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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80 : 겸암굴...경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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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굴[窟] : 은풍에 있는 류운룡이 임진왜란 때 피난했던 굴이다. 류운룡의 자는 응현(應見)이며 호는 겸암으로 입암 류중영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이다. 선생은 심학연원(心學淵源)의 적통이요 목민관의 귀감으로 손꼽힌다. 아우인 서애 류성룡과 함께 하남백숙(河南伯叔)이라 불리는 그는 슬기롭고 총명하여 15세에 퇴계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퇴계는 겸암의 학문적인 자질을 아껴 자주 글로써 칭찬하고 격려하였다. 공은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독서와 사색에 정진하고자 화천(花川) 건너 부용대(芙蓉臺) 기슭에 서재를 이룩한 것이 29세 때의 일이다. 퇴계는 제자의 서재를 겸암정이라 이름짓고 편액을 써 보내면서 그대가 새 집을 잘 지었다는데, 가서 같이 앉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쉽네(聞君構得新齋好 欲去同牀恨未如)라고 했다. 공은 서재 이름인 겸암으로 스스로 호를 지어 불렀다. 퇴계가 제자의 서재에 「겸(謙)」자를 쓴 것은 공의 성품이 곧고 분명하며 겸손함에서 붙인 것이다. 선생은 34세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음직(蔭職)인 전함사별좌(典艦司別坐)로 벼슬길에 나간 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인동현감을 거쳤다. 인동현감 재직 시에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무덤 뒤에 오산서원(吳山書院)을 창건하고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를 세워 충절의 기풍을 진작시켰다. 지주중류비는 구미시 오태동에 세워져 있다. 지주중류란 중국의 백이숙제(伯夷叔齊) 묘에 쓰여 있는 문구이다. 지주란 황하 중류에 있는 산 이름이다. 옛날 중국의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지주산을 깨뜨려 하수(河水)를 통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는 풍기군수로서 멀리 의주의 행재소까지 정조문안사(正朝問安使)를 파견하고 군국편의소(軍國便宜疏)를 올리기도 했다. 군국편의소의 내용 중에 죽령(竹嶺)의 요새화 방안은 커다란 주목을 끌기도 했다. 향년 63세로 졸하였다. 이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순조 34년 문헌공(文獻公)의 시호가 내렸고 후에 문경공(文敬公)으로 개정했다. 풍기(하리면 우곡리)의 우곡서원(愚谷書院)과 화천서원(花川書院)에 배향되었다.(www.koreastudy.or.kr 2007)
겸암굴[記事] : 안동하회마을/ 간행년 : 1996/ 저자 : 서수용/ 발행처 : 안동문화원/ 7. 겸암굴(謙菴窟) : ...되어 정면으로 진입했다. 겸암굴이 있는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원래 풍기군 은풍현(殷豊縣) 지역이었다. 그 뒤 1...(//www.koreastudy.or.kr 2007)
겸암굴(上里面 古項里 모시골 알려드립니다) [記事] : 고향 모시골 동굴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약초케는 업을 하구 있는 심마니인데요. 모시골 동굴이 현재 스치로폴로 가득, 쓰레기. 오물 등 지저분합니다. 누군가가 살다간 흔적이 역력합니다. 곤충 행사는 다가오는데 군청에서 관광지로 공사비 투자하면서 하시는데... 조그마한 곳이 너무 황페하게 변했습니다. 임도 밑에 있는 동굴인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작성 장재영 예천군청홈페이지 자유게시판 2007-06-02 오전 8:50:13 6)
