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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25 : 개심사지5층석탑...(附 대창중학교, 제9회 대한민국 기술융합대회와 제2회 해양생물 탐구대회(대창 어벤져스팀 :백종은, 김호연, 김도원, 김성욱)에서 본선 진출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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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지 5층석탑(開心寺址五層石塔) [傳說] : 예천읍 남본2리 솔개들(松浦)에 있는 탑으로, 어떤 고명한 도가가 예천을 지나가다가 잠두산(蠶頭山, 現 南山)에 올라서 예천의 지형을 바라보니, '잠두산이 화기(火氣)를 품고 소년을 죽일 지형'이어서, 예천이 발전을 하지 못할 불길한 징조가 보였다. 이를 막기 위해 잠두산 아래에 절을 지어 개심사라 하였다."라고 하였다.(www.gbtour.net 2002)
개심사지 오층석탑(開心寺址五層石塔) [塔] : 예천읍 남본2리 200-3번지 외남본리(外南本里) 속칭 솔개들(松浦) 논 가운데 개심사(開心寺) 터에 있는 고려 때의 탑으로, 보물 제53호(63.1.21 指定)이다. 높이 4.33m, 기단 폭(基壇幅)이 2.15m의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1010년(현종 1)에 착공하여 이듬해 완공된 2층 기단(基壇) 위의 5층 석탑이다. 지대석(地臺石)은 하층 기단 갑석(基壇甲石)과 각 면에 한 돌(一石)로 되어 있고, 중석(中石) 각 면에는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 배치하고, 2매의 갑석(甲石)을 남북으로 덮었다. 상층 기단 갑석(上層基壇甲石)은 4매로 구성했는데, 4우주(四隅柱)가 뚜렷하여 각 면마다 탱주(撑柱)가 있고, 그 사이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양각(陽刻)해 놓았다. 갑석(甲石)은 한 돌로 그 중앙에 연화문(蓮花紋)이 조각된 밭침 판석(板石)을 끼워 놓았는데, 이것은 고려 탑파(塔婆)의 전형적 양식이라고 한다.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은 각 한 돌이고, 각층 옥신에는 우주(隅柱)가 뚜렷하게 각출(刻出)되었고, 옥석(屋石) 받침은 4단, 옥신 괴임은 1단씩인데, 초옥 남면(初屋南面)에는 시형(尸形)과 좌우에는 인왕상(仁王像)이 각출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의 처마는 두껍고 상하에 전각(轉角)이 있고, 탑신부(塔身部)의 체감률(遞減率)이 매우 온화하고 좋은 비례를 이루었다. 상륜부(上輪部)에는 각 면에 안상(眼像)이 조각되어 있는 노반(露盤)과 꽃 모양의 복발(覆鉢)이 있는데, 횡대(橫帶)로 연결되어 있다. 이 탑은 상대 갑석(上臺甲石) 처마 밑에 "상원 갑자 47(上元甲子四十七)"로 시작되는 180자(字徑 1.5x3.6cm)의 탑에 대한 기록이 사방(처마 밑)에 음각(陰刻)되어 있는데, 즉, "1010년(현종 1) 정골 개심사(正骨開心寺)에서 돌을 깎아 광군(光軍) 46대(隊)와 차(車) 18대, 소(牛) 천 마리를 들였고, 다시 승속(僧俗) 만 명이 투입되고, 향도(香徒)와 공인(工人) 50명이 감독하였다."