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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64:경북도청...(축,원시현/예천방문1,554)
작성자장병창 @ 2018.11.21 06:11:10

  도청신도시 예천 264 : 경북도청...(, 은풍초 원시현 교사, 12회 교육정보화연구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예천방문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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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도청(就業 및 創業은 우리가 배운 技術로! 道廳移轉地 住民 職業轉換訓練課程 修了式) [記事] : 도청이전 이주민 직업전환훈련생 43명이 3개월간의 직업전환훈련을 마치고 2010 827일 오후 2시 경북도립대학 산학협력관에서 수료식을 가졌다. 이번 수료생들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경북도립대학, 농업기술센터, 현지농장 등지에서 조경시공, 중장비운전, 한식조리 등의 이론교육과 실기교육 과정을 익혔다. 이번 교육을 받은 수료자 43명 가운데 10명은 기능사 최종 합격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 외 사람은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2차 교육 접수결과 65여명이 신청했으며, 1차 교육생 28명이 재참여를 희망하는 등 직업전환 훈련과정이 뜨거운 호응 속에 진행되고 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8-27 오후 10:18:38)

 

  경북도청(慶北道廳 移轉 新都市事業團 事務所 開所) [記事] : 경북도는 2010 830일 도청이 들어설 안동시 풍천면 도량리에 '경북도청이전 신도시 사업단' 사무소 문을 열었다. 이 사업단은 사업시행자인 경북개발공사 내에서 도청이전 신도시 조성을 전담하는 기구로 개발공사 직원, 도청과 안동시, 예천군에서 파견된 공무원 등 35명으로 구성됐다. 사업단은 신도시 조성사업 계획 수립과 공사 발주는 물론 간선도로 확충과 광역도로망 구축, 민원인 중심의 보상과 이주대책 마련, 기관·단체의 신도시 이전과 관련한 협의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안종록 경북도청 이전추진본부장은 "사업단은 도청이전 신도시 조성에 온 힘을 쏟는 것은 물론 도청이 옮겨가면서 고향과 일자리를 잃게 되는 주민들의 이주대책과 직업전환 훈련 등에도 각별한 노력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류상현 記者 慶北日報 2010-08-31)

 

  경북도청(慶北道廳 移轉 豫定地 主山 劍舞山-천의 이름을 지닌 명산..| 事務局長 權垠 | 2010.10.08. 12:00/ //cafe.daum.net/seouldaechong/PPYc/ 산 이름을 두고 이렇게 말 많은 산은 본 적이 없다. 거물산(?), 흑운산(黑雲山), 검무산(劍無山. 劍舞山), 검모산(劍帽山) 등이다. 여기에 최근 김휘동 안동시장이 주창한 문학산(文鶴山)까지 가세하고 보니 점입가경이다. 『영가지』(권기. 1601.)에는 거물산과 흑운산을 같이 쓰고 있다. 『경상북도지명유래총람』(경상북도교육원회. 1984.)에는 검모산(劍帽山)으로 나온다. 근방에서 지관으로 활동하는 어떤 사람은 이 산을 승전한 장수가 칼을 놓고 투구를 쓰고 앉아 있는 형상으로 풀이하고 있다. 인근 가일마을의 뒷산인 정산은 포로로 잡은 왜군을 형상한다고 말한다. 구담을 비롯한 이 지역은 왜군들이 퇴각하며 약탈을 일삼다 패퇴한 기록이 남아 있은 것으로 보아 민담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경북마을지』(경상북도ㆍ경상북도사연구협의회. 1992.)에는 검모산은 자취가 없고 대신 검무산(劍舞山)이 자리 잡고 있다. 거물산, 흑운산은 괄호 안에 넣어 놓았다. 유사 기관에서 하는 일인데 십여 년 만에 이름이 바뀐 것이다. 최근 도청 이전 문제가 눈에 잡히면서 김 시장은 이참에 산 이름을 문학산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내놓은 상태다. 문학산은 문수산(文殊山. 1206m)과 학가산(鶴駕山. 882m)에서 따온 것이다. 백두대간의 소백산 북동부에 자리 잡은 옥돌봉(玉乭峯. 1242m)에서 곁가지 친 용이 문수산을 낳고 문수산은 학가산을 낳고 학가산이 검무산을 낳은 것이다. 이 지맥은 화산을 낳고 화산의 기운은 하회마을에서 맺혀 낙동강에 잦아든다. 검무산을 문학산으로 바꾸자는 의견은 문수기맥의 족보를 따져 윗대의 의미를 되살리자는 것이다. 불교적이고 도교적인 이름을 유교를 숭상하는 지역의 주산 이름으로 쓰자는 이야기다. 삼박자가 맞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그럴 듯한 작명이다. 문학도인 나로서도 비록 뜻은 다르지만 반가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산세를 보거나 주민들의 정서를 들추어 보면 과연 격에 맞는 이름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인천에는 이미 한글과 한자가 같은 문학산이 있다. 근처에 문학경기장이 있어서 낯익은 이름이다. 산의 형상이 학을 닮았고 서원이 있어서 문인이 많이 배출된 곳이라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격에 맞는 이름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알려진 이름을 구태여 도청의 주산 이름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검무산의 첫인상은 남성적이다. 정상 부분에 노출된 거대한 바위는 학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 거대한 투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산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은 자못 검푸르다. 검과 투구와 친한 장수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칼이 없는 장수의 이미지에서는 무과 급제를 한 엘리트 장군보다는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 걸고 나선 의병장 형상이 우선 떠오른다. 검무산은 평지돌출 형상이다. 기개가 서릿발 같은 이미지는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이 지역의 정서와도 닮았다. 이 산을 안산으로 둔 풍산 오미 출신의 근전 김재봉(槿田 金在鳳)과 추강 김지섭(秋岡 金祉燮.), 검무산을 배산한 가일 출신의 권오설(權五卨) 등 이곳에서 배출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기개를 닮았다. 그들의 비타협적인 큰 뜻의 굳고 거침없음은 이 산의 기운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본다. 평화의 시기에는 자신을 갈고 닦고, 위기의 시대에는 맨주먹으로 떨쳐 일어나는 선비정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산이 검무산(劍無山)이 아닐까. 손에는 검이 없으나 마음에는 검이 있는, 평시에는 검이 없다가 전시에는 비수를 뽑아 견위치명을 다하는 정신이 훨씬 가까울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공사 구별 없이 대체로 이 산을 검무산(儉舞山)으로 부르고 있다.

