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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96 : 경북예천지역태실...경북일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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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58) 위의 내용을 종합하여 태실이 위치한 지형을 살펴보면, 오미봉의 안산은 금당실마을 건너편 나지막하게 위치하고 있고, 좌청룡, 우백호가 1km 내외로 떨어져 주위를 감싸는 형국으로 잘 보이지 않으며, 주산에서 내맥이 이어져 오미봉까지 내려오면서 우뚝 솟아 우로는 공중을 받치는 듯한 형세의 오미봉태실 태함(함개) 오미봉태실 태함(함신) 오미봉태실 태함(함신 내부) 지형임으로 태실로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 태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태봉으로 이용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태함 안에 보관되었던 내외항아리와 지석이 사라진 상태임으로 누구의 태실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심현용의 양식편년(註59)에 의하면, 이 태함은 Ⅱ단계의 성종~중종연간(1477~1641) 또는 선조~인조연간(1601~1641)과 Ⅳ단계의 정조~순
조연간(1790~1809)에 해당되어 조선시대의 태실인 것은 분명하다. 향후 오미봉 태실은 사라진 태주의 지석이나 아기태실비가 발견되거나, 오미봉 태실과 관련된 사료의 고증을 통해 태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註56 남대호(남, 63세, 용문면 상금곡리 거주).
註57 주승택, 「금당실의 자연환경과 풍수」,『예천 금당실.맛질 마을』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4), pp.20~21.
註58 국립문화재연구소, 앞의 책(2006), p39 참조.
註59 심현용,「조선왕실 태실석함의 현황과 양식변천」『문화재』43-3 (국립문화재연구소, 2010).
Ⅳ. 맺음말
지금까지 예천군 지역 내에 있는 6곳의 태실을 살펴보았다. 아직까지 왕실의 태실문화의 연구가 미미한 상황에서 이 연구로 인해 예천 지역의 고려와 조선왕실 태실 6곳의 기초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강종대왕, 문종대왕, 장조대왕, 문효세자의 태실은 1등급이며, 폐비윤씨와 오미봉 태실 또한 태봉의 입지조건을 대부분 갖추고 있는 명당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천지역의 태실은 모두 금당실 마을 북쪽 십승지지로 알려진 곳에 위치해 있다. 왕실의 태실은 왕릉과 달리 살아있는 왕의 현우(賢愚)와 성쇠(盛衰)를 위한 것임으로 이는 국운(國運)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태실은 사람들이 난을 피해 살 수 있는 곳, 또 국난에도 안전한 곳이 선정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추후 왕실 태실의 입지분석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왕실의 태는 지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고려의 강종대왕과 조선의 문종대왕의 태를 예천 지역에 안치함으로써 이곳은 기양현, 풍기군으로 읍호가 승격되는 영광을 얻었다. 더구나 태실 수호사찰인 용문사는 감역을 비롯한 왕실의 대규모 후원이 이루어졌고, 명봉사는 폐사된 이후 문종의 태를 묻은 후 재건되어 태실 수호를 담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폐비윤씨 가봉태실, 장조 가봉태실의 특수성을 찾을 수 있었다. 폐비윤씨의 사례처럼 민가에서 태를 소중히 보관하는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유물로서 확인할 수 있었고, 조정에서는 폐비 이후의 상황에서도 태실의 훼손을 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폐비윤씨가봉태실비는 조선왕실에서 조성된 왕비 가봉태실 중 현존하는 유일의 왕비가봉태실비로 남아있다. 더구나 장조는 세자의 신분으로 몰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아들이 왕으로 등극함으로써 사후 태실의 가봉이 이루어졌다. 그의 태실 가봉은 왕이 아닌 신분에서 이루어진 유일한 것으로, 정조 시대의 역사적 특수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예천지역의 태실에 관한 연구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약 1년 11개월간이라는 조사기간을 통해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아직까지 태실 연구가 미미한 상황에서 많이 부족한 이 글은 다소나마 향후 태실연구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이를 토대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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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이란 왕과 왕비를 비롯한 그 자손들의 태를 묻은 시설물을 말한다. 이런 왕실의 태실은 예천지역에서 6곳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조사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예천지역의 태실은 모두 금당실 마을 북쪽 십승지지로 알려진 곳에 위치해 있다. 왕실의 태실은 왕릉과 달리 살아있는 왕의 현우(賢愚)와 성쇠(盛衰)를 위한 것임으로 이는 국운(國運)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태실은 사람들이 난을 피해 살 수 있는 곳, 또 국난에도 안전한 곳이 선정되었다.