라고 기록되고 있어, 그 조성 시대, 동원된 인원 및 당시 사회제도를 밝히고 있어, 고려 초기 예천 지방의 지배 세력인 임(林), 흔(昕), 최(崔), 방씨(邦氏) 등 호족들의 원찰(願刹)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탑의 형식은 신라 양식을 잘 모사(模寫)했으나, 헌(軒)이 두껍고 좌대(座臺) 받침의 조각이 매우 섬세하고, 인왕상(仁王像), 팔부중상(八部衆像), 12지신상(十二支神像)의 각출된 수법이 간소하면서도 표현이 잘 되고 있어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미탑(美塔)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개심사(開心寺)의 창건 및 폐사(廢寺)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 석탑의 상층 기단 갑석 이면 기문(上層基壇甲石裏面記文)에 의하여 대개 고려 전기에 창건된 것임을 추정할 수가 있다. 탑에 기록된 글의 새긴 글자의 배열 상태를 보면, 당초 상대 갑석(上臺甲石) 처마 밑에만 각면(各面) 24자를 기준으로 하여 총 96자를 새기기로 예정하였다가 남쪽 면과 서쪽 면의 각기(刻記)가 끝나고, 북면(北面)에 이르렀을 때, 향도(香徒)와 광군(光軍)의 활동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이들의 공적을 추가로 기록하고, 인물 이름도 2회나 보충 기록하여 준공 일자를 포함 84자가 늘어나 총 180자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석탑의 기문에서 고려 전기의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향도(香徒)"라고 하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그 기문(記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上元 甲子 四十七 統和 二十七 庚戌年 二月 一日 正骨 開心寺到 石析 三月 三日
② 光軍 三十六隊 車十八 牛一千 二(以)十間入矣
③ 僧俗랑 合 一萬人了入 彌勒香徒 上祉 神일 廉長 長司正順 行典福宣金由工達孝順 位剛香德貞품等三六人 椎香徒 上祉京城 仙朗 光십金십阿志 大舍香式金哀 位奉楊寸 能康 等 四十人 隊正 邦祐 其頭 昕京 位剛品平典애 次衣等 五十人(以上 上臺 甲石 처마)
④ 棟梁 戶長 陪戎校尉 林長富 崔祐 母主 副棟梁 兵正 邦祐
⑤ 四弘爲身心 上報之佛恩 爲國正功德 普及於一切 辛亥 四月 初八日立(以上 上臺 中石 東面)
기문의 내용 중 ①은 기공 연월일(起工年月日), ②는 역사(役事)에 동원된 노동력과 차(車), 소(牛)의 수 및 석탑의 면적, ③은 이 역사에 참가한 총인원과 미륵향도(彌勒香徒), 추향도(椎香徒)의 소개, ④는 역사의 동량(棟梁), 부동량(副棟梁), ⑤는 발원(發願) 및 완공일(完工日)을 각각 밝히고 있다. ᄋ 기문을 통하여 볼 때 1010년(현종 1) 3월 3일에 예천군(醴泉郡)의 호장 임장부(戶長林長富)의 어머니가 부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광군(光軍)과 향도(香徒), 그리고 승속(僧俗) 1만 명의 힘을 합쳐 100여 평의 부지 위에 5층 석탑을 세워 이듬해 4월 초8일에 준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석탑을 만들 때 동원된 총인원은 승 속 랑(僧俗랑) 모두 합쳐 만 명이고, 역사(役事)의 주체는 미륵향도(彌勒香徒)와 추향도(椎香徒)들임을 알 수 있다. 두 향도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彌勒香徒] : 上祉(神일, 廉長), 長司(正順), 行典(福宣, 金由, 工達, 孝順), 位剛(香德, 貞富) 等 36名, [椎香徒] : 相祉(京城), 仙郞(光십, 金십 阿志), 大舍(香式, 金哀), 位奉(楊寸, 能廉) 等 40名, 隊正(邦祐, 其豆, 昕京), 位剛(품平, 矣典, 次衣) 等 50名,
위의 내용 중 상지(上祉) 이하 위강(位剛)에 이르는 여러 칭호는 향도(香徒) 자체의 임직(任職)이라 할 수 있으나,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것으로 보인다. 오직 추향도(椎香徒) 가운데서 대정(隊正)만이 군대 직책으로 이들과 계열을 달리하고 있다.