겸암굴 : 예천군 고항리(고루목) 겸암굴/ 2009.05.22/ 7. 겸암굴(謙菴窟) 예천군 최북단에 위치한 상리면 고항리(古項里, 고루목) 산중에 ‘겸암굴’이 있다. 이 굴은... 천혜의 피난처였다. 필자가 고항리 마을에서 굴이.../ blog.daum.net/dkghqaht/ 구담가슴앓이(daum 2016)
겸암굴 : <백두대간>홀로대간 북진 19차 1일간(2014.3.16).../ 2014.03.17/ 경북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 모시골마을을 거쳐 백두대간길... 보이고... 겸암 선생의 식솔들이 피난해서 지냈던 겸암굴이 지척에 있으나...다음에 가보기로 하고 지난다.../ blog.daum.net/pevkorea/ 하늘창가정해균(daum 2016)
겸암굴 : 모시골 등산 / 산책후기(경북 예천 )| 2013.07.24/ 것이 겸암굴을 지나 온 것 같다. 이정표에 모자와 배낭 걸고 사진을 찍고 월인정사(지금은 백련사)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임도에서 내려서자 말자 가락 김해김씨 묘지를.../ blog.daum.net/woojonghee/ 산새 의 하루(daum 2016)
겸암굴 : 예천의 명산 "백두대간 묘적령 모시골 단풍계곡"/ 2007.11.02/ 폭포)→겸암굴→월인정사→모시골 폭포(3시간) 코스의 계곡산행, 가을철에는 모리재→묘적봉→백두대간→모시골 정상→모시골 폭포(5시간코스)의 단풍산행이 적절하다고 본다.../ blog.daum.net/jgh3710/ 한마음 산행(daum 2016)
겸암굴 : 우리 마을 영주시/ 2015.12.09/ 모시골이라 부르며, 모시골에는 당시 피난처 겸암굴이 있다. 모시골은 당시 풍기군 상리면이었으나 지금은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이다. 당시 겸암 선생은 피난처를 찾아.../ blog.naver.com/eldehd11/ Carpe Diem(daum 2016)
겸암굴 : 겸암(謙菴) 류운룡( 柳雲龍) 선생 연보/ 보완 6.18/ 2006.09.01/ 미지산. 7월에는 양평 용문산 용문사를 거쳐 8월에는 풍기(現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 이후 이곳을 겸암굴이라고 함)를 거쳐서 부석사를 지나서 9월에 태백산 도심촌으로.../ blog.daum.net/dh4583/ dh278020(daum 2016)
겸암굴 : [여행 수필] 예천군 상리면 모시골 단풍계곡을 찾아서.../ 폭포)→겸암굴→월인정사→모시골 폭포(3시간)코스의 계곡산행, 가을철에는 모리재→묘적봉→백두대간→모시골 정상→모시골 폭포(5시간코스)의 단풍산행이 적절하다고 본다. 모시골 탐방은 그동안 전국의 산들을 다니면서 정작 우리 지..../ m.ycinews.co.kr (daum 2016)
겸암굴 : 예천, 태고의 신비..백두대간 등산로 개설/ 진다. 겸암굴에서 다시 올라오면 국토의 허리인 백두대간으로 가는 길과 월인정사 가는 길로 나뉘어 진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으로 가는 길은 웬만큼 등산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이 갈 수 있을 정도로 멀고 힘든 코스다. 풍경소리 .../ www.kbn-tv.co.kr (daum 2016)
겸암굴 : 예천의 자랑 1622 : 정해 判事(附 예천방문 148)/ 작성 장병창/ 연구소(상리면 고항리)를 찾는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자 연구소 뒤에 있는... 제2코스는 모시골폭포에서 칠칠바위와 성황재를 거쳐 모시골폭포로 내려오는 구간(2시간)이며, 제3코스는 모시골폭포에서 칠칠바위와 겸암굴, 월인정.../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겸암굴 : 예천의 자랑 1811 : 고항국립테라피단지를 다녀와서(附 예천방문 337)/ 작성 장병창/ 회원 50여 명과 함께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에 있는 테라피단지를 다녀왔다... 포장된 인도로 묘적봉(妙積峰)으로 향하였다. 눈이 깔려 있었다. 중도에 겸암굴(謙庵窟)도 있었다. 겸암굴은 겸암 유운룡(柳雲龍) 풍기군수(이때 상하.../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겸암굴 : '세계적 곤충의 고장으로 발전하길...'/ 연구소를 상리면 고항리에 현대식 건물로 준공 개설하였다. 연구소 주변 고항... 상상 못할 비경이 펼쳐지고 역사의 숨결도 느낄 수 있는 참 좋은 곳이 있다. 30여분 걸으면 칠칠폭포가 있고 다시 좀 더 들어가면 겸암굴이 있다. .../ www.ycnews.co.kr/news (daum 2016)