둘째, 왕실의 태는 지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고려의 강종대왕과 조선의 문종대왕의 태를 예천 지역에 안치함으로써 이곳은 기양현, 풍기군으로 읍호가 승격되는 영광을 얻었다. 더구나 태실수호사찰인 용문사는 감역을 비롯한 왕실의 대규모 후원이 이루어졌고, 명봉사는 폐사된 이후 문종의 태를 묻은 후 재건되어 태실 수호를 담당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셋째, 폐비윤씨 가봉태실, 장조 가봉태실의 특수성을 찾을 수 있었다. 폐비윤씨의 사례처럼 민가에서 태를 소중히 보관하는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유물로서 확인할 수 있었고, 조정에서는 폐비 이후의 상황에서도 태실의 훼손을 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폐비윤씨 태실은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왕비가봉태실비로 남아있다. 더구나 장조는 왕이 되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아들이 왕으로 등극함으로써 태실의 가봉이 이루어졌다. 그의 태실 가봉은 왕이 아닌 신분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것으로, 정조 시대의 역사적 특수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A historical research on the royal Taeshil in the Yecheon region
This study aimed to collect basic resources on the royal Taeshil (placenta burial tomb) and to examine the regional background of the Yecheon region for the selection of preserving Taeshil in th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First of all, all of Taeshil of the Yecheon regions are located at the north of the Geumdangsil village which is known as Sipseungjiji (ten dispensation territory). Taeshil for the royal dynasty was installed for the prudent and success of the king, which is closely related to the destiny of the country. Accordingly, Taeshil was chosen to a place where people could escape from revolts or live in peace against national crisis like Sipseungjiji.
Secondly, the royal placenta is closely related to local history. When the placentas of King Gangjong of Goryeo and King Munjong of Joseon were preserved in Yecheon, the places were promoted to Giyang-hyeon and Punggi-gun respectively in their district level. Furthermore, Yongmunsa Temple, the guardian temple for Taeshil, received extensive supports from the royal family including Gamyeok. As for the case of Myeongbongsa Temple, which was once destroyed, when it preserved the placenta of King Munjong, the temple was reconstructed to carry out the guardian role for Taeshil.
Thirdly, there are special features Gabong Taeshil of the deposed queen Yoon and Gabong Taeshil of Jangjo. The case of the deposed queen Yoon confirmed a custom of cherishing placenta in private families with its relics. The royal court did not deteriorate Taeshil even after she was deposed. Accordingly, Taeshil of the deposed queen Yoon is the only queen Gabong Taeshil-stone in the country. Furthermore, though Jangjo did not become a king, Gabong Taeshil was installed because his son was enthroned a king. Thus, Jangjo was the only person who had royal burial of placenta as a person who was not a king, which demonstrates a special historic context of the era of King Jeongjo.
Meanwhile, considering the current situation of designating places related to historic figures such as birth places or tombs as cultural heritages, the royal Taeshil seems to be a precious cultural heritage that reflects traditional Feng-shui culture of the country and that has historical, literary, artistic and spatial (Feng-shui) significance as a royal culture in high scarcity. It is expected that maintenance and restoration of existing Taeshil could contribute to preserve a royal culture and could be used as a place of education to teach the royal history and the local history Key words: Yecheon, Taeshil, Taebong, Prince Sado, the deposed Queen Yoon
경북운송주식회사 예천지점(韓國近現代 會社組合資料 : 1927.11.20) [事業體] : 예천읍 서본리에 있던 주식회사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회사조합명 慶北運送(株)/ 자본금 60,000원/ 불입금 15,000원/ 목적 해륙운송 취급업, 창고업 대행 및 보증 행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계 있는 자금의 공급, 이상 각 항 관련 행위/ 사장/대표 高田眞豊/ 중역 1931년 : (전무이사)福岡直助, (이사)山上三樂, 庄田建志, (감사)和田泰一, 福岡九八, (지배인)木島德太郞, 1933년 : (전무이사)福岡直助, (이사)水谷?次郞, 丹後良市, (감사)和田泰一, (감사)福岡九八, (지배인)木島德太郞/ 주식상황 (주식수) 1200 (주주수) 16/ 대주주 1931년 1933년 : 高田眞豊(210), 福岡直助(110), 木島德太郞(100), 澤山寅彦(100)/ 업종 운수창고/ 설립일 1927-11-20/ 본점주소 경상북도 상주군 상주읍 성하리 14/ 지점주소 상주읍 성동리, 동읍 점촌리, 예천면 서본동/ 출전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1931년판, 1933년판)”(history.go.kr 2005)
경북의 낚시터 316선(慶北의 낚시터 316選) [冊] : 낚시춘추사(낚시春秋社)에서 1974년에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1층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청구기호 5996-11-6)되어 있다. 예천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www.nl.go.kr 2006)
경북의 사회 교육(慶北의 社會 敎育) [學術저널] : 예천읍 백전리 109번지 출신인 백산(栢山) 장병창(張炳昌, 1942- , 大昌高等學校 敎務部長)의 학술 저널로, 경상북도교육청에서 1996년에 발행한 <경북교육 50년사(慶北敎育五十年史)> 제7장에 수록되어 있고, 예천에서 장병창이 2002년에 출판한 <백산지(栢山誌)> 2권 328-343쪽(16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개관, 2) 정부 수립 이전의 사회 교육, 3) 정부 수립과 사회 교육이다.