ᄋ 역사(役事)에 동원된 승 속 랑(僧俗랑) 만 명은 당시 예천 군민의 숫자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세종 6)에 의하면, 예천군의 인구가 남자 3,800명, 여자가 4,391명으로 모두 8,191명에 불과하다. 이 지리지(地理志)의 조사가 남자의 경우는 16세에서 60세의 국역(國役) 대상자만의 파악이기는 하지만, 고려 현종 초부터 조선 세종 때까지 약 400년 간의 인구 증가율을 계산해도 만 명과는 거리가 있는 숫자이다. 그래서 예천군 소속이었던 속현(屬縣)들의 사람들도 이 역사(役事)에 참여하였던 것 같다. ᄋ 향도(香徒)는 원래 불교 신도들의 단체 명칭이지만, 고려 때는 불교가 국가 종교인만큼, 향리(鄕吏) 중심의 촌락 공동체 조직이기도 하다. 특히 그 조직은 상지(上祉), 선랑(仙郞), 장사(長司), 행전(行典), 대사(大舍), 위봉(位奉), 위강(位剛) 등의 직책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중 선랑(仙郞)은 이 단체의 상징적인 존재로 국가적인 행사인 연등회(燃燈會), 팔관회(八關會)에 전국 선랑(仙朗) 중 대표를 뽑아 참석시켰다. ᄋ 광군(光軍)은 본래 947년(정종 2)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직된 군대로서 지방의 농민을 징발하여 조직했기 때문에 보통 농민군(農民軍)으로 파악된다. 광군을 지휘하는 지휘권은 지방 호족들이다. 이 석탑 공사에는 차(車) 18대, 소 1천 마리 및 광군(光軍) 46대(隊)가 동원되었다. 따라서 광군이 대(隊)를 단위로 하여 부대가 조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원된 광군의 군인 수는 1,150명(25名x46隊)이 될 것이다. 광군의 지휘관은 대정 방우(隊正邦祐)였다. ᄋ 이 석탑을 세운 주동자는 동량(棟梁)이면서 호장(戶長)이었던 임장부(林長富)였다. 그런데 임장부는 종9품 상(上)에 해당되는 무관직(武官職)인 배융교위(陪戎校尉)를 겸하였다. ᄋ 탑의 지대석(地臺石)은 하층 기단 중석(中石)과 각 면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중석(中石) 각 면에는 12지신상(支神像)을 방향에 맞춰 조각 배치했고, 갑석(甲石)은 2매로서 남북으로 덮었다. ᄋ 상층 기단 중석(中石)은 4매로 만들고, 4개의 우주(隅柱)가 뚜렷하고, 각 면마다 탱주(撑柱)가 있고, 그 사이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양각(陽刻)해 놓았고, 갑석(甲石)은 1매로 그 중앙에 연꽃무늬가 조각된 받침 판석(板石)을 끼워 놓은 것을 보면, 고려 탑의 전형적인 양식이라 할 수 있다. ᄋ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은 서로 다른 돌이고, 각층 옥신에도 우주가 뚜렷하게 새겨져 나와 있고, 옥개석 받침은 4단, 옥신 괴임은 1단씩이다. 초층 축부면(初層軸部面)에는 부채골(尸形)을 만들고 그 좌우에 인왕상(仁王像)이 새겨져 수호의 뜻을 표시한다. ᄋ 옥개석의 처마는 두껍고 상하 모두 전각(轉角)이 있고, 탑신부(塔身部)의 체감률(遞減率)이 매우 온화하여 좋은 비례를 이루었다. ᄋ 상륜부(上輪部)에는 각 면에 안상(眼像)이 1좌씩 있는 노반(露盤)과 4면에 꽃 모양이 있는 복발(覆鉢)이 있는데, 이들을 연결하는 횡대(橫帶)가 있다. 이 탑의 형태는 신라 양식을 답습하여 잘 정돈되어 있으나, 헌(軒)이 두껍고 좌석 받침의 섬세함이 지나치다. 인왕상(仁王像), 팔부중상(八部衆像), 12지신상(十二支神像)의 조각 솜씨가 간소하면서 잘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탑이다. 1978년에 석탑 드잡이, 토지 매입, 진입로 개설을 하였다.(金奉均)
개심사지 오층석탑(開心寺址 五層石塔) [塔] : 예천읍 남본리 소재 개심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4.3m이다. 보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층 기단 면석에 십이지좌상이, 상층 기단 면석에 팔부신장이 장엄되었고, 상층 기단 갑석에는 앙련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부에 모두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초층 탑신 면석에 문비가 장식되어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모두 4단씩이며,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이 중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그 정상에 상륜을 올려놓은 일반형 석탑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상ㆍ하층의 기단에 조식이 있고, 탑신부를 받히는 굄대도 연화대로 이루어져 일반형 탑과는 다른 특이한 면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명문이 있어 건조 연대를 알 수 있어 주목된다. 하층 기단 면석은 각 면에 3구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고 그 안에 십이지신상을 1구씩 양각하였다. 그 형태는 수수인신(獸首人身)으로 법의(法衣)를 걸치고 합장하였으며, 배치는 남면 동쪽부터 오상(午像)이 시작되어 미상(未像)ㆍ신상(申像)이 계속되고, 서면ㆍ북면ㆍ동면의 차례로 되어 있다. 