 

  오랜 굴곡의 역사를 씨줄로 삼고 수많은 인물들을 날줄로 엮어 짠 영욕의 옷을 철마다 갈아입으며 우뚝하다. 이름을 바꾸는 일보다 여기에 싱싱하고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검무산이면 충분하다. 2010 914일 검무산으로 갔다. 풍산읍을 지나 구담 지보 방향으로 난 916번 지방도로 접어들었다. 소산 가일을 지나 갈전삼거리 바로 못 미처 오른쪽으로 난 길로 따라 올라가면 여자지못(好民池)이다. 검무산이 넓은 호수를 껴안고 당당한 위풍을 드러낸다. 못에 드리운 그림자도 깊어 보인다. 못에는 전에 없이 붕어마름과 부레옥잠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갈전 1리 본동 마을 들머리에는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축대를 쌓아 보호하고 있다. 들판 가운데 또 한 그루 소나무가 있다. 어깨 좋은 추신수가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지면 닿을 정도의 거리다. 한 눈에 보아도 동제를 지내는 나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고샅에서 만난 오치댁(83) "동구에 있는 게 할매고 저 논 가운데 있는 게 할배시더. 동제는 정월 대보름날 드니더"라고 귀띔을 해 준다. 공소 앞에 차를 받쳐놓고 산머리로 들어가는 고샅에는 솔가리댁(80)할머니가 땅콩을 캐고 있었다. "땅콩은 잎싸구에 파리똥 같은 게 앉으면 물을 대서 캐요"하며 한사코 까먹어 보고 가라고 인심을 쓴다. 도청이전에 대해서는 "아직 도청이 올 지 안 올 지 몰시더. 보상도 아직 안 나왔고"하며 심드렁하다. 여느 농촌이나 다름없이 이곳도 보이느니 노인들이다.