겸암굴 : 태고의 신비 간직한 모시골 등산로 개설/ 연구소(상리면)에서는 태고의 계곡 모시골에 백두대간 등산로를 개설하였다... 폭포에서 칠칠바위(폭포)와 성황재를 거쳐서 모시골 폭포로 내려오는 2시간 코스. 제3코스는 모시골 폭포에서 칠칠바위(폭포)와 겸암굴, 월인정사를 .../ www.ycnews.co.kr/news (daum 2016)
겸암굴 : 졸졸졸~세상 시름이 씻겨가는 소리…예천 충복골 & 금당실 마을/ 그만이다. 충복골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소백산 자락 솔봉 능선에 숨어 있... 식솔과 노모를 모시고 이 골짜기로 들어온다. 당시 난을 피해 숨어든 굴이 ‘겸암굴’이고, 마을 사람들은 겸암 선생을 모시고 온 곳이라 해서 이때부터.../ blog.joins.com/media (daum 2016)
겸암굴 : 겸암 선생의 피난처 굴바위/ 2010.01.15/ 7. 겸암굴(謙菴窟) 예천군 최북단에 위치한 상리면 고항리(古項里, 고루목) 산중에 ‘겸암굴’이 있다. 이 굴은... 천혜의 피난처였다. 필자가 고항리 마을에서 굴이.../ cafe.daum.net/gohang3/U... 고항초등학교 .. | 댓글 1(daum 2016)
겸암굴 : 겸암굴/ 2007.09.01/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 송전에서 들어가는 골 깊은 바위 계곡이다. 심산유곡은 여기를 두고 한 말인 듯 하다... 잉태한 곳이다. 특히 모시골은 겸암 류운룡 선생(서애.../ cafe.daum.net/poongryuw... 豊 柳 마 을 | 댓글 6(daum 2016)
겸암굴 : 예천 모시골 - 솔봉 산행기(대구 근교 산)/ 2013.07.26/ 것이 겸암굴을 지나 온 것 같다. 이정표에 모자와 배낭 걸고 사진을 찍고 월인정사(지금은 백련사)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임도에서 내려서자 말자 가락 김해김씨 묘지를.../ cafe.daum.net/dgblk/JYU... 대구블랙야크.. | 댓글 2(daum 2016)
겸암굴 : 산림치유의 전원마을 봉현면 "주치골"/ 2014.07.14/ 모시골이라 부르며, 모시골에는 당시 피난처 겸암굴이 있다. 모시골은 당시 풍기군 상리면이었으나 지금은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이다. 당시 겸암 선생은 피난처를 찾아.../ cafe.daum.net/lmhh6852/... 情友會(2011) | 댓글 2(daum 2016)
겸암선생문집 : 謙菴先生文集卷之六/ 先代遺事/ 世系錄/ 柳氏。世爲安東府?山縣人。或云。分自文化。而無譜牒。不可考。/ 九代祖諱伯,恩賜及第。仕麗季。/ 八代祖諱蘭玉。都染署令。/ 七代祖諱?。追封奉翊大夫版圖判書。行檢校禮賓卿。公夫人前後二室。墓在醴泉郡南登山巖東下初麓卯向之原。原中有上下二墳。不甚崩頹。指上爲夫人墓。指下爲版圖墓。萬曆甲申。孫成龍爲本道監司。發丁修治。而一夫人墓。不知何墓爲的。不得一樣封植。夫人墓上有一墳。形止僅存。石數十周布。版圖墓下。亦有一墳。暫可辨識。最下有一墳。形稍完。一夫人墓。意必在數墓之中。且版圖以上數代墓。皆失所在。安知此數墓。非柳氏先世之墓乎。彷徨墓傍。無從憑問。幽明之間。誠爲至痛。姑記之。以俟後世。甲申修墓時。雲龍女壻金弘微一日來告曰。夜夢。有一高官大人。率前後二夫人。列坐塚道前。前夫人曰。大人後娶時。後夫人年甚少云。又曰。向年黃海監司來問。今又慶尙監司來問云云。無乃先世有前後二室之墓乎。雲龍因細思之。版圖公有前後二室。而一夫人墓不得修治。所以感夢者。豈非此耶。爲之感涕。/ 六代祖諱從惠。嘉善大夫工曹典書。墓在?山北面玆乙坡山南向之原。公始自?山縣內。移居縣西十餘里花山下河回村。墾田築室。時友人典書裵公尙恭。亦休官鄕居。典書公招與同里。仍割其田畝之半及宅居以與之。因相與杖?往來。鄕里名之曰二典書。至今道之。其後裵公有子曰素。爲吏曹正郞。正郞女壻平昌郡事權公雍。繼居其地。權公卽贈判書公之外祖。以此其居復歸柳氏。今仍家焉。配醴泉林氏。封襄陽郡夫人。父及第元吉。墓在府西麻甘毛山南向之原。後配安東權氏。父軍器少監桂。○按裵氏墓誌。之兄曰尙志。當麗末。棄官歸。未幾。入本朝。不復仕。世號曰柏竹堂。然則吾祖典書公棄官歸隱。意必同時也。先君子嘗曰。雖不的知其歲月。大槪麗之將亡時也。/ 五代祖諱洪。左軍司正。生于洪武癸丑。墓在?山西面幕洞女子池內南向之原。公家業富饒。極山水園池之樂。卑心自牧。雖至下賤。皆屈己待之。