하층 기단 면석에 십이지상을 새긴 예는 그다지 많지 않은 데, 이 탑의 십이지상은 매우 뚜렷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이는 하층 기단이 땅속에 파묻혀 있어서 조각이 손상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갑석은 남북으로 여러 굄으로 상층 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상층 기단 중석은 4매의 판석(板石)으로 조성하여 우주를 모각(模刻)하였으며, 1주(柱)의 탱주로 양분하고 각 구내에 1구씩의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양각하였다. 갑석은 1매의 판석을 이루어졌으며, 상면 중앙에 탑신부를 받기 위한 앙련석(仰蓮石) 1매를 끼워 굄대로 삼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굄 판석의 삽인은 고려시대 수법의 특징으로 여러 유례를 볼 수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별석(別石)으로 조성되었고, 각층 옥신에는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초층 옥신에는 남면에 자물쇠가 꼭 채워진 문 모양과 그 좌우에 칼을 거머쥔 인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하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전각부가 두툼한데 반전(反轉)이 경쾌하여 두께에서 오는 둔중감을 덜어 준다. 낙수면은 평박하고 합각선(合角線)도 예리한데, 네 귀퉁이의 전각에는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있다. 상륜부는 현재 노반 위에 복발이 놓여있을 뿐인데, 노반에는 각 면에 안상이 1구씩 있으며, 복발에는 4면에 꽃 모양이 조식되고, 이들을 연결하는 굵직한 횡대(橫帶)가 있다. 이 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탑의 건립 연대와 주체에 관한 석탑기가 상층 기단 면석과 갑석의 아랫면을 빙 둘러가며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갑석의 아랫면이 비바람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글씨들이 꽤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180자 대부분을 판독해 낼 수 있다. 상대 갑석 밑면의 석탑기는 자경(字徑) 1.5-3.6cm이다.(醴泉東本洞三層石塔ㆍ石造如來立像 精密實測調査 및 修理報告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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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창중학교, 제9회 대한민국 기술융합대회와 제2회 해양생물 탐구대회(대창 어벤져스팀 :백종은, 김호연, 김도원, 김성욱)에서 본선 진출함...축하합니다.
대창중학교(大昌中學校, 全國 大會 2個 部分 本選 進出 : ‘第9回 大韓民國 技術 融合 大會(신승민, 이예춘)’와 ‘第2回 海洋生物 探究大會’) [記事] : ‘제9회 대한민국 기술 융합 대회’와 ‘제2회 해양생물 탐구대회’에 참가한 대창중학교는 전국의 학생들이 참여한 치열한 예선을 뚫고 상위 10위 안에 들어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과학기술부와 해양수산부에서 주관하는 각 대회의 대상에게는 장관상이 주어지는 만큼 두 대회의 본선에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본선 진출의 원동력은 기존의 교수ㆍ학습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교수·학습방법을 과감하게 도입한 대창중학교의 내부 변화에 있다. 대한민국 기술융합축전 본선 진출에 성공한 1학년 신승민, 이예준 학생, 새로 부임한 대창중학교의 정재형 교장은 ‘창의ㆍ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교육의 변화를 시도했다. 과정 중심 학습 및 학생 참여형 수업을 위해 교사들의 수업 연구와 지속적인 연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수업의 질을 대폭 향상했다. 이와 같은 노력은 고도의 창의력과 문제 해결능력을 필요로 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본선 진출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을 수 있게 했다. 특히, 1학년 이예준 학생과 신승민 학생이 참가한 ‘제9회 대한민국 기술융합대회’에는 중ㆍ고등학생들의 구분 없이 치러진 예선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본선 결과가 매우 기대된다. 제2회 해양생물 탐구대회에 참가한 대창 어벤져스(백종은, 김호연, 김도원, 김성욱 학생) 팀은 “예선 때는 무척 긴장했는데, 본선 대회는 무척 기대가 되요. 열심히 한 만큼 좋은 결과를 거두고 싶다.”라고 당찬 포부를 전했다. 대창중학교의 김세용 교감은 “방학 중 펼쳐지는 2개 대회의 본선에서 예천의 우수한 교육 수준을 널리 알리고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지역 사회의 많은 응원과 관심”을 당부했다.(醴泉뉴스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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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