 

  연안이씨 종가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산밑마을도 종가만큼이나 퇴락해 가고 있었다. 마을 바로 뒤 산머리에는 지은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원당정이 있었다. 한 때 조상의 삶을 기리려는 후손들의 정성이 엿보였다. 그러나 도청이전부지로 확정되면서 살기에도 그렇고 떠나기도 그런 갈피 없는 마음이 그랬을까. 사람이 자주 드나든 흔적은 없었다. 원당정을 끼고 산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름드리 맞춤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간벌을 하여 소나무 숲을 가꾼 흔적이 역력하다. 일손 모자라는 고령의 동민들이 그랬을 리 만무하다. 얼마 안 올라가서 답이 나왔다. "숲 가꾸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전기톱과 자루 긴 톱으로 잡목을 베고 마른가지를 자르고 있었다. 대체로 소나무들을 살리고 다른 나무들은 어지간하면 베고 있었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곳에서는 소나무라고 별 수 없었다. 몇몇은 베기 아까울 정도로 나이테를 둘렀다. 간벌꾼들을 지나 올라가는 길섶에는 일명 초롱꽃으로 불리는 도라지모싯대가 피어 있었다. 군데군데 커다란 바위들이 앉아 있었고 잡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몇 시간 후면 이들도 베어질 것이다. 뒤따르는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기만 했다. 산에 든 지 오래지 않아 산길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땅만 보고 헉헉대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아주 커다란 바위는 들판과 산의 거죽을 뚫고 도깨비 뿔처럼 솟아 있었다. 아니, 위용도 당당한 장군의 기개로 서서 부드러운 팔을 뻗어 너른 들판을 감싸고 있었다.

 

  남쪽으로 굽어보니 갈전, 도양 들판과 시루봉, 낙동강 건너 광덕, 기산, 신성리로 이어진 강남평야를 끼고 앉은 봉화산(400.6m)이 마주 섰다. 왼쪽으로는 풍천 가일마을의 주산인 정산(232m) 너머 멀리 낙동강이 풍산평야를 끼고 화산(328m)으로 숨어들고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산합리(예천군 호명면) 주산인 거무산(227m) 너머로 모래펄도 좋은 내성천이 넉넉하게 꼬리를 감추며 호명면 소재지를 돌아나가고 있었다. 가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답게 사방 조망이 시원하다. 거느리고 있는 산과 들, 그 사이로 넉넉하게 흘러가는 강, 사람들의 집이며 논과 밭은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소통하며 사는지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도청 하나는 참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지세다. 다만, 좌청룡 정산과 우백호 거무산이 등을 돌리고 있는 형상이어서 마음에 쓰인다. 검무산 입장이다. 바꾸어 생각해보자. 멀리서 검무산을 바라본다면 정산과 거무산이 보호하고 있는 형상이 아닐까. 그렇게 보면 외면하고 있다고 해서 탓할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경호원들의 표정이나 동작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가는 것이다. 산도 앞과 뒤가 엄연히 존재한다. 오르는 길에는 육송과 왜송이 등성이를 중심으로 좌우로 포진하고 있었다. 동록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아름드리 아카시아가 많고 사이사이 기세 좋은 육송이 자라고 있었다. 등성이에서 내려 양광리로 내려가는 길에는 물봉선화가 많았다. 군데군데 구절초가 순한 백색의 자태를 소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초가을 어수선한 길섶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한 바퀴 돌아볼 요량으로 호명으로 차를 몰았다. ‘할매동수나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고개를 넘었다. 호명면 산합리 1리와 2리 사이에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917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거기에서 우회전하면 흥구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지방도에서 내려 우회전하면 풍천 오미동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흥구마을 삼거리 못 미친 곳에서 검무산을 바라보았다. 깜짝 놀랐다. 웅크리고 있는 거무산 위로 검무산 봉우리가 얹혀 있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거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동행한 권기상 기자와 들풀 전문가 권대성도 한 눈에 거미로 판정했다. 거무산은 거미의 몸과 각진 다리의 형상이며 검무산은 거미의 머리 형상이었다. 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서 형세가 바뀌기 마련이다. 거무산은 호명에서 바라보면 한 마리 거대한 거미다. "거무"는 안동 말로 거미가 아니겠는가. 거무산은 호명에서 부르는 산 이름이었을 것이다. 장수의 기개를 느끼게 하는 검무산도 호명에서 보면 거무산과 합체가 되어 거대한 거미 한 마리로 다가온다. 검무산의 북록 쪽으로는 오미동이 있다. 풍산김씨 집성촌이다. 죽자봉(竹子峰. 248m)을 주산으로 삼고 검무산을 안산으로 두고 있다. 풍산김씨 종택에서 검무산을 바라보면 집의 중심축에서 남쪽으로 어슷하게 틀어 앉아 있다. 안산을 마주보길 꺼려하는 지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기세 좋은 검무산도 오미동에서는 좌청룡 아미산(峨嵋山. 160.1m)이 다정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는 그 너머에서 안산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 우뚝한 바위 봉우리도 오미에서는 느낄 수 없다. 안동의 여느 산과 같이 부드러운 모습이다. 마을 가운데 솟은 동산에는 수령 280년 된 청백송(靑白松)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다. 최근에는 이곳에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마을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석조물들이 둘러 있고 가운데는 누각을 지어 놓았다.