未嘗以財富驕人。故人到于今稱之。配恭人一善金氏。父進士琯。後配恭人昌寧曺氏。父保勝別將尙保。生于洪武丁丑。墓在玆乙坡山典書府君墓西。相望數百步許東向之原。/ 高祖諱沼。忠武衛副護軍。贈司僕寺正。墓在府西天燈山午向之原。公奉祭祀甚孝謹。其修供之際。雖毛骨殘餘之物。皆盛之潔器。不令先食及踐踏。俟祭後分之。聚奴僕執事者。先期齋。於內外不得相混。配贈淑夫人安東權氏。父龍?衛護軍雍。合葬公墓。/ 曾祖諱子溫。生于景泰四年。癸酉。中成化十年甲午申從濩榜。進士三等。五十四人。後贈吏曹判書。墓在天燈山未向之原。公以文行推重一時。少受學於安司諫彭命。如權參贊柱,李?齋宗準。皆其知已之友。嘗曰。吾平日。未嘗沐浴流水。又未嘗向日月便旋。此雖細事。其處心。槪可知矣。不幸早卒。夫人主家。敎誨子弟。嚴而有法。撥貧窮。凡四男四女。皆擇士族而婚嫁。內外整肅。子孫之保守門戶。不墜家聲。實有賴焉云。配贈貞夫人安東金氏。父大司諫係行。墓在府君墓後。/ 祖考諱公綽。生于成化辛丑。歿于嘉靖己未。享年七十九。初屬天文習讀官。仕至杆城郡守。贈左贊成。墓在軍威松峴山酉向之原。退溪李先生爲作碣文。配贈貞敬夫人延安李氏。父贈禮曹參議。行甲山敎授亨禮。生于成化甲辰。歿于正德戊寅。享年三十五。墓在府君墓右。/ 저자 유운룡(柳雲龍)/ 분류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종합DB(//db.history.go.kr/2014)
경건생활의 비결(敬虔生活의 秘訣) [冊] : 토저 에이든(Tozer, Aiden Nilson)의 저서를 용궁면 산택2리 원당 출신인 권혁봉(權赫奉, 1938- , 浸禮神大 敎授)이 번역한 책으로, 48쪽, 18cm, 서울 생명의 말씀사에서 1975년, 1980년 1986년에 출판한 <크리스찬 시리즈> 7권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기대(수원), 경상대, 관동대, 부산외대, 서울신대, 서울여대, 성공회대, 원광대, 이화여대, 장신대, 평택대, 한남대, 한세대, 한일장신대, 합동신대, 호서대(아산)이다.(keris 2003)
경건 생활의 비결(敬虔 生活의 秘訣(작은冊시리즈 9) =Keys to the deeper life) [冊] : 에이든 토저의 저서를 용궁면 산택리 출신 권혁봉(權赫奉, 1938- , 浸禮神大 敎授)이 번역한 책으로, 88쪽, B6, 생명의말씀사에서 2000년 6월 10일에 출간하였다. [목차] : 001. 개혁이 없으면 부흥도 없다 ...7 / 002. "더 깊은 삶"이란 무엇인가? ...19 / 003. 성령의 은사들-오늘날 우리를 위한 것인가? ...32 / 004.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받는가? ...43(daum 2009)
경건생활의 비결(敬虔生活의 秘訣(크리스챤시리즈 7)) [冊] : 에이든 토저의 저서를 용궁면 산택리 출신 권혁봉(權赫奉, 1938- , 浸禮神大 敎授)이 번역한 책으로, 48쪽, 規格外, 생명의말씀사에서 1975년 3월 1일에 출간하였다.(daum 2009)
경계성 Mullerian 점액성 유두상 난소 종양(境界性 Mullerian 粘液性 유두상 卵巢 腫瘍 一例) [學術저널] : 지보면 어신리 출신인 유중배(兪仲培, 1952- , 漢陽大 敎授) 등의 논문으로, 대한암학회에서 1997년에 출판한 <대한암학회지(大韓癌學會誌)> 29권 3호 522-527쪽(6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서울대(의학), 중앙대(제1캠퍼스)이다.(keris 2003)
경골 골절에서 시행한 비확공성 골수강내 교합정의 임상적 결과(脛骨 骨折에서 施行한 비확공성 骨髓강내 교합정의 臨床的 結果 =Clinical Results of Locked Unreamed Nailing in Tibial Shaft Fractures)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김경철(金經喆, 1942- , 成均館大 敎授) 등(조덕연 김희천)의 논문으로, 대한골절학회(The Korean Society of Fractures, URL //www.kofs.or.kr/)에서 1997년에 발행한 <대한골절학회지(Th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ractures)> Vol.10 No.3 575-582쪽(8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등재여부 KCI 등재후보, 제어번호 3317217, KDC 514이다. [초록] : We reviewed the results of the treatment of 23 tibial shaft fractures in 22 patients