.net/ycdongboo21/F3gB/ 예천동부초등학교 제21회 동창회(daum 2016)

 

  개방: 개방/ 예천군 용문면 방송리/ 지번 예천군 용문면 방송리/ 길찾기 | 지명(daum 2016)

 

  개방리(開芳里) [] : 임진왜란(1592) 직후에 예천군 휴구곡면(醴泉郡睢鳩谷面, 諸古面)의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1914년 예천군 용문면 방송동(醴泉郡龍門面芳松洞) 개방(開芳, 개배이)이 되었고, 1988년 동()을 리()로 개칭하였다.

 

  개방형 임용제도 도입과 과제(開放形 任用制度 導入課題) [學術저널] : 예천읍 출신 김상묵(金相黙, 1962- , 大昌高 卒業, 서울産業大 敎授) (남궁근, 박천오, 강제상 ...)의 논문으로, 한국행정학회에서 199912월에 발행한 <한국행정학회 1999년도 동계학술대회 발표논문집> 1~27(28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 서론/ . 고위직 개방형 임용제도의 고찰/ . 개방형 직위 선정과정과 평가/ . 개방형 임용제도 정착방안과 과제/ . 결론/ 참고문헌>(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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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동부초등학교, 27일 제15회 경북도지사기 전국 양궁대회에서 단체전(신효정, 장보슬, 박정현, 이가영) 금메달, 개인전 금메달(장보슬), 은메달(신효정)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예천동부초등학교(醴泉東部初, 慶北道知事旗 全國 洋弓大會 團體戰 優勝, 30m 메달, 20m에서 메달 受賞) [記事] : 예천동부초등학교(교장 장영호)20186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15회 경상북도지사기 전국 남여 초중학교 양궁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30m 금메달, 20m 은메달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 6학년 신효정, 장보슬, 박정현, 이가영 선수가 단체전 4,043점으로 금메달, 5학년 장보슬 선수가 30m 346점으로 금메달, 6학년 신효정 선수가 20m 358점으로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루었다. 장영호 교장은 매일 열심히 연습한 결과가 좋은 성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앞으로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격려했다. 값진 우승의 주역인 예천동부초등학교 양궁부 신효정(6), 장보슬(5) 박정현(5) 박은정(5), 4학년 이가영, 김하나, 장혜주, 3학년 노한별, 김민서 선수들이 예천양궁은 물론 대한민국 양궁의 주역들로 자라기를 기대한다.(醴泉뉴스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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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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