 

  여기에 올라 청백송과 검무산을 감상하는 멋은 가히 일품이다. 오미동과 마주하고 있는 검무산 골짜기는 안동권씨 별장공파 일족이 세거했던 방계미다. 대여섯 호 남짓한 마을에는 삼암정(參巖亭)과 충효사(忠孝祠)가 있다. 그리 유서 깊은 곳은 아니지만 검무산이 지니고 있는 삶의 흔적에 보탤만한 곳이다. 오미동을 빠져나와 괴정으로 해서 풍산으로 들어서는 길에 돌아본 검무산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무산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는 소산마을의 뒷산과 정산이, 오른쪽으로는 오미동 뒷산이 나란히 섰다. 다정한 삼형제의 모습이다. 검무산, 천의 이름과 천의 얼굴, 천 가지 인간사와 만 가지 세상사를 안고 있는 산, 안동에서는 가장 넓고 비옥한 곡창을 끌어안고 있는 산, 안동에서 유일한 평야지대인 이 산의 품을 도청과 맞바꾸는 모양인데 득실을 따지기가 힘들다. 아깝고, 안타깝고, 하릴없고, 어쩔 수 없는 심정은 나 같은 떨거지나 하는 소리일까. 강 건너 강남평야까지 머지않아 안동의 또 다른 강남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하면 더 그렇다. 세상은 사람 사람마다 그 나름 나름으로 돌아가는 게 이치지만 자연과 가까운 삶을 희생해서 얻는 것이 과연 슬픔일까 기쁨일까. 정신관은 보수 일변도인데 자연관은 어찌하여 그 반대로 질주하는지 모르는 지금이다.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이 자연을 밀어내고도 살아갈 수 있을지 아는 사람 어디 없을까. 돌아오는 길에는 검무산에서 바라보았던 내성천과 낙동강 또한 자꾸만 눈에 밟혔다.(daum 2010)

 

  경북도청(虎鳴 사이버故鄕 홈페이지 運營 案內 : 地域을 떠나는 移住民들을 爲해 製作 運營) [記事] : 도청 신도시 개발과 함께 현재의 모습을 잃게 될 고향을 사이버공간으로 이전하여 지역을 떠나는 이주민들이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제2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제작한 「사이버고향 홈페이지」를 다음과 같이 운영한다. ㆍ홈페이지명 : 호명 사이버고향(//www.hmhome.kr) ㆍ내용 : 이전지 마을 소개 및 자연부락 모습, 세대별 미니홈피, 내고향 사진방, 동네 대화방 등. ㆍ해당이주민 : 호명면 금능·산합리 신도시이전 편입지역 210세대.(醴泉뉴스 201010 11)

 

  경북도청(道廳 移轉 順調롭게 進行 中입니다. 道廳移轉支援特別委員 李鉉濬 郡守와 歡談) [記事] : 20101020일 오후 2시 경북도의회 도청이전지원특별위원회(위원장 박진현, 영덕) 위원들이 예천군을 방문하여 이현준 군수와 신도청 이전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2014년 말까지 경북도청이 순조롭게 이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예천군을 방문한 도청이전특별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박진현 위원장을 비롯하여 부위원장 도기욱(예천), 김명호·이영식 위원(안동), 김세호 위원(비례), 변우정 위원(구미), 이시하 위원(문경) 등이 이현준 군수와 환담을 나누었다. 한편, 위원들은 "지금의 도청이전은 이현준 군수님이 도의원 시절 만든 작품이다(이시하 의원), 2014년 말에는 도청이전이 마무리되어 김관용 도지사와 9대 의원들이 신청사에서 도정을 논의할 수 있도록 만들 것(박진현 위원장), 예천과 봉화군수님이 도의원 출신으로 후배 도의원들이 두 곳에 많은 예산을 확보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준 군수는 "2007년 관람객 62만여 명을 예천으로 불러들이며 예천곤충엑스포 성공을 이룩한 김수남 전 군수님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고 2년 뒤에 개최예정인 2012년 예천곤충엑스포 성공을 위해 예천군이 요청하게 될 예산이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도의원님들이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이날 위원들은 오전 풍천면에서 도청이전 추진현황에 대한 관계자의 설명을 청취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공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추진위원회가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10-20 오후 3:09:29)