by primary unreamed locked intramedullary nailing. The duration of follow-up was average 10.1 months (range, from 6 to 27 months). / The results were as follows: / 1. There were 11 open and l2 closed fractures. / 2. All fractures united clinically in an average time of 17.9 weeks (range 10 to 26 weeks), and radiologically in an average time of l9.4 weeks (range, 10 to 31 weeks). / 3. Complications included l (4.3 %) case with delayed union and 3 (13.0 %) cases with malunion. / 4. No patient had deep infection and there were no broken nails or screws in this series. / 5. No fracture required an additional procedure before union, such as dynamization or bone graft.(keris 2006)
경골과 골절에 대한 수술적 치료(脛骨과 骨折에 對한 手術的 治療 =Operatiive Treatment of the Tibial Condylar Fracture)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김경철(金經喆, 1942- , 成均館大 敎授) 등(김준식 최재열 제영수 원상연)의 논문으로, 대한골절학회(The Korean Society of Fractures, URL //www.kofs.or.kr/)에서 1996년에 발행한 <대한골절학회지(Th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ractures)> Vol.9 No.2 431-438쪽(8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등재여부 KCI 등재후보, 제어번호 3317051, KDC 514이다. [초록] : The tibial condylar fractures often produce disabilities of the knee joint because it is frequently accompanied by injuries of the ligaments and the menisci. / Schatzker had reported that the most common type of the tibial condylar fracture was pure central depression, but we have obtained the result that the most common one of these fractures is cleavage combined with depression and satisfactory outcome. / We have analyzed 28 cases of the tibial condylar fractures treated by operative method at the department of the orthopaedic surgery, Kangbuk Samsung Hospital from Jan. 1990 to May 1994. / We obtained the results as follows; / 1. Males were predominant and the patient;s mean age was 42 years. / 2. The most common cause of injuries was different accident accident. / 3. The most common fracture type according to Schatzker;s classification was type II, which was different from the result of Schatzker. / 4. We have obtained 68% of acceptable results bu Porter's criteria.(keri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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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