경북의원(慶北醫院) : [醫療] : 예천읍 동본리 554-8번지에 있는 의료 기관으로, 1981년 4월 10일에 의사 채경섭(蔡庚燮)이 예천의원(醴泉醫院)으로 개업하였다. 그 후 의사(醫師)가 바뀌어 경북의원으로 개칭되었다.
경북의원: 경북의원, 도로명 예천군 예천읍 효자로 181, 지번 예천군 예천읍 백전리 94-36, 길찾기 | 병원(daum 2016)
경북의원: 응급환자 발생 대비 관내 병·의원 당번진료 및 당번약국.../ 2010.02.11/ 인성의원 예천읍 남본리, 진료 (09:00~13:00) 휴무 휴무, 경북의원 예천읍 백전리, 진료 (09:00~13:00) 휴무 휴무, 이상호 정형외과 예천읍.../ cafe.daum.net/eunpongse... 은풍중학교 총.. | 댓글 1(daum 2016)
경북의원: 예천군 각 기관/ 2004.01.01/ 풍양면 낙상리 156-7, 인성의원 예천읍 남본리 222-129, 경북의원 예천읍 백전리 94-36, 혜민의원 용궁면 읍부리 316-20, 예천의원.../ cafe.daum.net/yckun/9Ca... 예천군민회(daum 2016)
경북의원: [문경, 예천, 상주]보건소, 조산원, 산부인과, 소아과.../ 2008.06.11/ 예천의원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554-8번지, 경북의원 경북 예천군 예천읍 백전2리 94-36번지, 영남의원 경북 예천군 예천읍 백전리 139번지.../ cafe.daum.net/promoms/... 프로맘스™ ..(daum 2016)
경북의원: [예천곤충엑스포] 당번 의료기관 및 약국 안내입니다./ 2007.08.07/ 진료 〃 인성의원 예천읍 남본리 진료 진료 휴무 진료(오전) 〃 경북의원 예천읍 백전리 진료 진료(오전) 휴무 진료(오전) 〃 예천의원 예천읍.../ cafe.daum.net/ycexpo/H9... 예천곤충바이..(daum 2016)
경북일고등학교(慶北一高, 護國報勳 宣揚을 爲한 群山地域 踏査 : 群山 港口, 近代 歷史博物館 찾아 나라사랑 다짐) [記事] : 경북일고등학교(교장 윤일영) 나라사랑 동아리 소속 학생 34명은 2018년 6월 23일 보훈청의 국고보조금으로 호국보훈 선양을 위한 행사로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과 신흥동지역을 찾아 안중근 감옥체험과 일본이 쌀을 수탈한 군산 항구와 근대역사박물관을 찾아 나라사랑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저격하고 검찰관에게 “내가 죽고 사는 것은 논할 것이 못된다. 이 뜻을 속히 일본 천황에게 알려라. 그래서 속히 이토의 옳지 못한 정략을 고쳐서 동양의 위급한 형세를 바로잡도록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순감옥에 갇혀서도 그 기개를 잃지 않은 진정한 우리의 영웅인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1반 학생은 “장미동(藏米洞) 이름과 미곡취인소와 임피역이라는 이름이 너무 가슴 아프다면서 국력을 길러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다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호남관세박물관과 근대미술관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특히 근대건축관에 있는 ‘민족의 함성’에서 김구선생의 얼굴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며 “우리들의 미래는 더욱 강력하고 부강한 대한민국과 함께 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한편, 경북일고등학교는 글로벌 사회에 걸맞는 시민과 새로운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봉사와 나눔의 생활자세를 몸에 익히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겸손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봉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북신도청 시대에 발맞추어 최고 학교로 거듭나기 위해 교과교실제, 학생중심활동, 선택교과활동 등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며 새 교육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醴泉뉴스 2018.06.27.)
경북일고등학교(慶北一高, 第1回 學生 3담꾼 討論 大會 : 입담, 정담, 재담의 讀書 討論 文化 擴散) [記事] : 경북일고등학교(교장 윤일영)는 2018년 7월 19일 제1회 입담, 재담, 정담의 3담꾼(群) 교내 토론 대회를 개최하여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 및 발표력을 키웠다. 이번 토론 대회는 교내 토론 동아리 ‘융합독서토론’ 학생들이 직접 진행하였고, 학생들과 학부모가 참석한 가운데 토론자들은 주어진 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입장에 서서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많은 참가 신청자 중 6팀이 본선에 올랐고, 교사뿐 아니라 학생 평가단(토론 동아리)과 대회 참가자도 평가에 참여함으로써 학생 주도 및 참여형 대회로 진행되었다. 이번 토론 대회에서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는 소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자기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임이 강조되었다. 특히, 그동안 토론문화 정착과 토론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한 지도교사와 토론 동아리 및 참여 학생들에게 많은 박수가 있었다. 경북일고에서는 학생들의 의사소통능력과 조화로운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학생들의 사고력을 높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매년 주제별 토론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醴泉뉴스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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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