 

  경북도청(新都市 建設 移住民 11日 化合잔치 벌여) [記事] : 예천군은 도청 이전으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주민들이 신도시 주변 인근지에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주민들의 화합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이주민 화합 한마당 행사 및 음악회를 개최한다. 예천군은 경북도, 안동시와 공동으로 201011 11일 호명면 구 한알중학교 운동장에서 이주민 집단 민원 사전 방지 및 이주민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한 한마당 화합잔치를 연다. 행사는 1, 2부로 나누어 진행되며 1부에서는 호명면 풍물패의 풍물 한마당을 비롯 매직 마술쇼와 인기가수 초청 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2부에서는 김석훈 난타 공연단의 난타 공연과 현철을 비롯한 국내 최정상 가수들의 공연이 3시간가량 이어진다. 예천군 관계자는 예천뿐만 아니라 안동 지역의 이주민간 화합 분위기 조성으로 주민들의 유대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행사 준비에 만전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鄭安鎭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0-10-31 오후 9:17)

 

  경북도청(道廳移轉地 住民化合 行事 및 音樂會 열려) [記事] : 호명면과 안동시 풍천면민의 도청이전지 편입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주민화합 한마당 및 음악회 행사가 201011 5일 오후 3시부터 예천군 호명면 구.한알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도청이전 신도시 조성과 함께 수백 년 살아온 고향을 영원히 떠나야 하는 편입지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가지는 행사로서 도청이전 이주민 생계조합이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예천군·안동시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행사는 오후 3시부터 개회 및 매직마술쇼와 주민 노래자랑 등 단합행사를, 그리고 오후 6시부터는 도청이전지 및 인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음악회에는 가수 현철, 김용임, 한영주 등과 북한예술단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공연이 열렸다. 도청이전 신도시 개발지역 안에는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5개리에 총 604가구 1,336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내년 3월 보상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야 한다.(醴泉인터넷放送 2010-11-05 오후 5: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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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풍초 원시현 교사, 12회 교육정보화연구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원시현(경북교육청, 교육정보화연구대회 대통령상’) [기사] : 경북교육청은 교육부가 주최하고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주관한 제12회 교육정보화연구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교육정보화연구대회는 ICT를 활용한 교실 수업 혁신 및 미래 인재 양성 지원을 목적으로 총 4개 분과로 공모대회가 운영되고 있다. 경북교육청에서는 1등급 3, 2등급 9, 3등급 12편 등 전체 입상작 61편 중 24편이 입상(40%)했다. 디지털교과서 분과 e학습터 분야에서 은풍초등학교(예천) 원시현 교사가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학교경영분과에서 아포초등학교가 최우수교로 선정, 경북교육청의 교육정보화연구 활동이 전국 최고 수준임을 입증했다. 임종식 교육감은 교육정보화연구대회를 통해 거둔 성과를 학교 현장에 일반화하고 많은 교원들이 공유하고 소통하여 미래지향적인 교실수업혁신과 창의 융합 인재양성에 밑거름이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교육정보화연구는 교육과 수업의 질을 혁신하는 기반으로 경북 미래교육을 이끌어 나갈 교육정보화의 표준으로 기대하고 있다.(김우섭 기자 경북도민일보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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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554

 

  예천군 방문(송파문화원, 경북 예천에서 테마 역사기행) [기사] : 송파문화원은 2018 1116일 경북 예천에서 테마 역사기행을 실시했다. 예천은 정감록에 십승지지 중의 하나로 기록될 정도로 살기 좋은 곳. 선사시대의 고인돌·선돌이 발견됐고, 예천군으로 명명된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보아도 1300여년의 유구한 역사로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으며 청정자연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다. 참가자들은 낙동강에 마지막 남은 삼강주막과 600년 넘은 반송으로 세금 내는 부자나무로도 알려진 석송령,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 선생이 말년을 보낸 초간정,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 육지 속의 섬마을이 장관을 이루는 회룡포, 지극한 효성으로 명심보감에도 실린 효자 도시복 생가를 방문했다. 한편 송파문화원에서 매월 진행하는 테마 역사기행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문화유적지를 전문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돌아보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송파구의 대표적인 역사기행 프로그램이다. 송파문화원은 오는 12 21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제111차 테마 역사기행을 실시할 예정이다.(송파타임즈 2018.11.20. 11: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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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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